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정보원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중국 방문 당시 회동 상대를 잘못 보고하면서 대북 정보 수집 역량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국정원은 김 위원장이 중국 권력 서열 2위인 리창 국무원 총리를 만났다고 국회에 보고했지만 실제 회동 상대는 서열 4위인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었다. 대북 정보망이 약해졌다는 지적이 이어져 온 가운데 한미 정보협력에 차질이 생긴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4일 오후 6시쯤 국정원 보고를 토대로 "김 위원장이 중국 국무원 리창 총리를 만난 것이 확인되고 있다고 한다"고 언론에 공지했다. 약 2시간 뒤인 오후 8시5분(한국시각)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김 위원장이 왕후닝 주석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윤 의원은 이후 국정원의 추가 보고를 받아 회동 상대를 정정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신압록강대교를 건너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당일 일정으로 찾았다. 이번 방중은 지난해 9월 이후 1년여 만이다. 김 위원장은 왕 주석과 함께 항미원조기념관과 자동차 공장 등을 둘러본 뒤 저녁 무렵 단둥을 떠났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 정보위 관계자는 동행미디어 시대에 "국정원 쪽에서 잘못된 정보를 전달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리창을 만난 것이 확인됐다고 보고를 받았는데, 이후 (국정원이) 중국 사정으로 저녁 참석자가 바뀌었다며 수정 보고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종석 국정원장 부임 이후 국정원의 대북 정보 역량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여전히 여러 측면에서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시대에 "단둥 지역 통제, 호텔 비우기, 행사 인력 동원 등을 통해 김정은 방문 동향은 파악했을 것"이라며 "김정은이 직접 오는 만큼 시진핑 주석은 아니더라도 서열 2위인 리창 총리 정도는 나오지 않겠느냐고 (국정원이) 추론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리창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과 실제로 리창을 만났다는 확인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야권에서도 국정원의 대북 정보 수집 역량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조용술 국민의힘 대변인은 시대와의 통화에서 "최소한 며칠 전부터 경호와 사전 조율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외교이고, 중국은 그런 절차를 중시하는 나라"라며 "사전에 탐지해 김정은의 방중 동태가 있다는 정도의 보고는 진작 나왔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 사망설도 한참 논란이 된 뒤, 김정은 방중 바로 전날에야 보고했다는 것 자체가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국정원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 사망설은 최근 해외 SNS를 중심으로 퍼졌다. 국정원은 방중 하루 전인 23일 국회 정보위 소속 의원들에게 사망설이 허위라고 보고했다.
국정원의 대북 정보 수집 역량은 여러 정부를 거치며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통령 측근을 국정원장에 기용한 이후 대북 정보망이 흔들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남북 대화 기조가 이어진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휴민트'(HUMINT) 수집망이 큰 타격을 입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019년 국정원 대북공작국 간부가 대북 정보원 수십 명의 명단을 무단으로 출력한 사실이 2024년 뒤늦게 알려졌다. 명단 출력 이후 북한에서 활동하던 정보원 절반가량이 발각돼 처형됐다는 의혹도 나왔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대북 강경 기조 속에 남북 관계가 악화하면서 대북 정보 수집이 더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한미 정보협력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은 지난 3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 평안북도 구성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이후 반년 넘게 대북 정보 공유를 일부 제한해 왔다. 이달 초에는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가 한국이 정보·방첩 분야에서 동맹의 기준을 지키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정원 출신인 유성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은 "신호정보의 핵심인 미국 국가안보국(NSA)을 통한 첩보 입수가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앞으로 더한 일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도 "김정은의 동선과 방중에 대한 정보기관의 미스는 매우 큰 문제"라며 "한미 관계에서 정보기관 간에 지금 크게 구멍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한중 정보 교류도 안 이뤄진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보기관의 정보 수집 방식은 크게 인적정보인 휴민트와 신호정보인 '시긴트'(SIGINT)로 나뉜다. 휴민트는 현지 정보원 등을 통해 상대의 의도와 내부 사정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정보망 구축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시긴트는 통신·전자 신호 등을 수집·분석하는 방식이다. 이 밖에도 위성·정찰기 영상을 분석하는 영상정보(IMINT), 언론·인터넷 등 공개 자료를 활용하는 공개출처정보(OSINT) 등이 있다.
전문가들은 대북 휴민트망이 약해진 상황에서 미국과의 정보협력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유 전 이사장은 "중국이나 북한 안에는 지금 우리 휴민트가 붕괴돼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그다음이 시긴트이고 신호정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 NSA"라고 설명했다. 고유환 전 통일연구원장도 "감청, 위성 정보, 통신 정보, 주변국 정보 협조 같은 것은 한미 간 정보 협조가 돼야 유리하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정보전 속에서 역량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북한 역시 정보력 확충에 공을 들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월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대남·대외 정보 활동을 맡는 정찰정보총국(옛 정찰총국)의 직능과 임무를 넓히고 군사정찰·정보첩보 능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과업을 제시했다. 미국 CIA(중앙정보국)는 지난 9월 AI(인공지능)와 첨단기술을 활용한 정보 수집 역량 강화를 강조했다. 일본은 지난 7월 말 부처별로 흩어진 정보 수집·분석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을 출범시켰다.
전성훈 전 원장은 "정보기관은 최전선의 촉수이자 마지막 보루인데 지금껏 너무 많이 흔들려 왔다"며 "정부 기관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국가적인 성찰과 반성이 필요한 시점으로 여야 모두의 책임인 만큼 여야가 힘을 합쳐 대통령을 중심으로 일대 혁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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