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 생중계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거래'의 논리로 맞섰다. 선출직 공직자와 국민의 직접 소통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중간 유통업자에 빗대면서, 유통 마진을 보장하자고 직거래를 막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직접 소통의 효능에 대한 자기 확신인지, 과신인지 알 수 없지만 그 표현에 담긴 듯한 언론관과 권력관은 여러 생각이 들게 한다.

국무회의 생중계와 SNS 소통은 현 정부의 대표적인 국정 운영 방식이다. 대통령의 모두발언만 공개하던 과거보다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질책성 질문에 장관들이 진땀을 빼는 모습, 충분한 논의 없이 나온 발언이 정책으로 추진됐다가 철회되는 사례 등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비공개로 돌아가자는 주장도 단선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직거래'와 '유통 마진'이라는 비유는 불편하다. 대통령이 중간 유통업자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맥락상 언론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말과 정책의 생산자이고 국민이 소비자라면 언론은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키는 중간 상인쯤 되는 것인가.

물론 언론도 편향될 수 있고 사실을 왜곡할 때도 있다. "언론이 검찰의 애완견" "고의적 가짜뉴스는 민주주의의 적" 등의 표현에서 드러나듯 대통령이 기존 언론에 상당한 불신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안다. SNS 활용을 좀 자제하기 바라지만 어쩌겠나. 그러나 언론의 존재 이유를 유통 비용에 빗대는 것은 다른 문제다. 대통령은 자신의 말이 가감 없이 전달되고 국민이 판단하면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위험한 발상이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 자체가 권력의 행사이기 때문이다. 언론은 대통령의 말을 전달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질문을 하는 기관이다.

더 주목할 것은 언론관을 넘어선 권력관이다. 미국 정치학자 제프리 털리스는 저서 『수사적 대통령제(The Rhetorical Presidency)』에서 대통령의 대중 직접 호소가 가져올 역설을 분석했다. 미국 건국 초기 대통령들은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며 여론을 동원하는 방식을 경계했다. 데마고그의 위험과 대통령이 지켜야 할 통합의 권위 때문이었다. 대통령은 주로 '문서'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고 여론을 동원해 정책을 관철하는 방식이 확산됐다. 털리스가 말한 '수사적' 대통령제다. 국민과의 직접 소통이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는 듯 보이지만, 의회 등 제도적 견제와 숙의의 과정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경고였다.



40년 가까이 지난 이 통찰은 SNS 시대에 더욱 절실하다. 대통령은 자신의 뜻을 직접 전달하고 지지층의 호응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은 그 점에선 닮았다. 그러나 SNS의 반응이 국민 전체의 뜻은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뜻은 누구도 함부로 규정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이해와 가치가 충돌하고 토론을 거쳐 공론이 형성된다.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직접 대변한다고 믿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다. 직접 소통의 위험은 소통 자체에 있지 않다. 대중의 즉각적인 호응을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문제가 생긴다.

국무회의 생중계도 이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본질은 카메라의 유무가 아니다. 국무회의는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국정을 논의하는 헌법상 심의기관이다. 생중계는 여기에 국민이라는 또 하나의 청중을 등장시킨다. 장관들은 대통령과 토론하면서 동시에 국민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통령 역시 장관들의 의견을 듣는 동시에 국민에게 자신의 판단을 설명한다. 권력의 비대칭 구조에서 대통령의 메시지를 부각하는 일이 앞서기 쉽다. 국무회의는 대통령과 장관들이 토론하는 자리인가, 대통령이 국민에게 말하는 무대인가. 어느 쪽에 방점이 찍혀 있는가.

다시 '직거래' 비유로 돌아가 보자.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시장의 언어를 동원했는지는 모르나 민주주의를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래 관계로 볼 수는 없다. 언론의 질문과 전문가의 검토, 국무위원들의 이견은 대통령의 말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데 붙는 유통 마진이 아니다. 대통령의 판단을 검증하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과정이다. 이를 거추장스럽게 여기기 시작하면 비판과 검증은 소통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취급되기 쉽다.

생중계와 SNS는 유용한 소통 수단이다. 그러나 소통의 속도와 범위가 판단의 정당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권력은 스스로를 충분히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판단을 흔들 수 있는 질문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그 불편함은 없애야 할 유통 비용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치러야 할 필수 비용이다.

문득 다음 생중계 국무회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활발한 토론이 펼쳐질까, 오히려 더 경색된 분위기가 될까. 대통령이 먼저 농지 조사 문제 등에서 자신의 지시가 빚은 혼선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정용관 동행미디어 시대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