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복 시대 논설위원 겸 미디어랩 소장

미국 워싱턴 시내 워터게이트 빌딩은 저널리즘의 상징적 공간이다. 1972년 6월, 이곳 야당 사무실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던 비밀공작 요원들이 검거됐다. 단순 절도로 묻힐 뻔했지만, '워싱턴포스트'는 집요한 추적 끝에 백악관이 개입한 선거 공작의 실체를 밝혀냈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2012년, 이 빌딩에서 열린 '보도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전·현직 기자들의 자부심은 세월이 무색할 만큼 견고했다. 그들은 방대한 증거 자료와 철저한 교차 검증을 워터게이트 보도의 핵심으로 꼽았다. 특종의 주역 밥 우드워드는 "기자들이여, 현장으로 가라"며 검색과 제보에 기대는 취재 관행을 질타했다.

오래된 기억을 다시 꺼낸 건, 최근 방송인 김어준 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을 소환했기 때문이다. 출연자로 나온 한 전직 기자는 소위 '단독'이라며 정부 고위 관계자가 검찰 간부들에게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 취소를 요구했고, 검찰은 이를 거래로 받아들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취재원 공개와 명확한 근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김씨는 "워터게이트 제보자 딥 스로트도 33년 후에야 신원이 밝혀졌다"며 익명성 뒤로 숨었다.


워터게이트 보도는 제보에만 의존한 받아쓰기 저널리즘이 아니었다. 편집국 간부들은 기사 작성에 개입해 정보원이 명확하지 않을 때는 수정을 지시했다. 취재팀 역시 '딥 스로트'에 매몰되지 않았다. 결정적인 국면에서만 제한적으로 접촉했고 엄격한 교차 검증을 거쳤다. '두 명 이상 독립된 취재원에 의해 확인되지 않은 한 기사화하지 않는다'는 게 보도의 원칙이었다. 수표 일련번호를 추적하고 정부 문서를 뒤지는 등 취재는 사실상 수사에 가까운 방식으로 진행됐다. 워터게이트 보도의 본질은 취재원 은닉이 아니라 치열한 검증 저널리즘에 있었다.

저널리즘의 잣대로 볼 때 김어준씨 유튜브에서 거론된 '공소취소 거래설'은 허점이 적지 않다. 이 정도의 중대 사안이라면 복수의 취재원 확보는 물론 뒷받침할 물증과 당사자 해명이 포함돼야 한다. 말이 오간 정황도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 카더라식 발언은 단독 보도가 될 수 없다. 특히 공소취소를 언급했다는 인물을 "대통령 최측근으로 볼 수밖에 없는 정부 고위 관계자"라는 모호함 속에 숨긴 건 납득하기 어렵다. 실명으로 비판받아 마땅한 공직자를 누구를 위해 감춰준단 말인가. 익명의 방패는 불이익을 당할 우려가 큰 약자나 공익 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다.

사실 이번 사안 외에도 한국 언론의 익명 취재원 남발은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고위 관계자' '내부 인사'부터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까지, 이름 없는 유령들은 지면과 화면을 가득 채운다. "~라는 말이 나온다" 식의 애매한 전언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기정사실로 둔갑시키는 편리한 수단이다. 평론가들 역시 "내가 들었는데"라며 확인되지 않은 풍문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 이렇게 배출된 파편적 주장은 정치권으로 번지며 파장을 일으키지만, 정작 실체를 검증하거나 책임을 물을 길은 요원하다.


'공소취소 거래설'은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중대한 질문도 던진다. 김어준 씨는 "취재의 신빙성은 기자 본인이 책임질 일"이라며, "제보자를 묻지 않는 것이 이 바닥의 불문율"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플랫폼의 '게이트키핑(검증 시스템)' 부재를 자인한 셈이다. 언론은 고정 기고자의 원고 한 줄에서도 사실관계의 오류를 걸러내는 곳이다. 생방송 중 튀어나오는 즉흥적 발언이라 해도 진행자가 이를 제어하고 교정할 책임은 막중하다. 출연자의 발언이 방송사에 법정 제재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수많은 사례가 그 연대 책임을 증명하고 있다.

김어준씨의 유튜브는 이제 청와대 출입기자까지 보유한 정식 언론사다. 이번 '공소취소 거래설'이 거센 후폭풍을 몰고 온 이유도 그 위상에 걸맞은 저널리즘의 공적 기준을 요구받고 있어서다. 과거 "냄새가 난다"는 식의 불투명한 의혹 제기가 정쟁으로 비화됐던 구습을 끊어낼 수 있을지 미디어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영향력이 커질수록 발언의 무게는 엄중한 검증과 책임이라는 추에 실려야 한다. 사실 확인과 절제된 논평이라는 저널리즘의 본령에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음모론의 그늘에 머물 것인가. 그 선택은 한국 유튜브 생태계 전반에 중대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칼럼을 끝내기 전 마지막 한마디. 위에서 언급한 '저널리즘의 원칙'은 필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