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한·미 파열음 속 김정은 대미 손짓…'핵 패싱' 안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보유국 인정을 전제로 미국과의 대화 여지를 다시금 열어뒀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면 두 나라가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북미 관계는 전적으로 미국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 대해선 "영원한 적"이라며, 이재명 정부의 유화정책도 기만극이라고 비난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과 21일 노동당대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한다. 이는 한국과 미국에 다른 외교적 접근을 하는 전통적인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으로 해석된다. 다만 향후 5년간의 노선을 결정한 노동당 대회 발언이라 그 무게감이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 이어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재차 언급한 점도 눈에 띈다. 이제 관심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에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달 말 중국을 방문하는데, 이를 계기로 북미 대화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망은 엇갈린다. 만남이 어렵다는 쪽은 트럼프가 북한 이슈를 다룰 에너지나 여력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내 경제와 관세정책, 중국·이란·우크라이나 문제만으로도 벅차다는 것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만남을 공언해 왔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높게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북미 회담에 관심을 보였다. 대화가 진전되려면 선결 과제가 많다. 핵심 의제를 정하고 접점을 찾아야 한다.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전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여러차례 평양을 찾았다. 예전과 달리 김 위원장이 비핵화 논의는 불가하다는 전제를 단 만큼 양측의 입장차를 좁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 입장에서도 고려할 게 많기 때문이다. 북한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들어주면 한국·일본 등 동맹과의 관계가 틀어질 수 밖에 없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 위원장 모두 예측불허의 인물인만큼 섣부른 전망보다는 철저한 대비가 우선이어야 한다. 우리 입장에서 가장 큰 우려는 북한과 미국이 한국을 패싱해 주요 합의를 이루는 경우다. 북한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라는 건 대북제재 해제, 한미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중단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은 '북한 비핵화'란 표현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말 '한·미 핵협의그룹' 성명에선 북한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북을 '핵 세력(Nuclear power)'으로 부르기도 했다. 손익 계산을 앞세우는 트럼프가 미국 본토에 대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위협을 없애는 조건으로 북한의 계산서를 어느정도 받아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과거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웠다. 비핵화는 북미가, 남북관계는 한국이 주도하는 개념이다. 초반엔 분위기가 좋았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못했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페이스메이커(pacemaker)' 역할을 강조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역 자리를 건네고 우린 조력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 전략이 제대로 먹히려면 굳건한 한미 관계가 기본이다. 하지만 최근 한미는 연합연습 중 야외기동훈련, 주한미군의 서해 전투기 출격 훈련, 비무장지대 관할권 등 여러 이슈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 한미 불협화음을 방치한 채 막연한 '페이스메이커' 역할만 기대하다간 자칫 '핵 패싱'이란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을 수도 있다.
[사설] 주한미군 사령관의 심야 반박… 이건 또 뭔 일인가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이 24일 밤 10시 입장문을 내고 우리 군에 유감을 표명했다. 자신이 한국 군 당국에 사과했다는 언론 보도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대비태세를 두고 사과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군사훈련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최근 논란도 반박했다. 주한미군은 사전에 훈련 사실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정작 우리 군 내부에서 정보 공유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는 취지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심야에, 그것도 공개적으로 반박 입장을 내는 건 드문 일이다. 특히 사과했느니 안했느니 진실게임을 벌이는 모습은 철통 같던 한미동맹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18~19일 진행된 주한미군의 서해공해상 훈련이었다. 당시 미 전투기들이 중국방공식별구역(CADIZ) 인근까지 접근하면서 중국 전투기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자 안규백 국방장관과 진영승 합참의장이 이례적으로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고 한다. 훈련 계획을 사전에 충분히 상의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국방부 대변인은 브런슨 사령관이 우리측에 사과했다는 기사에 "일정 부분 사실로 알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런데 당사자가 대놓고 불편함을 드러내면서 정면 반박에 나선 것이다. 이례적 훈련, 이례적 항의, 이례적 반박…. 그야말로 이례적인 일의 연속이다. 물론 이번 한·미간의 불협화음을 과대 해석하는 건 피해야 한다. 정치권이 자기 입맛에 따라 논란을 키우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드러난 소통 혼선 문제가 가볍지 않은 만큼 철저히 조사해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먼저 우리 군 당국은 미군의 설명대로 서해훈련에 대한 사전 통보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해야 한다. 브런슨 사령관의 주장이 맞다면 군 수뇌부가 잘못된 정보로 미군 측에 항의한 셈이 된다. 군 기강 문제로 번질 수밖에 없다. 미군이 훈련 사실만 알려주고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동맹 관계는 정보 공유의 깊이로 평가되는 만큼 그 배경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중일 갈등 등 동북아 환경이 유동적인 상황에서 한·미 관계가 흔들리는 모습을 노출하는 건 우려스런 일이다. 주변국가들에도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게다가 한국과 미국 두 나라만의 현안도 수두룩하다. 당장 핵추진 잠수함 건조,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등을 협의해야 하는데 미 대표단 방한이 미뤄지고 있다. 한국 정부가 9·19 군사합의 복원을 위해 남북 접경지역에 비행금지 구역을 재설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미측은 미온적이다. 다음달 한미 연합훈련은 야외 기동훈련을 줄이자는 우리 입장과 미군의 입장차가 큰 상태다. 이런 난제들을 풀려면 양국간의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 브런슨 사령관은 입장문에서 비공개 대화가 선택적으로 공개되고 있다고 했는데, 소통과 신뢰 문제를 노골적으로 지적한 셈이다. 지금 필요한 건 감정적 공방이 아니라 제도적 보완이다. 기본적으로 중국과 북한을 바라보는 한·미 양국의 시각차가 존재한다. 미국은 새 국가안보전략에 따라 중국 견제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지만, 우린 중국을 의식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에 소극적이다.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전략적 대화를 강화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한미 군사훈련 사전 협의 절차 명문화, 고위급 핫라인 강화, 9·19 합의 관련 한미 공동 검증 등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다. 소통 방식 또한 중요하다. 이견이 있더라도 물밑에서 조율하고 통일된 메시지를 내야 한다. 공개적으로 입장차를 드러내는 건 불필요한 갈등만 키울 수 있다. 동맹 관계는 세밀한 리스크 관리와 상호 존중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사설] '사법개혁 3법', 헌법의 무게부터 직시해야
민주당이 이른바 '사법개혁 3법'의 국회 본회의 처리를 공언했다. 이에 대법원은 전국법원장회의를 열어 각급 법원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입법부와 사법부 간 긴장이 고조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기관 간 힘겨루기 양상에 앞서, 이번 법안이 지닌 헌법적 무게부터 직시할 필요가 있다. 3법의 골자는 판·검사의 고의적 법왜곡을 처벌하는 '법왜곡죄' 신설, 법원 판결도 헌재 심판 대상으로 삼는 '재판소원' 도입, 그리고 대법관 증원이다. 민주당은 사법 책임성과 국민 기본권 보호, 상고심 적체 해소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입법 취지 자체를 전면 부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각종 위헌 소지와 사법부 독립 훼손 우려 등 제도의 설계 방식과 파급 효과다. 우선 법왜곡죄는 법 적용의 자의성을 통제하겠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고의'와 '왜곡' 판단 기준이 모호해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다. 법관의 재판상 판단을 사후적으로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방식이 사법 독립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재판소원 도입 역시 국민 기본권 보장이라는 대의를 내세운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까지 헌법소원을 허용할 경우 사실상 '4심제'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송의 장기화와 남발, 국민의 법률비용 증가라는 부작용 등에 대한 보완책이 충분히 제시돼야 한다.대법관을 기존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대법관 증원 자체는 신속하고 충실한 상고심 진행을 위한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정권 임기 중 대다수 대법관을 새로 임명하는 구조가 된다면, 사법부 구성의 정치적 편중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또 대법관을 대폭 늘리면 중견 판사들도 대거 대법원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하급심이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사법제도 개편은 국민의 권리 구제 방식과 직결되고, 권력분립이라는 헌법 질서의 근간과 맞닿아 있다. 제도 취지와 별개로 위헌 논란과 부작용 우려가 제기된다면 이를 충분히 검토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숙의'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 다수 의석을 앞세운 일방적 처리는 입법권 남용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사법 체계 혼란뿐 아니라 입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떨어뜨릴 수 있다. 사법개혁의 이름으로 헌법의 균형추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가속 페달이 아니라 브레이크다.
[사설] '예측불허' 트럼프 관세…'엉뚱한 불똥'은 막아야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이 지난 20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한 상호관세 부과가 위법하다고 판결했을 때만 해도, 트럼프 관세정책에 제동이 걸릴 거라는 예상도 나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15%의 '글로벌 관세'를 새로 부과하는 등 '플랜B'를 가동했고, 미 관세당국의 후속 조치도 빨라지고 있다.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무역법 301조에 기반한 불공정 무역관행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조사 범위가 확대되면 우리도 비관세장벽이나 미국 기업 차별을 고리로 보복관세를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주력 수출 품목에 추가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하나하나 한국경제에 큰 역풍을 불러 올 수 있는 사안이다. 통상 분야 불확실성이 커지자 우리 정부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비공개 당정청 회의와 '민관합동대책회의',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잇따라 열었다. 국회는 별도로 상임위 차원에서 관세 대책을 따졌다. 새로운 변수가 돌출한 만큼 정부와 기업, 국회가 기민하게 머리를 맞대는 건 중요한 일이다. 다만 관세 협상을 둘러싼 여야의 시각차가 여전히 큰 만큼 이를 좁히려는 노력도 포기해선 안된다. 당장 24일 국회 대미투자특별위원회가 특별법 공청회를 연다. 정쟁을 하더라도 국익 앞에선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국회가 후속 입법에 나서지 않아 관세를 더 올리겠다는 등의 트럼프 압박이 반복돼선 안된다. 한미 관세협상은 다른 나라보다 더 정교하고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는 일이다. 단순히 투자 금액과 관세율만 다루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미 협상에 따르면 핵추진 잠수함 건조 등 안보 이슈가 통상 문제에 밀접하게 얽혀 있다. 최근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한반도 안보 상황을 흔들고 있다. 안보와 경제가 맞물려 돌아가는 상황에서 섣불리 대미 투자 규모를 줄이거나 관세 환급을 요구하는 건 불필요한 논란을 부를 수 있다. 다만 기존 합의의 틀을 지키면서도 추가 협상을 통해 지켜내야 할 부분이 있다. 먼저 미국이 무역법 301조에 따라 보복 관세를 때리지 않도록 잘 방어해야 한다. 최근 쿠팡 사례에서도 봤듯이 일방적 주장이 로비를 통해 미국 정부·의회에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근거 없는 주장이 무역 보복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미국을 설득하고 적극 협상해야 한다. 온라인 플랫폼법, 디지털 규제, 구글 고정밀지도 반출 등 비관세 장벽에선 줄건 주고 받을 건 받는 실리적 접근이 요구된다. 품목별 관세율이 올라가지 않도록 데이터에 기반한 협상에 나서는 것도 필요하다.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미국 내 기류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의 24일 국정 연설, 다음달 발간될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부터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미 행정부와 의회에 대한 정보 수집을 더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대통령부터 실무자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에 맞는 소통을 해야 한다. 예상치 못한 관세를 부과받거나 또다른 주력 산업으로 불똥이 튀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인 발언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한미 동맹에 균열이 없는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재연돼선 안된다. 통상과 안보의 복합적 혼돈 국면에서 이재명 정부의 역량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사설] 尹 "우리 싸움 끝 아냐"… 대체 언제까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하루만에 입장문을 냈다. 그는 좌절과 고난을 겪은 국민에게 사과한다고 했지만 비상계엄은 "구국의 결단"이었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군이 국회에 갔기 때문에 내란이라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우리의 싸움은 끝이 아니다. 뭉치고 일어서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지지층을 향한 결집을 호소한 것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계엄이 곧 내란은 아니다"고 호응했다. 절연할 대상은 '대통령과의 절연'을 앞세워 당을 갈라치기하는 세력이라며 '윤 어게인' 세력과의 연대도 시사했다. 민주당은 사형이 선고되지 않은 것을 비판하며 사법부를 향한 공세 수위를 높였다. 정청래 대표는 "판사가 세상 물정 모르고 국민 정서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판결을 했다"며 결론적으로 조희대 사법부를 그냥 둘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종 논란 속에 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사법 3법'에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지도부 내에선 "조희대 대법원장이 탄핵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는데, 당내 강경파의 목소리가 한층 커진 분위기다.결국 여야 모두 진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누가 뭐래도 비상계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국민들이다. 법원도 이번 판결에서 우리 사회가 정치적으로 양분돼 극한의 대립을 겪고 있다며 사회적 비용을 산정할 수 없는 피해라고 지적했다. 갈라진 국민 마음을 다독이고 미래로 가는 길을 찾는 게 정치의 역할일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새 출발은커녕 갈등과 균열을 동력으로 삼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무엇보다 헌재의 탄핵 심판에 이어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는데도 여전히 현실을 외면한 채 투쟁 운운하는 윤 전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대내외 상황은 엄중하다. 관세를 내세운 미국의 투자 압박이 거세고 중일 갈등으로 인한 안보 불확실성도 커진 상황이다. 청년 일자리, 부동산 공급, 행정통합 등 국내 이슈도 산적해 있다. 이처럼 현실의 과제는 쌓여만 가는데 정치권만 과거의 전선에 묶여 있어선 안 될 것이다. 최근 방송사의 설 여론조사에서 여야 지도부 모두 과반의 부정 평가를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런 불신을 씻으려면 내란의 상처를 정략적으로 소환할 게 아니라 적극적인 민생 경쟁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윤석열 재판'이 남긴 가장 현실적인 과제일 것이다. 과거에 매달리는 정치로는 국가의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법원은 1심 재판에서 대통령과 총리, 국방장관 등 주요 인물들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일단락지었다. 23일부턴 항소심 내란전담재판부가 가동돼 신속한 2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은 법원에 맡기고 정치는 '정치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설] 尹 1심 무기징역…민주주의를 다시 쓰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1심 법원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에게도 징역 30년의 중형이 내려졌다. 법원은 약 1년전부터 치밀하게 계엄을 계획했다는 혐의를 제외하고는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헌법재판소가 파면을 통해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적·정치적 책임을 물었다면, 무기징역의 중형을 선고한 이번 판결은 내란죄 혐의를 명확히 인정하고 엄중한 사법적 책임을 물은 셈이다. 나아가 군과 경찰을 동원한 최고 통치자의 권력 남용이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기도 하다.재판부의 판단은 분명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계엄 조치가 경고성 행위에 불과하고 내란죄가 성립할 만큼의 폭행이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 자신의 명령을 잘못 해석했다고 부하들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비상계엄 선포 후 군을 국회에 보낸 게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며 "국헌 문란 목적이 인정된다"고 했다. 국회 활동을 저지하거나 마비시켜 그 기능을 못하게 만들려는 목적이 있었고 국회 봉쇄와 체포조 편성 및 운용, 중앙선관위 점거 및 서버 반출 등은 그 자체로 폭동 행위이며 한 지역의 평온을 해칠 정도의 위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그간 비상계엄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강변했지만 최고 통치권자의 권한이 오히려 중형의 근거가 됐다. 이번 사태로 군과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크게 훼손됐고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신용도가 하락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점, 수사와 재판으로 인한 피해가 큰 점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무난하게 공직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다수 공직자가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큰 아픔"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이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초래됐는데도 윤 전 대통령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재판 결과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또 민주당에선 특검의 구형대로 사형을 선고했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그러나 내란죄라는 중대 범죄의 법적 판단을 놓고 정치적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법원의 판단을 정치적 무기로만 소비하는 순간 또다른 분열과 혼란이 시작된다. 이 사건의 본질은 정권 교체나 진영 대립이 아니다. 헌정 체제에 대한 도전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형벌로 단죄될 사안인지가 쟁점이었다.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재판 결과를 놓고 정치적 유불리에 따른 소모적 정쟁으로 비화돼선 안된다. 오늘 선고가 진행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은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다. 30년 전 이 법정에서 군사반란과 내란수괴 혐의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이곳을 거쳤다. 현직 대통령 최초로 구속된 윤 전 대통령이 부끄러운 기록을 더했는데,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심경도 참담할 수밖에 없다. 이번 재판은 윤석열 개인에 대한 처벌을 넘어 대한민국 대통령제의 한계를 다시 생각하는 의미도 가진다. 그 점에서 정치권이 잊지 말아야 할 건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의 힘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뛰어 나가고, 무장한 군을 막아선 것도 시민들이었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지킬 준비가 돼 있을 때 지속되고 성숙된다는 점을 거듭 되새길 때다.
[사설] 패륜 상속 막는 '구하라법' 완결…가족의 의미 다시 묻는다
부모나 자식을 버리고 학대하는 등 부양 의무를 크게 저버린 가족은 상속권이 박탈된다. '패륜 상속인'의 범위를 확대한 민법 개정안이 12일 국회를 통과하면서다. 앞서 천륜을 저버린 부모에 한해 상속권을 제한하는 일명 '구하라법'이 올해 1월부터 시행됐다. 이번 개정안은 부모뿐 아니라 배우자·자녀를 포함한 모든 상속인으로 제한 범위를 넓혔다. 반대로 끝까지 곁에서 고인을 챙긴 가족·친지의 상속권을 보호하는 장치는 한층 강화했다. 가수 구하라씨의 실명을 딴 '구하라법'은 오랜 사회적 논란을 거쳐 현실화됐다. 2019년 구씨가 사망하자 20년간 연을 끊고 지낸 친모가 상속권을 주장해 유산의 40%를 받아갔다. 국민적 공분이 컸지만 당시 법은 '유류분(遺留分)'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유류분 제도는 법정 상속인에게 최소한의 상속분을 허용하는 것이다. 재산이 주로 장남에게 돌아가던 시절 다른 가족의 공평한 이익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구씨 친모처럼 수십 년간 소식도 모른 채 살다 자녀 재산만 챙기는 사례가 잇따랐다. 헌법재판소는 2024년 패륜 가족의 상속권을 제외할 기준이 없는 건 불합리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에 따라 '구하라법'이 만들어져 국회를 통과했고, 이번 민법 개정안은 완결판으로 볼 수 있다.국민들이 구하라씨 사건에 분노하고 개선을 요구한 건 상식과 정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이란 지위만으로 권리가 자동 부여되고 책임은 면제되는 구조는 불합리하다는 거였다. 남보다 못한 가족에게 법적 면죄부만 주는 식이라는 것이다. 특별한 연예인 가족에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라는 점도 한몫했다. 그 점에서 권리와 책임의 균형을 따지는 이번 민법 개정안은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부합한다. 다만 입법의 취지가 현장에서 잘못 나타나지 않도록 세심한 접근이 요구된다. 자녀를 돌보지 않은 부모나 패륜의 기준을 법으로 규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중대하게 부양 의무를 위반했다는 요건을 놓고서도 혼란이 생길 수 있다. 가족관계는 복잡하기 때문에 중대성과 고의성, 지속성을 토대로 '부양의무 위반'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만들어 가야 한다. 단순한 가족 갈등을 구분하지 못하면 법이 분쟁과 소송을 양산하는 도화선만 된다. 재산이 많을수록 '패륜' 주장이 전략적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법원이 판례를 통해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잡아가는 게 필요하다. 또하나 근본적인 질문도 있다. 법은 사후에 정의를 따지는 것일 뿐이다. 고령화 사회의 도래, 단절 가족 증가, 1인 가구 확대 등 사회 변화에 맞춰 가족 돌봄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구조적 문제가 해결돼야 법으로 다툴 이슈가 줄어든다. 이제 설 연휴가 시작됐다. 가족은 이름 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번 민법 개정안은 상속 그 자체를 넘어 가족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사설] 李-여야 대표 회동 무산…우리 정치의 후진성 보인 상징적 장면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오찬 회동이 만남 1시간 전 무산됐다.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에서 재판소원법과 대법관 증원법을 단독 통과시킨 데 대한 야당의 반발이 직접적 계기였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등 뒤에 칼을 숨기고 악수를 청하는 데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정청래 민주당 대표를 향해 이 대통령의 'X맨'이냐고 했고, 정 대표는 "본인이 (회동을) 요청할 때는 언제고, 예의가 눈꼽만큼도 없는 작태"라고 비난했다. 협치와 소통을 바랐던 분위기는 이전보다 더 거칠어진 비난전으로 돌아왔다. 청와대는 국회 일과 대통령 일정을 연계한 건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 앞에는 국가적 의제가 산적해 있다. 당장 대외 이슈만 봐도 미국의 관세인상 압박, 희토류 광물전쟁, '강한 일본'을 외치는 다카이치 정권의 독주, 중국의 반도체 기술 추격 등 현안이 수두룩하다. 국내적으론 광역지자체 행정통합, 주택공급대책 후속 입법, 필수의료 강화, AI 정책과 청년 일자리 대책 등이 있다. 국익과 민생에 영향을 주는 사안일수록 여야가 함께 논의하고 법안을 추진해야 국민 지지를 얻을 수 있다. 특검과 검찰·사법 이슈는 입장차가 크지만, 접점을 찾을수록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이번 회동에 국민적 관심이 모아졌던 이유다. 그런 만큼 이번 회동 무산은 우리 정치의 후진적 작동 방식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우려된다. 그간 다수 의석을 가진 여당은 힘의 논리를, 소수 야당은 반발을 택하는 구조가 반복돼 왔고 그 결과가 불과 1시간 전 회동 취소라는 상징적 장면으로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민의힘은 비쟁점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던 오후 본회의에 불참했다. 대미투자특별법 특위 첫 회의도 시작부터 파행됐다. 미국은 대미투자법 처리가 지지부진하다는 점을 고리로 관세를 다시 높이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국익 차원에서 여야가 부랴부랴 특위를 구성하고 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는데, 국내 정치가 다시 발목을 잡은 것이다. 책임 있는 정치권의 주체들이 국가적 의제를 놓고 머리를 맞대거나 충분한 논의와 조율을 거치는 과정은 온데간데 없고 매사 정략, 당리당략이 앞서고 있는 게 우리 정치의 한심한 현주소다. 여야 모두 강경 지지층의 눈치를 보며 타협의 공간을 좁혀왔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여야 갈등 상황을 보면 취소된 약속을 다시 잡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이들이 만난다고 단번에 모든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다. 지난해 첫 회동에서 '민생경제협의체'를 가동하기로 합의했지만 결국 흐지부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에선 '다시, 계속' 만나는 게 중요하다. 통계청 사회조사 등 각종 조사에서 국민들은 정치·이념 갈등을 가장 큰 사회갈등으로 꼽고 있다. 국민은 국가적 난제 앞에서 대통령과 정치권이 함께 논의하는 모습을 바라지만 한국 정치는 거꾸로 가고 있다.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국민이 부여한 책무다. 국익이 정파나 진영의 인질이 돼선 안 된다.
[사설] 일본 신생 정당 '팀 미라이' 돌풍…우리는 '정치 환멸' 출구 있나
전후 최다 의석 수를 차지한 다카이치 열풍에 묻혔지만 일본 총선에서 또하나 주목할 부분이 있다. 창당 9개월밖에 안된 신생 정당의 돌풍이다. 우리 말로 미래를 뜻하는 '팀 미라이'는 최근 중의원 선거에서 381만표를 얻으며 비례대표 의원 11명을 배출했다.팀 미라이의 약진은 극단적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을 끌어들인 덕분이다. 특히 언론사 출구조사에서 무당층이 가장 많이 선택한 야당으로 나타났다. AI 엔지니어 출신 대표가 이끄는 이 정당은 대부분 전문직 종사자로 구성돼 있다. 후보자 평균 나이도 39.5세로 젊다. 실용·기술·정책을 내세우면서 이념 정치에선 벗어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해 왔다. 기술 기반 행정개혁, AI를 활용한 정책 설계, 디지털 민주주의 구현 등을 내걸며 "전국 어디든 자율주행으로 이동할 수 있는 사회를 10년 안에 만들겠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새 정치세력은 차별화를 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팀 미라이의 성공을 단순한 화제나 이변으로만 치부하긴 어렵다. 세상은 변하는데도 구태를 벗지 못하는 정치권에 대한 피로감이 일본 만의 현상일까. 유권자의 구조적 변화가 새로운 선거결과를 이끌었다고 봐야 한다. 한국에선 요즘 개혁신당의 정치 실험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개혁신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의원 선거 99만원 패키지' 등 저비용·AI 선거를 내걸었다. 공천 신청을 온라인으로 받는데 수시 접수, 수시 심사 방식이다. 공약은 지방의회 회의록을 학습한 AI가 만들고 선거법 컨설팅은 챗봇이 해준다. 이런 시도를 작은 정당의 홍보 전략으로 폄하하는 시각도 있지만, 정치 문턱을 낮추고 정당의 투명성을 높인 건 분명해 보인다. 다만 개혁신당의 실험이 정치권 전반에 어느정도 영향을 줄 건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거대 정당이 변하지 않으면 시스템과 문화를 바꾸긴 어렵기 때문이다. 무소속 강선우 의원의 '공천 거래 의혹'이 터졌지만 정치권에선 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특별당비로만 100억원 안팎을 벌었다. 최근 잇따라 열리는 출판기념회가 정치인들의 음성적 수입원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또 여야 모두 극심한 당내 갈등을 겪고 있는데 권력투쟁 양상을 띄는 게 사실이다. 참신한 정책 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 팀 미라이의 안노 다카히로 대표는 "국가의 운영체제가 낡았으니 버그를 수정하고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외쳐 왔다. 정치를 권력 투쟁이 아닌 시스템 설계로 본 것이다. 마침 국민통합위원회가 "국민의 92.4%가 보수·진보 갈등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들은 진영 논리에 지쳐 있는데 여전히 그 안에 갇혀 있는 한국 정치의 버그는 어떻게 잡아야 할까. 아마도 유권자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거라는 오만한 생각을 깨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사설] 의대 정원 단계 증원…더는 갈등과 혼란 없어야
보건복지부는 10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2027학년도 의대 정원을 의정갈등 이전보다 490명 증원하고 2028학년도부터 2년간은 613명, 2030학년도부터 2년간은 813명을 각각 늘리기로 했다. 연평균 668명 수준으로, 교육 현장의 부담 완화 등을 고려한 단계적 증원 방안이다. 의정갈등 이전 정원(2024학년도 기준 3058명)을 초과하는 인력은 서울을 제외한 전국 32개 의대에서 전원 지역의사 전형으로 뽑는다. 이번 결정은 지난 정권의 '한해 2000명 증원' 방침으로 초래된 의정 갈등 이후 처음 제시된 중장기 로드맵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증원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장기간 이어진 의료현장의 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긴장이 고조될까 우려된다. 정부도 의료계도 심도 있는 추가 소통을 이어가야 한다. 의대 정원이 확정됐다고 해서 지역·필수·공공의료 분야 의사 수급문제가 얼마나 해소될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의사 인력 수급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인구 구조, 경제수준, 지역 내에서 모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인력의 지역적 완결성 등 다양한 요인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현장 업무강도와 보상, 법적 책임 등 다양한 요인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와 개선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의료기관 종별, 규모별, 지역별 의사 인력 쏠림과 양극화 문제로 수급 불균형을 겪어왔다. 특히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필수·응급의료 인력 부족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의사는 양성기간이 10년 이상 걸리고 현장에서 제대로 기능하려면 체계적 계획과 수급관리 등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 만큼 의사 인력 수급 결정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소통, 의사결정에 대한 각 직능의 책임 공유, 투명한 의사결정과정 등 다양한 요소가 필수적이다. 우리 사회는 이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극심한 분열과 대립상을 보여 왔다. 지표에 매몰돼 단순한 숫자 늘리기로 의료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려는 시도가 빚은 혼란과 비극이다. 이젠 시야를 더 넓혀야 한다. 한정된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려면 의료 시스템을 사회 변화추이에 맞춰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고령화와 저출산 등 인구 동태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기술 혁신 등의 요소를 의료와 의학교육 현장에 기민하게 반영해야 한다. 보건의료 비용과 지불제도, 의료자원 공급체계, 의사의 경제적 수입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경제적 요소도 종합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번 의대정원 결정은 하나의 변곡점이자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의료상황 변화에 대한 철저한 점검과 합리적이고 투명한 개선이 이어져야 지속 가능한 국민 의료복지가 가능해진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집단 이기주의도 배제돼야 소모적 갈등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사설]'강한 일본' 시동 건 다카이치…더 난해해진 한일 관계
일본 총선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이 창당 이후 최다 의석을 차지했다. 중의원(하원) 465석 중 316석을 확보해 단독으로 개헌안 발의선 3분의 2를 넘었다. 다카이치의 정치적 스승인 아베 신조 전 총리나 자민당 최전성기를 이끈 나카소네 야스히로 정권도 못해 본 전후 첫 기록이다. 연정 상대인 일본유신회 의석을 더하면 중의원 수의 4분의 3에 달한다. 일본 정치가 장기간 다카이치 1극 체제로 갈 거란 분석이 나올 만큼 역대급 성적표다. 자민당의 압승에는 대중 지지도가 높은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적 인기가 한몫했지만 결정적 배경은 안보 불안이라는 평가다. 최근 일본 내에선 중국의 군사적 팽창, 대만 문제를 둘러싼 중일 갈등, 북러 군사 공조 등으로 위기감이 커졌다. 거래를 앞세우는 미국에만 의존할 수 있느냐는 우려도 있었다. 힘의 논리가 부상한 국제 질서 속에서 다카이치가 내세운 '강한 일본' 주장이 먹혔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은 "중국의 위협이 자민당의 승리를 도왔다"고 분석했다.이번 선거로 '강한 일본'으로의 변화는 탄력을 받을 게 확실시된다. 당장 3대 안보문서 개정, 무기수출 규제 완화, 국가정보국 창설, 스파이 방지법 제정 등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 만드는 '헌법 9조' 개정도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여소야대인 참의원(상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도 얻어야 해 속도조절은 불가피하다. 일본의 군사력 강화는 그 자체로 동아시아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사안으로 인식돼 왔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경험한 국가들로선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안보 환경이 바뀌면서 과거 일변도의 접근만으로는 해법 찾기가 어려워졌다. 우선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발언으로 촉발된 중일 관계는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동맹과의 우호적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역내 문제는 당사국이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도 내세우고 있다. 미국·중국·일본과의 관계를 다 고려해야 하는 우리로선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고차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현재 한일 관계는 셔틀 외교가 재개되는 등 훈풍을 맞고 있다. 반일·혐한 시위가 극심했던 양국 분위기도 달라졌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 모두 정치인 시절 상대국을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지도자가 된 이후는 철저하게 국익을 앞세우고 있다. 이런 전략적 유연성은 유지될 필요가 있다. 과거사 문제는 별도로 다루되 그 사안이 양국 관계를 멈춰세우지 않도록 세심히 접근해야 한다. 다카이치 총리는 어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는 주변 국가들의 이해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22일엔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도 열린다. 다카이치 정권의 절제와 진정성 있는 모습을 기대한다. 우리는 원칙은 분명히 하되 실용의 폭을 넒히는 고도의 외교 역량을 보여야 할 때다.
[사설] 안보 이슈로 번지는 '관세 불똥'…입체적 대응 전략은 있나
미국과의 관세 재협상이 난항인 가운데 양국 간 안보분야 협력마저 삐걱거리는 분위기라고 한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관세 여파가 안보 이슈에도 옮겨붙는 기류"라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핵잠수함 추진이나 원자력 농축•재처리 문제를 논의할 미국 협상팀의 방한이 기약없이 미뤄지는 등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위 실장은 디지털 무역장벽, 쿠팡 등 여러 이슈가 미국 입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통상 하나로만 접근해선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최근 한미 간에 불거진 논란은 표면적으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서 촉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서의 대미투자특별법 입법 지연을 문제삼아 상호관세를 15%에서 25%로 올리겠다고 일방적으로 밝혔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조현 외교부장관이 잇따라 설득에 나섰지만 미국은 완강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미국 관보 게재를 막지 못할 경우 시행 시점을 늦추는 방안까지 우리 정부가 고민할 정도로 상황이 어렵다고 한다. 이같은 냉기류를 접하며 한미 관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근본적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3일 조현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 내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미 관계가 나쁜 상황에 있는 것까지는 아니지만"이란 단서를 달았다고 하지만 표현만 봐도 심각성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우리로선 관세를 다시 올리겠다는 미국의 움직임을 사전에 감지조차 못한 게 뼈아프다. 위 실장의 말대로 여러 현안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면 해법도 거기에 맞출 수밖에 없다. 미국은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거래 중심의 외교를 펼치고 있다. 우리도 대미투자 등 이미 약속한 사안은 신속하고 철저하게 이행하는 게 기본이다. 또 쿠팡 사태나 온라인플랫폼법안 등 비관세 장벽, 비무장지대(DMZ) 공동관리 등의 이슈는 국내 정치 논리는 배제하고 마찰이 커지지 않게 신중하게 관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국회가 한 목소리를 내는 건 꼭 필요하다. 야당이 뒤늦게나마 국회 비준 주장을 접고 대미투자특별법을 처리하기로 한 건 다행스런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부동산 문제에 대해 많은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한미 관계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그 사이 상반기 대미 투자가 어렵다는 구윤철 부총리의 발언이 나와 미국 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외교에 관한 대통령의 발언은 극히 신중해야 하지만, 상대국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관세 이슈를 넘어 안보 이슈까지 흔들리는 양상이라면 보다 정교하고 입체적인 대응 전략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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