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금 선생님 명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돼 수사 중입니다."
퇴직을 앞둔 A씨에게 검찰청을 사칭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 속 '검사'는 수사 협조와 자산 보호를 명목으로 원격제어 애플리케이션 설치와 신규 휴대전화 개통을 요구했다. A씨는 "기존 계좌의 돈을 안전계좌로 옮겨야 한다"는 말에 속아 송금을 시도했다.
그러나 돈이 빠져나가지는 않았다. A씨가 거래하던 은행이 보이스피싱 정보공유·분석 인공지능(AI) 플랫폼인 'ASAP'을 통해 송금 계좌가 의심계좌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A씨 휴대전화에 원격제어 악성 앱이 설치됐고 최근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가 새로 개통됐다는 정보까지 동시에 포착됐다. 은행은 즉시 이체를 중단하고 A씨에게 연락해 피해를 막았다.
금융위원회는 20일 권대영 부위원장 주재로 경찰청과 국세청, 금융감독원, 금융보안원, 주요 시중은행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제2차 보이스피싱 근절 협의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이날 협의회에서는 이달 4일부터 본격 가동된 ASAP 기반 통합 정보공유체계의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향후 보이스피싱 대응 과제를 논의했다. ASAP은 지난해 10월 은행권이 보유한 보이스피싱 의심정보를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출범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7월 말까지 약 9개월 동안 총 46만3000건의 의심정보가 공유됐다. 이를 토대로 7009개 계좌를 지급정지해 663억6000만원의 피해를 사전에 차단했다.
지난 4일 개정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 시행되면서 정보공유 범위는 금융회사에서 통신사와 수사기관까지 확대됐다. 금융회사·통신사·수사기관은 각자 보유한 의심계좌와 전화번호, 악성 앱 설치 등의 정보를 ASAP을 통해 주고받고 이를 계좌정지와 통신차단, 범인 검거 등에 활용할 수 있다.
법 시행 이후 통신사들은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것으로 의심되는 전화번호 등 100여건의 정보를 ASAP에 공유했다. 금융회사들은 해당 정보를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과 연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금융회사와 통신사 간 협업도 강화되고 있다. 우리은행은 FDS와 자금세탁방지(AML) 부서의 데이터를 연계한 통합 대응체계를 구축했다. 지난 3월 말부터 7월까지 AML 시스템에서 포착한 타행 의심계좌 정보 576건을 ASAP에 등록해 다른 금융회사도 관련 거래에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LG유플러스는 경찰·은행과 협업해 악성 앱 제어 서버를 탐지하고 고객이 대출받은 돈을 범죄조직에 송금하려던 사례를 사전에 차단했다. 우리은행과 LG유플러스는 지난해 8월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범죄 수법과 의심정보를 공유해왔다.
금융위는 보이스피싱뿐 아니라 마약과 불법도박 등 각종 범죄에 활용되는 대포통장을 근절하기 위한 추가 대책도 마련한다. 전 금융권을 대상으로 대포통장 실태를 점검하고 법무부·국세청·경찰청 등과 협력해 필요한 조치를 추진할 계획이다. 신규 대포계좌 개설을 억제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검토한다.
가상자산에 대해서도 보이스피싱 의심거래 탐지와 계좌정지, 피해금 환수가 가능하도록 한 개정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 오는 10월1일 시행된다. 금융회사의 무과실책임 법제화를 담은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권대영 부위원장은 "ASAP의 가장 큰 의의는 기술적 플랫폼 자체보다 단절돼 있던 금융·수사·통신 분야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돼 실질적으로 협업하게 됐다는 점"이라며 "전 금융권을 대상으로 대포통장 점검과 제도 개선을 병행해 금융범죄 피해를 줄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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