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VIEW
[시대&VIEW]친일: 역사의 영역인가, 실존하는 굴레인가?
발단은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집안 자랑이었다. 배우 하영은 8월 7일 방송된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자기 집안이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 온 '4대 의사 집안'이라고 소개했다. 증조부가 일본에서 양의학을 배워 한양에 처음으로 양의원을 열었으며, 고종 황제까지 진료했다는 내용이었다. <집안 자랑이 친일 조상 논란으로>그러자 방송 직후 네티즌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하영의 증조부가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면허증을 취득한 의사 안상호(1872~1927)라는 사실과 함께 친일 의혹을 제기했다. 이완용이 고문을 맡아 1916년 만들어진 민간단체 '대정실업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서 안상호라는 이름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1918년에는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완전히 내지화(일본화)된 가정이자 일선동화(日鮮同化)의 모범 가장'으로 소개됐으며 "매운 음식은 먹지 못하고 조선 옷은 한 벌도 없다"고 인터뷰한 기록도 드러났다.논란이 커지자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10일 "증조부가 안상호는 맞지만, 친일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료가 계속 나오자 하루 만인 11일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번복해 "추가 확인 결과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 기록이 실제로 존재한다"며 "충분한 검증 없이 성급하게 부인해 혼란을 드렸다"고 사과했다. 12일에는 하영 본인이 개인 인스타그램에 자필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동안 가족을 통해 단편적인 이야기만 들어 무지한 상태로 집안 자랑을 했다"며, 이번 기회에 증조부의 친일적 과오를 알게 되어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소속사의 잘못된 초기 대처도 자신의 부족함 탓이라며 고개를 숙였다.파문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하영의 집안 언급이 포함된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 회차는 다시보기와 유튜브 클립 영상이 전면 중단되거나 비공개 처리돼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됐다. 광고계의 손절도 잇따라 삼성전자와 의류 브랜드 아티드(ARTID)는 하영이 등장하는 광고 영상을 즉각 비공개로 돌렸다. <안상호는 일본에서 근대의학 교육받은 두 번째 대한제국인…일본 의사면허는 처음>그렇다면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는 누구인가. 대한의사학회 학술지 대한의사학회(Korean Journal of Medical History) 제3권 제2호(1994년)에 게재된 의사학자 기창덕 가톨릭 교수의 논문 '의학계의 해외 유학생'에 따르면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는 우리나라 사람으로선 두 번째로 일본에서 정규 의학교육을 받았다. 일본 의학교육기관에 입학해 처음으로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은 안상호의 3년 선배인 김익남이다.김익남에 대한 기록은 비교적 상세히 남아있다. 그는 갑오개혁이 시작된 지 2달 뒤인 1894년 9월 일어학교에 입학해 일본어를 배우다 학부(교육부에 해당)에서 주관한 일본유학시험에 합격해 이듬해인 1895년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쿄의 게이오키쥬쿠(慶應義塾) 보통과에서 7개월간 교육받고 졸업한 뒤 1896년 1월 도쿄치케이의원 의학교(東京慈惠醫院 醫學校)에 진학했다. 1899년 7월 전 과정을 마치고 8월부터 치케이의원에서 당직의원(當直醫員·수련의 격)으로 근무한 뒤 11월에 졸업했다. 김익남의 3년 후배인 안상호도 비슷한 과정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 1902년 졸업한 그는 당직의원을 더 길게 하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의사면허를 받았다. 1907년 귀국해 개인의원을 열었다. 한양의 첫 한국인 개원의였던 셈이다. <최초의 조선인 의사단체 결성, 칼 맞은 이완용 치료, 이토 민간추도회 준비위원, 고종 최후에도 이름 등장>의사 안상호는 어떤 일을 했나. 김익남·안상호 등 조선인 의사들은 대한의사협회로 이어지는 최초의 한국인 의사 단체로 평가받는 '의사연구회'를 결성했다. 구한말인 1908년 10월 대한제국에서 활동하던 일본인 의사들이 계림의학회를 결성하고 세력과 이권 확대를 꾀하자 그해 11월 의사연구회를 만들어 대항에 나선 것이다. 개원의 안상호는 1909년 12월 22일 서울 명동성당(1945년 이전까지 종현교회당으로 불림)에서 이재명 열사에 의해 단도로 습격당한 이완용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상을 입은 이완용은 치료받고 회복됐지만, 이재명 열사는 체포돼 이듬해인 1910년 9월 30일 처형당했다. 일제가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강제로 빼앗은 1910년 8월 22일 국권피탈 직후였다.안상호의 이름은 1909년 이토 히로부미 '국민대추도회' 준비위원 명단에서도 발견됐다. 일본 총리와 초대 조선통감부 통감을 지내고 추밀원 의장을 맡고 있던 이토는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에 의해 하얼빈역에서 사살됐다. 그 뒤 대한제국 왕실과 정부는 친일 단체인 한성부민회의 지원을 받아 일본에서 이토의 장례식이 치러진 1909년 11월 4일 서울 장충단에서 1만여 명을 모아놓고 관민추도회를 열었다. 한성부민회는 이어 11월 26일 한성부민회관에서 민간 주도의 '국민대추도회'를 열려고 했지만, 단체끼리 의견이 맞지 않아 취소됐다. 당시 13도 대표 100명을 목표로 했던 준비위원 100명에 안상호의 이름이 들어간 것이다. 안상호는 고종의 마지막 순간에도 등장한다. 국권피탈 뒤 이왕직(옛 대한제국 황족의 의전과 담당 사무를 맡은 기구)의 촉탁의를 맡아 고종을 진료했기 때문이다. 안상호는 고종이 1919년 뇌출혈로 쓰러져 1월 21일 오전 6시 덕수궁 함녕전에서 만 66세로 세상을 떠날 당시 일본 의사와 함께 진료를 맡았다. 당시 고종 독살설이 퍼져 3·1운동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안상호는 고종이 즐기던 커피 또는 식혜에 독을 탄 배후 인물이나 가담자로 의심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고종 독살을 입증하는 증거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안상호라는 이름은 1916년 결성된 친일단체 '대정실업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서도 발견된다. 줄여서 대정친목회로 불리는 이 단체는 한국사에서 중요하다. 1919년 3·1운동 뒤 일제가 조선인 회유를 위한 '내선융화'를 내걸고 문화정치를 시작하며 민간 신문 발간을 허용하자 1920년 조선일보를 설립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총독부에 저항하며 수많은 필화와 1년 정간 등 탄압을 겪었다. 조선일보는 그 뒤 1933년 광산 기업인 방응모가 경영난에 빠진 신문을 인수하면서 오늘에 이른다. 이상호와 관련된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사연은 한 인물을 간단하게 재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인간은 평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역사적 사실은 시간이 갈수록 확인하고, 검증하고, 평가하고 판단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조선의 선각자 의사들>김익남과 안상호가 일본에서 의학을 배우는 동안 조선은 1897년 대한제국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899년(광무 3년) 국립의과대학인 '의학교'를 세우고 국가 차원에서 국내에서 근대 의사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안상호의 도쿄치케이의원 의학교 3년 선배인 김익남은 일본에서 배운 의학을 바탕으로 바로 이 학교에서 교관(교수)을 맡아 제자를 길러냈다. 서울의대에 김익남의 동상이 서 있는 이유다.의학교 1기는 3년 동안 동물학, 화학, 해부, 약물, 내과, 외과 등 16개 과목을 이수하고 1902년(광부 6년) 7월 졸업시험을 치렀다. 의학교 1기 졸업생 19명의 명단이 대한제국 관보에 실린 그해 7월 4일은 외국에 유학하지 않고 국내에서 공부한 근대 의사가 처음으로 탄생한 날이다. 관비 유학생인 안상호도 의학교 교관으로 발령받았지만 귀국하지 않아 면직됐다. 이들 외에도 구한말과 국권 상실 초기에 배출된 의사 중에는 개화정치·독립운동에 이바지한 선각자가 수두룩하다. 서구의 과학과 문물을 교육받은 의사들은 1910년 국권 상실 뒤 독립운동의 중심이 됐다. 1908년 의사가 된 제중원 의학교 1기 졸업생(중간에 세브란스에 위탁돼 세브란스 의학교 1기가 됨)은 7명 중 4명이 중국과 몽골로 망명해 독립운동가가 됐다. 1기인 박서양은 백정의 아들이었으나 실력이 뛰어나 세브란스 의전과 간호양성소 교수를 지냈다. 합리와 이성이 바탕인 서양의 의학 지식·술기를 익힌 이들은 "과학의 피는 신분의 피보다 더 붉다"며 고리탑탑한 신분 차별을 넘어서서 능력 중심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갔다. 불평등과 불공정을 넘어 내 손으로 쌓은 실력과 일군 업적으로 평가받는 바로 그런 시대다. <안상호 인터뷰는 영친왕과 이방자 결혼에 반발하는 민심 무마용>언급된 안상호의 1918년 매일신문 인터뷰에는 배경이 있다. 1916년 고종의 아들 이은(1900~1907년 영친왕, 1907~1910년 대한제국 황태자, 1910~1926년 이왕세자, 1926~1947 창덕궁 이왕)이 일본 왕족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梨本宮方子·해방 뒤 남편 성을 따서 이방자로 불림)와 약혼한 사건이다. 당시 조선 민중의 반발을 의식한 총독부는 조선인과 일본인 부부를 긍정적으로 선전하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 유학 출신의 조선인 의사 안상호와 일본인 처, 그리고 자녀가 일제의 선전에 동원된 셈이다. 양친왕과 이방자는 1919년 고종 붕어와 3·1운동 뒤인 4월 28일 1920년 결혼했다.<까마득한 증조부의 역사적 의혹이 증손녀의 현실 활동에 영향을 끼쳐도 되는 걸까> 이러한 장구한 역사를 볼 때 증조부의 친일 의혹이 증손녀의 대중연예인 활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제대로 연구하고 확인하면서 사회적 공감을 확보한 뒤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대신 단편적인 근거로 친일 프레임을 적용해 인물을 재단하는 건 과거 좌익 혐의자에 대한 우익의 '사상검증'이나 차이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는 역사 연구의 영역이지 현재의 기준으로 유죄, 무죄를 간단히 정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를 바탕으로 후손들을 비난하고 불이익을 주는 것은 역사가 현실을 잡아먹는 과거사 회귀형 연좌제라는 지적도 있다. 반면 친일 행위는 대한민국 침략이나 전복 시도와 마찬가지로 시효가 없다는 주장도 팽팽히 맞선다. 과거의 친일 행위에 대한 판단 기준과 후손들의 활동을 보는 시각과 관련해 사회적 숙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단 관심을 끌고 보자는 '슈스케식' 홍보·마케팅의 문제…시대가 바뀌고 있다> 개인·가족 서사까지 동원해 대중의 인기를 끄는 대중문화계의 홍보·마케팅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는, 이른바 슈스케(대국민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 방식의 연예인·홍보 마케팅 방식이 이제 임계점을 넘었다는 지적이다. 공정을 중시하는 청년층은 이목을 끄는 주변 스토리가 아닌 본인 개인이 쌓아온 능력과 잠재력, 그리고 업적을 중심으로 해당 연예인에 대한 호불호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하영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에 문제가 없었는지 곰곰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시대&VIEW]英 총리의 소박한 '생활 정치' 실험
지난 7월 20일 취임한 앤디 버넘(56) 영국 총리가 소박한 정치적 '실험'에 나서고 있다. 좌파인 노동당 소속인데도 거창한 이념이나 장밋빛 청사진, 자극적 구호가 아닌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생활 정치'를 외치고 있어서다. 대표적인 생활 정치 사례가 각종 정치 행사에서 '모든 버스요금을 2파운드로'를 대표 구호로 내세우고 '생활비 부담 경감'을 대표 정책으로 내걸고 있는 것이다. 현재 영국의 상당수 지역은 3파운드(약 6000원)가 버스 요금 상한선인데 이를 런던 등 일부를 제외하고 2파운드(약 4000원)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매달 40~60파운드(8만~12만원) 정도의 교통비를 절감하게 해주는 정책이다. 버넘은 저렴한 버스요금 유지를 위해 현재 맨체스터에서 실시하는 버스 공영제의 전국 확대를 추진 중이다. <생활 정치, 탈중앙 정치로 영국에 새로운 바람>버넘 총리의 생활 정치가 화제를 모으는 이유는 '모든 버스 요금을 2파운드로'를 비롯해 '전기요금 부가세 폐지' '공공주택 공급 확대' 등 대중이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정책을 골라서 추진하고 있어서다. 공공교통·수도·전기 등 공공시설의 공적관리에 무게를 두고 서민 부담을 줄이려고 시도하고 있다. 아울러 실업교육을 강화해 청년층이 교육을 통해 실업에서 벗어나도록 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방침이다. 영국 서민들의 사랑방인 퍼브에 대한 세금도 줄이기로 했다. 주민들에게 필요한 돈을 나눠주는 현금복지 대신 서민들의 생활과 생업에 원활하도록 선별 감세 등으로 간접 지원하는 형식이다. 버넘이 펼치는 '중앙정부 권한의 적극적인 지방정부 이양'과 '지방 성장' 정책도 눈길을 끈다. 영국에서 남부와 북부 간의 격차와 이에 따른 지역 갈등은 심각한 정치 현안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을 비롯한 잉글랜드 남부 지역은 금융, 서비스, 첨단 산업이 집중돼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국제화됐다. 반면 맨체스터·리버풀 등 잉글랜드 북부는 1980년대 이후 전통의 제조업과 석탄 산업이 무너지면서 쇠락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 구조 차이는 지역 간 경제적 격차와 정치 성향의 분화로 이어져 왔다. 북부에선 남부 런던 중심의 국가정책 결정에 소외감과 반감을 느끼면서 불만이 쌓이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 성향도 남부는 보수당이, 북부는 노동당이 우세를 보여왔다.버넘은 남북 격차 해소의 첫걸음으로 자신이 10년 가까이 광역단체장으로 있던 영국 2대 광역자치단체인 북부 그레이터 맨체스터에 취임 직후 제2 '다우닝가 10번지(총리실)'의 문을 열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그는 주택·전력·수도 등 생활 관련 행정을 이곳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국민의 실생활에서 벌어지는 불만을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이를 정책으로 추진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생활 정치다.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인프라가 잘 갖춰진 수도 런던이 아닌 영국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방에서 문제 해결 방안을 찾는 현장 행정을 하겠다는 것이다. <생활, 지역, 서민 중심의 '맨체스터주의'로 전국적 주목>특히 문제는 주택이다. 공급 부족으로 월세가 올라 청년층을 중심으로 생활물가고를 호소하며 정부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서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버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공공주택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서민의 집세 부담을 낮추고, 전체 생활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맞춤형 정책을 생산하고 있다. '생활 정책''지역 중심''서민과 현장 중심'의 실용적 대중 리더십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BBC방송 등 영국 미디어는 이러한 버넘의 정책과 업무 스타일을 '맨체스터주의'라는 부르고 있다. 맨체스터에서, 지역 주민과 함께 만들고 실천을 시작한 정치적 도전이라는 의미에서다.물론 재정 마련 등 논란도 있다. 하지만 부유한 지역 중심, 엘리트 중심, 구호 중심의 정치가 아니라 권력의 지방 분산, 생활 정책 중심, 서민을 포함한 전체 국민 중심의 리더십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버넘은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 시절 '앤디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ASK ANDY ANYTHING)'라는 옥외 유튜브 방송을 진행했다. 주민이나 민원인, 전문가의 요구를 현장에서 직접 경청하며 일문일답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사람이 사람을 위해 하는 생활 정치의 힘을 보여줬다. 비방·언어폭력에 적통·배신자 등 공허한 프레임이 판치는 한국적 정치 상황에서 눈여겨볼만한 사례다. <서민 집안-케임브리지대-하원의원-광역시장-총리…버넘이 걸어온 정치 역정>버넘 총리는 정치 이력부터 독특하다. 영국 총리실 홈페이지에 따르면 버넘은 전화 기사인 아버지와 진료실 접수원인 어머니를 둔 서민 가정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그 뒤 신문·잡지 기자와 의원·장관 보좌관을 거쳐 2001년 고향에서 가까운 맨체스터 리 지역구에서 처음으로 하원의원에 당선했다. 이후 2017년까지 만 15년 이상 하원의원으로 재직하면서 문화부 장관과 보건부 장관을 각각 지냈다. 총리 취임 직후 "부친이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며 요양원을 찾아 근무자를 격려한 것도 이러한 이력과 관련이 있다. 시련도 적지 않았다. 2019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당 대표에 도전했지만 각각 4위와 2위를 기록했다. 온건 좌파인 그는 노동당 내에서도 비주류였던 셈이다. 당 주류와의 갈등 끝에 2017년 하원의원을 그만두고 신설된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에 당선해 지역에서 제2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그레이터 맨체스터는 맨체스터시 등 10개 지방자치단체를 합친 광역자치단체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프리미어 축구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가 이 광역자치단체 안에 터를 잡고 있다. 하지만 취임 2주 뒤인 2017년 5월 22일 맨체스터 아레나에서 열린 아리아나 그란데 콘서트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터졌다. 대부분 어린이인 22명이 숨지고 수백 명에게 부상을 입힌 비극이었다. 당시 버넘 시장은 침착하게 집중력을 발휘해 신속하게 사고를 수습하고 24시간 만에 추모행사를 열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런 종류의 테러 공격은 대체로 분열을 초래하고 지역사회를 더욱 어렵게 만들지만, 버냄의 차분한 대처는 오히려 지역주민과 시 정부, 시장이 하나가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시장으로서 그는 노숙자 수를 절반 이하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제시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꿀벌 네트워크(Bee Network)'라는 공공 운송 사업도 돋보인다. 버스를 공공기관에서 운영하고, 요금 상한제를 도입하며, 지역 대중교통 시스템을 간결하게 통합한 버넘의 대표 치적이다. <코로나 봉쇄 당시 서민 입장 대변하고 '북부의 왕' 별명>버넘이 영국에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보리스 존슨 총리의 중앙정부 하향식 봉쇄 조치에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면서다. 경제적 형편이 런던 같은 남부보다 열악한 북부 주민들은 봉쇄에 따른 고통이 더욱 심하다는 지역 주민의 여론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셈이다. 그는 북부 지역에 대한 공정한 재정 지원을 요구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처음으로 영국 국민 대다수의 의견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됐다.가디언은 버넘이 이를 통해 '북부의 왕'이라는 정치적 별명을 얻었다고 지적했다. 단순한 남부와 북부라는 지역적 차이를 넘어 상대적으로 인프라와 산업이 열악한 지역, 가난하고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지시에 좌절감을 느끼는 지역 주민의 민심을 경청하고 대변하는 지도자로 떠오른 것이다. 그런 버넘은 초당적으로 지지를 끌어냈다. 시장으로 내리 3선을 기록할 정도였다. 노동당보다 개인 인기가 더 높아졌다. '북부의 왕'이 주는 상징적인 이미지는 그를 시장에서 의회로 불러낸 원동력이 됐다. 2024년 노동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도 경제실적 부진, 취약계층 복지 축소 논란, 당내 정쟁 등으로 키어 스타머 당시 총리의 인기가 급락하자 전국적인 지명도와 인기를 가진 버넘이 새 지도자로 부상했다. 그는 시장을 그만두고 지난 6월 치러진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하면서 의회로 복귀했다. 이어 당내 경선에서 무투표로 당 대표에 추대되고 총리가 됐다. '웨스트민스터 시스템'으로 불리는 영국식 의원내각제에선 집권당 대표가 곧 총리가 된다.버넘은 의원·장관과 광역자치단체장에 이어 총리로서 세 번째 정치적 도전을 하고 있다. 비주류 정치인 버넘의 도전은 우월 의식에 가득 찬 기득권 엘리트 정치인에게 주는 신랄한 경고일 수 있다. 버넘의 도전은 막스 베버(1864~1920)가 1919년 펴낸 『직업(소명)으로서의 정치(Politik als Beruf』에서 제시한 '열정·책임감·균형감각'이라는 정치가의 덕목을 떠올리게 한다. 거창한 이념이나 구호 대신 생활 정치를 들고나온 버넘은 이 세 가지 덕목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가뜩이나 지난 10년 새 7명의 총리를 맞는 등 정치 지도자의 단명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영국에서 버넘이 어떤 역량을 발휘해 생존할지 주목된다.
[시대&VIEW]이란 '쿠란 정치'…사우디 조문단엔 '불신자' 비유
지난 7월 4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초대형 복합 종교·정치 시설인 '테헤란 이맘 호메이니 모살라(테헤란 그랜드 모살라)'에서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 일가의 장례식이 시작됐다. 미국-이란 전쟁 개전 첫날인 지난 2월 28일 인공지능(AI)을 이용한 미군의 최고지도자 거주지 공습으로 하메네이 본인은 물론 딸, 사위, 며느리, 외손녀 등 일가족이 숨졌다. 장례는 사망 126일 만인 7월 4일부터 9일까지 엿새 일정으로 진행된다.장례 일정을 이란의 국교인 '이슬람 시아파 12이맘파'에서 가장 비통하고 성스러운 날로 치는 '아슈라(시아파가 추앙하는 무함마드의 외손자 이맘 후세인의 순교 추모일)'에서 40일 뒤인 '아르바인(거룩한 추모 기간)'에 맞춘 점도 눈에 띈다. 이번 장례식을 정치와 종교가 결합된 이란 신정 체제의 반영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4일 행사가 열린 테헤란 그랜드 모살라는 축구장(7140㎡) 30개 크기인 22만3500㎡의 초대형 시설이다. 이날 행사에는 1200만~2000만 명(이란 당국 추산)의 국내 조문객과 70여 개 국가에서 온 외국 사절이 참석했다. BBC방송은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는 조문 사절을 보내지도, 초청받지도 못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은 주이란 대사를 보내 조문하려 했지만, 이란은 대사급은 받지 않겠다고 사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타르 도하 기반의 알자지라 방송 등에 따르면 장례식을 주관한 이란 당국은 70여 개 국가에서 온 외국 조문객이 하메네이 가족의 관 앞에서 조문할 때 이슬람 경전인 쿠란 낭송을 내보냈다. 흥미로운 것은 국가별로 서로 다른 구절을 낭송했는데, 해당 구절이 국제정치적으로 대단히 상징적이어서 이번 전쟁에서의 협력 또는 대립은 물론 전후 관계 설정에 대한 이란 당국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알자지라와 영국 런던 기반의 중동·북아프리아(MENA) 전문 디지털 미디어 '미들 이스트 아이(MEE)', 94년 전통의 인도 영문일간지 '더 인디아 익스프레스' 등이 낭송된 쿠란 구절을 부분적으로 보도했다. 이를 바탕으로 쿠란 한글 번역에서 구체적인 구절을 찾아 소개하고, 그 맥락과 종교적·국제정치적 의미를 분석해본다.이란과 앙숙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왈리드 알쿠라이 외교부 부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사절단을 테헤란에 보냈다. 알쿠라이 부장관이 하메네이 가족의 관 앞에 조의를 표하자 이란 당국은 쿠란 제3장 알에임란(임란의 가족) 13절 낭송을 내보냈다. "이미 너희를 위해 계시가 있었노라. 두 부대가 전쟁을 하매 한 부대는 알라(유일신인 하느님)의 길에서 싸웠고, 다른 부대는 믿지 아니하였으며 그들의 숫자는 곱절이었도다. 그러나 알라께서는 그분의 뜻에 따라 승리를 거두시니 실로 이것은 눈을 가진 자들을 위한 교훈이라." 이는 서기 624년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가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313명의 무슬림(이슬람교도)을 이끌고 1000명에 이르는 '불신자' 쿠라이시 부족의 중무장 군대와 싸워 이긴 바드르 전투를 다룬 구절이다. 바드르는 사우디의 이슬람 성지인 메디나 인근 지역이다. 쿠란에 따르면 알라는 바드르 전투에 수천 명의 천사를 보내 신자들을 돕고 불신자들을 물리쳤다. 이 구절은 군사적 승리가 무력이 아니라 알라에 대한 믿음과 순종, 진실한 의도에서 온다는 이슬람 신학적 교훈을 강조한다. 사우디 사절단에게 쿠란의 이 부분을 들려준 것은 미국과의 전쟁 기간에 사우디가 사실상 미국 편을 든 데 대한 이란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1세기 국제정치 상황에서 벌어진 미국-이란 전쟁과 중동 국가들의 정치적 판단을 이슬람 초기인 7세기의 종교 전쟁과 비교하면서 사우디를 에둘러 비난한 셈이다.반면 이란과 미국의 중재를 도왔던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 조문단에게는 쿠란 제17장 알이스라(밤의 여행) 제80절을 들려주며 대놓고 찬사를 보냈다. "주여, 저로 하여금 진실의 문으로 들어가게 하여 주소서. 그와 마찬가지로 진실의 출구로 나오게 하여 주시고 당신 가까이에서 승리의 권한을 부여하여 주소서."파키스탄은 정부 수반인 총리 셰바즈 샤리프가 정권 실세인 육군 참모총장 아심 무니르와 함께 조문단으로 참석했다. 이런 파키스탄에 대해 이란이 감사하고 종교적으로 축복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파키스탄과 앙숙이며 이스라엘과 관계강화에 나섰던 인도의 조문 사절에게 이란 당국은 쿠란 제3장 알에임란(임란의 가족) 제174절을 낭송하며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다. "무리가 그들에게 말하길, 많은 군중이 너희에게 대항하여 오나니 그들을 두려워하라. 그러니 그들의 신앙은 더욱 두터워졌으니 그들이 말하더라. 우리는 알라만으로 만족하나니 승리는 그분에게 의탁하는 자에게 있노라."적이 몰려들 때도 신앙을 굳게 지키고 알라를 신뢰해야 한다는 내용이다.힌두 국가 인도의 14억 인구 중 약 2억 명(약 14.2%)이 무슬림인 사정을 감안해 최소한 이란에 등을 돌리지는 말아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도는 28개 주와 8개 연방 직할지의 하나인 동북부 비하르주의 시예드 아타 사스나인 주지사와 영화배우 출신인 파비트라 마르게리타 외교부 부장관 겸 섬유부 차관을 보냈다. 낮은 급의 사절을 보낸 셈이다.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을 사이에 둔 카타르는 단원제 입법 기관이자 최고 자문 기구인 슈라 위원회(Qatar Shura Council)의 하산 빈 압둘라 알가님 의장을 조문 사절단장으로 보냈다. 이란 당국은 이들에게 쿠란 제48장 알파트흐(승리) 제2절을 들려줬다. "그것은 알라께서 지나간 그대의 과오를 용서하고 그대에게 그분의 은혜를 충만케 하며 그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며."이는 알라의 용서를 구하고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관계 상태를 유지하길 바란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카타르에는 중동 최대의 미 공군기지인 알우데이드 기지가 있어 이란은 이번 전쟁 기간에 수시로 미사일과 드론을 날려 보냈다. 하지만 카타르와 이란은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에 있는 세계 최대 해저 가스전인 파르시Ⅰ과 파르시Ⅱ를 공유하고 있어 서로 적대할 수만은 없는 관계다. 이슬람 국가 유일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으로 이번 전쟁 기간 중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모호한 위상을 유지했던 튀르키예에 대해 이란은 싸늘한 입장을 보였다. 튀르키예는 형식상 정부 서열 2위인 제베데트 유르마즈 부통령이 참석했다.튀르키예 사절단에게 이란 당국은 쿠란 제4장 안니사(여성) 제95절을 낭송했다. "아무런 장애도 없이 남아있는 믿는 자와 성전에 출전하여 재산과 생명을 바쳐 성전하는 투사들이 같을 수 없거늘, 알라께서는 재산과 생명을 바쳐 성전하는 이들에게는 남아있는 자들보다 더 큰 은혜를 베푸시며 또한 두 부류에게도 알라의 보상이 약속되었노라. 알라께서는 (뒤에) 남아있는 이들보다 성전에 나선 이들에게 크나큰 은혜를 주시니라." 이는 알라의 길에서 노력하는 자들의 위계질서를 언급하는 내용이다. 즉, 적극적으로 이란 편을 들지 않은 튀르키예에는 앞으로 별다른 보상이 없을 것이라는 뜻을 나타낸 셈이다. 2022년 10월 7일 이스라엘을 공격해 1000여 명을 살해하면서 가자전쟁을 촉발한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도 사절단을 보냈다. 가자지구에서는 외부로 이동이 불가능하므로 이들은 걸프 지역 도시에서 활동하던 대원으로 보인다. 하마스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이라크의 시아파 무장단체와 함께 중동의 대표적인 이란 프록시(대리세력) 중 하나로 꼽힌다.이란 당국은 이들에게 칭찬 메시지가 담긴 쿠란 구절을 낭송했다. 쿠란 제33장 알아흐잡(동맹군) 제23절이다. "믿는 사람 중에는 그들이 알라께 약속한 성약에 충실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 중에는 그들 맹세를 다 하는 자 있으며 아직 기다리는 자들이 있으나 그들은 결코 그들의 결심을 바꾸지 아니 하니라." 이는 알라에 대한 믿음의 약속을 지키고 싸움을 계속하는 자들을 칭찬하는 내용이다.이란과 국경을 맞댄 반미·이슬람주의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은 아미르 칸 무타키 외교부 장관이 먼저 테헤란이 도착했으며, 압둘 가니 바라다르 경제 담당 제1 부총리가 뒤이어 합류했다. 이란 당국은 아프가니스탄 조문단에게 하마스와 동일한 쿠란 구절을 낭송했다.하메네이의 장례식에는 이란과 가까운 비무슬림 국가에서도 조문단을 보냈다. 러시아는 전직 대통령으로 연방안전보장회의(SCRF) 부의장(의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자 여당인 통합러시아당 당수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보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헌법 규정 때문에 3연임을 하지 못하고 실세 총리를 맡고 있던 2008~2012년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중국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14명 중 한 명으로 중국적십자회 회장을 겸하고 있는 허웨이(何维)를 파견했다. 의사 출신인 허 부위원장은 중국공산당 소속이 아니라 중국농공민주당의 주석이다. 이 정당은 공산당과의 통일전선에 참가하고 있는 위성정당이다.이란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캅카스의 기독교 국가 조지아에선 미헤일 카벨라슈빌리 대통령이 참석했다.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조지아는 한때 친서방 노선을 걸었지만 2008년 러시아의 침공으로 주권과 영토를 잠식당했다. 2012년부터는 친러시아 성향의 '조지아의 꿈'이 집권하면서 반서방, 친러, 친이란 행보를 보여왔다. 이란 석유를 수입하고 서방 제재를 피해 이란에 물자를 공급해온 것으로 관측된다.1991년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캅카스의 기독교 국가 아르메니아에선 니콜 파슈니안 총리가 테헤란으로 달려왔다. 아르메니아는 2023년 숙적인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이 이스라엘의 군사적 협력으로 승전하자 친이란으로 노선을 틀었다.중앙아시아 국가 타지키스탄은 에모말리 라흐몬 대통령이 참석했다. 1991년 옛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이슬람국가 타지키스탄은 이란의 국어인 파르시(페르시아어)의 한 종류인 타직어를 공용어로 쓴다. 사실상 같은 언어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단절돼 있는 데다 이번 전쟁 기간에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란은 여러 나라 조문단을 모아놓고 '코란 정치' '장례식 외교'를 벌인 셈이다. 전후 중동을 우리가, 우리 식대로, 우리를 위해 휘두르겠다는 야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는 국내를 단결시키고 외국에는 경고를 보내는 효과가 있어 보인다.하지만 이처럼 이란이 알리 하메네이 일가 장례식에서 조문온 국가들을 하나하나 자의적으로 평가하고 편을 나누는 모습은 중동지역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선, 상대는 악'이라는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인 자세는 평화가 아닌 패권을 추구하겠다는 신호로 볼 수밖에 없다. 국제정치에서 진영논리를 앞세우는 이란의 장례식 외교를 보면 전후 중동 상황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의 평화협상이 마무리되고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료되면 이란이 자칫 패권주의적 태도로 주변국과 호르무즈 해협을 압박하면서 중동 지역 전체를 불안하게 할 우려를 자아낸다. 승자의 입장과 패권주의적인 태도가 동시에 보이기 때문이다.
[시대&VIEW]시진핑은 왜 군사력 강화와 애국교육에 몰두할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대내적으론 '일인지배 강화', 대외적으론 '힘에 의한 패권 추구'를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2013년 국가주석에 취임한 시 주석은 마오쩌둥(毛澤東) 이후 처음으로 2022년 10월 3연임에 성공한 이래 일인통치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인민해방군 최고 지휘부를 대거 물갈이한 데 이어 강군 육성을 천명하고 나섰다. 이는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 이래 중국 정책의 기조이자 경제성장의 도약대가 됐던 실용주의 노선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시 주석의 의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창당 105주년 기념대회 연설이다. 시 주석은 이날 "금세기 중엽까지 우리는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완전하게 건설하고, 두 번째 '100년 분투 목표'를 실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를 해석하면, 군사력을 더욱 길러 2049년까지 미국을 넘어서는 세계 최강의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중국몽', 즉 '팍스 차이나(Pax China: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실현하겠다는 의미다. 대만독립 분열 세력 타격, 외부 세력 간섭 반대, 조국 통일의 추진도 강조했다. 시 주석 발언의 맥락을 해석해보면 숨은 의도가 드러난다. '두 번째 100년 목표'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중국 공산당식 제도와 방법론)를 앞세워 신중국(공산 중국) 성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미국을 넘어서는 사회주의 현대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시 주석이 지난 2017년 제9차 당대회 업무보고에서 제시한 국가발전 방법론이자 목표다. 이번에 '강국'이란 문구를 추가해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두 번째 100년 목표로 제시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시 주석은 "강국이 되려면 반드시 강한 군대가 있어야 한다"며 "군을 세계 일류 군대로 더욱 빠르게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사력 강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힘에 의한 국제질서 주도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방법론으로, 중국몽을 목표로 각각 제시했다. 중국몽은 달리 말하면 미국과의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고 중국식 강대국 외교를 통해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의미다. 이는 1895년 청일전쟁 패전 이래 중국이 상실했던 동아시아 패권국 지위를 회복하는 것은 물론 경제와 군사 분야에서 미국을 누르고 글로벌 초강대국으로 올라서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역사적으로 중국 통일왕조들이 추구했던 중화주의 국제질서를 부활하겠다는 의미다. 시 주석이 추구하는 '초강대국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는 청나라 전성기 때 그려진 만국래조도(萬國來朝圖)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건륭제(1736~1795년) 시절인 1760~1761년 신년하례를 위해 베이징 자금성에 모인 수많은 외국 사절단의 조공 행렬을 묘사한 작품이다. 세계의 중심을 차지한 강대국 청나라에 주변국가들이 선물을 들고 인사하러 오는 모습이다. 중화 중심주의, 강한 군대, 국제질서 주도 등의 개념이 함축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시 주석의 중국 공산당은 대외적으로 중국몽을 추구하면서 대내적으로는 강력한 사상통제를 추진한다. 2024년 1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애국주의 교육법'을 실시하면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상·체제·중화주의 캠페인인 애국교육을 강화했다. 전국의 학교·국가기관·기업·단체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애국 사상 교육을 법제화·의무화해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과 함께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중점적으로 가르친다. 여기에 미화된 중국 역사 교육으로 '중화민족'의 자부심을 고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서구 가치관 유입을 차단하면서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 통치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중화민족의 공동체 의식을 확립하면서 시 주석을 그 구심점에 놓고 있다. 이는 1978년 이래 중국의 경제적 번영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의 실용주의 사상과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덩샤오핑의 사상은 실사구시(實事求是)와 흑묘백묘론(黑苗白描論)·선부론(先富論)·도광양회(韜光養晦)로 요약할 수 있다. 실사구시는 '이념보다 실질을 중시'하는 접근법이고, 흑묘백묘론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실용주의 철학이다. 선부론은 '능력 있는 자가 먼저 부자가 되어라'는 능력주의 경제개념이고, 도광양회는 실력을 감춰 강대국과의 마찰을 피하면서 경제 성장에 집중해 힘을 기르는 외교 책략이다. 1981~1989년 덩샤오핑 이래 장쩌민(江澤民·1993~2002년 집권)과 후진타오(胡錦濤·2002~2013년 집권) 등 중국 지도자는 개혁파로서 보수파를 달래가며 중국 경제성장을 이끌어왔다. 대표적인 것이 덩샤오핑이 주도한 1982년 개헌에서 '공산당은 사회주의, 무산계급독재, 공산당 영도,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의 4원칙을 지킨다'는 내용의 '4항 기본원칙'을 헌법에 반영한 것이다. 공산당 권위에 대항하는 급진적인 개혁 요구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헌법에 넣으면서 중국의 개혁개방은 정치개혁 없는 경제개혁임을 분명히 했다. 헌법에 이러한 내용이 들어간 것은 개혁·개방 과정에서 개혁파와 보수파의 갈등이 있었으며 이를 서로 타협해 문제를 해결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중국은 경제적으로 개혁개방을 해도 정치적으론 공산당 지배의 핵심 요소인 '인민민주주의·일당독재·사회주의'는 변함없이 유지해왔다. 경제는 자유화, 정치·사회통제는 보수라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가 갖는 이중성의 시작이다.하지만 이번 중국공산당 창당 105주년 기념대회를 계기로 시 주석은 보수 일색의 더 큰 변화를 예고했다. 1978년 이후 개혁개방으로 쌓아 올린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내적으론 애국 교육으로 사상 통일과 일인지배를 강화하고 대외적으론 '중화 제국'의 부활을 노리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특히 강군 육성과 대만통일을 앞세우면서 자신이 내세운 중국몽의 본질을 대놓고 드러냈다. 그러면서 인민해방군에 '정치적 군대 건설' 등을 요구하면서 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인 자신의 권위를 강조했다. 군사력 확장과 대만 통일 문제에서 내부 이견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시 주석은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고 중국몽을 최우선에 올려놓으면서 오랜 개혁과 실용주의 궤도에서 벗어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은 대약진운동(1958~1952), 문화대혁명(1966~1976) 등으로 중국의 낙후를 불렀던 마오쩌둥의 이념 중심주의와 권력 지상주의 등 과거사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결국 이념의 시대를 새로운 실용주의의 시대로 전환하면서 중국은 번영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중국이 경제력을 키워 이제 G2 국가로 부상한 것은 이러한 실용주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시 주석은 현대 중국 발전의 역사적 배경을 도외시한 채 그간 실용주의로 축적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패권주의적인 중국몽을 추진하고 있다. 시 주석의 일방주의 노선이 앞으로 어디까지 갈지, 언젠가 실용주의로 돌아올 수는 있을지 주목된다.
[시대&VIEW]미국-이란 106일 전쟁이 주는 7가지 교훈
지난 2월 28일 시작됐던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이 14일(현지 시각)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인공지능(AI) 이용 참수작전으로 시작돼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으로 106일 동안 세계를 뒤흔든 이번 전쟁이 주는 군사적·전략적·외교적 교훈은 무엇일까. 미국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C)·후버연구소·전쟁연구소(ISW) 등 싱크탱크와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알자지라를 비롯한 글로벌 미디어의 분석을 바탕으로 이번 전쟁의 군사적·전략적 교훈을 새겨본다.미국과 이란 양측은 14일 군사작전의 중단과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통항 재개 등 '전쟁을 끝내기 위한 기본 합의'의 타결만 발표했다. '종전을 위한 양해각서(MOU)'의 서명식은 19일에 열기로 했다. 미국 설명에 따르면 MOU에는 이란이 핵무기 영구 포기와 핵 프로그램 해체 및 핵물질 폐기에 동의하고, 미국은 그 이행성과에 맞춰 해외동결자산과 제제를 단계적으로 해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MOU 서명식 뒤 양국은 60일 동안 적대 행위를 중단한 상태에서 영구 종전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본협상을 한다. '2차 외교전쟁'이 남아있지만, 14일의 합의로 일단 총성은 멎었다. 2026년 이란 전쟁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전쟁은 손쉬운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막강한 재래식 군사력을 앞세워 2월 28일 이란을 기습 공격했다. AI를 이용한 표적 감시 시스템을 이용해 개전 첫날 이란 최고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지도부를 표적 살해했다. 하지만 이란은 드론과 미사일,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지정학적 전술로 106일을 버텼다. 결국 미국이 군사적으로 이란을 점령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민주화를 외쳤던 이란 청년들의 바람에 호응하지 못했고, 인권을 억압하는 이란의 신정체제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미국은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최대 규모로 군사력을 전개했지만, 중동 분쟁의 불씨 역할을 해왔던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가자지구의 하마스,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등 이란 대리 세력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미국이 이번 합의로 중동 헤게모니를 이란과 분할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이번 전쟁의 교훈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이테크 의존 전쟁의 한계성이다. 미국은 인공지능(AI)·위성·정찰위성 등을 통해 이란의 군사적·전략적 목표물 1만 개 이상의 위치를 특정해 정밀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이란의 고위 군사·정치 지도자 상당수를 무력화하기도 했지만, 전쟁을 뜻대로 이끌지는 못했다. 하이테크의 전투 목표 달성 능력은 탁월했지만, 전쟁의 압도적인 승리로 이끄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둘째, 참수 공격의 한계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전쟁 초기 AI를 이용한 감시와 목표설정을 통한 정밀타격으로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이란 지도부 제거에 성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경악한 러시아 보안당국은 신호정보 누설을 우려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경호를 위한 CCTV 시스템을 일시 중단하고 보안과 보호 시스템을 재정비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란은 지도부를 잃고도 전쟁을 계속했다. 최고지도자나 시아파 사제단보다 더욱 강경한 반미·반이스라엘 자세의 혁명수비대로 권력이 옮아갔다는 평가도 있다. 참수 작전을 통한 지도부 제거가 체제나 전쟁 의지의 붕괴가 아닌 항전 지도부의 강경화를 부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셋째, 전략적 요충지의 취약성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과거 이란-이라크전(1980~1988)과 이란-미국의 핵갈등(2000년대~2010년대) 당시에도 막히지 않았지만 이번 전쟁에서 이란 측에 의해 최초로 봉쇄돼 유가폭등을 유발하면서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비강대국이 비대칭 전력만으로도 글로벌 에너지 흐름과 해상무역을 효과적으로 방해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항모강습단을 동원한 미 해군도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번 사건은 호르무즈를 포함해 바브엘만데브·말라카 해협, 수에즈·파나마 운하 등 글로벌 해상 운송로의 길목에 위치한 조임목(choke point: 요충지·병목지점)의 지정학적·지경학적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줬다. 넷째, 내부 회복력의 중요성이다. 재래식 전력이 미국보다 한참 떨어지는 이란은 초기에 상당한 군사적 타격을 입었으나, 지리적 이점과 거대한 지하시설, 무기 생산능력, 감시와 처벌 체제 가동을 통한 체제 결속력 강화로 외부의 강력한 군사 압박을 견뎌냈다. 권위주의 통치와 억압체제를 유지하는 이란의 생존력을 보여준 사례다.다섯째, 장기 소모전이 지속될 경우 전쟁 지속을 위해선 보급, 방산능력, 동맹지원의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보여줬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등 무기재고의 신속 소진으로 작전 지속에 어려움을 겪었다. 냉전 이후 서방의 방위산업에선 필요분 납품 뒤 생산라인 중단을 통한 비용절감이 일상화됐다. 그 결과 탄약이나 소모성 무기의 소진에 대한 신속 대응능력이 제한됐다. 미국이 처음엔 개전을 통보하지도 않았던 동맹국에 나중에 참전과 지원을 요청한 이유이기도 하다. 여섯째, 드론·미사일 등 저가 비대칭 전력의 압도적 사용과 그 효과다. 중요한 건 이란의 이러한 드론·미사일 능력이 이란 단독으로 이룬 게 아니라 북한·러시아·중국 등 반미연대 국가들 간의 오랜 기술적·군사적·경제적·정치적 교류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설계·제조 기술과 원료, 표적 설정 노하우 등은 상호 교류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얻은 것으로 평가된다.이번 전쟁에서 항공전력이 턱없이 부족한 이란은 미국·이스라엘의 군사적 압박을 대량생산한 저가의 드론·미사일 등 비대칭 전력의 압도적인 물량 작전으로 대항했다. 그 결과 미국·이스라엘의 경제적·작전적 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방공망도 일부 뚫렸다. 미군 기지가 있는 중동내 친미국가도 표적으로 삼아 미국의 정치적·군사적 부담을 극대화했다. 이란의 저가 드론·미사일을 고가의 정밀 요격미사일로 막아야 했던 미국·이스라엘 및 중동내 친미 국가들은 전투를 벌일수록 재정적·물류적으로 위기에 몰리게 됐다. 일곱째, 강대국 리더십의 문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AI·우주·정보·항공·해군 등 우세한 전력만 믿고 정확한 목표도 설정하지 않고, 개전에 들어갔다.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동맹국이 소외됐다. 나토와 동아시아 동맹국의 협력을 구하지도, 제때 통보하지도 않았다. 깜짝쇼 시도이자 동맹무시다. 이와 더불어 3월 23일부터 "이란과 곧 종전 합의"를 최소 37차례 반복하며 미국민은 물론 전 세계를 혼란스럽게 했던 '트럼프식 미디어 쇼'의 한계도 드러났다. 미국-이란 전쟁의 교훈은 전 세계의 모든 외교·국방 문제에 활용할 수 있는 가르침을 준다. 가장 핵심은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전력이 우월해도 무력을 앞세워 다른 나라에 외부의 의지를 강제할 수는 없다. 특히 이번 전쟁은 재래식 군사력이 아무리 압도적인 상대가 공격해와도 21세기의 '로우테크 공개 기술'을 잘 활용하면 버틸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2026년 중동에서 벌어진 이 전쟁이 전 세계에 주는 교훈이다.
[시대&VIEW] 호르무즈, '에너지 인질극' 현장이 된 까닭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12일 처음으로 낸 메시지에서 호즈무즈 해협의 봉쇄 지속을 천명하면서 전 세계가 비상에 걸렸다. 지정학적 요충지로 글로벌 에너지 병목인 호르무즈 해협이 장기간 막히면 세계 경제가 동맥경화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 국영방송 진행자가 대독한 메시지에서 그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레버리지는 반드시 계속 사용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적이 취약한 다른 전선들도 개척했으며 판단에 따라 이를 활성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르무즈의 군사·경제적 가치와 봉쇄의 안팎, 그리고 미래 전망을 살펴본다. 우회 파이프라인은 있지만… 호르무즈 해협은 동서 167㎞, 남북 39~96㎞의 좁은 수로로 북쪽의 이란과 남쪽의 오만·아랍에미리트(UAE)로 둘러싸였다. 전 세계 에너지의 약 20%가 수송되며, 특히 한국·일본·중국·인도 등 아시아 경제 대국으로선 수입하는 원유·천연가스의 절반 가까이가 지나는 혈맥이다. 전 세계 매장확인 원유의 ⅓과 가스의 ⅔가 묻힌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에서 에너지가 외부로 수송되는 유일한 해상 통로다. 하지만 '위에 정책이 있다면 아래엔 대책이 있다'는 속담처럼 호르무즈가 막혀도 어느 정도 틈새는 있다. 바로 우회 파이프라인이다. 사실 중동 주요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오래 전부터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에 대비해 막대한 경비를 들여 우회 인프라를 준비해뒀다. 사우디는 석유와 천연가스 대부분을 페르시아만 연안에서 생산한다.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에 대비한 우회로를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우디 유전지대 대부분은 이란에서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200㎞ 정도 떨어진 지역에 몰려있다. 산유국인 바레인과 세계적인 천연가스 생산국인 카타르와도 가깝다. 이곳에서 해상을 통해 에너지를 해외에 내보내려면 호르무즈 해협을 거칠 수밖에 없다. 이 리스크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우디는 자금을 아끼지 않았다. 동부 페르시아만 연안의 아브카이크 유전지대와 서부 홍해연안의 얀부 항구를 잇는 길이 1201㎞, 직경 1.20m의 '동서 원유 파이프라인'을 2차로로 건설했다. 수송능력 하루 500만 배럴로 1982년 1차 가동을 시작해 물량을 점차 늘려왔다. 이번 전쟁이 시작된 직후인 지난 3월 11일 하루 700만 배럴의 완전 가동에 들어갔다. 사우디는 이웃 작은 섬나라인 산유국 바레인과도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해 서로 협력하고 있다. 페르시아만 연안에서 원유와 가스를 생산하는 UAE도 2008년 우회 파이프라인 건설에 들어가 2012년 완성해 가동 중이다. 수도 아부다비 인근 합샨 유전에서 호르무즈 해협 동쪽의 오만만 연안항구 푸자이라를 잇는 '합샨-푸자이라 파이프라인'이 그것이다. 수송능력이 하루 150만 배럴이다. 이와는 별도로 푸자이라 터미널은 4200만 배럴의 원유 저장능력을 자랑한다. 지정학적 병목인 호르무즈 해협에 무슨 일이 생겨도 석유 수출은 어떻게든 할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이다. 얼마 전 UAE가 한국과 공급에 합의한 600만 배럴의 원유는 푸자이라에서 선적될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 봉쇄는 이란의 '벼랑끝 전술' 특이한 점은 이란이 그동안 전쟁과 경제제재를 겪을 때마다 봉쇄를 위협했지만 실행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이다. 1980~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양국은 서로 상대방 유조선의 운항과 석유 수출을 방해하는 '탱커 전쟁'을 벌이며 으르렁거렸음에도 해협을 틀어막지는 않았다. 서로 손해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란은 2012년 5월 서방 국가들이 핵개발 중단을 압박하며 석유수출을 제한했을 때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기 때인 2018년 7월 '이란산 원유수출 제로' 정책을 압박했을 당시 봉쇄를 위협했지만, 해협을 지나는 몇몇 선박을 나포했을 뿐 봉쇄에 이르진 않았다. 이랬던 이란이 이번에 봉쇄에 나선 것은 벼랑 끝 전술을 시도하지 않으면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수 있다. 산업생산 여력이 많지 않고, 국제적으로 일부 대리세력 외에는 동맹이 거의 없는 자력갱생·고립무원의 이란으로선 더 물러서거나 훗날을 기약할 여유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덩치 큰 미국 군함 힘쓰기 쉽지 않은 좁고 얕은 바다그렇다면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장담대로 군사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항행의 자유'를 실현하는 방법은 없을까. 문제는 이 바다의 특성이다.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의 로버트 스트라우스 국제 안보·법률 연구소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의 수심은 통상 60~100m이다. 이란에 가까운 해협 북쪽은 더욱 얕아 25m에 불과한 해역도 있다. 반면 오만과 UAE 쪽에는 깊이가 200m에 이르는 곳도 있다. 이는 페르시아만의 평균 수심인 50m보다 깊다. 이 정도라면 대형유조선도 충분히 지나갈 수 있다. 문제는 군함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작전가능 여부다. 가장 문제는 잠수함이다. 미 해군 공격용 잠수함은 전체가 핵추진 대형함이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급은 6082~6935t, 시울프급이 8600~9238t, 버지니아급은 7900~1만200t에 이를 정도다. 좁고 얕은 호르무즈 해협에선 잠수함의 장점인 은밀성·생존성·지속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77척에 이르는 미 해군 구축함은 대함미사일 방어를 위한 이지스 전투시스템과 근접방어무기체계(CIWS) 등 정밀한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74척의 알레이버크급의 만재배수량은 8300~9700t. 4척이 있는 줌왈트급은 1만5656t에 이를 정도로 대형이다. 해협에 가까운 육지에서 날아오는 저가의 드론은 물론 다연장 로켓이나 포탄에도 취약할 수 있다. 이란 해군이 보유한 수중배수량 3000~4000t의 러시아제 킬로급 잠수함도 작전이 용이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최대 잠수심도 300m에 작전심도가 240~250m라 호르무즈에선 작전이 어렵다. 얕게 잠수하면 잠수함 수색과 대잠전을 수행하는 해상초계기와 대잠헬기에 의해 발각돼 무력화되기 십상이다.미군은 이란이 해협에 설치한 기뢰를 제거해 항로를 열어주는 소해함(기뢰제거함)도 충분하다고 하기 어렵다. 1312t의 어벤저급 소해정 4척이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런 이유로 동맹국에 기뢰제거 함선 파병을 요구할 가능성이다. 이런 '수익자 부담' 요청이 있을 경우 호르무즈 해협에 에너지를 의존하는 한국·일본·인도로선 거절할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다. '취약한 다른 전선'은 바브엘만데브 해협? 홍해? 수에즈?모즈타바의 메시지에서 눈길이 가는 또 다른 대목이 "적이 취약한 다른 전선도 개척했다"는 내용이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이 '전선'의 하나가 아라비아 반도 서부 아덴만에서 홍해로 이어지는 폭 26㎞의 좁은 수로인 바브엘만데브 해협로 볼 수 있다. 이곳에서 홍해를 지나면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수로인 수에즈 운하로 이어진다. 바브엘만데브 해협과 수에즈 운하는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의 제조업 국가의 상품이 유럽·북아프리카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이다. 이란 타격에 급급한 미국이 인근 해역에서 작전 중인 한국의 청해부대 등을 수출로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의 물류 보호 작전에 동참하도록 요청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으로서는 힘든 상황이 될 것이다. 미군, AI·드론 동원한 테크노전 펼칠 수도주목되는 것은 미 해군이 2021년 9월 바레인에서 창설한 태스크포스59(TF59)다. 공교롭게도 현재 미군에서 이란 공격을 주도하는 브래드 쿠퍼 중부사령관(해군 4성 제독)이 바레인을 본부로 삼고 있는 제5함대사령관으로 재임 중일 때 만든 미래전·기술전 주도 조직이다. 미군에서 발행하는 '해군뉴스'에 따르면 TF59의 창설 목적은 드론·무인수상정 등 무인 시스템과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합해 해상 감시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미 해군 제5함대는 호르무즈해협과 이 해협의 서쪽인 아라비아만(페르시아만), 동쪽인 오만만과 인도양 일부, 후티 반군이 남쪽 입구를 위협하는 홍해와 수에즈 운하 등을 관할한다. 이에 따라 중동의 특수한 환경 아래에서 미래 해상작전 방식을 혁신하는 임무를 맡아왔다. TF59는 무인시스템을 서로 촘촘하게 연결해 공중·해상·지상의 다영역 작전구간에서 이미지 등 작전 데이터를 고속으로 주고받게 해주는 메쉬 네트워크(Mesh Network)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대가 이란이 북쪽 해안을 장악하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과 이란의 대리세력인 후티 반군이 위협하는 바브엘만데브 해협 봉쇄에 맞설 대비를 상당히 갖췄을 것으로 추정되는 근거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그 자체만으로는 전쟁 전체의 방향을 되돌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사태를 더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여야 아무리 우회 파이프라인이 있어도 호르무즈 해협이 장기간 막히면 아시아 국가는 물론 전 세계 경제에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는 기후조건이 좋지 않을 때 비교적 오염이 적은 천연가스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번 전쟁에 자칫 인류 미래가 걸린 기후협약의 이행까지 정면으로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도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결국 협상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여라'란 속담이 지금처럼 절실할 때도 없다.
[시대&VIEW] '나라없는' 쿠르드족, 토사구팽 비극 이번엔…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나라없는 민족' 쿠르드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면서 시작된 중동 전쟁이 미사일·드론전과 방공 무기체계의 요격전을 넘어 쿠르드족을 내세운 대리 지상전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면서다. 쿠르드족 참전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5일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쿠르드족의 이란 공격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하면서 가시화했다. 미 지상군 투입에 정치적·군사적 부담을 느낀 트럼프가 대리전에 동원하려는 쿠르드족은 과연 어떤 집단이고, 이들의 투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본다. 인구 4000만 쿠르드족, 독자국가 못 가진 4대 민족쿠르드족은 중동의 튀르키예 동부와 이란·이라크·시리아 일부 지역을 근거지로 삼고, 유럽·미국 등에도 흩어져 사는 전체 인구 3640~4560만 명 규모의 민족이다. 프랑스에 있는 '파리 쿠르드 연구재단'에 따르면 이 민족은 튀르키예에 1500만~2000만(인구의 19~25%), 이란에 1000만~1200만(13~17.5%), 이라크에 800만~850만(25~27%), 시리아에 300만~360만(12~12.5%)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확한 인구 규모에 대한 입장은 쿠르드족 거주국가별로 각각 다르다. 쿠르드족은 역사상 한 차례도 독자국가를 가진 적이 없는 민족이다. 인도·스리랑카·말레이시아 등에 거주하는 인구 7800만의 타밀족, 파키스탄에 사는 인구 4000만 명의 신드,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 3500만 명과 더불어 거대집단이면서도 독자 국가를 갖지 못한 4대 민족의 하나다. 사실 '민족국가' 개념은 유럽에서 근대 이후 비로소 나타나 19세기에 이탈리아와 독일의 통일로 이어졌다. 쿠르드족 독립 문제가 복잡한 역사와 국제관계 속에서 숙의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십자군 물리친 살라딘과 이란 시위 촉발 아미니가 쿠르드족 쿠르드족은 유럽인·이란인·북부인도인 같은 인도유럽계다. 셈계인 아랍인과는 계통이 다르다. 언어는 아랍어와는 사뭇 다르고, 파르시(페르시아어)와는 일부 문법과 어휘가 비슷한 고유의 쿠르드어를 사용한다. 쿠르드어는 크게 튀르키예·시리아·북이라크 등에서 쓰는 쿠르만지와 이라크 동북부 자치지역과 이란 일부에서 사용하는 소라니, 이란 서부 케르만샤 지역과 일람 등의 페흘레와니의 3가지 사투리가 있는데 별도로 교육받지 않으면 서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한다.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 다른 국가로 나뉘어 살면서 통일성·단일성을 갖추지 못한 셈이다. 문자도 쿠르만지는 라틴문자를, 소라니는 아랍문자를, 페흘레와니는 이란에서 쓰는 변형 아랍문자를 각각 사용한다. 옛 소련권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은 키릴 문자를 쓴다. 종교는 무슬림이 대부분이지만 일부 다른 종교도 있다. 이란 쿠르드족의 대다수는 이 나라의 공식 종교인 12이맘파 시아 이슬람을 따른다. 역사적으로 보면 12세기 십자군과 맞서 싸워 예루살렘을 차지했던 아이유브 왕조의 초대군주 살라딘(살라흐 앗딘 유스프)이 쿠르드족이다. 지난 2022년 9월 이란에서 히잡 미착용을 이유로 도덕 경찰에 끌려갔다가 의문사하면서 '여성·삶·자유'를 요구하는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마흐사 아미니도 쿠르드족이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에 표적 암살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부친이 아제르바이잔족, 모친이 쿠르드족이다. 같은 쿠르드족이라도 지역 따라 독립 온도 각각 문제는 쿠르드족이 튀르키예·이란·이라크·시리아에 나뉘어 살면서 독자 국가 설립에 대한 생각이 잡단별로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이란의 쿠르드족은 이란과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함께한 데다 1979년 이슬람혁명과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 민족운동을 탄압하면서 조직적인 활동이 위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미국이 지상전에 동원하려는 쿠르드족은 '이란 쿠르디스탄 자유당(PAK)' 등 이란신정 체제에 대항하다 박해을 받고 이웃 이라크 등으로 이주한 뒤 미국과 이스라엘 등의 지원을 받으며 세력을 유지해온 무장집단으로 알려졌다. 2011년 이후 오랫동안 내전을 벌인 시리아의 쿠르드족은 북부와 서북부 국경 지역을 장악하고 고도의 자치를 누리고 있다. 민주적이고 남녀 평등적이며 친환경적인 세속주의 신사회를 추구하는 '로하야 운동'을 벌이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새 정권이 들어섰지만 복잡한 국내외 정세 때문에 쿠르드 지역의 분리는 아직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튀르키에의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시리아와 이라크의 쿠르드족이 서로 합칠 경우 중동 지역에서 세력균형이 깨지고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장시간에 걸친 대화와 협상, 조정과 담판이 절실한 숙의의 시간을 맞고 있는 셈이다.튀르키예의 쿠르드족은 오랫동안 독자적인 길을 요구하며 저항을 해왔다. 하지만 강경파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오랜 토벌로 저항의 구심점이던 쿠르드노동자당(PKK)이 항복하고 무기반납까지 진행 중인 상황이다. 쿠르드족, 지난 100년간 강대국에게 8차례 배신 당해문제는 '나라 없는 민족' 쿠르드족이 지난 100년간 강대국으로부터 8차레나 '배신'을 당해왔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번 미국 대리 지상전 참전의 귀추가 가주목된다. 쿠르드족이 미국과 영국 등 강대국을 돕거나 믿다가 독립이나 고도자치 등 보상이 아니라 외려 뒤통수를 맞은 악연의 역사를 정리한다. 가장 최근 사건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1기 행정부 때인 2019년 10월에 벌어졌다. 앞서 쿠르드족은 2014년부터 미국에 협력해 중동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를 물리치는 데 앞장섰다. 당시 희생자만 1만1000명에 이르렀을 정도로 앞장서서 싸우면서 미국과 혈맹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맹국인 튀르키예는 시리아와 자국의 쿠르드족이 서로 손잡고 독립국가를 세울까 우려해 공격을 준비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시리아 동북부 주둔 미군의 철수를 명령했다. 미군이 떠나자 그동안 미국에 협력해왔던 시리아 쿠르드족은 보호막을 잃고 튀르키예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트럼프의 '배신'은 협력자 쿠르드족에 대한 살육전을 불렀다. 미국이 이라크·시리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현지 쿠르드족을 이용했다가 상황이 바뀌자 시리아에서 철군해 튀르키예에 공격로를 열어주고 탄압·공격·학살을 방치한 셈이다. 1차대전 직후부터 독립 약속 줄기차게 '취소' 돌이켜보면 강대국의 첫 쿠르드족 배신은 1920년대에 벌어졌다. 16세기 이래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쿠르드족은 19세기 후반 민족주의가 확산하면서 독립을 꿈꿨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편을 들었던 오스만 제국이 패전국이 됐고, 1920년 8월 20일 승전국과 맺은 세브르 조약으로 상당수 영토를 포기하면서 쿠르드족은 꿈에 부풀었다. 쿠르드족이 많이 사는 메소포타미아(오늘날 이라크)는 영국이, 시리아는 프랑스가 각각 차지했지만 지금의 튀르키예 동부에 해당하는 아나톨리아 반도 동남부는 쿠르디스탄 건국을 위한 땅으로 남겨졌다.하지만 오스만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수립한 케말 파샤의 터키 군부는 영국·미국 등 승전국과 재협상해 세브르 조약을 1922년 로잔 조약으로 바꾸고 아나톨리아 동부를 다시 차지했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1919년 파리 강화회담에서 내세운 '민족자결주의'는 쿠르드족에겐 작동하지 않았다. 이라크의 후세인, 이란의 팔라비, 미국의 키신저까지 '배반' 행렬에다음 배신은 이라크에서 벌어졌다. 1932년 영국이 세운 이라크 왕국은 1958년 군사 쿠데타로 무너지고 압둘카림 카심 장군이 총리 겸 국방부 장관을 맡아 서방에 맞서며 철권통치를 했다. 미국은 쿠르드족에게 무기를 지원해 반서방 성향의 중앙정부과 싸우게 했다. 하지만 1963년 미국 지원을 받은 바트주의(아랍민주주의에 일당제 독재를 혼합한 사상) 세력이 또 다른 쿠데타를 일으켜 카심을 제거하자 쿠르드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이라크의 새 군부정권은 미국이 보내준 네이팜탄 등으로 반발하는 쿠르드족을 공격했다. 쿠르드족은 도덕·신뢰·약속존중 대신 이익만 앞세운 미국 외교에 두 번째로 배신을 당했다. 세 번째는 1970년대 헨리 키신저와 이란 군주 팔라비에 의해 발생했다. 미국은 당시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 군사정권이 친소련 성향으로 돌아서자 이라크 쿠르드족을 다시 무장시켜 중앙정부에 맞서게 했다.이를 위해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당시 친미 국가였던 이란을 통해 국경 너머 이라크 쿠르드족에게 무기를 공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란은 이라크 쿠르드족이 중앙정부를 누르고 독립을 추진하면 자국의 쿠르드족도 동요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당시 이란의 샤(군주)였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는 오히려 쿠르드족에게 무기 공급을 중단하는 협정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맺었다. 미국은 이를 수수방관했다. 후세인은 그 직후 북부 쿠르드족 거주지를 공격해 수천 명을 살해했다. 미국은 동맹이자 대리자였던 쿠르드족의 절규에 귀를 막았다. 키신저는 의회에서 관련 질의를 받자 "은밀한 (공작) 활동을 (도덕을 앞세운) 선교 활동과 혼동해선 안 된다"라고 잘라 말했다. 후세인의 쿠르드 화학무기 공격에 침묵한 레이건네 번째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터졌다. 이란-이라크 전쟁(1980년 9월~1988년 8월)이 한창이던 1988년 3월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은 이란 국경 근처 쿠르드 마을인 할라브자에 신경가스를 살포했다. 쿠르드족 3200~5000명이 숨지고 7000~1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레이건 행정부는 국제사회가 금지한 화학무기로 쿠르드족을 대상으로 인종학살을 저지른 이라크를 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무기를 대주며 지원했다. 후세인은 미국의 적인 이란의 최고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세인은 적의 적인 셈이다. 이란에는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호메이니의 반미정권이 들어서 있었다. 다섯 번째는 1990~91년 걸프전 당시 벌어졌다.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점령하자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이라크를 공습했다. 당시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 군대와 국민이 스스로 나서서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슬람 수니파 중심의 후세인 정권에 맞서온 남부 시아파와 북부 쿠르드족이 이에 호응해 봉기했다. 하지만 정작 이라크군이 진압에 나서자 미국은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았다. 쿠르드족과 이라크 시아파는 후세인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강대국 힘을 빌려 독립 추구한 쿠르드족의 비극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는 여섯 번째 배신의 주인공이 됐다. 1990년대 클린턴은 나토 동맹국 튀르키예에 무기를 지원했다. 튀르키예는 이 무기로 무장한 군대를 동부 쿠르드족 거주지역에 보내 수만 명의 쿠르드족을 살해하고 수천 개의 마을을 불태웠다. 클린턴은 이를 보고만 있었다. 일곱 번째 사건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인 2007년 12월 발생했다. 미국이 2003년 3월 이라크전을 개전하자 이라크 쿠르드족 민병대인 페슈메르가(죽음에 맞서는 사람이라는 뜻)는 미국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미국이 승전하고 후세인이 몰락하자 쿠르드족은 독립의 꿈에 부풀었다. 그러자 이웃 튀르키예는 2007년 12월 국경을 넘어 이라크 쿠르드 지역을 폭격한 데 이어 지상군까지 파병했다. 당시 이라크를 점령 중이던 미국은 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의 이라크 쿠르드족 폭격과 지상군 투입을 방관했다. 이처럼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지난 100년간 '일관성 있게' 쿠르드족을 배신해왔다. 독립을 얻기 위해 강대국의 힘을 빌리려 했던 쿠르드족의 비극이다. 이번 지상전 참전이 어떤 일로 이어질지 국제사회는 지켜보고 있다.
[시대&VIEW]'창과 방패' 미사일 요격전쟁, 중동을 달구다
탄도미사일과 이를 저지하는 요격미사일이 벌이는 '창과 방패'의 대결이 중동 지역을 달구고 있다.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 이후 이란이 석유·천연가스 생산시설로 가득한 주변 국가에 무차별 미사일·드론 공격을 이어가면서다. 걸프국가들, 이틀간 이란 미사일 400발과 드론 1000기 90% 이상 요격 이란은 지난달 28일과 이달 1일의 이틀 동안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요르단을 향해 약 400발의 미사일과 약 1000기의 드론을 발사했다. UAE의 경우 날아온 순항미사일은 8기가 모두 요격됐고, 탄도미사일은 174발 가운데 161발이 요격됐다. 드론은 689기 중 645기가 차단됐다. 요격률이 탄도미사일은 92%, 드론은 93%에 이른다. 요격되지 않은 미사일은 그대로 지상에 떨어졌다. UAE의 두바이에서 이란 미사일이 호텔 등 민간시설을 타격되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잡혀 방송에 나오면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요격률이 90%대란 말은 지상에 떨어져 피해를 준 것보다 이란이 실제 발사한 미사일과 드론의 수량이 거의 10배나 많았음을 의미한다. 촘촘하게 구성한 요격 시스템으로 이를 92~93%를 저지하면서 그나마 피해를 이 정도로 줄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고도의 정밀한 전자 시스템으로 공격해오는 미사일을 신속하게 포착하고 정확하게 맞춰 떨어뜨리는 요격 미사일 장비와 전술이 왜 필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사우디, 친이란 후티반군 미사일 공격에 2015년부터 '창과 방패' 익숙사실 중동국가들은 이러한 '창과 방패'의 대결에 오랫동안 익숙해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2014년 예멘 내전에 개입하자 후티 반군이 2015년 6월부터 두 나라를 향해 이란산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탄도미사일을 발사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2017년 11월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킹 할리드 국제공항을 향해 날아오던 미사일이 인근 상공에서 사우디 방공군에 요격되면서 실상이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요격된 미사일 파편이 공항 주차장에 떨어진 것을 BBC방송이 전 세계에 보도하면서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이 그 전에도 있었지만 사우디 심장부의 민간공항까지 날아온 것은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방 정보당국은 이 미사일이 후티 반군이 이란에서 완제품으로 들여오거나 부품을 받아 조립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란은 오랜 시간 북한과 협력해 미사일 성능을 개량해왔다. 노동 1호 등 북한 미사일을 들여오기도 했다. 여러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사우디는 미국산 패트리엇 미사일을 동원해 2015년 1월부터 2017년 4월까지 후티 반군이 쏜 미사일 100개 이상에 대해 요격을 시도해 90개 넘게 요격했다. 이 과정에서 사우디는 미사일 요격과 관련한 실전 능력을 크게 키웠을 것으로 평가된다. 그 실력이 이번 이란 미사일 발사와 요격 과정에서 발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란식 저가 드론 다량 발사 위협적…대비 전술·장비·훈련 절실 이란도 전술을 개량해왔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란은 고가의 탄도미사일과 다량의 저가 드론을 섞어 발사하는 공격 전술로 걸프 국가들의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흔들려고 시도하고 있다. 값비싼 무기체계인 요격미사일을 저가 드론 격추에 낭비하도록 유도해 소진시킨 뒤 파괴력이 뛰어난 미사일을 걸프 국가를 향해 발사하면 사우디나 UAE로선 속수무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그야말로 '가성비 공격'을 할 수 있게 된다. 기술과 장비의 부족을 전술로 벌충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전술 때문에 중동에서 미사일 창과 방패 전쟁은 물량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탄도 미사일과 요격 미사일의 재고가 떨어지는 순간 서로의 전쟁 능력을 바닥을 보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미사일 전쟁은 무기체계 획득을 둘러싼 경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사우디, 150억 달러 들여 사드도 구입…러시아산으로 구매 다각화 시도도과거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미사일과 요격미사일의 대결이 갈수록 격화하자 사우디는 필사적인 모습을 보였다. 석유 생산·선적 시설 등 지켜야 할 자산이 많은 사우디는 방공무기 확보 다각화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왔다. 일찌감치 요격 미사일 확보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사우디는 당시 150억 달러를 들여 미국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도입했다. 미 의회의 승인을 얻기도 쉽지 않았다. 패트리엇이 공항이나 군 기지 등 시설 방어용으로 적합하다면, 사드는 작전 반경이 200㎞, 요격 고도가 150㎞에 각각 이르기 때문에 작전 지역 전체를 방어할 수 있다. 충격적인 사실은 중동의 대표적인 친미국가인 사우디의 살만 국왕이 2017년에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대동하고 모스크바로 날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는 사실이다. 구매금액 20억~40억 달러 상당의 러시아산 최신 S-400 방공미사일 구매를 타진하기 위해서였다. 친미 일변도의 외교 정책의 방향을 일시 바꿔 러시아에도 접근했다는 사실은 사우디가 미사일 방어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를 알 수 있다. 사우디는 인권 문제 등을 들어 미 의회가 신속하게 미사일 구매를 승인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구입선 다각화가 필요했다. 요격 미사일의 중요성을 웅변하는 일화다. 미국산 사드와 패트리엇, 천궁-Ⅱ 등으로 다양하게 요격망 형성이런 상황에서 UAE는 미국산 사드와 패트리엇, 이스라엘산 바락-8, 러시아산 판치르-S1, UAE 자체생산 스카이나이트와 함께 한국산 천궁-Ⅱ 등 다양한 종류로 탄도미사일 요격망을 구성했다. 천궁-Ⅱ는 이번에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됐다. 최고 마하 5의 속도로 날아 고도 약 15~20㎞로 날아오는 적의 탄도미사일에 '직접 충돌(hit-to-kill)'하는 방식으로 요격한다. 카타르는 패트리엇 11개 포대를 갖추고 있으며 미국과 노르웨이의 합작 무기체계인 NASAMS2도 보유 중이다. 미국에 사드를 주문하고 도착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독일과 프랑스 합작인 롤란드 방공 미사일도 9개 포대를 운영하고 있다. 바레인은 패트리엇 1개 포대와 호크 대공 마사일 8개 포대를 운용한다. 미국과 스웨덴산, 프랑스산 등 다양한 대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준비되고 훈련된 상황이기에 이란의 탄도미사일 공격에 그나마 대응할 수 있었던 셈이다. 미국의 댄 케인 합참의장은 2일 기자회견에서 "카타르·UAE·쿠웨이트·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의 방공 포대들도 전투에 참전했으며 몇 년간의 훈련과 신뢰, 어렵게 얻은 통합성이 빛을 발했다"고 말한 배경이다.
[시대&VIEW] AI 참수작전…기계가 지휘하는 전쟁 시대가 온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달 28일부터 이란의 군사 목표물을 공습하고 있는 '장대한 분노 작전(Operation Epic Fury)'은 현대 전쟁기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가 신뢰가 걸린 외교 협상을 맥거핀(무의미한 대상을 중요하게 보이게 하는 장치나 소재)으로 쓰는 기만전이나 해킹·크래킹으로 상대의 인터넷·통신을 마비시키는 사이버전은 이미 고전이 됐다고 할 정도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공격 첫날에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와 가족, 그리고 참모의 위치를 잡아내 폭격으로 제거하는 참수작전을 벌였다. 전자전 항공기와 미끼 비행 등을 앞세운 SEAD(적 방공망 제압)로 지역 제공권을 장악한 다음이었다. 미군 중부사령부, '특별한 능력을 갖춘 시스템' 운용 밝혀 이란도 자국산과 러시아·중국에서 들여온 방공망이 있고, 하메네이도 극비회의를 열었을 텐데 미국과 이스라엘은 어떻게 시간과 장소를 파악해 정밀 타격으로 이런 전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 물론 정보와 위성감시 등 다양한 요인이 있었을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정보가 하메네이 제거작전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2일 보도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이란의 최고지도자가 이렇게 쉽게 목숨을 잃을 수 있었을까. 도대체 어떻게 정보를 수집하고 신속하게 공격을 했는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힌트가 하나 있다. 중동지역을 담당하는 미군 중부사령부(CENTCOM)가 2일 이번 작전에 '특별한 능력을 갖춘 시스템'을 운용했다고 언급한 것이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스라엘의 가지지구 작전경험과 미국 정보력, 기술력 합작에 무게미국 공영라디오 NPR과 영국 일간지 가디언, 이스라엘 일간지 타임스오브이스라엘, 그리고 미국육군전쟁대학(AWC) 산하 전략연구소(SSI) 등의 기사와 논문 등을 종합하면 해당 시스템은 군사용 인공지능(AI)일 가능성이 크다. AI 기술을 적용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신속하게 정보와 공격을 연결하고 작전을 치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스라엘이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으로 시작된 가자전쟁(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치르면서 실전에서 축적한 'AI 저격 기술'이 중심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AI 기술이야 미국이 가장 진보됐을 수 있지만 전장에서 표적의 감시와 동선추적, 행동 데이터 수집, 그리고 암살이나 저격 작전 같은 실전 경험과 데이터는 이스라엘만큼 많이 축적한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전쟁 기간 동안 하마스와 무장단체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PIJ)' 대원 수만 명을 색출해 표적 폭격·포격 등으로 무력화해왔다. 이 과정에서 기존 AI 프로그램을 빅데이터로 딥러닝을 추가로 시키고 작전 경험도 다량 축적하며 전술을 고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경험과 데이터, 그리고 기술을 서로 공유해 사용하면서 작전의 시너지를 끌어올렸을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 하브소라·라벤더 AI 이용해 무장대원 추적 제거 이스라엘은 가자전쟁에서 무장대원을 추적·저격하면서 주로 2개의 AI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장비 탐색용 '하브소라(Habsora: 히브리어로 복음·Gospel을 의미)'와 사람 탐지용 '라벤더(Lavender)'로 표적 인물의 위치·이동·활동 상황을 감시·추적해왔다. 이스라엘군은 이 AI 프로그램들에 수많은 무장대원의 사진·의무기록·감시자료 등 방대한 데이터를 머신러닝(기계학습)시켜왔다. AI는 이 빅데이터를 활용해 드론 등으로 포착한 인물이 데이터 속 무장대원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해 표적으로 삼을지를 신속하게 판단하게 된다. 무장대원으로 식별되면 AI는 이를 인간인 작전 요원에게 공격 목표물로 추천한다. 예로 무장대원들이 언제 지하터널에서 나와 집으로 쉬러가는지, 어떤 경로로 전투 현장으로 이동하는지 등에 대한 다량의 감시 정보를 수집해 빅데이터를 만든다. 그러면 AI가 축적한 빅데이터를 이용해 목표의 좌표와 최적의 타격 시간을 산출해 작전요원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 뒤 작전부대의 승인이 떨어지면 드론이나 전투기·무장헬기·야포 등이 동원돼 표적을 제거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다목적 드론인 헤론은 건물과 개인을 동시에 감시하고 표적화하며 실제 폭격에도 나서는 등 폭넓게 활용됐다. 하메네이 제거작전, 가자전쟁에서 무장대원 색출하며 기계학습시킨 AI가 실행했나미국과 이스라엘이 벌인 하메네이 제거 작전도 이처럼 기계학습을 시킨 고도 AI를 이용해 벌였을 가능성이 크다. 최고지도자 본인과 비서진·참모진, 그리고 경호원과 운전기사 등의 동선과 행동 특성 데이터를 장기간에 걸쳐 다량으로 축적한 결과 위치를 파악하고 바로 그 시간에 정밀폭격을 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휴민트(인간정보)·시긴트(신호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함께 수집해 빅테이터화한 결과다. 그 결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최고지도자가 안보·정보 관련 핵심인사들을 은밀히 만나는 바로 그 타이밍에 공습을 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군이 AI 프로그램 하브소라와 라벤더로 가자지구에서 무장대원들을 표적암살해온 작전은 군사정보 세계에서 '대량암살공장' 운영으로 불린다고 한다. 이 작전에는 이스라엘군에서 사이버전 등을 전담하는 8200부대가 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8200부대원들은 전역 뒤 이스라엘의 주요 산업인 IT 스타트업 창업과 운영의 주력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제는 AI를 이용한 표적 제거가 폭격이나 포격, 드론 공격 등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표적 주변의 애궂은 민간인이 이른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자전쟁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사망자가 8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은 그 비극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두뇌형 '켄타우로스'에서 근육형 '미노타우로스'로…전쟁에서 인간과 AI의 비중 역전 우려또 다른 문제는 군사작전에서 인간과 AI의 역할 비율이 갈수록 역전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유는 현대전의 특성 때문이다. 현대전에서 지휘관들은 지휘(Command)·통제(Control)·통신(Communication)·컴퓨터(Computer)·정보(Intelligence) 등 5대 요소를 자동화하고 통합한 전술 지휘통제체계인 C4I로 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신속·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문제는 AI의 의사결정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군사용 AI가 초기에는 '켄타우로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간의 머리와 몸통에 말의 다리를 갖춘 괴물)'였다면 현재는 '미노타우로스(황소의 머리와 꼬리에 인간의 몸통을 가진 괴물)'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군용 AI 사용에서 인간이 기계를 지휘한다면 '켄타우로스 전쟁'에 해당하다. 인간의 두뇌와 심장이 의사결정의 핵심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다.하지만 AI가 고차원적인 의사결정을 맡고, 인간은 그 통제와 명령을 받아 물리적·전술적 임무를 중심으로 수행한다면 '미노타우로스 전쟁'에 해당한다. AI가 최적의 타격 좌표와 시간을 결정하고 인간은 전투기나 미사일, 드론의 발사나 조종만 맡는다면 미노타우로스의 전쟁에 해당하는 식이다. 이는 미국 육군과 국방부 지도부를 위한 전략적 연구·분석을 수행하는 미국육군전쟁대학(AWC) 산하 전략연구소(SSI: Strategic Studies Institute)에서 제시하는 미래 유인-무인 협력 전투 수행의 개념이다. 미래전에서 의사결정을 AI가 주도하고 인간은 부수적인 존재로 참여한다면 가뜩이나 비인간적인 모습이 더욱 황폐해질 가능성이 크다. AI 앞세운 '초거대전쟁'-위성·소셜미디어 AI로 분석해 위치 파악일부 AI 연구자들은 인간이 의사결정에 거의 또는 전혀 개입하지 않고 오로지 AI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되는 전쟁을 '하이퍼 워(Hyperwar·초거대전쟁)'라고 부르고 있다. 초거대전쟁은 이미 현실에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군사용 AI는 가자전쟁에서는 물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위성영상정보와 표적의 지리적 정보를 통합해 미사일이나 드론 등으로 정밀 공격하는 전술도 그 중 하나다. 병사들이나 가족·친구의 소셜미디어 콘텐츠나 오신트(OSINT·공개출처정보)를 분석해 부대나 장비의 위치를 파악해 표적으로 삼는 전술도 이젠 일반화됐다. 전장 데이터를 AI에게 분석시켜 드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더욱 효과적으로 개량하기도 한다. 이는 군사용 드론 산업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드론이 현대전에서 역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은 이처럼 AI와 결합해 시너지를 낸 덕분일 수도 있다. 전장에서 수집한 빅데이터는 군사용 로봇, 즉 피지컬 AI 전투 시스템의 개발과 개량에도 똑같이 응용될 수 있다. '클로드' 만든 앤트로픽, AI의 군사적 사용 둘러싼 윤리 논쟁의 중심에 이러한 상황은 AI의 군사적 사용에 대한 윤리 논쟁을 부르고 있다. 생성형 AI인 '클로드'를 출시한 미국 AI 빅테크 '앤트로픽(Anthropic)'이 이 프로그램의 군사적 사용을 두고 미 국방부의 갈등을 빚은 것도 그중 하나다. 앤트로픽은 이란 공습 하루 전인 지난달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명령으로 '모든 정부 기관에서 퇴출'됐다. 사건은 지난 1월초 미군이 당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미국으로 데려오는 작전에서 팔란티어와 함께 앤트로픽의 기술을 사용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불거졌다. 앤트로픽은 클로드를 비롯한 자사 AI 모델에 '안전하고 윤리적이며, 무해하개 행동'하도록 하는 '자연어 기반 규칙 세트(앤트로픽 헌법)'를 학습시켜왔다. 미 국방부는 항의하는 앤트로픽에 오히려 AI의 군사적 활용을 전면 개방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자기 규범이 확실한 앤트로픽은 이를 거부하면서 결국 퇴출됐다. 이 사건은 AI의 군사적 사용을 둘러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바야흐로 AI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시대&VIEW] 러-우 전쟁 4년, 인류 전쟁방식 뒤집었다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24일로 4년을 맞았다. 전쟁은 참혹하다. 양쪽 군대를 합쳐 200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민간인 피해도 상당하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미국이 종전을 협상 중이지만 가까운 시일 안에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 전쟁은 기존의 국제관계와 안보개념, 그리고 전쟁 양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우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이웃 나라를 침공해 영토 할양과 주권 제한을 요구하면서 국제질서와 안보개념을 뒤흔들었다. 여기에 더해 첨단 디지털 기술을 앞세운 새로운 무기체계의 도입 때문에 전쟁 양상이 급변하고 있다. 전쟁 양상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이번 전쟁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찾아본다. #보이지 않는 첨단 디지털 기술이 전장 이끌었다BBC 등에 따르면 전쟁 초기에는 우크라이나가 물량과 전술에서 앞선 러시아 기갑부대를 서방이 제공한 재블린 등 대전차미사일의 정밀타격과 드론 공격으로 물리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때문에 전쟁 초기에는 견착 미사일과 드론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수면 아래에선 다양한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디지털 군사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인공위성·통신감청, 그리고 디지털 위치추적 등으로 인적·신호·광학 정보를 수집해 적의 위치·행동패턴·무장·방호 등을 파악하는 일은 일상이 됐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은 영국과 미국 등이 수천㎞ 떨어진 거리에서 디지털 도감청으로 러시아군의 위치와 이동, 그리고 피해 규모를 파악해 우크라이나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더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전장에서 러시아군을 무력화할 최적 방안을 판단·선택·결정한 뒤 드론·로봇을 비롯한 무인무기체계를 지휘해 작전을 펼치는 미래전투시스템의 본격적인 도입도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독일 방산기업인 헬싱은 AI 기반의 자율 무인 스텔스 전투 드론인 CA-1을 개발하고 있다. 지도 데이터를 아예 내장해 GPS 연결이 끊겨도 자율적으로 적을 공격할 수 있다. '로봇 드론' 또는 '피지컬 AI 공중무기'인 셈이다. #드론·스타링크·AI가 탐지–정보공유–타격의 초고속 킬체인 시스템 운용러-우 전쟁이 가져온 현대 전장의 변화를 살펴보자. 미국의 미래전과 리더십 전문가인 존 앤털의 저서 '넥스트 워'에 따르면 변화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선 저가의 드론이 정보수집·감시·정찰을 하는 수준을 넘어 자폭, 폭탄투하 또는 미사일 발사로 적 병력은 물론 값비싼 기갑차량이나 전술 표적을 무력화한다. 지상 통신망이 파괴되거나 마비되더라도 스타링크가 위성 인터넷을 통해 통신을 복구시켜준다. 반대로 적의 스타링크를 차단해 통신과 전장 데이터 전달을 마비시켜 제대로 작전을 펼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AI는 방대한 전장 데이터를 신속하게 분석해 적의 위치와 이동을 예측하고 표적을 자동 식별해 타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지휘부는 이러한 데이터를 한눈으로 보면서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첨단 전장 관리 시스템을 가동해 '탐지–정보공유–타격'으로 이어지는 초고속 킬체인 시스템을 운용한다. 지휘관은 AI의 초고속 연산에 맞춰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해서 전투를 진행한다. #새로운 기술과 무기, 전쟁 방식의 근본적 변화 이끌어이를 통해 드론은 물론 AI와 스타링크, 전장관리시스템 등 첨단기술은 이제 전쟁의 '보조 수단'을 넘어 필수불가결한 '핵심 요소'로 자리 잡게 됐다. 이 때문에 전쟁 방식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방식으로는 변화하는 새로운 전쟁 형태에 대응할 수 없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이는 앤털이 자신의 저서에서 역설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변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전쟁형태에 대응하지 않으면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보를 보장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사실 고도의 기술문명과 경제적 번영, 세계화를 이룬 인류는 문명의 이기를 전쟁에 동원해왔다. 제1차 세계대전은 야포·항공기·잠수함·기관총·지뢰·독가스·전차 같은 과학기술 산물을 전쟁에 본격적으로 동원한 최초의 대전이었다. 이런 전쟁기술의 혁신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기갑전력을 앞세운 전격전과 군인·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폭격, 무제한 잠수함전, 항공모함 전투에 이어 원폭 투하로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전쟁의 역사는 새로운 기술과 무기의 등장이 전쟁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발해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4년은 이러한 근본적 변화를 새롭게 만들어낸 시기였다. 지난 4년간의 변화와 패러다임 전환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첨단기술을 만난 드론의 사례: 유무인 복합 시대로 진화우크라이나 전장에서의 경험이 촉발한 급속한 변화의 사례로 공중발사드론(ALE·Air Launched Effects) 개발의 가속화를 들 수 있다. ALE는 고정익·회전익 항공기에서 신속하게 공중 발사해 군집 형태로 작전을 펼쳐 시너지와 기동성을 극대화하는 무인무기체계다. ALE는 적의 통합방공시스템을 회피하고 작동을 방해하거나 무력화해 뒤따르는 공격·수색 비행체나 장거리 공격 비행체, 대형 드론이 안전하게 적진에 잠입하거나 작전을 펼칠 수 있게 길을 열어준다. 공격·수색을 맡은 유인기나 대형 드론이 착륙지까지 안전하게 접근할 예정 비행경로의 안전을 사전에 확인·확보하도록 돕는다. 아울러 주요 관심지역 상공을 은밀하게 수색·정찰해 사진·동영상을 실시간으로 헬기나 본부에 전송해 작전 효율을 극대화한다. 전투 현장에서 부상자나 조난자를 찾아 구조·의무 헬기에 정보를 공유해 인명을 구한다. 특히 적진에 고립된 조종사의 위치를 확인해 구조병력에 신속한 구출 작전을 지원할 수 있다. 장착 카메라나 전파탐지기로 적 무기체계를 사전 포착해 폭탄 투하 또는 자폭으로 제거하는 공격 기능, 적의 오인 공격을 유발하는 미끼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다. ALE 개발 가속화는 전장에서 유인과 무인 무기체계가 합동작전을 전개하는 '유·무인 연동체계(뭄티·MUMT·Manned Unmanned Teaming)'의 진화로 이어지고 있다. ALE와 MUM-T가 결합하면 시너지를 확보할 수 있다. 적이 발견하기 어려운 초소형 UAV가 은밀하고 민첩한 정찰 임무를 맡고, 보다 크고 견고한 유·무인 전투체계가 목표물 타격과 전자전 작전을 수행하는 등 역할을 분담하면 효율이 극대화한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이 공동 개발 중인 차세대 유럽 미래 항공 전투 시스템(FCAS)은 유인전투기와 군집 무인기, 그리고 이를 서로 연결해줄 정보시스템인 '전투 클라우드'를 통합한 미래형 공중 전투 체계다. #기술발달로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시대 열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기술발달로 전쟁 양상이 급변하면서 크지 않은 나라들도 정보·감시·정찰 센서와 무인기를 장거리 정밀타격무기와 통합해 운용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제 누구도 국력이나 재래식 군사력의 규모, 또는 무기체계의 우위를 앞세워 안전과 안보를 자신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핵을 가진 강대국 러시아가 지난 4년간 우크라이나를 마음대로 하지 못한 이유의 하나다. 디지털 군사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새로운 세계다. 국제사회에서 의지대로 움직이고 국익을 위한 주장을 펼치고 관철시키려면 인력·기술·무기체계·군사교리 전반에서 적을 압도적으로 뛰어넘는 능력을 확보해야 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안보는 의지나 의도가 아니라 실력과 능력으로 확보되기 때문이다. #동맹과 내부단결, 리더십의 중요성또 하나 주목할 점은 무기가 아닌 인간 요인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강대국 러시아 침공에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우크라이나가 지속적으로 버텨온 비결을 분석해 4가지 교훈을 최근 제시했다. 동맹과 리더십, 내부단결, 그리고 미래 희망이다. 우크라이나는 나토와 유럽연합(EU)이라는 기존의 동맹 협력 메커니즘을 활용해 신속하고 효과적인 지원을 이끌어낸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울러 개전 초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피신 권고를 거부하는 단호한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을 단결시키고 서방에게는 신뢰를 줌으로써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시장경제·인권·반부패 사회인 서방의 일부로 남겠다는 의지와 비전을 내외에 지속적으로 확인시켜왔다. 아울러 자력으로 계속 전쟁을 치를 수 있도록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자국 병력을 교육·훈련함으로써 군사적 '능력'을 키운 것도 러시아에 맞설 수 있었던 비결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서방에서 지원받은 무기체계의 우수성·물량과 함께 이를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전투력을 확보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를 통해 전략적 목표·수단·방법을 균형있게 연결할 수 있는 실력있는 군대를 양성해왔다는 평가다. 개전 4년을 맞는 러-우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시대&VIEW] 이란, 미국이 실제 공격하면 얼마나 버틸까
미국과 이란 사이에 과연 무력 충돌이 벌어질 것인가. 미군 항공모함이 이란을 타격할 수 있는 거리의 지중해 동부와 아라비아해 등에 집결하면서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린다. 미국과 이란은 2월 6일 핵 협상을 재개했지만 최근 들어 양국간 '군사'를 앞세운 설전이 가열되면서 무력충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9일 오후(현지시각)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을 타고 이동하던 중 기자들에게 "이란은 핵 합의까지 10~15일 남아있다"며 "합의하지 않으면 불행해질 것"이라고 테헤란을 압박하면서 사태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은 '벼랑끝 전술'로 버티다 공격을 당할 것인가, 전쟁을 피하는 대가로 핵과 미사일을 모두 포기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인가. 군사적으로는 이란이 미국에 맞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영국의 전략국제연구소(IISS),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 서방 싱크탱크의 자료와 미국과 영국, 프랑스 그리고 튀르키예 등의 보도를 중심으로 그 답을 찾아본다. # 미국, 동맹 없는 단독 전쟁 치러야-제한된 지상군에 해·공군력으로 이란 상대해야 할 처지 무력충돌이 벌어지면 미국도 부담이다. 본토에서 1만2000㎞ 이상 떨어진 이란에서 어느 수준까지 전쟁을 감당할 수 있을지부터 의문이다. 특히 상황이 과거 걸프전이나 이라크전과 다르다는 데 관심이 쏠린다. 이번에는 동맹으로 이뤄진 강력한 연합군도, 지상군 파병 등 인적·물적·시간적 준비도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스라엘의 지원 정도를 기대할 수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중동에서 해군과 공중 전력 만을 이용해 이란을 상대해야 한다. 미군이 정보·작전·장비·인력·훈련·보급 등등에서 세계 최강이라지만 과연 이런 상황에서 전쟁을 의도대로 치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협상 시한 제시할 때마다 무력 충돌 벌어진 징크스문제는 지난해 미국이 시한을 제시할 때마다 무력충돌로 이어진 전례가 있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과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이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에게 서한을 보낸 것을 계기로 4월 12일 핵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이 제시한 60일의 시한을 넘기고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이를 빌미로 이스라엘은 6월 13~24일 12일간 이란을 공습해 '12일 전쟁'을 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2주의 시한을 다시 제시했지만, 이를 제시한 지 사흘 만에 B-2 폭격기를 동원해 이란 핵시설을 정밀 타격했다. 이번에 트럼프가 10~15일의 시한을 제시한 것이 전쟁, 공습 등 또 다른 징크스가 되지 않을지 우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이유다. 이란 폭격이 바로 이번 주말에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 반대로 트럼프의 과도한 압박이 전쟁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이란의 양보와 타협, 또는 사실상의 항복을 유도하기 위한 압박의 극대화라는 시각도 있다. 이미 지난해 이스라엘의 이란 군지도자에 대한 정밀 암살폭격과 미국의 이란 핵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을 경험한 이란 지도부로선 이런 외부 공격의 재발은 체제 안정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는 핵심이익 사안이기 때문이다. 올해 2월 6일 재개된 2차 핵협상에서 미국은 이란 핵은 물론 미사일 프로그램도 중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란은 농축핵을 무기 수준 이하로 희석하겠다는 대안을 제안했지만 미국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는 이란의 농축 핵물질을 모두 국외로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르몽드는 2월 8일 "이란은 미국의 공격을 지연시키려고 협상연장을 시도하고 있으며, 미국은 가능한 한 빨리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하고 있다"고 상황을 평가했다. 이란 최고지도부로선 자존과 생존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 이란, 약체 공군을 미사일·드론으로 보충…러시아 수출과 이스라엘 공격으로 재고 감소 우선,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이란의 군사력을 살펴보자. 우선 방공망. 지난해 '12일 전쟁'에서 이란의 방공망은 무력하기만 했다. 이스라엘 전투기가 공중급유까지 받으면서 수도 테헤란을 비롯한 이란 깊숙이 침투해 정밀 공습 작전을 진행하는 동안 이란 레이더망과 대공무기는 유명무실했다. 물론 이스라엘이 본격적인 공습에 앞서 지대공미사일·대공포는 물론 조기경보 레이더망과 지휘·통제·통신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적방공망제압(SEAD)을 효율적으로 제압한 면도 있다. 하지만 이란은 이스라엘의 공습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이란 군사력의 가장 큰 허점은 공군력으로 보인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에 미국에서 들여온 F-4 팬텀, F-5 타이거, 그리고 소수의 F-14 톰캣 등 미국산 전투기가 주력이다. 여기에 소량의 러시아제 전투기가 추가되는 정도다. 이란은 경제력과 외교력의 약세 등으로 외부에서 전투기를 구입할 여력이 되지 못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미사일과 드론 제작에 힘을 쏟아왔다. 현재 이란 전력의 핵심은 단연 미사일과 드론이다. 미국이 부담스러워하는 전력이기도 하다. 이란은 사거리 수백~2500㎞에 이르는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수천 발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전략국제연구센터(CSIS)는 이란이 중동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다양한 미사일 전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드론도 다양한 종류를 자체 개발해 대량 생산해왔다. 서방정보기관은 이란이 그 일부를 후티 반군 등에 제공한 것으로 본다. 이란은 현재 사거리 2000㎞의 코람샤르-4와 세질-2, 가드르-110 미사일과 1000㎞대의 하즈 거셈, 엠드, 거셈 바시르 미사일, 그리고 700㎞의 단거리 졸파가르 미사일 등을 운용 중이다. 사거리 1400㎞의 파타는 요격이 힘든 극소음 미사일이다. 문제는 보유량이다. 서방제제로 주요 수출품인 석유와 가스의 판매가 제한돼 외화 부족을 겪어온 이란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무기과 탄약 부족을 겪고 있는 러시아에 이들 무기를 대량으로 수출했다. 서방과 튀르키예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러시아에 대한 다량 수출에 이어 지난해 이스라엘과의 12일 전쟁 등으로 미사일과 드론 보유량이 상당히 줄었다. 서방 정보기관은 이란이 최대 2500~3000발 정도의 미사일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했지만, 수출과 12일 전쟁에서의 소모로 현재 보유량은 그 절반 정도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0월 CNN은 이란이 중국에서 폭약 제조 원료인 과염소산나트륨(sodium perchlorate)을 구매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에 다량을 발사하면서 미사일 재고가 크게 줄자 추가 생산으로 이를 보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당시 이란은 이스라엘을 향해 약 550발의 탄도 미사일과 약 1000대의 드론을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란의 미사일 무기고의 사정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 이란 지상병력 규모는 숫자에 불과…중동 지역엔 미군도 상당수 주둔 IISS가 매년 펴내는 '밀리터리 밸런스' 2025년판에 따르면 이란은 중동 최대 규모의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다. 이란에는 두 개의 군대가 있다. 약 35만 명의 정규군과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약 19만 명 등 약 54만 명의 현역이 그것이다. 두 군대 모두 육해공군을 별도로 갖추고 있다. 거기에 더해 약 61만 명의 예비군이 있다. 문제는 병력이 아무리 많아도 장비·작전·훈련·시스템 등에서 미군의 전력을 감당할 수 있느냐이다. 게다가 미군은 이란에 가까운 중동 지역에 상당수가 상시 주둔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 지역의 제공권과 제해권을 장악하는 한편 미국의 협력국가들에 공중 및 미사일 방어 체계를 제공하고 있다.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 잡고 이란을 옥죄고 있다. # 바레인에는 미 해군 제5함대, 카타르에는 중동 최대 미군 공군기지 바레인에는 미 해군 제5함대 사령부가 있다. 제5함대 관할구역은 호르무즈 해협을 포함한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과 홍해, 아라비아해 및 인도양 일부까지 포함한다. 카타르에는 중동 최대 규모의 미군기지인 알우데이드 공군기지가 자리 잡고 있다. 카타르 수도 도하의 외곽에 있는 이 기지에는 미 중부사령부의 전방본부가 있으며, 약 1만 명의 미군이 주둔 중이다. 바레인과 카타르 모두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 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거대한 에너지 자원의 보고 한복판을 아우르면서 바다 북쪽의 이란을 견제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한 지정학적 선택이다. 눈길을 끄는 것이 중부사령부가 지난 1월 이 기지에 통합작전센터인 '중동 공중방어-합동 방어작전본부(MEAD-CDOC)'를 신설했다는 사실이다. 미군과 역내 협력국가의 공중 및 미사일 방어 전력을 통합 운영함으로써 시너지를 높이는 것이 목적으로 보인다. #이란 코앞인 쿠웨이트와 접경한 이라크, 튀르크에 미군 정예부대 주둔 쿠웨이트에는 미 중부사령부의 전방 본부인 아리프잔 기지, 그리고 험준한 지형에 둘러싸여 '더 록'으로 불리는 미 공군의 알리 알 살렘 기지 등 대규모 군사시설이 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중에 만들어진 뷰링 기지는 이라크와 시리아 등 중동 전역에 지상군 병력을 신속 배치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쿠웨이트는 이란과 국경을 직접 맞닿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쿠웨이트와 이라크의 국경에서 이란의 주요 석유수출항인 아바단까지는 불과 50㎞ 정도 떨어져 있다. 세 나라의 국경이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 인근에서 서로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쿠웨이트는 이라크와 이란 사이를 흐르는 샤트알아랍 수로와 불과 수십㎞ 떨어져 있다. 이 수로의 통제권 확보는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원인의 하나가 됐을 정도로 군사적·경제안보적으로 중요하다. 미군은 이란과 국경을 맞댄 이라크에도 있다. 미군은 이라크 서부 안바르 주에 있는 아인 알 아사드 공군기지에 대거 주둔하면서 이라크 보안군을 지원하고 지역 내 다양한 작전을 펼쳐왔다. 미국이 2020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이란 알쿠드스군 사령관인 거셈 솔레이마니를 드론 공격으로 살해하자 이란은 보복이라며 발사한 미사일이 떨어진 곳이 이 기지다. 알쿠드스군은 중동내 친이란·반미 세력 지원을 주임무로 하는 특수 공작부대다. 이스라엘 멸망과 알쿠드스(아랍어와 파르스어(이란어)로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수복이 명목상 운영 목적이다.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지역에 있는 에르빌 공군기지는 미군과 연합군의 훈련과 전투 연습. 그리고 정보공유 및 물류 거점이다. 이란과의 국경에서 멀지 않아 유사시에 어떤 역할 할지 충분히 예상된다.# 한국이 원전 건설한 UAE의 공군기지에서 이란 정찰…사우디에선 방공장비 운용미군은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 남쪽에 있는 알 다프라 공군기지를 UAE 공군과 공동으로 쓰면서 중동 지역 전반에 걸친 정찰 작전을 펼쳐왔다. 아부다비 서쪽에는 한국이 건설한 바라카 원전이 있다. 정예 방공부대가 주둔해 공중 공격에 대비해야 하는 곳이다. 미 해군은 UAE를 이루는 토후국의 하나인 두바이에선 제벨 알리 항을 항공모함과 다른 전투함, 그리고 보급선들이 정기 정박하는 중동 최대 최대 기항지로 쓰고 있다. 미군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약 2300명이 주둔하면서 이 나라에 공중 및 미사일 방어능력을 제공하고 역내 미군 항공기의 작전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수도 리야드 남쪽 약 60㎞에 있는 프린스 술탄 공군기지의 미군은 패트리어트 미사일 포대와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포대 등 방공자산을 지원한다. 요르단에는 미군 정예 기동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수도 암만에서 약 100㎞ 떨어진 아즈라크에 있는 무와파크 알 살티 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공군 제332 항공원정비행단이다. 이 부대는 동부 지중해 일대인 레반트 지역의 작전을 담당하고 있다. 이 부대는 정밀타격, 정보수집, 감시 및 정찰, 공중급유, 전투 수색 및 구조를 포함한 항공 작전 전반을 담당한다. 미군은 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에선 동남부 아다나 주에 있는 인시를릭 공군기지를 공동 운영하면서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작전을 벌여왔다. 이처럼 미군은 이란 주변에 배치하고 있는 항모 강습단은 물론 상당수 군대를 이란 주변에 배치해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만일 전쟁으로 이어지면 엄청난 규모의 전력 때문에 유혈극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현지는 물론 글로벌 공급망까지 타격을 입어 피해가 전 세계 수준으로 확산할 수 있다. 특히 경제에는 직격탄이다. 전 세계가 미국과 이란의 힘겨루기와 향후 선택을 초조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대&VIEW]일본 자위대의 전쟁 능력, 과연 어느 수준인가
일본, 자위력만 인정하는 전수방위 원칙 무력화일본에서는 평화헌법 개정을 주권국가의 '정상국가화'라고 부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점령 시절인 1946년 일본국 헌법을 공포하면서 제9조에 이러한 조항을 넣었으며, 1951년 샌프란시스코 미일 강화조약으로 주권국가가 됐다. 하지만 일본 우파들은 헌법 9조 때문에 주권국가로서 군사력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게 된 것은 독일이나 이탈리아와 비교해서도 불공평하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 등 주변 국가들은 일본이 평화헌법을 바꾸면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되면서 지역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패전 뒤 전쟁을 금지한 헌법에 따라 선제공격을 금지하고 오직 자위력 행사만 인정하는 '전수방위' 원칙을 채택했다. 적의 무력 공격을 받았을 경우에만 방위력을 행사하고, 자위에 필요한 최소한도로 범위를 제한하며, 영토·영해·영공 방어에만 전념한다는 수동적 방어 원칙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적 기지 공격 능력 확보 등의 필요성을 내세워 이 원칙에서 벗어나 반격능력을 갖춘 군대로 변모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일본인 대만을 침공하겠다는 중국이 동아시아 정세를 더욱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다카이치 총리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참전하겠다고 발언하면서 중일 양국 관계는 급냉하고 있다. 병력은 적지만 방위예산은 세계 9위일본 방위성 2025년 발표에 따르면 육상·해상·항공으로 나뉜 모병제를 채택한 자위대는 병력이 현역 25만 명, 예비군 40만 명 정도다. 방위예산은 8조4748억엔(미화 566억 달러)으로 세계 9위 수준이다. 현재 국내총생산(GDP) 1.37% 수준인 방위비를 미국의 요구 등을 바탕으로 향후 3% 수준까지 증가시킬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한국의 방위비는 485억 달러로 세계 10위 수준인데, GDP의 2.32%를 차지한다. 구체적인 전력을 살펴보자. 일본 육상자위대는 네트워크 기능을 갖춰 상호 정보공유가 가능한 신형 10식 전차와 1990년대에 제작된 90식 전차 등 300여 대의 주력전차와 140야 문의 자주포를 운용한다. 1975년 첫 배치됐던 74식 전차는 2024년 남아있던 90여 대가 마지막으로 퇴역했다.45만 명의 병력에 최신형 K-2 흑표 약 260대와 K1A1, K1A2, K1 등 2300여 대의 전차와 1300여 문의 K-9을 포함해 3000문 이상의 자주포를 운용하는 한국 국군과는 기갑전력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아울러 자위대는 최근 들어 지원자 감소로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육상자위대는 말 그대로 최소한의 방위력만 갖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러시아(냉전 기간에는 소련)와 가까운 홋카이도 지역에 기갑 전력이 불균형적으로 집중돼 있다. 이는 비용과 작전 개념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높은 물가와 인건비 등으로 무기 획득과 유지보수 비용이 많이 드는 편이어서 육상 장비 확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위대는 육상보다 해상과 공중 전력에 편재돼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방어작전은 적의 일본 열도 상륙을 공중과 해상에서 저지하는 데 집중되고 있다. 해상자위대, 경항모 2척 곧 확보…이지스 탑재 군함도 한국보다 많아해상자위대의 경우 이즈모급 헬기 탑재 호위함 2척을 경항공모함으로 개조해 F-35B를 운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 헬기모함도 2척을 운용 중이다. 8척의 이지스 시스템 탑재 구축함을 포함해 모두 42척의 구축함과 6척의 호위함, 그리고 24척의 잠수함을 배치하고 있다. 올해부터 사거리 1600km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약 400발을 미국에서 도입해 군함에 탑재할 예정이다. 해상자위대는 경항모 개조에선 한국보다 빨리 움직이고 있으며, 이지스함 배치는 다산정약용함 등 5척을 보유한 한국 해군보다 많다. 항공자위대는 스텔스 성능의 F-35A/B와 F-15J, F-2(F-16 기반의 일본 제작 전투기) 등 300대가 넘는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 약 200대의 F-15J를 공중 방어의 핵심으로 활용한다. 한국 공군도 같은 계열의 F-15K를 운용 중이지만 보유 대수가 약 60대로 열세다. 이는 동해 등에서 일본 공중전력의 우세로 이어질 수 있다. 항공자위대, 다수의 F-15로 동해 공중전력 우세이와 함께 약 90대의 F-2를 해상에서의 대함 공격에 특화해 운용 중이다. 일본을 공격하는 적 군함에 대해선 물론 중국의 대만 공격 억지력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한국은 같은 계열의 KF-16 130여 대를 핵심 공중전력으로 운용 중이다. 스텔스 기능이 있는 F-35A의 경우 공중자위대와 한국공군이 각각 약 40대를 운용한다. 자위대는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이 기종을 현재 경항모로 개조를 마치고 실전운용 시험 중인 두 척의 이즈모급 헬기 모함에 탑재할 예정이다. 이즈모급 군함은 만재배수량 2만7000t급으로 520명의 승조원이 탑승하며, 최대 14기의 헬기를 싣고 최고 30노트(시속 56㎞)로 항해할 수 있다. 이즈모 경항모가 배치되면 일본은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항공모함을 운용하게 된다. 경항모와 F-35 결합에 주목…남부 도서의 레이더·미사일 기지화 경항모에 F-35 스텔스기와 공중급유기, 공중경보기 등이 결합하면 상당한 시너지를 얻어 도서 지역과 동태평양 방위력을 증강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상당한 억지력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눈여겨볼 점은 일본 자위대가 규슈 남단부터 대만까지 뻗어있는 도서 지역의 방위를 위해 조기 탐지·경보 능력과 지대함 미사일 전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섬 하나하나가 레이더와 미사일 기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러한 조기경보체계와 미사일 전력의 확대는 중국을 염두에 둔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오키나와 인근의 동중국 해상에서 항공모함을 동원한 해상군사훈련을 수시로 벌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의 협력을 얻어 자위대 전력을 강화하기에 유리한 조건으로 평가된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을 대리하는 군사 협력국가로 자리 잡을 자능성이 커 보인다. 한국이 자칫 그 사이에 끼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세계 3위의 일본 경제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일본의 군가기술과 전력은 이른 시일 안에 급격히 성장할 수 있다. 일본을 계속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시대&VIEW]뉴스타트 만료… 핵무기 통제 진공상태 되나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이 연장이나 별도의 대체조약 없이 지난 5일로 만료되면서 세계는 '핵무기 통제의 진공상태'를 맞았다. 뉴스타트는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핵탄두를 1550개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AM), 전략폭격기 등 발사수단을 700개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2011년 발효됐는데 코로나19 사태 등을 거치면서 연장이 미뤄지다 15년 만에 대책 없이 일몰을 맞게 됐다. 뉴스타트의 전신에 해당하는 냉전 시대 감축조약부터 시작하면 50여 년 만에 핵무기에 대한 통제 수단이 사라지는 셈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는 약 1만2241발의 핵탄두가 있다. 러시아가 5459발로 가장 많고, 미국이 5177발로 비슷한 수준이다. 그밖에 중국이 약 600발, 프랑스가 290발, 영국이 225발을 보유 중이다. 서로 앙숙인 인도가 약 180발, 파키스탄이 약 170발을 경쟁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약 90발, 북한이 약 50발 등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는 냉전 시대에 이어 다시 한번 핵무기의 위협에 떨어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지금으로선 미국과 러시아가 대체 조약을 마련할 때까지 뉴스타트를 존중하면서 핵 군비확장을 하지 않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하는 게 유일한 해법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제일주의를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도 선뜻 국제사회의 불안을 줄여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국제사회가 뉴스타트의 만료로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를 짚어본다. #왜 대책 없이 만료됐나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포함한 새로운 다자조약을 고집하면서 연장을 미뤘고, 러시아는 1년 연장만 제안하면서 영국·프랑스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양국 관계가 차가워진 것도 대책 없는 만료에 한몫했다. 뉴스타트가 만료되면서 세계 최다 핵탄두 보유국인 미국과 러시아에 대한 핵무기와 투발 수단(Delivert System·핵탄두 등을 목표지점까지 보내는 운반수단) 관련 제약이 공백 상태가 됐다. 더욱 문제는 핵군비 통제에 필수적인 상호신뢰도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전 세계에 핵 불안이 가중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 세계에 유일의 핵통제 협정인 뉴스타트가 사라지면서 미국과 러시아가 경쟁적으로 핵전력을 확산하는 상황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이미 전 세계를 여러 차례 파괴하고도 남을 핵탄두를 보유한 것은 물론, 은밀하고 신속하게 상대로 기습할 수 있는 투발 수단을 다양하게 개발해놓고 있다. 이를 줄줄이 실전배치할 경우 분쟁을 억제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중국의 핵능력 강화를 통제할 수단은 없는가이는 미국과 러시아 외의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최근 핵전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을 통제할 수단도 만만치 않다. 미국 국방부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600여 발 수준인 핵탄두를 2030년까지 1000발 이상으로 늘릴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은 자국의 핵 반격 능력을 강화해 핵공격을 억제한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어 핵 군비강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전망이다. 멀지 않은 장래에 러시아나 미국 수준의 핵탄두와 투발수단 보유국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 9월 전승절 열병식을 보면 중국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미국 본토까지 다다를 수 있는 ICBM인 동펑-61(東風-61, DF-61)과 SLBM인 쥐랑-3(巨浪-3, JL-3)을 내보이는 등 핵전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한 것이 그중 하나다. 그러면서도 러시아와 미국에 비해 핵무기 규모가 작기 때문에 핵무기 감축이나 통제에는 관심 없다는 태도를 보이며 통제를 회피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뉴스타트의 만료를 맞은 미국도 핵 군비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의 매슈 크레이니그 부소장은 NHK에 "후속조약 체결이 현재로선 어렵다"며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2개의 핵 대국을 동시에 억지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핵전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자국 핵전력 확대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형국이다. #유럽은 무엇으로 러시아의 핵에 맞서 재무장할 것인가가뜩이나 최근 그린란드 사태 등으로 미국과 관계가 틀어지면서 안보 자강을 추진하던 유럽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유럽의 핵보유국인 프랑스와 영국은 긴밀한 핵무기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서유럽의 비핵보유국들은 핵을 포함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첨단 장거리 정밀타격무기의 개발과 획득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정밀타격무기는 긴 사거리, 정확한 타격 능력과 살상력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핵전력을 위협하면서 도발에 대응할 수 있다. 재래식 무기임에도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핵전력을 억제하는 전략적 효력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일부에선 이를 '전략적 비핵무기'로 부른다. 유럽은 이처럼 '전략적 비핵무기'로 불리는 정밀타격무기 개발로 재무장하면서 러시아의 위협에 맞설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SIPRI 보고서는 나토가 이러한 정밀 타격무기로 재무장을 진행할 경우 미래 핵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핵확산금지체제(NPT) 체제는 존속 가능할까가장 큰 문제는 한국을 포함해 190개국이 가입한 핵비확산(NPT) 체제에 대한 영향이다. 핵보유를 안보의 제1 과제로 삼겠다는 나라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핵전력 군비경쟁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SIPRI는 성명에서 이번 뉴스타트 만료가 1968년 만들어진 NPT의 신뢰성과 실효성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방 동맹국 사이에서는 미국의 핵우산과 안보보장 제공에 대한 회의가 고개를 들 수 있다. 이러한 회의주의는 각국의 독자적인 핵무기 확보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에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자금력과 기술력, 그리고 의지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상대가 핵무기를 확보해 위협하기 전에 자신을 지킬 핵무기를 확보하겠다는 생각이 글로벌 담론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이미 핵개발로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 차원의 압박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이는 이란을 견제하려는 이스라엘의 불안을 키워 무력을 통한 문제해결을 부추길 수 있다. 핵무기 통제가 되지 않으면 크고 작은 국지전이 전 세계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략 핵무기는 물론 전술 핵무기의 위협도 가중될 수 있다. SIPRI는 최근 자체 추산 결과 러시아는 1477기, 미국은 약 200기의 전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국지전에서도 핵무기가 위협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북한은 어떻게 나올까더욱 우려되는 것이 북한이다. 뉴스타트 만료가 세계적인 핵군비 경쟁으로 이어지고 NPT 체제에도 영향을 미칠 경우 북한은 더욱 거칠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핵과 탄도미사일 개발로 NPT체제를 비롯한 국제 규범을 어겼다는 이유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받아왔는데, 이제 그 해제를 더욱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재진입 기술을 포함한 ICBM 기술의 완성을 추구하는 등 발사체 고도화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하나의 발사체에 복수의 핵탄두를 장착시켜 여러 목표를 동시에 노리는 다탄두미사일(MIRB) 기술까지 손에 넣으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본토까지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의 장거리 탄도미사일과 함께 한반도 전역이나 일본 등을 공격할 수 있는 중거리 탄도미사일 전력을 강화해 주변국을 위협할 가능성도 어느 때보다 커질 수 있다. #핵무기가 AI 오작동이나 사이버 공격을 겪을 경우에 대한 대비책은 있나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인공지능(AI)과 사이버 공격이다. AI가 군사 분야를 비롯한 삶의 전 분야에 걸쳐 빠른 속도로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상황에서 가공할 위력의 핵무기가 AI가 결합해 오작동하거나 사이버 공격을 받을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인류는 아직 여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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