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 180㎝쯤 되는 남성이 모형 흉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키 155㎝인 기자가 두 손으로 플라스틱 의자를 잡고 네 다리를 상대 쪽으로 뻗었다. 의자에 막힌 공격자가 방향을 틀어 찌르려 하자 기자는 어디로 칼날이 들어올지 몰라 허둥댔다. 일단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의자를 이리저리 돌리기에 급급했다. 그런데도 키가 25㎝나 더 큰 상대는 의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칼은 하나지만 의자의 공격 포인트는 4개입니다. 의자는 힘이 약해도 들 수 있고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어 흉기를 막는 데 효과적입니다." 구본근 KKM대한크라브마가협회장의 설명이다.
지난 13일 인천 남동구 구월동 복합상가에서 발생한 최충락(59)의 흉기 난동 사건에서도 시민들이 의자와 주변 집기를 활용해 공격을 저지했다. 구 회장은 "마침 현장에 건장한 남성들이 있었고, 들 수 있는 사물이 많았던 데다 혼자 나서지 않고 함께 대응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상에서 예기치 못한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이 커지면서 위기에 대응하는 생존 훈련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동행미디어 시대는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KKM대한크라브마가협회를 찾아 구 회장으로부터 일반인이 흉기 공격에 대응하는 방법을 배웠다. 특전사 무술 교관 출신인 구 회장은 이스라엘군의 근접 전투술 크라브마가(Krav Maga)를 국내에 도입했다. 협회는 구 회장이 한국형으로 변형한 크라브마가를 토대로 군 특수부대, 경찰, 보안 기업 등을 상대로 현장 대응능력 강화훈련(FRT)을 진행한다.
구 회장은 흉기 공격에 대응하는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무조건 거리를 벌려 도망가야 합니다. 둘째, 안전한 곳에 숨어 상대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막다른 곳에 몰리거나 보호해야 할 약자가 있다면 그때는 맞서야 합니다." 이때 습격범에게 저항하는 목적은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물건으로 방어하면서 피신할 기회를 만드는 데 있다.

주변 물건을 활용할 때도 주의할 점이 있다. 예를 들어 의자를 상대에게 마구 휘두르는 행동은 위험하다. 구 회장은 "물건을 휘두르는 순간 빈 공간이 생겨 공격당할 수 있다. 상대를 막으면서 빠져나갈 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자가 없다면 등에 멘 가방이나 핸드백도 방패가 될 수 있다. 책이나 텀블러, 화장품 등 단단한 물건이 든 가방을 몸 앞에 들어 흉기를 막는 식이다. 공격자가 가까이 왔다면 두 팔을 뻗어 상대의 얼굴 쪽으로 가방을 밀어붙여 접근을 막을 수 있다.
우산을 펼쳐 상대 시야를 가리거나 얼굴 쪽으로 우산을 던진 뒤 도망가는 것도 같은 원리다. 정 안 되면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눈이나 코 등 약한 부위를 때려야 한다. 맨손이라면 상대의 몸이 아닌 얼굴을 양손으로 밀어 시야를 막고 도망할 기회를 벌어야 한다. 구 회장은 "배운 게 없어도 깨물고 밟고 눈을 쳐서라도 시간을 벌어야 한다. 맞았다고 주저앉으면 끝"이라고 말했다.
체험 도중 기자는 몇 차례 몸이 굳었다. 분명 모형 칼인 줄 알면서도 눈앞으로 날아드는 칼날이 섬뜩했다. 순간 머릿속이 뒤엉키고 몸이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이처럼 습격당하면 본능적으로 몸이 굳는데, 이때 가만히 있거나 웅크리는 행동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구 회장은 "흉기에 찔린 뒤 웅크리면 고정 표적이 된다. 범인에게는 먹잇감인 셈이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이상동기 범죄 현장의 생존자들은 공격받은 뒤 상대를 밀치거나 얼굴을 치고, 의자·테이블·정수기 같은 지형지물을 활용해 접근을 막으면서 사람이 많은 곳으로 달려가 구조를 요청하는 등 스스로 생존 확률을 높였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SNS에 퍼진 '팔로 목을 감싸고 가방으로 배를 막으라'는 수칙에 대해선 "급소를 보호하는 것은 맞지만, 고정 표적이 된 상황이라면 급소를 지켜도 다른 곳을 계속 찔려 과다출혈로 숨질 수 있다. 차라리 팔로 공격자를 밀치고 빨리 뛰어서 달아나는 게 낫다"고 충고했다.
구 회장은 위기 상황에 대비한 기초체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공포에 사로잡히면 체력이 70% 가까이 떨어져요. 다리에 힘이 풀려 평소라면 금세 달음박질칠 거리도 못 벗어나게 되죠. 평소 유산소 운동이나 근지구력을 키우는 운동을 하면 패닉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버틸 힘이 생깁니다."
위급 상황에 대비한 생존 훈련은 학교 교육 과정에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해외에선 이런 훈련을 학교에서 배운다. 미국은 학교 총기 사건에 대비해 정기적으로 '록다운'(교실 봉쇄) 훈련을 한다. 일본은 2001년 오사카 이케다 초등학교 흉기 난동 사건 이후 2008년 학교보건안전법을 개정해 위험 대처 요령을 마련하도록 의무화했다. 서울 강서구와 용산구 등 일부 자치구는 2023년 신림동 칼부림 등 흉악 사건 이후 주민과 사회복지 공무원을 대상으로 매년 생존 호신술 교육을 하고 있다.
구 회장은 "호신술 교육이라는 명칭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생존 교육', '자기방어 교육', '위기 대응 훈련' 등이 더 적합한 용어라는 것이다. 그는 "학교나 여성단체, 노인시설 등에서 스토킹·흉기 공격·납치와 같은 상황별 생존 교육을 정기적으로 진행하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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