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한일 '군수지원협정', 필요성과 한계 냉정히 따져볼 때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양국 간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안 장관은 일본 측의 제기로 관련 의견을 교환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국방 당국자가 한·일 ACSA 논의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은 이번 정부 들어 처음이다.ACSA는 유사시 탄약과 연료, 식량, 수송 등 군수물자와 용역을 상호 지원하는 협정이다. 군사협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성격을 지닌 만큼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고려할 때 우리 사회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안 장관이 "국민의 이해와 설득이 선행돼야 할 문제"라며 신중한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한·일 ACSA는 2012년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과 함께 추진됐지만 비공개 처리 논란과 반대 여론 속에 무산됐다. 이후 GSOMIA는 2016년 체결됐지만 ACSA는 지금까지 보류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나 당시와 비교하면 안보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한층 고도화됐고, 안보 위협은 더욱 복합적이고 광범위해졌다.ACSA가 체결되면 양국 군수 지원의 효율성이 커지고 연합훈련이나 인도적 지원, 재해 구호 활동 등에서 물자 확보와 작전 유지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 역량과 억제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밀유도무기·무인체계, 사이버·우주 공간 등이 결합되는 현대전일수록 군수 협력의 전략적 가치와 국제 협력의 필요성도 과거보다 커졌다고 볼 수 있다.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유사시 자위대의 한반도 병참 활동의 근거가 될 수 있다거나, 한·미·일 안보협력이 군사동맹 수준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2013년 남수단에 파병된 한빛부대가 일본 자위대로부터 탄약 1만발을 지원받았다가 국내 논란 끝에 18일 만에 반환한 사례는 한·일 군사협력이 여전히 높은 사회적 민감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그렇다고 논의 자체를 금기시할 일은 아니다. 군수는 군사 작전의 성패는 물론 장병의 생존과 직결되는 핵심 요소다.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되는 협력 수단이라면 그 필요성과 한계를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기대 효과와 우려 사항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공개적이고 투명한 논의를 이어가는게 바람직하다.
[사설]'국부 펀드' '미래 투자' 이게 답인데…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자신의 대기업 초과 이익 배분 발언 논란과 관련해 언론 인터뷰에서 "공산주의가 아니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앞서 김 장관은 원청 기업이 하청 업체와도 이익을 나누는 '사회연대임금'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에 정부가 사기업의 이익 배분에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자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는 경제학 개념을 들고나와 추가 설명에 나선 것이다. 김 장관의 발언은 오히려 혼란을 키우고 있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주주 자본주의'와 달리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주주뿐 아니라 협력 업체와 고객,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함께 고려하는 경영 철학이다. ESG 경영이 그 사례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기업의 자율적 경영 철학과 관련된 문제로 노동부 장관이 관여할 영역도 아니고 이번 상황과 맞지도 않는다. 김 장관의 사회연대임금 발상을 공산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물론 과하다고 본다. 하지만 "반도체는 공공재" 운운하며 우리 실정에 맞지도 않는 사회연대임금을 꺼낸 것 자체가 시장경제와 동떨어진 발상이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정책 취지는 차치하더라도 정부 메시지가 일관성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AI 시대의 구조적 성장으로 '초과 세수'가 발생할 경우 국민배당금 형태로 배분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를 기업의 '초과 이윤' 환수 논의로 받아들이며 논란이 확산했다. 여기에 삼성전자 노사의 억대 성과급 합의를 놓고 사회적 논란이 번지자 이번에는 노동부 장관이 사회연대임금, 초과 이익 배분 문제를 제기했다. 초과 이윤과 초과 세수, 기업의 역할과 정부의 역할이 뒤섞이면서 정책 방향이 뭔지 헷갈리게 된 것이다.정부가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은 기본 원칙이다. 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면 이른바 '초과 이윤' 활용이나 사회 환원은 기업이 판단할 문제이고, 초과 세수는 정부가 책임 있게 활용할 문제라는 점이다. 기업은 연구개발 투자와 생산시설 확충,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이익을 재투자할 권리와 책임을 갖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금은 미래를 위한 생산적 재투자로 연결할 절체절명의 시간"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초과 세수의 활용 방안 역시 정부 내부의 정리가 필요하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최근 초과 세수의 상당 부분을 국부펀드 재원으로 활용해 미래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국민배당금 구상과는 결이 다르다. 답은 명확한데, 정부 내에서조차 활용 방향이 엇갈린다면 시장과 국민의 혼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사설]들쭉날쭉 조사, 그마저 '블랙아웃', 딥페이크는 기승 조짐
6·3 지방선거 사전투표가 30일까지 이틀간 진행된다. 이번 사전투표에서도 높은 투표율이 예상되지만, 유권자들의 혼란도 적지 않다. 마지막으로 공표된 여론조사 결과가 조사 기관과 방식에 따라 크게 엇갈린다. 최대 승부처인 서울시장 선거만 해도 최대 두 자릿수 격차부터 오차범위 내 접전, 심지어 동률까지 나타나며 들쭉날쭉이다. 유권자로서는 실제 민심의 흐름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그나마도 지난 28일부터는 여론조사 결과 발표와 보도가 금지됐다. 선거법은 선거일 6일 전부터 투표 종료 시까지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거나 보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여론조사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규정이다. 사전투표까지 시행되며 여론조사 공표는 더욱 어려워졌다. 문제는 이 기간을 틈타 각 후보 진영에서 검증되지 않은 아전인수식 조사 결과를 돌리거나 상대 후보에 대한 흑색선전을 벌이는 일이 반복돼 왔다.더 심각한 것은 딥페이크를 비롯한 AI발 허위정보의 확산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행정안전부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7일 기준 삭제 요청 건수는 1만319건으로, 벌써 지난 21대 대선 기간 전체 삭제 요청 건수(1만510건)의 98.2%에 달했다. AI 발전으로 딥페이크 등 허위정보 기술은 더욱 정교해졌다. 딥페이크의 특성상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파급력과 혼란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만큼 철저한 대응이 필요하다.이번 선거는 유력 후보들의 토론 기피 논란까지 겹치면서 유권자들이 후보를 검증할 기회마저 충분히 보장받지 못했다. 서울시장 선거 TV 토론은 사전투표 시작 7시간 전에야 단 한 차례 열렸다. 서울뿐 아니라 울산시장 선거와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역시 법정토론이 한 차례에 그쳤다.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토론 횟수를 늘리고, 개최 시기도 투표일 수일 전으로 앞당길 필요가 있다.결국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블랙아웃' 기간에는 공신력 있는 정보는 줄어드는 반면, AI발 허위정보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커진다. 그럼에도 유권자는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고 향후 4년간 지역사회를 이끌 일꾼을 선택해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살리는 힘은 결국 주권자의 관심과 참여 뿐이다. 정당의 공약과 후보의 자질을 꼼꼼히 비교하고 투표에 참여할 때 비로소 정책과 비전이 승리하는 선거가 가능해질 것이다.
[사설]증시 살린 국민연금…노후 자금 안전판 잊지 말길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을 보유할 수 있는 '목표 비중'을 늘리면서 시장이 우려했던 대규모 매도 사태를 피하게 됐다. 국민연금은 올해 목표로 하는 국내 주식 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대폭 확대했다. 전략적으로 허용되는 추가 범위까지 포함하면 최대 28% 수준까지 보유할 수 있게 됐다.이는 최근 증시 상황을 고려할 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예상을 뛰어넘어 빠르게 진행된 코스피 활황으로 국민연금의 주식 보유 비중이 당초 설정된 목표치를 초과하면서 최대 170조 원 규모의 주식을 매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지분 7.8%, SK하이닉스 지분 8.1%를 보유한 '큰손'이다. 기존 비중을 맞추기 위해 두 종목을 대량 매도할 경우 증시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국민연금은 이번 결정이 시장 상황을 반영한 현실적 조치이며, 장기 투자 원칙을 훼손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증시가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구조적으로 변화하는 흐름을 반영했다는 취지다. 시장에서는 지금의 코스피 상승이 단기 과열이 아니라 기업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는 전환기의 산물인 만큼 '코리아 디스카운트' 시절에 설정된 목표 비중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에서도 증시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던 2014년 공적연금의 주식 비중을 12%에서 25%로 높인 사례가 있다.다만 이런 결정이 향후에도 반복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본연의 존립 목적은 수십 년 뒤 연금을 안정적으로 지급하는 데 있다. '장기 안정성'이라는 투자 원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증시가 급등할 때 보유 비중을 늘렸다면 반대로 하락할 때는 보유 비중을 줄여야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연금 수익률의 변동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재정 안정을 중시하는 전문가 모임인 연금연구회가 "향후 증시가 조정을 받으면 그 부담은 미래 연금 세대에 전가될 수 있다"고 우려한 이유다.때로는 증시를 살리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어디까지나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최후의 안전판이다. 단기 시장 상황보다는 해외주식, 채권 등 적절한 포트폴리오 분산으로 꾸준하고 안정적인 수익률을 확보해야 한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번 결정을 설명하며 "원칙과 유연성이 조화를 이루도록 연금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단기적 유연성이 불가피할 때도 있지만 장기적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사설]이번엔 노동장관이 "초과 이익 배분"…왜 자꾸 정부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기업의 초과 이익 분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긴급 토론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삼성전자의 성공은 노사의 헌신적 노력에 더해 각종 사회적 지원이 함께 만든 결과"라며 토론회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반도체 호황으로 발생한 '초과 세수' 국민배당금을 거론한데 이어 이번엔 노동부장관이 '초과 이윤'을 분배 대상으로 삼자는 구상을 내놓은 것이다.노동부가 토론회에서 다루겠다고 밝힌 주제는 '한국형 사회연대임금 정책 가능성'이다. 같은 업종 종사자들의 임금 격차를 줄이고 원청·하청 간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대기업 이윤 일부를 기금 형태로 공유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일각에서 말하는 '스웨덴 모델'이다. 김 장관은 이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그 정신을 높이 평가해 구체적 방법을 찾아가겠다고 했다. 연대임금 구상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최근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갈등을 계기로 임금 격차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민간 기업의 이윤을 어느 수준까지, 어디에 나눌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기업과 시장의 자율 영역에 속한다. 김 장관은 "정부가 기업의 정당한 이익에 관여할 권한은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고 선을 긋긴 했다. 그러면서도 "전통적 문법을 뛰어넘어 발생한 수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의 문제"라고 말해 사실상 초과 이윤의 사회적 분배 필요성을 내비쳤다. 문제는 어디까지를 '정당한 이익'으로 보고, 무엇을 '전통적 문법을 뛰어넘는 초과 이윤'으로 규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산업 구조와 기술 변화, 글로벌 경기 흐름에 따라 기업 실적은 크게 달라진다. 특히 반도체와 AI 산업처럼 막대한 선행 투자와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업종에서는 특정 시기의 초과 이익만을 떼어내 사회적 분배 대상으로 삼겠다는 접근 자체가 자칫 기업 활동의 동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전문가들은 스웨덴 모델의 경우 노조총연맹이 주도하는 교섭으로 연대임금 제도가 가능했지만 기업별 노조 체제인 한국에서는 이런 구조를 적용하는 것이 어렵다고 본다. 김 장관은 비판이 이어지자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기업 이윤을 빼앗아 나눠주자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직접 토론회를 주관하는 모습은 기업들 입장에서 부담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더욱이 사안이 중요하다면 단기간의 '긴급 토론회' 형식보다는 보다 긴 호흡 속에서 산업계·노동계·학계의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접근이 바람직하다. 김 장관이 토론회 개최를 밝힌 날 삼성전자는 5조 원 규모의 사회 환원 계획을 발표했다. 반도체 이윤을 활용해 향후 5년간 2·3차 협력사를 지원하고,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포용 금융 확대에도 나서겠다는 것이다. AI 인재 육성을 위한 산학협력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상생과 연대의 생태계를 만드는 길이 반드시 정부 주도의 새로운 분배 체계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민간의 자율적 상생 노력, 미래 세대를 위한 인프라 조성이 훨씬 유효하고 지속 가능한 해법일 수 있다.
[사설]전·현직 대통령의 우려되는 선거 행보
사전투표가 29일부터 이틀간 실시되는 등 6·3 지방선거가 임박한 가운데 전·현직 대통령이 잇달아 격전지를 찾아 선거 지원 행보를 보이며 논란을 빚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6~27일 부산을 방문했다. 이 대통령은 27일 부산에서 열린 '바다의 날' 기념식에서 "부산을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해양 수도로, 동남권을 남부 해양 수도권으로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전날 국무회의에서는 해양수산부와 해운선사 HMM의 부산 이전에 더해 다른 공공기관과 기업의 추가 이전 가능성까지 언급했다.이 대통령은 이달 들어 부산·경남 지역을 네 차례 방문했다. 지난 13일 울산, 24일 김해, 26일 창원에서 각각 행사를 가진 뒤 전통시장을 찾아 주민들과 만났다. 부산·울산·경남은 이번 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과거에도 현직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각종 지방 행사를 통해 정치적 시비를 부른 적이 있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1년 4·7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를 찾아 "가덕도를 보니 가슴이 뛴다"고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역시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전국을 돌며 민생토론회를 열어 야당의 반발을 샀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과거 사례와 비교해도 훨씬 노골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박근혜 전 대통령도 27일 부산·울산·경남 지역을 찾아 국민의힘 후보들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박 전 대통령은 부산 기장시장을 찾아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 박민식 후보 등과 동행했다. 지난 23일 대구 방문을 시작으로 25일에는 충북 옥천의 육영수 여사 생가를 찾았고, 이어 대전·충남 지역 유세 지원에도 나섰다.국정농단 사태로 헌정 사상 처음 파면되고 징역 20년형이 확정됐던 박 전 대통령이 특별사면 뒤 다시 특정 정당 지원 유세에 나선 모습 역시 정치적 도의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전·현직 대통령의 선거 개입 논란은 우리 정치가 여전히 진영 대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대통령은 선거의 공정한 관리자이자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은 선거운동 기간이라도 이 대통령은 논란을 자초하는 지방 행보를 자제해야 하며, 박 전 대통령 역시 자중할 필요가 있다.
[사설]'수억대 성과급' 가결…'나비 효과' 어디까지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합의안이 조합원 투표를 통과하면서 총파업 우려를 씻어냈다. 부결됐을 경우 불어닥칠 매출 손실과 반도체 공급망 훼손을 막아낸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이번 성과급 후폭풍이 회사 내부는 물론 경제와 사회 전반에 미칠 '나비 효과'에 벌써 우려가 나오고 있다.우선 시급한 과제는 반도체 본업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노노 갈등의 봉합이다. 이번 투표에서 전체 찬성률은 73%였지만, 반도체 중심 노조는 80%가 찬성한 반면 휴대전화·가전을 담당하는 DX 중심 노조는 찬성이 21%에 그쳤다. DX 직원들은 그간 강한 불만을 드러내 왔다. 반도체 부문은 최대 6억원대 보상을 받는데 DX 부문은 600만원 상당의 자사주에 그쳤기 때문이다. 특히 DX 부문에선 과거 휴대전화 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오늘날 반도체 경쟁력의 밑거름이 됐다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 반도체 부문이 지난 15년간 영업이익의 1.7배에 달하는 투자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전사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논리다. 합의안 통과 직후 DX 부문장이 이메일로 조직 달래기에 나섰지만, 균열을 봉합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나아가 성과급 분배 협상이 기업마다 도미노처럼 확산할 가능성도 우려스럽다. 이미 현대자동차 노조는 순이익의 30% 수준 성과급을 요구하고 있고, 파업을 예고한 카카오 노조 역시 영업이익의 최대 15% 지급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마다 경영 환경이나 산업 구조가 전혀 다른데도 '이익의 일정 비율'을 일률적으로 성과급으로 떼어달라고 하면 노사 갈등 악화는 물론 미래 투자까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부동산 시장에 미칠 파장까지 거론된다. 삼성전자 노사는 성과급과 별도로 최대 5억원 규모의 주택 대출 지원에도 합의했다. 자금 여력이 커진 직원들이 경기 남부 반도체 벨트 지역의 아파트 매입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해외 연구기관도 반도체 종사자들의 소비 성향이 낮아 성과급이 즉각 소비로 이어지기보다 용인·동탄 등 자산시장으로 흘러들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최근 부동산 시장은 매매가격과 전세·월세가 함께 오르는 이른바 '트리플 상승' 조짐까지 나타나는 상황이다.물론 삼성발 성과급의 후폭풍이 어떤 강도로,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성과 체계가 조직 내부의 균열과 투자 위축, 사회적 부작용으로 이어지기 시작하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성과급도 결국 기업 경쟁력과 사회적 수용성 위에서 작동해야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사설]10년 안에 '원잠' 건조, 동맹 신뢰와 협력이 관건
정부는 약 10년 뒤인 2030년대 중반까지 원자력 추진 잠수함(원잠) 1번 함을 진수하고, 2030년대 후반 전력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국방부는 26일 열린 제1회 미래국방전략위원회에서 이런 내용의 원잠 확보 원칙과 방향을 담은 '장보고 N사업' 기본계획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지난해 10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를 확보했지만 후속 조치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먼저 로드맵을 발표한 것이다.이 대통령은 이날 원잠에 대해 "한반도 평화와 안보를 우리 힘으로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상징"이라며 "자주국방이 확고한 나라가 완성된 국가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위원회에선 원잠과 함께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 인공지능(AI)·무인전투체계 중심의 군 전환 문제도 함께 논의됐다.정부가 미래 핵심 전력인 원잠 확보 계획을 공식화한 것은 강력한 자주국방 의지를 다지는 의미가 있다. 원잠은 장기간 잠항 능력과 높은 은밀성을 바탕으로 평시에는 강력한 억제력을 제공하고, 유사시에는 적 핵심 전력을 타격할 수 있는 전략 자산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현대화'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요구, 미·중 패권 경쟁 심화 등 복합 안보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국가의 전략적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동맹 안에서도 보다 주도적인 방위 역량을 확보하는 기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원잠 확보까지는 갈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연료로 사용할 저농축우라늄을 미국에서 받아와야 하는데 한미 간 별도의 협정과 미 의회 승인 등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건조 장소를 둘러싼 한·미 간 이견도 조율해야 한다. 한미는 향후 10년간 약 28조9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건조 비용 역시 적지 않은 부담이다. 아울러 북한·중국·러시아의 반발과 견제, 일본 등 주변국의 시선에도 대응해야 한다.결국 관건은 자주국방과 동맹 강화의 균형이다. 이번 위원회에선 전작권 조기 전환도 논의됐지만, 원잠 확보와 미래 안보체제 구축이 안정적으로 추진되려면 시기 못지않게 한·미 간 신뢰 강화와 전략 조율이 중요하다. 우리가 원잠을 추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핵을 지닌 북한의 위협에 맞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다. 확고한 억제력과 국민적 의지, 그리고 굳건한 한미동맹이 함께할 때 한반도의 평화 역시 더욱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사설]반도체 투톱에 2배 베팅…'빚투' '시장왜곡' 경계해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등락률을 2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의 출시에 맞춰 개인 투자자들이 큰 관심을 보인다. 투자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온라인 심화 교육까지 의무화했는데 벌써 10만명이 신청했을 정도다. 그동안 반도체 주식 상승에 합류하지 못한 투자자들이 수익률 만회의 기회로 보는 듯하다.문제는 상품의 투기성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다수의 종목을 편입해 투자 위험을 분산시킨 기존 ETF 상품과 달리 단일종목을 기초로 삼은 만큼 손실 확률이 높다. 국내 주식의 일일 가격 제한폭이 ±30%라는 점에서, 이론적으로 하루 만에 최대 60% 손실도 가능하다. 오르면 2배지만 떨어지면 대규모 계좌 손실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상품의 출시 배경은 수긍할 만하다. 지난해 증시가 급등한 가운데 '서학 개미'의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연초부터 도입 논의가 본격화했다. 앞서 홍콩 증시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대상으로 레버리지 ETF가 상장돼 크게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국내에선 10개 이상의 종목을 편입하도록 의무화돼있어 투자자 불만이 컸다.그런데 자금 이탈을 막고 투자자 선택지를 넓힌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정작 금융 당국은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은 이달에만 두 차례 보도자료를 내고 투자 주의를 당부했다. 철저하게 단기용으로만 투자할 것을 권고했다. 최근 시장 상황을 보면 금감원이 긴장할 만하다. 증권사에서 대출받아 투자한 '빚투'가 36조원에 이른다. 마이너스 통장 고금리를 감수하고 돈을 빌리는 투자자들도 많다. 특히 하락 시에도 손절매하지 않고 '조정 시 매수'를 외치며 외국인 투자자 물량을 받아내고 있다. 이렇듯 공격적 투자 행태를 보이는 개인들이 레버리지까지 활용하면 손실 위험은 그만큼 커진다.나아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레버리지로 자금이 더 몰릴 경우 시장 전체를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 증시는 '반도체 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두 종목의 시가총액 비중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반도체 투톱에 대한 레버리지 투자까지 늘면서 단기 수익 추구 성향이 확대되면 등락에 따라 시장 건전성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금융 당국은 이번 레버리지 ETF 출시가 건전한 자산시장 육성이라는 정책 취지와 충돌하지 않게 거래 동향을 주시하고 감독해야 한다. 온라인 교육도 위험도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내실을 강화하길 바란다. 단기 고수익 심리로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개인 투자자들이다.
[사설]철거 완료 앞두고 도심 고가 붕괴… 또 이런 일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또다시 대형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철거 공사를 진행하던 서대문구의 서소문 고가차도에서 상판 일부가 무너지면서 아래에 있던 차량과 작업자를 덮쳤다. 사고로 3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는 등 인명 피해가 컸다. 또 잔해물이 철로 주변을 덮치면서 서울역∼신촌역 구간에서 단전이 발생해 열차 운행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사고 현장에서는 59년간 사용된 노후 고가도로를 전면 개축하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철거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당초 철거 공사는 6월 초 완료될 예정으로 거의 마무리 단계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번 사고로 시민들은 일상 공간에서 언제든 사고를 마주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확인했다. 특히 공사 현장 주변은 출퇴근 시 차량으로 붐비던 곳이었다. 향후 비슷한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이 우선이다. 특히 이번 사고에서 사전 징후가 없었는지도 살펴야 한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새벽에 고가도로 절단 작업을 하다 단차가 생겨 일부가 주저앉아 공사를 중단했고, 오후에 실시한 안전진단 작업 중 붕괴가 일어났다고 한다. 위험이 예고됐는데도 추가 작업을 한 것은 아닌지, 현장 통제는 제대로 됐는지 정확한 규명이 필요하다.나아가 전국 각지의 주요 구조물에 대해 진행하는 철거 공사도 긴급 점검할 것을 제안한다. 철거 공사는 노후화된 구조물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신축 공사보다 위험성이 큰 만큼 더욱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 비단 철거 공사 현장이 아니더라도 사용 연수가 오래된 다른 교량이나 시설물도 다시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일회성 점검이 아니라 철거 공사장과 노후 시설물 관리의 매뉴얼에 빈틈은 없는지 시스템 전반의 허점도 함께 파악해야 재발 방지 효과가 있을 것이다. 시민들이 매일 다니는 도로와 시설물이 불안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사설]'탱크데이' '일베'… 정치 아닌 시민의 상식으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6일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과 관련해 직접 사과했다. 그는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내부 시스템 점검과 사회적 책임 강화를 언급했다. 신세계그룹도 자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5·18 민주화운동을 의도적으로 폄훼하려 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그룹 차원의 관리 부실과 역사적 감수성 부족에 대해선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기업이 사회적 논란이나 공분을 일으켰다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마케팅 실수로만 넘기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5·18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이자 현대사의 비극이다. 이를 연상시키는 표현이 상업적 이벤트 문구로 사용됐다는 사실 만으로도 많은 시민에게 상처와 불쾌감을 안겼다. 세월호 참사 시점의 '사이렌 머그' 논란까지 다시 소환된 것도 마찬가지다. 이제 기업은 "의도가 없었다"라는 말만으로 넘어갈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적 감수성과 사회적 공감 능력 역시 기업 경영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다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시민의 비판과 소비자 불매는 자연스러운 시장의 반응이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직접 특정 기업을 압박하거나 사회적 공격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논란 이후 공공기관의 배제 움직임이나 행정적 압박, 수사 확대 요구가 이어지는 흐름은 과잉 대응 논란을 부를 수 있다.법적 판단은 절차에 따라 이뤄지면 된다. 중요한 것은 냉정한 사실 판단이지 감정적 응징 경쟁이 아니다. 대통령까지 나서 '저질 장사치'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모습은 국가가 특정 기업에 사회적 낙인을 찍는 장면으로 비칠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감정적 개입은 신중해야 한다. 반대로 '투표장에 스벅 커피잔 들고 가기' 등 이번 사태를 선거와 연결짓는 일부 야당의 태도 역시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베' 폐쇄론 역시 비슷한 고민을 안긴다. 공동체의 아픔과 희생을 조롱하고 놀이로 소비하는 문화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이트 하나를 닫는다고 혐오와 조롱의 문화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유사 성향의 공간은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며 반복적으로 재생산될 가능성이 크다. 과도한 혐오와 조롱은 특정 사이트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극단화가 낳은 병리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기업 제재나 커뮤니티 폐쇄는 당장의 분노를 달래는 효과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근본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은 결국 시민사회의 상식과 공론장의 자정 능력에서 나온다. 시민들이 스스로 혐오와 조롱을 부끄러운 문화로 규정하고, 역사와 재난의 희생을 소비와 놀이의 대상으로 삼는 행태를 외면할 때 극단은 비로소 주변부로 밀려난다. 정치의 과잉 대응보다 더 강한 힘은 시민의 '성숙한 상식'이다.
[사설]"집단 사고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새겨들어야 할 고언
이석연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장이 21일 대통령 자문회의·위원회 비공개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집단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며 "토론과 반대 의견 개진 없이 이뤄진 정책이나 의사 결정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국민 생활은 물론 국민통합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도 했다고 한다. 권력 내부에서 나온 공개적 고언이라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일방통행식 의사결정이 굳어지면 조직은 쉽게 집단 사고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크다. 최근 국무회의를 비롯한 주요 국정회의가 대통령의 의중과 지시를 확인하는 구조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부 출범 초기와 달리 정책의 부작용을 점검하거나 대안을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부동산 정책처럼 민감한 현안에서 대통령이 개인 SNS 등을 통해 먼저 방향을 제시하면, 내각과 참모진이 공개적으로 다른 의견을 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우려 역시 제기된다.최근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이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한국인 구금 문제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네타냐후 총리 체포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은 외교적으로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었다. 생중계되는 공개 회의에서 충분한 사전 점검 없이 나온 발언이라면 파장을 신중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이 위원장은 보수 정부 시절 법제처장을 지낸 인사다. 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그를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며 "쓴소리를 아끼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위원장의 최근 발언들은 개인적 돌출 행동이라기보다 대통령이 스스로 주문했던 역할 수행에 가깝다. 이 위원장은 앞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했고, '법 왜곡죄'에 대해서도 "문명국에서 보기 드문 입법"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그런데도 청와대 행정관이 부총리급 위원장에게 '엄중히 고지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경고성 메시지를 보낸 것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우연적 사건이 아니라 정권 내부의 이견이나 쓴소리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폐쇄적 기강 잡기의 일환이었다면 이는 단호히 경계해야 할 위험 신호다. 곧 취임 1년을 맞는 이 대통령은 "모두의 대통령"을 약속했던 초심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반대 의견과 비판을 제도적으로 수렴할 장치를 갖추는 것은 국정 안정과 국민통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미국처럼 정책의 문제점과 반론을 전담하는 '레드팀' 구축도 검토할 만하다. 국정은 대통령 1인의 개인기로만 끌고 갈 수는 없다.
[사설]국민성장펀드 '오픈런'…흥행 아닌 실력이 관건
코스피 8000시대의 기대감 속에 출시된 국민성장펀드의 열기가 초반부터 뜨겁다. 판매 은행에선 아침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이 벌어졌고, 증권사 온라인 판매 물량도 10분 만에 소진됐을 정도다. 펀드에서 손실이 나면 정부가 메워준다는 이례적 구조에다 투자액의 최대 40%까지 소득공제를 해주는 파격적 혜택까지 더해지니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릴 만하다. 전체 판매량의 20%를 서민 전용으로 배정한 점도 눈길을 끈다.흥행 배경은 분명하다. 현재 증시에서 대기하는 고객예탁금은 130조원으로 올들어 45%가량 불어났다. 마땅한 투자처만 있으면 언제든 움직일 대기 자금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정책 지원까지 얹혀진 상품이 출시되자 자금이 한꺼번에 몰린 것이다. 이제 관심은 펀드가 장기적으로 안정적 성과를 낼 수 있느냐다. 과거에도 녹색성장 펀드(이명박 정부), 통일 대박 펀드(박근혜 정부), 뉴딜 펀드(문재인 정부) 등이 나왔지만 집권 초기 강력한 정책 동력으로 주목받다가 시들해진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갈수록 수익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자금 유입도 줄어들었다.이번 국민성장펀드가 다른 점은 인공지능·에너지·바이오 등 이전보다 많은 12개의 첨단전략 산업에서 투자 기업을 발굴한다는 구상을 내세운 것이다. 특히 부동산에 쏠린 시중자금을 증시로 옮기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머니 무브' 정책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투자시장 육성을 위해선 증시에 좋은 기업들이 많아져야 하고, 없다면 자금을 대고 키워야 한다. 그동안 첨단 기업이 많다는 코스닥만 해도 투기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산업 생태계와 혁신을 주도하는 미국 나스닥 같은 역할을 하지 못했다. 코스피 역시 삼성전자, 하이닉스 같은 일부 대형주에 상승을 의존해온 측면이 있다다만 뜨거운 흥행 뒤에 가려진 위험 요인은 경계해야 한다. 정부가 손실을 20% 보전한다지만 이는 정책자금을 포함한 전체 펀드 기준이고, 그중 일부인 민간 투자자 보전율은 낮아질 수 있다고 한다. 세금으로 투자 손실을 메워주느냐는 논란도 나올 수 있다. 무엇보다 조심스러운 것은 시장 상황이다. 주가가 단기간 급등한 가운데 향후 증시 변동성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글로벌 물가 상승과 국채금리 불안으로 증시 경고음이 나오는 가운데 펀드 만기는 5년으로 장기간 자금이 묶일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결국 국민성장펀드의 미래는 흥행이나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 성과에 달렸다. 정부가 민관 합동으로 기업 발굴 협의체까지 가동했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펀드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이어 미래 산업 생태계를 이끌 기업을 길러내는 새로운 플랫폼이 될 지는 결국 실력으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사설]삼성 노사 타결의 '긍정'과 '위험'
삼성전자 노사가 극적으로 성과급 협상을 타결짓고 파업 사태를 피하면서 곳곳에서 안도의 목소리가 나온다. 합의안의 핵심은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과 별도로 반도체 부문의 '특별 경영성과급'을 신설한 것이다. 재원은 노사가 합의해 선정한 성과의 10.5%로 정했다. 100조원 가량 피해가 우려되던 파업 사태는 넘겼지만, 이번 협상 결과는 '긍정'과 '위험' 요인을 동시에 안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산업계에 미칠 파장도 클 전망이다.우선 회사 측이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일률 지급하는 방식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나름대로 성과급 원칙을 지킨 것은 긍정적이다. 특별 성과급에 여러 조건을 달아 완전한 고정화를 피했고 지급 기간도 10년으로 제한했다. 일정 부분 '성과 연동' 원칙을 반영한 셈이다. 특히 특별 성과급을 자사주로 지급하고 처분 기간을 제한한 것도 의미가 작지 않다. 현금 대신 주식 보상 방식을 택함으로써 회사의 단기 비용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조합원에게 장기적 동기를 부여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막판 최대 쟁점이던 적자 사업부 성과급 문제도 절충점을 찾았다. 회사는 "성과 없는 곳에 보상은 없다"는 원칙을 고수해 왔지만, 적자 사업부 차등 지급 원칙의 시행을 내년으로 1년 유예하며 한발 물러섰다. 노조 역시 이를 전격 수용하면서 돌파구가 열렸다. 노조 입장에선 특별 성과급 체계가 신설됐고, 배분 재원이 10.5%로 명문화되면서 새로운 '성과 배분 구조'를 제도적으로 확보했다는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이번 협상에서 주목할 대목은 '숙의'의 작동이다. 협상과 결렬, 중재와 재협상을 거듭한 끝에 도출된 결과였다.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거나 감정적 충돌로 치닫는 대신, 숫자와 논리를 앞세운 끝장 토론이 이어졌다. 마지막 협상일 6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협상이 상징적 장면이었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사가 마지막까지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평가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갈등을 협상의 영역으로 끌고 갔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하지만 위험 요인 역시 분명하다. 삼성전자의 이번 협상 모델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도미노식' 성과급 요구가 분출할 조짐이다. 이미 LG유플러스·카카오·HD현대중공업 노조에서 영업이익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자칫하면 기업별·업종별 특성과 무관하게 '영업이익 N%' 요구가 일종의 새로운 기준처럼 굳어질 수 있다. 특히 적자 사업부 성과급 문제는 앞으로도 논란이 불가피하다. 이번 합의안을 적용하면 적자가 유력한 비메모리 사업부의 직원에게도 1억6000만원 수준의 보상이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성과주의 원칙과 조직 간 형평성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삼성전자 안팎에서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반도체 부문 중심의 합의라는 이유로 다른 사업부 구성원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고, 일부에선 조합원 탈퇴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외부에서는 주주단체가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번 합의안이 주주 재산권을 침해하며 주주총회 의결 없이 추진된 만큼 무효라는 주장이다. 삼성전자 이후 다른 사업장에서도 노조가 이번 합의안의 득실을 따지며 새로운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 파업 사태는 넘겼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협상 과정과 결과에서 드러난 긍정과 위험 요인을 면밀히 분석하고 글로벌 기준에 맞으면서도 산업계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장기 보상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의 성장 기반과 미래 투자 여력을 훼손하지 않는 일이다. 성과 배분 갈등이 기업 경쟁력 자체를 잠식하는 순간, 그 피해는 결국 노사는 물론 국가 경제 모두에 돌아갈 것이다.
[사설]파업은 멈췄지만 질문은 남았다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협상이 파업 직전 극적으로 타결됐다. 21일 파업 돌입이 유력했지만, 긴 진통 끝에 20일 밤 노사가 접점을 찾았다. 노사 잠정 합의서에 따르면 DS(반도체) 부문 특별경영성과급 재원은 '노사가 합의해 선정한 사업 성과의 10.5%'로 정해졌다. 성과급 배분 비율은 부문 40%, 사업부 60% 구조다. 다만 적용 시점은 2027년분부터다. DS부분 특별경영성과급은 세후 전핵 자사주로 지급하기로 했다. 최대 100조 원의 손실과 국가 경제 신뢰 하락을 초래할 수 있는 반도체 파업을 멈춘 것은 다행이다. 그간 갈등을 딛고 새로운 도약, 초격차 경쟁에 힘을 모아야 한다. 다만 이번 합의는 우리 사회에 무거운 과제를 남겼다. 성과급을 둘러싼 충돌은 임금 교섭의 범위를 넘어 이익 배분의 기준, 쟁의의 정당성, 주주 권한, 기업 지배구조라는 더 큰 질문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관련 논쟁은 이미 반도체를 넘어 자동차·조선·통신 등 산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쟁점의 본질은 "무엇을 기준으로 나눌 것인가"였다. 노조는 영업이익 연동을, 회사는 '경제적부가가치(EVA)' 중심 체계를 고수했다. EVA는 회사가 번 돈에서 각종 비용을 뺀 뒤 얼마나 남았는지를 따지는 지표다. 영업이익에 연동하면 보상은 이익의 사후 분배에 가까워진다. 이 지점에서 임금과 배당, 노사 협상과 주주 권한의 경계가 흐려진다. 실제로 주주단체가 법적 대응까지 거론하며 문제를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유사한 요구가 다른 대기업으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합의 이후, 비슷한 요구가 교섭 현장의 기준처럼 인식되는 흐름도 감지된다. 성과급 기준은 개별 기업을 넘어 산업 전반의 보상 체계와 투자 여력,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사안이 됐다.이제 관건은 장기적으로 합리적 기준을 명확히 세우는 일이다. 영업이익이나 EVA 같은 단일 지표를 넘어 잉여현금흐름, 성과 증가분, 중장기 투자 여력을 함께 반영하는 다층적 기준이 필요하다. 현금 중심 보상에서 벗어나 장기 성과와 연동된 주식 보상을 병행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그래야 임직원, 회사, 주주의 이해가 긴 호흡에서 맞물리는 지속 가능한 체계가 될 수 있다. 나아가 그 기준에 대한 노사 신뢰 형성도 필요한 과제다. 노조도 성찰할 지점이 많다. 정당한 보상 요구는 존중돼야 하지만, 높은 소득과 강한 교섭력을 가진 대기업 노조가 과거의 약자 프레임에만 기대서는 공감을 얻기 어렵다. 국가 핵심 산업의 한 축이라는 자각 위에서, 요구의 방식 또한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다행히 최악의 파국은 면했지만,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일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는 삼성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물론 시장도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아내야 하는 국가적 이슈다.
[사설]정쟁에 갇힌 지방선거, 막은 올랐는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21일 시작된다. 지방선거는 주민 삶의 질과 지역 발전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정치 과정이다. 특히 이번 선거는 계엄과 탄핵, 정권교체 이후 1년 만에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라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도 작지 않다. '윤 어게인' 논란, '여당 독주' 논란 등 정쟁적 이슈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가운데 선거전 초반 분위기는 기대보다 우려를 키우고 있다. 당초 선거 구도는 대통령 지지율을 바탕으로 여당 우세 흐름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보수 진영 결집 움직임 속에 서울·부산·대구 등 일부 지역에서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아직 부동층이 적지 않은 만큼 앞으로 판세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럴수록 이번 선거는 지역 발전 비전과 정책 경쟁의 장이 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실망스럽다. 정책 경쟁보다 정쟁과 흠집내기가 앞서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최대 승부처인 서울시장 선거만 봐도 그렇다. 여당은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삼성역 구간 '철근 누락'의혹을 앞세워 현 시장인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책임론을 부각하고 있다. 야당은 정원오 민주당 후보의 폭행 전과 부실해명 의혹을 쟁점화하고 있다. 선거가 상대 후보 흠집내기에 매몰될수록 정작 시민 삶과 직결된 정책 논쟁은 실종될 뿐 아니라 정치 혐오를 유발하고 국민통합의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후보 수준 논란도 심각하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후보자 총 7829명 가운데 무려 34%가 전과자라고 한다. 국가보안법 위반, 음주운전은 물론 사기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이도 다수다. 후보들의 자질이 이토록 함량미달인 것은 무책임한 공천탓도 크다. 또 역대 최대 인원인 513명의 후보자가 무투표로 당선이 확정됐다. 이런 무투표 당선 사례 증가는 건강한 지방자치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 정당 정치의 실패이자 민주주의의 퇴보다.유력 후보들이 TV 토론회를 기피하는 모습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행법상 지방선거 법정 토론은 '1회 이상'이다. 이를 틈타 일부 우세 후보들은 선관위 주최 법정 토론 1회만 참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유권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을 가볍게 여기는 오만한 행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유권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13일의 선거기간 동안 선거공보와 후보자 토론회 등을 면밀히 살펴 '누가 진정으로 지역 발전의 적임자인가'를 냉정하게 검증해야 한다. 이번 선거가 대한민국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사설]삼전 노조 '파국' 대신 '도약'으로
삼성전자 노조가 예고한 총파업을 이틀 남겨 두고, 성과급 배분 방식을 둘러싼 중앙노동위원회의 '사후 조정'이 이틀째 이어졌다. 중앙노동위원장은 "노사 간 이견이 좁혀지고 있다"면서도 '중노위 자체 조정안'을 제시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당장 타결되기는 쉽지 않다는 기류로 읽힌다. 앞서 노사는 전날에도 3차례 협상에 나섰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헌법이 보장한 노동권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산업과 공동체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타협'이나 '사회적 책임' 역시 중요한 가치다. 지금은 반도체 산업의 초호황 사이클을 타고, 여러 업종과 공급망으로 온기가 퍼지는 중요한 시기다. 몇 년간의 긴 침체를 딛고 마주한 성과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삼성 구성원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시점에 '단기적 성과급' 때문에 끝내 총파업을 강행할 경우, 이는 돌이키기 어려운 선택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 직원의 지난해 1인당 평균 연봉은 '1억5800만원'으로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회사는 1인당 6억원 수준의 성과급(메모리 사업부 기준)도 약속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한국 직장인 상위 1%의 2배 가까운 보상이다. 이런데도 파업을 강행할 경우 과연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반대로 협상 막바지에 노조가 대승적 결단을 내려 합리적인 수준의 최종 협상안을 받아들이면 여론의 흐름 역시 달라질 수 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노동권만큼 기업경영권도 존중돼야 한다'고 밝혀 긴급조정권 발동을 시사했다. 하지만 긴급조정권까지 가는 결말은 대통령뿐 아니라 노사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노조 앞에는 이제 두 갈래의 길이 놓여 있다. 끝내 파국으로 치달을 것인가, 아니면 미래산업 도약의 '주역'으로 남을 것인가. 객관적으로 보면 답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한국 대표기업의 구성원으로서 사측과 함께 회사 미래를 만들어가는 위치에 있다는 점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극한 상황까지 가는 노사 대치를 피하고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경쟁하며 더 많은 성과와 보상을 이뤄내는 길에 힘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 결국 노조 자신의 기반과 사회적 신뢰를 함께 지키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사설]"폭풍우 국제정세"…한일 '셔틀외교' 순항 이어져야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9일 경북 안동에서 4개월 만에 다시 마주 앉았다. 지난 1월 이 대통령의 일본 나라현 방문의 답방 형태로 성사된 이번 회담은 한·일 외교사상 최초의 '상호 고향 방문'이라는 새로운 장면을 만들었다. 다카이치 총리의 극우 성향을 우려하던 목소리를 불식시키고, 정례적 소통 채널을 제도화했다는 점에서도 평가할 만하다. 두 정상의 긴밀한 공조는 복합적인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동병상련'인 양국 처지와 무관치 않다. 미국의 동맹 재평가와 관세전쟁, 중국의 부상, 북한 핵·미사일 개발 고도화 등으로 역내 안보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한·일의 협력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대만 문제를 중국과의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음을 내비치면서 동맹국인 미국에 대한 불확실성이 부쩍 커졌다. 특히 중동 리스크 장기화로 현재 세계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이 계속되고 있다. 두 정상의 "지금 국제정세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다"(이 대통령), "대단히 어려운 시기"(다카이치 총리)라는 진단은 현재 양국이 처한 엄중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회담이 '에너지 공급망 안정'을 최우선 의제로 다루고, 비상시 원유·석유제품을 상호 융통하는 민관 대화 등 구체적 협력 방안을 '공동문서'로 도출한 것은 매우 실효성 있는 성과로 볼 수 있다. 105분간의 정상회담을 마친 후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양국이 LNG·원유 협력을 강화하고, 원유 비축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동발 공급망 쇼크에 취약한 석유 소비국인 한·일이 생존을 위한 공동 방어선을 구축한 셈이다. 양국의 정례적 소통이 난국을 극복하는 계기로 이어지길 바란다.양국 정상은 아울러 조세이 탄광에서 발견된 유해의 DNA 감정과 관련, "감정의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 설명대로 '작지만 매우 의미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한·일 관계에는 숙명적으로 역사 문제라는 불안 요소가 잠복해 있다. 지금은 명분보다 국익을 우선시하는 실리 외교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이번 안동 회담이 선언적 의미를 넘어 동북아의 불확실성을 돌파하고, 에너지 위기 대응에 협력 기반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사설]법원이 그은 '권리의 경계'… 삼전 노조 응답할 때
법원이 삼성전자 노조의 쟁의 방식에 제동을 걸었다. 수원지법은 18일, 파업 중에도 안전보호시설 유지와 웨이퍼 변질 방지 작업을 평시 수준으로 수행하라고 결정했다. 생산시설 점거나 다른 근로자의 출입 방해도 금지했다. 삼성전자가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파업 금지 가처분에서, 법원이 사실상 회사 측 손을 들어준 셈이다. 쟁의권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지만, 국가 기간산업의 안전과 생산 기반까지 위협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판단이다. 반도체 산업의 특수성은 명확하다. 공정이 멈추면 곧바로 막대한 손실로 이어지고, 클린룸과 설비는 24시간 관리가 필수다. 이런 구조를 외면한 채 생산 차질 자체를 압박 수단으로 삼는다면, 피해는 기업을 넘어 협력업체와 글로벌 공급망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법원이 '권리의 한계선'을 그은 배경도 여기에 있다.사법부 판단과 맞물려 사태의 엄중함을 보여주는 장면들도 이어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례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고, 정부는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긴급조정권은 1963년 도입 이후 지금까지 네 차례만 발동된 예외적 조치다. 대통령 역시 노동권과 경영권의 균형을 강조했다. 사법·행정·정치가 동시에 우려를 표하는 것도 드문 일이다. 이번 사태가 국가 경제의 안정성과 직결된 문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음을 보여준다.이런 가운데 정부가 중재하는 두 번째 사후조정 회의가 19일까지 열린다. 21일로 예고된 총파업을 앞둔 사실상 마지막 협상 국면이다. 여전히 쟁점은 성과급 산정 방식과 상한선 폐지 여부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재원으로 한 성과급 제도화와 상한 폐지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현재 그런 요구가 폭넓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노조 측도 숙고할 필요가 있다. AI 확산과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환경에서 반도체 기업은 막대한 선행 투자와 연구개발 비용을 상시적으로 감당해야 한다. 눈앞의 호황을 근거로 과실의 상당 부분을 단기 성과급으로 고착화하자는 요구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기업의 장기 경쟁력을 잠식할 위험이 크고, 결국 그 부담은 삼성전자 구성원들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파업 예고일까지 사흘도 채 남지 않았다. 삼성전자 노조는 "법원 결정을 존중해 5월 21일로 예정된 쟁의활동을 할 것"이라고 했다. 노조 측도 파국을 원치는 않을 것이다.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보상 체계'라는 목표 아래 서로 마음을 연다면 타협의 공간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단지 한 기업이 아니다. 한국 수출과 공급망, 첨단 산업 경쟁력의 상징적 축이다. 삼성의 자존감을 보여주길 바란다. 긴급 조정권이 실제 발동되는 상황까지 가서야 되겠나.
[사설]초호황 속 갈등 딛고 지속 성장 이끄는 '시장의 힘'
반도체·방산·조선 등 주력 제조업이 동시에 치솟는 유례없는 호황 속에서, 그 성과의 배분을 둘러싼 갈등과 분열 역시 전례 없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성과급 상한 폐지와 영업이익 15% 지급의 '제도화'를 둘러싼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출구를 찾지 못하자 정부가 최후 수단으로 여겨지던 '긴급조정' 카드까지 공개 거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HD현대중공업 등 다른 업종에서도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요구하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이는 초호황의 과실이 어떻게 사회적 긴장으로 번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불황기의 갈등이 생존을 둘러싼 충돌이라면, 초호황기의 갈등은 배분 경쟁에 가깝다. 노동자는 더 많은 성과급을 요구하고, 주주는 배당 확대를 원한다. 협력업체와의 격차, 산업 간·세대 간 박탈감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내수와 자영업 경기는 여전히 냉랭하고, 자본과 인재 역시 승자 산업으로만 빠르게 쏠리고 있다.초호황기의 역설적 난국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합의의 틀을 만들어갈 것인지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다. 저마다 "이 참에 한몫 챙기고 보자"는 식의 탐욕과 한탕주의가 만연하는 사회, 이를 조정하고 통제할 능력을 상실한 나라에 무슨 국가적 비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기업과 노조, 정부 모두 각자 위치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 시장의 합리적 조정 기능도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당장 삼성전자 사태만 봐도 그렇다. 노조가 요구하는 영업이익 15% 지급이 어떤 객관적 기준과 산업 논리에 근거한 것인지 설득력을 찾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금융시장과 싱크탱크, 언론과 시민사회가 함께 작동하는 민간 차원의 조정 기능이다. 자본과 인재, 기술이 필요한 곳으로 흐르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집단지성의 체계가 필요하다. 노동과 자본의 기여, 미래 투자의 필요성을 놓고 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금융시장은 그 기준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장치다. 단기 성과급 경쟁에 치우쳐 성장 동력을 약화시키는 기업에는 가치 하락의 신호를 보내고, 장기 기술 축적과 미래 투자에 매진하는 기업에는 '밸류업 프리미엄'으로 응답해야 한다. 연구기관 역시 현재의 호황이 구조적 전환인지 일시적 파동인지 냉정하게 분석해 경제 주체들이 자만이나 공포에 휩쓸리지 않도록 판단의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언론과 시민사회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노사 갈등을 단순 중계하거나 어느 한쪽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머물러선 안 된다. 호황의 결실이 산업 생태계 전반과 청년 세대의 기회로 확산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기업의 성과가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위한 조건을 공론의 장에서 다듬는 일 역시 중요한 책무다. 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기준과 방향을 만들어야 갈등 역시 줄어들 수 있다.AI 확산과 미·중 경쟁이라는 외부 환경은 최근의 호황을 일시적 특수가 아니라 구조적 전환 국면으로 바꾸고 있는 측면이 있다. 우리는 과연 이 초호황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가. 불황의 위험은 누구나 경계한다. 그러나 초호황기의 위험은 불황처럼 선명하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배의 크기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초호황의 과실을 미래 투자와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으로 연결하는 성숙한 조정 능력이다. 호황기에 지켜낸 절제와 균형감, 합리성이야말로 결국 다음 불황을 버텨낼 힘이 될 것이다. 삼성전자 사태가 어떤 결말을 맺든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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