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의 한 교회에서 생활하던 열두 살 현수(가명)가 지난 6일 교회 목사와 외할머니의 지속적인 학대로 숨졌다. 6년 전 '정인이 사건'처럼 여러 차례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됐지만 결국 현수를 살리지 못했다. 사진은 천안시청 아동보육과 위기아동대응팀에서 공무원이 업무를 보는 모습./사진=조현호 기자


2020년 10월13일 생후 16개월 된 '정인이'가 자신을 입양한 양부모의 지속적 학대로 심각한 복부 손상을 입고 숨졌다. 전 국민의 공분을 산 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즉시 조사하고 ▲피해아동을 가해자로부터 신속하게 분리하고 ▲경찰 등 조사 공무원의 현장 대응 권한을 강화하는 등 아동학대처벌법을 전면 손질했다. 이른바 '정인이법'이다.

5년10개월이 흐른 2026년 8월6일, 이번에는 열두 살 현수(가명)가 자신이 생활하던 교회의 목사와 외할머니에 의해 30여 시간 묶여 있다가 숨졌다. 놀라운 건 정인이의 고통과 현수의 비극이 판박이처럼 닮았다는 점이다. ▲아동학대 신고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경찰 조사는 번번이 '혐의없음'으로 종결됐고 ▲피해아동은 가해자로부터 분리되지 않았으며 ▲사례관리 대상이 됐지만 결국 그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①반복된 아동학대 신고에도…

정인이의 아동학대 신고는 사망 전 모두 3차례 있었다. 첫 번째 신고는 정인이가 입양되고 3개월쯤 지난 2020년 5월25일 어린이집 원장에 의해서다. 정인이의 복부와 허벅지 등에 있는 멍 자국을 보고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한 것. 이어 한달여 뒤인 6월29일 양엄마의 지인은 양엄마가 12개월 된 정인이를 30분가량 차에 방치하는 것을 보고 두 번째 신고를 했다.



다시 3개월 뒤인 9월23일 같은 어린이집 원장이 계속 야위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정인이를 양부모 몰래 인근 소아청소년과로 데려갔다. 소아과 의사는 아동학대로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세 번째 신고 이후 20일 만에 정인이는 하늘의 별이 됐다. 4개월 동안 3번이나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지만, 정인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현수도 마찬가지다. 2021년 12월1일 현수가 다닌 초등학교에서 첫 번째 방임 학대 신고가 이뤄진 것을 시작으로 2024년 3월14일, 2026년 8월2일과 3일 등 모두 4차례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지만, 현수 역시 마지막 신고가 이뤄진 지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현수가 사망하기 전 두 달 동안 아동학대 신고 2건 외에도 보호조치 신고가 3건 더 있었다. 특히 현수는 한 시민에게 "경찰을 불러 달라"고 직접 호소하기도 했다. 또 다른 시민은 현수의 아동학대를 의심해 직접 경찰서에 데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경찰 조사는 없었다.

②말 못하는 피해아동 대신 가해자 말 신뢰

정인이는 사망 당시 생후 16개월이었다. 현수는 지적장애가 있었다. 경찰이나 아동학대 전담공무원과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그런 만큼 피해아동 주변인들을 찾아 진술을 들어야 했다. 여러 사람의 증언을 통해 가해자의 말을 검증해야 했다. 하지만 정인이 사건 담당자도, 현수 사건 담당자도 이런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정인이의 2차 아동학대 신고 당시 경찰은 "10분 정도 차에 (아이를) 뒀다"는 양엄마의 말을 듣고 '학대 증거가 없다'며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또 당시 아동학대 전담기관에서 정인이의 쇄골에 실금이 갔다는 사실을 경찰에 알렸지만, '쇄골 부위는 쉽게 다칠 수 있다'는 병원 의견을 참고해 더 이상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현수도 숨지기 40일 전인 지난 6월28일 자신이 생활하던 Y교회 인근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던 시민에게 "경찰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아이가 평소 모르는 사람에게 구걸하고 이상한 행동을 해 혼내니 밖으로 나간 것"이라는 외할머니의 말만 믿고 현수를 다시 학대 가해자인 외할머니에게도 돌려보냈다. 외할머니는 2024년 3월 두 번째 아동학대 신고 때 처벌받은 전력이 있지만, 경찰은 주목하지 않았다.

③가해자와의 분리 조치 없이 사건 종결

아동학대 시 추가 피해를 막으려면 피해아동과 가해자를 완벽하게 분리해야 한다. 정인이는 세 번이나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지만 양부모와 분리된 적이 없다. 특히 마지막 세 번째 신고 당시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분리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양부모가 거세게 반대했다. 결국 가해자인 양부모 의사에 따라 정인이는 분리되지 않았다. 여론은 이 대목에서 들끓었다.

이 때문에 '정인이법'의 핵심 내용 중 하나가 피해아동을 가해자로부터 신속하게 분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수 역시 네 차례나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고 보호조치 등을 포함해 112신고만 12건에 달했지만, 단 한 번도 가해자인 외할머니와 제대로 분리된 적이 없다. 두 번째 아동학대 신고 시 외할머니가 처벌받았음에도 이미 주소지상 따로 산다는 이유로 실질적인 분리 조치는 없었다. 동네 주민들에 따르면 현수는 Y교회에서 지냈고, 외할머니는 Y교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아파트에서 살았다. 외할머니가 언제든 Y교회로 와서 현수를 학대할 수 있었지만 그 많은 신고에도 이런 점은 무시됐다.

정인이법 자체에도 허점이 있다.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됐다고 해서 무조건 분리 조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재학대 위험이 급박하거나 현저한 경우 등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한다. 경찰과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이 현장에서 이를 즉각 판단하는 게 쉽지 않다. 피해아동의 의사도 존중해야 하는데, 자기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또 막상 분리 조치를 하려고 해도 피해아동을 맡아줄 기관이나 위탁가정 등이 마땅치 않다. 영유아나 장애아동이라면 입소할 곳이 더욱 적다.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④무용지물 '사례관리'

가해자와 피해 아동을 즉각 분리 조치하는 게 쉽지 않은 만큼 경찰과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아동학대가 의심될 경우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사례관리'를 맡기기도 한다. 전문기관에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요청하는 것이다.

정인이는 세 번째 아동학대 신고 당시 양부모가 분리 조치에 반발하자 사례관리 대상이 됐다. 현수 역시 첫 번째 아동학대 신고 이후 사례관리를 받았다. 하지만 정인이는 사례관리 대상에 지정된 이후 한 달도 안 돼 세상을 떠났다. 현수는 사례관리를 받다가 1년여 만에 끝났다. 아동학대 위험이 줄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례관리 대상이 되면 원칙적으로 최소 6개월 동안 6회 이상 가정을 방문해 학대 여부를 확인한다. 하지만 방문이 어려운 경우 유선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런 형태의 확인만으로 아동학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입을 모은다.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장을 지낸 김영주 변호사는 "정인이 사건도, 천안 교회 학대아동 사망사건도 똑같은 상황에서 벌어졌다"며 "도대체 무엇을 놓쳤는지 깊이 있게 연구해 가해자 교육, 복지 제도 지원, 감시, 현장 조사관의 전문성 향상 등을 동시에 이뤄내지 않으면 아동학대는 무한반복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