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법원 형사합의8부가 1974년 문세광씨 사건과 관련 1심 공판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 사진=국가기록원


#1974년 8월15일 오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광복절 기념식 연단에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올랐다. 박 대통령이 경축사를 낭독하는 순간 총성이 울렸다. 귀빈석에 앉아 있던 육 여사가 쓰러졌다. 총탄을 맞은 그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숨졌다. 향년 48세. 범인은 재일교포 문세광이었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신작 영화 '암살자(들)'을 두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영화가 육 여사 피격 배후에 박 전 대통령 등 국내 권력이 있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는 점에서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재선·경북 구미시갑)과 강명구 국민의힘 의원(초선·경북 구미시을)은 2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표현의 자유를 빙자해 황당무계한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며 "사자명예훼손 등 관련 법률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경찰 등 관계 기관이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고 고인의 명예를 짓밟고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패륜 행위가 표현의 자유, 영화적 상상력 또는 흥행 실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에 경종을 울리겠다"고 말했다.

사건의 공식 결론은 52년 전 내려졌다. 수사 당국은 사건 이틀 만에 북한 지령을 받은 문씨의 암살 시도라고 발표했다. 문씨는 그해 12월17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고 사흘 뒤 서울구치소에서 형이 집행됐다. 그는 집행 직전 "나는 바보였다" "박 대통령과 육 여사에게 미안하다"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에 속았다" 등의 유언을 남겼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2002년 5월 방북한 박근혜 당시 한국미래연합 대표에게 하급자들이 관여한 일이라 사전에 몰랐다며 유감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1974년 8월15일 광복절 행사 단상에서 육영수 여사가 총격을 받고 쓰러져 있는 모습. / 사진=서울기록원


영화는 공식 기록의 틈을 파고들었다. 총격범 이름은 '문태광'으로 바꿨다. 이야기는 총성이 6발인데 발견된 탄환은 4개뿐이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극중 형사와 기자들은 경호팀이 비표 없는 총격범을 들여보내라고 지시한 점, 총격범이 제압된 뒤에도 총성이 울린 점 등에 주목한다. 중앙정보부는 사건의 진실 추적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그려진다.



문씨가 진범이 아니라는 주장은 과거에도 제기된 바 있다. 수사에 참여한 고 이건우 서울시경 감식계장은 1989년 8월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문씨가 쏜 4번째 총탄이 육 여사가 아닌 천장에 맞았다고 주장했다. 문씨의 4번째 총탄이 육 여사를 맞혔다고 본 대법원 판결과 정반대였다. 제작진은 실제 기록과 사건을 둘러싼 의문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미스터리 추적극이라는 입장이다. 허진호 감독은 개봉 전 인터뷰에서 "제가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나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입장문을 내고 당시 수사 기록을 근거로 총성과 탄피 수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법조계에선 명예훼손이 성립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형법 제308조는 공연히 허위 사실을 적시해 죽은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면 2년 이하 징역·금고나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최진녕 법무법인 씨케이 대표변호사는 이날 [시대]와의 통화에서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벗어난다고 단언할 수 있다"며 "내용이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하면 문제가 안 되지만 이번 사건은 한국 법정뿐만 아니라 일본에서의 수사를 통해서도 사건의 실체가 다 드러났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서 박 전 대통령과 육 여사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는 게 맞다"며 "표현의 자유를 빙자했지만 범위를 벗어났다.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사실을 은폐하고 조작하고 왜곡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예술을 빙자해서 진실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형사법적으로 명예훼손이 되느냐는 판단하기 어렵다"면서 "형사법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국민의 매서운 비판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영화에서라도 정치적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고 권장돼야 한다"며 "역사에 자기의 해석을 붙이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봐야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