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지방 기업과 개인사업자에 대한 은행권의 대출 여력을 최대 21조원 늘렸지만 실제 지방으로 향한 자금은 기대만큼 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에 비해 기업과 투자 수요가 부족한 상황에서 금융 공급부터 늘리는 정책만으로 자금 흐름을 지방으로 돌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지역의 산업 기반과 금융 수요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출 확대를 유도할 경우 연체와 부실 등 건전성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비수도권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지방대출 우대 조치가 시행된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7763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수도권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10조6699억원 늘었다. 수도권의 증가액이 비수도권의 13.7배에 달한다. 월별로 보면 비수도권 중소기업대출은 4월 1조2684억원, 5월 9930억원 각각 증가했다. 하지만 6월에는 전월보다 1조4851억원 감소했다.
정부는 지역금융 활성화를 위해 은행이 지방 기업에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여력을 넓혀줬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부터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의 기업대출에 적용되는 예대율 가중치를 기존 85%에서 80%로, 개인사업자대출은 100%에서 95%로 각각 5%포인트 낮췄다. 예대율은 은행의 원화예수금 대비 원화대출금 비율로 100% 이하로 관리해야 한다.
가중치가 낮아지면 같은 규모의 대출을 취급하더라도 예대율 산정상 대출액이 적게 반영된다. 금융위는 이를 통해 은행권이 비수도권 기업대출 14조1000억원, 개인사업자대출 7조원 등 최대 21조1000억원가량의 추가 대출 여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지역으로 향하는 금융 공급을 늘리려는 정책은 예대율 완화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정책금융기관의 지방 공급 비중을 2025년 약 40%에서 2028년 45%로 높이고, 국민성장펀드 투자액의 40% 이상을 지방에 투자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정책금융과 민간금융을 동시에 움직여 지역의 산업과 기업 성장을 뒷받침한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금융회사의 공급 여력을 확대한다고 곧바로 지방대출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은행이 대출을 집행하려면 돈을 빌리려는 기업이 있어야 하고, 해당 기업의 사업성과 상환 능력도 심사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금융권에서는 수도권과 지방의 산업·기업 기반 자체에 차이가 있는 만큼 금융 공급만으로 지역 간 대출 격차를 좁히기는 어렵다고 본다.
지역 영업 기반도 변수다. 기업을 발굴하고 현장 실사와 사후 관리까지 담당할 영업망이 뒷받침돼야 실제 대출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을 많이 해도 예대율 산정 때 적게 잡아주는 만큼 예대율 측면에서는 이점이 있다"면서도 "서울에 있는 지점에서 지방까지 가서 영업하기는 쉽지 않고, 원격지 대출은 직접 실사를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어 아무래도 해당 지역에 지점이 많은 은행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은행들도 지역 기업금융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올해 신용보증기금과 비수도권 기업을 대상으로 한 지역특화 금융지원 협약을 맺고 보증서 담보대출 지원에 나섰다. 기업금융 경험을 갖춘 인력도 지방에 확대 배치해 지역 중소기업을 직접 찾아가는 현장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하나은행도 지역별 금융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의 청라 이전과 함께 올해 인천신용보증재단을 통한 협약보증 공급 규모를 915억원으로 늘렸고, 인천 소재 기업을 대상으로 3000억원 규모의 특화산업대출도 공급하고 있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이런 개별 은행의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정책금융이나 보증을 결합하면 은행이 떠안는 리스크는 줄일 수 있지만, 애초에 지역에 대출을 받을 만한 기업과 투자처 자체가 많지 않으면 지원도 지속적으로 늘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 큰 부담은 건전성이다. 지역금융 확대라는 정책 목적에 맞춰 신용 공급을 계속 늘리더라도 차주의 상환 능력이 따라오지 못하면 연체와 부실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5대 은행 중 KB국민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의 기업 고정이하여신비율은 모두 지난해보다 상승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상반기 말 0.37%에서 올해 상반기 말 0.61%로 올랐고 우리은행은 0.44%에서 0.53%, 신한은행은 0.38%에서 0.39%로 상승했다. 농협은행도 0.55%에서 0.59%로 올랐다.
금융권에서는 지역금융 활성화를 금융 공급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역금융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은행이 정책 취지만 보고 대출을 내줄 수는 없다"며 "기업의 사업성과 상환 능력을 따져야 하는데 산업 기반이나 자금 수요가 충분하지 않은 지역에서 대출 공급부터 확대하면 결국 건전성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에 기업이 들어오고 투자가 활발해지면 은행이 자금을 공급할 기회도 그만큼 많아진다"며 "대출을 더 내줄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돈을 실제로 쓸 기업과 사업이 늘어나는 것이 같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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