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 / 사진=뉴시스·뉴스1


#1. "여자 전두환도, 여자 히틀러도 대한민국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겠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5일 전남·광주 합동연설회에서 당대표 후보 자격으로 한 말이다.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2. "X팔계."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 모 의원을 이렇게 불렀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민주당 의원의 춤을 "고릴라춤"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3. "조희대씨 당장 나가라." 김 대표는 지난 19일 대법관 후보 제청 갈등 국면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을 이렇게 몰아세웠다. 이틀 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김태규 국민의힘 의원이 김 대표를 "김민석씨"라고 부르자 민주당 의원들이 반발했다. 김태규 의원은 "한 나라의 대법원장을 조희대씨라고 하는 건 괜찮냐"고 맞받았다.

국회의 막말 공방이 법정 다툼으로 비화된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진숙 의원은 전날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김 대표를 모욕 혐의로 고소했다. 이 의원은 "정치적 비판의 범위를 넘어선 악의적 인신공격"이라고 했다.

국회의원의 막말은 협치와 숙의를 가로 막아 국회의 본령인 입법과 민생 현안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국회법 제146조가 본회의나 위원회에서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발언 등을 금지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평가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 들어 현재까지 접수된 의원 징계안은 55건, 처리는 0건이다. 징계를 심사할 윤리특별위원회는 2018년 비상설 기구로 바뀐 뒤 22대 국회에서는 개원 후 14개월이 지나도록 구성되지 않았다.



막말이 정치인들의 전략이 됐다는 진단도 나온다. 박창환 정치평론가는 [시대]와의 통화에서 "'나는 상대를 이렇게 욕할 수 있다' '이렇게 조롱할 수 있다'는 것이 일종의 훈장처럼 돼버렸다"며 "극단적인 지지층의 환호가 실제 공천 등에서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박 평론가는 "합리적으로 대화를 나눠야 할 상대가 오히려 혐오의 대상이 된다"며 "그런 정치인들을 공천 과정에서 걸러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거친 표현을 쓸수록 더 많은 후원금이 모이는 구조도 막말 정치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정치인이 막말을 하면 지지층 내에서 본인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고 결국 후원금 증가로 이어진다"며 "유튜브 쇼츠 등의 매체가 생기면서 막말이나 상대를 증오화하는 언어가 파괴력이 더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과 미국처럼 정치의 역사가 오랜 나라에도 막말 정치는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의 의회에서는 모욕성 발언이 협치와 정책 숙의를 저해하지 않도록 단호하게 대응한다.

자라 술타나 영국 하원의원은 지난 4월20일(현지시각) 본회의장에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를 향해 "뻔뻔한 거짓말쟁이(bare-faced liar)"라고 말했다. 린지 호일 영국 하원의장은 곧장 술타나 의원에게 퇴장을 명령했다. 정부가 정직 동의안을 냈고 하원은 토론 없이 표결로 가결했다. 술타나 의원은 5일 동안 회의에 나오지 못했고 그 기간 세비도 받지 못했다. 같은 날 리 앤더슨 하원의원도 스타머 총리에게 "거짓말쟁이"라고 했다가 퇴장 명령을 받았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총리가 되기 전 하원에서 거짓말쟁이라는 단어 대신 '용어상의 부정확'(terminological inexactitude)이라는 우회 표현을 고안했다. 상대를 거짓말쟁이라고 직접 부르는 대신 '정확하지 않은 용어를 썼다'고 돌려 말한 것이다.

미국 하원의 규칙은 토론에서 '인신공격을 피해'(avoiding personality) 발언하도록 규정한다. 문제 발언이 나오면 다른 의원의 요구로 해당 발언을 서면으로 기록해 낭독하고 의장이 위반으로 판정하면 그 의원은 그날 즉시 발언권을 잃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이후 상호 막말의 수위가 높아졌지만 규정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지난해 3월 트럼프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 도중 항의하다 끌려나간 앨 그린 하원의원은 곧바로 견책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막말을 적대적 진영 정치의 부산물로 평가한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통화에서 "우리 정치가 점점 상대를 증오하고 혐오하고 협치의 정치 문화가 후퇴하다 보니 말의 수위도 계속 높아지는 것"이라며 "말이 거칠어지니까 상대 정당을 더 인정하지 않게 되고 국회에서 절충·타협·대화도 잘 안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김태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8월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서영교 위원장의 회의진행 방식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