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모든 사업장의 퇴직급여 사외적립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퇴직연금 적립금을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기금형 제도를 활성화한다. 퇴직금 체불 위험을 줄이고 퇴직연금의 수익률과 연금 기능을 높여 노동자의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고용노동부는 29일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당정협의를 거쳐 관계부처 합동으로 이 같은 내용의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2월6일 노사정 공동선언의 후속 조치로,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화와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 등이 핵심이다.
우선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화를 2028년부터 사업장 규모에 따라 3단계로 시행한다. 연내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1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28년 100인 이상 사업장, 2029년 10~99인 사업장, 2030년 10인 미만 사업장 순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의무화는 각 단계의 시행 시점 이후 발생하는 계속근로기간부터 적용된다.
퇴직급여 사외적립은 기업이 퇴직급여 재원을 외부 금융기관 등에 적립하도록 하는 제도다. 기업이 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5년 임금체불액 가운데 퇴직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41.1%(8229억원)에 달했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지원책도 마련했다. 2027년 정부 예산안에 퇴직연금을 조기 도입하는 사업장에 대한 적립금 매칭 지원 60억원과 경영자금 융자비용 보전 사업 62억원을 편성했다. 30인 미만 중소기업에는 퇴직연금 사업자 수수료 특례를 적용하고, 사업주의 규약 신고 절차도 간소화할 방침이다.
퇴직연금 적립금을 전문 수탁법인이 운용하는 기금형 제도도 도입한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금융기관 개방형, 연합형, 공공기관 개방형 등 세 가지 유형으로 운영된다. 가입자가 직접 투자상품을 선택하고 운용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전문성을 갖춘 제3자에게 적립금 운용을 맡길 수 있도록 선택권을 넓히는 것이다. 운용 성과에 따른 손익은 가입자에게 귀속된다.
기금형 제도는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과 개인형퇴직연금(IRP)에 적용된다. 수탁법인은 노사와 전문가, 정부 등이 참여하는 인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정부는 가입자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원칙을 법에 명시하고, 수탁법인의 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과 가입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규정할 계획이다. 가입자 손실 보전과 사고 대응에 활용할 운영위험준비금도 의무적으로 적립하도록 한다.
퇴직급여를 일시금 대신 연금으로 수령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퇴직급여 수령 시 일시금 수령 의사를 미리 밝히지 않으면 자동으로 연금으로 지급하는 제도 도입을 검토한다. 연금과 일시금 수령에 따른 기대수익과 수령액을 비교한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고, 중도인출 수요를 줄이기 위한 담보대출 상품 출시 관련 제도 개선도 추진한다.
퇴직연금의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도 포함됐다. 개인형퇴직연금(IRP)의 위험자산 투자 한도는 현재 적립금의 70%에서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확정기여형(DC)과 IRP의 투자 가능 상품에는 종합투자계좌(IMA)와 발행어음을 추가하고,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는 수익률과 위험조정성과를 중심으로 평가해 성과가 낮은 상품을 퇴출하는 방향으로 개선한다.
정부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의 가입 대상도 확대한다. 2028년 1월부터 가입 대상을 300인 이하 사업장으로 넓히고,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화 이후에도 퇴직연금을 도입하지 않은 사업장에는 자동가입제도를 도입하되 일정 기간 내 탈퇴할 수 있는 선택권을 보장할 방침이다.
퇴직연금 제도 개편의 배경에는 낮은 도입률과 수익률, 일시금 수령 관행 등이 있다. 관계부처 합동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4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6.1% 증가했다. 같은 해 연간 수익률은 6.47%로 집계됐지만, 퇴직연금 도입률은 최근 10년간 26.5% 수준에 머물렀다. 2025년 퇴직급여 수령 계좌 가운데 일시금 수령 비중도 83.5%에 달했다.
정부는 다음달 중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오는 12월 국회 본회의 통과를 추진할 계획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은 노사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도출한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다. 노후 소득의 안정성과 수익성 간 균형을 맞춰 노동자의 노후를 든든하게 지켜내는 제도적 기반을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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