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에 연고를 둔 중견 B건설업체는 올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총선 일정이 겹치자 분양을 연기했다. 이후 수억원의 사업비 이자비용이 증가했다. 코로나 19 사태가 다소 진정돼 분양을 준비하고 있지만 분양률이 저조할 경우 회사가 위기에 내몰릴 수 있는 상황이다. 분양일정을 미루며 물량을 움켜쥐고 있는 중소건설업체의 고민이 커졌다.
대기업은 해외 리스크, 중소기업은 유동성 리스크로 건설 한계(부실)기업이 경제 뇌관으로 떠올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12개 건설업체가 금융시장에서 ‘아웃’된지 12년 만에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바이러스가 다시 건설업계를 위협한다. 건설 한계기업은 2018년 10.4%에서 올해 13.0%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중동 산유국의 경기침체, 국내 주택시장 버블, 사회간접자본(SOC) 공기지연 등으로 대·중소기업 모두 위기감이 팽배하다.
부채 줄이는 이유는?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A급 건설업체 9개사의 PF 자산담보부 기업어음(ABCP) 익스포저가 5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현금성 자산 6조7000억원 대비 높은 편이라고 분석했다. 올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PF ABCP는 24조원 규모. 조사에 포함된 건설기업은 롯데건설·대우건설·포스코건설·한화건설·GS건설·SK건설·HDC현대산업개발·신세계건설·태영건설이다.시공능력평가 상위 건설업체를 보면 대부분 대기업그룹 소속으로 자금지원 가능성이 있는 데다 자체적인 현금보유 능력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기업 유동성 지표인 순차입금을 보면 10대 건설기업 가운데 절반은 지난해 차입금을 줄여 부채비율을 낮췄다. 인적 구조조정과 사업 포트폴리오 축소를 통해 보수적인 재무기조를 나타냈다. 차입금을 줄인 회사는 업계 1~3위인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림산업과 현대엔지니어링, 롯데건설이다.
가장 많은 순현금을 보유한 회사는 현대엔지니어링. 현대건설과 함께 현대자동차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9883억원의 순현금을 보유해 2018년 2186억원보다 352.0% 늘렸다. 총차입금은 1999억원,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조1882억원이다.
이어 롯데건설은 전년대비 38.0% 늘어난 8028억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했다. 대림산업과 현대건설은 각각 전년대비 20.0%, 15.0% 증가한 2조5592억원, 2조5860억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확보했다.
삼성물산은 가장 낮은 부채비율을 기록했다. 지난해 연결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조7044억원으로 전년대비 약 1991억원 감소해 부채비율이 같은 기간 79.0%에서 62.0%로 17.0%포인트 낮아졌다.
반대로 신사업 투자와 사옥 이전 등에 부채를 사용한 회사도 있다. GS건설과 대우건설은 순차입금이 지난해 말 9237억원, 1조5953억원으로 전년대비 76.0%, 10.7% 각각 증가했다. GS건설은 그룹 오너4세인 허윤홍 사장이 신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며 부채비율이 연결기준 218%대를 기록했다. 대우건설은 사옥을 이전하며 부채비율이 상승했다. 앞으로 10년 동안 지불해야 하는 사옥 임대료를 한번에 리스부채로 계상, 연결기준 289.7%의 부채비율을 기록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현금자산이 5338억원으로 전년대비 61% 줄었다. 현금 보유량은 2018년 1조3526억원에서 1년 만에 10대 건설기업 최하위로 떨어졌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비용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부채비율은 2018년 163.7%에서 지난해 97.6%까지 낮아졌다.
건설기업들이 재무 컨디션을 높인 건 대체로 위기에 대비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해외건설 수주액 예상치를 기존 280억달러에서 220억달러로 하향조정한다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박선구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은 “지난해부터 유가가 급락해 주력시장인 중동의 수주 지연 및 취소가 발생하고 있다”며 “기업의 재무 리스크 증가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중소업체 구조조정 본격화?
문제는 중소업체다. 중소업체는 코로나19발 줄도산이 공포로 다가온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직후인 2009년 1월 금융당국은 시공능력평가 상위 100개 건설기업의 신용위험을 평가해 대주건설(D등급)을 퇴출하고 경남기업·대동종합건설·동문건설·롯데기공·삼능건설·삼호·신일건업·우림건설·월드건설·이수건설·풍림산업(C등급)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D등급 업체는 채권단 지원 없이 자체 정상화하거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아야 한다. C등급 업체는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에 따라 채권단의 경영정상화 방안을 따라야 한다.중소기업은 높은 이자율과 낮은 대출한도로 인해 자금조달이 어려운 구조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합판, 타일, 석재 등 건설자재 공급 역시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실제 일부 중소건설업체는 폐업이 가시화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이 선언된 지난 3월 폐업을 신고한 종합건설업체는 36개로 전년동기대비 71.0% 증가했다. 충남 천안에 본사를 둔 직원수 93명의 지안스건설은 최근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타일·방수 시공업체 지원건설과 부동산개발회사 동진주택개발도 각각 2월 말과 3월 초 파산을 신청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부실 위험이 있는 건설업체는 최대 7000개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건설 한계기업이 최대 14.0% 수준으로 증가한다고 예상했다. 다만 이는 영세 하도급업체를 포함한 전체 건설업체 약 5만개를 대상으로 추정한 수치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경제위기 때마다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 건설업체와 하도급업체가 도산하는 문제를 막으려면 구조조정시스템보다 진입 문턱을 높여 사전에 난립하는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3호(2020년 5월5~1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