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달러 환율이 11개월여 만에 1400원 아래로 내려오면서 원화 강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기대가 약화하며 달러 강세가 누그러진 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수출기업의 달러 매도 물량이 확대된 영향이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세가 완화되는 등 수급 여건도 원화 강세를 뒷받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추가 하락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1300원대 중반 이하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강세 재료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380원대에서 등락하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주간 거래 종가 기준 1388.49원까지 떨어지며 1400원선을 밑돌았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아래로 내려온 것은 지난해 9월 이후 약 11개월 만이다.
최근 환율 하락을 이끈 핵심 요인은 국내 수급이다. 원화 약세가 이어지는 동안 달러를 보유하거나 환전을 미뤄왔던 수출기업들이 환율이 고점에서 내려오자 달러 매도에 나서면서 시장에 달러 공급이 늘었다.
최광혁 LS증권 연구원은 "최근 환율 하락이 외국인 순매도세 약화와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자금 유입, 수출업체의 네고 물량 등 수급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 같은 요인이 구조적인 변화는 아닌 만큼 현재 수준보다 추가 하락하려면 새로운 하락 요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업들의 환전 대기 물량이 상당 규모 쌓여 있다는 점은 추가 하락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이진경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상반기 원화 약세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우세하면서 기업들의 달러 환전이 유보됐다"며 "기업 외화예금 잔액도 최근 5개년 평균보다 약 200억달러 많은 수준으로 축적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후 환율 정점 인식이 확산하면서 일부 기업의 환전 수요가 실제 시장에 출회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하반기 원/달러 환율 전망치 1420원"
하반기에도 달러 매도 물량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달 말 법인세 중간예납과 연말 성과급 지급, 재무제표 작성 과정에서의 환노출 관리 등이 대표적인 계절적 요인이다. 특히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기업의 이익 규모가 커질 경우 성과급과 주주환원 등에 필요한 원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달러를 환전할 가능성도 있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평균 원/달러 환율 전망치를 기존 1470원에서 1420원으로 50원 낮췄다. 3분기 평균은 1430원, 4분기는 1410원으로 제시했다. 문 연구원은 "1400원선이 무너진 만큼 단기적으로 하락 모멘텀이 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통화정책 기대 변화도 원화 강세를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 미국 고용·소비·물가 지표가 둔화하면서 연방준비제도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낮아졌고, 이에 따라 달러 강세 압력도 약해졌다. 미국 재무부의 국채 바이백 확대와 일본은행의 조기 금리 인상 가능성에 따른 엔화 약세 진정도 원화에 우호적인 요인이다.
최규호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환율의 중심 동력이 국내 달러 공급에서 연준 통화정책 기대와 글로벌 달러 흐름으로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지표가 뚜렷하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원/달러 환율이 추세적으로 상승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다만 1400원 아래에서는 수입업체와 해외 투자자의 달러 매수·결제 수요가 유입되면서 하단을 지지할 수 있다고 봤다.
1300원대 중반까지의 추가 하락 여부는 국내외 자본 흐름에 달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에는 경상수지 흑자가 원화 강세로 직결됐지만 최근에는 해외투자 확대 등으로 이 같은 공식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올해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따른 채권자금 유입도 원화 강세 요인이다. 다만 WGBI 편입 효과는 연말을 전후해 약해질 수 있어 장기적인 원화 강세를 위해서는 외국인 자금의 구조적인 유입이 필요하다. 이진경 연구원은 "국내 투자자의 해외자산 확대가 상시적인 달러 수요를 만드는 반면 외국인의 국내 주식·채권 투자는 원화 강세 압력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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