2026 로보월드에 전시된 다양한 형태의 로봇들. 현대차그룹 모베드(MobED)와 가온로보틱스 휴머노이드를 결합한 로봇(왼쪽부터), 삼성전자 자회사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신형 YB-2, LG전자의 세미휴머노이드 클로이의 모습. /박찬규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취임 4주년인 지난달 27일 로봇 사업 조직인 RX(로보틱스 익스피리언스)사업추진실을 찾아 로봇 사업 추진 현황을 점검했다. 삼성뿐 아니라 LG·현대자동차·HD현대·한화 등 주요 그룹도 조직 신설과 로봇 기업 인수, 외부 협력으로 피지컬AI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피지컬AI 시장은 연구개발과 현장 실증, 초기 상용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대기업 사이에서도 선두를 가리기 어렵다. 지금은 시장점유율을 다투기보다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고 공장과 물류센터 등 실제 현장에 적용해 새로운 수요를 만드는 단계다. 대기업들이 로봇에 힘을 싣는 배경엔 인력 부족과 피지컬AI 전환 경쟁이 있다.

대기업은 자체 공장과 물류센터에서 로봇을 시험하고 학습 데이터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지만 기술 확보 방식은 그룹마다 다르다. 삼성전자는 국내 최초의 인간형 이족보행 로봇 '휴보'를 개발한 KAIST 연구진이 설립한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자회사로 편입해 구동·제어 기술을 확보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연구용 휴머노이드 RB-Y1을 공급하고 있으며 차세대 버전 Y2는 2027년 안전인증·판매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국내외 생산 공장을 AI 자율공장으로 바꾼다는 목표 아래 로봇의 현장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완성 로봇과 핵심부품, 산업별 로봇을 계열사별로 나눠 개발한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개발하고 현대모비스는 액추에이터 공급 협력에 나섰다. 현대모비스는 울산 섀시모듈 공장에 3D 비전 운송로봇을 시범 적용하고 에어백 공정에서 가상환경 로봇 티칭 기술을 시연했다.

현대위아는 자율이동로봇(AMR)·주차로봇·협동로봇·무인지게차 등을 개발하며 2020년부터 그룹 제조현장에 물류로봇 약 500대를 공급해 상용 운영 중이다. 2023년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에 처음 공급한 주차로봇은 미국 앨라배마·조지아 공장 등으로 공급처를 넓혔고, 민간 오피스에 이어 아파트에서도 실증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로템은 다목적 무인차량(HR-셰르파)과 다족보행로봇 등 국방용 무인체계 기술을 개발한다.

LG전자는 2017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설립된 베어로보틱스의 경영권을 확보했다. 베어로보틱스는 식당·호텔에 서빙·배송 로봇을 공급하며 자율주행 기술을 축적했고, 물류용 AMR '카티'와 여러 로봇을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도 개발했다. LG전자는 이를 기존 '클로이' 사업과 결합해 상업용 로봇 시장을 넓힐 계획이다.
HD현대가 새롭게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왼쪽)과 두산로보틱스의 이동형 협동로봇의 모습. /HD현대, 두산로보틱스


기존 산업용 로봇 기술을 확장하는 기업도 있다. HD현대로보틱스는 협동로봇을 상용화하고 조선·중공업용 지능형 로봇과 휴머노이드를 개발 중이다. 조선소 자동화 솔루션 '아크리프트 고(ArcLift GO)'는 북미 3곳·브라질 1곳과 공급계약을 맺었다. 두산로보틱스는 협동로봇에 3차원 비전과 AI 경로생성 기술을 결합해 물건 쌓기(팔레타이징), 표면 연마(샌딩), 용접 등으로 작업 범위를 넓힌다. 네이버 연구개발(R&D) 자회사인 네이버랩스는 로봇 하드웨어와 공간지능,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관련 기술을 자체 개발하고, 다중로봇 제어 플랫폼 'ARC'를 제2사옥 '1784'에서 운영한다.

전문기업과의 협력도 강화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모바일 로봇 플랫폼 '모베드(MobED)'를 활용해 전문기업의 주행 기술 개발 부담을 덜고 산업별 응용 서비스를 개발하도록 지원한다. HD현대로보틱스는 에이딘로보틱스에 130억원을 투자해 힘·촉각을 감지하는 조선·중공업용 5지(다섯 손가락) 로봇손을 공동 개발한다. 삼성벤처투자도 이 회사에 3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로템은 미국 방산 AI 기업 안두릴과 유무인복합체계(MUM-T) 지휘통제 기술 협약을 맺었다. 한화로보틱스는 마음AI와 손잡고 로봇이 주변 상황을 인식·판단해 움직이는 시각언어행동(VLA) 모델 적용을 추진한다.

기술 확보만으로는 시장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AI·로봇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인데 부품업체와 로봇 제조사, AI 개발기업은 물론 실제 로봇을 사용하는 기업까지 협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동영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연구원은 "자체 개발과 외부 협력은 기술 경쟁력이 축적되는 방식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외부 기술을 활용하더라도 수요기업은 성능 평가와 운영 관리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 공정과 밀접한 기술은 직접 확보하고, 여러 고객사에 적용하며 성능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은 전문기업과 협력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