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는 17일 서울 도심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표시되어 있다. /사진=뉴스1


국제유가가 오르는데 국내 주유소 기름값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터진 지난 1분기에 정부가 유가 급등에 대응해 한시적 비상조치로 꺼내든 석유 최고가격제 영향이다. 임시방편으로 운영하겠다던 이 제도는 예정했던 반년을 넘겼다. 그사이 원유가격과 국내 기름값의 격차를 메우기 위한 재정 부담도 점점 불어나고 있다.

20일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은 지난 19일 기준 리터당 1858.4원으로 나타났다. 7차 최고가격이 새로 정해지기 직전인 지난 6월 26일(2005.8원)보다 147원(7.3%) 낮다. 18주째 하락세다. 같은 기간에 국제유가는 반대로 움직였다. 6월 26일에 배럴당 64.7달러였던 두바이유는 지난 18일 118.4달러로 83% 올랐다.



주유소 기름값이 내려간 것은 정부의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때문이다. 정유사가 주유소·대리점에 공급하는 가격에 정부가 상한을 씌우고, 국제 가격보다 낮게 팔아 정유사가 떠안는 손실을 정부가 재정으로 사후 보전해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지난 3월 13일 시행됐다. 1997년 1월 유가 자유화 이후 29년 만에 정부가 시장가격에 직접 개입한 첫 사례다.

산업통상부는 지난 19일 10차 최고가격을 리터당 휘발유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으로 동결했다. 이 가격은 다음 달 17일까지 4주간 적용된다. 정부는 원래 6개월(3월 13일~9월 12일)만 한시적으로 운영할 계획이었지만 이번 동결로 7개월째로 접어들었다.

물가 안정에는 효과가 있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산업부는 최고가격제가 시행한 3~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인하 효과가 평균 0.6%포인트 수준이라고 추산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이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월 2.2% ▲4월 2.6% ▲5월 3.1% ▲6월 3.2% ▲7월 2.8% ▲8월 3.1%였다. 6개월 평균 2.8%다.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상승률이 3%를 훌쩍 넘었을 거란 얘기다.



하지만 원재료 가격(국제유가)과 소매가격(주유소 기름값)의 간극을 재정으로 메우는 구조가 장기화하면서 재정 부담이 갈수록 커진다는 게 문제다. 정부는 올해 1~3분기분 손실보전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에 예비비 4조2000억원을 편성한 바 있다. 여기에 올해 4분기분으로 내년도 예산안에 1조4497억원을 새로 반영했다. 합치면 5조6000억원이 넘는다.

이처럼 시장가격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정책이 반년 이상 지속되면서 소비자 행태 등 시장 왜곡 효과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한국재정학회장)는 "애초에 무리한 정책이었다"며 "국제 유가가 배럴당 115~120달러를 넘나드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 짧게 쓰는 게 정상인데 반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재정으로 전체 기름값의 손실을 보전해주는 방식은 기름을 많이 쓰는 사람에게 싸게 공급해주는 정책이나 마찬가지"라며 "상대적으로 소득도 높고 차량 소비가 많은 계층에 혈세로 혜택을 집중시키는 역진적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류 소비가 생존에 필수적인 이들을 지원해야 한다면 바우처 같은 형식이 바람직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