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지난 6일 <동행미디어 시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와 민주당 의회를 동시에 상대하게 된 만큼 더 정교하고 지속가능한 외교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조현호 기자


민주당이 미국 상·하원을 장악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권한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쟁을 견제할 민주당에도 정치적 부담이 있고,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공화당과 트럼프의 셈법도 다르다. 서정건 경희대 교수는 "미국 의회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해선 안 된다"며 대통령의 권한과 양당의 이해관계를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중간선거 패배 사흘 만인 6일(현지시간)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을 비서실장에 낙점했다. 강경 이민정책의 설계자를 승진시켜 기존 노선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선거 참패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며 인사의 적정성에 대한 의회 차원의 조사를 예고했다. 백악관의 강경 노선과 의회의 견제가 맞부딪칠 조짐이다. 다음은 서교수와의 일문일답.

- 내년 1월 출범하는 새 의회가 가장 먼저 취할 조치는.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탄핵소추가 상징적 첫 조치일 수 있다. 민주당은 이란 전쟁과 국방부 운영을 문제 삼을 것이다. 다만 하원에서 탄핵소추는 가능하지만 상원에서 유죄 평결에 필요한 3분의 2를 확보하기는 어렵다. 물론 트럼프가 전략적으로 탄핵 전에 장관을 교체할 수도 있다.

"이란 전쟁 종전, 의회 뜻만으론 어렵다"
- 의회가 이란 전쟁을 멈출 수 있나.
▷추가 전쟁 예산은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편성된 예산을 삭감하려면 대통령의 거부권에 부딪힐 수 있다. 민주당도 현장 장병의 안전과 군함·탄약 지원 예산을 끊었다는 비판은 부담스럽다. 베트남전 때도 비슷한 딜레마가 있었다. 전쟁권한 결의안 등으로 견제하겠지만, 의회가 전쟁을 단번에 끝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과대평가다.

- 공화당 차기 주자들과 트럼프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트럼프는 어느 한 주자가 압도적으로 앞서가는 상황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차기 주자가 일찍 정해지면 자신에게 레임덕이 빨리 올 수 있기 때문이다. JD 밴스 부통령 외에 론 디샌티스, 마코 루비오 등 다른 주자들에게도 공간을 열어주며 서로 견제하도록 할 가능성이 있다. 공화당의 대선 준비와 트럼프의 영향력 유지가 맞물리면서 당내 움직임도 복잡해질 것이다.

- 민주당은 이번 승리로 차기 대선에서도 유리해졌나.
▷민주당이 뚜렷한 대안을 제시해서 이겼다기보다 전쟁과 물가에 대한 불만이 트럼프 심판으로 이어진 측면이 크다. 상원 선거에서는 후보 경쟁력 차이도 작용했다. 이제 민주당은 압승에 걸맞은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경제·민생 정당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지만, 재정 지출을 늘리자니 물가 상승 우려가 있다. 선거 승리와 정책 대안을 만드는 것은 별개다.

"한국은 반도체 수출, 미국은 생계 걱정"
- 그런 부담이 AI 규제 강화로 이어질까.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AI와 데이터센터, 빅테크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민주당이 민생을 챙긴다는 메시지를 내기 위해 규제를 앞세울 수 있다. 그러나 중국과의 기술 경쟁을 고려해야 하고, 대선을 치르려면 빅테크의 후원도 필요하다. 강경한 발언이 곧바로 강력한 입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장도 정치적 수사와 실제 정책을 구분할 시간이 필요하다.

- 미국에서는 왜 AI에 대한 반감이 큰가.
▷한국은 반도체 수출로 먹고살고, AI 산업의 성장이 주가에도 영향을 준다. AI가 잘되기를 바라는 이해관계가 크다. 반면 미국에서는 AI가 내 일자리를 위협하고, 동네에 들어선 데이터센터 때문에 전기료와 물값을 더 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기술 발전에 대한 기대보다 당장의 고용과 생활비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한국에서 보는 산업의 성장성과 미국 유권자가 체감하는 현실 사이에 차이가 있다. 한국 기업도 이런 민심을 단순히 기술 발전에 대한 거부감으로 봐서는 안 된다. 투자와 일자리 창출의 혜택이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고, 생활비 부담은 덜어줄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행사보다 꾸준한 소통, 의회 외교 바꿔야"
- 민주당 의회는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확보에 걸림돌인가.
▷핵 비확산론자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단정하면 한쪽 면만 보는 것이다. 민주당에는 동맹 중시 세력도 많다. 한반도 평화와 북한·중국 견제 차원에서 필요성을 설득하면 우군이 될 수 있다. 호주도 오커스(AUKUS)를 통한 핵추진잠수함 확보를 위해 오랫동안 미 의회를 설득했다. 정상 간 합의만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미 해군과 에너지부, 의회 등 여러 주체를 상대해야 한다.

- 의회 외교에서는 무엇을 바꿔야 하나.
▷지속적으로 만나는 소규모 그룹을 만들어야 한다. 조선업이라면 미국 상·하원과 민주·공화 양당을 아우르는 의원 4명, 한국 의원 4명이 화상회의를 하고 보좌진끼리 수시로 연락하는 식이다. 관계가 쌓이면 원자력 협력 같은 민감한 사안에서도 서로의 의심을 풀 수 있다. 한 번 방문해 행사를 하는 것보다 꾸준히 속내를 나누는 관계가 중요하다.

- 북·미 정상회담 재개 가능성은.
▷개인적으로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쪽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트럼프는 '최고이자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문제 등 제한적 합의로 제재 완화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트럼프 이후에도 이만큼 북한에 관심을 가진 대통령이 나올지는 의문이다. 다만 2018년과 달리 남은 임기가 짧아 워싱턴의 시선은 냉소적이다. 그래도 극적인 정상외교를 원하는 트럼프와 북한의 계산이 맞아떨어질 여지는 있다.

- 호르무즈 해협 파병 논의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호르무즈 협력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보다 대미 투자 약속 이행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트럼프가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가장 우려하는 것은 우리 초계기나 청해부대가 공격받는 상황이다. 피해가 나면 가만히 있기도 어렵고 대응하면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미국 유권자의 전쟁 반대가 드러났고, 미국 정치권에도 종전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군사력 파견을 서두르기보다 위험을 관리하며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서정건 교수는=미국 텍사스대(오스틴)에서 미국 의회와 외교정책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국내 대표적인 미국 정치 전문가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윌밍턴) 교수 등을 지냈고, 한국정당학회 회장과 미국정치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