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기초연금, 증액만 하후상박" 지속가능성이 관건인데…
이재명 대통령이 SNS에 "노인 빈곤을 줄이려면 기초연금을 좀 바꿔야 할 것 같다"며 "지금까지 지급되는 것은 그냥 두고, 향후 증액만 하후상박으로 하는 것도 방법일 듯한데 여러분 의견은 어떠신가"라는 글을 올렸다. 기초연금 수급자인 소득 하위 70% 고령층 가운데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들의 지급액은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고, 소득이 낮은 노인들의 지급액만 높이는 쪽으로 기초연금 제도를 바꾸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기초연금은 도입 이후 빠르게 팽창해왔다. 2014년 소득 하위 70% 노인 1인당 월 20만 원을 지급하며 시작된 기초연금의 올해 지급액은 월 34만9700원이다. 관련 예산은 2014년 5조 원에서 올해 27조 원을 넘어섰다. 수급자가 10년 사이 400만 명 이상 늘었고, 지급액도 꾸준히 오른 탓이다. 앞으로도 문제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르기 때문에 이대로 가면 2031년에는 지급 총액이 38조5000억 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그렇다고 기초연금의 필요성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노인 빈곤율은 여전히 OECD 최고 수준이다. 제도의 본래 목적이었던 노후 빈곤 완화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만큼 기초연금 개편은 노인 빈곤 완화라는 애초 목적에 충실하면서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기초연금 수급 대상자들의 소득 수준이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모두에게 똑같은 액수를 지급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소득 하위 70% 대상과 기존 지급액은 유지하면서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노인들의 지급액을 증액할 경우 정부의 재정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결국 문제는 '더 줄 것이냐, 덜 줄 것이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어떻게 집중할 것이냐'다. '하후상박'은 분배의 미세 조정일 뿐, 구조적 해법이 될 수 없다. 소득 수준에 따른 하후상박 논의와 함께 현재 하위 70%인 수급 대상을 좁히는 방안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오는 이유다. 아울러 본인 부담이 없는 기초연금 급여 인상이 자칫 저소득층의 국민연금 가입률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따라서 기초연금 개편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재정, 연금 간 관계, 노동시장까지 함께 보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근로소득과 국민·사적 연금으로 안정적인 노후 소득을 확보하는 노인의 비율을 늘리는 정책적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노인 친화적인 노동환경 조성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장기적으로 기존의 기초생활 보장제도와 기초연금을 통합해 노인 최소소득 보장제도를 신설할 필요성도 제기된다.기초연금 개편은 단순한 복지 조정이 아니라, 초고령 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재정과 사회계약을 다시 설계하는 문제다. 단기적 인기나 부분적 조정에 머물러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얼마를 더 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줄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해법이다.
[사설] 호르무즈 '호위 연합' 딜레마, 시험대 오른 국가 전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일본·중국 등 약 7개 국가로 '호르무즈 호위 연합'을 구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란의 해협 봉쇄로 원유 수송로가 막히자 이를 관리할 다국적 해군 운용 구상을 구체화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긍정적 반응을 보인 국가도 있고 꺼리는 국가도 있지만, 우리는 (참여 여부를)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대해선 이달 말 미·중 정상회담이 연기될 수 있다고 압박했고, 나토 국가들에 대해선 "미래에 매우 나쁜 영향"을 경고하기도 했다. 19일 백악관에서 열릴 미·일 정상회담이 '호위 연합' 구성에 중대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보내는 일은 우리로선 여러 변수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다. 관세와 통상 문제까지 걸려 있는 동맹국 요청을 무작정 외면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특히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을 포함한 '한미동맹 현대화' 협의가 진행 중인 상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공격에 대한 국제법상 논란이 존재하는 가운데 군사 자산 투입은 위험 부담이 큰 선택이다. 이란을 적으로 돌릴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 필요성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고,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안전한 원유 수송은 곧 우리의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다. 동맹관계와 안보, 경제적 국익이 복합적으로 얽힌 중층적 딜레마 상황인 셈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2020년 아덴만에 파견된 청해부대가 작전 임무 구역을 넓히는 방식으로 한국 상선 호위 임무를 수행한 전례를 거론한다.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의 공동 방위 구상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 파병 방식을 택했다. 일본도 자위대 정보수집 임무를 명분으로 독자 노선을 택했다. 그러나 미국이 '7개국 호위 연합' 구성을 명확히 하는 상황에서 같은 방식이 통할 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그때는 위기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전쟁 국면이다. 미국과 이란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전쟁 장기화도 우려된다. 선박 보호 임무라도 우발적 무력 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냉정하게 볼 때 미국이 끝까지 군함 파견 요구를 접지 않는다면 우리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감정이나 명분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게 국제 현실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 등 거론된 동맹국들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안보 무임승차' 비판을 받아온 나라들이다. 트럼프의 요구를 거부하면 관세나 방위비 협상 등 경제·안보 보복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그 점에서 섣불리 입장을 표명하기 보다는 최대한 신중히 협상에 나설 필요가 있다. 다른 국가들의 대응을 지켜보면서 제한적 참여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 한편으로 외교당국 차원에서 이란과의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동맹국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되 국익을 지키는 정교한 외교 역량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여야는 16일 군함 파견이 국회 비준 사안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헌법 제60조 2항은 국군을 외국에 파견할 때 반드시 국회 동의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모적인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해서라도 여야 합의와 국민 동의를 거치는 게 옳은 길이다. 파병 이슈는 이념이나 정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동맹으로서의 책임과 장병들의 안전, 국가 이익을 모두 고려해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전략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정치권 역시 오로지 국익 차원에서 정부와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불확실성이 높고 선택이 어려운 순간일수록 국가의 전략적 지혜가 시험대에 오르는 법이다.
[사설] 정치 셈법 속에 데드라인 넘어가는 '행정통합'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추진해 온 광역 행정통합이 전남·광주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경북·대구와 충남·대전의 행정통합특별법은 12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여야가 법사위에서 막판 조율을 시도했지만 입장을 좁히지 못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론적으로 행정통합의 마지노선은 4월 초다. 하지만 6월 지방선거 공천과 선거 준비 일정 등을 고려할 때 12일 본회의가 사실상 데드라인으로 여겨져 왔다. 충남·대전 통합을 전제로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했던 현역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는 등 해당 지역들에선 통합이 물 건너갔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한다.행정통합은 소멸위기에 처한 지방을 살리고 수도권 과밀화를 억제하기 위한 국가적 과제다. 이런 중대한 문제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고 정치권 역시 필요성에 동의했다. 하지만 선거가 가까워지자 여야는 정치적 셈법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 왔다. 누가 출마할 수 있는지, 선거 전략에 어떤 이득이 있는지 계산하는데 급급한 것이다. 논의가 지지부진해진 데에는 일차적으로 국민의힘 책임이 크다. 경북·대구 통합을 반대했다 다시 찬성하는 등 우왕좌왕한 탓에 동력을 스스로 까먹었다. 민주당도 강세지역인 광주·전남 통합에는 속도를 내면서 다른 지역엔 더 엄격한 통합 기준을 내거는 등 이중적 태도를 보여 왔다. 전남·광주는 오는 7월 인구 317만의 '전남광주통합특별시'로 모습을 바꾼다. 중앙정부에서 일부 자치재정권을 넘겨받아 지역 재정을 확충하고,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할 여력도 커진다. 반면 경북·대구와 충남·대전의 경우 통합이 무산되면 상대적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약속한 4년간 20조원의 재정지원에서 배제되는 건 물론 예정됐던 국책사업이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 공공기관 2차 이전 대상자 선정에서도 배제될 수 있다. 지역 의사에 따라 통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몰라도, 여야 입장 차로 주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해서는 안된다. 수도권 1극 체제를 해소하는 건 일시적 정책이 아니라 국익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리는 구조로는 미래 성장동력을 찾기 어렵다. 일본 등 여러 나라가 메가시티를 만드는 것도 같은 이유다. 특히 행정체계 혁신은 단번에 완성될 수 없고, 시간을 두고 보완해 가야 한다. 그런데 여야의 정치적 계산으로 행정통합 논의가 시작부터 왜곡된다면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오는 19일과 31일 본회의가 마지막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애초 통합 효과를 키우는 차원에서 3곳의 광역 통합이 동시 추진됐던 만큼, 지금이라도 경북·대구와 충남·대전을 함께 처리하는 게 원칙적으로 옳다. 그러나 끝내 동시 처리가 어렵다면 주민 찬성 여론이 높은 경북·대구 통합부터 먼저 처리하는 게 현실적 방안일 수 있다. 여야는 행정통합을 추진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당장이라도 초당적 협의에 나서야 한다. 여야가 '원포인트 합의'에 이른다면 3월 국회 내 법안 처리가 가능하다. 행정통합이 정쟁 속에 좌초된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정치의 몫이 될 것이다.
[사설] '사법 3법' 시행…법원·헌재, 함께 법치 혼란 막아야
1987년 개헌 이후 약 40년 만에 사법제도의 근간을 바꾸는 이른바 '사법개혁 3법'이 12일 공포됐다. 법원 판결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판소원제', 판사·검사의 법 적용을 문제삼는 '법 왜곡죄'는 유예기간 없이 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대법관 증원은 2년 후인 2028년부터 3년에 걸쳐 진행된다. 시행 첫날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재명 대통령 사건 관련해 '법 왜곡죄'로 고발됐다. 난민 사건과 국가배상 지연 사건 등 10건 넘는 재판소원도 접수됐다.'사법 3법'은 국회 본회의 직전 법안 내용이 일부 수정될 정도로 충분한 공론 절차 없이 졸속 추진됐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문제는 후속 절차와 기준 역시 미비한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헌재가 재판소원을 받아들여 판결을 취소했는데 법원이 같은 판결을 다시 할 경우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규정이 없다. 판결 취소시 어느 심급에서 재판이 다시 열릴지도 불명확하다. 확정 판결을 소급해 취소할 경우 그 사이 이뤄진 행위의 법적효력 여부도 문제다. 법원과 헌재가 합의하지 못한 쟁점이 수두룩한데도 일단 시행하면서 보완하겠다며 '개문발차'부터 한 형국이다. 당장 우려되는 건 소송 폭주로 인한 헌재 기능의 마비 가능성이다. 헌재는 앞으로 연간 1만~1만5000건의 재판소원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한다. 평균 접수 사건(약 3000건)의 3~5배 수준이다. 현재 대법원도 매년 4만 건의 사건이 몰리면서 재판 지연 문제가 심각하다. 헌재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자칫 헌재 본연의 기능인 위헌법률심판이나 헌법소원 심리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재판소원제 역사가 오래된 독일의 경우 사전심사제도로 부적격 사건을 걸러내고 인용률도 3% 미만에 그친다. 헌재는 원칙적으로 대법원 확정 판결에 대해서만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지만 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판례를 통해 만들어간다는 방침이어서 상당 기간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법 왜곡죄'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판사·검사의 내심을 어떻게 판단해 어디까지 법 왜곡 행위로 볼 수 있을지 판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호로 고발된 것처럼 정치적 공방만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시대상을 반영한 전향적 판결이 위축될 가능성이다. 법관들이 고소·고발과 형사 처벌을 우려해 기존 판례를 따르는 안전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법관의 재량권 침해를 막기 위한 보완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법 3법'의 취지를 살리면서 혼선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제'로 기능한다면 헌법상 사법 체계 원칙이 훼손되고 대법원의 권위 역시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를 막으려면 대법원과 헌재가 협력해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두 기관은 여러차례 갈등을 겪어 왔다. 과거 헌재가 '한정위헌' 방식으로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뒤집은 적이 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례도 있다. 최근 입법 과정에서 대법원은 헌재를 '정치적 재판 기관'으로 부르기도 했다. 법 시행 이후에도 두 최고 법원이 권한 다툼과 신경전을 이어간다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궁극적으로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이어져 대법원도, 헌재도 존립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사설]능력 검증 K-방산, 규제 확 풀어 '성장 부스터'로 키울 때
LIG넥스원과 한화시스템 등이 만든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인 천궁Ⅱ가 중동에서 탄도미사일 요격으로 성능을 증명하면서 한국 방산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앞서 K-9 자주포와 K-2 전차, FA-50 경공격기 수출에 이은 성과다. 제조 능력까지 전 세계에 각인시키면서 앞으로 드론·미사일 방어용 비호복합 등 다양한 한국산 무기체계의 도미노 해외 진출도 기대된다. 우리 방산은 앞으로 안보의 중추에서 미래성장산업으로 한단계 진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공지능(AI)·로봇·드론 등 4차산업혁명 기술기반의 미래 무기체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을 지속적으로 내놓게 되면 그 시너지가 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방산을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미래 핵심산업으로 키울 국가 대전략을 마련해야 할 이유다. 여기에 더해 세부적으로 드러나는 제도적 문제를 찾아내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방부가 AI 무기체계나 드론 등의 신속 도입을 위해 2023년 개정한 훈령이 한 사례다. 군이 시범사업으로 특정무기체계의 활용성을 인정하면 수의계약을 허용해 계약기간을 단축하는 규제개혁 사례다. 하지만 대상을 훈령개정 이후 공모된 사업으로 한정하면서 정작 AI기술이 적용된 유·무인복합 공병전투차량, 저격용 열상조준경, 모의비행훈련체계를 비롯해 다족보행 전투로봇, 정찰드론, 저궤도 위성통신체계 등 미래형 제품이 제외됐다. 최근 방산업계가 제도 개선을 건의한 배경이다. 드론이 미래전장을 결정한다면서도 정작 국산 공격형 드론이 없는 것도 제도적 문제 때문이 아닌지 곱씹어봐야 한다. 지나친 책임추궁에 대한 우려 때문에 획득 당국이 안전한 외국산을 선호하면서 국내기업이나 스타트업이 과감하게 개발해볼 기회를 막았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기술 급변으로 군이 먼저 작전운용성능(ROC)을 제기하고 개발과 생산을 연구소·민간기업에 의뢰하는 방식은 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미국 AI기반 방산업체 안두릴은 먼저 민간자본과 기술로 혁신적 AI 전장 운영체제와 자율무기체계, 드론 등을 개발한 뒤 미군에 역으로 도입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잇따른 방산 수출 성공에 샴페인을 터뜨리기에 앞서 보다 적극적인 규제개혁과 입법지원으로 '성장 부스터'를 제공할 때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례들이다. 능력이 증명된 K-방산에 국가 미래전략 차원에서 행정적·금융적 지원을 제공하고,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민원과 문제점, 입법 필요성을 찾아 해결하는 '방산 원스톱 서비스' 제공도 고려해볼만 하다. 이는 특혜가 아니라 안보 강화와 방산 성장, 미래산업 확보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국가적 투자가 될 것이다.
[사설] 노란봉투법 시행…혼란 줄일 '절제와 상생의 지혜' 모아야
6개월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이 10일 본격 시행됐다. 첫날부터 노동계 출정식과 집회가 이어지면서 산업 현장의 긴장이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금속·공공운수·건설 등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교섭 요구 공문을 원청 사업자 측에 보냈다. 900여개 사업장의 하청노조 조합원 13만7천여 명이 그 대상이다. 한국노총도 하청노조 교섭 지원 활동에 들어갔다. 산업계에선 올해 대규모 춘투(春鬪)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앞서 민주노총은 원청이 교섭에 응하지 않을 경우 7월15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경영계로선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노란봉투법은 기존 노사관계의 큰 틀을 바꾸는 내용이다. 핵심은 '사용자' 기준을 원청으로 넓혀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을 보장하고, 사측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데 있다. 근로조건에 영향을 주는 경영상 결정도 쟁의 행위 대상에 포함시켰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2022년 대우조선해양 파업 등을 계기로 논의된 이 법은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는 지난 6개월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시행령을 손질하며 제도 시행에 대비해왔다. 그러나 노사 모두 문제제기를 할 정도로 법 시행 직전까지도 논란이 이어졌다. 이 법이 추진된 배경에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따른 임금 격차와 손배소 남용 논란이 있었다. 그렇다 해도 앞으로 갈등과 혼선이 예상되는 대목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법은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면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는데 그 판단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다. 노동부가 지침을 통해 사용자의 예시를 들었지만 자동차·조선 등 실제 현장에선 훨씬 더 복잡한 원·하청 구조가 존재한다. 하청 노동자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엇갈릴 경우 교섭단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역시 어려운 문제다. 경총이 노동계가 사용자 인정 가능성과 무관하게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업들은 경영 활동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위기 대처 능력이 제한될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사업재편 과정에서 노사 갈등이 커지고 파업 리스크가 증폭될 가능성도 있다. 기존에는 임금과 근로시간 등이 주요 교섭 대상이었지만, 개정법 시행으로 인수합병, 매각, 해외생산시설 증설도 구조조정이 동반되면 파업 의제가 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현대모비스 자회사 노조는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 '램프사업 매각 불가'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원청과 하청 간 임금·고용 이슈를 둘러싸고 '노노 갈등'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회사가 줄 수 있는 파이는 어느정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이 심각할 경우 자동화나 시설 해외 이전으로 노동자 일자리가 줄어드는 역설적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단 노사 모두 열린 태도가 중요하다. 노조는 권한이 커진 만큼 책임도 자각하고 무리한 요구나 과도한 실력행사는 절제해야 한다. 경영계도 교섭을 회피하기보다 상생의 해법을 더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필요한 건 정부의 역할이다. 분쟁의 빈틈을 줄일 상세한 지침을 마련하고, 필요하다면 보완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특히 교섭 대상 등 쟁점을 판단하는 노동위원회의 역할이 핵심이다. 노동위는 중재자로서 노사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하고 중립적인 판단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런 믿음이 있어야 현장의 혼란도 줄일 수 있다.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건강한 노사관계를 구축하는 일에 노·사·정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사설] '자유의 방패' 훈련 시작…'AI 미래전' 대비 기회로
한·미가 9일부터 19일까지 진행하는 '자유의 방패' 연합훈련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불확실한 안보 환경 속에서 실시된다. 미·중 전략 경쟁과 북핵 위협,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더해 중동에선 인공지능(AI)과 미사일·드론·요격체계 등 최첨단 무기가 총동원된 새로운 전쟁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이번 훈련이 주한미군 전력의 순환배치가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진행된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특히 이달 들어 오산공군기지에서 미군 대형수송기가 잇따라 이륙했다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다. 패트리엇(PAC-3),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에이태큼스(ATACMS) 전술 지대지 미사일 등 한국 내 미군기지의 핵심 전력이 중동 등지로 차출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미군은 지난해 6월 이란 핵시설을 폭격한 '미드나잇 해머' 작전 때 주한미군의 패트리엇 포대 2개를 중동으로 이동 배치했다가 같은 해 10월 복귀시킨 바 있다. 해외 주둔 미군을 필요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신속히 배치하는 것은 주한미군의 역할을 더는 한반도 방위에만 묶어두지 않고 다양한 지역에서 활용한다는 '동맹현대화'의 일환이다. 문제는 이러한 미국의 국방 전략 변화가 자칫 동북아와 한반도에서 힘의 공백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보완하고 북한 도발에 대비하려면 우리의 자체 방위 역량을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육해공은 물론 사이버·우주를 포함한 전 영역에서 동맹과의 군사협력과 첨단기술 공유를 확대해 시너지를 높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연합훈련은 한층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지난달 28일 시작된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과 이란의 반격은 전쟁의 새로운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AI를 활용한 집중감시와 정보 분석, 타격 대상 식별과 신속한 의사결정, 그리고 압도적인 정밀타격 능력 등이 결합된 기술집약적 속도전이 그것이다. 이러한 전쟁 방식은 한미 연합훈련을 통해 동맹으로부터 흡수해야 할 미래전의 핵심 자산이다. 드론과 미사일, 그리고 요격체계가 맞부딪히는 '창과 방패'의 소모전 양상 역시 한반도 방위 전략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야외 기동훈련까지 포함된 이번 연합훈련은 첨단 군사기술과 새로운 작전 개념을 실제 환경에서 접할 수 있는 자리다. 군은 이번 훈련을 해마다 반복해 온 의례적인 훈련이 아니라 우리 군의 독자적인 미래전 역량을 가늠해보고 첨단 전술을 적극적으로 습득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준비하며 국방 역량 강화를 강조해 온 현 정부의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전쟁의 양상이 급속히 변하는 시대다. 미래전을 준비하지 못한 군대는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사설] 기름값 단속, 시장교란 막되 가격통제는 신중히
중동 전쟁으로 인한 기름값 급등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서울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6일 오전 기준 모두 리터(ℓ)당 1900원대를 넘어섰다. 하루 전보다 27.5~38.9원 오른 가격이다. 서울 휘발유 가격이 1900원을 넘은 건 3년7개월 만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6일 일선 주유소를 대상으로 특별 점검에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날 "담합 가격조작은 대국민 중대범죄"라며 그 대가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될 거라고 경고했다. 이 대통령은 전날엔 초강력 카드인 '최고가격 지정제'까지 언급했다. 한 번도 시행된 적은 없지만, 석유사업법(23조)에 따라 정부는 국민생활 안정을 위해 석유 가격을 통제할 수 있다. 대통령이 담합을 의심할 정도로 최근 기름값 상승세는 지나치게 가파른 측면이 있다. 국제유가 변동은 대개 2~3주의 시차를 두고 국내 가격에 반영된다. 그런데 중동 전쟁이 발발한 지 일주일도 지나기 전에 주유소 판매가격이 급격하게 올랐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위기 상황을 악용하는 상술이나 시장질서 교란 행위가 없는지 살피는 건 당연한 조치다. 원가 상승분과 크게 차이나는 가격 인상이나 매점매석, 담합 행위는 엄중히 단속할 필요가 있다. 기름값 문제를 방관할 수 없는 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고환율로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 상승은 서민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동시에 물류비와 생산비용을 끌어올려 물가 상승 압박은 더 커진다. 우리의 경우 최근 증시가 활황 국면을 보였지만 실물경제는 여전히 부진하다. 성장률은 1%대에 머물고 있고, 실질 소비지출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계속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라도 기름값 폭등부터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다만 취지 못지않게 방법론은 정교해야 하고, 시장 질서를 해치지 않아야 한다. 우선 정부가 가격을 직접 통제하는 방식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가격을 인위적으로 묶으면 공급 위축이나 암시장 형성, 유통 왜곡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과거 연탄가격을 통제했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일단은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불공정행위를 집중 단속하고, 가격 상한제는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둬야 한다. 정유사들이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국내 주유소에 가격 부담을 전가하지 않도록 할 필요도 있다. 한국주유소협회는 자료를 내 "가격 상승의 1차 요인은 정유사의 공급가격 인상"이라고 주장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장기화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상황에서 전 세계는 에너지 확보 전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국제 유가가 계속 오르는데 국내 정유업계와 주유소를 압박해 기름값을 틀어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근본적 대책도 못 된다. 정부는 6일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600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추가 도입키로 했다고 밝혔다. 쿠웨이트 원유 200만 배럴도 확보했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공급선 다변화와 전략비축 확대, 대체 에너지 개발 등 에너지 공급량을 늘리는 데 더 속도를 내야 한다. 그게 근본적 해법이다.
[사설]"저항군 우두머리""내란범"…대법원장에게 이런 공세까지
임기가 1년 넘게 남은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한 여권의 공세가 거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사법개혁에 대한 저항군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다"며 "사퇴도 적절한 타이밍이 있다"고 말했다. 물러나라는 뜻을 노골적으로 밝힌 셈이다. 당 지도부에선 "역겹다" "썩은 냄새" 같은 표현까지 나왔다. 범 여권 모임은 대법원장 탄핵을 촉구하는 공청회도 열었다. 일부 참석자는 조 대법원장을 '중대 특수 범죄자' '내란범'으로 부르기도 했다. 조 대법원장이 민주당의 타깃이 된 건 지난해 5월 대선 직전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게 계기가 됐다. 이후 민주당은 대법원장 청문회를 추진했고, 집권 이후에는 근거가 확인되지 않은 '조희대·한덕수 회동설'까지 제기했다. 논란이 커지자 지난해 9월 대통령실은 "대법원장 거취 문제를 논의한 적 없고, 앞으로도 계획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최근 국회를 통과한 '사법 3법'에 대해 조 대법원장이 공식적인 우려를 표하자 다시 사퇴 압박이 재개된 것이다. 위헌 논란까지 제기됐던 '사법 3법'은 5일 국무회의에서 원안대로 통과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적 절차가 마무리됐다고 해서 바로 정당성까지 확보되는 건 아니다. 그동안 민변·참여연대 등 진보 성향 단체에서도 숙의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 왔다. 이 대통령이 임명한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은 "대한민국 법치의 수치"라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 입법은 개혁이고, 사법부 수장의 문제제기는 저항이라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많은 우려를 표한 정치권과 법조계, 언론, 진보성향의 단체까지 모두 '저항세력'이란 논리밖에 안된다. 정치권이 사법개혁을 논의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없다. 사법부 역시 국민 신뢰 위에 서야 한다. 필요하면 입법을 통해 사법제도를 손질할 수 있다. 하지만 충분한 숙의 없이 제도의 근간을 바꾸는 건 위험하다. 더욱이 과격한 정치 언어로 특정 인물을 집중 공격하는 건 건설적 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당 지도부는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 선고가 내려지자 형량이 가볍다며 "조희대 사법부를 그냥둘 순 없다"고 했다. 판사는 독립적 판결을 하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는데, 갑자기 '조희대 책임론'이 나오는 건 비약이다. 같은 논리라면 과거 민주당 정권 때 임명한 대법원장이 하급심 판결에 영향을 미쳐 왔거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법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민주주의도 흔들린다. 정치권이 사법 불신을 키우고, 판결이 정치적 이해관계의 산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 재판 결과에 대한 사회적 승복도 어려워질 수 있다. 헌법 제65조1항은 재판관·법관 등이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조 대법원장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여긴다면 그 근거를 분명히 제시하고 헌법적 절차에 따라 판단을 구하는 것이 맞다. '저항 우두머리' 운운하면서 대법원장의 사퇴를 압박하는 건 또다른 '사법의 정치화'를 부르는 일이다.
[사설] 중동발 패닉, 한가한 정치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우려 속에 우리 금융시장이 크게 휘청이고 있다. 코스피는 4일 사상 최대 폭으로 떨어져 5100선마저 내줬다. 코스닥 지수도 최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올해 세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던 한국 증시가 중동 사태 충격도 가장 크게 받고 있다. 원·달러 환율도 11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오르며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심리적 방어선인 1500선마저 뚫리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해외 출장을 늦추고 긴급 회의를 주재하기도 했다. 글로벌 투자기관들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상당한 타격을 받을 거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중동 사태가 확전,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고유가·고환율·고물가 3고(高) 공포가 시장 전반에 번지고 있다. 금융시장을 넘어 실물경제 위축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야말로 총체적 관리와 초당적 대응이 필요한 위기 상황이지만, 국익은 뒷전인 채 정쟁에만 몰두하는 한국 정치를 보면 절로 한숨부터 나온다.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기업들의 불안이 높아지고 있는데도 중동 사태의 파장 분석과 대응책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대기는커녕 "이재명 독재 공화국" "윤 어게인을 향한 꼬리 흔들기" 운운하며 극단 대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여론 압박에 밀려 미국 관세 압박의 빌미가 된 '대미투자특별법'을 9일까지 처리하기로 했지만 국익과 직결된 법안이 정치 거래 대상이 돼 지금까지 몇 개월째 처리되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이처럼 국익 보다는 당리당략만 앞세우는 행태가 만연해 있으니 중동발 경제·안보 복합 위기가 안중에나 있는지 의문이다. 앞으로 여야의 대치와 갈등은 더 심해질 공산이 크다. 지방선거가 석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의 대결 수위는 더욱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의 노선을 둘러싼 내홍 속에서도 전국 순회 집회까지 검토하며 투쟁 수위를 끌어올릴 분위기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 중이다. 하나같이 여야 충돌이 불가피한 사안들이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을 둘러싼 국제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그야말로 초불확실성 시대다. 금융시장이 연일 '최대 충격' 기록을 새로 쓰고 있지만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는 않다. 장기적 관점에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특히 이런 때일수록 정부의 선제 대응과 국회의 협력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우리 경제와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안이 발생하면 초당적 논의도 필요하다. 적어도 국가적 위기 앞에서 정치가 짐이 되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
[사설] 중동 전쟁 장기화 조짐…경제·안보 '복합 전략' 세워야
미국과 이스라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사태가 국지전을 넘어 중동 전쟁으로 번져가는 모양새다. 특히 이란의 보복 공격과 친(親)이란 무장세력 가세로 전쟁 장기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전쟁 기간을) 4~5주로 예상했지만, 그보다 더 오래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란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 이웃 걸프 9개국을 전방위로 공격하고 있다. 민간인 사상자가 나오고 공항이 마비되자 걸프 국가들도 보복을 검토하면서 중동 전역으로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무력 충돌이 격화되면서 우려했던 호르무즈 해협 봉쇄도 현실화되고 있다. 이란 최정예부대인 혁명수비대(IRGC)는 2일(현지시각) "단 한 방울의 석유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모든 선박을 불태우겠다"고 위협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수송량의 20% 이상이 통과하는 곳이다. 한국은 원유의 70%, 액화천연가스(LNG)의 2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고, 이중 95%가 호르무즈 해협을 거친다. 외신에 따르면 이란 공격 전 60여 척에 달하던 통과 선박이 한자릿수로 줄었다고 한다. 이란은 1988년 이라크와 전쟁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 150개를 부설했다. 이번에도 기뢰로 선박 운항 속도를 늦춘 뒤 선별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은 우리 경제와 안보 모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당장 경제부터 빨간 불이 들어왔다. 코스피는 3일 큰 낙폭을 기록하며 6000선 아래로 떨어졌다. 코스피 '공포지수'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1970년대 오일 쇼크가 다시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고유가는 고물가와 고환율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연쇄적인 파장이 불가피하다. 불안한 정세 속에 방산 등 국내 기업이 중동 국가들과 진행해 온 프로젝트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전자·식품 등 중동에서 강세를 보이는 수출 산업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중동 관련성이 높은 산업과 수출기업에 대해 정부의 지원책이 시급해진 상황이다. 이번 사태가 한반도 안보 지형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전략적 대비도 필요하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공개 행보를 보이며 짐짓 태연한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미국이 연달아 감행하고 있는 AI 등 새로운 차원의 군사 행동을 예의주시하며 전략적 생존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핵무기 고도화 측면에서 이란에 비해 크게 앞서 있는 북한으로선 더욱 핵에 집착할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다. 아울러 이달 말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이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비공개 채널 가동에 나설 수도 있다. 일각에선 미국의 이란 공습이 장기화할 경우 주한미군 군사 자산이 중동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어떤 시나리오든 한국이 소외되지 않도록 미국과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중대 변수가 생길 때마다 허둥대는 외교로는 곤란하다.정부는 현재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비상 대응 체제에 들어갔다. 일단 정부와 민간이 보유한 2억 배럴(221일분)의 비축유가 완충장치로 작용할 것이라고 하지만, 에너지 공급을 다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늦지 않게 찾아야 한다. 중요한 건 이번 사태가 미치는 파장의 범위가 넓고 예측이 힘들다는 점이다. 과거 오일 쇼크는 공급 부족으로 시작해 금융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이번엔 금융 시장이 먼저 요동치고 있다. 그만큼 위기의 결이 다르다. 특히 안보 이슈를 포함해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번 중동 전쟁은 힘의 국제질서가 본격화하는 역사적 시험대다. 단순히 상황을 관리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흥분하지 않되 경제와 안보를 아우르는 '복합 전략'이 나와야 한다.
[사설] 지리멸렬, 우왕좌왕…존립 기반 흔들리는 제1야당
제1야당 국민의힘이 존립을 걱정해야 할 만큼 무기력하다. 거대 여당은 법왜곡죄를 시작으로 재판소원 도입, 대법관 대폭 증원 법안까지 논란의 '사법 3법' 국회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지만, 이를 견제해야 할 야당은 지리멸렬할 뿐이다. 대구·경북 행정통합 특별법 표결 과정에서는 당론과 소속 의원들의 입장이 뒤엉킨 채 우왕좌왕했다.민심은 냉정하다. 27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22%로 민주당(43%)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지방선거 격전지로 꼽히는 부산·울산·경남(PK)에서는 25%에 그쳐 민주당(42%)에 17%포인트 뒤졌다. PK에서 이 정도 격차는 이례적이다. 전날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에서도 국민의힘은 17%로 지난해 8월 장동혁 대표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12·3 비상계엄 이후 지지율보다도 낮은 수치다.이쯤이면 정당 존립 기반 자체가 흔들린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장동혁 지도부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1심 선고 직후에도 "계엄은 내란이 아니다", "윤과 절연을 요구하는 세력과 절연" 등을 선언하고, 당내 비판 세력과의 건강한 노선 토론 대신 '친윤' 유튜버와 '윤 어게인' 세력에 기대는 모습까지 보였다. 의원총회는 노선과 전략을 두고 치열한 토론이 오가야 할 자리였지만 뚜렷한 방향 제시 없이 끝났다. 강성 당원 눈치를 보는 의원들의 침묵 속에 다음 총선 생존만을 염두에 둔 보신주의가 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장 대표는 6·3 지방선거의 승패 기준을 서울·부산시장 선거로 제시하며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NBS 조사에서 국민의힘 대구·경북 지지율이 민주당과 같게 나올 만큼 보수의 심장부로 불려온 대구·경북에서도 균열 조짐이 감지된다. 심지어 대구시장과 경북지사 선거를 통합하지 않으면 대구시장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승부처는 서울·부산 운운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이한 현실 인식인가.장 대표의 정치적 운명은 알 바 아니다. 야당 역시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헌정 체제의 한 축이다. 야당이 무너지면 민주주의의 균형추도 함께 흔들린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오만해지고, 대안 없는 야당은 소멸의 길로 간다. 의석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최소한의 지지 기반을 확보해 여당의 독주를 제어하고 합리적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제1야당의 존재 이유다.지금의 국민의힘은 그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 강성 지지층에 기대는 '윤 어게인' 노선으로는 중도 확장도, 정책 경쟁도 기대하기 어렵다. 입법·행정 권력에 이어 사법 영역까지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지방권력마저 일방으로 기울 경우, 권력 집중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제1야당의 붕괴는 한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경고등이다. 국민의힘이 스스로를 쇄신하지 못한다면 6·3 지방선거는 심판을 넘어 구조적 재편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사설] 한·미 파열음 속 김정은 대미 손짓…'핵 패싱' 안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보유국 인정을 전제로 미국과의 대화 여지를 다시금 열어뒀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면 두 나라가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북미 관계는 전적으로 미국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 대해선 "영원한 적"이라며, 이재명 정부의 유화정책도 기만극이라고 비난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과 21일 노동당대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한다. 이는 한국과 미국에 다른 외교적 접근을 하는 전통적인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으로 해석된다. 다만 향후 5년간의 노선을 결정한 노동당 대회 발언이라 그 무게감이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 이어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재차 언급한 점도 눈에 띈다. 이제 관심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에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달 말 중국을 방문하는데, 이를 계기로 북미 대화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망은 엇갈린다. 만남이 어렵다는 쪽은 트럼프가 북한 이슈를 다룰 에너지나 여력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내 경제와 관세정책, 중국·이란·우크라이나 문제만으로도 벅차다는 것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만남을 공언해 왔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높게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북미 회담에 관심을 보였다. 대화가 진전되려면 선결 과제가 많다. 핵심 의제를 정하고 접점을 찾아야 한다.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전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여러차례 평양을 찾았다. 예전과 달리 김 위원장이 비핵화 논의는 불가하다는 전제를 단 만큼 양측의 입장차를 좁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 입장에서도 고려할 게 많기 때문이다. 북한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들어주면 한국·일본 등 동맹과의 관계가 틀어질 수 밖에 없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 위원장 모두 예측불허의 인물인만큼 섣부른 전망보다는 철저한 대비가 우선이어야 한다. 우리 입장에서 가장 큰 우려는 북한과 미국이 한국을 패싱해 주요 합의를 이루는 경우다. 북한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라는 건 대북제재 해제, 한미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중단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은 '북한 비핵화'란 표현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말 '한·미 핵협의그룹' 성명에선 북한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북을 '핵 세력(Nuclear power)'으로 부르기도 했다. 손익 계산을 앞세우는 트럼프가 미국 본토에 대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위협을 없애는 조건으로 북한의 계산서를 어느정도 받아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과거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웠다. 비핵화는 북미가, 남북관계는 한국이 주도하는 개념이다. 초반엔 분위기가 좋았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못했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페이스메이커(pacemaker)' 역할을 강조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역 자리를 건네고 우린 조력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 전략이 제대로 먹히려면 굳건한 한미 관계가 기본이다. 하지만 최근 한미는 연합연습 중 야외기동훈련, 주한미군의 서해 전투기 출격 훈련, 비무장지대 관할권 등 여러 이슈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 한미 불협화음을 방치한 채 막연한 '페이스메이커' 역할만 기대하다간 자칫 '핵 패싱'이란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을 수도 있다.
[사설] 주한미군 사령관의 심야 반박… 이건 또 뭔 일인가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이 24일 밤 10시 입장문을 내고 우리 군에 유감을 표명했다. 자신이 한국 군 당국에 사과했다는 언론 보도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대비태세를 두고 사과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군사훈련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최근 논란도 반박했다. 주한미군은 사전에 훈련 사실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정작 우리 군 내부에서 정보 공유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는 취지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심야에, 그것도 공개적으로 반박 입장을 내는 건 드문 일이다. 특히 사과했느니 안했느니 진실게임을 벌이는 모습은 철통 같던 한미동맹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18~19일 진행된 주한미군의 서해공해상 훈련이었다. 당시 미 전투기들이 중국방공식별구역(CADIZ) 인근까지 접근하면서 중국 전투기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자 안규백 국방장관과 진영승 합참의장이 이례적으로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고 한다. 훈련 계획을 사전에 충분히 상의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국방부 대변인은 브런슨 사령관이 우리측에 사과했다는 기사에 "일정 부분 사실로 알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런데 당사자가 대놓고 불편함을 드러내면서 정면 반박에 나선 것이다. 이례적 훈련, 이례적 항의, 이례적 반박…. 그야말로 이례적인 일의 연속이다. 물론 이번 한·미간의 불협화음을 과대 해석하는 건 피해야 한다. 정치권이 자기 입맛에 따라 논란을 키우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드러난 소통 혼선 문제가 가볍지 않은 만큼 철저히 조사해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먼저 우리 군 당국은 미군의 설명대로 서해훈련에 대한 사전 통보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해야 한다. 브런슨 사령관의 주장이 맞다면 군 수뇌부가 잘못된 정보로 미군 측에 항의한 셈이 된다. 군 기강 문제로 번질 수밖에 없다. 미군이 훈련 사실만 알려주고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동맹 관계는 정보 공유의 깊이로 평가되는 만큼 그 배경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중일 갈등 등 동북아 환경이 유동적인 상황에서 한·미 관계가 흔들리는 모습을 노출하는 건 우려스런 일이다. 주변국가들에도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게다가 한국과 미국 두 나라만의 현안도 수두룩하다. 당장 핵추진 잠수함 건조,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등을 협의해야 하는데 미 대표단 방한이 미뤄지고 있다. 한국 정부가 9·19 군사합의 복원을 위해 남북 접경지역에 비행금지 구역을 재설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미측은 미온적이다. 다음달 한미 연합훈련은 야외 기동훈련을 줄이자는 우리 입장과 미군의 입장차가 큰 상태다. 이런 난제들을 풀려면 양국간의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 브런슨 사령관은 입장문에서 비공개 대화가 선택적으로 공개되고 있다고 했는데, 소통과 신뢰 문제를 노골적으로 지적한 셈이다. 지금 필요한 건 감정적 공방이 아니라 제도적 보완이다. 기본적으로 중국과 북한을 바라보는 한·미 양국의 시각차가 존재한다. 미국은 새 국가안보전략에 따라 중국 견제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지만, 우린 중국을 의식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에 소극적이다.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전략적 대화를 강화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한미 군사훈련 사전 협의 절차 명문화, 고위급 핫라인 강화, 9·19 합의 관련 한미 공동 검증 등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다. 소통 방식 또한 중요하다. 이견이 있더라도 물밑에서 조율하고 통일된 메시지를 내야 한다. 공개적으로 입장차를 드러내는 건 불필요한 갈등만 키울 수 있다. 동맹 관계는 세밀한 리스크 관리와 상호 존중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사설] '사법개혁 3법', 헌법의 무게부터 직시해야
민주당이 이른바 '사법개혁 3법'의 국회 본회의 처리를 공언했다. 이에 대법원은 전국법원장회의를 열어 각급 법원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입법부와 사법부 간 긴장이 고조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기관 간 힘겨루기 양상에 앞서, 이번 법안이 지닌 헌법적 무게부터 직시할 필요가 있다. 3법의 골자는 판·검사의 고의적 법왜곡을 처벌하는 '법왜곡죄' 신설, 법원 판결도 헌재 심판 대상으로 삼는 '재판소원' 도입, 그리고 대법관 증원이다. 민주당은 사법 책임성과 국민 기본권 보호, 상고심 적체 해소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입법 취지 자체를 전면 부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각종 위헌 소지와 사법부 독립 훼손 우려 등 제도의 설계 방식과 파급 효과다. 우선 법왜곡죄는 법 적용의 자의성을 통제하겠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고의'와 '왜곡' 판단 기준이 모호해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다. 법관의 재판상 판단을 사후적으로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방식이 사법 독립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재판소원 도입 역시 국민 기본권 보장이라는 대의를 내세운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까지 헌법소원을 허용할 경우 사실상 '4심제'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송의 장기화와 남발, 국민의 법률비용 증가라는 부작용 등에 대한 보완책이 충분히 제시돼야 한다.대법관을 기존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대법관 증원 자체는 신속하고 충실한 상고심 진행을 위한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정권 임기 중 대다수 대법관을 새로 임명하는 구조가 된다면, 사법부 구성의 정치적 편중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또 대법관을 대폭 늘리면 중견 판사들도 대거 대법원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하급심이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사법제도 개편은 국민의 권리 구제 방식과 직결되고, 권력분립이라는 헌법 질서의 근간과 맞닿아 있다. 제도 취지와 별개로 위헌 논란과 부작용 우려가 제기된다면 이를 충분히 검토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숙의'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 다수 의석을 앞세운 일방적 처리는 입법권 남용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사법 체계 혼란뿐 아니라 입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떨어뜨릴 수 있다. 사법개혁의 이름으로 헌법의 균형추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가속 페달이 아니라 브레이크다.
[사설] '예측불허' 트럼프 관세…'엉뚱한 불똥'은 막아야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이 지난 20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한 상호관세 부과가 위법하다고 판결했을 때만 해도, 트럼프 관세정책에 제동이 걸릴 거라는 예상도 나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15%의 '글로벌 관세'를 새로 부과하는 등 '플랜B'를 가동했고, 미 관세당국의 후속 조치도 빨라지고 있다.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무역법 301조에 기반한 불공정 무역관행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조사 범위가 확대되면 우리도 비관세장벽이나 미국 기업 차별을 고리로 보복관세를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주력 수출 품목에 추가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하나하나 한국경제에 큰 역풍을 불러 올 수 있는 사안이다. 통상 분야 불확실성이 커지자 우리 정부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비공개 당정청 회의와 '민관합동대책회의',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잇따라 열었다. 국회는 별도로 상임위 차원에서 관세 대책을 따졌다. 새로운 변수가 돌출한 만큼 정부와 기업, 국회가 기민하게 머리를 맞대는 건 중요한 일이다. 다만 관세 협상을 둘러싼 여야의 시각차가 여전히 큰 만큼 이를 좁히려는 노력도 포기해선 안된다. 당장 24일 국회 대미투자특별위원회가 특별법 공청회를 연다. 정쟁을 하더라도 국익 앞에선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국회가 후속 입법에 나서지 않아 관세를 더 올리겠다는 등의 트럼프 압박이 반복돼선 안된다. 한미 관세협상은 다른 나라보다 더 정교하고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는 일이다. 단순히 투자 금액과 관세율만 다루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미 협상에 따르면 핵추진 잠수함 건조 등 안보 이슈가 통상 문제에 밀접하게 얽혀 있다. 최근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한반도 안보 상황을 흔들고 있다. 안보와 경제가 맞물려 돌아가는 상황에서 섣불리 대미 투자 규모를 줄이거나 관세 환급을 요구하는 건 불필요한 논란을 부를 수 있다. 다만 기존 합의의 틀을 지키면서도 추가 협상을 통해 지켜내야 할 부분이 있다. 먼저 미국이 무역법 301조에 따라 보복 관세를 때리지 않도록 잘 방어해야 한다. 최근 쿠팡 사례에서도 봤듯이 일방적 주장이 로비를 통해 미국 정부·의회에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근거 없는 주장이 무역 보복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미국을 설득하고 적극 협상해야 한다. 온라인 플랫폼법, 디지털 규제, 구글 고정밀지도 반출 등 비관세 장벽에선 줄건 주고 받을 건 받는 실리적 접근이 요구된다. 품목별 관세율이 올라가지 않도록 데이터에 기반한 협상에 나서는 것도 필요하다.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미국 내 기류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의 24일 국정 연설, 다음달 발간될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부터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미 행정부와 의회에 대한 정보 수집을 더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대통령부터 실무자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에 맞는 소통을 해야 한다. 예상치 못한 관세를 부과받거나 또다른 주력 산업으로 불똥이 튀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인 발언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한미 동맹에 균열이 없는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재연돼선 안된다. 통상과 안보의 복합적 혼돈 국면에서 이재명 정부의 역량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사설] 尹 "우리 싸움 끝 아냐"… 대체 언제까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하루만에 입장문을 냈다. 그는 좌절과 고난을 겪은 국민에게 사과한다고 했지만 비상계엄은 "구국의 결단"이었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군이 국회에 갔기 때문에 내란이라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우리의 싸움은 끝이 아니다. 뭉치고 일어서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지지층을 향한 결집을 호소한 것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계엄이 곧 내란은 아니다"고 호응했다. 절연할 대상은 '대통령과의 절연'을 앞세워 당을 갈라치기하는 세력이라며 '윤 어게인' 세력과의 연대도 시사했다. 민주당은 사형이 선고되지 않은 것을 비판하며 사법부를 향한 공세 수위를 높였다. 정청래 대표는 "판사가 세상 물정 모르고 국민 정서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판결을 했다"며 결론적으로 조희대 사법부를 그냥 둘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종 논란 속에 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사법 3법'에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지도부 내에선 "조희대 대법원장이 탄핵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는데, 당내 강경파의 목소리가 한층 커진 분위기다.결국 여야 모두 진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누가 뭐래도 비상계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국민들이다. 법원도 이번 판결에서 우리 사회가 정치적으로 양분돼 극한의 대립을 겪고 있다며 사회적 비용을 산정할 수 없는 피해라고 지적했다. 갈라진 국민 마음을 다독이고 미래로 가는 길을 찾는 게 정치의 역할일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새 출발은커녕 갈등과 균열을 동력으로 삼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무엇보다 헌재의 탄핵 심판에 이어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는데도 여전히 현실을 외면한 채 투쟁 운운하는 윤 전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대내외 상황은 엄중하다. 관세를 내세운 미국의 투자 압박이 거세고 중일 갈등으로 인한 안보 불확실성도 커진 상황이다. 청년 일자리, 부동산 공급, 행정통합 등 국내 이슈도 산적해 있다. 이처럼 현실의 과제는 쌓여만 가는데 정치권만 과거의 전선에 묶여 있어선 안 될 것이다. 최근 방송사의 설 여론조사에서 여야 지도부 모두 과반의 부정 평가를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런 불신을 씻으려면 내란의 상처를 정략적으로 소환할 게 아니라 적극적인 민생 경쟁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윤석열 재판'이 남긴 가장 현실적인 과제일 것이다. 과거에 매달리는 정치로는 국가의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법원은 1심 재판에서 대통령과 총리, 국방장관 등 주요 인물들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일단락지었다. 23일부턴 항소심 내란전담재판부가 가동돼 신속한 2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은 법원에 맡기고 정치는 '정치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설] 尹 1심 무기징역…민주주의를 다시 쓰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1심 법원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에게도 징역 30년의 중형이 내려졌다. 법원은 약 1년전부터 치밀하게 계엄을 계획했다는 혐의를 제외하고는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헌법재판소가 파면을 통해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적·정치적 책임을 물었다면, 무기징역의 중형을 선고한 이번 판결은 내란죄 혐의를 명확히 인정하고 엄중한 사법적 책임을 물은 셈이다. 나아가 군과 경찰을 동원한 최고 통치자의 권력 남용이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기도 하다.재판부의 판단은 분명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계엄 조치가 경고성 행위에 불과하고 내란죄가 성립할 만큼의 폭행이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 자신의 명령을 잘못 해석했다고 부하들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비상계엄 선포 후 군을 국회에 보낸 게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며 "국헌 문란 목적이 인정된다"고 했다. 국회 활동을 저지하거나 마비시켜 그 기능을 못하게 만들려는 목적이 있었고 국회 봉쇄와 체포조 편성 및 운용, 중앙선관위 점거 및 서버 반출 등은 그 자체로 폭동 행위이며 한 지역의 평온을 해칠 정도의 위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그간 비상계엄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강변했지만 최고 통치권자의 권한이 오히려 중형의 근거가 됐다. 이번 사태로 군과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크게 훼손됐고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신용도가 하락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점, 수사와 재판으로 인한 피해가 큰 점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무난하게 공직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다수 공직자가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큰 아픔"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이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초래됐는데도 윤 전 대통령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재판 결과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또 민주당에선 특검의 구형대로 사형을 선고했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그러나 내란죄라는 중대 범죄의 법적 판단을 놓고 정치적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법원의 판단을 정치적 무기로만 소비하는 순간 또다른 분열과 혼란이 시작된다. 이 사건의 본질은 정권 교체나 진영 대립이 아니다. 헌정 체제에 대한 도전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형벌로 단죄될 사안인지가 쟁점이었다.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재판 결과를 놓고 정치적 유불리에 따른 소모적 정쟁으로 비화돼선 안된다. 오늘 선고가 진행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은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다. 30년 전 이 법정에서 군사반란과 내란수괴 혐의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이곳을 거쳤다. 현직 대통령 최초로 구속된 윤 전 대통령이 부끄러운 기록을 더했는데,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심경도 참담할 수밖에 없다. 이번 재판은 윤석열 개인에 대한 처벌을 넘어 대한민국 대통령제의 한계를 다시 생각하는 의미도 가진다. 그 점에서 정치권이 잊지 말아야 할 건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의 힘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뛰어 나가고, 무장한 군을 막아선 것도 시민들이었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지킬 준비가 돼 있을 때 지속되고 성숙된다는 점을 거듭 되새길 때다.
[사설] 패륜 상속 막는 '구하라법' 완결…가족의 의미 다시 묻는다
부모나 자식을 버리고 학대하는 등 부양 의무를 크게 저버린 가족은 상속권이 박탈된다. '패륜 상속인'의 범위를 확대한 민법 개정안이 12일 국회를 통과하면서다. 앞서 천륜을 저버린 부모에 한해 상속권을 제한하는 일명 '구하라법'이 올해 1월부터 시행됐다. 이번 개정안은 부모뿐 아니라 배우자·자녀를 포함한 모든 상속인으로 제한 범위를 넓혔다. 반대로 끝까지 곁에서 고인을 챙긴 가족·친지의 상속권을 보호하는 장치는 한층 강화했다. 가수 구하라씨의 실명을 딴 '구하라법'은 오랜 사회적 논란을 거쳐 현실화됐다. 2019년 구씨가 사망하자 20년간 연을 끊고 지낸 친모가 상속권을 주장해 유산의 40%를 받아갔다. 국민적 공분이 컸지만 당시 법은 '유류분(遺留分)'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유류분 제도는 법정 상속인에게 최소한의 상속분을 허용하는 것이다. 재산이 주로 장남에게 돌아가던 시절 다른 가족의 공평한 이익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구씨 친모처럼 수십 년간 소식도 모른 채 살다 자녀 재산만 챙기는 사례가 잇따랐다. 헌법재판소는 2024년 패륜 가족의 상속권을 제외할 기준이 없는 건 불합리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에 따라 '구하라법'이 만들어져 국회를 통과했고, 이번 민법 개정안은 완결판으로 볼 수 있다.국민들이 구하라씨 사건에 분노하고 개선을 요구한 건 상식과 정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이란 지위만으로 권리가 자동 부여되고 책임은 면제되는 구조는 불합리하다는 거였다. 남보다 못한 가족에게 법적 면죄부만 주는 식이라는 것이다. 특별한 연예인 가족에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라는 점도 한몫했다. 그 점에서 권리와 책임의 균형을 따지는 이번 민법 개정안은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부합한다. 다만 입법의 취지가 현장에서 잘못 나타나지 않도록 세심한 접근이 요구된다. 자녀를 돌보지 않은 부모나 패륜의 기준을 법으로 규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중대하게 부양 의무를 위반했다는 요건을 놓고서도 혼란이 생길 수 있다. 가족관계는 복잡하기 때문에 중대성과 고의성, 지속성을 토대로 '부양의무 위반'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만들어 가야 한다. 단순한 가족 갈등을 구분하지 못하면 법이 분쟁과 소송을 양산하는 도화선만 된다. 재산이 많을수록 '패륜' 주장이 전략적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법원이 판례를 통해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잡아가는 게 필요하다. 또하나 근본적인 질문도 있다. 법은 사후에 정의를 따지는 것일 뿐이다. 고령화 사회의 도래, 단절 가족 증가, 1인 가구 확대 등 사회 변화에 맞춰 가족 돌봄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구조적 문제가 해결돼야 법으로 다툴 이슈가 줄어든다. 이제 설 연휴가 시작됐다. 가족은 이름 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번 민법 개정안은 상속 그 자체를 넘어 가족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사설] 李-여야 대표 회동 무산…우리 정치의 후진성 보인 상징적 장면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오찬 회동이 만남 1시간 전 무산됐다.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에서 재판소원법과 대법관 증원법을 단독 통과시킨 데 대한 야당의 반발이 직접적 계기였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등 뒤에 칼을 숨기고 악수를 청하는 데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정청래 민주당 대표를 향해 이 대통령의 'X맨'이냐고 했고, 정 대표는 "본인이 (회동을) 요청할 때는 언제고, 예의가 눈꼽만큼도 없는 작태"라고 비난했다. 협치와 소통을 바랐던 분위기는 이전보다 더 거칠어진 비난전으로 돌아왔다. 청와대는 국회 일과 대통령 일정을 연계한 건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 앞에는 국가적 의제가 산적해 있다. 당장 대외 이슈만 봐도 미국의 관세인상 압박, 희토류 광물전쟁, '강한 일본'을 외치는 다카이치 정권의 독주, 중국의 반도체 기술 추격 등 현안이 수두룩하다. 국내적으론 광역지자체 행정통합, 주택공급대책 후속 입법, 필수의료 강화, AI 정책과 청년 일자리 대책 등이 있다. 국익과 민생에 영향을 주는 사안일수록 여야가 함께 논의하고 법안을 추진해야 국민 지지를 얻을 수 있다. 특검과 검찰·사법 이슈는 입장차가 크지만, 접점을 찾을수록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이번 회동에 국민적 관심이 모아졌던 이유다. 그런 만큼 이번 회동 무산은 우리 정치의 후진적 작동 방식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우려된다. 그간 다수 의석을 가진 여당은 힘의 논리를, 소수 야당은 반발을 택하는 구조가 반복돼 왔고 그 결과가 불과 1시간 전 회동 취소라는 상징적 장면으로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민의힘은 비쟁점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던 오후 본회의에 불참했다. 대미투자특별법 특위 첫 회의도 시작부터 파행됐다. 미국은 대미투자법 처리가 지지부진하다는 점을 고리로 관세를 다시 높이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국익 차원에서 여야가 부랴부랴 특위를 구성하고 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는데, 국내 정치가 다시 발목을 잡은 것이다. 책임 있는 정치권의 주체들이 국가적 의제를 놓고 머리를 맞대거나 충분한 논의와 조율을 거치는 과정은 온데간데 없고 매사 정략, 당리당략이 앞서고 있는 게 우리 정치의 한심한 현주소다. 여야 모두 강경 지지층의 눈치를 보며 타협의 공간을 좁혀왔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여야 갈등 상황을 보면 취소된 약속을 다시 잡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이들이 만난다고 단번에 모든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다. 지난해 첫 회동에서 '민생경제협의체'를 가동하기로 합의했지만 결국 흐지부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에선 '다시, 계속' 만나는 게 중요하다. 통계청 사회조사 등 각종 조사에서 국민들은 정치·이념 갈등을 가장 큰 사회갈등으로 꼽고 있다. 국민은 국가적 난제 앞에서 대통령과 정치권이 함께 논의하는 모습을 바라지만 한국 정치는 거꾸로 가고 있다.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국민이 부여한 책무다. 국익이 정파나 진영의 인질이 돼선 안 된다.


![[시대포럼] AI 대전환의 시대, AI 풀스택 대한민국의 도약](https://i.ytimg.com/vi/VcbpSJtXg6o/maxresdefault.jpg?width=1920&quality=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