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계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가 국가예방접종(NIP)용 독감백신 계약 물량 225만도즈 가운데 50만도즈를 제때 공급하지 못하면서 국내 독감백신업계의 진통이 커지고 있다. GC녹십자가 민간용 물량을 돌려 부족분을 메웠지만 질병관리청이 다른 공급사들에도 추가 예비물량 확보를 요청하면서 업체들의 부담은 한층 커졌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데다 남은 백신의 재고·폐기 비용까지 떠안을 수 있어서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질병청은 오는 21일 NIP 시작을 앞두고 참여 공급사들에 추가 물량 확보를 요청하는 2차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업체별 목표량을 정하지 않고 각사의 조달 여력에 따라 물량을 최대한 확보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실제 접종 성수기를 앞두고 일부 병의원 전용 의약품 주문 플랫폼에서는 주요 독감백신이 일시 품절되며 의료기관의 물량 확보 경쟁도 나타나고 있다.
민간용 백신까지 NIP 물량으로 전환하게 된 배경에는 사노피의 공급 차질이 있었다. 앞서 사노피는 지난 6월 23일 질병청의 2026~2027절기 NIP용 독감백신 조달계약에서 225만도즈를 맡았다. 질병청은 매절기 수요를 산정해 조달청 경쟁입찰로 공급사를 선정하는데 사노피는 2022~2023절기부터 5년 연속 참여했다.
하지만 올해 백신에 들어가는 3개 균주가 모두 바뀐 데다 B형 후보 바이러스 확정과 글로벌 표준시약 공급까지 늦어지면서 생산 일정이 밀렸다. 프랑스에서 원액 생산부터 포장까지 마친 완제품을 들여오는 사노피는 결국 50만도즈를 정해진 시기에 납품하지 못했다. 질병청은 부족분을 GC녹십자 물량으로 대체했고 GC녹십자는 민간시장에 공급하려던 50만 도즈를 NIP용으로 전환했다.
이번 추가 요청은 이미 확보한 NIP 물량 1233만도즈와 별도의 예비물량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예년보다 독감이 일찍 유행하고 코로나19)도 재확산 조짐을 보이는 데다 국내 독감백신 생산·수입량이 지난해보다 약 450만도즈 줄어든 데 따른 조치다. GC녹십자를 비롯해 SK바이오사이언스, 한국백신, 보령바이오파마, 일양약품 등 복수의 공급사가 요청을 수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독감백신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유행 예측 균주에 맞춰 생산한 뒤 품질검사와 국가출하승인을 거쳐야 해 공급량을 단기간에 늘리기 어렵다는게 업계 설명이다.
수익성은 관련 기업의 고민거리다.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올해 NIP 낙찰가는 도즈당 8851~9199원으로 민간 병의원 공급가격인 1만3200~1만5400원보다 낮아 민간용 물량을 전환할수록 수익성도 떨어진다. 계절성 제품이라 남은 백신을 다음 절기로 넘겨 팔기 어려워 보관과 회수·폐기 부담은 업체 몫이다.
질병청은 이번 추가 확보 요청이 전체 생산·수입량 감소와 예년보다 이른 독감 유행에 따른 수급 불안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업체별 공급 가능 물량과 접종 수요를 지속해서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매년 낙찰가 인하 경쟁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공급 차질까지 발생하면 결국 다른 제조사들이 부담을 떠안는 구조다. 가격뿐 아니라 생산능력과 공급 이행 실적, 대체 공급 역량까지 평가하는 방식으로 조달체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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