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30년까지 K컬처 시장 400조원, 수출 1100억달러(약 147조원)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K컬처 시장이 연평균 7.9%씩 성장해야 한다./그래픽=강지호 기자


K컬처가 반도체·자동차에 이어 3위 수출 산업으로 집계됐지만 성장을 뒷받침할 투자 기반은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매출이 늘어나는 사이 국내 제작 기반은 위축되고 지식재산권(IP)은 해외 기업으로 넘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작사가 IP를 보유할 수 있는 금융 구조와 다년 투자형 지원, AI 시대 IP 전략 마련을 과제로 꼽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콘텐츠에 K푸드·뷰티·패션과 관광 등을 포함해 집계한 지난해 K컬처 수출은 718억달러(약 96조원·잠정)다. 반도체·자동차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다. 정부는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을 소비재 수출로 연결해 2030년까지 K컬처 시장 400조원, 수출 1100억달러(약 147조원)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수출을 5년 만에 1.5배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K컬처의 출발점인 콘텐츠산업은 성장이 더디다. 정부 목표를 달성하려면 K컬처 시장이 연평균 7.9%씩 커져야 하지만 콘텐츠산업 매출 성장률은 최근 3년 연속 2%대에 머물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현재 수준의 정책과 예산이 유지되면 2030년 콘텐츠산업 매출이 205조9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8월 문체부 업무보고에서 "문화 분야에 대한 정부 투자는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원인으로는 국내 제작 기반 위축이 지목된다. 한국IR협의회 기업리서치센터 집계로 드라마 제작 편수는 2022년 141편에서 지난해 115편(추정)으로 감소했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지금의 괴리는 국내 시장이 줄어드는 속도가 해외 기회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빠른 데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투자 위축은 IP 확보에도 영향을 미친다. 제작비를 조달할 곳이 줄면 권리 협상에서도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국내 방송사와 플랫폼, 투자사가 제작비 일부를 감당할 수 있어야 제작사가 해외 판매권이나 2차 사업권 같은 권리 일부를 지킬 수 있다"고 했다. 제작비를 해외 플랫폼에 의존하면 흥행에 성공해도 추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대안으로는 문화금융이 거론된다. 김정섭 성신여대 문화산업예술학과 교수는 제작사가 IP를 보유한 전략적 투자자로 남고 외부 자본은 위험과 수익을 나누는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하는 펀드 구조를 제안했다. 제작사가 1000억원짜리 프로젝트 제작비를 절반씩만 대면 같은 돈으로 두 편을 만들면서 IP도 지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김 교수는 "국가가 할 일은 문화금융을 만들어 IP 주권을 우리 기업들이 확보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수익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구조도 과제다. 김 교수는 공연 대행 시장은 미국 라이브네이션이 사실상 장악했고 음악 플랫폼도 스포티파이 등 해외 사업자가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팝이 흥행해도 공연·스트리밍 수익의 상당 부분은 해외 몫이 된다는 의미다.

지원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교수는 한 해 단위로 지급하고 정산하는 보조금으로는 기획부터 방영까지 2~3년이 걸리는 드라마 제작을 뒷받침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공공이 재원 일부를 직접 투자하고 민간보다 나중에 회수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공공이 손실 위험을 먼저 나눠 지면 민간 자금이 들어올 여지가 커진다"고 덧붙였다.

생성형 AI 시대에는 IP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손승우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한국지식재산연구원 원장)은 "기업은 IP를 '지키는 것'에서 '키우는 것'으로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손 고문은 보유 콘텐츠를 AI 시대 데이터 자산으로 정리하고 라이선스 수익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봤다. AI 학습 데이터 수요가 커지는 만큼 콘텐츠를 새 수익원으로 삼자는 취지다. 정부에는 IP 가치평가와 IP 금융을 키우고 AI 학습용 데이터 거래 표준계약서를 제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규칙을 따르는 나라가 아니라 규칙을 만드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콘텐츠 흥행을 뷰티·푸드·패션·관광 등 연관 산업 매출로 연결하는 일도 숙제로 꼽힌다. 이 교수는 "정부는 산업들이 만나고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연결의 장을 꾸준히 설계하고, 기업은 그 장에서 단발성 마케팅을 넘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협업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