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류 전력을 직류로 변환하는 장비와 이를 안전하게 제어하는 기술을 두고 전력기기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연구개발 성과를 공장과 빌딩에 적용하는 한편 AI 데이터센터로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사진은 LS일렉트릭 관계자가 DC팩토리에 설치된 반도체변압기를 점검하는 모습./LS일렉트릭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전력 소비가 급증하는 가운데 직류 배전이 차세대 전력 공급 방식으로 떠올랐다. 기존 교류 배전보다 전력 변환 단계를 줄여 전력 손실과 발열을 낮출 수 있어서다. 국내 전력기기 3사는 관련 기술 개발·실증에 속도를 내며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은 지난 2일 열린 국제배전협의회(CIRED) 워크숍 기조연설에서 미래 전력망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구 회장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AI 데이터센터를 안정적으로 가동하려면 신뢰도 높은 전력망이 뒷받침돼야 한다. AI 전력 수요를 감당할 확실한 해법은 직류 기반 지능형 전력망"이라고 강조했다.

데이터센터 전력은 교류 배전 방식으로 공급되지만 서버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핵심 장비는 직류 전기로 작동한다. 장비에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무정전전원장치(UPS)와 서버 전원공급장치 등 여러 설비를 거쳐 교류 전력을 직류로 변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력 손실이 발생하고 장치에서 나오는 열은 냉각설비의 부담을 키운다.

직류 배전은 이 변환 과정을 줄여 손실과 발열을 낮추고 설비 공간도 아낄 수 있다. 전력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발전소와 송전망 등 공급 인프라 확충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확보한 전기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직류 배전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직류 배전 확산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기존 전력 설비가 교류 중심으로 구축돼 있어 직류 방식으로 전환하려면 설비 교체에 상당한 비용이 든다. 기술적 한계도 있다. 직류는 교류와 달리 전류가 0이 되는 순간이 없어 사고가 났을 때 전기를 끊기 어렵다.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은 전용 장비 개발과 실증으로 이 같은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일찍부터 한국전력공사와 직류 배전 시스템 공동 개발에 나섰다. 2023년에는 1MW급 직류 배전 시스템을 판교 HD현대 글로벌R&D센터(GRC)에 구축해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회사 측은 도심 업무용 건물에 대용량 직류 배전 설비를 적용한 세계 최초 사례라고 설명했다. 현재는 공장, 데이터센터 등에 적용할 직류 배전 설루션과 전력 변환 장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전력반도체로 변압과 교류·직류 변환을 함께 처리하는 반도체 변압기(SST)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2022년 도심 전력망에 바로 연결할 수 있는 22.9kV급 SST 제품을 개발했고 지금은 더 높은 전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독일 전기·전자 기술기업 지멘스와 손잡고 SST에 에너지관리시스템(EMS)을 더한 데이터센터 전력 설루션을 개발하기로 했다. EMS는 전력 사용량과 공급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전기 사용을 효율적으로 조절하는 시스템이다.

LS일렉트릭은 직류 배전 기술을 실제 생산시설에 적용했다. 지난 7월 충남 천안사업장에 직류 배전 방식으로 운영되는 'DC팩토리'를 구축했다. 회사는 SST와 반도체 차단기(SSCB),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적용해 기존 교류 방식보다 에너지 효율을 10% 이상 높였다고 밝혔다. 같은 달 LG유플러스와 AI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공동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양사는 800V 직류 전원 기술을 공동 실증하고 관련 기술 표준화도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