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최근 폭염 대응 지침을 각급 부대에 하달하고 혹서기 교육훈련을 기후 여건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8일 오후 국방부 청사에서 이두희 국방부차관 주관으로 전군 재난관계관 회의가 열린 모습./사진=뉴스1

폭염이 재난을 넘어 일상이 되면서 군 훈련과 학교 교육, 프로스포츠, 지역축제 등 우리 사회의 '여름 시간표'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냉방시설을 늘리는 수준을 넘어 과거 기후를 기준으로 설계된 사회 시스템 전반을 폭염 시대에 맞게 재구성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폭염 대응의 초점을 단순한 피해 최소화가 아닌 '기후 적응'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한다.

군대부터 프로야구까지…달라지는 '여름 시간표'

6일 국방부에 따르면 군은 최근 기상특보 발령 시 작전·교육·행사 등 부대 활동 일정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내용을 담은 폭염 대응 지침을 각급 부대에 하달했다. 대민 지원은 '선조치 후보고' 원칙에 따라 신속하게 시행하고, 야외 훈련 시에는 시간당 10분 이상 휴식을 보장하도록 했다. 식수와 소금, 그늘막 등을 충분히 비치해 장병들의 온열질환 예방도 강화하고 있다.

교육훈련 체계 역시 폭염에 맞춰 세분화됐다. 국방부는 기존 4단계(주의·부분제한·제한·중지)였던 혹서기 교육지침을 올해부터 5단계(관찰·대비·조정·제한·중지) 체계로 개편했다. 기존에는 온도지수 26.5 이상(체감온도 29.5도 이상)에서 적용하던 1단계를 온도지수 20.0(체감온도 23도 이상)부터 적용하는 '관찰' 단계로 바꿔 신병과 체력저조자 등 취약 인원의 건강관리를 강화했다.


올해 새롭게 도입된 '폭염중대경보' 기준도 교육훈련 지침에 반영됐다. 폭염중대경보가 발령되면 필수 임무를 제외한 부대 활동은 중지하고, 교육은 냉방이 가능한 실내에서 진행하도록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기후 변화에 맞는 안전한 교육훈련 체계를 지속적으로 운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KBO가 폭염 대응을 위해 경기 시작 시간을 조정하는 등 리그 운영 방식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KBO리그 LG 트윈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사진=뉴시스

프로스포츠도 폭염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최근 폭염 단계별 경기 운영 세칙을 마련하고 폭염경보가 발효되면 홈 구단 의견을 반영해 경기 시작 시간을 최대 1시간 늦출 수 있도록 했다.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질 경우에는 경기 당일 오후 1시 이전 취소 여부를 결정하는 등 기후 상황에 따라 경기 운영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방침이다.

KBO는 이날 10개 구단 단장과 선수협회가 참석하는 긴급 실행위원회를 열고 폭염 대응 종합 운영 방침과 추가 안전대책을 논의한다. KBO 관계자는 "최근 전국적으로 폭염이 지속되면서 관람객과 선수단의 안전 위험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관람객과 선수단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리그 운영 방침과 안전 대책을 원점에서부터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학교 현장도 달라지고 있다. 교육계에 따르면 폭염특보 발효 시 야외 체육수업을 실내수업으로 대체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으며, 운동회와 체육대회를 봄·가을로 옮기는 학교도 꾸준히 늘고 있다. 폭염 장기화에 대응하기 위해 여름방학과 학사일정 운영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지역축제의 변화도 뚜렷하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한낮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을 축소하는 대신 야시장과 야간 공연, 드론쇼, 미디어아트 등 저녁 시간대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한 지자체 축제 관계자는 "폭염을 피하면서도 방문객 체류 시간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야간형 축제가 새로운 운영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며 "기후 변화에 맞춰 축제 기획과 운영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폭염 대응이 더 이상 냉방기기와 쉼터를 늘리는 차원을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군 훈련과 수업, 경기와 축제 운영 방식 자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적응 전략이 확대되면서 사회 전반의 여름 운영 체계가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이 된 폭염…도시설계 등 사회 시스템 적응 시급

폭염특보가 발효된 지난달 12일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카니발 광장을 찾은 시민들이 여름축제 '슈팅 워터펀'에서 시원한 물줄기를 맞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사진=뉴시스

해외에서는 이미 기후에 맞춰 사회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은 폭염 시간대 야외활동을 줄이고 저녁 시간대 경제·문화 활동을 확대하고 있으며,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청소년 스포츠 경기와 야외 행사를 야간 중심으로 운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도시 공간을 폭염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가 열을 축적하는 도심 열섬현상이 심화되면서 그늘과 녹지, 수변공간을 확대하고 건축물과 도로 설계 단계부터 폭염 저감 기능을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방자치단체들은 그늘막과 쿨루프, 쿨페이브먼트, 도시숲 조성 사업 등을 확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설 확충에 그치지 않고 도시계획과 건축 기준까지 폭염을 전제로 재설계하는 장기적인 적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최동진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기후위기는 지역마다 영향과 특성이 다른 만큼 지역 여건을 반영한 폭염 대응 가이드라인과 적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과거 기준을 유지하기보다 도시계획과 건축, 교통 등 사회 시스템 전반을 변화한 기후에 맞춰 설계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영인 한국환경연구원(KEI) 연구위원은 "기후위기 적응은 냉방시설을 확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기후에 맞게 바꾸는 과정"이라며 "학사일정과 스포츠 경기, 지역축제 운영 방식은 물론 도시 공간과 생활 인프라까지 폭염이 일상이 된 환경에 맞춰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폭염은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재난이 아니라 사회가 전제로 삼아야 할 새로운 환경이 되고 있다. 훈련과 수업, 경기와 축제, 도시 설계까지 과거의 계절을 기준으로 만든 사회의 시간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기후위기 시대 대한민국의 새로운 과제로 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