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빼빼로와 함께 우정을 나누는 여고생들. 1983년 출시된 롯데웰푸드 빼빼로는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만든 11월11일 빼빼로데이를 통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현재 60여개국에 수출되며 한국의 나눔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롯데웰푸드


11월11일. 달력의 평범한 하루가 한 과자의 이름으로 불린다. 누가 정한 공휴일도, 오래된 세시풍속도 아니다. 사람들은 이날 빼빼로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전한다. 히트 상품의 이름이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사례는 적지 않다. 브랜드가 기념일의 이름이 된 경우는 드물다.

11월이 오면 편의점과 슈퍼마켓의 매대는 길쭉한 상자들로 채워진다. 누군가는 친구에게, 누군가는 연인에게, 누군가는 옆자리 동료에게 그 상자를 건넨다. 1983년 출시된 빼빼로가 43년째 이어가는 익숙한 풍경이다.

빼빼로가 처음 등장했을 때 가느다란 막대 과자에 초콜릿을 입힌 모양이 새로웠다. 손에 초콜릿이 잘 묻지 않고 부스러기가 적었다. 연구원들은 유통 과정에서 초콜릿이 녹거나 막대가 부러지지 않도록 시험을 거듭했다. 간편하게 먹는 과자에도 적지 않은 시간과 공이 들었다.
출시 첫해 매출은 44억원이었다. 롯데웰푸드가 밝힌 지난해 빼빼로 매출은 국내 1560억원, 수출 870억원으로 모두 2430억원이다. 누적 판매액은 2조원을 넘어섰다.

빼빼로가 오랜 세월 사랑받은 비결은 변하지 않는 정체성과 끊임없는 변화에 있다. 한 손에 쥐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막대 과자의 형태는 그대로 두면서 초콜릿과 견과류, 쿠키 등으로 맛의 선택지를 넓혔다. 익숙한 과자이면서도 새로운 맛을 찾는 소비자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빼빼로를 다른 과자와 구별 짓는 힘은 '문화'다. 그 이야기는 회사의 회의실이 아니라 학생들 사이에서 시작됐다. 1990년대 중반 부산경남 여중고생들이 서로 날씬해지자며 빼빼로를 주고받았다. 숫자 1이 네 번 이어지는 11월11일이 과자 모양과 닮아서였다. 지역 영업소장의 건의로 1996년부터 빼빼로데이 마케팅을 시작했다. 소비자가 만든 놀이에 기업이 이름과 무대를 보탰다.

그때부터 빼빼로는 먹는 과자에서 건네는 과자가 됐다. 친구에게는 우정을, 연인에게는 애정을, 가족과 동료에게는 고마움을 전하는 매개가 됐다. 거창한 선물이 아니어도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다. 수많은 기념일이 생겼다 사라지는 동안 빼빼로데이가 살아남은 까닭이다. 제품은 닮게 만들 수 있어도 사람들이 쌓아 올린 추억과 습관은 복제하기 어렵다.

이 문화는 국경을 넘었다. 빼빼로는 북미와 동남아 등 60여개국에 뻗어나갔다. 지난해 수출액 870억원은 2020년 290억원의 세 배다.

브랜드는 상품으로 태어나지만 문화가 되는 순간 다른 생명력을 얻는다. 누군가의 우정과 고백, 감사의 기억에 자리 잡은 이름은 가격표만으로 온전히 평가할 수 없다. 사람들은 매년 11월이 되기 전부터 빼빼로의 날을 손꼽는다. 11월11일은 그래서 빼빼로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