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비상계엄 당시 전두환 신군부에 불법 구금되고 재산 헌납을 강요당한 고(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 유족에 대해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진은 김종필 전 총리가 지난 2015년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서 조문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사진=머니투데이

1980년 비상계엄 당시 전두환 신군부에 불법 구금돼 재산 헌납을 강요당한 고(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 유족에게 국가가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정하정 부장판사)는 지난 10일 김 전 총리의 장녀 김예리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원고에게 1억45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김 전 총리는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 당일 '권력형 부정 축재 혐의자'로 지목돼 자택에서 강제 연행됐다. 이후 같은 해 7월2일까지 47일간 구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고 국회의원직 사퇴와 재산 헌납을 조건으로 석방됐다.

당시 계엄사령부는 김 전 총리 등 9명을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자로 발표하며 "정부의 정화 의지에 순응해 재산을 국가에 자진 헌납하고 모든 공직에서 스스로 사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전 총리 서거 이후 장녀 김씨는 2019년 국가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 및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김 전 총리가 당시 절대적 강박상태에서 재산을 헌납했고 이는 반사회질서 법률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증여 행위가 무효라고 보기 어렵고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건은 김씨가 2022년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부친에 대한 진실규명을 신청하면서 다시 다뤄졌다.

진실화해위는 2024년 10월 "국가가 강압으로 국회의원직 사퇴서를 받고 강압으로 얻은 서류를 토대로 재산에 대해 소유권이전등기 절차를 이행해 의사결정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는 내용의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에 김씨는 지난해 1월 선친이 불법적으로 재산을 헌납하고 국회의원직에서 물러났으며 부정축재자로 낙인찍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국가 측은 재판에서 진실화해위 결정에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법적 효력이 없고, 김 전 총리가 자발적으로 재산 헌납 의사를 표시했다고 주장했다. 또 손해배상청구권은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맞섰다.

하지만 1심은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합수부는 망인을 구속영장 등 적법한 인신구속절차 없이 연행해 구금했다"며 "구금 과정에서 협박 등 강압적인 방법을 통해 재산을 헌납하는 취지의 기부서 및 국회의원직 사퇴서 등을 작성하게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이런 행위는 공권력을 남용한 직무상 불법행위로 망인과 그 가족의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소멸시효에 대한 국가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불법행위는 과거사정리법이 규정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한다"며 "민법에 근거한 10년의 장기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24년 10월14일 원고에게 진실규명 결정을 통지했다"며 "3년 이내인 2025년 1월31일 이 사건 소를 제기했기에 손해배상청구권의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