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행복일자리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 공고문을 살펴보고 있다. 국가데이터처는 같은 달 청년 취업자수가 45개월 연속 감소했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1996생 박지원씨(30)는 올해 초 입사한 새내기 직장인이다. 경기 부천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서울로 왕복 2시간 거리를 출·퇴근한다. 출·퇴근이 쉽지 않지만 또래보다 늦은 취업에 박씨는 빨리 업무에 적응하려고 야근도 마다하지 않는다. 박씨 마음이 조급한 건 아버지의 정년퇴직이 4년 남아서다. 4년 뒤엔 자신이 가장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박씨에게 국회의 정년연장 논의는 반가우면서도 걱정스럽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더없이 좋은 일이지만, 혹시라도 정년연장이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길 수 있는 '이직 사다리'를 무너뜨릴 수 있어서다.

지난달 4일 [시대]가 마련한 청년 숙의토론에서도 정년연장에 대한 청년들의 '양가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현준씨(22·중앙대)가 "정년연장에 찬성한다. 은퇴를 앞둔 직장인이 우리 부모님일 수 있지 않느냐"고 하자, 천성현씨(21·성균관대)는 "정년을 늘리면 청년의 취업문이 좁아져 결국 취업과 은퇴 시기가 함께 늦어지는 구조가 될 것이다. 실질적으로 노후 소득을 늘리지 못할 수 있다"고 반대했다.



지난달 4일 서울 종로구 [시대] 사옥에서 열린 '청년 숙의토론'에서 2030세대 청년 11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진행했다. /사진=조현호 기자


"AI로 청년 고용 직격탄, 장년 고용은 늘어"

정년연장이 법제화되면 장기적으로 청년들도 혜택을 본다. 그런데도 청년들이 정년연장에 쉽게 찬성할 수 없는 건 당장 청년 일자리가 말라버려서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15~29세 청년 취업자는 344만1000명으로 전년보다 19만1000명 줄었다. 45개월 연속 감소세다. 7월 청년 고용률은 44.2%로 전년 대비 1.6%포인트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용직으로 좁혀 보면 청년들이 직면한 현실은 불안 그 자체다. 60세 이상 상용근로자는 220만명으로 청년 상용근로자 수(212만4000명)를 넘어섰다.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4년 이후 처음이다.

AI는 청년 일자리를 위협하는 새로운 변수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2022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지난 4년간 청년 고용 감소분 중 약 94%가 자동화 업무 등 AI 노출도가 높은 산업에서 발생했다. 한은은 이런 변화를 두고 AI 확산 초기의 '연공편향 기술변화'와 일치한다고 분석했다. 연공편향 기술변화는 AI로 청년세대의 고용은 감소하는 반면 시니어 고용은 증가하는 현상을 뜻한다. AI가 초급 업무를 중심으로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는 의미다.



오삼일 한은 고용연구팀장은 "고년차 업무의 경우 조직의 성격을 이해해야 하는 특징이 있어 저년차와 달리 AI가 완전히 대체하긴 어렵다"며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청년 고용이 빠르게 줄고 있는 건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직장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말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AI가 청년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는 상황에서 정년연장이 이뤄진다면 청년 일자리는 더 빨리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김지연 한국개발연구원 전망총괄연구위원도 "한국은 해고 등 인력 조정이 쉽지 않아 정년을 연장하면 기업이 신규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채용 규모를) 조정할 수밖에 없어 청년층이 (일자리)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신규 일자리가 빠르게 줄고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에서 직장인들이 출근을 위해 이동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청년 고용 기업, 공공입찰 시 가점 줘야"

기업은 AI로 신입사원 업무를 대체한다. 대신 경력사원 중심으로 채용한다. 청년은 AI에 일자리를 뺏겨 경력을 쌓을 기회조차 없다. 이 악순환을 끊을 방안이 마땅치 않다.

정부는 지난달 말 '청년일자리 회복방안'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첨단산업 및 청년 선호분야 전문인력 30만명 이상을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인력들을 채용할 여력이 기업에 있느냐다. 청년들이 전체 고용인원의 80%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임금 격차는 큰 장벽이다. 2024년 기준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49% 수준이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동하는 비율은 6% 남짓이다. 중소기업 취업이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에게 '청년일자리 도약장려금(월 최대 75만원)'과 '청년미래적금(월 최대 20만원)' 등을 통해 2년간 최대 2300만원 수준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임금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정부 지원"이라며 "다만 재원은 한정된 만큼 청년 취업을 확대할 궁극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고용형태공시제'와 '청년고용의무제'를 개선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의 사업장은 매년 정규직·기간제·단시간 등 고용형태를 공시하는 고용형태공시제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신규 청년채용 실적을 공시 항목에 추가하고, 공공입찰 때 가점을 준다면 대기업들도 청년채용을 늘리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또 현행 공공기관과 지방 공기업 등은 매년 정원의 3% 이상을 청년으로 신규 채용하는 청년고용의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이행률은 84.6%로, 적용 대상 462곳 중 71곳이 이를 지키지 않았다. 이 제도의 적용을 민간기업으로 확대하고, 제재 수위를 높인다면 청년고용을 확대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고용형태공시제와 청년고용의무제는 이미 있는 제도지만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며 "청년을 새로 고용한 기업엔 가점을 주고, 의무고용제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을 땐 벌점을 준다면 제도적 효과가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리즈 순서]
①국민연금, 더 많이 내고 못 받는 게 공정인가요?
②내집마련, 도대체 얼마나 저축해야 살 수 있나요?
③정년연장, 65세? 우린 60세까진 일할 수 있나요?
④청년정치, 우린 영원히 소수로 남는 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