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폭염에 축산농가가 생산량 감소와 비용 증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29일 경기 화성시 만세구의 한 축사에서 젖소들이 대형 실링팬과 선풍기, 쿨링포그 시설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사진=뉴스1

"생크림이 없어 케이크를 못 만든다."

올여름 일부 디저트 카페에서는 이 같은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기록적인 폭염에 젖소 산유량이 줄면서 생크림과 버터 수급이 불안정해진 탓이다. 더위에 지친 젖소는 우유를 덜 생산하고 농가는 냉방비 부담에 시름하고 있다. 축산 현장의 폭염이 자영업 현장으로 번지고 있다.


경기 양주에서 디저트 카페를 운영하는 한혜현씨(29)는 최근 여름철마다 생크림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전에는 하루 전 주문으로 충분했지만 지금은 이틀에서 사흘 전에 미리 발주해야 한다. 주문량을 모두 공급받지 못하는 날도 적지 않다.

한씨는 "우유는 크게 체감되지 않지만 생크림과 버터는 확실히 구하기 어려워졌다"며 "여름철에는 가격까지 오르다 보니 부담이 커진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생크림 품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우유 등 주요 유업체의 업소용 생크림(1ℓ) 시중 거래가는 평소 5000원대에서 수급이 불안정할 때 8000~9000원 선까지 오른다. 일부 유통 대리점에서는 거래처별 공급량을 30~50% 줄여 배정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광주의 한 케이크 전문점은 최근 SNS를 통해 "폭염으로 생크림 수급이 어려워졌다"며 매장 케이크 판매를 잠정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서울의 일부 디저트 카페 역시 홀케이크 예약을 제한하거나 일일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생크림 부족의 출발점은 목장이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국내 원유 생산량은 봄철 정점을 찍은 뒤 여름철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폭염이 이어졌던 지난해 7월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은 5030톤으로 전년 동기(5270톤)보다 4.6% 감소했다.

국내 젖소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홀스타인종은 더위에 취약하다. 고온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료 섭취량이 줄고 영양 흡수율도 떨어진다. 결국 산유량 감소로 이어진다. 조호성 전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폭염이 장기화될 경우 일부 농가에서는 젖소 1두당 산유량이 10~15% 이상 줄어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원유 생산이 줄면 유업체는 우유 공급을 우선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생크림과 버터 같은 가공 원료 공급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생크림은 대체재가 사실상 없는 원료"라며 "공급이 흔들리면 카페와 제과점은 가격이 올라도 구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시 전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지난달 30일 오후 북구 흥해읍 용곡리 젖소 농가에서 포항시 기동 방역팀이 축사 지붕에 물을 뿌려주고 있다. /사진=뉴스1

폭염은 젖소의 생산성만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다. 농가의 생산비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산유량 감소와 가축 폐사를 막기 위해서는 환풍기와 포그분무기, 냉방시설 가동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전기요금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농사용(을) 저압 전력량요금은 2021년 1㎾h당 34.2원에서 올해 65.9원으로 5년 만에 92.7% 상승했다.

제주 서귀포에서 축산농가를 운영하는 허모씨는 "비용 부담 때문에 냉방시설을 마음껏 돌리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산유량은 떨어지는데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으면 한숨부터 나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폭염을 일시적인 기상이변이 아니라 상시적인 기후 리스크로 보고 있다. 단기적인 냉방비 지원뿐 아니라 스마트 축사 전환과 고효율 냉방시설 보급, 에너지 절감형 축사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앞으로 축사를 설계할 때는 5년, 10년 뒤 기온 상승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생산성 유지와 에너지 비용 절감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환기·냉방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장인 문금주 의원은 [시대]와의 통화에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신속하게 취해 달라고 요구해 놓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축산 분야 폭염 대응 전담 상황실을 가동해 지자체와 농협, 생산자단체 등과 대응 상황을 매일 점검하고 취약 농가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폭염은 더 이상 농장 안의 문제가 아니다. 더위에 지친 젖소가 생산하지 못한 우유는 생크림 품귀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케이크 판매 중단과 자영업자의 부담 증가로 연결된다. 올여름 폭염은 목장에서 시작해 카페 진열대까지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