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 4주년을 맞으면서 그간의 경영 행보가 재조명되고 있다. 부진에 빠졌던 반도체 사업 경쟁력을 회복하는 한편 주요 계열사의 경영 현장을 직접 챙기며 그룹 전반의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혁신 DNA에 자신만의 유연한 리더십을 더하며 삼성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회장은 2022년 10월27일 취임했다. 이 선대회장 별세 이후 약 2년간 공석이었던 회장직에 오르며 본격적인 '뉴삼성' 시대를 열었다. 당시 삼성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코로나19 여파, 경기 침체에 따른 반도체 업황 악화 등으로 어려운 경영 환경에 직면했었다. 이에 이 회장이 위기 극복의 구심점으로서 삼성의 재도약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이 함께 커져갔다.
이 회장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대표적인 게 반도체 사업이다.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주도권을 경쟁사에 내주며 우려를 키우기도 했지만, 차세대 제품 개발과 생산력 확충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빠르게 회복했다. HBM은 연산과 메모리 속도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구조를 갖춰 인공지능(AI) 반도체에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공급할 수 있다.
지난 2월에는 업계 최초로 1c D램과 4나노 베이스 다이 기술을 적용한 HBM4를 양산 출하했다. 해당 제품은 최종 인증 단계인 SiP 테스트에서 11.7Gbps의 속도를 입증하며 최고 등급을 받기도 했다. 5월에는 업계 최고 수준의 성능과 용량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 HBM4E 샘플을 세계 최초로 고객사에 공급했으며 커스텀 HBM·zHBM 등 차세대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의 접점도 넓히고 있다. 이 회장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리사 수 AMD CEO 등 글로벌 반도체 업계 주요 인사들과 직접 만나 미래 사업 협력 방안을 꾸준히 논의해 왔다. 3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온 엔비디아와는 메모리·파운드리·AI 팩토리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협력 중이고 AMD와도 차세대 AI 메모리, 컴퓨팅 기술 분야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 회장의 행보는 실적 개선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 107조4000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100조원을 돌파했다. 매출도 195조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관련업계에서는 AI 시장 확대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만큼 연간 영업이익 370조원 달성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주요 계열사 사업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21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알 다프라 가스화력발전소 건설 현장을 찾아 사업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삼성물산·삼성E&A 경영진과 중동 지역의 미래 성장동력 확보 및 신규 사업 진출 방안 등을 논의하며 시장 전략을 마련했다. 특히 현장 임직원들과 함께 식사하며 현지 생활과 근무 여건에 관한 직원들의 의견을 듣는 등 소통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삼성SDI의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도 힘을 실었다. 지난 3월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과 유럽 출장길에 오른 이 회장은 메르세데스-벤츠 등 주요 완성차 업체 경영진과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그룹 차원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신규 고객사 확보를 지원한 것이다. 이후 삼성SDI는 약 한 달 뒤 메르세데스-벤츠와 차세대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하며 중장기 수익 기반을 마련했다.

미래 먹거리 발굴에도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로봇부터 냉난방 공조(HVAC)·전장 등을 차세대 핵심축으로 삼고 사업 영토를 확장 중이다. 로봇 분야에서는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자회사로 편입한 데 이어 RX(Robotics eXperience)사업추진실을 신설하며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섰다. HVAC와 전장 사업에서도 글로벌 기업과의 M&A 등을 통해 사업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이 같은 성과의 배경에는 이 회장 특유의 실용주의·현장 중심 리더십이 꼽힌다. 앞선 행보에서 알 수 있듯 이 회장은 국내외 사업 현장을 직접 누비며 주요 고객사와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임직원들과의 소통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내실 경영에 무게를 두는 모습도 눈에 띈다. 2022년 회장 취임 당시 별도 취임식을 열지 않았으며 올해 취임 4주년에도 기념행사 없이 평소와 같은 행보를 이어갔다.
이 회장의 경영 방식은 이 선대회장의 혁신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1993년 신경영 선언을 통해 끊임없는 변화를 강조해 온 이 선대회장은 눈앞의 성과보단 미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경영 철학을 유지해왔다.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사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회장 시절부터 이 선대회장 곁에서 경영 철학을 체득한 이 회장도 이러한 도전정신을 계승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삼성의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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