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계 성과급 논쟁의 밑바탕에는 인공지능(AI)·로봇·자동화 확산에 따른 고용 불안이 깔려 있다. 기업이 AI 전환에 속도를 내자 노동조합도 인력 감축·직무 재편 가능성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요구하고 있다.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기업과 권익 보호를 요구하는 노동조합 간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만큼 AI 전환기에 걸맞은 새로운 노사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최근 노사 협상의 새로운 핵심축으로 고용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기업들이 AI 도입을 본격화하면서 고용 재편에 대한 구성원들의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AI 관련 고용 및 노동조건 보장 등을 요구했다. 신기술 도입 시 노조와 협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요구도 함께 냈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도입 등 생산 자동화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고용 불안을 우려한 노조가 선제 대응에 나선 것이다.
노사 양측은 지난 25일 임금협상에서 피지컬 AI, 로보틱스 등 미래 기술 도입이 기업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사항이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는 한편 향후 신사업 및 신기술 관련 진행 경과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미래 산업 전환에 공동 대응하기로 잠정합의했다.
IT업계 역시 고용 불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 주요 시스템통합(SI) 기업들도 연이어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있다. 지난달 삼성SDS·현대오토에버·신세계아이앤씨 등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노조를 결성하고 고용 안정과 공정한 보상 체계 마련을 요구했다. AI 전환으로 개발·기획·고객 대응 등 기존 직무 변화가 빨라지면서 활발한 이직으로 처우를 개선하던 과거와 달리 집단 교섭을 통해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관측된다.
노조는 고용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완충 장치 마련에도 힘을 싣고 있다. 정년 연장을 통해 지속할 수 있는 일자리를 보장받으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차 노사는 잠정합의안에서 법정 정년이 연장될 경우 이를 즉시 적용하되 현행 임금피크제는 확대하지 않기로 했다. 정년이 65세로 늘어나면 기존 '59세 동결·60세 10% 삭감' 구조를 그대로 뒤로 미뤄 61~63세에는 임금 인상분을 반영하고 64세 동결, 65세 10% 삭감하는 식이다.
성과급 요구가 커지는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자리 불안이 커지면서 현재 창출된 성과의 몫을 확실히 보장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진 것이다. 업종을 불문하고 '실적 N% 성과급'을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파업 카드를 꺼내 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5월 초과이익성과급(OPI) 상한 폐지를 둘러싼 갈등으로 총파업 직전까지 갔으나 지급률 상한을 두지 않는 특별경영성과급을 반도체(DS) 부문에 신설하기로 합의하면서 파업을 피했다.
노조의 이 같은 요구를 두고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성과급을 지급하더라도 사업성과의 일정 비율을 고정적으로 배분할 경우 경영 유연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AI 전환·RE100 대응 등 글로벌 경영 환경 변화로 이를 뒷받침할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기업들의 부담이 커진다.
불황 시 이를 조정할 방안을 내놓는 것도 과제다. SK하이닉스의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잠정합의안이 25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됐는데 적자 발생 시 임금 3% 이내를 이연 지급한 뒤 흑자로 전환하면 일시 지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방안을 두고 임단협 과정에서 노조 반발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위험 부담을 둘러싼 노사 간 입장 차가 존재한다는 걸 방증한다.
결국 AI 전환 속 노사 양측이 공감할 수 있는 고용 안정책을 내놓는 게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AI 도입으로 예상되는 모든 피해를 기업이 사전 보장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AI 전환 과정에서 고용이나 근로조건 등에 실질적인 불이익을 받은 구성원에게 노사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사후 보전을 약속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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