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광장
[시대광장/이상복]파이는 커졌는데 왜 사회는 더 불안해졌나
성과급 논란의 변화…돈 넘어 신뢰의 충돌초호황 역설…이해관계 사회로 진입한 한국추격국가의 한계…속도 빠르지만 숙의 부족취약한 공론장…선진국의 힘은 합의 시스템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 직전 가까스로 성과급 합의에 도달했지만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반도체와 비반도체 사업부 사이의 형평성 논란은 법적 분쟁으로 번졌고, 주주들 역시 성과급 재원과 배분 구조에 의문을 제기한다. 업종과 업황을 막론한 'N% 성과급' 요구가 확산하는 가운데 협력업체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몫을 요구하고 있다. 산업·고용·소득 전반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불만은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과거 한국 사회의 갈등은 대체로 생존 문제였다. 압축성장기의 공식은 단순했다. 더 많이 투자하고, 더 빨리 생산하고, 더 크게 성장하는 것이 최우선 가치였다. 갈등이 발생해도 "일단 앞으로 가자"는 논리가 우선했다. 한국은 외환위기와 팬데믹 같은 충격 속에서도 빠르게 회복하며 위기에 강한 나라라는 성공 경험을 축적해왔다. 압축성장의 시대에는 숙의보다 속도가, 조정보다 추진력이 더 큰 미덕으로 여겨졌다.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가 마주한 갈등은 이전과 성격이 다르다. 과거엔 일정 수준의 타협이 갈등 봉합으로 이어졌지만 이제는 하나의 합의가 또 다른 형평성 논란과 이해 충돌로 번진다. 이번 성과급 논란의 핵심 역시 액수 자체보다 "성과를 누가 만들었고,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며, 그 과실을 누구에게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질문에 있었다. 기업은 경영 성과와 투자 책임을 강조하고, 노동자는 기여와 보상을 내세우며, 주주는 수익의 정당한 배분을 요구한다. 파이는 커졌지만 나누는 기준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초호황은 오히려 갈등의 도화선이 된다. 이런 변화는 한국이 본격적인 이해관계 사회로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뒤쫓아야 할 선진국이 분명했던 시대에는 속도가 곧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일정 수준의 성장 이후에는 양상이 달라진다. 무엇을 얼마나 더 만들 것인가보다 그것을 어떻게 나누고 조정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누군가의 이익이 다른 누군가의 부담이 되는 사회에서는 성장 자체보다 갈등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게 된다.하지만 한국 사회는 빠른 성장에 비해 이해관계 조정 시스템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했다. 국민연금 개혁은 필요성을 알면서도 세대 간 부담을 어떻게 나눌지를 놓고 번번이 멈춰 섰다. 의료 개혁 역시 방향성에 대한 일정한 공감에도 불구하고 정부·의료계·국민 사이의 숙의 구조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갈등이 생기면 시간을 들여 조정하기보다 곧장 정치적 공방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았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에 의존해온 측면도 있다.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마저 이해관계 충돌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갈등을 흡수할 수 있는 두터운 '사회적 중간지대'다. 선진국의 힘은 갈등이 적어서가 아니라 갈등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조정하고 완충하는 장치를 갖추고 있다는 데 있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는 노동자 대표가 기업 감독이사회에 참여해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한다. 네덜란드는 1980년대 '바세나르 협약'을 통해 임금 인상 억제와 고용 확대를 맞바꾸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냈다. 미국 역시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도 다양한 중간 기구들이 공론장을 떠받치고 있다. 싱크탱크와 대학, 시민사회, 전문가 집단 등이 대표적이다. 핵심은 갈등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거리의 충돌 이전에 오래 대화하고 조정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중간지대의 핵심 역할은 서로 다른 집단이 최소한의 공통 현실을 공유하게 만드는 데 있다. 노동과 기업, 세대와 지역, 정부와 시민이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공유하지 못하면 사회는 결국 감정과 동원의 경쟁으로 흘러간다. 숙의 민주주의의 핵심은 상대를 이기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인정한 상태에서도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칙과 신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깝다.문제는 이런 중간지대에 대한 신뢰가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공론장을 구성해야 할 언론과 시민사회, 전문가 집단마저 진영화 속에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갈등을 중재해야 할 기관들까지 스스로 갈등의 당사자처럼 행동하기 시작하면 사회의 타협 능력은 급격히 약해진다. 모든 문제는 곧바로 진영 대결로 번지고, 상대는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이 된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건강한 중간지대와 공론장을 회복하는 일은 그 어떤 것보다 시급한 과제다.압축성장의 시대에는 속도가 국가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초호황과 양극화가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조정하고 공존시킬 수 있는지가 새로운 경쟁력이 된다. 이제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결정이 아니라 갈등을 제도 안에서 조정할 수 있는 성숙한 합의 시스템이다. 이번 삼성 성과급 논란은 한국 사회가 왜 이런 조정 능력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는지를 보여준다.
[시대광장/정용관]'부동산 민심'보다 더 아슬아슬한 '주식 민심'
6·3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지만, 요즘 사람들 입에 더 자주 오르는 것은 선거 판세보다 주식 이야기다. "지금 한국은 삼전닉스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60대 이상에서 이재명 정부 긍정 평가가 높은 것도 결국 주가 상승 덕분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어느 자리에서는 "주식은 350%쯤 오르면 인간이 못 버티고 판다더라. 그 한계를 넘으려면 오히려 더 사야 한다"는 얘기도 들렸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최근 장세가 사람들의 심리와 일상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국내 주식 투자자는 이미 1400만 명을 넘어섰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ISA, ETF까지 감안하면 주식시장은 더 이상 일부 자산가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과거 한국 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민심 변수는 부동산이었다. 집값은 소비 심리와 정권 지지율을 함께 흔들었다. 그러나 반도체와 AI 랠리 이후 한국 사회는 조금 다른 국면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부동산 민심 못지않게 '주식 민심' 역시 체감경기와 정치 여론을 흔들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주식시장은 철저히 '리(利)의 세계'다. 기업 가치와 주가의 등락은 곧 내 주머니 문제다. 정치권도 '개미'들의 여론을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정책실장의 국민배당금 발언 직후 증시가 흔들리자 "개인 의견"이라며 급히 선을 긋고 수습에 나선 장면은 상징적이었다.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420만 소액주주 반발이 커지자 대통령이 직접 '주주들의 기업 이윤 몫'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실제로 삼성전자에 이어 다른 기업 노조들의 '성과급 N%' 요구가 잇따르면서 노동의 대가와 주주의 이익이 정면 충돌하는 장면도 낯설지 않다. 과거 같으면 기업 내부의 재무 판단 정도로 지나갔을 사안이 이제는 곧바로 기업가치와 소액주주 이익 훼손 논란, 온라인 여론전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치가 지지층 여론뿐 아니라 실시간 주가 반응까지 의식해야 하는 정치의 '주가 민감증'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미국 정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흐름을 보여줬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우지수를 사실상 국정 성적표처럼 활용해 온 것도 그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이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 때 다우지수 상승 얘기를 꺼내며 트럼프를 추켜세운 것은 상대의 정치 문법을 읽은 접근으로도 볼 수 있다.문제는 그다음이다. 주식 민심은 실시간으로 움직인다. 집값은 천천히 오르내리지만 주가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급등락한다. 오늘 정부를 지지했던 투자자가 내일 폭락장에서 가장 먼저 등을 돌릴 수도 있다. 심리에 크게 좌우되는 시장 특성까지 감안하면 정치는 자칫 조급해질 수 있다. 더구나 지금 장세는 특정 종목 쏠림이 심하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불안한 낙관론까지 번지고 있다. 정부로선 아슬아슬한 줄타기 형국이다.집권 세력에는 정책 수단이 많다. 주가지수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노력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문제는 정치가 주식 투자자의 눈치를 보거나 휘둘릴 때다. 장기 산업 전략과 구조개혁보다 당장의 지수와 시장 반응이 더 중요한 판단 변수로 작동하는 상황이다. 집값에 민감한 정치가 부동산 포퓰리즘을 낳았듯 주가에 흔들리는 정치도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한 단발성 이벤트와 설익은 정책 발표, 시장 구두 개입 같은 근시안적 유혹에 빠질 수 있다.증시 부양을 주요 치적으로 삼으려는 현 정부는 어쩌면 집권 기간 내내 실시간 코스피 시세에 매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기 산업 전략보다 내일 아침 코스피부터 걱정하는 정치, 전문가 집단의 진단보다 투자자의 실시간 반응에 더 민감한 정치로는 시장의 궁극적 신뢰를 얻기 어렵다.기업 가치도 오르고 주가도 오르면 물론 긍정적이다. 그 길로 가길 바란다. 노동의 정당한 보상도 중요하고 주주의 권익도 중요하다. 문제는 충돌 지점이 많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시장경제 원칙에 맞는 합당하고 지속 가능한 '배분의 룰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세금도 떼기 전 영업이익을 일정 비율로 제도적으로 나눠 갖는 것은 투자자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삼성 노조를 비판한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다만 정치가 시장의 환호에 과도하게 기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주식 민심은 부동산 민심보다 훨씬 빠르고 예민하며, 어쩌면 훨씬 더 잔인할 수 있으니….
[시대광장/채인택]이 엄청난 반도체 수익을 미래세대에 투자한다면?
한국 경제가 도약의 기회를 맞고 있다. 갈고 닦은 제조업 기술 및 노하우에 미·중 경쟁이라는 지정학적 기회가 시너지를 내면서 비약의 날개를 달았다. 반도체 부문에서 거둔 거액의 성과는 그 일부다. 문제는 그 과실을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노동조합은 상당 부분이 노동자 몫이라며 성과급을 요구하고, 일부 정치인은 국가공동체의 지원을 내세우며 민간기업의 성과를 모두가 나눠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경제'에선 듣기 힘든 주장이다.이렇게 엄청난 이득을 거둔 적이 없기에 나눔에 대한 요구에는 도무지 겁이 없어 보인다. 지난 세기에 유럽의 역사를 살펴보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바로 '네덜란드병'과 '노르웨이 국부펀드'라는 대조적인 '횡재 다루기' 드라마다. 갑자기 발견된 에너지 자원으로 횡재를 하기는 두 나라 모두 마찬가지였다. 네덜란드는 1959년 북부 흐로닝언 해안지대에서 대규모 천연가스전이 발견되면서 자원수출국이 됐다. 문제는 가스로 누린 호황은 짧았고, 그 부작용은 길었다는 점이다. 자원 수출로 외화가 다량 유입되자 물가와 임금이 오르면서 인플레이션이 찾아왔다. 자국 통화 가치가 높아지면서 수입 물가는 떨어졌지만 수출 경쟁력은 추락했다. 고환율과 고물가는 제조업 기반을 뒤흔들었다. 이는 1970년대 장기 침체로 이어졌다. 미디어와 경제학에서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이나 '자원의 저주'로 부르는 현상이다. 벼랑 끝에서 네덜란드는 뼈를 깎는 혁신을 결단했다. 정부와 노사는 1983년 노사정 대타협인 '바세나르 협약'을 이뤄냈다. 노동조합은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기업은 고용 유지와 유연근무 확대를 약속하며, 정부는 세금 인하와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게 골자다. 대타협의 결과 노동비용의 과도한 증가를 진정시켰고 수출과 경제성장률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으며 고용도 회복됐다. 이와 함께 네덜란드 정부는 가스 산업에 국가 경제가 쏠리지 않도록 정책적으로 연구·개발(R&D)을 강화해 다양한 첨단 산업과 제조업을 육성했다. 현재 네덜란드는 반도체 장비, 스마트 농업, 물류·운송, 화학 및 에너지, 순환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스마트 농장을 바탕으로 농산물 수출에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첨단기술 분야에선 반도체 생산을 위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는 세계 1위 기업 ASML이 유명하다. 이 장비는 반도체 생산에서 7nm 이하의 초미세 공정을 구현하는 데 필수적이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들이 확보를 위해 경쟁을 벌일 정도다. 네덜란드병을 가져온 유럽 최대 규모의 흐로닝언 가스전은 잦은 지진 때문에 2024년 10월 영구 폐쇄했다. 자원 부국보다 인재 부국, 횡재보다 지속이 가능한 미래 개척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사례다. 노르웨이는 네덜란드보다 늦은 1969년 12월 필립스 페트롤륨(Phillips Petroleum)사가 북해에서 에코피스크(Ekofisk) 유전을 발견하면서 주요 산유국이 됐다. 노르웨이는 네덜란드와 달리 석유와 가스라는 천연자원에서 나온 재원을 재정에 직접 투입하지 않고, 대신 공동체와 후손의 미래에 투자했다. 오일 머니를 차곡차곡 쌓아 국부펀드를 조성하고 장기 자산 운용으로 거대한 국부를 일궜다. 1990년 설립된 '정부 연금기금 글로벌(GPFG)'이라는 이름의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다. 자산이 2조 1170억 달러나 된다. 한국의 올해 예상 국내총생산(GDP)인 1조9310억 달러보다 많다. 노르웨이는 이 기금을 해외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나눠서 투자하고 있다. 국부펀드의 목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국내 경제를 인플레이션과 과한 통화가치 상승으로부터 보호한다. 둘째, 투자 수익의 일부를 의료·교육 등 현재의 복지와 사회 안정을 위해 지출한다. 셋째, 오일 머니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더라도 미래 세대에게 교육을 비롯한 공동체 복지를 지속해서 제공할 수 있도록 국부를 보존하는 것이다. 횡재를 당대가 아닌 후대에까지 나눠 쓸 수 있도록 투자한 셈이다. 오일머니의 국부펀드 편입은 '네덜란드병'이 노르웨이에서 벌어지지 않은 비결로 꼽을 수 있다. 국부펀드는 1953년 쿠웨이트에서 시작해 현재 1조72억 달러의 자금을 운용하는 쿠웨이트 투자청(KIA)이 효시다. 주로 외화보유액이나 재정 흑자, 자원 판매수익 등 공공자산을 바탕으로 국가가 미래 세대를 위해 조성하고 운영하는 기금이다. 아랍에미리트(UAE)·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인도네시아 같은 자원 부국은 한결같이 이를 운용한다. 중국처럼 외환보유고가 많은 나라나 싱가포르같이 부존자원이 없는 나라도 국가적 한계를 전략적 투자를 통해 극복하기 위해 이를 운용한다. 이처럼 네덜란드나 노르웨이에 새옹지마 같은 횡재를 안겨줬던 에너지 산업은 모두 국영기업이었다. 한국의 횡재는 모두 민간기업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유럽 두 국가의 횡재가 에너지 자원이었다면 한국의 횡재는 기술과 교육·훈련이 축적된 제조업에서 나온다는 데서 서로 다르다. 네덜란드병을 벤치마킹해 '자원의 저주'를 미리 막을 수 있었던 노르웨이는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필사적인 노력과 대타협으로 네덜란드병을 스스로 극복한 네덜란드도 우리 가슴에 울림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언제든지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다. 현재 반도체 초호황으로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지만 경제가 경기를 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지금 얻은 이익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미래 경제 안보가 걸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초호황에 환호만 하지 말고 미래 안전을 위한 보험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국부펀드 투자는 그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아울러 민간 기업의 이익이나 초과 세수의 활용 문제에선 새로운 사회적 숙의와 대타협이 필요하다. 결코 단기적인 시각이나 정치적인 유불리로 다룰 일이 아니다. 그 수입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한국 시장경제의 미래 정체성도 달려있다.
[시대광장/이상언]노조 쇠락의 서막: 삼성 성과급 투쟁
1987년 여름 런던 도심에서 연일 은행원 시위가 열렸다. 파업을 동반했다. 준공무원으로 인식되던 은행원들이 거리로 몰려나온, 전례 없던 사태였다. 여러 요구가 있었지만 핵심은 급여 인상이었다. 컴퓨터 보급 확산으로 업무가 전산화되기 시작한 때다. 은행 직원들은 새로운 일 처리 방식을 익혀야 했다. 단순 업무가 줄면서 업무 강도가 세졌다. 은행의 '효율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자 고용 안정성도 약해졌다. 영국 은행·보험·금융노조(BIFU)가 조합원들의 불만을 집단행동으로 조직했다. 이제 더 이상 단순 사무직이 아니니 전문직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노조 승리로 싸움이 끝났다. 급여가 평균 9% 인상됐다. 그때부터 바클레이즈·로이즈 등 영국 은행들이 지점·부서·개인에 대한 업무 평가를 시작했다. 일반 사무직이 아니고 전문직이라고 했으므로, 성과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당연하다는 것이 은행 이사회 논리였다. 급여가 점차 '개별화' 됐다. 전통적인 연공+직급제가 허물어졌다. 노조 협상이 내 연봉에 미치는 영향이 확연히 줄었다. 노조 활동은 윗사람 눈치 보면서까지 할 일은 아닌 게 됐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주의가 늘었다. 급여에서 매달 나가는 조합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커졌다. 80% 수준이던 영국의 은행·보험 노조 가입률은 현재 12%(영국 정부 통계)다.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을 계기로 한국 국민 다수가 의문을 품었다. 해외의 삼성전자 비슷한 기업에서는 초호황 대박이 났을 때 성과급을 어떻게 주나? 영업 이익의 15% 정도를 직원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곳이 있나? 성과급 때문에 노조가 파업으로 회사를 압박하는 곳이 있나? 이런 질문들이 던져졌다. 언론이 삼성전자 경쟁사를 포함한 글로벌 빅테크를 살펴 보도했다. TSMC·엔비디아·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대상이다. 결과는 이렇다. 성과급의 상당 부분을 주식으로 준다. 통상 4년 정도의 매도 금지 기간을 정해서. 성과급은 급여 계약 때 조건과 계산 방식이 약속된다. 회사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지 않는 한 노조가 개입할 게 없다. 성과 평가는 조직과 개인으로 개별화 돼 있다. 이때의 조직은 팀 정도의 규모다. 전체 회사 수익에서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율은 회사에 따라 다르다. 15%가 넘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한국인들은 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성과급 지급 방식이 글로벌 표준과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회사의 성공은 벡터(힘의 방향+크기)의 합에 달려 있으며, 인재의 밀도가 그 합을 결정하고, 결국 '하드코어'가 핵심이다." 일론 머스크의 말이다. 여기에서 하드코어는 특별한 성과를 내는 임직원을 일컫는다. 팔란티어를 만든 알렉스 카프는 회사의 핵심 인재를 아티스트, 일탈자(deviant), 선교사로 칭한다. 스티브 잡스는 혁신을 일궈내는 내부자를 A플레이어로 불렀다. 구글의 검색 엔진 개척자 앨런 유스터스는 "최고 수준 엔지니어의 가치는 평균적 기술자의 300배"라고 주장했다. 빌 게이츠는 "출중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평균적인 개발자에 비해 1만 배의 가치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글로벌 빅테크에는 전 직원이 비슷하게 나누는 성과급 제도가 없다. 창업자들 생각에 그 까닭의 답이 있다. 지난달 29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서울 한남동 이재용 삼성 회장 집 옆에 천막을 쳤다. 앞에 이런 문구가 걸렸다. '우리가 천막을 친 이유는 단 하나, 내 옆의 동료가 떠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성과급이, 결과적으로 총 급여가 불만스러워 직원이 다른 회사로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투쟁에 나섰다는 뜻이다. 정말일까? 그렇다면 능력이 월등한 반도체 엔지니어가 대만·일본·미국, 나아가 중국으로 가는 것을 일률적인 보너스로 막을 수 있을까? '공정한 보상'의 저자 신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현재 삼성전자 부장급 미만 직원의 성과급은 개별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이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 국제 인재 쟁탈전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외국 반도체 회사와 경쟁한다. 초격차 기술력에 초격차 인재 대우는 필수적이다. 지금의 성과 배분 갈등은 결국 새로운 제도로 귀결될 것이다. 기존의 골고루 나누기가 존속되기 힘들다. 그때 노조가 '내 옆의 동료가 떠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오늘의 주장을 잊지 않기 바란다. 그냥 동료가 아니라 우수한, 뛰어난 동료가 짐을 싸면 더 큰 문제 아닌가?
[시대광장/이상복]'누가 쐈나'보다 '누가 꾸몄나'를 묻는 사회
지난달 백악관 기자단 만찬장에서 대통령을 노린 총격 소식이 전해진 직후, 미국 사회를 뒤흔든 것은 총성만이 아니었다. 구체적 상황이 확인되기도 전에 소셜미디어에는 연출설이 번졌고, 총성의 진위보다 배후와 각본을 따지는 주장이 쏟아졌다. 현장 영상이 공개된 뒤에도 의혹은 잦아들지 않았다. 사건 하루도 안돼 엑스(옛 트위터)에만 '조작된(staged)'이란 단어가 포함된 게시물이 30만건 이상 올라왔다. 우리는 이미 보고도 믿지 못하는 환경에 익숙해졌다.과거 정치인 피격은 초당적 규탄과 진상 규명의 문제였다. 지금은 질문의 순서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먼저 '누가 꾸몄나'를 묻는다. 눈앞의 장면보다 자신이 속한 진영의 서사가 먼저 작동하고, 파편적 단서들은 빠르게 엮여 그럴듯한 이야기로 굳어진다. 물론 경호의 허점이나 초기 혼선이 의심을 키웠다는 지적은 가능하다. 그러나 정치적 사건에서 정보가 엇갈리고 수정되는 일은 새롭지 않다. 달라진 것은 사건이 아니라 소비 방식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사실을 확인한 뒤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결론을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장면과 문장만 골라 취한다. 이 같은 패턴은 미국 정치에서 반복돼 왔다. 2024년 대선 유세 총격 사건 당시에는 반트럼프 진영의 조작설과, 트럼프 지지층의 배후설이 동시에 확산됐다. 트럼프 역시 2020년 대선 이후 부정선거 주장을 반복하며 불신의 언어를 정치적으로 활용해 온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자작극 의혹의 중심에 섰다. 음모론은 특정 진영의 무기가 아니라, 결국 모두에게 되돌아오는 부메랑임을 보여준다.이 배경에는 플랫폼 알고리즘과 정보 생태계의 변화가 있다. 이용자의 체류 시간과 반응을 극대화하는 구조는 자극적이고 단정적인 콘텐츠를 우선 노출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접하고, 정보의 공백은 편집된 영상과 확신에 찬 문장으로 채워진다. 이 과정에서 상대 진영은 점점 더 악의적이고 위협적인 집단으로 재구성된다.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총기 사건의 양상은 같지 않지만, 사건을 음모론적 서사로 소비하는 방식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부정선거 주장, 대형 참사 뒤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배후설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유튜브와 폐쇄형 메신저를 통해 유통되는 자극적 정보는 공적 제도와 사회적 신뢰를 서서히 잠식해 왔다. 분노와 의심을 자극하는 콘텐츠가 수익 구조와 결합하면서, 확증 편향은 하나의 시장처럼 작동하고 있다.주목할 것은 이런 현상이 단지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연구들은 어떤 미디어를 주된 정보원으로 소비하느냐가 음모론 수용 정도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든다고 지적한다. 『한국방송학보』 3월호에 게재된 정낙원 교수(서울여대) 등의 연구에 따르면, 정치 유튜브 이용 빈도가 높을수록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한 신뢰도가 유의미하게 상승했다. 반면,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기성 언론을 주된 정보원으로 이용하는 집단에서는 음모론 신뢰도가 뚜렷하게 낮게 나타났다. 전통 매체가 완벽해서가 아니다. 다만 팩트체크와 교차 검증, 반론권 보장 등 저널리즘의 형식과 절차가 독성 정보의 확산을 늦추는 완충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다. 논문에선 자신의 정치 성향과 다른 매체에 노출될수록 정치적 관용도가 높아지고, 상대 집단에 대한 위협 인식 역시 낮아지는 경향도 확인됐다.이는 우리에게 분명한 시사점을 던진다. 탈진실의 시대에 음모론의 범람을 막는 것은 개인의 도덕적 각성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어떤 미디어 환경을 구축하고 소비할 것인가의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의심이 아니라 더 느린 확인이다. 정치권은 근거 없이 불신을 동원하는 언어를 자제해야 하고, 언론은 속보 경쟁보다 검증과 맥락 제공이라는 본령으로 돌아가야 한다. 게이트키핑은 낡은 권위가 아니라, 사실과 추측을 구분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다. 특히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며 다양한 시각을 전달하는 매체가 공론장의 역할을 회복할 때, 음모론의 위협을 줄일 수 있다.총성은 한순간이지만, 그 뒤를 덮는 의심의 언어는 오래 남는다. 시민들이 사실보다 각본을 먼저 찾는 사회에서 진실은 설 자리를 잃는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누가 꾸몄나'가 아니라, 왜 우리는 그 질문부터 하게 되었는가다.
[시대광장/정용관]"공소 취소 원치 않는다"…그런 당당함 볼 수 있다면
이른바 '조작기소' 국회 국정조사특위가 곧 활동을 끝낸다. "검찰이 정적 제거에 부역했다" "연어 술 파티가 있었느냐" 등 여야의 반응과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일반 국민으로선 진실이 무엇인지 더 헷갈릴 지경이다. 이쯤에서 남는 질문은 하나다. 권력은 자기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특별감찰관 임명 절차를 밟아달라며 "모든 권력은 제도적 감시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당연한 말이다. 권력은 의지로 통제되지 않는다. 제도로만 통제된다. 그것이 법치와 공화주의의 출발점이다. 10년째 공석인 특별감찰관은 임명하면 된다. 그건 앞으로의 일이다. 여야 몫을 따질 사안도 아니다. 대통령 가족과 측근을 감시하는 자리라면, 차라리 변협 등 외부 추천을 통해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편이 낫다.문제의 핵심은 따로 있다. 민주당은 "특검을 통한 정치검찰 응징"을 벼르고 있다. 이를 통해 대통령 관련 사건들에 대한 '공소 취소'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문제는 예민하다. 정치 공방을 넘어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견제와 균형이라는 통치 원리의 근본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여권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기소했던 미국 특별검사 사례를 들며 공소 취소 법리를 검토해 왔다. 그러나 단순 비교는 성립하기 어렵다. 미국에선 '추후 재기소 가능'을 전제로 법원의 승인을 받는다. 법원 통제라는 장치가 전제돼 있다. 반면 우리의 공소 취소는 담당 검사의 판단으로 사실상 사건을 끝내는 효과를 갖는다. 이를 그대로 끌어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이 대통령을 수사한 검사들이 스스로 공소 취소를 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래서 거론되는 방식이 특검을 통한 공소 취소다. 특검은 국회 입법 사안이지만 결국 대통령이 임명한다. 만약 특검을 통한 공소 취소가 실제로 추진된다면, 이는 살아 있는 권력의 '자기 면책'으로 비칠 공산이 크다. 설령 내용적으로 당위성이 인정되고 형식적으로 적법하다 해도, 그런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그런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 시절에도, 대통령이 된 뒤에도 사법 문제는 누구도 쉽게 입에 올리지 못하는 의제라고 한다. 금기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 스스로 "증거 조작, 사건 조작은 일반 범죄자가 저지르는 강도나 납치·살인보다 더 나쁜 짓"이라고 했다. 최근엔 2022년 대선 당시 언론 보도를 문제 삼기도 했다.필자 주변에는 대통령이 그런 정도까지 얘기할 정도라면 "정말 억울한 것 같다"고 말하는 보수 인사들도 있다. 집권 내내 자신의 머리 한쪽을 짓누를 '악성 혹'을 떼어내려는 여론 빌드업 과정이라는 비판도 있다. 답답한 심정에 진실을 명확히 가를 제3의 권위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그 역할을 해 줄 주체가 현실에 없다는 게 문제다.이 대통령은 여전히 공소 취소 자체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최고 권력자의 침묵은 암묵적 메시지로 읽힌다.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이고 인권을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개인의 억울함 차원을 넘어선다. 선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한 가지 상상을 해본다. "조작 기소의 실체를 확인했다"는 것이 민주당의 자체 평가라면, 오히려 지금이 기회일 수 있다. 국정조사 특위 종료 시점에 맞춰 단 한 줄의 메시지를 내는 것이다. "내 문제는 우리 형사사법 시스템의 절차와 판단에 맡기겠다. 특검을 통한 공소 취소는 원치 않는다." 권력이 스스로 '정도'를 선언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선택인 줄 안다.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을 수사한 특검을 해고하고 정치적으로 압박하고 있다.다만 이런 기대를 하는 것이 필자 스스로 어떤 예단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사법 논란의 실체를 둘러싼 공방은 끝이 없다. 여론도 정치 성향에 따라 뒤죽박죽이다. 그럴수록 최고 권력자는 '제도의 영속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설령 억울함이 크다 해도, 여기서 멈추는 것이 더 지혜로운 선택일 수 있다. 자기 문제는 퇴임 후 우리의 일상적인 법과 제도의 판단을 받겠다는, 그런 당당하고 의연한 '권력의 태도'를 보일 때 국정도 더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법(法)과 술(術)을 어떻게 적절히 운용하느냐에 따라 권력의 운명이 갈리곤 한다. 사법 시스템과 정치 기술 중 무엇을 앞세울 것인가. 어쩌면 지금이 바로 그 갈림길인지 모른다.
[시대광장/이상언]'제왕 오너' 없애자면서 "회장 통 큰 결단" 요구하는 모순
회장 집 앞 시위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상투적 장면(클리셰)이다. "갑시다"라는 엑스트라 배우의 대사, 붉은 머리띠, 커다란 글씨의 피켓이 의례적으로 등장한다. 대체로 불행한 폭력 사태로 귀결되는데, 종종 '재벌집 막내아들' 진도준이나 '눈물의 여왕' 홍해인처럼 선량한 회장 가족의 온정적 도움으로 아름다운 결말을 맺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처럼 단순하지 않다. 그렇게 쉽게 끝날 일이었으면 진작 해결됐을 것이다. 삼성전자 노조가 이재용 회장 집 앞 집회를 예고했다. 자신들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성과급을 맞춰주지 않으면 서울 한남동에서 골목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한다. "이 회장이 결심하라"는 압박이다. 한국의 양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단체는 지난 30여 년 동안 '제왕적 리더십' 해체를 요구해왔다. "기업 오너 한 마디에 모든 게 좌우되는 전근대적 경영에서 벗어나자"고 했다. 투명한 시스템 경영, 민주적 경영의 필요성을 주창해왔다. 노조뿐 아니라 사회 전반이 그 방향을 지지했고, 실질적 진전이 있었다. 오너가 아닌 이사회의 경영, 주주 이해 우선 제도가 하나둘 만들어졌다. '황제 회장' 폐지를 주장해온 노조가 '오너가 결단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를 말하면서 대통령이 총리와 장관, 나아가 실무자가 할 일에까지 직접 나서길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통령이 그래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주주가 회사의 공식 기구를 뛰어넘는 결정을 하는 것도 옳지 않다. 구시대적 운영이다. 우리 사회는 '회장 집 앞 시위'에 관대하다. 법에 정해진 기준을 벗어나도 공권력이 제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 한 세대 간 집회·시위 보장이 우선적 가치로 여겨졌다. 절박한 호소를 위한 최후 수단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바탕이 됐다. 비참하게 해고됐는데 법적 절차로 구제되지 못했을 때, 그 누구도 억울한 사정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회장 집 앞으로 갔다. 다소 물의가 빚어져도 사회가 용인했다. 언론도 대체로 대문 밖 사람 편에 섰다. 삼성전자의 성과급 갈등은 이런 일과 궤를 함께 하지 않는다. 긴급하고 억울한 사정의 사안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임금 체불, 무단 해고와 같은 생존권의 문제가 아니다. 이재용 회장이 두문불출로 직원들을 피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정상적으로 출퇴근 하고 있다. 노조의 항의가 불가피하면 사업장에서 하면 된다. 이런 일로 집 앞 시위를 벌이면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할 때마저 행패로 간주되며 외면당한다. 정말 최후의 수단만 남은 이들을 더욱 궁지로 모는 '절박함 가로채기'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법원은 기업 경영진 자택 앞 시위를 제한해왔다. 집회 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인용 판결이 잇따랐다. 판사들이 '그곳에서 그렇게 할 필요'에 동의하지 않는다. 법률 용어로 '상당성 부족'이다. 노조의 '망신 주기'에 불과한 행위에 가족이나 주민까지 애꿎은 피해를 입는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사적 영역에 대한 존중, 생활권 보장이 어느덧 사회적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도 노조는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는 것처럼 집 앞으로 몰려가 장송곡이나 상여 소리, 운동 가요가 주택가에 울려퍼지도록 한다. 노조원들은 경찰의 제지나 법원 결정 무시에 따른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소음 기준 위반은 수십만원의 과태료나 벌금에 그친다. 그 돈은 노조의 투쟁기금에서 조달되고, 노조 간부의 전과는 훈장이 된다. 열일하는 선명한 노조의 상징이다. 업무방해 고소 등으로 사태가 번지기도 하지만 결국 회사는 취소나 처벌 불원서 제출로 끝을 맺는다. 삼성전자 노조가 회장 집 앞 집회에서 요구하겠다는 것은 노동 가치 인정이 아니라 제왕의 결단이다. 평소에는 "독단 경영을 멈추라"고 말하더니 지금은 그 권능을 발휘해 "통 큰 결단을 하라"고 압박한다. 이런 직 거래 요구는 정당한 노조 활동의 선을 넘은, 정상적 경영에 대한 위협이자 시스템 부정이다. 투쟁이 성공하면 실무자들이 허수아비가 되고, 주요 노사 이슈가 오너의 마음에 종속된다. 기업 거버넌스 퇴보가 아닐 수 없다. 세계 산업을 이끄는 한국의 1등 기업 노조에 걸맞지 않은 부끄러운 일이다.
[시대광장/채인택]김정은, 왜 '인공지능' '드론' 강조하나
4년을 훌쩍 넘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반도에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별 관계 없어 보였던 사건이 시간이 지나면서 거대한 파장으로 다가오고 있다. 2024년 10월 쿠르스크 전선에 파견됐던 북한군 약 1만2000명이 회오리의 매개다. 영국 왕립합동 군사연구소(RUSI)는 최근 발행한 보고서에서 "파병 북한군이 전장에서 현대전에 필요한 전술을 경험했으며, 북한은 이를 바탕으로 군사 장비와 교리의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래식 전력 경쟁에서 밀려 핵이라는 비대칭에 올인하다시피 했던 북한군이 러시아 파병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현대 군사력 몸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북한군 전력 현대화는 우리에게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동력은 북·러 밀착이다. 25일 러시아의 뱌체슬라프 블로딘 국가두마(하원) 의장과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국방부 장관이 이례적으로 나란히 평양을 찾았다. 방문목적 두 가지가 모두 심상치 않다. 하나는 26일 북·러 군대의 이른바 '쿠르스크 재점령 1주년'을 맞아 평양에 세운 '해외 군사작전 영웅 기념단지 겸 군사 영웅 전투 위훈 기념관' 준공식 참석이다. 러시아에 파병됐다 숨진 북한 군인에 대한 추모시설이다. 또 다른 목적은 북·러 간 '2027~2031년 중장기 군사협력 계획 체결'이다. 5개년 군사협력 추진은 2024년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 당시 체결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의 실천이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북·러 관계를 실질적인 군사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안보·방산 협력 계획이다. 공개 정보를 바탕으로 양측의 안보·방산 협력 내용을 살펴보면 놀라울 정도다. 전략국제연구소(CSIS) 산하 북한 전문 사이트 '분단을 넘어(Beyond Parallel)'는 2025년 4월 "평안북도 구성시의 방현 공군기지에 폭 40m의 새로운 무인기 격납고 7개가 완공된" 사진을 공개했다. 북한이 신규 무인기 부대를 창설해 자체 생산한 '샛별-4형'과 '샛별-9형' 무인기를 실전 배치한 증거다. 38노스는 지난해 9월 북한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샤헤드/게란급 무인자폭기를 생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자폭기는 이란의 샤헤드-136 드론을 바탕으로 러시아에서 생산한 게란-2 드론을 가리킨다. 샤헤드-136은 이란 전쟁에서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걸프 연안국가를 무차별 공격했던 바로 그 기종이다. 견디다 못한 미국이 지난 3월 초 우크라이나에 탐지와 요격 기술을 요청했을 정도로 파상공세를 벌인 저가 자폭 드론이다. 4년 이상 러시아의 공세에 대항해온 우크라이나는 저가형 요격 드론과 스카이맵으로 불리는 드론대응 방공망 지휘통제 플랫폼을 개발했다. 한발 60억원대의 미국산 패트리엇 미사일을 수천만원 수준의 스팅-2나 P1-선 등 자국산 '드론 잡는 요격 드론'으로 대체했다. 스카이맵은 1만여 개의 음향 감지기와 AI를 결합한 탐지·요격 체계로, 드론 특유의 소리와 진동을 감지해 잡아낸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 군사용으로 전용이 가능한 AI 등 각종 첨단기술이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러시아의 지원으로 현재 AI기반 표적설정, 자율의사결정 알고리즘, 상대방 드론에 대한 재밍(신호차단)과 스푸핑(가짜신호를 통한 위치기만), 그리고 포획술 등 다양한 첨단 군사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모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사용했던 전술적 경험이 바탕이다. 이런 북·러 밀착을 살펴보면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인공지능' '드론' 등 새로운 기술과 무기체계와 관련 용어를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는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아 파병으로 얻은 게 있다는 신호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군에 "무인무장장비 체계들의 인공지능 및 작전능력 고도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라고 지시했다. 드론 격납고 7개를 설치한 방현 공군기지에서 벌어진 금성을 비롯한 자폭형 무인기 시험을 참관하면서다. 지난 2월 제9차 당대회에서는 인공지능, 대(對)위성 무기, 전자전 시스템 등을 '특수전략자산'이라고 지칭했다. 북한이 이처럼 AI 자폭 드론 등 첨단 기술을 적용한 특수전략자산을 대규모로 운용할 경우 우리 수도권이 가장 먼저 위협을 받게 된다. RUSI 보고서에서 가장 께름칙한 부분도 이와 연관이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새로운 전쟁 방식을 흡수한 덕분에 포격 목표물 정보수집부터 사격까지 걸리는 시간을 과거 몇 시간에서 몇 분으로 단축했다고 한다. 정찰 드론 정보를 포병 및 다연장 로켓의 사격 통제 시스템에 직접 통합한 결과다. 러시아의 대북 지원은 200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우리 수도권의 안보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은 먼 곳에서 벌어지는 남의 일로, 이란 전쟁은 원유·원자재 등 경제적 측면만 봐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젠 이로 인한 실질적인 안보 위협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이 AI와 드론 등 첨단기술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전면 남침 시 반격 작전이나, 공격징후가 보일 때 선제타격, 또는 핵무기 제거 특수작전 등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킬 작전계획 등을 손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러시아 급 군사기술 강국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진화한 드론은 턱밑에서 우리 목을 겨눈 비수나 다름없다. 군사적 대응 계획은 물론 러시아나 이란과 관련한 외교 및 국제협력의 틀도 새로 짤 수밖에 없다. 평화적으로 공존하려면 군사력과 외교력이 모두 필요하다.
[시대광장/이상언]우리도 애쉬 카터가 필요하다
"도대체 어디에 얘기를 해야 하는 지 알 수 없었죠. 너무, 너무, 답답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인텔리빅스의 최은수 대표가 말했다. 사연은 이렇다. 이 회사는 업력 26년의 '관제 시스템' 설치 회사다. CCTV를 진화시키는 데 노력해왔다. 카메라 영상 속의 '이상 현상'을 인공지능(AI)이 인식해 관제 시스템에 경고 메시지를 띄우는 기술을 개발했다. 산업 현장과 주요 시설물의 위험을 CCTV로 파악해 관리자에게 바로 알려준다. 그리고 수년 전에 폭설, 폭우, 짙은 안개 속에서도 200m 이내의 사물을 식별해 영상으로 표출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이 업체는 이런 기술이 국방에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했다. 악천후에도 특이 징후를 포착하는 전방과 해안의 감시 장비로 활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2년 전부터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아직도 문 턱 주변에 있다. "어렵사리 군수 관계자를 만나 설명했더니 군 품목 분류 체계 때문에 일반 CCTV만 조달 가능하고 우리 것 같은 특수 장비는 항목 자체가 없다고 했어요." 최 대표 말이다.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 벽을 보고 말하는 것 같았죠." 이 회사는 '방산혁신기업 100'이라는 제도가 있음을 알게 됐다. 방위사업청이 2022년부터 올해까지 한 해 20개씩 총 100개의 방산 분야 혁신 기업을 선정해 지원하는 사업이다. 2024년에 여기에 지원했다. 온갖 서류를 갖춰서. 그러나 탈락했다. 그리고 지난해 재수를 해 성공했다. 인텔리빅스는 지난해 가을 '서울 국제 우주항공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에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 회사 부스에 방문해 설명을 듣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됐다. 이 대통령은 이날 "민간 기술을 군에 접목해 첨단산업을 이끄는 촉매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텔리빅스의 AI 카메라가 국군에 쓰일 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최 대표에 따르면 '방산혁신기업 100'에 선정된 뒤 군에서 수개월째 성능 테스트 중이다. 시험을 통과해도 갈 길이 멀다. 까다로운 군납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군 예산 확보도 필요하다. 부지하세월이다. 민간에는 AI 카메라가 장착된 사족보행 로봇이 순찰을 도는 곳이 있다. 세상과 군의 기술 적응 속도 차가 크다. 최 대표는 지난해 10월 국회의 한 토론회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한국 군 획득 시스템의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2000년대 중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급조폭발물(IED)에 의한 미군 사망자가 급증했다. 군용 차량 아래에서 IED가 터지는 사건이 속출했다. 당시 미 국방부 군수 담당 차관이었던 애쉬 카터는 험비의 하부에 V자(충격 분산용) 형태의 장갑을 부착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예일대와 옥스퍼드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그는 방법을 찾다가 이미 그런 구조의 차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지뢰 제거 작업에 쓰인 것이었다. 카터는 그 차량을 만든 회사가 곧바로 미군에 납품할 수 있도록 국방부 장관(로버트 게이츠)에게 '긴급 조달' 명령을 내려달라고 했다. '관료주의적 절차가 장병들의 생명보다 중요할 수 없었다.' 카터의 회고록에 이렇게 적혀 있다. 그때로부터 약 1년 뒤 '쿠거'라는 이름의 지뢰방호장갑차(MRAP)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미군에 공수되기 시작했다. 그 뒤 5년간 약 2만7000대가 보급됐다. 2022년 애쉬 카터가 62세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을 때 뉴욕타임스는 MRAP 보급에 대해 '미군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조달이었다'고 평가했다. 미국 언론들이 "미군 수천 명을 살린 영웅"이라고 그를 기렸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5년에 미국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된 카터는 곧바로 실리콘밸리 인근의 스탠퍼드대로 갔다. 연설에서 '국방혁신실험단(DIUx)' 창설을 선언했다. 스타트업 신기술 탐색과 지원이 이 조직의 임무라고 말했다. DIUx 사무실을 아예 실리콘밸리에 뒀다. 이 조직의 첫 작품이 '공중급유 앱' 제작이었다. 수작업이 소프트웨어로 대체되면서 급유 계획이 정밀해졌다. 한 해 수천억원의 비용이 절감됐다. 스타트업과 계약을 맺어 북한의 KN-08 탄도미사일 이동식 발사대를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는 위성 정찰 시스템도 마련했다. 초기 2년에만 약 50개의 민간 기술 활용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이 과정은 최근 출간된 책 '실리콘밸리와 펜타곤의 비밀 전략실 유닛X'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개혁가 카터는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한다. 국방부가 서류의 속도에 갇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동행미디어 시대가 주최한 '새로운 전쟁의 시대, K방산의 현재와 미래' 포럼이 지난 16일 열렸다. 방산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국 군 획득 시스템 개혁을 주문했다. 맥아더 장군은 전쟁에서 지는 이유를 단 두 단어로 요약했다. '너무 늦었다(Too late)!' 우리에겐 청의 기마술과 왜의 조총 같은 신기술에 강토를 유린당한 역사가 있다. 류성룡은 징비록에 '미리 준비하지 못한 죄가 산더미'라고 썼다. 지금 우리는 애쉬 카터처럼 틀을 깨는 혁신 리더가 몹시 필요하다.
[시대광장/이상복]'가짜뉴스', 정말 막고 싶다면…
대통령과 정부, 경찰의 가짜뉴스 소탕전 확대 가짜뉴스는 '사람'보다 '구조'를 바꿔야 막는다정파적 미디어 환경과 왜곡된 수익 모델이 토양 권력이 직접 '진실의 심판자' 역할 맡는 건 위험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SNS에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아동을 고문한 뒤 지붕에서 떨어뜨렸다고 주장하는 영상을 공유했다. 그러나 영상의 촬영 시점과 전후 맥락은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해당 내용의 일부가 왜곡됐고 시점도 최근이 아닌 2024년 9월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당시 대통령은 "사실이라면"이란 단서를 달긴 했지만,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검증이 부족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누구라도 불완전한 정보를 믿고 확산할 수 있는 환경 속에 우리는 놓여 있다.최근 정부는 이른바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대통령은 중동 전쟁과 관련한 허위 정보를 "내란 행위"라고 질타했고, 경찰은 곧바로 전담 조직을 꾸렸다. 행정안전부 역시 가짜뉴스 유포를 '반란행위'에 준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산하에 가칭 '투명성센터'를 설립하는 방안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팩트체크 지원과 허위정보 대응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가짜뉴스를 줄여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문제는 이런 대응 방식이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역대 정부마다 대통령이 가짜뉴스를 언급하면 어김없이 전쟁이 선포됐다. 조직이 만들어지고, 수사가 뒤따르고, 처벌이 강조됐다. 윤석열 정부 시절에는 방송통신위원회 산하에 가짜뉴스 대응센터가 생겼고, 언론 관련 기관에는 신고 창구가 마련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가짜뉴스 종합대책 문건이 작성되고 대응 방안이 추진됐다. 그 사이 가짜뉴스는 줄어들었을까. 오히려 더 정교해졌고, 더 빠르게 퍼졌으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비되고 있다. 정부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접근 방식이 본질을 비껴갔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무엇이 가짜뉴스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그 기준마저 요동쳤다. 지금까지의 대응은 대체로 '누가 만들었는가'를 찾아내는 데 집중돼 왔다. 그러나 가짜뉴스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 그런 콘텐츠가 끊임없이 생산되도록 만드는 환경 속에서 자란다. 자극적이고 분노를 유발할수록 더 많이 소비되고, 그 소비는 조회수와 수익으로 이어진다. 사실 여부보다 감정의 강도가 주목도를 결정하는 환경에서 가짜뉴스는 오히려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된다.이 구조는 플랫폼 알고리즘과 결합하며 더욱 강화된다. 이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릴수록 이익이 커지는 환경에서 자극적인 콘텐츠가 우선 노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는 추세지만, 가짜뉴스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지를 놓고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파성이 수익으로 이어지는 미디어 환경이다. 특정 정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콘텐츠는 충성 구독자를 확보하고, 후원과 광고로 연결된다. 반면 균형과 검증을 중시하는 보도는 상대적으로 주목받기 어렵다. 조회수가 곧 영향력이 되는 구조 속에서 건전한 저널리즘은 설 자리를 잃고, 그 빈틈을 가짜뉴스가 파고든다. 정치권 역시 이런 환경에서 자유롭지 않다.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지지층 결집에 유리한 정파적 주장을 활용해 온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결국 해법은 단속을 넘어 환경을 바꾸는 데 있다. 처벌과 수사는 최소한의 억지력으로서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걸려도 남는 장사'라는 유인은 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건전한 저널리즘이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신뢰성과 검증을 기반으로 한 보도가 제대로 평가받고, 광고·구독·공적 지원 등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콘텐츠보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더 큰 가치를 갖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자율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참여 매체에 인증이나 노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교육 차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확대하는 일 역시 시간이 걸리지만 확실한 해법이다. 가짜뉴스와 싸우는 가장 위험한 방법은 권력이 '진실의 심판자'가 되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이 자라나는 토양을 바꾸는 일이다. ☞가짜뉴스=용어 자체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뉴스'와 '가짜'가 결합된 이 표현은 결과적으로 뉴스 전반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부작용을 낳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존 미디어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이 용어를 대중화시켰다. 영국은 공식 문서에서 '가짜뉴스' 대신 '허위정보' '오정보' '유해정보' 등을 사용하고 있다.
[시대광장/정용관]자포자기와 소명의식 사이, 검사는 어디에
2주 전 '검사의 존재 이유, 밑바닥서 다시 찾아야'라는 칼럼을 쓴 뒤 몇몇 지인들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길지 않은 글이었지만 곱씹을 지점은 적지 않았다.검사 출신의 한 원로 법조인은 "니체는 태양은 서쪽으로 져야 동쪽에서 떠오를 수 있다고 하면서 몰락에 큰 의미를 부여했지요! 검찰은 다시 떠오르기 위해서 몰락해야 합니다"라고 했다.얼마 전까지 검찰 고위직을 지낸 다른 인사의 반응은 결이 좀 달랐다. "썰물이 되어 바닷물이 모두 빠져야, 바다 밑이 명확히 드러나 보인다"면서도 "다만, 미련을 갖고 보완수사권을 쥐려는 게 아니라 사법 현실이 어떻게 망가질지 훤히 보이기 때문에 아예 놓기가 어려울 뿐"이라는 것이었다.정부 고위직 출신의 또 다른 인사는 "(검찰의) 업보"라며 "다만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힘들어지겠지…"라고 했다.세 사람의 메시지는 결론보다 질문을 남긴다. 지금 추진되는 검찰 개혁, 수사·기소 분리를 내세운 개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검사들이 느끼는 모멸감과 자괴감의 상당 부분은 자업자득이라고 했다. 일부 '문제적 검사'들이 정권을 거치며 축적해온 권력의 그림자가 지금의 불신을 만들었다는 뜻이었다. 보완수사권에 대해서는 차라리 그것까지 내려놓아야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단절'이 제대로 설계된 제도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그리고 마지막에 "검찰을 무너뜨리는 것은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는 미련일지도 모른다"고 적었다.'미련'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단지 기득권의 일부라도 놓지 않으려는 '집착'으로만 읽히지 않을까 우려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취지는 아니었다. 실제 현장에서는 그보다 훨씬 복합적인 감정이 작동한다. 기존 권한을 모두 잃는 데 대한 자조와 불안, 권한을 내려놓았을 때 생길 수 있는 공백에 대한 우려와 책임감 등이 뒤섞여 있다. 그 점에서 "아예 놓기가 어려울 뿐"이라는 전직 고위 검사의 말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일정 부분 사실일 것이다.그럼에도 최근 검찰의 기류를 보면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지금의 선택들이 오로지 그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겸손 없는 실력은 오만이고, 실력 없는 겸손은 비굴"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검찰이라는 조직이 기대받아 온 것은 실력과 겸손, 이 둘의 균형이었다. 그런데 최근의 모습은 오만도, 비굴도 아닌 듯하다. 무엇보다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조직적 고민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어떤 검사들은 "보완수사권이고 뭐가 다 가져가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어떤 검사들은 "권한도 없는데 무슨 책임감이냐"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조용히 사람이 빠지고 있다고 한다. 검찰을 떠나는 검사가 10년 내 최대치라거나, 15년 차 이상 허리급 인력들이 그중 절반 이상이라는 소식이 전해진다.물론 작금의 상황에 대한 불만과 조직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개인의 선택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왜 떠나는지에 대한 내부의 질문,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성찰이 충분히 보이지 않을 때 그 이탈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회피의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는 조직 전반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자신들은 언제든 떠나도 괜찮다는 생각", "어디서든 통할 것이라는 자신감 아니겠나"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정치의 책임도 분명하다. 수사·기소 분리,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설치 입법, 사법 3법이 짧은 시간에 중첩되며 추진됐다. 권한 구조는 빠르게 바뀌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책임 체계와 협업 시스템은 충분히 설계되지 못했다. 경찰에 수사권이 집중되는 상황에 대한 불안, 상호 견제 장치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다.검사 집단은 성찰이 부족했고, 정치는 제도에 대한 숙의가 부족했다. 그 사이에서 형사사법 시스템은 흔들리고 있다. 수사 부실이나 지연의 대가는 결국 국민 몫이다. 특히 힘없는 이들이 먼저 체감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힘 있는 사람들은 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권력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그래서 질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검사 집단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모멸감과 자괴감에 머물러 있는가, 아니면 그 위에서 책임을 재구성하려 하고 있는가. 이도 저도 아닌 비분강개에 머물러 있는 건가. 모멸감과 자괴감은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지만, 그것이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앞서 원로 법조인이 말한 '몰락'의 의미를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해체나 붕괴가 아니라 처절한 성찰, 이를 통해 다시 진정한 존재 이유를 만들어가겠다는 집단 의지를 요구하는 말일 것이다. 권한을 어디까지 내려놓느냐의 문제는 중요한 이슈지만 본질은 아니다. 권한을 어떻게 내려놓고, 그 이후 어떤 책임을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겸손한 태도, 그것이야말로 많은 국민이 예리하게 지켜보는 판단 지점일 것이다.'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와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소명의식 사이에서, 검사 집단이 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시대광장/채인택]중국, 이란전 정보 축적해 미래전 준비…한국도 달려야
지난 2월 28일 시작돼 6주째에 접어든 이란 전쟁에선 의당 보여야 할 텐데 눈에 띄지 않는 나라가 있다. 바로 중국이다. 뒤늦게 중재에 나선다고 하지만 뜨뜻미지근해 보일 뿐이다. G2를 자처하던 과거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지만 미국이 요청한 호위 군함 파견도 사양했다. 하지만 그런 중국이 실제로는 호르무즈 해협의 동쪽 바다인 오만만에 인민해방군 해군 군함을 보내놓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스파이함'으로 불리는 차세대 신호정보수집함 위안왕(遠望)-1함을 보내 이란전에서 나오는 각종 신호 데이터를 다량 수집하고 있다는 것이 일부 글로벌 군사매체의 보도이다. 3만t급 초고성능 정보수집함인 위안왕-1함은 '떠다니는 슈퍼컴퓨터'로 불린다. 6000㎞ 범위 안의 미사일·항공기 1200기를 동시에 추적할 수 있다. 전장에서 수백㎞ 떨어진 오만만에서도 이란에 대한 미국·이스라엘의 공격과 이란의 이스라엘과 걸프국가에 대한 미사일·드론 타격 상황과 관련 다량의 데이터를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 그야말로 하늘의 인공위성과 함께 전장의 빅데이터를 다량 수집하는 첨단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중국은 왜 이런 데이터를 수집할까? 전쟁에서 군사적인 교훈을 얻는 것은 물론 인공지능(AI)과 미사일·드론·요격미사일이 주도할 미래전에 대한 대비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볼 수 있다. 전쟁 시 목표물을 분석·식별·표적화하는 과정을 초압축하고 결과적으로 상대를 압도할 초고속의 미래전 기술과 전술을 개발하겠다는 의도다. 이를 위해선 빅데이터를 수집해 AI와 연결해야 한다. 인민해방군 해군이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위안왕-1함을 보호하기 위해 055형(1만3500t)과 052D형(7500t) 방공 구축함을 호위로 붙였다는 첩보도 들린다. 로이터 통신은 중국이 그동안 전 세계 해양에서 잠수함 작전용 해저 해도도 제작해왔다고 최근 탐사보도에서 전했다. 이를 통해 전 세계에서 해양 패권국가인 미국에 맞설 잠수함 전력을 확보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선박운항 상황을 볼 수 있는 앱으로 주변 바다를 아무리 살펴도 해당 군함들은 보이지 않는다. 일부에선 이 배가 상하이 앞바다에 정박 중이라는 보도도 있다. 하지만 선박 위치는 위치 스위치를 끄거나 재밍을 통해 숨길 수 있는 것은 물론 위치정보를 변조하는 스푸핑을 통해 완전히 엉뚱한 곳에 있는 것으로 속일 수도 있다. 군함, 특히 정보수집함은 통상 자신의 위치를 밝히지 않게 마련이다. 중국은 왜 이렇게 신속하게 움직였을까. 우선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2012년 11월 집권한 이래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AI 굴기를 군사분야에서 완성하려는 목적으로 볼 수 있다. 시 주석은 '산업혁명-정보통신혁명은 서양이 주도했지만 AI혁명은 중국이 주도해 패권국가가 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아 왔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AI를 군사분야 패러다임 전환을 이끄는 견인차로 쓰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중국이 이란전에서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미래 AI전술을 개발하면 누가 가장 압박을 받을까. 당연히 중국과 가까운 나라일 것이다. 한국·일본은 물론 중국이 무력 통일을 노릴 수 있는 대만도 포함된다. 중국은 이란을 관찰하면서 장차 대만을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략하는 미래전 AI 전술을 개발할 빅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이란과 걸프연안국가(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리미트(UAE)·카타르·바레인·쿠웨이트·오만) 사이에 있는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은 중국 본토와 대만섬 사이에 있는 대만해협과 지리적, 형태적으로 유사점이 많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미사일전과 미사일 요격전을 벌일 수 있는 형태다. 페르시아만이 대만해협보다 3배 정도 크지만 군사적으로 참고하기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특히 중국이 페르시아만에서 축적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대만해협에 적용할 수 있는 미래 인공지능(AI) 전술을 개발하면 서해를 사이에 두고 있는 한국에도 써먹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은 여기서 개발한 AI 전술체계를 활용해 말레이 해협 등 한국의 통상로 전체에서 한미일과 대만을 함께 압박할 수도 있다. 관건은 한국의 적극적인 대응에 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에 둘러싸여 국방 부담이 큰 데다 방산이 주요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만큼 미래전 대비 차원에서 중동 관련 빅데이터 확보 전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방산이 엔진이라면 빅데이터는 연료에 해당한다. 한국도 호르무즈 인근 해역에 신호정보 감시연구선을 보내 미래전을 위한 빅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 전쟁의 우위를 지킬 수 있다. 빅데이터는 자주국방·방산대국을 위한 능력 확보와 국가 자강을 위해 꼭 필요하다. 군·정보기관·연구기관이 합동으로 이를 확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미래전 AI용 OODA(관찰·판단·결정·행동) 과정 초압축과 MUM-T(유무인 복합전) 전술 개발을 위해선 이번 전쟁에서 실제 운용됐던 미사일과 요격미사일의 빅데이터가 절실하다. AI·드론·미사일·요격미사일을 넘어 전쟁 빅데이터 수집·확보와 미래전 대비태세 확립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이제 수퍼군집 드론, 인간-로봇 하이브리드 등 미래전을 위한 첨단 전투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한국 방산의 발전 과정을 보면 지금 우리가 확보해야 할 게 무엇인지 잘 드러난다. 아무리 우방이라도 경제적 이익이 걸리면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경계했던 어두운 역사를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다. 미래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에서 각종 빅데이터부터 확보하는 게 미래 방산기술 자립의 길이다. 아무도 이를 제공하지 않는다. 재래식 무기체계를 넘어 미래전 무기체계 개발로 나아가는 핵심적인 관문이 바로 빅데이터 축적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빅데이터 확보를 위해 달려 나가야 한다.
[시대광장/이상언] 하늘에서 햄버거가 오는 도시
프로펠러 6개 달린 드론이 키오스크 지붕 위에 살포시 앉았다. 다리로 붙들고 온 박스를 내려 놓곤 말벌 소리를 내며 하늘로 솓구쳤다. 키오스크 아래로 이동한 박스를 꺼냈다. 그 속에 안전하게 담겨 온 햄버거와 콜라를 손에 쥐었다. 지난 주말 중국에서 처음 경험한, 말로만 듣던 드론 배달이다. 드론은 1분에 한 대꼴로 선전시 런차이(人材) 공원 내 키오스크를 오갔다. 한국의 '배민'에 해당하는 중국 '메이투안' 앱으로 햄버거·치킨·커피·차 등을 주문할 수 있다. 배달료는 11위안(2400원). 메이투안 직원에 따르면 선전의 이런 배달 포인트가 약 100개다. 대부분 공원ㆍ광장과 지하철역 주변에 있다. 외지인들은 드론 착·이륙 광경을 목이 아프게 올려다 보는데, 산책 나온 현지인들은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친다. 이 도시에 드론 배달이 생긴 게 3년 전이다. 홍콩 친구 아들 결혼식에 갔다가 이웃 선전에 들렀다. 도시 건설이 한창이던 2000년에 셀 수 없이 늘어선 건설 크레인을 보고 놀랐던 곳이다. 지금은 중국의 실리콘 밸리라 불리는 '기술 굴기'의 상징이자 화웨이·텐센트·ㆍ 비야디(BYD)·다쟝(DJI)의 고향이다. 변화를 눈으로 보고 싶었다. 공원에서 차로 10분쯤 걸리는 곳에 있는 DJI 드론 전시장으로 갔다. 광장 복판의 4층 건물이 젊은이들로 붐볐다. 영상 촬영용이 인기였다. 한켠에는 농업·소방에 쓰이는 대형 드론이 즐비했다. 70% 넘게 세계 드론 시장을 점유한 DJI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우크라이나 청년들이 이 회사 드론에 폭탄을 매달아 러시아 전차로 날렸다. 난생처음 기사 없는 택시도 타봤다. 서울 강남 일대에 자율주행 택시가 운행되지만 운전석에 사람이 있다. 선전 무인 택시는 운전석이 빈 진짜 자율이다. 복잡한 난산구 도로를 편안하게 달렸다. 첫 경험이라 살짝 긴장했는데, 이내 익숙해졌다. 차로 변경, 좌·우 회전, 정차가 어지간한 사람 운전보다 매끄러웠다. 일반 택시보다 쾌적했고, 운임도 약간 쌌다. 'Inno100'이라는 아이디어 상품 판매점 계산대는 로봇이 지키고 있었다. 길거리 상점, 호텔 로비 등에서 커피 만드는 로봇을 봤다. 로봇 백화점 '6S 스토어'에선 축구하는 로봇, 피아노 치는 로봇을 구경했다. 개 형상의 로봇은 얼굴 모니터에 하트 문양을 연신 띄우고 엉덩이를 흔들며 손님 앞에서 재롱을 부렸다. 이 모든 견문이 하루에 다 이뤄졌다. 선전 도로에는 유류 차(청색 번호판)보다 전기 차(녹색 번호판)가 많았다. 대략 네 대 중 세 대꼴이다. BYD, 샤오미, 화웨이 등 대부분 중국제다. 오토바이는 예외 없이 배터리로 달린다. 도로 옆에도 배출가스 냄새가 나지 않는다. 한국 인구의 3분 1에 해당하는 1700만 명 거대 도시가 환경 친화로 거듭났다. 홍콩 가는 김에 중국의 변화를 보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KBS 다큐멘터리 때문이다. '인재전쟁'이라는 프로그램이다. 1부 제목은 '공대에 미친 중국'이고, 2부 제목은 '의대에 미친 한국'이다. 지난해 중국 회사가 만든 생성형 인공지능(AI) '딥시크' 충격을 조명했다. 중국 입시생은 "커서 과학자가 되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라고, 한국 학생은 "의사가 돼서 롯데월드 보이는 곳에 살고 싶어요"라고 한다. 영상 속에서 이정동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말했다.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이 한국을 추월한 지 오래다."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들이 촌철이다. '이게 수신료의 가치.' '설공 나와서 의대 갈 걸 후회하는 대기업 부장 한 트럭이다.' '싸구려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니라 인벤티드 인 차이나.' '간담이 서늘해지는 호러 영화.' "오히려 후퇴한 나라를 후대에 물려 주게 됐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한국 경제 성장률이 제로(0)에 수렴된다. 곧 마이너스(-) 시대가 된다는 예측도 나온다. 얼마 전까진 이런 얘기에 마음 속에선 '설마?'의 속삭임이 있었는데 요즘엔 그렇지도 않다. 한국이 내리막길 앞에 섰다고 진단하는 책 '피크 코리아'의 저자 백우열 연세대 교수는 "성장·생산성·효율의 개념이 다시 한국인의 가치관의 주류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린 지난 한 세대 동안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외쳤다. 이젠 '부강한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유물 창고에서 다시 꺼낼 때가 됐다. 횃불을 더 밝히지 못하고 사그라지는 잔광(殘光)만 후대에게 물려준 부끄러운 조상이 될 것 같아 두렵다.
[시대광장/정용관]검사의 존재 이유, 밑바닥서 다시 찾아야
"윤석열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모멸감을 준 것이다."계엄 사태가 벌어지기 한참 전, 한 언론계 인사가 사석에서 던진 '모멸감'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꽂혔던 적이 있다. 모멸감은 단순한 불쾌감이 아니다. 자신의 가치와 존엄이 부정당했다고 느낄 때 생기는 감정이다. 과학기술인, 의사, 교사, 경제 관료 등 각자의 영역에서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온 전문가 집단은 물론 평범하게 일상을 영위해 온 보통 사람들까지, 최고 권력자의 '검찰 지상주의'에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새삼 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그 후과가 심대하기 때문이다. 권력의 정점에 선 개인의 태도가 집단 전체의 얼굴이 됐다. 물론 오로지 윤 전 대통령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검찰은 지금 사실상 '폐족'에 가까운 처지로 내몰렸다. '문제적 검사'들이 아닌 묵묵히 일해온 검사들은 통탄할 일이다. 작금의 검찰개혁 상황을 놓고 모멸감과 자괴감에 빠진 검사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느끼는 감정의 상당 부분은 반작용이다. 그동안 세상을 만만하게 보고, 법을 다루면서도 법 위에 선 듯 행동해온 데 대한 되돌림이다. 자업자득이다. 검찰에 대한 불신은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사와 기소를 동시에 쥐고, 때로는 권력의 의중과 맞물려 움직였던 기억이 사회 전반에 남아 있다. 무소불위 검찰 시대의 종식은 필연에 가깝다.문제는 그 검찰개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다. 지금 국면은 단순한 형사사법 제도 개편 차원을 넘어선다. 권력의 축을 옮기는 과정에 가깝다. 검찰을 밀어내는 순간, 그 자리는 비어 있지 않다. 누군가는 채운다. '공룡 경찰'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여권 내부의 결도 분명히 갈린다. 검찰을 손보되 정권 운용 도구로서의 쓰임을 남겨두려는 흐름과, 벌써 차기 권력 경쟁에 나선 듯 검찰을 완전히 배제하려는 흐름이 충돌하는 것이다.그 점에서 정치검찰을 없애겠다는 개혁이 오히려 정치 한복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범죄 대응 역량 강화와 피해자 보호라는 형사사법 제도 개편의 본질은 뒤로 밀렸다. 이 와중에 검찰이 붙잡고 있는 것이 보완수사권이다. 그러나 검찰이 준사법기관으로서 경찰 수사를 1차로 통제하고, 검찰의 오류를 법원이 최종 판단하던 형사사법의 원칙적 구조가 허물어진 상황에서 보완수사권이냐 보완수사요구권이냐는 논쟁은 사실 곁가지다. 게다가 큰 방향은 이미 정해졌고, 검찰은 속수무책이다. 수사와 기소를 끊겠다는 흐름은 되돌리기 어려워 보인다.오히려 더 눈여겨볼 대목은 '권한 잔존' 여부가 아니라 수사 결과에 대한 '책임 구조'다. 보완수사권이 남아 있는 체계에서는 수사 과정에 검찰이 다시 개입할 수 있고, 이 경우 수사가 잘못됐을 때 서로 상대방 탓을 하며 책임 소재가 흐려지기 때문이다. 수사와 기소의 '단절'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보완수사권을 남겨두는 선택은 애매한 형태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제도가 실패했을 때 누구도 온전히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그러니 차라리 단순하게 갈 필요가 있다. 검찰 스스로 보완수사권을 포기하고 기소에만 집중하는 구조를 택하는 것이다.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단절'로 수사에 허점이 생기는 등 혼선이 발생한다면 그것이 바로 제도의 성적표다. 그때 비로소 무엇이 문제였는지 드러날 것이다. 물론 검찰의 수사권 완전 박탈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단할 필요는 없다.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고 피해자가 법의 보호를 충분히 받게 된다면 문제 될 게 없다. 반면 수사 공백이 생기고 피해자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건 전적으로 제도 설계자와 실행자들의 책임이 될 것이다.검사 집단이 이제야 느끼는 모멸감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치검사들의 설 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특정 타깃을 겨냥한 별건 수사와 억지 기소로 존재감을 키워온 부정적 유산은 사라져야 한다. 지금은 그 대가를 치르는 과정이다. 단죄와 낙인은 구분돼야 한다. 분명한 것은 검찰이 더 철저히 마음을 비우고, 더 처절하게 바닥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언젠가는 검사 집단의 진정한 존재 이유가 다시 싹틀 수 있다.역설적으로 지금 검찰을 무너뜨리는 것은,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는 미련일지도 모른다.
[시대광장/이상복] 한국 저널리즘에 숙제 던진 '공소취소 거래설'
미국 워싱턴 시내 워터게이트 빌딩은 저널리즘의 상징적 공간이다. 1972년 6월, 이곳 야당 사무실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던 비밀공작 요원들이 검거됐다. 단순 절도로 묻힐 뻔했지만, '워싱턴포스트'는 집요한 추적 끝에 백악관이 개입한 선거 공작의 실체를 밝혀냈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2012년, 이 빌딩에서 열린 '보도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전·현직 기자들의 자부심은 세월이 무색할 만큼 견고했다. 그들은 방대한 증거 자료와 철저한 교차 검증을 워터게이트 보도의 핵심으로 꼽았다. 특종의 주역 밥 우드워드는 "기자들이여, 현장으로 가라"며 검색과 제보에 기대는 취재 관행을 질타했다. 오래된 기억을 다시 꺼낸 건, 최근 방송인 김어준 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을 소환했기 때문이다. 출연자로 나온 한 전직 기자는 소위 '단독'이라며 정부 고위 관계자가 검찰 간부들에게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 취소를 요구했고, 검찰은 이를 거래로 받아들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취재원 공개와 명확한 근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김씨는 "워터게이트 제보자 딥 스로트도 33년 후에야 신원이 밝혀졌다"며 익명성 뒤로 숨었다. 워터게이트 보도는 제보에만 의존한 받아쓰기 저널리즘이 아니었다. 편집국 간부들은 기사 작성에 개입해 정보원이 명확하지 않을 때는 수정을 지시했다. 취재팀 역시 '딥 스로트'에 매몰되지 않았다. 결정적인 국면에서만 제한적으로 접촉했고 엄격한 교차 검증을 거쳤다. '두 명 이상 독립된 취재원에 의해 확인되지 않은 한 기사화하지 않는다'는 게 보도의 원칙이었다. 수표 일련번호를 추적하고 정부 문서를 뒤지는 등 취재는 사실상 수사에 가까운 방식으로 진행됐다. 워터게이트 보도의 본질은 취재원 은닉이 아니라 치열한 검증 저널리즘에 있었다.저널리즘의 잣대로 볼 때 김어준씨 유튜브에서 거론된 '공소취소 거래설'은 허점이 적지 않다. 이 정도의 중대 사안이라면 복수의 취재원 확보는 물론 뒷받침할 물증과 당사자 해명이 포함돼야 한다. 말이 오간 정황도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 카더라식 발언은 단독 보도가 될 수 없다. 특히 공소취소를 언급했다는 인물을 "대통령 최측근으로 볼 수밖에 없는 정부 고위 관계자"라는 모호함 속에 숨긴 건 납득하기 어렵다. 실명으로 비판받아 마땅한 공직자를 누구를 위해 감춰준단 말인가. 익명의 방패는 불이익을 당할 우려가 큰 약자나 공익 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다. 사실 이번 사안 외에도 한국 언론의 익명 취재원 남발은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고위 관계자' '내부 인사'부터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까지, 이름 없는 유령들은 지면과 화면을 가득 채운다. "~라는 말이 나온다" 식의 애매한 전언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기정사실로 둔갑시키는 편리한 수단이다. 평론가들 역시 "내가 들었는데"라며 확인되지 않은 풍문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 이렇게 배출된 파편적 주장은 정치권으로 번지며 파장을 일으키지만, 정작 실체를 검증하거나 책임을 물을 길은 요원하다. '공소취소 거래설'은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중대한 질문도 던진다. 김어준 씨는 "취재의 신빙성은 기자 본인이 책임질 일"이라며, "제보자를 묻지 않는 것이 이 바닥의 불문율"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플랫폼의 '게이트키핑(검증 시스템)' 부재를 자인한 셈이다. 언론은 고정 기고자의 원고 한 줄에서도 사실관계의 오류를 걸러내는 곳이다. 생방송 중 튀어나오는 즉흥적 발언이라 해도 진행자가 이를 제어하고 교정할 책임은 막중하다. 출연자의 발언이 방송사에 법정 제재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수많은 사례가 그 연대 책임을 증명하고 있다.김어준씨의 유튜브는 이제 청와대 출입기자까지 보유한 정식 언론사다. 이번 '공소취소 거래설'이 거센 후폭풍을 몰고 온 이유도 그 위상에 걸맞은 저널리즘의 공적 기준을 요구받고 있어서다. 과거 "냄새가 난다"는 식의 불투명한 의혹 제기가 정쟁으로 비화됐던 구습을 끊어낼 수 있을지 미디어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영향력이 커질수록 발언의 무게는 엄중한 검증과 책임이라는 추에 실려야 한다. 사실 확인과 절제된 논평이라는 저널리즘의 본령에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음모론의 그늘에 머물 것인가. 그 선택은 한국 유튜브 생태계 전반에 중대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칼럼을 끝내기 전 마지막 한마디. 위에서 언급한 '저널리즘의 원칙'은 필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시대광장/채인택] 메기 강 "늦어서 미안하다"…황금보다 귀한 말
"이 상을 한국, 그리고 곳곳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드린다.(This is for Korea and Koreans everywhere.)"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애니메이션 연출가 메기 강 감독이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밝힌 수상 소감이다. 그가 구상하고 공동 연출한 K-팝 소재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는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오스카를 안았다.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인 '골든'까지 주제가상을 받으면서 '케데헌'은 2관왕에 올랐다. 이날 강 감독은 "'저와 닮은 분들'이 주인공인 이런 영화가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미안하다"라는 말로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객석에서 눈물을 훔치는 한국계 영화인의 모습도 카메라에 잡혔다. 이민 생활에서 겪었던 아시아, 특히 한국 문화에 대한 현지의 몰이해나 오해를 나타내는 말로 읽힌다. 하지만 이어서 한 "그러나 해냈다"는 말로 한국계 영화인으로서 성취감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강 감독의 수상 소감은 한국계 이민자로서의 정체성과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또렷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을 남겼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5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갔지만 평소 자신을 '강민지'로 소개하고, "내 내면은 100%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등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한국 문화의 정서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인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K-팝과 한국문화를 소재로 '케데헌'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현대 한국과 한국 문화를 정확하고 세밀하게 묘사해 감탄을 자아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 문화의 경쟁력을 믿고 이를 글로벌화하는데 진심이었던 셈이다.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고 글로벌 팬들이 주제가 등에 등장하는 한국어 가사를 그대로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전율했다는 일화도 이를 잘 드러낸다. 아울러 작품 속에서 한국 여성 캐릭터를 정형화된 모범생으로 그리지 않고 인간적인 모습 그대로 생생하게 묘사한 것도 많은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할리우드 영화에 흔히 나타나는 동아시아인, 특히 한국인 여성의 스테레오 타입을 무너뜨린 셈이다. 대신 개성과 결점을 가진 현실적 인물로 구현했다. 한국 출신의 문화적 자부심,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담은 것이다. 이날 수상 소감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 것도 이런 진솔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골든'을 부른 한국계 미국인 가수로 공동 작사·작곡가인 이재의 수상 소감 역시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어린 시절 K-팝을 좋아하는 저를 사람들이 놀렸지만, 지금은 모두가 우리의 노래를 부른다. "다만 공동 연출자 크리스 아펠한스 감독의 수상 소감은 조금 다른 결을 보여준다. "음악과 이야기에는 문화와 국경을 초월해 우리를 연결하는 힘이 있다."강 감독과 이재가 K-팝과 한국인, 또는 아시아인의 문화가 변방에서 중심으로 자리를 옮겼음을 강조했다면, 아펠한스 감독은 문화권 간의 소통과 '문화적 혼종(Cultural Hybridization)'에 좀 더 무게를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류, 특히 K-팝을 한국문화의 전지구적 파급으로 보는 입장과, 한국문화와 다양한 문화간 혼종의 산물로 보는 시각이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차이는 하버드대 영문학 교수인 마틴 푸크너가 설파한 '문화를 보는 두 가지 렌즈'를 떠올리게 한다.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Culture: The Story of Us, From Cave Art to K-Pop)』라는 책에서다. 바로 '정체성'과 '보편성'이다. 문화연구에서 정체성은 '민족(공동체) 문화' '전통 문화' '고유 문화'라는 말로 주로 설명된다. 문화를 내부 소속인의 공동 자산이자 고유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개념이다. 보편성이라는 개념에서 보면 문화는 특정 집단이 아닌 인류 전체의 소유물이다. 서로 교류하고 접촉하면서 시너지를 얻어 생긴 혼종의 산물이 문화라는 입장이다. 서로 다른 요소·문화·인간집단이 혼합·융합·교배돼 완전히 새로운 형태나 제3의 산물, 또는 특성을 만들어내는 것을 혼종이라고 부른다.전 세계 팬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K-팝은 한국문화의 저력과 전통이라는 정체성과, 고유 문화가 외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생긴 보편적인 혼종의 힘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가사에 한국어와 영어가 섞이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이유일 것이다. 이제 K-팝은 특정 국가의 문화라기보다 인류의 문화적 성취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푸크너 교수도 "서구의 록, 미국 흑인에서 비롯한 재즈, 자메이카의 레게, 아프리카계 미국문화에서 비롯한 아프로 비트 등이 자연스럽게 뒤섞인 것"을 K-팝 파급력의 원천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K-팝이 한국 생활문화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해 미국 팝과 랩에선 지나칠 정도로 흔한 폭력·외설·약물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도 경쟁력으로 꼽았다. 결국 교류·소통·혼종을 이끈 한국문화의 개방성과 포용성, 그리고 전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깨끗한 콘텐츠'가 K-팝 세계화의 동력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문화에서 개방과 소통의 힘을 이처럼 잘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K-팝의 문화적, 산업적 성공은 '자유방임형 글로벌화'의 산물이다. 정치나 권력이 깊이 개입하지 않은 환경이 창작자들의 자유로운 실험과 글로벌 진출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K-팝의 성공은 문화가 국경을 넘어 어떻게 확장되는 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사례다. 하지만 성공이 영원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적 색채를 지키면서도 세계와 더 자유롭게 섞이고, 끊임없이 변주하는 것. 바로 그 역동성이 앞으로도 그 생명력을 결정할 것이다.
[시대광장/정용관] '동굴 정치'의 어두운 그림자
플라톤의 비유처럼 동굴에 갇히면 벽에 비친 그림자를 현실로 착각한다. 정치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강성 지지층의 공간에 오래 머물다 보면 그들의 목소리가 마치 다수 민심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 순간 정치의 기준 자체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정치가 '의식의 동굴'에 갇히는 것이다."계엄도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발언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이 당 대표에까지 오르는 과정을 보며 한때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렸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 보우소나루 정치의 핵심 기반은 복음주의 교회였다. 브라질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는 이 네트워크는 강력한 정치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 세력에 올라탄 그는 반좌파 노선에 종교적 보수 가치를 결합해 강력한 정치 동원력을 만들어냈다.지지층의 에너지는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그 정치의 기반은 넓은 민심이 아니라 협소한 열광층이었다. 도덕의 이름으로 상대를 악마화하는 종교적 '선악' 구도와 갈라치기의 정치적 폐해는 심대했다. 2022년 대선에서 룰라 현 대통령에게 패한 보우소나루가 지금은 선거 출마 금지와 쿠데타 의혹 수사에 묶여 정치적 수세에 몰린 건 우연이 아니다. 극단 정치가 결국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윤 어게인' 세력 가운데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거론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 트럼프 정치의 핵심은 반이민과 국경 봉쇄, 낙태 인종 이슈 등 문화전쟁이었다. 백인 복음주의도 결합했다. 윤 어게인 세력 역시 그런 트럼프 지지층과 문화적·심리적 연대를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메리카 퍼스트'로 수렴되는 트럼프 정책은 기본적으로 동맹국의 이익까지 훼손하는 국가주의적 포퓰리즘 성격이 강하다.한국의 정치 구조는 미국이나 브라질과 다르다. 자유무역을 근간으로 하는 우리 경제에선 이념에 따른 정책 차별성이 크지 않다. 종교 정치의 동원력도 제한적이다. 그래서 '윤 어게인' 세력의 등에 올라탄 장 대표의 정치 노선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도통 가늠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계엄 사태는 보수 대 진보의 경쟁을 넘어 '민주 대 반민주'라는 원초적 기준을 많은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정치 노선 이전에 상식과 법치의 문제로 받아들여졌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체제 전쟁" "제2의 건국전쟁" 같은 낡은 구호에 매달렸으니 동굴에서 바깥 세상을 재단한 꼴이다.존립 위기에 놓인 국민의힘이 참고할 만한 사례는 독일 보수 정치다. 독일 역시 극우의 부상이라는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반이민을 앞세운 극우 정당 AfD가 지지율 20% 안팎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키웠지만 독일 보수의 중심인 기독민주당(CDU)은 극우와 선을 긋는 '방화벽' 원칙을 허물지 않았다. 극단의 언어로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유혹이 결국 보수 정치의 토대를 무너뜨린다는 역사적 교훈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나치 집권의 경험이다. 물론 보수 가치와 중도의 실용주의를 아우르는 '넓은 정치적 우산'이었던 기독민주당이 메르켈 퇴임 이후 극우 득세 속에 지지 기반이 다소 흔들리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극우와 경쟁하되 극우로 이동하지 않았다. 이것이 독일 보수의 생존 전략이다.국민의힘이 어정쩡하게 '윤 어게인' 세력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당장 눈앞의 지방선거가 급했을 것이다. 이제 국민의힘은 다시 40% 정당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을까.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실질이다. 국민의힘이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다시 서려면 '절윤' 선언을 넘어 '상식과 법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성장과 미래의 담론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게 '동굴 정치'에서 벗어나 중도 보수와 합리적 보수의 지지를 회복하는 길이다. 동굴 밖에는 체제 전쟁이니 제2의 건국전쟁이니 하는 소리에 공감할 이들이 없다. 장동혁의 국민의힘이 단호하게 그 길을 가지 못한다면…. 차라리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확대해 전국 정당의 외피를 벗고 일정 지지층을 대표하는 몇십 석 규모의 '중형 정당'으로 가는 것이 현실적 생존 전략일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란다. 보수와 진보의 팽팽한 긴장 관계야말로 중도를 확장하고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힘이라 믿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균형추는 이미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다.
[정용관 칼럼] 권력은 스스로 절제하지 않는다
정치는 발전하는가, 아니면 반복되는가. 정치학자들이 오래 붙잡아 온 질문이다. 미국 정치학은 오랫동안 발전 가능성을 설파해 왔다. 전통사회에서 근대국가로,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은 하나의 방향성을 갖는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제도의 확산이 곧 정치의 성숙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민주주의는 이식될 수 있었지만, 권력을 둘러싼 인간의 본성까지 함께 바뀌지는 않았다. 정치사상은 이 점에서 훨씬 신중했다. '권력은 스스로 절제하지 않는다.' 민주정도 타락할 수 있고, 공화정도 무너질 수 있으며, 선의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 같은 전통적 공화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익 추구 본성을 전제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통제와 견제가 정치의 출발점이라는 얘기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정치의 성숙은 권력을 통제하는 장치의 정교화에 가깝다. 요즘 우리 정치를 보며 이런 고전적 통찰이 새삼 떠오른다. 계엄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대한 헌정 위기를 거쳐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시민은 헌정 질서를 지켜냈고 민주주의 제도는 작동했다. 이는 분명한 성취다. 그러나 제도가 국체(國體)의 위기를 견뎌냈다고 해서 우리 정치가 한층 성숙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아직도 계엄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야당이 한심하지만 국정을 맡은 집권 세력의 책임은 훨씬 더 크다. 권력은 공백을 두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집권 초반임에도 미래 권력 투쟁이 전면에 등장하는 모습은 대체 뭔가. 무슨 무슨 유튜버들이 여론을 호도하고 배후 권력을 행사한다는 논란도 뜨겁다. 그러다 보니 국정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권력 내부의 역학 관계만 고스란히 노출돼 뉴스를 장식한다. 온갖 정책이 쏟아지지만 적지 않은 것들은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진영 결집의 수단이 되곤 한다. 개혁이라는 이름은 붙지만 사회적 논의의 축적은 보이지 않는다. 다수 의석이 조정의 자산이 아니라 집행의 근거로 기능하는 것이다. 힘이 있으니 밀어붙이는 방식, 그것이 반복된다. 결국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구조다. 승자독식의 권력 구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문화, 진영에 포획된 공론장. 이 조건이 유지되는 한 권력이 교체돼도 그 작동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대착오적 계엄 사태를 한 개인의 일탈이나 망동 정도로 환원하는 순간, 권력 작동의 구조적 교훈은 가려진다. 헌재가 대통령 파면 결정과 함께 '정치 복원'을 그리 강조했음에도…. 결국 대화와 타협, 조율과 합의의 실종이 우리 정치가 넘어서야 할 가장 본질적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도 조율도 없이 중대한 제도 변화가 추진된다. 급기야 사법 권력을 입법 권력이 지배하려는 듯한 시도까지 벌어지고 있다. 입법·행정·사법 권력을 둘러싼 긴장과 균형이 약화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지만 이를 흡수할 공론의 장은 취약하다. 속도만 있고 숙의는 없다. 선동적 언어와 자극적 메시지가 여론을 선점하고, 정치인은 이를 다시 동원하는 일이 반복될 뿐이다. 정치는 권력을 다루는 기술이다. 권력을 장악하는 기술이 아니라 적절히 관리하고 활용하는 기술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권위'다. 권력에 대한 탐닉만 남고 권위가 사라지면 민주주의는 취약해진다. 그 권위는 힘이 아니라 다수 국민의 신뢰에서 나온다. 그 신뢰는 합의를 끌어내는 절차적 정당성, 절제된 권력 행사 등을 통해 하나둘 쌓이는 것이다. 절제는 도덕적 미덕이 아니라 제도적 훈련의 결과다. 국가적 위기를 겪고도 정치의 작동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건 국민에 대한 또 다른 신뢰 위배다. 절제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만이 자라고, 오만이 구조화 되면 위기는 반복된다. 권력은 스스로 절제하지 않는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생명력은 권력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제한하려는 시민의식에 있다. 양쪽 모두 극단적 목소리가 크지만 그게 전부인 양 착각해선 안 된다. 중간지대의 침묵하는 다수가 조용히 움직이는 순간, 그 매는 정파를 가리지 않는다. 절제되지 않은 권력은 늘 시민들의 선택에 의해 교정돼 왔다. 그 교정은 언제나 목소리 큰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오지는 않는다. 그게 느릴지는 몰라도….
[정용관 칼럼] 시대와의 동행… '속도'를 넘어 '숙의'로 가야 할 이유
<동행미디어 시대>가 담대한 여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새삼 시대(時代)라는 개념을 곱씹어 본다. 우리는 흔히 무슨 무슨 시대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만, 시대는 단순한 시간의 구분이 아니다. 사람들의 삶과 정신, 그리고 그들이 발 딛고 선 공간까지 함께 품는 시간의 큰 그릇이다. 그것은 누구도 함부로 규정할 수 없고 온전히 장악할 수도 없는 거대한 흐름이다. 어쩌면 시대는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생명체에 가깝다.그럼에도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거창한 시대정신을 설파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이 질문을 회피하는 순간, 시대는 우리를 앞질러 가고 우리는 그저 떠밀려 다니는 존재로 남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시대에 발붙이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가장 생생하게 담아내는 통로는 결국 언론이다. 전통 있는 서구 유력 매체들이 저마다 'Times'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언론이 시대라는 큰 그릇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거대한 흐름을 좇고, 그 안의 사람들과 호흡하며, 복잡한 항로를 찾아내는 일. 그것이야말로 언론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오늘의 시대는 분명 속도가 지배한다. 가히 초가속의 시대라 할 만하다. 기술은 예고 없이 일상을 바꾸고, AI를 비롯한 혁신은 인간의 판단 영역마저 흔들고 있다. 언론 역시 이 예측하기 힘든 물결의 한복판에 서 있다. 어쩌면 가장 먼저 존재의 시험대에 오른 영역일지도 모른다. 온갖 연결망을 통해 정보는 끝없이 유통되지만, 의미는 점점 얇아지고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희미해졌다. 말초적 흥미를 자극하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건강한 공론의 장이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우리를 둘러싼 냉엄한 현실을 떠올리면 그 위기감은 더욱 커진다. 구구절절 언급하지 않더라도, '힘의 논리'가 압도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국가 간 생존 경쟁은 이미 사활(死活)이 걸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어떻게 생존의 길을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외부 환경의 압박은 결국 우리 사회 내부의 의사결정 방식과 공론의 질을 정면으로 시험하고 있다.불안과 혼돈의 시대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출발점은 의외로 단순하다.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이라는 공통의 가치다. 이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 나갈 수 있는 건강한 공론장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시대>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숙의 미디어'를 표방하며 이 길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존중받는 개인을 우선에 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강해지기 위해 개인의 존엄이 희생되어도 된다는 발상은 종종 달콤한 유혹처럼 등장했지만, 역사적으로 성공한 적은 없다. 개인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책임 있는 시민도, 창의적인 기업도, 지속 가능한 번영도 기대하기 어렵다.'국연(國緣)'이라는 말이 있다. 한 나라를 삶의 무대로 공유하게 된 인연이다. 이 인연은 감상적인 애국심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이해관계, 궁극적으론 생존 문제와 직결돼 있다. 나라가 흔들리면 개인의 삶도 함께 흔들린다. 때론 외부 침략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반면 국가의 부강은 기업과 시장, 그리고 개인의 역동성으로 귀결되고, 행복의 경제적 기반 역시 그 위에서 다져진다.문제는 이 복잡한 관계를 어떻게 조정하고 설계할 것인가다.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이라는 공공선의 가치를 중심에 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함께 논의하며 답을 찾아가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그것이 바로 숙의의 길이다. 공동체 발전에 실질적으로 보탬이 될 국가 어젠다, 제도 개선 이슈가 한둘이 아니다. 정치권, 시민사회, 학계, 언론이 각자의 자리에서 깊이 연구하고 대안까지 함께 모색한다면 우리의 내적 역량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반대로 숙의를 포기한 사회는 힘의 논리로 회귀한다. 숫자와 세력, 목소리의 크기로 결론이 정해지는 사회다. 그 대가는 언제나 개인의 삶으로 되돌아온다.시대와 동행한다는 것은 유행을 좇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이끌거나 가르치려는 오만도 아니다. 언론이 시대를 규정할 수는 없지만 시대의 흐름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는 있다. 시대의 주체는 사람이다. 그들과 함께 걷고, 시대의 과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되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것. 그 속에서 공존의 길을 찾는 것. 그것이 오늘 언론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가장 무거운 질문이자 숙제일 것이다.


![[시대포럼] AI 대전환의 시대, AI 풀스택 대한민국의 도약](https://i.ytimg.com/vi/VcbpSJtXg6o/maxresdefault.jpg?width=1920&quality=75)





%EC%9A%B0%EC%B8%A1%20%EC%B5%9C%ED%95%98%EB%8B%A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