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광장
[시대광장/박창억]청년을 잃은 민주, 미래도 잃는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최근 2030세대의 지지율은 유독 저조하다. 한국갤럽이 24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4%를 기록했다. 하지만 20대(18~29세) 지지율은 20%, 30대 지지율은 29%에 그쳤다. 60대와 70대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각각 46%, 37%였다. 보수성향이 강한 노령층보다 젊은층이 민주당을 훨씬 덜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6·3 지방선거에서도 청년 표심은 민주당에 싸늘했다. 2030세대 지지 확보 실패는 민주당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된다.청년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보다 '청년 이슈'를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만 이용해 온 민주당을 향한 분노가 고스란히 담겼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더욱이 민주당은 자신들과 뜻을 달리하는 청년 세대를 향해 "보수화·극우화되었다"며 낙인을 찍었고, 이는 청년들의 냉소를 부추겼다. 10~20년 전에는 한나라당·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이 시대착오적 행태로 젊은 유권자들의 조롱 대상이 됐다. 보수이든 진보이든 시대 흐름에 맞춰 변화하지 못하는 정당은 청년과 멀어지게 마련이며, 청년에게 외면받는 정당에는 미래가 없다.6·3 지방선거 결과에 화들짝 놀란 민주당은 일제히 '청년 세대와의 동행'을 외쳤다. 그러나 정작 당의 미래를 설계하는 8·17 전당대회 과정에서 드러난 실상은 이와 정반대였다. 당 대표에 도전한 30대 김보미 후보를 비롯해 최고위원 선거에 나선 20대 정민철, 30대 김형남 후보 등 신인들은 예비경선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조기에 탈락했다. 전당대회가 처음부터 계파 간 세 대결 구도로 흘러가면서, 조직력과 자금이 부족한 청년 후보들의 목소리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청년들의 정치 진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당의 시스템은 도리어 장벽으로 작용했다. 전당대회준비위원회가 당초 추진하려 했던 청년 선출직 최고위원 제도는 당내 특정 계파의 반대로 무산됐다. 청년 신인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경선 기탁금 인상 조치는 여론의 거센 질타와 이재명 대통령의 재고 요청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철회되는 촌극을 빚었다. 청년을 포용하겠다는 구호와 달리, 실제 경선 룰의 설계에서는 이들의 현실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는 무감각함이 여실히 드러났다.이는 주류 정치인들에 대한 관대한 기준과 대비되며 공정성 논란으로 번졌다. 민주당은 송영길 의원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에게는 각각 대표와 최고위원 출마 자격을 줬다. 당적 취득 기간과 당비 납부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지만 예외를 인정한 것이다. 4년 전 26세인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에게는 당적 취득 기간 부족을 이유로 출마 자격을 박탈했다. 주류 기득권 인사에게는 예외 조항을 유연하게 적용하면서 청년 신인에게는 엄격한 규칙을 들이대는 이중잣대는 청년 세대로 하여금 당의 시스템을 불신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정당에 청년의 피가 수혈되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성 정치의 타성에 젖지 않은 새로운 시각으로 당의 체질을 개선하고, 다변화된 사회적 요구를 입법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현재 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686(6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 주류 세력 역시 과거 30대의 나이에 파격적으로 발탁되어 정치적 자산을 쌓고 성장해 온 수혜자들이다. 세대교체를 통해 주류가 된 선배 세대가 이제는 제도적 허들을 높여 후배 세대의 성장을 가로막는 모순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정당의 지속 가능성을 스스로 갉아먹는 행위다.청년 정치는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시혜성 이벤트나 일회성 인재 영입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당규의 예외 규정을 공평하게 개정하고, 청년층의 경제적 장벽을 낮추는 기탁금 제도의 전면 혁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청년과 정치 신인의 대표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AI(인공지능) 3대 강국을 향해야 할 나라에서 화염병과 짱돌을 들던 세대가 아직도 주축이어야 하느냐"는 한 청년 후보의 일갈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시대광장/이상복]공영방송은 우리에게 필요한가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와 새 경영진 선임 절차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출발부터 잡음이 적지 않다. 개정된 법에 따라 KBS·MBC·EBS 이사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결격사유 논란이 잇따랐다. 대선 캠프 전력 등이 문제가 되면서 후보자 3명의 추천이 철회되거나 자진 사퇴했다. 선대위 부위원장 활동 논란이 제기된 전직 외교관은 자격 시비가 계속되는 가운데 법정 시한 경과로 자동 임명됐다. 언론노조 MBC본부와 민언련 등 시민단체가 "과거 정권의 방송 장악을 비판했던 명분이 무색해졌다"고 비판할 정도로 후폭풍도 이어지고 있다.낯선 풍경은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 이사진과 사장 선임을 둘러싼 갈등은 되풀이됐다. 여당은 '방송 정상화'를, 야당은 '언론 장악'을 외쳤지만 정권이 바뀌면 입장도 손쉽게 뒤바뀌곤 했다. 이 같은 정치적 악순환을 끊겠다며 지난해 방송3법이 개정됐다.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를 도입하고 이사 추천 방식을 다양화하는 등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 그러나 절차를 고쳤다고 정치의 영향력까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오히려 새 법 체계는 다른 허점을 드러낸다. 그동안 정치권은 관행적으로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이제 그 영향력은 법적 틀 안으로 들어왔다. 방송3법은 공영방송 이사의 약 40%를 정치권 추천 몫으로 규정하고 있다. 선임된 이사들이 자신을 추천한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방송 심의·규제기구가 구성 방식 때문에 끊임없이 정파성 논란을 겪어온 현실을 떠올리면 과장된 우려가 아니다.공영방송은 특정 정권이나 진영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다. 시장 논리만으로는 채워지기 어려운 공적 정보를 제공하고 지역과 문화, 교육 콘텐츠를 책임지며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 존재 이유다. 국민이 수신료와 공적 재원을 부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문제는 현실이 그 기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KBS의 경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장 교체를 둘러싼 극심한 갈등을 반복해 왔다. 강압적으로 교체된 사장에 대해 법원이 뒤늦게 부당성을 인정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는 기대도 있지만, 이사의 숫자를 늘리는 것만으로 체질까지 달라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제도적 혼란도 추가됐다. 개정 방송법은 이사 추천 방식 등을 편성위원회에서 방송편성규약으로 정하도록 했다. 그런데 노조 간 갈등이 이어지며 내부 임직원과 시청자위원 몫 이사 추천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민주화하겠다며 만든 절차가 현장에서는 대표성 다툼과 절차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MBC의 문제는 더 복합적이다. MBC는 소유구조상 공영성을 갖고 있지만, 재원구조나 영업 방식은 민영방송과 크게 다르지 않다. MBC가 공영방송을 자임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공정성과 사회적 신뢰를 먼저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신호는 가볍지 않다. MBC는 지난해 시사인이 한국갤럽에 의뢰한 조사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과 '가장 불신하는 언론'에 동시에 이름을 올렸다. MBC 경영평가단은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기반이 특정 수용자층에 편중돼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신뢰도와 불신도가 동시에 높다는 사실은 공영방송이라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경고다.최근 내부의 자성도 있었다. 언론노조 MBC본부 산하 민주방송실천위원회는 6·3 지방선거 보도를 점검하면서 일부 뉴스 오프닝이 특정 정당의 선거 광고처럼 비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여야 관련 보도에서 균형감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최승호 전 MBC 사장도 SNS에서 "진실 추구와 선거 보도 편파성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영방송의 신뢰는 외부의 공격만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내부의 관행과 편향에 둔감해질 때 더 깊이 흔들린다.공영방송이 변해야 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국민은 저녁 뉴스 시간에 맞춰 TV 앞에 앉았다. 이제 뉴스는 스마트폰으로 소비된다. 유튜브와 온라인 플랫폼이 뉴스 유통의 중심이 되면서 지상파가 정보를 독점하던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 시청자는 언제든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한다. 신뢰를 잃은 매체는 빠르게 외면받는다.이런 시대에는 '공영방송'이라는 이름만으로 존재 이유를 인정받을 수 없다. 영향력이 줄어든 만큼 더 높은 수준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증명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추진하는 통합미디어법도 결국 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작업이다. 방송과 통신, 온라인 플랫폼을 하나의 체계로 재편하려면 무엇보다 공영과 민영의 역할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공영방송은 공적 책무에 걸맞은 책임과 규율을 감당하고, 민영방송과 플랫폼은 시장 경쟁 속에서 자율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보장받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공영은 공영답게, 민영은 민영답게.' 이 단순한 원칙이 바로 서야 통합미디어법도, 미디어 규제 혁신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공영방송이 그 책무를 감당할 자신과 의지가 없다면 공영의 이름을 계속 유지할 명분도 약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를 앞세운 또 한 번의 사장 교체 쟁탈전이 아니다. 권력과 자본, 진영 논리로부터 독립해 왜 한국 사회에 여전히 공영방송이 필요한지를 스스로 증명하는 일이다. 공영방송의 미래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가 결정한다.
[시대광장/정용관]대통령 '주변'의 문제, 대통령 '자신'의 문제
역대 정권은 대부분 대통령 '주변'에서 흔들렸다. 친인척 비리와 비선 실세, 여사 리스크가 정권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그런 점에서 임기 1년을 넘긴 이재명 정부는 이전 정부들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가족이나 친인척 문제가 국정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고, '여사 리스크'도 없다. 성남 라인이나 사법연수원 동기 등 실세로 거론되는 인물들은 있지만 '비선 논란'으로 번진 적도 없다.공식 의사결정 체계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와 비서실장 주재 회의를 통해 주요 현안을 조율하고, 중요한 보고도 비서실장을 거치는 체계를 갖췄다고 한다. 한 참모가 특정 현안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자 대통령이 "비서실장도 알고 있느냐"고 되물었다는 일화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공식 회의에서 어렵게 결론을 내린 사안이 밤사이 이유 없이 뒤집히는 일이 허다했다는 지난 정권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그러나 비선이 없고 공식 시스템이 작동한다고 해서 권력 운영까지 건강하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대통령실을 보면 정책과 메시지가 이례적으로 일사불란하다. 치열한 토론과 숙의를 거쳐 도출된 결론인지, 처음부터 하나의 방향으로만 의견이 수렴된 결과인지는 국민이 알 길이 없다. 메가 프로젝트를 포함해 초고가 주택 보유세,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 등 크고 작은 정책 방향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먼저 제시되고 내각은 이를 챙기는 역할에 머무르는 모습이 반복된다.요컨대 지금의 국정 운영은 머리만 커지는 가분수 구조를 닮아가고 있다. 대통령실이라는 머리는 갈수록 비대해지는데 내각이라는 몸통은 점점 왜소해지는 것이다. 사실 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은 커졌지만, 그만큼 권력도 대통령실로 집중돼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검찰 개혁 방향 등 거대 여당과 삐걱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지지층 내부의 이슈이고 웬만한 정책 결정은 거의 대통령실, 즉 대통령 뜻대로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정당과 내각, 관료 조직을 이전보다 훨씬 강하게 장악하고 있고, 내각제 국가에서도 '수상의 대통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치학에서는 이를 '프레지던셜라이제이션(Presidentialization)'이라고 한다.문제는 권력의 집중이 곧 판단의 집중으로 이어지는 것의 위험성이다. 모든 정책의 첫 문장을 대통령이 쓰기 시작하면 청와대 참모들이나 장관은 국정의 동반자가 아니라 대통령 뜻의 '답정너' 실행자가 된다.2000여 년 전 한비자는 '세난(說難)'에서 권력의 본질을 간파했다. 흔히 '세난'은 군주에게 직언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한 글로 읽힌다. 그러나 그의 더 깊은 통찰은 따로 있다. 신하들이 각자의 직분보다 군주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에 더 골몰한다는 점을 꿰뚫어 본 것이다. 그래야 살아남든 자리를 보전하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오늘날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정책의 타당성 보다 '선출직 임기제 군주'라 불리는 대통령의 생각을 먼저 헤아리게 될 때 집단사고의 위험이 시작된다. 집단사고는 토론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각이 사라지고 모두가 같은 방향만 바라볼 때 나타나는 조직의 병리다.그래서 '프레지던셜라이제이션'의 세상일수록 숙의의 통로는 더욱 넓어져야 한다. 문제는 여당 자체가 강성 지지층에 휘둘려 공론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실 안에서라도 다양한 의견이 끝까지 경쟁하는 구조가 살아 있어야 한다. 참모진 회의도 좋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국가적 의제일수록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한 발 떨어진 전문가 집단과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중요한 축으로 참여해 실질적 자유 토론을 거쳐 정책의 큰 흐름을 설정하는 다층적인 '비공개 숙의 구조'가 필요하다. '부동산 대토론회'처럼 정부가 방향을 상당 부분 정한 뒤 국민 의견을 확인하는 '직접 소통' 방식 보다는 방향을 결정하기 전에 서로 다른 진단과 해법을 놓고 충분히 토론하는 선행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 대통령은 모든 문제를 직접 챙기는 해결사가 아니라 국가 전체를 지휘하는 '제너럴 리더'다. 뛰어난 장군일수록 모든 전투를 직접 지휘하지 않는다. 큰 전략은 제시하되 전술은 현장에 맡기고, 서로 다른 지휘관들의 판단을 끝까지 들은 뒤 결정을 내린다. 국가 운영은 전쟁보다 훨씬 복잡하다. 대통령의 '주변' 문제가 잠복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 정부에서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대통령 '자신', 정확히 말하면 대통령 개인에게 권력과 판단이 함께 집중되는 구조다. 이는 특정 대통령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도 '의심'해야 하는 제도가 민주주의다. 대통령이 가장 많이 알고 있을 수 있지만 틀릴 수도 있다는 전제 위에서 다른 의견을 수렴하는 숙의 구조를 만드는 것, 앞으로는 그것이 국가의 시스템 경쟁력이자 핵심적 안전장치가 될 것이다.
[시대광장/박중현]2년 차 정권 발목 잡는 1년 차 '정책 과속'
#. "빚투를 그동안은 너무 나쁘게만 봤는데, 레버리지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고 본다." 지난해 11월 초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이 말을 했을 때만 해도 대다수 국민은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정부 안에서도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기 전이었다. 올해 5월 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 후 두 달이 채 안 된 지금은 '레버리지'가 뭔지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상황이 됐다.이 '레버리지' 발언이 나온 건 사상 첫 코스피 4,000선 돌파 1주일 뒤였다. 무리한 목표처럼 보이던 이재명 대통령의 '코스피 5,000' 대선 공약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한 때다. 이후 올해 들어 코스피는 '오천피', '육천피', '칠천피'를 거쳐 5월 26일 '팔천피'까지 돌파했다. 그 다음 날 단일종목 2배 레버리지 ETF가 시장에 선보였고, 20일 뒤 코스피는 '구천피'까지 넘겼다. 어떻게 봐도 당시 레버리지 ETF는 시장 상황에 대한 신중한 고려 없이 급하게 도입된 정황이 역력하다. 홍콩 증시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 레버리지 상품으로 빠져나가는 달러를 국내로 돌려 고공행진하는 원-달러 환율을 낮추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그 결과는 포모(FOMO·소외 공포)에 쫓겨 뒤늦게 증시에 뛰어든 개인투자자의 계좌를 강제청산 위험에 빠뜨리는 개미지옥이 됐다.'팔천피' 돌파 다음날 이 상품 도입이 예정됐다면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아니라도 정부, 청와대 내의 누군가는 "드러누워서라도" 과속을 경고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 1년 차의 막바지이자, '6·3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 휘슬을 분 사람은 없었다. 금융당국은 최근에야 투자 장벽을 높이기로 했는데, 이 대통령은 "신속, 과감한 추가 보완대책"을 다시 주문했다.#. "발생하지 않은 갈등 상황을 지나치게 우려하기보다 노사 간 대화와 협의가 필요하다." 올해 3월 10일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에 즈음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한 말이다. 당시 재계의 우려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사용자' 개념을 넓혀 하청 근로자들이 대기업 등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는 점, 다른 하나는 파업 등 쟁의의 사유를 '근로조건의 결정'에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 결정'으로 확대한 거다.법 시행 직후엔 하청 노조들의 교섭 요구 폭증에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영업이익 N% 성과급 논란'의 주연인 삼성전자 초기업노조가 6월 말 발표된 '800조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문제를 내년도 단체교섭 의제로 삼겠다고 나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노조의 주장은 '호남 반도체' 때문에 조합원이 향후 근무지를 옮겨야 한다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노조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 9월 정부, 여당이 입법을 밀어붙인 노란봉투법이 현 정부 최대 역점 사업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생겼다. 이 대통령이 "그렇게 따지면 경영권 행사와 관련이 없는 게 없다",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노동부에 지침 마련을 지시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다.#. "원자력 발전소 짓는 데 최하 15년이 걸리는데 지을 곳이 없다. 내가 보기에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다." 작년 9월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으로 전력수요가 폭증하는 만큼 원전을 더 지어야 한다는 주장에 "가장 신속하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라며 원전 확대 요구를 반박한 것이다.이랬던 대통령과 정부가 달라졌다. 간헐성이 큰 신재생 에너지에만 의존해선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품질 좋은 전력을 공급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지적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이달 초 "새 부지를 만들지 않더라도 전남 영광 한빛 원전에 2기, 울산 울주 새울 원전에 2기 등 총 4기를 더 지을 수 있는 땅이 있다"고 했다. 부지확보 상태에서는 7년이면 완공이 가능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지난달 2년 차에 접어든 정부는 1년 차 때 이재명 정부와 싸우고 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이미 최고 속도로 달리는 코스피에 터보엔진을 붙였다가 탈이 난 경우다. 역대 어떤 정부보다 '노동친화적'인 현 정부가 재계와 야권의 반발을 무릅쓰고 작년에 도입한 노란봉투법은 "가장 큰 국민적·역사적 성과"의 장애 요인으로 떠올랐다. 원전에 대한 정부의 자세는 2년 차 들어 극적으로 바뀐 경우인데, "과거 발언 사과부터 하라"는 일각의 요구가 있긴 해도 현 정부 '실용주의' 기조에 잘 맞는다는 평가가 많다.이재명 정부는 1년 차 정책이 난관에 부딪힌 또 하나의 사안을 23일 마주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2년 걸린 대책을 1년 만에 '2배속'으로 추진했지만 '매매·전세·월세 트리플 강세'만 초래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부동산 정책을 놓고 벌이는 청와대 국민토론회다. 이 대통령은 최근 사회개혁과 관련해 "요란하게 하면 멋있을지는 몰라도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고 했다. 1년 차 때 요란한 '정책 과속'을 통해 배운 교훈들이 2년 차 부동산 정책에 반영되길 기대한다.
[시대광장/채인택]군인에게 목숨 바치라고 명령할 수 있을까?
조선은 1907년 7월 31일 순종이 일제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강요로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지 3년쯤 지난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망했다. 망군은 망국의 전초였던 셈이다. 그 뒤 군대도, 나라도 없이 지내던 우리는 1946년 1월 15일 국군 모체인 국방경비대를 지금의 육군사관학교 자리에서 창설하면서 다시 정식 군대를 보유하게 됐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보다 앞선다. 군사학교는 군보다 먼저 창설됐다. 1945년 12월 5일 군사영어학교로 시작해 이듬해 5월 1일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6월 15일 조선경비사관학교를 거쳐 1948년 9월 5일 비로소 육군사관학교라는 이름으로 정착했다. 이렇게 탄생한 국군 중 육군은 '위국헌신·책임완수·상호존중' 등 3대 요소를 핵심 가치로 삼는다. 육사 생도들은 여기에 화랑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교훈인 '지(智)·인(仁)·용(勇)'을 더한 정신교육을 받으며 군인정신과 리더십을 배운다. 이 핵심 가치는 사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1879~1910)의 군인정신에서 나왔다. 안 의사가 남긴 유묵 등에 나타난 군인 사상이 육군 3대 요소와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영남대 군사학과 이영한 겸임교수가 안 의사의 유묵과 자서전인『안응칠 역사』, 미완성 저서인 『동양평화론』, 당시 공판기록과 매일신보 보도 등을 바탕으로 그의 군인사상을 분석한 결과다. 그 내용은 국방부 산하 국방정신전력원이 발행하는 학술지 『정신전력연구』에 2024년 게재된 '안중근의 가치관과 군인정신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에 실렸다. 안 의사의 사상은 군인정신의 6대 요소인 명예·충성심·용기·필승신념·임전무퇴·애국애민' 중 특히 명예·용기·애국애민이 두드러졌으며 그 근원에는 '정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2014년 3월 서울 만리동의 보덕사에서 만나서 들은 삼중 스님(1942~2024년)의 증언과 일치한다. 40년 이상 사형수 구명 및 교화 활동과 더불어 안중근 의사 숭모 사업에 헌신한 삼중 스님은 안 의사가 남긴 57점 이상의 유묵에 읽힌 사연을 소개하면서 안 의사가 생전에 특히 군인정신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들려줬다. 삼중 스님에 따르면 안 의사는 항일 의병 운동에 참여한 자신을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소개하는 등 자신을 나라를 헌신하는 군인이라고 여겼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 사살을 군인으로서 할 일을 한 것으로 여겼다.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은 뒤 같은 해 3월 26일 뤼순(旅順) 감옥에서 처형된 안 의사가 집행 직전 일본 감시병인 지바 도시치(千葉十七)에게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이라는 휘호를 써준 것은 이런 신념을 반영한다. 뤼순 법원 취조 담당인 야스오카 세이시로(安岡靜四郞) 검찰관에게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국가의 안위를 위하여 마음을 쓰며 애를 태운다)'라는 글을 써준 것도 마찬가지다. 일본으로 건너갔던 두 유묵은 모두 한국으로 돌아와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에 보관되고 있다. 안 의사가 유묵으로 남긴 '위국헌신 군인본분'과 '국가안위 노심초사'를 실천한 대한민국 군인으로 누가 있을까 생각하다 2010년 6월에 만났던 황규만(1931~2020) 예비역 준장을 떠올렸다. 황 장군은 만 18살 때인 1949년 7월 15일 2년 과정의 육군사관학교에 생도 1기(나중에 육사 10기가 됨)로 태릉 육사에 입교했다. 1기생은 1950년 7월 14일로 예정된 졸업 및 임관식을 불과 20일을 앞두고 6·25전쟁을 만났다. 황 장군은 "당시 모든 생도가 한 치 망설임도 없이 총을 들고 나섰다"고 증언했다. 생도들은 북한 남침 다음 날인 6월 26일 실전에 투입돼 포천지구에서 적과 교전했다. 1기생 262명 중 65명은 군번도 없이 생도 신분으로 전사했다. 1기는 6·25전쟁을 통틀어 113명이 희생됐다. 1950년 6월 1일 입교한 생도 2기는 기초교육도 마치지 못하고 3발의 소총 영점사격만 끝낸 상태에서 전투에 긴급 투입됐다. 포천 및 의정부 지구 등에서 북한군 남침을 저지하다 60여 명이 전사했다. 장교 단기 양성과정인 육군 갑종간부후보생 1기도 1950년 1월 31일 경기도 시흥 육군보병학교에 146명이 입교했는데, 전투에 나서 30명이 전사했다. 이처럼 사관생도들이 전투에 참여한 것은 유례가 드물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인 1945년 4~5월 베를린 전투에 독일 장교 후보생들이 투입된 정도다. 사관생도는 과학기술자와 더불어 국가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마지막까지 보호하고 지켜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많은 희생자를 낸 생도들은 포천에서 태릉-한강-용인 김량장-수원을 거쳐 대전에 재집결했다. 그해 7월 10일 충남도청 광장에서 서로 마주 보며 반창고로 만든 계급장을 달아주는 것으로 소위 임관식을 대신했다. 화랑대로 불리는 육사 교내에는 1959년 1기 생도의 희생을 기리는 불멸탑이 서 있어 피로 시작한 사관학교의 호국 전통을 후배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베트남전 참전을 앞두고 훈련 중 누군가가 실수로 떨어뜨린 수류탄을 온몸으로 덮쳐 부하들을 구한 강재구 소령을 기리는 재구탑도 서 있다. 생도 단체 사진에 단골로 등장하는 장소다. 육사에는 그를 기리는 재구생도대도 있다. 육사가 자리 잡은 화랑대는 단순한 교정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80년 전인 1946년 1월 15일 국군 모체인 국방경비대가 창설된 곳이자, 군번도 없이 생도 신분으로 전사한 생도 1기 65명이 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의 꿈을 키우던 호국 성지다. 사관생도들은 나라와 부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선배들을 길러낸 호국 성지에서 교육받으면서 헌신과 희생의 군인정신을 기른다. 과거 일부의 일탈은 이러한 전통을 해치는 오점일 뿐이다. 일부의 오점을 바탕으로 군인과 사관학교 전체를 '개혁 대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런 장소를 사실상 아파트 건설 부지로 내주고 육사를 해군사관학교 및 공군사관학교와 통합해 대전으로 옮겨가는 방안이 정부에 의해 일사천리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군인은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집단이고, 더구나 민주사회에선 국민이 선출한 정부의 명령에 당연히 따라야 한다. 하지만 간과한 게 하나 있다. 군인은 죽음을 명령받을 수 있는 특수 집단이지만 그만큼 이에 수반되는 명예와 자부심이 절대적이라는 사실이다. 민주사회에서 선출된 권력인 군 통수권자는 군인에게 죽음을 명령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명령은 합리적이어야 하고 군인에 대한 존경과 존중이 바탕에 깔려야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명예와 자부심을 지켜줘야 한다. 최근 사관학교 통합과 이전을 추진하는 정부의 속도전을 보면 존중과 존경 대신 독선과 일방통행만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민 우위의 원칙에 따라 선출직 정치인은 군인을 지휘해야 하지만 존경과 예우 없는 독단적인 명령과 지시는 역사에 새로운 오점이 될 수 있다. 사관학교 통폐합 추진이든, 장교·부사관 인력 충원이든 국방 인력 정책은 군인을 존중하는 자세에서 시작해야 마땅하다. 더 큰 문제는 국방부가 예비역과 퇴역군인을 포함한 군 출신이나 일반 국민과의 충분한 상호 소통도, 사회적인 숙의도 없이 일을 진행해왔다는 점이다. 특히 군과 군사 문제를 가장 잘 아는 군인 세계와는 소통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 흔한 공청회, 세미나도, 연구용역도 보기 힘들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모든 개혁은 개혁 당사자나 일반 국민과 쌍방향으로 충분히 소통하면서 진행할 때 비로소 명분과 공정성을 확보하면서 힘을 얻을 수 있다. 일방적인 개혁은 독선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군인들에게 유사시 목숨을 바치라고 명령하려면 국가와 공동체가 그들의 명예와 자부심을 최고의 예우로 철저히 지켜줘야 한다.
[시대광장/김준술]누가 '혐오'를 가르치는가
'영국 북부의 평범한 동네에 중무장 경찰이 나타난다. 경찰은 배관공 가정의 문을 부수고 급습한다. 목표는 테러범도 마약범도 아니다. 체포 대상은 앳된 얼굴의 13세 소년, 제이미 밀러다. 동급생 여자아이를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영문도 모른 채 부모는 울부짖지만 소용 없다. 뒤늦게 드러나는 제이미의 범행 동기. 그것은 바로 혐오였다.'제이미는 가상 인물이다. 동시에 얼마든지 현존하는 아이일 수 있다. 그는 '소년의 시간'(Adolescence, 2025)이라는 넷플릭스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작품은 어른들이 간과했던 10대의 감춰진 현실을 적나라하게 짚어낸다. 공개 직후 영국과 유럽에서 '문제작 대접'을 받았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모든 중학교에서 시청하라"고 조치했을 정도다. 시종일관 어둡고 불편한 전개 속에서 카메라 시선은 하나의 질문으로 일관한다. '소년은 왜, 언제부터 혐오와 폭력에 물들기 시작했을까.'단서는 바로 '소셜 미디어'에 있다. 13세 제이미가 인스타그램으로 친구들과 구축한 세상. 그곳엔 '또래 집단'만의 언어와 문화가 존재한다. 필수적 소통 수단인 '좋아요' 하트는 5~6가지 색깔마다 뜻이 다를 정도다. 어른들은 모르는 암호이자, 서로의 소속감을 확인하는 놀이 문화다. 그리고 온라인에 널린 혐오 콘텐츠가 그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마저 놀이처럼 소비됐다. 교사는 물론 부모조차 모르는 사이 제이미는 혐오를 쌓아왔고, 끝내 폭력을 선택했다.'소년의 시간'이 던진 질문은 한국 사회에도 투영된다. 배재고 야구부 사건이 계기다. 우리 아이들의 '혐오 문화'도 예사롭지 않다. 뒤늦게 실태 조명에 나선 언론 보도는 생경한 팩트로 가득하다. 아이들은 "또래만 공유하는 소셜 미디어 뉴스 계정이 따로 있다"고 증언한다. 희화화된 밈과 왜곡된 카드 뉴스가 넘쳐난다. "무시했다간 집단에서 뒤처지고, 바로 따돌림"이라고 한다. 대다수가 동조하면서 죄의식은 사라지고 혐오는 더욱 증폭된다. 하지만 수익과 성장을 중시하는 소셜 미디어의 플랫폼 구조 앞에서 '사회적 책임'은 쪼그라든다.최근 동행미디어 시대는 배재고 사건을 계기로 연속 보도를 했다. 혐오와 조롱이 부추기는 '갈등 사회'를 진단하고 해법을 숙의하자는 시도였다. 특히 소셜 미디어의 책임 강화를 해법의 하나로 제시했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가 '불안 세대'라는 책에서 꼬집은 내용도 이와 맞닿아 있다. 그는 "현실 세계에선 부모가 과잉 보호를 일삼는다"고 봤다. 하지만 "온라인에선 '과소 보호'로 방치되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과소 보호라는 불균형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마침 불균형 교정을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소년의 시간' 배경이던 영국이 그렇다. 지난달 '16세 미만'의 소셜 미디어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아이들이 중독되도록 설계됐다는 이유에서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정부도 동참할 방침이다. 원래 유럽은 디지털 미디어 정책을 '공공성' 차원에서 접근한다. 미국이 빅테크 기업을 키우기 위해 '진흥과 자율'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다르다. 유럽은 '미국 빅 테크와 맞짱을 떠서라도 지킬 건 지킨다'는 태세다. 칼럼을 쓰는 사이 따끈한 소식도 들려왔다. 유럽연합(EU)은 13일 아동의 소셜 미디어 접근을 제한하는 법안을 여름 이후 발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EU는 직접 나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아이들에겐 '현실 세계'의 시간이 필요하다."같은 고민에 빠진 한국의 선택지는 무엇일까. 우리도 국회에 여러 법안이 올라와 있다. 14세 미만의 가입을 금지하거나, 16세 미만의 이용 시간을 줄이자는 제안이다. 반면 일각에선 청소년의 정보 접근권과 알 권리를 얘기한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연령을 제한하려면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내친김에 '사회적 대토론회'라도 열어 해법을 좁혀 보는 것은 어떤가. 공론화 착수 자체가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다.배재고 사건이 남긴 질문을 일회성 담론으로 사장시켜선 안된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시간씩 소셜 미디어를 끼고 산다. 하지만 학교에서 올바른 사용법을 배우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1년에 6시간 정도가 고작이라고 한다. 부모도, 학교도 모르는 사이 혐오와 조롱의 알고리즘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소년의 시간'이 피고석에 세운 것은 사실 제이미가 아니었다. 혐오를 방관하고 소비하도록 방치한 어른들과 기업, 사회 전체였다. 드라마 엔딩은 처절하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아빠는 제이미 침대에 얼굴을 묻고 오열한다. '미안해, 아들. 내가 더 잘할 걸…' 그런 후회만큼은 드라마 속 아빠 하나로 끝나야 한다.
[시대광장/이상언]'거짓의 해악' 심판자는 누구인가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은 헌법에 위반된다.> 2010년 12월 28일의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결정이다. 47조 1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이다. 헌재의 7대 2 판결로 이 조항은 바로 효력을 잃었다. 위헌소원을 제기한 것은 박대성씨(필명 미네르바) 변호인단이었다.16년 뒤인 2026년 7월 7일 대한민국에는 새 법률 조항(정보통신망법 44조의 7-②)이 생겨났다. '손해를 끼칠 의도 또는 부당한 이득을 얻을 목적으로 타인의 인격권이나 재산권 또는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허위조작정보'를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유통하여서는 아니 된다.' 허위조작정보는 ①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가 허위인 정보(허위정보) ②내용을 사실로 오인하도록 변형된 정보(조작정보)로 규정됐다. 둘 중 하나에만 해당되면 처벌이다. '부당한 이득'이나 '공공의 이익 침해'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이 법에 쓰여 있지 않다. 허위·조작 여부를 누가 판정하는지도 알 수 없다.<'허위 사실'이라는 것은 언제나 명백한 관념은 아니다. 어떠한 표현에서 '의견'과 '사실'을 구별해내는 것은 매우 어렵고, 객관적인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 역시 어려우며, 현재는 거짓인 것으로 인식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그 판단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2010년의 헌재 결정문에 준엄하게 적혀 있다. 민주사회의 상식 아닌가? 이런 대목도 있다. <'공익'이라는 개념은 매우 추상적인 것이어서 어떠한 표현 행위가 과연 '공익'을 해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판단은 사람마다의 가치관, 윤리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중국의 검열 수단 '심흔자사죄'━헌재는 성실히 해외 입법례도 살펴보고 결과를 간략히 결정문에 넣었다. <허위 사실의 유포를 그 자체만으로 처벌하는 민주국가의 사례는 현재 찾아보기가 힘들다.> 당시 재판관들이 중국을 민주국가로 여기지 않았던 듯하다. 중국에는 '공공장소에서 소동을 일으켜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심흔자사죄'(중국 형법 293조)라는 게 있었고, 지금도 있다. '공공장소'에 온라인 플랫폼이 포함된다. 중국 정부는 바이두·텐센트·바이트댄스 등에 유언비어 유포 방지 책임을 지운다. 이들은 인력과 인공지능(AI)을 동원해 실시간 자체 검열을 한다. 시진핑 주석이나 정부를 비판하는 글은 보기 힘들다. 간혹 올라와도 금세 사라진다.2010년 위헌소원의 발단은 박대성씨 처벌이었다. 1988년생인 박씨는 인터넷 포털 다음의 커뮤니티(아고라)에 '미네르바'라는 닉네임으로 가끔 글을 게재했는데, '정부, 달러 매수 금지 긴급 공문 발송' 주장이 문제가 됐다. 정부는 허위 사실이며, 이 때문에 환율 방어에 20억 달러가 쓰였다고 밝혔다. 박씨는 전기통신기본법 47조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징역 1년 6월을 구형했다.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항소심은 헌재 결정으로 공소 기각됐다. 1심 재판부는 허위 사실 게재는 인정하면서도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 판결 이유를 밝혔다.━17년 전 민주당, 미네르바 체포 규탄━2009년 1월 박씨가 체포돼 구속되자 민주당 대변인은 "이명박 정권의 막무가내식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성명을 냈다. "국제적 망신"이라고 비난했다. 송영길 의원 등이 구치소에서 박씨를 만나 지원을 약속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인터넷에서의 허위 사실 유포로 사회적 혼란과 손해가 엄청나다고 주장했다. 2009년 한나라당은 '사이버 모욕죄'와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추진했다. 전자는 민주당의 반대와 사회적 비판에 제동이 걸렸고, 후자는 실행됐으나 위헌 결정으로 3년 만에 사라졌다. 그랬던 민주당이 우리사회 각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허위조작정보 금지법(개정 정보통신망법)을 탄생시켰다. 사이버 모욕죄 신설과 박대성씨 처벌에 열을 올리던 당시 여권(지금은 야권) 인사들은 요즘 앞다투어 "입틀막법 폐기"를 외친다. 서는 곳이 바뀌니 보는 풍경이 달라진 것인가.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의 부조리극에 어질어질하다.헌재 결정문에 쓰여 있듯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다. 인류는 오랫동안 신(神), 사제, 군주와 그의 대리인에 그 일을 맡겼다. 근대의 과학적 이성 발달로 그들의 독점 심판권은 허물어졌다. 그 누구도 진실 감별사의 지위를 가질 수 없게 됐다. 고도로 훈련받은 판사만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다. 이것이 '근대정신'이다. 절대적 진실은 없다. 잠정적 진실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허위 유포에 의한 공익 침해는 어떻게 막아야 하나? 2010년 헌재 결정문에 힌트가 있다. <어떤 표현이나 정보의 가치 유무, 해악성 유무가 국가에 의하여 1차적으로 재단되어서는 아니 되며, 이는 시민사회의 자기 교정 기능과 사상과 의견의 경쟁 메커니즘에 맡겨져야 한다.> '사이버 렉카'가 판치는 세상이라 한가한 소리로 들리나? 그러나 어쩌겠는가? 자유민주주의의 숙명이 그런 것을.
[시대광장/박창억]민주당은 지금 위기다
6·3 지방선거 직전만 해도 더불어민주당의 기세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민주화 이후 최고의 '패권세력'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22대 총선 압승으로 의회 권력을 장악했고, 불법 비상계엄으로 자멸한 국민의힘을 내란 세력으로 몰아붙이며 정권교체에 성공한 뒤 일방적으로 국정을 주도했다. 지방선거 과정에서도 한때 경북을 제외한 모든 광역단체장 선거를 싹쓸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입법·행정·지방권력까지 모두 손에 쥔 민주당이 독주를 이어가고, 국민의힘은 만년 야당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올만 했다.그러나 이런 전망에 고개를 젓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권력은 외부 공격보다 내부 분열로 몰락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의 과거 궤적을 돌아볼때 독점적 권력을 장악한 이 정권에서도 치명적 내분이 발생할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금 8·17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 내부에서 전개되는 양상은 이러한 예측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이런 분열의 DNA는 역사적 데자뷔를 불러일으킨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승리한 직후, 2003년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빽바지(친노 신당파)'와 '난닝구(호남 사수파)'로 상징되는 극단적 대결이 당을 찢어놓았다. 내부 투쟁에 골몰했던 민주당은 결국 민심의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민주당은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사상 유례없는 '전국 선거 3연속 참패'를 당하며 긴 암흑기로 들어갔다.전당대회를 앞두고 최근 '친명(이재명)' 세력과 '친청(정청래)' 세력으로 갈라져 싸우는 모습은 과거의 비극을 고스란히 재연하고 있다. 이들은 당의 주도권과 차기 대권 교두보를 차지하기 위해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유시민 작가 등 외곽의 영향력 있는 스피커들이 노선 갈등을 부추기는 양상은 세력 간의 전면전을 방불케 한다. 유 작가는 이 대통령의 통합·확장 노선을 '재건축'에 비유하며, 핵심 지지층이 진정 원했던 것은 외연 확장이 아닌 '증축'이었다고 날을 세웠다. 이에 대해 친명계의 김민석·송영길 의원이 반발하며 양측은 격렬하게 충돌했다.이제 민주당 의원들과 지지층은 이른바 '친명'과 '친청'이라는 두 진영으로 완전히 갈라섰다. 이들은 온·오프라인에서 서로를 향해 입에 담기 힘든 멸칭을 퍼부으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양 진영 핵심 인물들의 이름을 악의적으로 합성한 정체불명의 멸칭들을 보고 있으면 20여년 전 '난닝구 대 빽바지' 논쟁, 10년 전의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사태, 4년 전의 '수박 논란' 등이 차례로 오버랩된다. 표현의 겉포장만 바뀌었을 뿐, 권력을 향한 증오와 배제라는 본질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급기야 이들의 싸움은 시대착오적인 적통 논쟁을 넘어, 과거 역사까지 헤집는 '파묘 소동'으로 치달았다. 노사모 시절 갈등이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파동을 다시 꺼내 드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노 전 대통령 장례식 참석 여부라는 해묵은 논란까지 소환해 서로를 비난하는 형국이다.정당이란 본래 다양한 생각과 정책이 역동적으로 공존하는 광장이다.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가더라도 선택하는 방법론은 다를 수 있으며, 정치적 견해의 상반은 오히려 정당의 생명력을 높이는 촉매제가 된다. 그러나 나만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독선에 빠지는 순간 정당은 무너진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동지를 토론과 설득의 파트너가 아닌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정당은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민주당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패배에 익숙한 무기력한 정당이었다. 과거 보수 진영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거의 여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리멸렬한 내분을 일삼던 민주당의 무능함이 있었다. 민주당은 여러 차례 분열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도 역사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듯하다. 민주당이 이대로 분열의 늪에 빠져 허우적댄다면 2028년 총선과 2030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과거를 잊은 지금의 민주당은 분명 위기다.
[시대광장/이상복]징벌적 손해배상, '입틀막법' 되지 않으려면
오래전 방송심의기구를 출입한 적이 있다.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 기관을 '자판기 위원회'라고 부르는 냉소가 있었다.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결론을 짐작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안건은 여야 추천 위원 구성에 따라 결론이 갈리곤 했다. 정권이 바뀌면 공정성과 중립성의 잣대도 달라지는 듯했다. 어느 정부나 독립적 심의를 강조했지만 정파를 넘어선 신뢰는 끝내 쌓이지 못했다. 남은 교훈은 분명했다.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운영에 대한 신뢰였다.7일부터 시행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이른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 법은 고의로 허위·조작정보를 유포해 타인에게 피해를 준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를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유튜버에는 강화된 책임을, 대형 플랫폼에는 허위정보 대응 체계와 투명성 보고 의무도 부과했다.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입틀막법'이라는 비판과 가짜뉴스 대응이라는 옹호가 맞서고 있다. 그러나 찬반 논쟁보다 중요한 핵심은 따로 있다. 무엇을 허위정보로 볼 것인가. 그 기준을 누가 정하고, 국민이 얼마나 납득할 수 있느냐다.허위정보를 가르는 일이 모두 어려운 것은 아니다. 문제는 경계다. 법은 허위·조작정보를 '전부 또는 일부가 허위이거나 사실로 오인되도록 변형된 정보'로 규정한다. 여기에 혐오·차별 정보를 새로운 불법정보 유형으로 포함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현저히 훼손하는 정보'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이런 개념은 일정 부분 해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판단은 법적 기준보다 정치적 해석에 끌려갈 위험이 커진다.진짜 난제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이다. 선거, 정책, 권력 비판처럼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영역에서는 같은 자료도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힌다. 이 지점에서 허위정보 규제는 팩트체크 기술이 아니라 판단 기준의 문제로 바뀐다. 방송심의가 끊임없이 논란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물론 허위정보를 방치할 수는 없다. 일부 유튜버와 이른바 '사이버 렉카'는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사실처럼 유포하며 명예를 훼손해왔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수익도 따라왔다. 거짓 정보는 선거와 정책, 사회적 갈등을 동시에 흔들어왔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이지만, 고의적 허위정보까지 보호할 수는 없다.문제는 규제 방식이다. 이번 제도는 플랫폼 사업자가 게시물 삭제나 노출 제한 여부를 판단하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플랫폼은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아니다. 사실관계를 판단할 권한과 역량이 충분하지 않고, 과거 사례를 보면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여기에 이번 법은 누구든 허위정보를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시민 참여를 넓힌다는 취지가 있지만, 정치적 쟁점에서는 조직적 신고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신고가 몰리면 플랫폼은 가장 안전한 선택, 즉 '일단 삭제'로 기울 수밖에 없다. 그 순간 공익적 비판까지 함께 위축된다.제도를 뒷받침할 장치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플랫폼과 협력해 허위 여부를 검증할 사실확인단체는 구성 단계이고, 이를 지원할 투명성센터도 출범을 앞두고 있다. 객관적 판단 체계가 자리 잡기도 전에 법부터 시행되는 셈이다. 준비보다 시행이 앞서는 제도는 초기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결국 관건은 독립성과 신뢰다. 사실확인단체와 투명성센터가 정치적 중립성과 일관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제도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정부에 유리한 주장에는 관대하고 비판에는 엄격하다는 의심이 생기는 순간 신뢰는 무너진다. 보수와 진보, 권력자와 권력비판 세력 모두에 동일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제도는 공론장의 안전장치가 아니라 또 하나의 '입틀막법' 논란으로 남을 수 있다.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마찬가지다. 권력자나 대기업이 소송을 통해 상대를 위축시키는 방식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 정부와 여당은 보완장치를 마련했다는 입장이지만, 언론 현장의 우려는 여전하다. 그만큼 추가적인 보완 입법 논의도 열어둘 필요가 있다. 허위정보는 엄정하게 다루되, 공익적 비판과 탐사보도는 더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략적 봉쇄소송을 막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거짓은 처벌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더 빠르고 넓게 진실이 확산되는 정보 생태계가 필요하다. 앞으로 구성될 미디어발전위원회도 규제 중심을 넘어 공익적 저널리즘이 성장할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시민이 사실과 의견을 구별할 수 있도록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좋은 저널리즘이 살아야 허위정보의 공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방송심의가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정파성 논란이 시작되는 순간 제도는 신뢰를 잃는다. 허위정보 규제도 다르지 않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일관된 기준이 있을 때만 제도는 작동한다. 이 법이 허위정보를 줄이는 장치로 자리 잡을지, 또 다른 '입틀막법' 논란으로 남을지는 결국 신뢰의 문제다. 법의 권위는 처벌의 강도가 아니라 기준의 공정성에서 나온다.
[시대광장/정용관]권력의 회로가 바뀌었다
샴페인은 잔에 따르는 순간 가장 화려하다. 기포는 눈부시게 솟아오르지만 오래 머물지 않는다.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자 오래 정치권을 지켜본 한 지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대선 도전에 실패한 어느 정치인의 부인이 위로 자리에서 샴페인 잔을 바라보다 "꼭 지지율 같네"라고 했다는 것이다. 권력도 그렇다. 가장 높이 치솟는 순간이 가장 불안정하다.지지율은 오르내리는 것이 정치의 숙명이다. 그러나 한 번 꺾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좀처럼 되돌아오지 않는다. 어느 정권이든 취임과 동시에 레임덕이 시작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년 동안 대선 득표율을 크게 웃도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행정부와 국회를 장악했고 사법개혁의 주도권도 확보했다. 지방 권력까지 더해지면 '단군 이래 가장 강한 대통령'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반도체 초호황까지 겹치면서 "운이 좋은 대통령"이라는 말도 따라다녔다.그런데 지방선거 이후 공기는 사뭇 달라졌다. 집권 1년을 갓 넘긴 대통령에게 여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권력은 짧다"고 맞섰다. '90도 폴더 인사'를 두고도 온갖 해석이 쏟아졌다. 왕조 시대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린'을 건드리는 듯한 일이 예사로워졌다.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많은 사람은 이를 유튜브 정치나 팬덤 정치의 영향으로 설명한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상이다. 본질은 권력이 작동하는 회로가 바뀌었다는 데 있다. 과거 정당은 여론을 걸러내고 다듬는 필터였다. 대통령이 당을 이끌고, 당은 의원을 움직였으며, 의원은 지지층을 설득했다.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흘렀다. 지금은 순서가 뒤집혔다. 플랫폼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형성된 강성 지지층의 정서가 당을 움직이고, 당의 기류가 다시 대통령을 압박한다. 권력은 아래에서 위로 역류한다. 대통령이 당을 통제하지 못하는 시대가 아니라, 당조차 지지층을 통제하지 못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문제는 비전도 질서도 없는 지지층의 분열이다. 최근 여권에서 벌어진 '적통' 논란과 '파묘' 공방, 멸칭 경쟁은 그 단면이다. 누구는 'ABC론'이니 '코어층'이니 하며 카테고리를 나누고 "증축을 하랬더니 재건축을 한다"며 그럴듯한 프레임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당권 투쟁이다. 정치적 언어만 복잡해졌을 뿐 팬덤 동원이라는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사실 이 대통령 역시 이런 정치 환경의 수혜자이자 산물이다. 변방 정치인이던 그는 손가락혁명군과 개딸로 이어지는 팬덤의 힘을 발판으로 중앙 정치의 중심에 섰다. 정청래 대표 역시 같은 정치 문법을 구사하고 있다. 어쩌면 더 능숙한 방식으로 당 조직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호남 반도체를 둘러싸고 전당대회를 의식한 결정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정치 지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그런 해석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현실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그 점에서 대통령이 당내 권력투쟁의 한 축이 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이겨도 상처가 남고, 지면 치명적이다. 지금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권력이 아니라 '정치적 권위'다. 이 대통령은 "나는 선거 전후로 변한 것이 없는데 국정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달라져야 한다. 직전 총리는 그를 '괴력의 슈퍼맨', '악덕 상사'라고 표현했다. 누구보다 부지런한 대통령이라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 할수록 오히려 권위는 소모된다. 국무회의 생중계나 SNS를 통한 잦은 의견제시도 마찬가지다. 만기친람이 권위의 원천이 되진 못한다. 대통령이 전면에 설수록 국정은 대통령 개인에게 더 의존하게 될 뿐이다.이 대통령은 중도 보수를 아우르는 '구조적 다수'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권력을 더 행사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권위는 자신에게 불리한 문제를 피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공소 취소 문제도 그런 차원에서 봐야 한다. 그것이 여권 내부 권력투쟁의 고리가 되고 국정 운영의 부담으로 남아 있는 한 대통령은 스스로 정치적 공간을 좁히게 된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매듭짓는 것, 그것이 국가 지도자의 권위다.긴 시간의 흐름으로 보면 권력이야말로 샴페인 거품과 닮았다. 대통령의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권력의 회로가 바뀐 시대, 이제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권력의 시간이 아니라 '권위의 시간'이다.
[시대광장/채인택]반도체·AI 몰입 투자의 위험성과 타산지석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보고회'에서 앞으로 10년간 1000조가 넘는 반도체 클러스터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벨트 투자 계획이 발표됐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한 관련 기업 관계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앞으로 AI 산업으로 국가 경제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린다는 전략 아래 '초격차 반도체 산업'과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를 대상으로 역대급 '국가기획 민간투자'를 하겠다는 발표다. 모든 것이 뜻대로 진행되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겨본다'는 속담대로 혹시 생길지도 문제점을 미리 살펴 대비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하다. 타산지석을 살펴본다.가장 염려되는 것이 반도체와 AI 산업 '몰입'이 불러올 부작용이다. 대표적인 것이 '극단적인 의존경제'에 대한 우려다. 지금도 주식시장에선 역대급 이익을 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덕분에 코스피는 훨훨 날고 코스닥은 침체에 빠져 서로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날 정도다. 삼전닉스는 한국경제에 엄청난 활력을 가져왔지만, 한편으로는 중소·벤처기업의 실적 부진과 경기침체를 감추는 가림막 구실을 해왔다. 경제의 다양한 분야가 고루 성장하는 것은 국가 경제의 건전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특정 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경제 안보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산유국들이 잘 보여준다. 세계적 석유 공급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수출의 약 90%, 정부 재정 수입의 75% 이상, GDP의 약 40%를 에너지에서 얻고 있다. 국제 유가 변동에 국가 경제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네옴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 등이 포함된 '비전 2030'을 추진하는 것도 관광·금융·IT·첨단제조업 등 비석유 부문의 비중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계 최대 수준의 액화천연가스(LNG) 공급국인 카타르도 원유·천연가스가 전체 GDP의 약 27%, 총수출액의 약 86%, 정부 재정 수입의 약 80%를 차지한다. 극단적인 에너지 의존의 카타르는 수출 항로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1991년 옛 소련이 무너진 뒤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산업에 크게 의존해왔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제재를 받기 전까지 에너지 부문은 연방정부 국가재정의 절반 정도를 충당했으며, GDP의 최대 24%를 차지했다. 전체 수출에서 차지한 비중은 60%를 넘었다. 에너지라는 단일 분야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뤄진 국제 제재의 충격파 증폭으로 이어졌다. 러시아는 식량·에너지·생필품을 자급하지만, 석유 금수로 인한 외화 확보의 어려움으로 전쟁 수행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면서도 국가와 국민은 가난한 남미의 베네수엘라도 일부 산업에 대한 극단적인 의존의 대표 사례다. 베네수엘라는 수출의 90%, 국가 재정의 절반 이상을 석유에 의존하는 '극단적인 석유 의존 경제'를 보여준다. 석유에 투자와 자원, 인력이 몰리면서 농업이나 제조업 등 다른 산업은 서서히 몰락해갔다. 경기 사이클에 따라 유가가 하락하면 국가 경제가 파탄 날 우려가 있는 취약한 구조다.그런데도 1999년 집권한 우고 차베스 정권은 석유경제에 취했다. 막대한 오일달러를 '차비시모(차베스주의)'로 불리는 무상 의료·교육과 보조금 등 포퓰리즘 정책에 투입했다. 포퓰리즘으로 탄탄한 지지층이 형성되자 차베스는 반대파를 국가의 적으로 돌리고 탄압하기 시작했다. 사법부와 언론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고, 법과 제도를 뜯어고쳐 임기를 계속 연장했다. 그러다 2010년대 중반부터 국제유가가 떨어지면서 오일머니 수입이 크게 줄었다. 그런데도 2013년 차베스를 이어받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정권은 정치적 이유에서 무상복지나 국가재정 씀씀이를 줄일 수 없었다. 대신 화폐 발행을 늘렸다. 이는 2018년 170만%에 이르는 초인플레이션을 불러 사실상의 국가경제 파탄으로 이어졌다. 최근 강진이 강타한 베네수엘라의 구조작업과 사태 수습이 원만하지 않았던 이유의 하나로 꼽힌다. 반면에 모범 사례도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세계적인 산유국이지만 경제에서 석유·에너지 의존도를 전략적으로 줄이면서 금융·무역·금융·부동산·건설업 등으로 산업을 다각화해왔다. 그 결과 UAE 연방경쟁통계청(FCSC)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전체 GDP에서 비석유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78%를 차지하고 있다. 산업별 비율을 살펴보면 도소매·무역(16.9%), 금융·보험(13.2%), 건설(12.9%), 제조업(12.8%)이 국가 경제를 이끌고 있다. 수도 아부다비의 해안에는 걸프 산유국에서 보기 힘든 거대 수리 조선소와 제철소가 자리 잡고 있다. 인근 사디야트 섬에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최초 해외 분관인 '아부다비 루브르'가 들어서 중동의 관광·문화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UAE는 한국과 원전은 물론 SMR·반도체·배터리·방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바란다.노르웨이는 GDP의 약 50%와 총수출액의 70% 이상을 석유·천연가스 산업에 의존하는 자원 부국이다. 하지만 에너지 수출로 얻는 수익을 당장 재정에 활용하지 않고 '글로벌연금기금(국부펀드)'에 투입해 전 세계 주요 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해 전액 저축하는 셈이다. 경기변동 등으로 유가가 변해도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는 구조다. 한국에서도 즐기는 고등어와 연어를 잡는 어업과 임업·제지산업·조선업·해운업·금속산업·화학산업·관광업 등 전통 경제활동이 여전히 활발하다. 게다가 노르웨이는 석유·천연가스는 대부분 수출하고 국내 전력의 약 98%를 수력 발전에서 얻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알루미늄 제련 등 에너지 집약적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석유로 얻은 횡재가 아니라 국민이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면서 알뜰하게 벌어들인 돈으로 나라를 유지하는 노르웨이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한다. 경기변동의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지속이 가능한 경제 모델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경제는이번 투자에서 반도체·AI 비중이 높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다양성이 넘친다. 다만 최근 들어 우려되는 점은 삼전닉스가 포함된 코스피는 활기를 띠지만 중기·벤처 중심의 코스닥에는 상대적으로 그늘이 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를 위한 반도체·AI 투자도 좋지만, 산업 간 격차에 따른 박탈감을 줄여줄 중기·벤처 산업 육성책도 절실하다. 그게 경제 민주화이고 산업 간 균형발전일 것이다.
[시대광장/김준술]누가 빌런을 만들어 내는가
불편한 얘기부터 꺼내려 한다. 나는 1980년대 초중반에 중고교를 다녔다. 체벌하면 으레 '대걸레 자루'부터 떠오른다. 성적 부진, 흡연, 싸움까지. 학생들은 여러 이유로 자루가 부러질 때까지 엉덩이를 맞았다. 어떤 선생님은 '쇠줄 시계'부터 풀었다. 뺨을 내려칠 때 상처를 남기지 않으려고. 그것이 훈육 효과를 발휘했는지는 모른다. 지금 돌이켜 보면 폭력과 다름없었다.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은 공개하자마자 봤다. 나는 폭력 옹호자가 아니다. 처음엔 불편했던 체벌 기억이 겹쳤다. 그것도 잠시였다. 장면마다 '맞아도 싸다'는 통쾌함이 솟구쳤다. 드라마 속 '빌런(악인)'들은 과거와 차원이 달랐다. 학내 죽음과 마약 유통 같은 극악한 범죄 행위의 가해자였고 '공분 유발자' 그 자체였다.비슷한 시선은 나 말고도 많았다. 삽시간에 '교권 확립' 구호가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잠겨있던 교실의 병폐도 낱낱이 떠올랐다. 지난주 서울 용산의 기자회견장은 그 압축판 같았다. 11개 교원, 학부모, 교육 단체들이 모여 토로를 쏟아냈다. 한 참석자는 "5년간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교사가 125명"이라며 "교권 5법도 만들었지만,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호소했다. 교실 갈등을 법과 소송으로 해결하려는 '학교의 사법화'가 교권 위축을 부추긴다는 구조적 진단에는 나도 공감했다.정책 당국은 아직 중구난방이다. 충남교육청에선 교육감 직속의 '교권 보호관'을 7월에 출범시킨다는 소식이 들린다. 반면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22일 학부모들을 만난 자리에서 "응징과 대립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누군들 당장 똑 부러지는 묘안을 내놓긴 쉽지 않은 듯하다.나는 교권보호국 논쟁을 넘어 다른 제안을 하고 싶다. 교실 밖의 '빌런'들로 시야를 확장해보자. 선을 넘는 자들은 수두룩하다. '민원 공무원이나 경찰을 폭행하기, 버스 기사에 흉기 휘두르기, 아파트 경비원 괴롭히기, 응급실 간호사에 폭언하기.' 이제는 낯선 뉴스가 아니다. 모두 타인의 권리와 권한을 우습게 여기고 짓밟는 행위다. 이것이 살인이나 흉악 범죄로 이어질 때도 많다. 최근 대통령까지 공개 질타한 '광주 소방서 사건'도 마찬가지다. 술자리를 강요하는 갑질로 여성 소방공무원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간 상사와 조직은 드라마 참교육의 빌런과 다를 바 없다. 애들은 어른들을 따라 하고 배운다. 교권이 해체되는 현실도 이런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교육학 개념을 빌리자면 '비(非)인지 능력'의 결핍 때문은 아닐까 질문을 던져본다. 인지 능력은 외우고, 공부하는 힘이다. 반면 비인지 능력은 '공감, 자기조절, 소통'을 말한다. 그래서 '마음의 힘'이라고도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이걸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학교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일터도 그렇다. 빈곤한 시절을 산업화로 극복하는 동안 '경쟁 중심, 개인 중심, 성과 중심'의 생존 방식이 굳어졌기 때문이다.마음의 힘을 스스로 깨치면 좋지만 그게 어렵다. 인간의 뇌에 아직도 수렵 시절의 폭력성과 자기중심적 유전자가 남아 있어 '빌런 본능'을 자극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지레 체념할 필요는 없다. 독일 사회학자 노버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 성찰은 솔깃한 시사점을 던진다. 예컨대 중세 기사들은 명예∙헌신보다 약탈∙살인을 일삼는 무뢰한이었다. 하지만 근대 궁정사회에 예법과 공동체 규율이 도입되면서 기사들까지 확산했고, 이들은 스스로 절제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익혔다. 폭력적 본능을 누르는 것은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내면 통제'의 결과물이라는 취지다. 진화심리학계 거장인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도 이에 동조하면서 '타인에 대한 감정 이입과 자기 통제가 폭력성과 가학성을 낮춘다'고 했다.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집단 괴롭힘 같은 문제가 심각했던 일본의 교육 현장도 최근 '비인지 능력'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일본정부관광국 웹사이트에는 흥미로운 인터뷰가 올라와 있다. 자국 교육을 홍보하는데 주제가 특이하게도 '교실 청소'다. 인터뷰에서 아베 교코 테이쿄대학 교육학부 교수는 "단순히 청소를 잘하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다. 일의 의미를 가르치고,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다하는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고 했다. 청소로 공존의식을 심어준다는 얘기다. 일본을 방문한 이집트 대통령이 청소 교육법을 수입해갔다고도 한다.누군가는 이런 처방이 개인주의와 다양성을 억압하는 '또 다른 폭력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이에 재반론을 하자면 '자유와 무질서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교실에서, 그것도 어릴 때부터 공존감과 자기 통제법을 더 가르치고 익히게 하자. 이것이 사회로 확산할 때 비로소 교실 안 빌런도, 교실 밖 빌런도 자취를 감춘다.
[시대광장/이상언]대리투표가 합법인 나라를 아십니까?
2012년 봄 런던 세인트판크라스 기차역에서 대학 선배와 조우했다. 나는 파리행 유로스타를 타려고 갔고, 프랑스에서 유학하다 정착해 사업가가 된 그는 일 때문에 영국에 왔다고 했다. 다음 날 치러질 프랑스 대통령 선거 취재 출장 길에 오른 나는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사회당 열성 지지자가 투표 안 하면 어떡해요?" 그러자 그는 "투표는 동네 친구한테 부탁했어"라고 답했다. 내 표정에서 '이해 안 됨'을 알아차린 그가 "대리투표 제도라는 게 있어. 가족이나 이웃에게 위임장만 써 주면 돼"라고 설명했다.'내 표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민주사회에서 가능한 일인가? 서구 민주주의의 한 축인 프랑스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의문이 솟구쳤다. 나는 "부탁 받은 친구가 올랑드(사회당 대선 후보) 말고 다른 데 찍을 수도 있잖아요?"라고 물었다. 그는 빙긋이 웃으며 "그러니까 믿을 만한 사람에게 부탁을 하지. 배신해도 알 수는 없지만"이라고 대답했다.작은 충격이었다. 유럽 특파원으로 프랑스에서도 2년 동안 산 적이 있는데 대리투표(위임투표) 제도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한국에서 자라면서 선거의 4대 원칙(보통·평등·직접·비밀)을 외우고 또 외웠다. 대리투표는 언감생심,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멀쩡한 나라에서 버젓이 시행되고 있었다. 다음 날 프랑스 투표소 앞에서 달랑 종이 한 장짜리 투표 위임장을 들고 온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출장 마치고 런던으로 돌아와 알아보니 영국에서도 프랑스와 비슷한 대리투표제가 운영되고 있었다. 유럽에선 특이한 것도 아니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에도 있었다.프랑스 대리투표제는 약 100년의 역사를 지녔다. 출장·여행·입원 등으로 투표 날에 동네 투표소에 갈 수 없는 유권자를 위한 것이다. 과거에는 한 사람이 두 명까지 대리할 수 있었으나 2022년부터 한 사람(해외 체류자 대리 경우는 두 명까지)으로 제한됐다. 투표구가 다른 인척이나 친구에게도 위임할 수 있는데, 투표는 대리를 맡긴 사람의 지역으로 가서 해야 한다.대리투표제 도입을 주장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투표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에 지금의 한국인들이 동의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당장 매수 위험, 권력 관계에 따른 부정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 실제로 영국과 프랑스에서 요양원 거주자 집단 위임, 가족 간 억지 위탁 등의 문제가 있었다. 처벌 강화 등의 대응책이 나왔지만 일탈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리투표제를 소개하는 이유는 선거일에 투표하기 어려운 유권자를 위한 제도가 오로지 사전투표만은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서다.6·3 지방선거 진상규명위원장(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임명)을 맡았던 조현욱 변호사에게 21일 연락했다. 그는 앞서 19일 열린 진상조사 결과 발표 회견에서 사전투표 제도 유지 여부를 판단할 "공론화"를 언급했다. 그는 통화에서 "국민의 불신이 너무 커서 토론의 장을 열어 결정하는 게 필요하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조 변호사는 "사전투표 투표지 보관과 이송 등의 과정은 엄정히 잘 이뤄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부정선거 의혹이 쌓여가고 그 중심에 사전투표가 있어 존치 여부를 숙고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조 변호사는 몹시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사전투표 신뢰 회복 가능성을 희박하게 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내친김에 고위 법관 출신의 현직 중앙선관위원에게도 사전투표 존속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솔직히 말해 사전투표 관리에 선관위의 힘이 부치는 것은 사실이다. 과부담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불신 때문에 사전투표에 더욱 신경을 쓰다보니 본투표에서도 실수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익명을 부탁했다.한국은 2012년에 사전투표제를 도입했다. 지금의 여권인 민주통합당에서 주도했다. 한국의 뛰어난 행정(전산) 능력 덕에 통합선거인명부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로 직장이나 학교 근처에서 투표할 수 있게 됐다. 투표율이 올랐다. 그러나 5일 동안의 투표함 관리, 우편 발송, 별도 개표 등의 복잡한 과정이 수반됐다. 실수, 의혹, 음모론이 꼬리를 물고 재생산됐다. 사전투표와 본투표 사이의 후보자 사퇴로 '사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데도 투표를 미리 하고 선거일은 보통 휴일처럼 보내는 문화가 퍼졌다.사전투표제 안착의 핵심 조건은 사회 신뢰 자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공동체의 국가 시스템에 대한 믿음은 높지 않다. 한국 국가데이터처가 지난해 말 발표한 사회조사 결과에서 "우리 사회를 신뢰한다"고 대답한 비율은 54.6%에 그쳤다. 반면 한국인의 정치적 민감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현실을 바탕에 깔고 사전투표의 효용성과 역효과를 진지하게 따져 보자. 우편투표(독일에서 활성화), 투표 시간 연장 등의 대안도 있다. 최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52.7%의 응답자가 사전투표 폐지에 찬성(44.2% 반대)했다. 언제나 옳은 제도는 별로 없다.
[시대광장/박창억]2030의 참정권 시위와 정치의 실패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1월 말 청와대 행사에서 평창 동계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둘러싼 잡음과 관련해 "선수들의 입장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남북 단일팀 구성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 훈련해 온 일부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 기회가 일방적으로 박탈당했다는 논란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2030 세대를 중심으로 '한국 선수에 대한 역차별이자 절차적 정당성의 훼손'이라는 주장이 확산됐다. 2017년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사태' 당시에도 청년층이 공정을 요구하며 반발했다. 이번 6·3 지방선거 직후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선 2030 청년들의 시위 역시 돌출 행동이 아니다. 그간 축적되어 온 청년 세대의 가치관과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추구가 다시 발현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개표소 앞을 메운 청년들의 집단행동은 낙후된 한국 정치와 선거 행정의 무능에 대한 매서운 질타다. 박빙 승부처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이자, 유권자가 신뢰하던 시스템의 절차적 정당성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국가의 행정 부실로 인해 헌법이 보장한 최소한의 기본권마저 침해당하자 청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번 시위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청년들이 보여준 행동의 밑바탕에 깔린 구조적인 좌절감과 분노다. 치열한 입시 경쟁과 좁아진 취업 문턱을 겪으며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삶의 생존 원칙으로 체화한 2030 세대에게, 민주주의의 출발점인 '1표의 가치'가 훼손된 상황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상식의 파괴다. 이 분노의 저변에는 몇 년째 해소되지 않고 구조화된 일자리 부족 현상과, 청년의 월급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벌어진 자산 격차 속에서 누적된 청년들의 박탈감이 똬리를 틀고 있다. 벼랑 끝에 몰린 청년들에게 최소한의 계층 이동 가능성마저 원천 차단해 버린 기성 정치가 이제는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라 할 수 있는 선거권마저 가로막았다는 극도의 무력감이 폭발한 것이다. 그러나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현장에서는 우려스러운 징후도 포착되고 있다. 참정권 침해 항의에 슬그머니 숟가락을 얹으려는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가세하면서, 일부 참가자들의 일탈 행동이 명분을 흐리고 있다. 경기장을 출입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적 검문이나 현장 경찰관을 향한 폭언과 조롱은 시위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자충수다. 참정권 침해라는 본질적 문제 제기가 극단적 구호와 음모론에 뒤덮이는 순간 청년들의 정당한 저항은 그 정당성을 잃게 된다. 행정 참사의 책임을 묻는 것과 검증되지 않은 부정선거론을 확산시키는 것은 엄격히 분리되어야 마땅하다. 정작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할 정치권의 행태는 여전히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애초에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도 정치의 무능과 무관심 때문이다. 2030 세대들은 기성 권력이 과정의 공정성을 무시하거나 청년들이 쏟은 노력의 가치를 외면했을 때 진영을 막론하고 단호히 저항해 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정치는 근본적인 구조 개혁 대신 임기응변식 미봉책을 내놓기에 급급했고, 청년들의 목소리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데만 몰두했다. 이번에도 정치권은 청년들의 팍팍한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대안을 모색하거나, 선거 행정 참사의 원인을 투명하게 규명하고 피해를 입은 주권자들의 권리를 구제하는 본연의 책임은 뒷전으로 미루어 두었다. 그 대신 집회 현장을 바라보며 상대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네거티브 정쟁의 소모적 수단으로만 이 사태를 소비하기 바쁘다. 다시금 '정치의 실패'만 확인하고 있다. 송파구의 외침을 한국 정치를 한 단계 진화시키는 동력으로 삼으려면, 정치권부터 감정적인 정쟁을 배제하고 구조적인 제도 개선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 여야가 지난 16일 선관위 국정조사 실시에 합의한 만큼, 이번만큼은 정략을 철저히 배제하고 행정 참사의 진상을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다. 나아가 기술적 결함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투개표 시스템 전반의 재설계도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송파구 개표소 앞의 분노를 또다시 진영 싸움으로 오독하거나 방치한다면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는 없다. 청년들의 정당한 절규를 제도 개혁으로 전환하는 책무가 이제 정치권의 무거운 과제로 남았다.
[시대광장/이상복]중국을 보는 두 개의 착시
"관등성명을 대라. 중국 공안 아니냐."최근 서울 잠실 개표소 앞 시위 현장에서는 믿기 어려운 장면이 벌어졌다. 일부 시위 참가자가 경찰관을 중국 공안으로 의심하며 신분 확인을 요구한 것이다. 현장을 취재하던 대만 언론인들은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다"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다녀야 했다. 온라인에선 집회 현장에 배치된 경찰관들이 중국인이라는 주장이 퍼졌고, 결국 경찰청이 공식 설명에 나섰다. 앞서 계엄과 탄핵 정국에서도 중국인이 선거에 개입했다거나 중국 공안이 활동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이 끊임없이 유통됐다.이런 현상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어느 순간 중국은 사회적 불안과 정치적 분노가 투영되는 거대한 스크린이 됐다. 선거에 대한 불신도, 정치적 양극화도, 경제적 불안도 때로는 "중국 때문"이라는 설명으로 수렴된다. 반대로 어떤 이들에게 중국은 여전히 경제 협력과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 협력자로 인식된다. 정반대처럼 보이는 두 시선에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 중국을 보기보다 각자의 기대와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보수 진영 일각의 착시는 중국을 만능 악역으로 보는 데서 시작된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대만해협 긴장, 북·중·러 협력 강화 등을 고려하면 경계심 자체는 자연스럽다. 문제는 경계심이 혐오와 음모론으로 변질될 때다. 중국을 국내 정치 갈등의 원인으로 지목하거나 사회 문제의 배후로 상정하는 순간 현실 인식은 흐려진다.실제로 최근 "중국인이 강남 아파트 수백 채를 싹쓸이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사실과 달랐다. 반중 정서를 자극하는 이야기가 사실 여부보다 먼저 확산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중국의 과학기술과 산업 경쟁력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첨단기술 발전을 기술 탈취와 모방의 결과로만 치부하는 시각은 냉정한 분석을 가로막는다. 상대를 과대평가하는 것만큼이나 과소평가하는 것도 위험하다.일부 진보 진영의 착시는 중국을 경제 협력과 북핵 해결의 파트너로 고정해 놓는 시각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현실은 과거와 달라졌다. 한국은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비공식 경제 보복을 경험했다. 한한령은 문화·관광 산업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줬고 최근에는 희토류와 핵심 광물이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제 협력의 필요성이 중국의 강압적 행태까지 눈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북핵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오랫동안 중국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핵심 지렛대가 될 거라고 기대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협조하는 동안에도 중국은 비핵화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다루지 않았다. 최근 북중 정상회담에서도 비핵화는 주요 의제로 부각되지 않았다. 중국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오래된 가정 역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한국 사회는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끊임없이 논쟁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중국은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다. 중국은 한국 내부의 보수·진보 논쟁보다 한국이 미국 동맹 체제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느냐에 더 관심이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될수록 한국은 독립된 행위자라기보다 미국 주도의 동맹망을 구성하는 핵심 축으로 비친다.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이라는 싱하이밍 전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은 그런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미경중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언급한 것은 달라진 국제 환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공식은 오랫동안 한국 외교의 기본 전제였다. 그러나 이제 경제와 안보를 별개의 영역으로 나눠 생각하기 어렵다. 반도체와 배터리, 인공지능, 희토류, 공급망은 모두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특히 미국은 첨단 반도체에 이어 최첨단 AI 모델 접근까지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중국 역시 오픈소스 전략을 앞세워 자국 AI 생태계 확대에 나서고 있다. 기술 플랫폼과 데이터, AI 모델 자체가 국가 전략자산으로 취급되는 시대다. 경제와 안보, 기술과 외교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는 셈이다.중국은 여전히 중요한 시장이지만 동시에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친중도 반중도 아니다. 미국과의 동맹을 외교의 중심축으로 유지하면서 중국과는 협력할 분야와 경계할 분야를 명확히 구분하는 전략적 현실주의가 요구된다. 협력은 실용적으로 추진하고, 국익을 침해하는 행위에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현장 경찰관을 중국 공안으로 의심하는 사회는 중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반대로 중국의 선의만 기대하는 사회 역시 현실을 직시할 수 없다. 국가 전략은 혐오도 환상도 아닌 냉정한 현실 인식 위에서만 가능하다. 중국을 둘러싼 두 개의 착시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우리는 중국의 위협은 물론 기회까지 정확히 읽을 수 있다. 그것이 미·중 경쟁 시대에 한국이 가져야 할 현실주의의 출발점이다.
[시대광장/정용관]청년은 진보나 보수의 예비군이 아니다
처음에는 낯설었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부정선거론의 연장선쯤으로 여겼다. 그러다 수만 명의 2030 청년들이 모여 "재선거"를 외치는 모습을 보며 의아해졌다. "저건 도대체 뭘까." 이들 세대를 자주 접하는 한 중견 정치학자에게 물었더니 뜻밖에도 이런 답이 돌아왔다."제가 꼰대 같지만 철딱서니 없는 주장입니다."선관위의 투표용지 관리 실패는 경악할 일이지만, 선거 자체를 무효로 하고 다시 치르자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자칫 부정선거론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서울시장 재선거 요구는 법적으로 현실성이 희박하고 정치적으로도 설득력이 약하다. 그와 별개로 이번 현상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기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꽤 이례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대부분의 선거 논란은 승패에서 출발한다. 이긴 쪽은 결과를 수용하고 진 쪽은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집회에 나온 상당수는 오세훈 후보를 지지했던 청년들이라고 한다. 오 후보는 6만 표 차의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누가 이겼는가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가를 물었다. 승패보다 절차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우리는 극우도, 뉴라이트도 아니다. 그저 나의 권리(My Right)를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동행미디어 시대>가 현장에서 만난 청년들의 말이다. 참정권과 기본권 훼손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2030세대의 정치 감각인지도 모른다. 불안한 경쟁 속에서 성장한 이들은 절차와 공정에 유독 민감하다. 입시와 취업, 병역과 부동산, 주식과 가상자산 시장을 거치며 규칙 하나가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득했다. 공정한 룰과 개인의 기본권 보장은 교과서 속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삶의 조건이다.기성 정치권은 오랫동안 청년을 진보와 보수의 예비군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이들은 기존 정치의 문법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세대다. 특정 진영에 대한 소속감이나 충성심보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 조직도 없고 지도부도 없다. 주로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소통하고 연대한다. 중구난방처럼 보일 수도 있고, 종합적 사고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 밑바닥에 하나의 감각이 흐른다는 점이다. "이건 아니잖아."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청년들이 거리로 나오자 정치권도 바빠졌다. 청년들의 문제 제기가 채 정리되기도 전에 각자의 해석과 주장들이 쏟아졌다. 선관위의 관리 부실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어느새 전국 재선거론으로 번졌고, 청년들의 분노는 특정 정치세력의 주장과 뒤섞이기 시작했다.물론 일부 청년들도 재선거를 강하게 요구한다. 하지만 그들의 구호가 곧바로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선관위의 책임은 무겁다. 책임자 문책과 조직 혁신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것과 선거 결과를 무효로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민주주의는 완벽해서 유지되는 제도가 아니다. 실수와 결함이 있더라도 그것이 선거 결과를 본질적으로 왜곡하지 않았다면 결과를 존중하는 원칙 위에서 굴러간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선거는 끝없는 불복의 유혹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청년들의 문제 제기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선관위 사태가 이 정도까지 드러난 것도 결국 2030의 '주권 의식'과 '순수한 분노'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분노의 에너지가 정략적으로 왜곡되고 소비되는 것이다. 전국 재선거라는 억지 주장이 나오고, "오세훈 물러나라는 것이냐"고 반박하고, 그런 야권의 내분을 여권은 내심 즐기는 블랙 코미디 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잠실에 모인 2030 청년들은 정치적 신념보다 삶의 불안이 더 큰 세대인지도 모른다. 코스피 상승장의 낙오자일 수도 있고, '거지맵'을 켜고 가성비 식당을 찾아다니는 청년일 수도 있다. 미래는 불안한데 자신을 대변해 줄 정당도, 믿고 의지할 기성세력도 찾지 못한 채 떠도는 '부유(浮遊) 세대'일 수도 있다.그래서 이들을 함부로 진보나 보수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오늘의 보수가 내일의 진보가 될 수 있고, 오늘의 진보가 내일의 보수가 될 수도 있다. 청년들의 분노, "이건 아니잖아"라는 외침은 아직 방향을 찾지 못한 에너지다. 잠실의 함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잦아들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잠재적 에너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 스스로 그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정치적·사회적 공간을 열어주는 것, 냉소와 환멸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기성 세대와 정치권의 책임이다.그들의 분노는 숭고했지만 재선거 주장은 미숙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분노 위에 서둘러 정치적 깃발을 꽂고 먹잇감 삼으려는 일부 퇴행적 정치세력의 행태는 그보다 훨씬 낯뜨겁다. 궁색하고도 초라하다. 돌아보니 정작 철딱서니 없어 보였던 것은 순수하지만 서툰 분노에 편승할 궁리만 한 그들의 낡은 습성이다.
[시대광장/채인택]중국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인가
우리에게 중국은 어떤 존재인가? 1992년 수교 이후 지금까지 중국은 활발한 경제교류로 동북아 번영 시대를 함께 이끄는 동반자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연이어 들려온 중국 시진핑(習近平)과 각국 지도자와의 정상회담 소식은 이러한 중국의 의미가 바뀌는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1월 5일 이재명 대통령을, 5월 12~1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같은 달 19~2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베이징에서 각각 만난 시 주석이 이번엔 8~9일 평양으로 향했다. 2019년 6월 이후 약 7년 만에 방북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는 지난해 9월 베이징 전승절 행사 이후 9개월 만의 만남이다. 중국 CCTV에 따르면 8일 김 위원장은 부부가 함께 공항에 달려 나가 영접했을 정도로 시 주석을 열렬하게 환영했다. 잠시 시곗바늘을 지난 1월 5일로 돌려보자. 그날 이 대통령은 베이징에서 시 주석을 만나 한반도 평화 정착과 북한 비핵화를 위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당부했다. 시 주석은 평화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대답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선 시 주석이 북한을 설득해 남·북, 북·미 회담을 주선하고 비핵화를 압박할 것이란 기대가 일부 있었다. 그런데 시 주석은 방북일인 8일자 노동신문 기고문에서 이런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 '각자 국정에 맞는 사회주의 노선을 걸어가도록 서로 지지한다'이라는 대목은 누가 봐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노선과 세습체제를 대놓고 인정하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기고문은 한술 더 떠 '패권주의·강권 정치 반대''군국주의 부활 반대' '운명공동체' 등 전에 볼 수 없던 표현으로 북·중 전략연대로 미국·일본과 대립각을 세우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여기에 '중조친선협조관계 설계' '중조관계발전의 설계도'란 말을 넣어 양측이 모종의 프로젝트를 합의했음을 시사했다. 중국이 동해에 접한 북한의 라선특별시나 함경북도의 특정 항구를 개발해 북극항로 개척에 이용하는 '빙상 실크로드(Polar Silk Road)'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빙상 실크로드 협조와 북한 핵·미사일·세습체제를 인정을 서로 맞바꾸는 거래일 수도 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기고문에서 '비핵화'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북한 김여정 당 총무부장이 6일 담화에서 지난달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방침에 동의했다는 백악관 발표를 '날조'라고 비난하고 "우리의 핵보유국 지위는 절대불퇴의 한계선이며 누가 인정하든 말든 엄연한 현실"이라고 주장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남북과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하던 중국이 이제 완전히 북한 손을 들어준 것일까. 주목할 점은 1961년 7월 베이징에서 북한 김일성 위원장과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우호협력상호조약'을 체결한 지 올해로 65주년을 맞았다는 점이다. 제2조에 '일방이 무력 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자동참전 조항이 담겼다. 시한이 없는 대신 양국 지도자가 수시로 언급해 작동을 확인해왔다. 이번 기고문은 '시대가 어떻게 바뀌고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해도 전통적인 중조친선은 언제나 불패'라는 문장으로 조약의 건재함을 재확인했다. 지금까지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왔던 우리가 이제 북핵과 미사일의 후견자가 된 중국과도 상대해야 하는 시대를 맞은 셈이다. 눈 앞에 펼쳐진 냉혹한 전략적·군사적 현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중국은 오랫동안 한국을 상대로 '디지털 중국몽'에 해당하는 영향력 공작까지 펼쳐왔다. 정보 당국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의 군대인 인민해방군은 이미 2003년부터 인터넷을 통해 여론전·심리전·법률전의 '삼대전쟁(三戰)'을 펼쳐왔다. 외국 국민이 중국을 '곧 미국을 대신할 긍정적인 패권세력'으로 믿도록 여론몰이하고 심리적으로 조종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국가 차원의 공작이다. '중국이 곧 세계의 패권국가가 될 것이라니 알아서 지금부터 말을 잘 들어라'라고 가스라이팅 하는 것이다. 증거 확보도, 기소도 쉽지 않은 은밀한 공작이다. 가까운 한국·대만·일본이 삼대전쟁의 가장 적극적인 대상일 수밖에 없다. 선거로 정권을 수시로 바꾸는 민주 체제라는 점에서 더욱더 눈엣가시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미디어와 SNS의 인플루언서·허위계정 등을 이용해 여론과 행동을 조작한다. 해킹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알고리즘을 이용해 개인·집단의 생각과 행동을 조종하기도 한다. 미국 정보당국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엔 인공지능(AI)을 통한 빅테이터 분석과 소셜미디어 플랫폼 활용으로 대중의 사회적 행동 조종을 시도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방해한다며 우리 군과 주한미군의 훈련 축소를 유도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대만 공격 압박과 공포심 조장도 그중 하나다. 9월 24일로 예정된 시 주석의 방미에서 이를 협상카드로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믿을 수 있는 건 미국의 대중 경계의식이다. 지난 5월 방중을 마치고 베이징을 떠나기 직전 대통령 전용기 탑승자들이 중국에서 사용했던 모든 디지털·마그네틱 도구를 폐기했을 정도다. 여론과 정책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중국의 영향력 공작에 이러한 의식은 그야말로 '아이언 돔' 역할을 한다. 미국이 과거 나치와 대결할 때 만든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을 바탕으로 외국 정부나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스트나 대리인의 활동과 자금 출처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도 긍정적이다. 최근 캘리포니아의 소도시 아카디아의 에일린 왕 시장이 중국 정부의 스파이(미등록 외국 대리인) 활동 혐의로 기소돼 경종을 울렸다. 그런 점에서 외국대리인등록법이 21대 국회에 상정됐지만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가, 22대에 다시 상정된 뒤에도 장기 대기 중인 한국이 더욱 걱정된다. 우리에게 중국의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때다.
[시대광장/김준술]최태원 회장이 던진 '모래밭' 화두
중국 북서부 고비의 모래사막은 버려진 땅이었다. 지금은 1만2000개의 태양열 반사판이 일제히 중앙탑으로 열을 보내 엄청난 전력을 생산한다. 황무지 서부의 전력은 동쪽의 산업 지역에 보낸다. 이른바 '서전동송'(西電東送) 정책이다. 인공지능(AI)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전력 싸움에서 중국은 이미 미국을 앞서간다. '저공(低空) 경제'는 또 어떤가. 중국은 지상에서 1km 이내 공간을 저공 영역으로 정해 전략 사업으로 밀고 있다. AI로 드론을 날리는 것을 넘어 물류와 농업·소방 같은 산업과의 융합을 꿈꾼다. 하늘을 규제 없이 활용할 수 있는 '실증 공간'으로 허용하면서 가능한 일이었다.두 장면은 최근 화제였던 KBS 다큐멘터리 '인재 전쟁 2'에 소개된 내용이다. 곱씹어보면 공통으로 담긴 코드가 있다. 바로 '마음껏 실험하고, 시도하라'는 교훈이다. 이것이 전제돼야 비로소 AI 패권 전쟁에서 '속도'를 담보할 수 있다. 속도는 왜 중요한가. 선점과 선두는 곧 승률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중국 엔지니어들은 먼저 행하고 먼저 시험하는 '선행선시'(先行先試) 문화를 자랑한다. 거침없는 진격의 관행은 절로 생기지 않았다. '규제 같은 건 생각 말라'는 중국 정부가 뒤에 있었다.주눅 드는 중국 사례를 놓고서 "남보다 느려지면 잡아 먹힌다"는 경고가 곧장 나왔다. 발언자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자 SK그룹 회장이었다. 최 회장은 방송에 연사로 등판해 AI 시대의 절박하고도 시급한 화두를 여럿 던졌다. 강연 도중에 개인적으로 '이거다' 싶은 순간이 있었다. 바로 'AI 시티'를 제안한 대목이었다. AI 기술과 제도를 실험할 수 있는 특정한 도시 공간을 말한다. 최 회장은 "완벽한 제도를 기다리다 글로벌 속도전에서 도태된다"면서 조속히 AI 시티를 구축하자고 제언했다. 먼저 공청회를 하고, 법과 제도를 만든 뒤, 감독 기관을 두는 방식. 이런 20세기의 틀로는 이제 먹히지 않는다는 호소다.AI 시티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찾아보니 지난해 9월 태스크포스 팀을 꾸렸고, 여러 회의 끝에 6월에 강원권과 충청권에서 AI 시범 도시를 정한다. 교통·에너지·로봇에 AI를 접목하고, 민간 기업도 들어와 시험할 수 있도록 규제도 손질한다. 현재 국정과제 '31번'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광주광역시에선 도시 전체를 자율주행차 200대가 시험 주행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그러나 시간은 빠듯하다. 자율주행 실증 사업만 해도 "미국과 중국의 실력이 성인이면 우리는 초등학생 수준'이라는 게 국토부의 절박한 평가다. 비단 이동 수단뿐 아니다. AI 시티에선 에너지, 의료, 재난방지, 교육처럼 도전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여기서 성공하면 새로운 이윤 산업으로 키울 수 있다. 마침 청와대에 'AI 미래기획수석' 자리가 있다. 공석인 수석 자리에 누가 들어가든 국정 과제 순번도 당기고, 더욱 다양한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조율해 더 빠르고 과감하게 지원하면 좋겠다. 새만금에선 현대차가 큰돈을 투입해 로봇택시 실증 사업을 추진한다는데 민간이 참여할 유인도 더 많아져야 한다.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AI 시티의 '본질'이다. 많은 정부 프로젝트가 그랬듯 '보여주기'로 흘러선 안 된다. AI 서비스가 멋지게 구현된 물리적 도시를 완성하는 일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최 회장은 결과물로서 도시 자체보다는 사전적인 '규제 프리(Free)'에 더욱 방점을 찍고 있다. 그는 이른바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하자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모래밭에서 마음껏 뛰어놀 듯, AI 기술과 서비스를 제약 없이 펼칠 경연장이 절실하다는 취지다. 다소 파격적으로 "스타트업 종사자, 전문가들을 보내 아예 자치를 해보라고 하면 좋겠다"고 제안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보인다.누군가는 AI 시티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부작용이나 안전사고를 우려할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미리 경험해 봐야 문제를 빨리 수정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중국보다 늦었다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할 일은 아니다. 한국은 디지털 수용도가 높아 AI 시티를 다루기에 좋은 환경이다.지금은 제도를 만든 뒤 실험하는 게 아니라, 먼저 실험한 뒤 제도를 만드는 시대가 됐다. 중국은 이미 거대한 실험실을 만들었다. 우리는 아직 '실험 계획서'를 쓰고 있다. 마음껏 실력을 시험하고, 실패해도 되는 '모래밭'이 절실하다. 지금 뜨거운 화두 중 하나가 'AI 반도체 이윤'을 둘러싼 분배 논쟁이다. 잊지 말아야 할 질문이 있다. 10년 뒤에도 또 다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나올 수 있는가. 모두가 더 오래, 더 많이 나누기를 바란다면 답은 분명하다. 혁신의 모래밭부터 넓혀야 한다.
[시대광장/이상언]볼보는 왜 중국에? '연대임금'의 비극적 결말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표면적 이유는 미국에서의 볼보 자동차 판매량이 1975년 6만338대에서 지난해 4만3887대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판매 감소는 국제 경쟁력 하락이라는 고질적 문제의 한 증상일 뿐이다. (중략) 더 큰 문제는 결근율이다. 볼보의 예테보리 본사 옆에 있는 토르스란다 조립 공장의 결근율은 20%에 달한다. 일부 근로자들은 1년에 평균 65일 결근하기도 한다.' 1977년 2월 21일자 타임지 기사 '스웨덴: 일하지 않아도 주는 급여(Sweden: Pay for no work)'의 일부다. ━이직률 50%까지, 무슨 일이?━ '1980년대 초 볼보 생산 현장은 조용하지만 파괴적 반란에 직면해 있었다. 주력인 토르스란다 공장의 일일 결근율은 최고 20%에 육박했고, 연간 직원 이직률은 40% 가까이로 치솟았다. 볼보가 라인을 계속 가동하기 위해서는 매년 수천 명의 신입 사원을 고용하고 교육해야 했음을 의미했다.' 1987년 뉴욕타임스 기사('Making cars the Volvo way')의 한 대목이다.볼보 자동차 공장 이직률이 50%에 달했다는 기록(스웨덴 왕립공대 논문)도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자동차 공장 일은 힘들고 지루하다. 포드가 컨베이어벨트 공정을 도입한 뒤 그게 국제 표준이 됐다. 고된 노동을 버티게 하는 힘은 급여다. 그런데 볼보 자동차 직원 급여는 중소 제조업체 직원이 받는 보수와 다르지 않았다. 볼보 경영진이 월급을 올려주고 싶어도 올려줄 수 없었다. '사회연대임금'이라는 제도에 금액이 묶였기 때문이었다.스웨덴도 제조업 붐이었던 20세기 초중반에 극심한 노사 갈등을 겪었다. 1931년 펄프 공장 파업 투쟁에서 군의 발포로 5명이 숨진 비극도 있었다. 파업, 임금 상승, 물가 인상이 꼬리를 물었다. 1952년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졌다. 노총(LO) 소속 경제학자 두 명의 이름을 딴 '렌-메이드네르' 협약이 체결됐다. 노동을 수백 개 직무로 나누고 각 직무에 따라 보수를 책정했다. 예컨대, 용접공 임금은 자동차 대기업에 다니나 중소 부품 회사에 다니나 차이가 없게 됐다. 이른바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다. 집권 사회민주당은 이 제도에 '사회연대임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수 기술자들 바다 건너 서독으로━ 중소기업에선 임금이 올랐고, 대기업에선 임금이 깎였다. 어느 곳에선 인건비 비중이 줄었고, 다른 곳에선 부담이 치솟았다. 인건비 감당이 어려워진 한계 기업들이 연쇄 도산했다. 기술 경쟁력 있는 대기업엔 이득이 쌓였다. 수익성 떨어지는 기업에서 돈 잘 버는 기업 쪽으로 인력이 대거 이동했다. 자연스럽게 산업 개편이 이뤄졌다. 섬유 등의 경공업 비중이 줄고 기계·부품 등의 중공업에 무게가 실렸다. 정부가 사회연대임금 도입 때 의도했던 산업 고도화 구조조정이었다. 1970년대 초까지 볼보는 이 제도의 수혜자였다. 노동력을 저렴하게 쓸 수 있었다. 회사에 이익이 누적됐다. 그 돈으로 연구·개발을 열심히 했다. 3점식 안전벨트, '세이프티 케이지' 설계 등이 결과물이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차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 성장은 거기까지였다. '튼튼하기는 한데 잔 고장이 많은 차'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높은 이직률에 숙련공 부족이 고착화됐다. 보수에 불만을 품은 기술자들은 대거 독일로 갔다. 발트해만 건너면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던 서독이었다. 볼보는 전자 제어장치 활용 등의 새 트렌드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독일과 일본의 자동차가 시장의 강자로 급부상했다. 서독 정부는 이주 노동자에게 세제 혜택까지 줬다. ━43년 전 스웨덴이 버린 사회연대임금━ 볼보는 직원 이탈을 줄이기 위해 컨베이어벨트를 없애고 팀 제작 방식(8∼10명이 한 조로 차량을 제작)을 도입했지만 시장 경쟁에서 계속 뒤쳐졌다. 1983년 볼보는 사회연대임금 제도 탈퇴를 선언하고 급여 인상을 단행했다. 볼보에 이어 다른 기업들도 탈퇴 행렬에 들어섰다. 이로써 30여 년의 사회연대임금 역사가 끝났다. 그리하여 볼보는 다시 경쟁력을 되찾았을까? 그런 해피엔딩은 오지 않았다. 1980년대 말 트럭과 특수차량 부문을 제외한 일반 자동차 부문을 미국 포드에 매각했다. 그리고 2010년 포드는 볼보 자동차를 중국 지리(Geely) 자동차에 팔았다. 스웨덴의 다른 자동차 회사 사브(Saab)도 볼보와 비슷한 운명을 겪다가 미국 제너럴모터스(GE)에 인수됐고, 2016년에 회사가 아예 사라졌다. 독일 포르쉐의 터보엔진 기술은 독일로 간 사브 엔지니어에 의해 완성됐다. 중국에서 생산된 볼보 차에는 '메이드 인 스웨덴' 대신 '메이드 바이 스웨덴'이라는 문구가 달렸는데, 2023년 한국 세관당국은 소비자 혼동을 유발한다며 삭제를 요구했다. 오늘날 스웨덴엔 사회연대임금과 같은 평등주의적 정책의 흔적이 남아있을까?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를 소개한다. '스웨덴의 총 공공사회지출액은 국내총생산(GDP)의 24%로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중략) 스웨덴은 이제 인구 대비 억만장자 수에서 미국을 앞질렀다. 테크 스타트업 생태계와 게임 산업 덕분이다.' 지난달 말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사회연대임금' 도입을 위한 토론회을 제안하며 스웨덴을 언급했다. 스웨덴 사람들이 놀랄 일이다.
[시대광장/박창억]화려한 지표의 어두운 그늘
이재명 정부가 곧 취임 1년을 맞는다. 이즈음 외견상 지표는 기대 이상이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안정적으로 60%대 중반을 유지하고 있다. 취임 1년 무렵 지지율로는 문재인 전 대통령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주가는 1년 새 3배 가까이 뛰어올라 코스피는 8000을 돌파했다. 경제적 역동성에 대한 장밋빛 전망도 줄을 잇는다. 겉만 보면 바야흐로 새로운 도약의 초입에 선 듯하다. 그러나 이 화려한 지표의 이면에 드리운 그늘을 균형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증시 호황과 경기 회복세는 반도체와 AI 등 글로벌 첨단 산업의 초호황에 크게 기대고 있다. 이로 인한 K자형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일부 산업·지역·계층에 혜택이 편중되고 나머지는 정체·후퇴하는 양상이다. 성과급 사태가 보여주듯 노동시장 이중구조도 악화일로다. 정부의 공급 확대 약속에도 불구하고 서울·수도권의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불안정하며, 가파른 전월세 가격 상승은 서민 경제의 짐이 되고 있다. 음영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정치다. 원내 절대 다수를 차지한 거대 여당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치보다는 신속한 입법 추진을 앞세운다. 야당을 대화 파트너로 보는 게 아니라 국정 발목을 잡는 걸림돌로 보는 인식이 배경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법 왜곡죄 도입과 재판소원제 등 거침없는 입법 드라이브는 개혁이라는 명분을 넘어 사법체계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더불어민주당은 후유증을 지적하는 목소리에도 귀를 닫고 있다. 더구나 집권 세력은 높은 지지율에 취한 듯 대선 직전과 임기 초의 긴장감이 사라진 모습이다. 이 대통령도 자신감이 넘쳐 보이고, 발언과 행동에 거침이 없다. 공개석상에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체포영장을 언급하며 "우리도 검토해 보자"고 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외교적 후과가 우려되는 언사였다.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을 빚은 스타벅스 코리아를 겨냥한 전방위적 압박 역시 과유불급이다. 기업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과 국가 권력이 전면에 나서 한 기업을 옥죄는 것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독일의 심리학자 카르스텐 C. 셰르물리는 저서 '권력 중독'에서 "권력은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감정의 결까지 아예 사람을 바꾼다"고 경고했다. 권력을 쥐는 순간 대량의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고 강한 쾌감이 형성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다. 지금 여당이 거침없는 이유는 이들을 견제할 강력한 야당과 시민사회의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부 견제가 실종된 권력은 안에서부터 곪기 마련이다. 집권 2년차가 되면 5년 임기의 한국 대통령들이 예외없이 징크스를 겪어온 것도 이같은 권력의 속성과 무관치 않다. 정권을 처음 잡았을 때의 긴장감은 풀어지고 이때쯤이면 권력 운용에 자신감이 붙으며 속도를 붙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과속에 따른 혼선과 권력 남용 등 부작용이 불거지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국민도 2년차부터는 새 정부에 대한 너그러움을 접고 구체적인 실적과 안정감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임박한 6·3 지방선거는 민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중대 가늠자가 될 것이다. 당초 일방적이라고 예상됐던 선거 판세에는 변화 조짐이 감지된다. 초반 흐름과 달리 영남·서울을 중심으로 보수표 결집으로 해석되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른다. 그 촉발제는 여권의 공소취소 특검법안 추진이었다는 데 별 이견이 없다. 지난 1년간 거대 여당이 추진해 온 일련의 사법 개혁과 공소취소 특검법안 등에 대한 민심의 견제 심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일방통행식 정국 운영에 대한 경고등일 수 있다. 수시로 이 정부에게 직언을 해 온 이석연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장은 최근 "시국과 상황을 보는 정권의 눈과 국민의 눈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는 "지금 상황이 태평성대 같지만, 이는 곧 역사가 증명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겉으로는 태평성대처럼 보일지라도 민심의 저류는 다를 수 있다. 권력이 겸손하고 자중자애하지 않는다면 민심의 역풍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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