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컬처 세계 시장 진출에 첨단 기술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은 언어 장벽과 제작비 부담을 낮추고 물류 시스템과 냉동 기술은 한국 패션과 음식이 해외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길을 넓힌다. 문화적 호감을 실제 구매와 지속적인 소비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기술력이 주요 경쟁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25년 4분기 및 연간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콘텐츠산업 수출액은 149억582만달러로 전년보다 5.9% 늘었다. 같은 해 4분기 콘텐츠 사업체의 생성형 AI 활용률은 32.1%로 조사됐다. 게임은 70%, 애니메이션은 51.6%에 달했다. 전년 같은 기간 활용률 12.9%와 비교하면 1년 만에 2.5배로 늘었다.
엔터테인먼트에서는 기술이 해외 팬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하이브는 2023년 자회사 수퍼톤의 AI 음성 기술을 활용해 가수 이현이 '미드낫'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마스커레이드'를 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스페인어·베트남어 6개 언어로 선보였다. 이현이 각 언어로 녹음한 노래의 발음을 자연스럽게 교정하는 방식이다. 가수 고유의 목소리를 살리면서 여러 언어권의 팬에게 동시에 다가갈 가능성을 보여줬다. 위버스·디어유 등 팬 플랫폼은 AI 기반 실시간 자막과 채팅 번역 기능을 제공해 아티스트와 해외 팬 사이의 언어 장벽을 낮추고 있다.
가상 아티스트는 새로운 공연 경험으로 시장을 넓힌다. 블래스트 소속 버추얼 그룹 플레이브는 지난달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첫 월드투어 '킵 잇 매닉'을 시작했다. 실제 멤버들의 노래와 움직임을 디지털 캐릭터로 구현하는 기술이 해외 공연으로 이어진 것이다. A2O엔터테인먼트는 신인 그룹 A2O 소울과 A2O 라이트의 뮤직비디오에 '4D 가우시안 스플래팅'(4DGS) 기술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퍼포먼스를 여러 시점에서 촬영한 뒤 3차원 공간에 재구성해 촬영 이후에도 새로운 시점의 영상을 만드는 방식이다.
콘텐츠 제작의 경우 AI가 시간과 비용의 제약을 줄인다. CJ ENM은 AI 기획·제작 전문가 등 6명이 참여해 5개월 만에 애니메이션 '캣 비기'를 완성했다. 지난해 7월 공개한 이 작품은 3개월 만에 누적 조회수 1300만회를 넘어섰다. 소규모 제작진이 기술을 활용해 글로벌 시청자와 만난 사례다. K팝 VR 콘서트 제작사 어메이즈는 모듈화한 AI 제작 도구로 VR 콘서트 제작비를 10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 이승준 어메이즈 대표는 AI 없이 VR 콘서트를 만들면 제작비가 50억~100억원에 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은 뷰티 제품의 차별화 수단이 되고 있다. 에이피알은 화장품과 함께 가정용 미용기기를 앞세워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 뷰티 디바이스 부문 매출은 4070억원을 기록했다. 화장품 등을 포함한 회사 전체 해외 매출은 1조2258억원으로 전체 매출 1조5273억원의 약 80%를 차지했다. 화장품과 기기를 함께 사용하는 방식으로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을 미용기기 수요로 확장하고 있다.
배송과 재고를 관리하는 시스템은 패션 분야의 해외 판매를 뒷받침한다. 소비자가 한국 브랜드를 발견해도 배송이 오래 걸리면 구매를 망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신사는 일본 현지 물류센터에 상품을 미리 보관한 뒤 주문에 맞춰 배송하는 서비스를 도입해 배송 기간을 일주일 안팎에서 1~2일로 단축했다. 회사가 지난해 6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서비스를 이용한 마뗑킴의 일본 일평균 거래액은 도입 전보다 75% 증가했다. 무신사는 상품·재고·주문·배송을 하나로 연결해 국내 브랜드의 해외 판로를 넓히고 있다.
K푸드는 장거리 유통 과정에서도 맛과 품질을 유지해 주목받고 있다. CJ제일제당은 비비고 냉동김밥에 재료별 열처리와 급속 냉동 기술을 적용해 식감과 보관 품질을 높였다. 2023년 출시해 현재 25개국에서 판매되는 비비고 냉동김밥은 올해 3월 회사 발표 기준 글로벌 누적 판매량 800만개를 넘어섰다. 수요 확대에 대응해 충북 진천 CJ블로썸캠퍼스에는 속재료 투입부터 절단·포장 용기에 담는 과정까지 자동화한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생산 속도를 높이고 제품 간 중량 편차를 줄여 해외 공급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창작자의 개성과 제품의 품질을 살리면서 기술을 적용할 전문인력과 투자 기반이 향후 성장의 변수로 꼽힌다. 최승훈 K콘텐츠산업협의회 간사는 "문화 기술과 관련된 논의를 20년째 하고 있는데 제대로 체계화되지 못한 상태"라며 "첨단 기술을 얘기할 때 문화 기술은 제외된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 기술의 정의를 제대로 정립해야 세제 혜택, 금융지원이랑 연결될 수 있다"며 "문화기술원 등 정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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