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모멸감을 준 것이다."
계엄 사태가 벌어지기 한참 전, 한 언론계 인사가 사석에서 던진 '모멸감'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꽂혔던 적이 있다. 모멸감은 단순한 불쾌감이 아니다. 자신의 가치와 존엄이 부정당했다고 느낄 때 생기는 감정이다. 과학기술인, 의사, 교사, 경제 관료 등 각자의 영역에서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온 전문가 집단은 물론 평범하게 일상을 영위해 온 보통 사람들까지, 최고 권력자의 '검찰 지상주의'에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새삼 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그 후과가 심대하기 때문이다. 권력의 정점에 선 개인의 태도가 집단 전체의 얼굴이 됐다. 물론 오로지 윤 전 대통령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검찰은 지금 사실상 '폐족'에 가까운 처지로 내몰렸다. '문제적 검사'들이 아닌 묵묵히 일해온 검사들은 통탄할 일이다.
작금의 검찰개혁 상황을 놓고 모멸감과 자괴감에 빠진 검사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느끼는 감정의 상당 부분은 반작용이다. 그동안 세상을 만만하게 보고, 법을 다루면서도 법 위에 선 듯 행동해온 데 대한 되돌림이다. 자업자득이다. 검찰에 대한 불신은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사와 기소를 동시에 쥐고, 때로는 권력의 의중과 맞물려 움직였던 기억이 사회 전반에 남아 있다. 무소불위 검찰 시대의 종식은 필연에 가깝다.
문제는 그 검찰개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다. 지금 국면은 단순한 형사사법 제도 개편 차원을 넘어선다. 권력의 축을 옮기는 과정에 가깝다. 검찰을 밀어내는 순간, 그 자리는 비어 있지 않다. 누군가는 채운다. '공룡 경찰'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여권 내부의 결도 분명히 갈린다. 검찰을 손보되 정권 운용 도구로서의 쓰임을 남겨두려는 흐름과, 벌써 차기 권력 경쟁에 나선 듯 검찰을 완전히 배제하려는 흐름이 충돌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정치검찰을 없애겠다는 개혁이 오히려 정치 한복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범죄 대응 역량 강화와 피해자 보호라는 형사사법 제도 개편의 본질은 뒤로 밀렸다. 이 와중에 검찰이 붙잡고 있는 것이 보완수사권이다. 그러나 검찰이 준사법기관으로서 경찰 수사를 1차로 통제하고, 검찰의 오류를 법원이 최종 판단하던 형사사법의 원칙적 구조가 허물어진 상황에서 보완수사권이냐 보완수사요구권이냐는 논쟁은 사실 곁가지다. 게다가 큰 방향은 이미 정해졌고, 검찰은 속수무책이다. 수사와 기소를 끊겠다는 흐름은 되돌리기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더 눈여겨볼 대목은 '권한 잔존' 여부가 아니라 수사 결과에 대한 '책임 구조'다. 보완수사권이 남아 있는 체계에서는 수사 과정에 검찰이 다시 개입할 수 있고, 이 경우 수사가 잘못됐을 때 서로 상대방 탓을 하며 책임 소재가 흐려지기 때문이다. 수사와 기소의 '단절'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보완수사권을 남겨두는 선택은 애매한 형태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제도가 실패했을 때 누구도 온전히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단순하게 갈 필요가 있다. 검찰 스스로 보완수사권을 포기하고 기소에만 집중하는 구조를 택하는 것이다.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단절'로 수사에 허점이 생기는 등 혼선이 발생한다면 그것이 바로 제도의 성적표다. 그때 비로소 무엇이 문제였는지 드러날 것이다. 물론 검찰의 수사권 완전 박탈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단할 필요는 없다.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고 피해자가 법의 보호를 충분히 받게 된다면 문제 될 게 없다. 반면 수사 공백이 생기고 피해자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건 전적으로 제도 설계자와 실행자들의 책임이 될 것이다.
검사 집단이 이제야 느끼는 모멸감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치검사들의 설 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특정 타깃을 겨냥한 별건 수사와 억지 기소로 존재감을 키워온 부정적 유산은 사라져야 한다. 지금은 그 대가를 치르는 과정이다. 단죄와 낙인은 구분돼야 한다. 분명한 것은 검찰이 더 철저히 마음을 비우고, 더 처절하게 바닥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언젠가는 검사 집단의 진정한 존재 이유가 다시 싹틀 수 있다.
역설적으로 지금 검찰을 무너뜨리는 것은,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는 미련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