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2026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반도체 등 첨단산업 초광역특구(이른바 메가특구)에 주 52시간제 노동특례를 도입하겠다는 정부·여당의 구상이 차질을 빚고 있다. 국회가 법안 심사를 전담할 특별위원회를 구성했지만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특위가 속도를 내면 갈등이 커지고, 노사정 합의를 기다리면 입법이 늦어지는 구조여서 해법을 찾기 쉽지 않다는 진단이 나온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는 지난 5일 본회의에서 '지방주도성장을 위한 초광역권전략산업특구 특별위원회'(초광역특위) 구성 결의안을 재석 163명 중 찬성 145명으로 가결했다. 특위는 더불어민주당 10명, 국민의힘 6명, 비교섭단체 2명 등 모두 18명으로 꾸려진다. 활동 기한은 내년 1월31일까지다. 특위는 이 기간 초광역특구 관련 법안을 병합 심사할 예정이다.

초광역특구법은 이재명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3대 메가프로젝트'(반도체, 데이터센터, 피지컬AI)를 뒷받침하는 법안이다. 인허가 단축과 규제 완화, 세제 지원으로 투자를 끌어들이겠다는 것이 골자다. 최대 쟁점은 주 52시간제에 예외를 둘지 여부다. 산업계와 산업통상부는 연구개발 인력의 근로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반면 노동계와 진보 정당은 노동특례가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고 노동자의 건강권을 해칠 수 있다며 맞서고 있다.

민주당은 특례를 넣은 박상혁 의원안과 이를 뺀 최기상 의원안을 함께 발의해 병합 심사하는 '투트랙' 전략을 택했다. 박 의원안에는 소득 상위 3% 연구개발 인력을 대상으로 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이 담겼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일정 요건을 갖춘 고소득 전문직과 연구개발 인력을 주 52시간 상한과 초과근로 가산수당 적용에서 빼는 제도다. 박 의원안에는 기간제 근로자 사용 기간을 2년에서 최대 4년으로 늘리는 내용도 들어갔다. 반면 최 의원안에는 이런 노동특례가 빠졌다.

노동계는 특위 출범에 반발했다. 사회적 대화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노동특례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이중적 행태라는 게 노동계의 공통된 비판이다. 민주노총은 특위 구성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자 곧바로 성명을 내고 "노동 의제는 진행 중인 사회적 대화 결과를 보장해야 한다"며 "(국회에 제출돼 있는) 초광역특구법 일체를 폐기하고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라"고 촉구했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9월15일 메가특구 특별법의 노동특례를 논의하자며 노동계와 경영계에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노동부가 지난 2일 발표한 '초광역특구법 관련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제1차 운영협의체 개최' 자료에 따르면 노사정은 △기본목표·정주지원·인력양성 △산업안전·보건 및 노동시간·건강권 △고용형태·노동자 보호 △노사관계·참여 순으로 의제를 다루기로 했다. 지난 6일 열린 제7차 실무협의체에서도 정주지원과 인력양성 방안이 논의됐다. 최대 쟁점인 노동특례는 아직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한 셈이다.

양대 노총은 7일 서울 도심에서 각각 연 전태일 열사 56주기 노동자대회에서도 특구법 철회를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노동시간과 노동권에 대한 예외를 확대하고 노동관계법 적용까지 배제하려는 시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진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도 "(초광역특구법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재벌들의 배만 불리는 악법"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와 여당은 법안을 조속히 처리하겠다면서도 노사정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무조정실·노동부·산업통상부는 지난달 27일 공동 설명자료를 내고 "어떠한 방식이든 사회적 대화에서 논의되고 합의된 결과를 토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해관계자와 전문가 사이에서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특례 조항을 둘러싼 노사의 입장 차가 단기간에 좁혀지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노동시장 정책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엄청난 저항에 부딪힌다"며 "여당이 마음먹고 강행한다면 노동특례를 포함한 초광역특구법을 통과시킬 수는 있겠지만, 사회적 동의까지 받으며 원만하게 통과될 수 있는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9회 국회(정기회) 제12차 본회의에서 지방주도성장을 위한 초광역권전략산업특구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이 가결되고 있다./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