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들끓게 하는 '가마솥 폭염'이 연일 이어지면서 사회 곳곳에서 '폭염 에티켓'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불쾌지수가 폭발하는데 자기들만 생각한다"는 불만이 주를 이루는 상황에서 쏟아지는 민원을 해결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 등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당부하며 쩔쩔맨다. 대표적인 게 ▲에어컨 ▲양산과 손선풍기 ▲복장 논쟁이다.
여름엔 이것 때문에 꼭 다툰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점심시간 식당에서 에어컨을 두고 손님들끼리 맞부딪힌 사연이 올라왔다. 작성자에 따르면 식당에 막 들어온 여성 손님이 "실내가 너무 춥다"며 사장에게 에어컨을 꺼달라고 요청하면서 손님들 간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며 땀을 뻘뻘 흘린 손님들은 "왜 에어컨을 끄냐"며 항의했고, 이내 손님들끼리 말다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대다수 네티즌은 "더운 사람이 옷을 더 벗을 수는 없지 않나. 추위 많이 타는 사람이 겉옷을 갖고 다녀라"는 반응이었다. 물론 "춥다고 느낀 손님이 온도 조절도 요청하지 못하느냐. 그렇다고 면박까지 줄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적잖았다.
온도 차이로 인한 '에어컨 갈등'은 여름철 단골 메뉴. 대표적인 곳은 지하철이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전체 불편 민원 101만여 건 중 냉난방 민원이 78.4%(약 79만여 건)를 차지했다. 전체 불편 민원 중 냉난방 민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2년 65.3%, 2023년 76.9%, 2024년 80.6%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오전 출근 시간대와 오후 퇴근 시간대 승객 밀집도가 높아지면 어김없이 '덥다'는 민원이 집중되는데, 냉방기를 세게 트는 순간 일부 승객들의 '춥다'는 민원이 동시에 접수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서울교통공사는 "같은 객실에 탑승하더라도 승객 별로 체감온도가 다르다 보니 상반된 민원이 동시에 발생해 고객센터 상담사들과 승무원들이 난감한 상황에 놓일 때가 많다"고 전했다. 냉난방 민원 대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정작 중요한 긴급 민원 대응에 차질이 생길 때도 있다고 했다.
사람마다 체감온도가 크게 다른 이유는 기초대사량과 체격 차이 때문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 당뇨병·소화기·신장질환 연구소 연구팀이 2024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여성이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추위를 더 많이 느낀다. 낮은 기초대사량과 작은 체격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근육량이 적고 기초대사량이 낮아 그만큼 열 손실이 더 크게 발생한다. 체구가 작은 사람일수록 열 발생량이 적어 추위를 더 쉽게 느낀다. 연구 주저자 로버트 브리히타 박사는 "마르고 체지방률이 낮은 남성 역시 체구가 큰 사람보다 추위를 더 많이 탈 수 있다"고 했다.
신체적 차이로 체감온도 역시 다른 상황에서 모든 민원에 맞춰 실내 온도를 조절할 수는 없다. 서울교통공사는 기후에너지환경부 고시에 따라 여름철에는 24℃로 실내 온도를 맞추고 있다며 승객들이 각자 체감에 따라 열차 내에서 자리를 이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열차 내 냉기 흐름에 따라 객실 중앙부 온도가 가장 높고, 객실 양쪽 끝 온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추위를 느낀다면 일반칸에 비해 1℃ 높게 운영하는 약냉방칸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폭염 필수 아이템인 양산이 흉기?
극심한 무더위에 휴대용 손선풍기와 양산은 이제 외출 필수품이 됐다. 문제는 장소와 사용하는 형태에 따라 더위를 식혀주는 '효자템'이 누군가에게는 '민폐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지난달 소셜미디어에는 "접은 양산을 옆으로 눕혀서 들고 다니는 사람을 하루에 4명이나 봤다"며 "제발 세워서 갖고 다니면 안 되냐"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2000여 개의 좋아요가 달리며 큰 공감을 얻었다. 네티즌들은 "지하철역 사람 많은 계단에서도 양산을 앞뒤로 흔들면서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버스 계단에서 양산 끝에 찔릴 뻔했다"는 등의 경험담을 공유했다.
가로로 든 우산이나 양산에 찔릴 때 충격은 생각보다 세다. 지난해 3월 일본 도쿄도 생활문화국이 앞뒤로 흔드는 우산에 부딪혔을 때 충격 강도를 측정해보니, 두께 약 1.6㎜ 유리가 깨질 정도였다. 도쿄도는 "사람의 눈이나 얼굴에 충격이 가해질 경우 실명이나 골절 등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공도서관이 시민들의 새로운 피서지로 떠오르면서 휴대용 손선풍기의 모터 소리는 새로운 민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요한 열람실 안에서는 작은 모터 소리도 크게 들리는데, '강풍'으로 틀어놓는 이들 때문에 집중이 안 된다는 것이다. 공공도서관 측에서는 "도서관은 시민 누구나 이용하는 공간인 만큼 타인을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져 달라고 당부하는 수밖에 없다"며 난감해한다.
지하철 등 사람들이 밀집한 공간에서 손선풍기를 틀었다가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이 빨려 들어가는 사고도 적잖게 벌어지고 있다. A씨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내가 사자처럼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손선풍기에 머리카락을 다 뜯길 뻔했다"며 "출근 시간대 지하철에서 손선풍기 쓰는 건 십분 이해하는데, 남의 머리카락 끼는 건 신경 좀 쓰라"고 적었다. B씨는 소셜미디어에 한 페스티벌에 갔다가 한 사람이 손선풍기를 켜고 팔을 휘젓는 바람에 자신의 머리카락이 손선풍기에 감겼다는 후기를 적기도 했다.
반바지 착용이 '다리털 괴롭힘'?
'회사에 출근하면서 어깨가 드러나는 오프숄더 상의, 슬리퍼와 크록스, 지나치게 짧은 핫팬츠, 나시 등을 입는 이들을 보고 놀랐다'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의 조회수는 8만회를 넘기며 화제를 모았다. "요즘처럼 더울 때 시원하게 입는 게 뭐가 문제냐. 사내 규정으로 정해진 게 없다면 어떻게 입든 '님들이' 신경 쓸 일 아니다"는 의견과 "때와 장소에 맞게 입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라는 이들이 맞서면서 '복장 논쟁'이 불붙은 것이다.복장 논란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도쿄도는 올해부터 여름철 에너지 절약 정책의 하나로 기업들에 넥타이와 정장 대신 티셔츠와 운동화, 반바지 등을 권장했다. 그러자 일부 여성들은 반바지를 입은 남성 동료의 다리털을 보는 것이 불쾌하다고 항의했고, 온라인에서는 정강이 털을 뜻하는 '스네게'와 괴롭힘을 의미하는 '하라스멘토'를 합친 신조어 '스네하라(다리털 괴롭힘)'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를 두고 사회심리학자인 우스이 마후미 니가타세이료대 교수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소 드러나지 않던 다리와 체모가 노출되면 본능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며 "공적 관계와 사적 영역의 경계가 흐려졌다고 느끼면서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종현 나눔경영컨설팅 대표는 "예전과 달리 회사에서 옷차림보다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분위기"라며 "일에 불편을 끼칠 정도가 아니라면 편안한 옷차림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한강공원 등에서 상의를 벗고 짧은 반바지만 입은 채 달리는 러너들을 두고도 에티켓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한강공원 곳곳에는 '상의 탈의 금지'나 '웃옷 벗기 No' 등의 안내문이 붙어 있을 정도다. 이를 두고도 "아이들도 함께 즐기는 공공장소인 만큼 심한 노출은 삼갔으면 좋겠다"는 이들과 "조금만 뛰어도 땀이 나는데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타인에게 성적 수치심을 줄 정도로 심한 노출이라면 형법상 공연음란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과다 노출만을 이유로 처벌하긴 힘들다. 서울시는 "공공장소에서 상의를 탈의했다고 과태료를 부과할 근거는 없다"며 "다만 공공장소 에티켓에 대한 홍보와 계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