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심도 동백꽃 낙화. /사진=지심도 홈페이지 갤러리



가을의 지심도를 다시 만나는 방법이 생겼다. 이번에는 소설가 윤후명의 문학과 그림을 통해서다.

경남 거제시 장승포항에서 바라보이는 부속섬 지심도는 동백나무가 숲을 이뤄 '동백섬'이자 '팔색조의 섬'으로 불리운다.



윤후명에게 지심도는 단순한 섬이 아니었다. 사랑과 그리움, 고독과 삶의 근원을 찾아 떠난 문학적 공간이었던 장소다. 그 섬을 사랑했던 작가의 문학이 이번에는 미술을 만난다.

거제시 하청면 칠천도 입구의 해조음미술관에서 오는 9일부터 11월 8일까지 '윤후명 문학과 미술의 만남-내 빛깔 내 소리로, 책을 그리다'전이 열린다. 지난해 강원 정선 삼탄아트마인에서 선보였던 기획전이 거제로 옮겨왔다.

전시에는 고석원 부산대 교수, 한중 아트프로젝트팀 사야, 위세복, 이이남, 이인, 이재효, 장태묵 계명대 교수, 추니박, 한생곤, 황재형 등 원로·중견 작가들이 참여한다. 윤후명의 문장을 읽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미지와 조형언어를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윤후명은 시와 소설의 경계를 허문 작가였다.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의 새'가 당선돼 등단했고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산역'이 당선되면서 소설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윤후명의 자화상과 친필원고. /사진제공=김형석



이후 '둔황의 사랑', '협궤열차', '하얀 배' 등을 비롯해 시와 소설을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현대문학상과 이상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받았으며 '한국문학의 독보적 스타일리스트'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에게 문학은 글에만 머물지 않았다. 윤후명은 그림을 통해서도 자신의 내면과 언어를 표현했다. 2012년 첫 개인전을 연 이후 문학과 회화의 경계를 오가며 작업했다. 지난해 정선에서 열린 '내 빛깔 내 소리로-책을 그리다'전 역시 이런 그의 예술세계를 다른 작가들의 시선으로 확장한 전시였다.

거제는 윤후명에게 각별한 장소였다.

1980년대 대우조선해양의 전신인 대우조선과 인연을 맺은 그는 당시 거제 옥포에 머물며 거제를 배경으로 작품을 썼다. 지심도는 그가 오래 바라보고, 사랑하고, 작품 속에 담았던 섬이다.

'섬'으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고 지심도와 팔색조를 소재로 한 작품은 방송극으로도 만들어졌다.

그의 문학에서 섬은 풍경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공간이었다. 육지에서 떨어져 있지만 오히려 자신의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곳. 그래서 지심도는 윤후명에게 운명적 여인을 만나게 한 사랑의 장소이면서 고독의 장소였고,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아가는 문학적 공간이 됐다.

한때 장승포에 윤후명문학관을 세우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지심도가 바라보이는 곳에서 작가가 머물며 작품을 쓰게 하고 그의 문학을 거제의 문화자산으로 만들자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작가 생전에 그 계획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전시회 포스터. /사진제공=김형석



윤후명은 지난해 5월 세상을 떠났다. 향년 79세였다. 그가 떠난 뒤 거제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래서 조금 다르게 읽힌다.

문학관 대신 미술관이다. 작가가 직접 글을 쓰는 공간은 아니지만 그의 문장이 다른 작가들의 그림으로 다시 태어난다. '문학의 도시'나 '문학관'이라는 이름을 내거는 대신 한 작가의 세계를 미술과 결합해 현재의 언어로 되살리는 방식이다.

전시 기간인 오는 17일 오후 2시에는 개막식과 함께 낭독회, 아트토크가 열린다. 영화배우 이재용이 사회를 맡고 바로크 시대 악기를 연주하는 실내악 앙상블 'String Trio 432'가 축하 연주를 한다. 윤후명 작가의 제자들과 거제 시민들이 소설의 문장과 시를 낭송하고 작품을 설명하는 도슨트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1990년대 '아라비안나이트'로 알려진 가수 김준선은 윤후명의 대표시 '사랑의 길'을 노래로 만들어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전시를 기획한 김형석 예술감독은 이번 전시를 윤후명의 문학적 세계와 동시대 미술의 만남으로 설명한다. 윤후명이 문학을 통해 찾아간 '그리움'과 '사랑의 길'을 시각예술로 확장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해조음미술관 임호건 관장도 이번 전시를 "텍스트 문학과 비주얼 이미지 미술의 조화를 시도하는 지역 정체성 찾기 기획전"이라고 말했다.

가을, 지심도를 바라보며 윤후명의 문장을 그림으로 만나는 일. 이번 전시는 그렇게 한 작가가 남긴 '그리움의 길'을 따라가는 작은 예술여행이다.

이번 전시회가 열리는 해조음 미술관은 사립미술관으로 한국 근현대미술 작품 500여 점을 소장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이중섭·박수근·장욱진·천경자·김환기·김창열 등의 작품과 추사 김정희, 성파 하동주의 서예, 부산·경남을 대표하는 문신·전혁림·양달석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