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 전 KAIST 총장이 과학기술 인력의 국방 활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조현호 기자

-주제를 국방, 국가안보 쪽으로 돌려보겠습니다. '기정학(技政學)'이라는 용어를 써오셨습니다. 지리적 운명을 강조하는 지정학이 아니라 기술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기정학이라는 단어를 쓰시는데, 연원이 있나요?
▶5년 전쯤 과총(과학기술총연합회)에서 발표할 글을 작성하다가 '지정학'을 '기정학'으로 오타를 냈습니다. 고치려다 보니 그게 오히려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 글을 쓸 때가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도착지인 오산 비행장에서 수원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으로 바로 갔을 때였어요.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한국 정치인 면담이나 미군 부대 방문에 앞서 반도체 공장에 가는 거예요. 그만큼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장면이었죠. 그 뒤로 '기정학'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어요. 제가 '미는' 용어입니다.

-지리적 위치보다 기술이 국제관계와 안보에 중요하다는 뜻인가요?
▶지금 한국은 무시할 수 없는 나라가 됐잖아요? 기술이 있으니까 대우받는 거죠. 중국 빼고는 대형 선박 제대로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우리밖에 없죠? 원자력발전소 잘 만들 수 있는 나라도 우리 말고는 별로 없고요. 반도체도 물론이고요. 그러니까 미국이 우리를 함부로 대할 수 없죠.


-기술력이 결국 국방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네요.
▶대만을 보세요. 대만에 TSMC가 있으니 미국이 어떻게든 대만이 중국에 병합되는 것 막을 거예요. 만약 TSMC가 없었다면 미국이 대만을 보는 눈이 달랐을 겁니다. 지금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면 반도체 기술이 다 중국으로 넘어가죠. 그 결과로 미국 산업이 다 뒤집어지고, 우리도 큰일 나는 거고요.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TSMC 폭파하고 엔지니어들 다 대만 밖으로 가게끔 한다고 하는데, 미국 입장에서는 대혼돈이죠.

-지정학과 달리 '기정학'은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이렇게 들립니다.
▶그렇죠. 지정학으로 보면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여건이 놓여 있어요. 그런데 기정학으로 보면 우리에게 여지가 있는 거죠. 지정학으로 세상을 보면 불변이에요. 나라에 바퀴를 달아 다른 곳으로 끌고 갈 수가 없잖아요? 반면 기정학으로 보면 달라질 수 있어요. 10년을 하면 변화시킬 수 있어요.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세상이 긍정적으로 보이게 되죠. 지금 우리가 그 수혜를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KAIST 총장 시절에 군과의 연구 협력, 군 간부 과학기술 교육에 열의를 보이셨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미래의, 아니 이미 현재의 국방은 과학기술에 좌우됩니다. 매우 상식적인 얘기죠. 한국에서 과학기술의 맨 앞줄에 KAIST가 있잖아요? 그러면 KAIST가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죠.
2023년 KAIST에 설립된 육군미래혁신연구센터 개소식에 참석한 이광형 전 KAIST 당시 총장(오른쪽에서 셋째)./사진=육군 제공

-그래도 뭔가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총장 된 다음 해인 2022년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났죠. 전쟁 양상을 보니 드론, 위성통신 등 다 기술로 하는 거예요. 우리는 무슨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지, 어떤 무기를 만들어야 하는지가 궁금해졌죠. 그래서 공부를 좀 해보려는데 마땅한 '스터디 그룹'이 없더라고요. '이래서는 안 된다, 모여서 얘기를 해보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육해공군, 합참에 다 연락했어요. 그 결과로 군 실무자들과의 포럼이 생겼어요. 하다 보니 군 고위 간부들에 대한 과학기술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교육을 하니 요구사항이 나오더라고요. 국방에 필요한 기술이나 시스템 개발에 KAIST가 좀 도와주면 안 되겠느냐는 거였죠. 그 결과가 KAIST에 생긴 안보융합원입니다. 그 밑에 을지연구소가 있고요. 학교 안에 육군미래혁신센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신 이유가 뭔가요?
▶육해공군 참모총장, 합참의장과 친해졌어요. 군 행사 초청도 많이 받고, 강의도 많이 했죠. 그러면서 깨달은 게 '군은 많이 도와줘야 할 곳이구나'입니다. 사람들이 군은 돈도 많고, 무기도 잘 만들고, 연구도 잘하는 곳으로 알아요.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면 허약해요. 애로사항도 많고요. 게다가 융통성도 없어요. 정해진 틀에 박혀서 하던 대로 하려 해요. 세상은 무섭게 변하는데, 답답하더라고요. 도울 방법을 찾다가 연구비 같이 확보하러 다니고, 개발 계획 함께 세우고 했죠. 요즘 계엄 사태로 풀이 확 죽어있던데, 우리 국민이 애정을 가지고 군을 바라봐야 합니다.

군이 스스로 무기 개발할 수 있게 해야

-군의 과학기술 활용 측면에서 시급한 일은 뭔가요?
▶지금 우리가 무기 수출을 활발히 하지만 첨단 장비나 무기는 잘 만들지 못해요. 대표적인 게 무인기, 드론입니다. 방산 비리 막겠다고 촘촘히 그물을 쳐놔서 그래요. 무기 하나 개발해서 실전 배치하는 데 10년, 15년 걸렸어요. 정부가 패스트트랙을 만들어서 기간을 단축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더디죠. 드론이나 무인기는 2년만 지나도 낡은 게 돼요. 무기 획득 체계를 바꿔야 합니다. 육해공군이 자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게 해야 하죠. 방위사업청이 총괄하는 시스템으로는 속도를 낼 수 없습니다. 회사에서 기계 쓰다 보면 '이건 이렇게 좀 고쳤으면 좋겠다, 소프트웨어 조금 고치면 되겠다' 그런 게 생길 거 아닙니까? 그럴 때 회사에서 재빨리 고칠 수 있어야 생산성이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군도 마찬가지죠. 부지하세월로 뭐가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려면 군이 과학기술 인재를 많이 확보해야 할 것 아닙니까?
▶네. 휴전선에서 총 들고 서 있는 게 국방의 전부가 아니고 신무기 만드는 게 국방이잖아요. 군에서 무기를 개발하고,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는 관련 분야로 창업도 하고, 그런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디지털 기술 특수부대 '8200 유닛'을 소재로 만든 드라마의 한 장면. 8200 유닛은 통신첩보 수집과 분석, 암호 해독, 사이버전 수행에 특화된 최정예 조직이다./사진=드라마 '8200' 캡처

-이스라엘은 '탈피오트'나 '8200 유닛'처럼 군 안에 국방 기술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조직을 두고 있는데, 우리도 그런 게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제가 율곡의 '10만 양병설'에 빗대어 '10만 기술병' 육성을 주장합니다. 기술 인재, 과학 인재를 군에서 제대로 활용하자는 것이죠. 복무하면서 국방에 필요한 기술 개발하고, 문제 해결 방법 궁리하고, 나중에는 회사도 만들고…. 이렇게 되려면 진로 설계를 잘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탈피오트 출신들이 자기들끼리 도와주면서 미국에서 창업도 하고 그러잖아요?

군의 과학기술 인재들, 창업으로 연계

-한국에 '국방첨단과학기술사관학교'라는 게 생겨나서 내년에 신입생을 뽑습니다. 탈피오트와 유사한 역할을 할 것 같은데요, 여기에도 관여하셨나요?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주도했죠. 저는 지지하는 발표도 하고 그랬어요. 우리나라가 갈 길이다, 국방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게 성공하려면 진로에 대한 비전을 보여줘야 합니다. 졸업하고 임관하고 좀 지나면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 아닙니까? 민간 기업에서의 활용이나 창업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길을 잘 닦아줘야 합니다.

-군이 자체적으로 장비·무기 개발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고 하셨고, 과학기술 분야 장교 육성의 중요성도 얘기하셨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입대 대신에 기업이나 민간 연구소로 가는 병역특례 제도도 손을 좀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제한된 병역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생각해야 합니다. 병역특례로 일반 회사에서 게임이나 소프트웨어 개발하는 것도 물론 국가에 기여하는 것이지만 국방에 직접적으로 더 연결되면 좋겠습니다. 과학기술병 제도가 만들어져 있는데, 시작 단계라서 그런지 짜임새 있게 운영되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학기술병 규모를 더 키워야 하고요.

-'과학군사령관'이라는 별명을 얻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군이 과학기술 인재를 많이 보유하고, 그들을 잘 육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우를 잘해줘야죠. 공군에서 조종사 키워놓고 민간 항공사로 빼앗기잖아요? 나라가 처우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합니다. 물론 그래도 삼성전자·하이닉스처럼 해줄 수는 없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다행인 것은 국가에 대한 사명감 있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돈 덜 벌어도 나라 지키는 일 하겠다는…. 이런 젊은이를 귀하게 여기고 잘 대접해야죠. 그들의 자긍심이 강국을 만듭니다.

※8월 1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시대포럼: 새로운 전쟁의 시대, K방산의 현재와 미래' 2차 숙의 토론회가 열린다. 동행미디어 시대와 김병주 의원의 주최로 열리는 이 토론회에 이광형 전 KAIST 총장이 '기정학(技政學) 시대의 10만 연구병'을 주제로 발제한다.

◇이광형 프로필
1954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서울사대부중고, 서울대 산업공학과 졸업, KAIST 산업공학 석사/프랑스 리옹 국립응용과학원(INSA) 박사/KAIST 전산학과, 바이오뇌공학과 교수(1985∼2020)/KAIST 과학영재교육원장(2006∼2012)/KAIST 총장(2021.3∼2026.7)/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현)/2045 과학기술 프론티어 전략위원회 총괄 위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