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 전 국민의힘 의원(법무법인 남당 대표변호사)이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남당 사무실에서 [시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조현호 기자


2021년 2월26일 국회 본회의장. 아동학대살해죄를 신설하고 피해아동을 가해자로부터 즉시 분리하는 '정인이법(아동학대범죄처벌특례법 개정안)'의 투표 결과가 전광판에 나타났다. 찬성을 뜻하는 초록 불 사이로 빨간 점(반대) 하나가 뜨자 장내가 술렁였다. 입양된 지 8개월여 만에 양부모의 지속적 학대로 심각한 복부 손상을 입고 싸늘한 주검이 된, 생후 16개월 정인이 사건으로 전 국민이 분노할 때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반대표'의 당사자는 김웅 전 국민의힘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이 본회의장을 나오자 보좌진들이 뛰어왔다. 의원회관 사무실로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는 것. 김 전 의원은 "나도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꿨으니 전화 받지 말라"며 안심시켰다. 당황한 보좌진의 표정을 보며 김 전 의원의 마음도 착잡했다고 한다. 다음날인 2월27일 당시 야인이던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아동학대범죄처벌특례법 개정안 유일 반대 의원은?'이란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그때부터 더 많은 비난과 욕설이 김 전 의원에게 쏟아졌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1일 [시대]와 만나 당시 받은 수많은 욕설 중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게 있다고 했다. 피멍 가득한 정인이 사진과 함께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단다. '지옥에 가길 바란다.' 지옥에 가야 할 아동학대 가해자들 대신 왜 김 전 의원이 욕받이를 자처했을까.

그때도, 지금도 김 전 의원은 말한다. '정인이법'으로는 또 다른 정인이를 막을 수 없다고. '정인이법' 시행 5년이 넘었지만 현수(가명) 역시 정인이와 마찬가지로 여러 차례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음에도 가해자인 외할머니나 교회 목사와 분리되지 않은 채 30여 시간 묶여 있다가 결국 숨졌다.('[단독]12번의 SOS, 그러나 아무도 아이를 구하지 못했다', '[단독]현수의 골든타임 두 달…시민 나섰지만 경찰 방관했다' 기사 참조)

그의 말이 옳았다

김 전 의원이 당시 '정인이법'에 반대표를 던진 핵심 이유는 아동학대살해죄를 만든다고 또 다른 정인이를 막을 수 없다고 확신해서다. 그보다는 아동학대에 대한 감독 및 통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봤다. 정인이법으로 경찰과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의 권한이 강화됐다. 신고 현장뿐 아니라 피해아동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 장소는 임의로 들어가 조사할 수 있게 됐다. 현장 조사를 방해하면 처벌하는 조항도 생겼다. 하지만 이들이 정작 자기 책임을 소홀히 할 때 이를 모니터링할 방법이 없다.

정인이는 세 차례나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지만 모두 양부모와의 분리 조치 없이 사건이 종결됐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정인이법'을 만들었지만, 현수 역시 정인이와 똑같은 상황 속에 있었다. 네 차례의 아동학대 신고, 세 차례의 보호조치 신고를 포함해 현수 관련 112신고만 12번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외할머니나 교회 목사와 실질적인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신고 때마다 경찰과 담당 공무원은 말 못하는 피해자 대신 가해자 말을 믿고 아이를 그대로 방치하기 일쑤였다.('정인이 고통, 6년 뒤 현수의 비극으로…판박이 아동학대' 기사 참조)



김 전 의원은 경찰이나 공무원이 현장조사나 즉각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 처리 과정을 감독하고 재조사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전담 기구를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현수 사건에서도 12번이나 신고가 있었지만 아무런 실질적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법원은 외할머니에 대한 접근금지 임시조치를 기각했다"며 "만약 정인이법을 만들 때 (재조사할 수 있는) 전문가의 감정평가서 제출 제도라도 만들어 놓았다면 현수 사건 때 평가서가 법원에 제출됐을 테고, 판사도 막연히 기각 결정을 내리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각 분리? 그다음은 어디로…

김 전 의원이 지적하는 '정인이법'의 또 다른 맹점은 피해아동과 가해자를 즉각 분리하는 제도를 만들었지만, 정작 피해아동들을 보낼 곳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위탁가정이나 보호시설이 충분치 않으면 피해아동 상당수가 결국 다시 원래 가정으로 돌아가 재학대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현수의 경우 사망 전 마지막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됐을 때 경찰과 공무원이 '분리 조치'를 고려했지만 지적장애가 있는 현수를 보낼 곳이 마땅치 않았다고 한다.

국가예산정책처가 지난 7월 발간한 '아동학대 예방 및 피해아동 보호사업 평가서'에 따르면 전국의 학대 피해아동 쉼터는 2025년 기준 155개소다. 1개소당 아동 정원은 7명 이하로 현재 전체 정원은 1000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현수와 같은 장애아동을 위한 쉼터는 서울·경기·인천·부산·울산 등 5개 지역에 각 2개씩 총 10개소로, 전체 정원은 80명에 불과하다. 반면 2024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를 보면 그해 아동학대 의심 사례는 4만7096건, 실제 아동학대로 판정한 사례는 이 중 52%인 2만4492건에 이른다. 아동학대 사례 중 피해아동을 가정에서 분리 조치한 경우는 10%가 채 되지 않는 2292건(9.4%)이다.

이들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한 데다 당장 아동 쉼터를 크게 늘리기도 힘든 만큼 피해아동의 신속한 분리를 위해서는 위탁가정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 피해아동에겐 보호시설보다 일반 가정이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측면도 있다. 2025년 말 기준 위탁가정은 7623가구다. 현재 분리 조치된 아동의 절반 가량이 위탁가정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전히 분리 조치 판단에 소극적이고, 피해아동을 보낼 인프라도 충분치 않다 보니 '정인이법'이 겉돌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체 아동학대 피해아동 중 다시 원래 가정으로 돌아가 재학대를 당한 비율은 '정인이법' 시행 이후 2022년 16%, 2023년 15.7%, 2024년 15.9%로 별다른 변화가 없다. 아동학대로 숨진 아동 역시 '정인이법' 시행 전인 2020년 정인이를 포함해 43명이었는데, 정인이법 시행 이후 2021년 40명에서 2022년 50명으로 오히려 더 많아졌다. 2024년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30명의 정인이'가 목숨을 잃었다.

/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김 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인이법이 정말로 또 다른 정인이를 보호할 수 있는 법인지 법률가라면 고민해야 했다"며 "돌을 모아놓는다고 탑이 아니듯, 국회에서 통과시킨다고 다 법 구실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가정에서 해결하라는 건 무책임한 환상"

'정인이법' 자체의 허점 외에도 '자녀(피해자)가 그래도 부모(가해자) 곁에 있어야 좋은 것 아니냐'는 그릇된 인식은 현장조사나 즉각조치의 최대 걸림돌로 꼽힌다.

2024년 한국보건복지학회 발표된 '가정 외 보호 환경이 아동의 자아존중감에 미치는 영향' 논문(김선숙 한국교통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안재진 가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에 따르면 가정위탁 아동과 일반 주택과 유사한 환경에서 보호하는 공동생활가정 아동들의 자아존중감이 일반 양육시설 아동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호 환경이 안정적일수록 학대 피해아동의 자존감을 높여 친구 관계 형성 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김 전 의원은 "학대가 일어나는 원래 가정에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은 무책임한 환상에 불과하다"며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학대아동들은 응급실(보호시설)로 옮겨 목숨부터 살리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정익중 전 국가아동권리보장원장은 "대규모 시설보다 일반 가정과 유사한 환경을 제공하는 쉼터나 전문 위탁가정 제도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피해아동들의 충격과 이들에 대한 낙인 효과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