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162조3000억원 규모로 신설되는 미래대응기금이 국회 예산안 심사에서 도마에 올랐다. 기금 적립과 인출의 기준이 분명하지 않으면 미래를 위한 재원이 당장 눈앞의 정책에 먼저 소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몫을 나누는 원칙을 제도화한 싱가포르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추가 세수는 2029년부터 들어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기금에서는 매년 약 21조원이 계속 지출된다. 3년 뒤 돈줄이 끊기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며 "미래대응기금은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 명의로 빚을 내는 총선용 사금고"라고 주장했다.

정부안에 따르면 기금 가운데 45조4000억원은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대 계정 사업에 쓴다. 12조5000억원은 국채 신규 발행을 줄이는 데 쓰고 나머지 104조4000억원은 여유자금으로 운용한다. 재원의 대부분은 내국세 세입예산이 최근 10년 추세치를 웃도는 '추가세수' 158조4720억원이다.

문제는 이 재원이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7년도 예산안 총괄 분석'에서 추가세수가 2028년 약 57조3000억원으로 줄고 2029년부터는 생기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4대 계정 사업비 45조3625억원 가운데 21조2000억원(46.7%)은 한번 편성하면 줄이기 어려운 지출이다. 사업이 '미래대응'이라는 취지에 맞느냐는 지적도 있다. 전체 140개 사업에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청년미래적금 △아동기본수당 등 현금성 사업이 다수 들어 있다.

국회 통제 범위도 미래대응기금의 쟁점이다. 국가재정법 제70조는 국회를 거치지 않고 기금운용계획을 바꿀 수 있는 범위를 사업성 기금은 주요 항목 지출금액의 20%, 금융성 기금은 30%로 정하고 있다. 정부는 미래대응기금에도 30%를 적용하는 개정안을 냈다. 이 경우 국회 의결 없이 조정할 수 있는 돈은 약 13조6000억원이다. 이에 대해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이날 예결위에서 "국회가 정한 법률과 정한 규정에 따라서 통제는 당연히 받는다. 자체 변경을 하더라도 국회 심의에서 삭제된 사업을 임의로 살리거나 증액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진=신재민 편집위원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3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법률안 공청회에서 "기금은 원금을 지켜야 하고 재원이 꾸준히 들어와야 한다. 초과 세수와 추가 세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선 결국 원금을 지킬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송 교수는 "현재 일반회계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업임에도 왜 기금에 편성을 했느냐는 의문이 드는 사업이 꽤 많다"며 "어찌 보면 국회의 통제를 받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 중 하나로 싱가포르를 꼽는다. 싱가포르는 적립 기준을 제도로 못 박았다. 정부는 투자수익기여(NIRC) 체계에 따라 싱가포르통화청(MAS)·GIC·테마섹이 운용하는 순자산의 장기 기대 실질수익 가운데 최대 50%만 예산에 쓸 수 있다. 나머지는 재투자해 준비금으로 쌓는다. 원금은 건드리지 않고 수익의 절반 이내만 쓰는 구조다.

인출에도 견제 장치가 있다. 의원내각제인 싱가포르는 1991년 헌법을 고쳐 대통령에게 과거 준비금 인출 거부권을 줬다. 정치권이 준비금을 임의로 꺼내 쓰지 못하게 하려는 장치다. 싱가포르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위기 때 대통령 승인을 받아 준비금을 꺼내 썼다. 최훈 전 주싱가포르대사는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돈을 적립해 놓아도 정부가 임의로 꺼내 쓸 수 있다면 소용이 없다"며 적립과 인출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 전 대사는 "(싱가포르는) 현세대가 미래세대에 청구서를 내밀지 않는다. 나라가 벌어들인 소득의 절반은 현세대가 쓰고 나머지 절반은 미래를 위해 적립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적자를 내거나 채권을 발행하면 미래세대에 부채를 넘기는 것이지만 싱가포르는 현세대가 벌어들인 소득의 일부를 적립해 미래세대에 실질적인 자산을 물려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