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소비자보호 강화에 나섰지만 상품 제조단계와 상호금융권을 아우를 금소법 개정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금융감독원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감독 업무의 최우선 순위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해야 할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개정은 5년째 제자리걸음 중이다. 조직개편과 가이드라인 등 행정적 조치는 쏟아냈지만 근거법 개정 작업은 매번 '추진 과제'로만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불거진 은행권 상장지수펀드(ETF) 신탁 수수료 논란이 '입법 공백형' 감독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은행 ETF 신탁의 평균 보유기간은 42일에 불과한 단기거래지만 단기거래에 불리한 선취수수료가 91.7%를 차지했다.



소비자 이익보다 판매사 수수료 수익에 유리한 구조가 굳어져 있었지만 이를 사전에 걸러낼 법적 장치는 없었다. 금감원은 지난 7월에야 소비자경보를 발령하고 6개 은행 현장검사에 착수했다.

"판매유인 구조 자체가 문제"

금감원은 판매유인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 17일 발표한 '금융소비자보호 추진성과 및 과제'에서 "금융회사 판매유인 구조가 소비자 이익보다 단기실적 중심으로 운영된다"고 진단했다.

금감원은 이번 ETF 사태를 정기검사 과정에서 미리 포착해 대응한 사례로 자평했다.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피해가 누적된 뒤 대응했다면 규모가 훨씬 커졌을 것"이라며 "검사 과정에서 포착해 감독으로 환류한 결과 추가 확산은 어느 정도 막았다고 본다"고 했다.



문제는 이런 '조기 포착'조차 우연에 가깝다는 점이다. 애초에 이런 수수료 구조 자체를 만들지 못하게 할 법적 장치가 없다 보니 정기검사에서 걸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방치됐을 수 있다. 뒤늦게 내놓은 해법은 법을 개정하자는 게 아니었다. 금감원은 업계와 태스크포스를 꾸려 신탁 수수료 체계와 은행 직원 핵심성과지표(KPI)를 손보고 있지만 이 또한 법 개정이 아닌 행정지도·자율개선 권고 수준에 머물러 있다.

두 갈래로 남은 입법 공백

임기응변식 대응이 반복되는 건 법 자체에 구멍이 있어서다. 금소법은 애초에 상품을 파는 단계만 규율하도록 짜여 있다. 이세훈 수석부원장은 "현재 금소법이 판매 행위에 중점을 두고 규율하고 있다"며 "그 이전 단계인 상품 설계·제조 단계부터 소비자 보호가 이뤄지도록 가이드라인으로 보완해왔다"고 말했다. 법이 아닌 행정지도로 공백을 메워온 셈이다.

가이드라인은 처벌 근거가 없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해도 법적 구제력이 약하다. 금감원 역시 "생애주기에 걸친 제조·판매사 책무를 금소법에 반영하겠다"고 말했지만 구체적 법안이나 시행 시점은 밝히지 않았다.

적용 대상에도 구멍이 있다. 금소법은 2020년 3월 제정돼 이듬해 3월 시행됐는데, 당시 금융위는 상호금융권에도 금소법 수준의 보호 규제를 조속히 확대 적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도 신협에만 법이 적용되고 있다. 농협·수협·새마을금고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

국회 정무위 소속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8월 상호금융권 전체로 확대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위원회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비슷한 구멍은 다른 분야에서도 확인된다. 김나율 한국금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보이스피싱 대응 플랫폼(ASAP)의 정보 공유 의무가 금융회사에만 적용되고 통신사·빅테크 플랫폼은 빠져 있다며 이들까지 아우르는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남은 과제는

조문희 금융위원회 금융소비자정책과장도 올 상반기 한 포럼에서 금융회사의 이익 추구 편향과 불공정 관행 비판이 계속된다며, 금융소비자·약자의 시각에서 기존 정책을 전면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9~10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이번 보고대회에서 드러난 두 갈래의 입법 공백이 국회 질의로 부각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세훈 수석부원장은 지난 1년의 성과를 마라톤에 빗대 "40km 중 이제 5km 정도 왔다"며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회사의 유인 체계를 어떻게 바꿔서 소비자의 최선의 이익을 토대로 업무 관행을 바꿔 나가느냐가 앞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