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D-50, '지역' 없는 지방선거…유권자는 어디에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교육감을 선출하는 6·3 전국동시지방선거가 50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라는 점에서 중간평가의 성격을 지닌다. 동시에 민선 지방자치 30년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되짚어볼 분기점이기도 하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도 결국 지방 정치의 역량에 달려 있다. 그만큼 중요한 선거다. 하지만 선거가 임박할수록 중앙 정치의 갈등과 잡음만 선거판을 뒤덮고 있다. 게다가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선까지 '미니 총선' 급으로 판이 커지면서 '지역'은 실종되고 정치 공학과 구도만 부각되는 상황이다. 벌써부터 이슈 경쟁도, 정책도 없는 선거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면 국민의힘은 선거를 제대로 치를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계엄과 탄핵 사태 이후 이번 선거를 당 재정비의 계기로 삼을 수 있었지만, 자중지란 속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일부 후보들이 당의 상징색인 빨강을 전면에 내세우지 못할 정도다. 이런 위기 국면에서 선거를 지휘해야 할 장동혁 당대표는 미국 출장으로 일주일간 자리를 비웠다. 공천관리위원장마저 중도 사퇴한 가운데 광역단체장 후보를 제때 확정하지 못하고, 일부 기초단체에서는 후보조차 찾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구시장 공천 역시 내부 갈등에 휩싸여 표류하고 있다. 정당 지지율이 크게 앞서가는 민주당도 내부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계파색이 옅은 현직 도지사가 대리기사비 지급 문제로 즉각 제명된 사례까지 나오면서 공정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식사비 대납 의혹을 받는 후보가 공천되는가 하면, 경선 결과에 불복해 단식 농성까지 벌어지는 상황이다. 여기에 대통령 사진 활용을 둘러싼 당내 논란, 일부 예비후보의 부적절한 언행 역시 압도적 판세 속에서 긴장감이 느슨해진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을 받던 인사가 후보로 확정된 직후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것도 정치 공방의 소재가 되고 있다. 이처럼 여야 모두 정책 경쟁보다 당내 갈등과 진영 구도만 전면에 부각되는 양상이다. 중앙 정치만 보이는 구조에선 지역 의제가 설 자리가 없다.하지만 이제라도 선거의 본령을 되살려야 할 때다. 앞으로 진행될 후보자 토론회는 중앙 정치 공방을 되풀이하는 자리가 아니라, 지역의 교통·주거·산업·복지·교육 문제를 놓고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검증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정당 역시 추상적인 구호를 넘어 지역별 공약을 보다 투명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후보들도 중앙당의 메시지를 대리 전달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스스로 지역 비전을 설계하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지방선거는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찬반을 묻는 자리가 아니다. 지역의 미래를 설계할 일꾼을 뽑는 과정이다. 유권자가 정치적 선호에만 의존하기보다, 각 후보가 제시하는 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지역 발전 전략을 꼼꼼히 따져볼 때 선거는 비로소 제 역할을 한다. 남은 50일 동안이라도 정책과 비전이 중심이 되는 선거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결국 유권자와 지역 사회의 몫이 된다.
[사설]이란의 봉쇄, 미국의 역봉쇄… 새우등 터지는 '항행의 자유'
전 세계 원유의 약 20%, 한국 원유 수입의 약 7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에 의해 봉쇄되다가 이번에는 미국에 의해 역으로 봉쇄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은 이란과의 종전 협상이 결렬되자 한국시간 13일 오후 11시를 기해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과 오만해협을 통해 이란 항구로 출입하는 모든 해상교통을 봉쇄했다. 이란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 원유 등을 외부로 운송하는 모든 선박 운항을 막겠다는 의미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호르무즈 해협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해 온 이란의 전략을 흔들고 '돈줄'을 차단함으로써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란 원유의 80~90%를 수입하는 중국을 노린 측면도 있다. 관건은 미국의 역봉쇄로 이란의 봉쇄를 실제로 풀어낼 수 있느냐다. 자칫 호르무즈 봉쇄 장기화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 불안만 더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 등 애초 전쟁과 무관한 국가들만 새우등 터질 지경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전략비축유 추가 방출, LNG의 비중동권 현물시장 긴급 조달, 에너지 수입선의 장기적인 다변화 등 중단기 대책을 다양하게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다시한번 상기할 점은 호르무즈 해협이 유엔해양법협약에서 명시한 '항행의 자유' 원칙에 따라 모든 국가의 선박과 항공기가 타국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항행할 수 있는 공해라는 사실이다. 항행의 자유는 국제 해상물류와 안보의 핵심 원칙이다. 항행의 자유 침해는 글로벌 공급망과 한국 경제를 저해하는 요소다. 그런 만큼 우리 정부도 더이상 수동적인 자세로 관망하는 듯한 태도를 보일 게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의 조속한 통항 재개를 위해 국제 사회에서 좀더 분명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국제법적 권리인 '항행의 자유'를 바탕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통항 문제에서 한국이 맡을 구체적인 역할도 고민할 때가 됐다. 민간선박 항해를 가로막는 기뢰를 탐색·제거하는 소해함이나 소해 헬기의 호르무즈 또는 인근 해역 파견, 해협을 빠져나오는 우리 선박에 대한 호위 임무 등 우리 역량에 걸맞은 비전투 역할도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외교적 부담이 큰 사안이지만 걸프협력이사회(GCC) 회원국인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한국의 주요 에너지 공급국과의 미래 전략 협력을 고려하면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이러한 적극적 역할을 통해 호르무즈 봉쇄 해결 과정에서 존재감을 확보하고 목소리를 내는 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전쟁을 시작한 주체가 문제를 해결하기만을 기다리기에는 여기에 걸린 한국의 국가적 이익이 너무도 크다. 국익은 기다린다고 지켜지지 않는다.
[사설]'사법 3법' 한 달, 재판소원은 모두 각하인데 법왜곡죄는…
정치적 논란 끝에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도입된 이른바 '사법개혁 3법'이 시행 한 달을 맞았다. 시점이 유예된 대법관 증원은 논외로 하더라도, 바로 시행된 재판소원과 법왜곡죄의 경우 한달 간의 운영 결과를 냉정히 점검하고 보완할 것은 서둘러 바로잡아야 할 시점이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지난 8일까지 접수된 재판소원은 총 358건으로, 하루 평균 12건을 웃돈다. 헌재는 이 중 194건을 심사해 모두 각하했다. "단순한 재판 불복은 청구 사유가 아니다"라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결과다. 이재명 대통령의 '조폭 연루설'을 주장한 장영하 변호사, 유튜버 쯔양을 협박한 유튜버 '구제역'이 낸 재판소원 등이 대표적이다. 재판소원은 도입 전부터 '사실상의 4심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온 만큼 헌재가 초기에 문턱을 높이 세운 것은 다행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앞으로 판단할 사건에서도 이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 재판소원은 헌법상 기본권 침해를 다투는 예외적 절차여야지 패소한 당사자가 판결을 거듭 다투는 통로여서는 안 된다. 특히 정치권의 압박이나 여론에 따라 판단 기준이 흔들리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 한다. 헌재와 대법원이 판결 해석을 놓고 불필요한 신경전을 벌이거나, 기관 간 힘겨루기에 나서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전에 여러 채널을 통해 협의하고 소통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법왜곡죄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지금까지 경찰에 피소·피고발된 인원은 91명으로 법관 26명, 검사 36명 등이다. 사법부 수장인 조희대 대법원장, 윤석열 전 대통령의 1심 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 윤 전 대통령을 수사한 오동운 공수처장과 조은석 특별검사 등이다. 명단만 보더라도 정치적 의도가 다분해 보이는 법적 대응이다. 법왜곡죄는 판·검사 등이 '의도적으로' 법을 왜곡했을 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의도에 대한 판단 기준은 지극히 모호하다. 기준이 불분명하니 고발이 남발되고, 사법 현장에선 위축 효과가 나타난다. 대법원이 "판사들의 형사재판부 기피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사기관이 선별적 수사에 나설 경우 정치적 논란이 커질 수도 있다. 여기에 수사관할을 둘러싼 혼선도 여전한 상황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경우 경찰과 공수처에 동시에 고발장이 제출되기도 했다. 법이 시행됐다고 해서 마침표를 찍는 게 아니다. 헌재는 절제된 운영으로 재판소원의 오남용을 막는 선례를 쌓아야 하고, 국회는 법왜곡죄 구성요건을 구체화하거나 근본적인 재검토에 착수해야 한다. 소송 남용을 막기 위해 법왜곡죄 고소·고발을 당사자 고소로만 한정하는 등의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사설] '전쟁 추경'인지 '정치 추경'인지
호르무즈해협발 유가 급등으로 국민 불안이 커지고, 그 충격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여야 의원들이 '전쟁 대응 추가경정예산안'을 심사하면서 전쟁 대응과의 직접적 연관성이 부족한 예산을 경쟁적으로 끼워 넣으며 대규모 증액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가 제출한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은 상임위 예비 심사를 거치며 최대 31조4000억원 수준으로 불어났다.실제로 일부 상임위에서는 '프로스포츠 관람권 지원 사업' 200억원, '국제 K-뷰티 아카데미 교육 설비 구축' 30억원, '대구권 광역철도 예비차량 구매 지원' 140억원 등 시급성과 목적 적합성이 떨어지는 사업들이 포함됐다. 위기 대응과의 관련성을 찾기 어려운 사업들이다. 빈집 리모델링(8억원)이나 지하철 연장 기본계획 수립 용역(7억원) 역시 긴급 재정 투입의 취지와는 동떨어진 사업들이다. 상식과 도를 넘은 '쪽지 예산' 남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추경은 본예산과 달리 예외적으로 편성되는 재정 수단이다. 국가재정법은 전쟁, 재해, 경기 급변 등 중대한 상황에서만 이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만큼 편성과 운영에는 요건의 엄격성, 건전 재정의 원칙, 긴급성과 효과성이 요구된다. 정부가 애초 편성했던 예산안에도 일부 '정치성 예산'이 포함돼 논란이 됐는데, 국회 심사 과정에서는 이를 철저히 따지기는커녕 민원성 사업이나 선심성 예산 반영에 몰두하는 모습이다.이처럼 추경이 정치적 이해와 결합될 경우 재정 운용의 원칙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미 국가채무가 1300조원을 넘어선 상황이다. 10일 본회의 처리를 앞둔 국회는 추경의 취지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전쟁 대응 추경이라면 유가 관리와 취약계층 보호에 재원을 집중하는 것이 우선이다.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사업은 원칙대로 걸러내야 한다. 그게 재정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또한 무겁다는 점을 국회는 직시해야 한다.
[사설]美·이란 2주 '합의 휴전'…호르무즈는 열리지만
미국과 이란이 2주간 전쟁을 멈추기로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최후통첩 시한 만료를 불과 90분을 남기고서다. 극적인 휴전 소식에 국제유가는 급락했고, 봉쇄됐던 호르무즈 해협도 다시 열릴 전망이다. 양국은 오는 10일 중재국 파키스탄에서 종전안을 놓고 대면 협상에 나선다.파국을 피한 건 다행이지만 안도하기에는 이르다. 전장의 총성이 잦아든 지금부터가 오히려 더 치열한 '외교의 시간'이다. 당장 시급한 현안은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통항이다. 교전 여파로 이곳에 발이 묶인 우리 선박만 26척이다. 미국은 휴전을 발표하며 "즉각적이고 안전한 호르무즈 개방"을 강조했지만, 이란 정부는 '이란군과의 조율'을 단서로 달았다. 정부는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한국 선박의 무사 통과를 최우선적으로 관철해야 한다. 우려스러운 점은 독소 조항이 종전안에 포함되는 시나리오다. 외신에 따르면 이번 휴전안에는 이란과 오만이 해협 통과 선박에 통행료를 징수하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한다. 이 내용이 종전안에도 들어간다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국제해협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통행료를 부과하는 조치는 '항행의 자유' 원칙과 충돌할 소지가 크다. 미국이 동맹국들에게조차 "알아서 하라"는 식의 입장을 내비치는 상황에서, 정부는 이미 연대를 형성한 40여 개국과의 국제 공조를 더 강화해야 한다. 이번 중동 전쟁은 한국 경제가 에너지 수입 구조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냈다. 해협이 열렸다는 사실에 안주한다면 똑같은 위기는 반복될 수 있다.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신속하게 다른 수입원으로 갈아탈 수 있는 복원력을 키워야 한다. 지정학적 위험 요인이 상시화된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조달처를 확보하는 게 핵심 전략이 돼야 한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화석연료를 아우르는 최적의 에너지 믹스를 설계하는 일도 서둘러야 한다. 휴전 기간은 숨을 고르는 시간이 아니라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야 할 '골든 타임'이다.미·이란 협상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선 전쟁 후를 내다보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한국이 이번 전쟁에서 충분한 기여를 하지 않았다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왔다. 여기에 중동 전개를 계기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미국의 통상 압력도 현재 진행형이다. 종전 후에는 대미투자, 주한미군 운용, 관세 및 통상, 중국 견제 동참 등 미국발 복합 청구서가 날아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동맹과 국익을 다 지켜내는 정교한 외교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그 점에서 우리 상황과 유사한 점이 많은 일본과의 공조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공동 대응은 대미 협상력과 국제사회 발언권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이번 휴전은 한국 외교의 역량을 시험하는 시간이다. '호르무즈 이후'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이번 위기는 위기로 끝날 수도,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익 극대화라는 단일 대오로 이 엄중한 외교전에 임해야 한다.
[사설]삼성전자 '57조' 새 역사… '초격차' 소식 계속 이어지길
삼성전자가 국내 기업 역사상 1개 분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모두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한국 산업사의 한 획을 긋는 성과이다. 무엇보다 저성장과 미국의 관세 압박, 이란전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 공급망 위기 가속화 등 암울한 경제 상황 속에서 모처럼 전해진 밝은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8.1% 증가한 133조원, 영업이익은 755% 늘어난 57조20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7일 발표했다. 분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역대 최대다. 특히 이번 영업이익은 지난해 연간 실적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미국에서도 이같은 실적은 아마존이나 엔비디아 등 극소수 기업만 달성한 드문 성과다.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이 300조원을 넘어 정부 본예산 기준 총지출(727조9000억원)의 40%를 뛰어넘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번 호실적의 배경은 물론 반도체 산업의 수퍼사이클(초호황) 진입이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생산 능력을 갖춘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맞물린 결과다. 올해도 미국 빅테크 4사가 AI 인프라 구축에 665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어서 반도체 수퍼사이클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여기에 범용 D램 메모리 반도체 가격도 11개월째 상승하고 낸드 플래시 품귀 현상까지 겹치면서 삼성전자는 실적 급등을 이어갔다. 특히 삼성전자가 2월 세계 최초로 6세대 'HBM 4' 양산에 성공하며 차세대 반도체 기술 경쟁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것도 긍정적 신호다. 다만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반도체는 AI·자율주행 등 미래의 테크 패권을 좌우할 첨단기술이다. 중동 전쟁으로 고유가·고환율·스태그플레이션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기도 하다. 관건은 초격차의 지속가능성이다. 미국의 견제와 중국의 추격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초격차가 흔들리는 순간 현재의 호황은 언제든 꺾일 수 있다. 기술적 우위를 계속 지켜나가면서 미래테크 경제를 이끌어가야 한다. 나아가 반도체를 통해 확보한 자금과 첨단 기술력, 네트워크, 그리고 미래를 보는 안목을 결합해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온리원' 사업에도 진출하는 등 더욱더 도전적이고 치열한 혁신기업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정부 역시 '국가 생존' 차원에서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 산업 생태계 전반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번 호실적이 우리 경제의 자신감을 키우고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사설]검찰 미제·경찰 불송치 급증…'수사 공백' 답은 뭔지
법무부가 최근 소규모 지청 소속 검사 10여 명을 대규모 지청과 지방검찰청에 파견했다고 한다. 인력난으로 미제 사건이 급증하자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일종의 '검사 돌려막기'다. 하반기로 예정됐던 경력검사 임관도 5월로 앞당기기로 했다. 정부가 이처럼 급한 불 끄기에 나선 것은 현장의 수사 공백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지난해 검찰을 떠난 검사는 175명으로, 10년 내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 중 절반 이상이 수사 경험이 풍부한 15년차 이상 허리급 인력들이라고 한다.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이런 현상은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현재 추세를 볼 때 올해 검사 사직 인원은 200명 선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문제는 형사 사법 시스템의 공백과 균열이 국민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대검 통계는 이미 경고등을 켜고 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5만 건 수준을 유지하던 미제 사건은 불과 2년 만에 12만 건을 넘어서며 두 배 이상으로 치솟았다. 수사 검사 1인당 미제 사건도 평균 500건을 돌파했다. 이런 상황에선 수사 자체도 지연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단일 사건에 충분한 수사력을 투입하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물리적 한계치를 넘어선 업무량은 수사 사각지대를 넓히게 마련이다. 그 점에서 2021년 경찰이 자체 수사 종결권을 확보한 이후 '불송치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2021년 약 38만 건이던 불송치 사건은 지난해 59만 건을 넘어섰다고 한다. 과거 검찰이 '전건 송치'를 통해 한 번 더 걸러내던 검증 시스템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검찰이 자체적인 검토를 통해 재수사를 요청하는 비율은 지난해 2.15%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검찰 개혁 이슈가 활발했던 데 비해 경찰 수사를 교차 검증하는 방안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서민의 삶과 직결된 민생 범죄 처리가 지연될수록 범죄자는 거리를 활보하고 피해자의 고통은 길어진다. 일각에선 10월 중수청이 출범하면 사건 과부하와 부실 수사 등의 혼란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는다. 공소청법에 따라 기존 검사가 맡았던 사건은 중수청 등으로 넘겨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공소시효가 임박하거나 복잡한 사건들이 졸속으로 종결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형사 사법 체계의 변화는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개혁도 '국민 안전'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앞설 수는 없다. 개편의 속도가 현장의 수사 역량을 앞질러서도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건 개혁의 명분만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민생 사건 처리에 공백이 없는지 제대로 따지고 보완책을 만드는 것이다. 그 일에 정치적 고려나 이해관계가 개입해서는 안된다. 수사는 제도의 실험장이 아니라 국민을 지키는 보루이기 때문이다.
[사설]尹 파면 1년…정치는 무엇을 배웠나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이므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다." 지난해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45년 만의 비상계엄 사태를 야기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파면을 결정했다. 그로부터 꼭 1년이 지났지만 그 결정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은 헌법이 단순히 종이 위의 글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규범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증명한 사건이었다. 국민은 권력이 헌법의 한계를 넘어설 때 어떤 파국을 맞이하는지, 민주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고 복원되는지 볼 수 있었다. 당시 헌재는 결정문에서 법리적 위법성만을 따지는 데 그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대화와 타협'을 최우선 과제로 강조하며, 서로를 타도 대상이 아닌 대등한 국정 동료로 존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파면된 대통령뿐만 아니라 그 공백을 메워야 할 국회와 정치권 전체에 던진 무거운 숙제였다.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정치가 그 요구에 부응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먼저 국민의힘은 과거를 둘러싼 노선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내부 혼선을 이어가고 있다. 당 지지율은 연일 바닥을 치고 있는데도 이번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까지 '윤 어게인' 공방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모습은 국민의힘이 아직도 파면의 역사적 함의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연이은 특검과 국정조사를 밀어부치며 내란 청산 프레임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사법 3법' 등 다수 의석을 앞세운 입법 시도가 반복되면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적 가치가 훼손됐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협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헌재의 주문과는 거리가 멀다. 윤 전 대통령의 반성없는 태도 또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다수의 형사 재판이 진행중이지만 책임 인정이나 입장 변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에는 "우리의 싸움은 끝이 아니다"며 지지층을 선동하는 듯한 입장문도 냈다. 이런 전직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경은 답답하고 참담하다. 파면 1년의 의미는 과거 평가에 있지 않다. 헌법이 정한 한계를 넘어설 경우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을 정치가 실제로 구현하느냐에 있다. 어느 진영이 이기고 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질적 진화다. 헌재의 결정이 무너진 헌법 질서를 바로잡은 '제도의 복원'이었다면, 이제 '정치의 복원'이 이뤄져야 한다. 정치가 헌법 가치를 외면하고 당파적 이해관계에만 매몰된다면, 민주주의의 성숙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사설]종전 구상 없는 트럼프의 '재탕' 연설… 대체 언제까지
이란 전쟁과 관련한 도널드 트럼프의 1일(현지 시각) 대국민 연설은 새로운 메시지 없이 기존 주장의 반복에 머물렀다. 기대를 모았던 종전 구상이나 시점은 끝내 제시되지 않았다. 대신 "이란의 위협 능력을 무력화한다"는 개전 목표를 되풀이하고, "전례 없는 승리" "군사적 목표는 거의 달성했다"는 자평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데 그쳤다. 트루스소셜과 각종 회견에서 이미 내놓았던 발언의 재탕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2~3주 동안 대대적 타격을 가해 이란을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겠다"며 "모든 발전소를 아주 강하게 타격하겠다"고 위협 수위를 끌어올렸다. 그러면서도 "강력하고 눈부신 작전을 32일 동안 펼치고 있다"며 이번 전쟁이 1·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이라크전, 그리고 3년 넘게 이어진 한국전쟁보다 짧게 끝날 것임을 강조했다. 장기전 우려를 덮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경제 인식 역시 실망스럽다. 유가 상승을 "단기적 현상" "이란의 유조선 공격 탓"으로 돌리며 미국 내 불만을 달래는 데 급급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연설 전날 CNN 조사에서 국정 지지율이 30%대 중반에 머물 정도로 여론은 이미 등을 돌린 상태다. 조기 종전 기대가 꺾이자 국제유가는 오르고 증시는 흔들렸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인식이다. 트럼프는 "의존 국가들이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는 해협 재개방과 안전 확보라는 국제적 책임을 사실상 내려놓은 채, '임무 완료'를 선언하고 발을 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런 '마무리 없는 종전'은 평화와 안정이 아닌 새로운 혼란의 재개일 뿐이다. 이 경우 한국이 입을 타격은 치명적이다. 원유의 70%, LNG의 20%를 이 경로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해협 통제권을 쥔 이란이 선박 선별 통과나 통행료 부과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외교력을 총동원해 불확실성을 줄이고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것이 시급하다.트럼프가 부활절 행사에서 한국을 콕 집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핵 무력 바로 옆에 4만 5000명의 군인을 두고 있는데도 그랬다"며 사실과 맞지 않는 수치까지 동원해 압박한 점도 예사롭지 않다. 이는 향후 통상·안보 현안에서 더 거친 요구가 이어질 수 있음을 예고한다. 이런 사안일수록 한·미 간 긴밀한 고위급 소통으로 정면 대응해야 한다.종전 로드맵은 보이지 않고, 설령 전쟁이 어떤 형식으로든 끝난다 해도 트럼프의 '후속 청구서'에 응대해야 하는 등 이중 삼중의 난관을 넘어서야 하는 형국이다. 뾰족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일단 호르무즈 자유항행을 위한 국제 협력에 적극 동참하되, 에너지·원자재 수입 구조의 근본적 다변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 중간선거를 7개월 앞둔 트럼프 행정부가 대미 투자, 통상 문제 등 협상에서 공세를 강화할 가능성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사설]국정조사, 결론보다 절차의 공정성이 먼저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조작기소 의혹' 국정조사가 본격 가동되기도 전에 녹취록 공개와 증인 채택을 둘러싼 공방이 거세다. 이런 논란이 정치적 시비를 넘어 국정조사의 신뢰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이 더 문제다. 절차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어떤 결론이 나와도 또다른 정치적 후폭풍이 불가피하다. 국정조사 특위는 지난달 31일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을 비롯한 103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과 연관된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관련자만 45명에 달한다. 대장동 사건 피고인인 김만배씨와 남욱 변호사도 포함됐다. 반면 당시 검찰 수사를 지휘했던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 등 국민의힘이 요구한 증인들은 명단에서 빠졌다. 증인 채택은 국정조사의 신뢰를 가르는 핵심 변수다. 유리한 결론을 이끌어내는데 필요한 인물만 집중적으로 부르는 방식으로는 균형과 형평을 담보하기 어렵다. 특히 공소취소 논란과 직결된 사안을 다루면서,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지닌 피고인들을 증인으로 세우는 일에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진술 왜곡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려면 야당이 요구하는 인사들도 포함해 교차 검증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녹취록을 둘러싼 공방도 소모적이다. 민주당은 최근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 변호인과 수사 검사 사이의 통화 녹취 일부를 공개했다. 공개된 대목만 보면 검찰이 이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유도하는 대가로 선처를 시사한 듯한 인상을 준다. 사실이라면 기소의 정당성 자체가 흔들릴 중대 사안이다. 반대로 당시 수사팀은 맥락을 제거한 일방적 편집이라고 반박한다. 진실 공방만 이어갈 게 아니라 녹취록 전체를 공개해 국민이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순서다. 이번 국정조사는 논의 단계부터 정치적 대립이 첨예했다. 통상 여야 합의로 출범했던 관례도 지켜지지 않았다. 게다가 관련 법률은 재판이나 수사에 관여할 목적으로 국정조사를 진행해선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사 대상 다수가 진행 중인 재판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사법권 침해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일수록 절차적 정당성 확보에 더 엄격해야 한다. 여야의 시각차가 큰 사안인만큼 증인과 증거 합의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논란 끝에 출범한 국정조사인 만큼 국민적 동의를 얻으려면 제대로 된 협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최대한 증인의 균형을 맞추고, 증거 자료는 보다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특정 방향으로 유도된 국정조사라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국정조사의 권위는 공정한 절차를 통해 스스로 입증되는 것이다.
[사설] 국민의힘은 '개헌'에 응답하고, 민주당은 '독주' 멈춰야
국민의힘이 개헌 동참 요구를 거부하면서, 제1야당을 배제한 채 개헌이 추진될 가능성이 커졌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31일 우원식 국회의장과의 비공개 회동에서 '원포인트 개헌' 에 불참할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군사작전 하듯 개헌을 밀어붙이는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며, 이재명 대통령 연임을 위한 수순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개혁신당 등 6개 정당은 이날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며 개헌안 발의를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이들은 5·18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 정신, 대통령의 계엄권 제한,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원칙을 헌법에 담기로 합의했다. 개헌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인 197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범여권과 개혁신당, 무소속 의원을 합쳐 187석 안팎이어서 국민의힘에서 10명 이상의 이탈표가 나와야 한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의 입장 변화만 기다릴 수도 없다. 오는 6월 지방선거일에 국민투표를 병행하려면 다음달 7일까지 개헌안이 발의되어야 하고, 5월 초 국회 의결도 마쳐야 한다. 이번 개헌안은 국민의힘이 그간 내세워 온 가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은 여러 차례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언급해 왔고, 장 대표 역시 부마항쟁 정신 계승을 강조한 바 있다. 지방분권 강화와 국가균형발전 또한 보수 진영이 꾸준히 주장해 온 방향이다. 대통령의 계엄권 제한도 국민적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자는 차원이다. 개헌안은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해도 국회가 해제를 의결하거나 48시간 안에 승인하지 않으면 즉시 효력을 잃게 하는 내용이다. 현행 헌법의 불명확성을 보완하자는 것이다.1987년 민주화 운동의 산물로 탄생한 현행 헌법은 어느덧 불혹을 앞두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탱할 안전장치를 보강하고 달라진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데 여야의 이견은 없다. 하지만 개헌은 늘 '필요하지만 미뤄지는' 의제였다. 여야의 갈등이 커지거나 다른 정치적 이벤트가 생기면 번번이 논의에서 밀리곤 했다. 특히 권력구조를 손대는 부분은 대통령과 여야의 이해관계에 막혀 개헌 논의 자체를 좌초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여야가 합의 가능한 사안부터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왔고, 이번 지방선거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많았다. 그 점에서 국민의힘이 개헌안 내용이 아닌 정치적 상황을 이유로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로 보기 어렵다. 다만 절차 문제를 제기하는 국민의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민주당이 그동안 다수 의석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국회를 운영해 온 전례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겠다는 입장까지 내비친 상황에서 제1야당이 협상에 나서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 측면도 있다. 그런 만큼 여권 역시 개헌 명분만 앞세우기보다는 야당이 논의의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숙의와 공론의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개헌은 특정 정당이나 정권의 과제가 아니다. 낡은 권력 구조를 고치고 국민의 기본권을 확장하는 시대적 책무다. 일부 이탈표에 기대어 통과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로 무산되는 개헌은 모두 정치의 실패다. 여야 합의와 국민적 동의 속에 추진될 때 비로소 헌법은 권위를 얻는다. 지금은 정쟁이 아니라 헌법만을 생각할 때다.
[사설]호르무즈 이어 홍해도 위협…수입 수출 길목 다 막힐라
우리의 에너지 수입 통로인 중동의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에 의해 봉쇄된 데 이어 유럽행 수출 물동량의 상당수가 지나는 바브엘만데브 해협과 홍해마저 예멘 후티 반군의 위협을 받고 있다. 친이란 대리세력인 후티 반군이 지난 28일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발사하며 이란 편으로 참전을 선언하면서다. 바브엘만데브 해협과 수에즈 운하를 잇는 홍해 항로는 전 세계 해상 컨테이너 물동량의 약 30%, 상품 무역량의 약 12%가 통과하는 핵심 항로다. 연간 통과 물동량이 1조 달러에 이른다. 한국 등 아시아에서 수에즈 운하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해상 화물은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한다. 만일 이 길이 막히면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도는 우회 노선을 택해야 한다. 항해 거리는 약 9000㎞ 늘고 소요기간 7~10일이 추가돼 물류비용이 20%가량 뛴다. 현재 미국은 4월 6일을 협상 시한으로 잡고 이란에 핵무기 개발 중단과 탄도미사일 제한, 호르무즈 해협 개방 등 15개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이란은 중동 내 미군기지 폐쇄와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과 통행료 징수를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협상에 바브엘만데브라는 새로운 난제까지 더해지며 상황은 더욱 꼬이고 있다. 중동 상황의 불안정성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곧바로 전이되고 있다. 지난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2.9%로 유지하면서도 한국은 1.7%로 지난해 12월 전망치보다 0.4%P 낮췄다. 반면 물가상승률은 2.7%로 0.9%P 높였다. 호르무즈 해협 전면 봉쇄도 처음 겪는 일인데 홍해 항로마저 안정적 항행이 어려워지는 것은 우리로선 겹악재가 아닐 수 없다. 산업계는 후티 반군의 상선 공격으로 물류비가 폭등했던 '2024년의 악몽'이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두 해협 동시 봉쇄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비상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에너지 수급 안정과 물가 관리에 선제적으로 나서는 것은 기본이다. 바브엘만데브 인근 아덴만에 주둔 중인 청해부대의 우리 선박 보호 작전 활용 방안 역시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외교적 방안을 모색하는 동시에,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군사적·물류적 대응책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 원유 수입 길목과 유럽 수출 길목이 동시에 막히는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우리 경제가 더욱 휘청일 수밖에 없다.
[사설]이란전쟁 한 달…경제·안보 뼈대 다시 세울 때다
28일로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 꼭 한 달을 맞았다. 정부는 위기관리능력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 전쟁의 불길이 주변 산유국과 에너지 물류 조임목인 호르무즈 해협으로 확대되면서 안보·공급망·금융·거시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복합 위기가 분출했다. 이제 그동안 드러난 한국 경제와 안보의 '약한 고리'를 근본적으로 풀어나갈 해법을 찾아야 한다.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국제유가와 1500원을 웃도는 원·달러 환율은 당장의 실물경제 타격을 넘어 상당 기간에 걸친 고물가·고환율·고금리 시대를 예고한다. 주식시장도 방향성을 잃은 채 출렁이고 있다. 유가 상승 등에 따른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올해 경제성장률 2% 달성도 쉽지 않아 보인다. 고물가와 경기침체라는 난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도 맞고 있다. 정부는 비축유 방출, 나프타 등의 수출 제한, 25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대응에 나섰다.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가 2차 시행에 들어갔으며, 전국 공공부문 차량 5부제도 시작됐다. 그러나 단기 처방만으로는 위기를 넘어서기 어렵다.가장 시급한 과제는 원유·천연가스와 나프타·비료·헬륨·유황 등 석유화학 원재료의 공급망 확보다. 당장은 대체 물량 확보와 호르무즈 해협 통행 보장을 위한 외교력 집중이 필요하다. 그러나 근본 해법은 도입선의 다변화다. 대부분의 에너지를 화석에너지 중심으로 중동에서 들여오는 한국엔 사활이 걸린 문제다. 중동 의존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위기를 반복할 수는 없다는 절박한 인식이 필요하다. 화석연료·원자력·신재생에너지 등을 고루 활용해 위험을 분산하는 '에너지 믹스'의 효과적인 재정비도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이를 위한 국가에너지 정책의 근본적인 새판짜기를 고민할 때다. 공급망 마비의 반복 가능성에 대비한 전략비축물량의 확대 역시 서둘러야 할 것이다. 안보 환경도 요동치고 있다. 주한미군의 핵심 방공자산 일부가 중동으로 이동한 정황은 안보공백 우려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범위에 대한 논란, 그리고 한반도 방위공약과 동맹 역할에 대한 새로운 질문은 던진다. 인공지능(AI)과 드론, 미사일과 요격미사일을 앞세운 전쟁방식의 급격한 변화도 우리 군에 미래전 대비라는 과제를 더욱 선명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 달을 맞은 이란 전쟁, 단기 대응을 넘어 국가 전략의 틀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경제·안보의 뼈대를 단단히 바로 세워야 할 때다.
[사설]KF-21도 날개…첨단기술 융합으로 미래시장 선점해야
한국 방위산업이 곳곳에서 실력을 증명하면서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고 있다. 방공 미사일 천궁Ⅱ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96%의 요격률로 실전 능력을 보여준 데 이어 25일에는 독자설계 초음속 전투기인 KF-21 양산 1호기가 출고됐다. 앞서 올해 초엔 고도 15~20㎞를 방어하는 천궁Ⅱ보다 상층인 고도 40~60㎞를 담당하는 L-SAM이 양산에 들어갔다. 이처럼 상호보완성을 갖춘 한국형 무기체계들을 바탕으로 우리 영공에 다층방어망을 구축해 국민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준스텔스 기능을 갖춘 4.5세대 KF-21 전투기 출고는 지난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개발 계획을 밝힌 지 21년 만에 막대한 개발비 부담과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범국가적 의지와 초당적 협력 덕분에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도 개발이 지속적으로 진행됐다는 점도 평가할 수 있다. 방산 도약에는 기업과 과학기술자의 의지와 노력은 물론 정치권의 관심과 지원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KF-21은 인도네시아에 국내 전투기로선 첫 수출 계약을 따낸 것 외에 UAE·사우디아라비아·필리핀·폴란드 등에서 관심을 보여 수출전망이 밝다고 한다. K-9 자주포와 K-2 전차, FA-50 경공격기 등에 이어 다시 한번 한국 방산의 저력을 보여줬다. KF-21의 신속한 5세대 도약을 기대한다. 이처럼 설계부터 제작까지 우리 손으로 진행한 첨단무기체계의 줄이은 개발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글로벌 방산대국으로 도약할 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만족해선 안 된다. 이 목표를 이루려면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방산 외교는 물론 전방위적인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다. 지속적이고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와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방위사업 행정, 방산 수출을 도울 금융·예산·세제 지원 등이 그것이다. 이제는 가성비와 신속한 납기능력을 앞세웠던 K-방산 수출 패러다임의 전환을 고민할 때다. 물론 한국 특유의 재래식 무기체계 개발 능력과 제조 실력, 그리고 사후관리는 전 세계에서 비교 대상이 드물 정도로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전장의 환경은 빠르게 변해 인공지능(AI)·로봇·군집드론·위성통신 등 4차산업혁명 기반의 신기술이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방산이 미래에도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선제적 대응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군과 방산업체, 연구기관을 서로 긴밀하게 연결해 AI 등 첨단기술을 융합한 한국형 미래전 방산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미래방산 시장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신융합 체제는 한국 방산을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도약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사설]해외도피 연 1000명…추격 넘어 선제적 차단으로
필리핀에 수감 중이던 일명 '텔레그램 마약왕' 박왕열이 25일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필리핀 사탕수수밭에서 한국인 세 명을 살해한 지 10년 만이다. 그는 현지에서 60년형을 선고받고도 수감 중 국내에 마약을 유통하고 호화 생활을 누린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샀다. 이번 송환은 이재명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직접 신병 인도를 요청한 지 3주 만에 성사됐다. 외국에서 재판이나 형 집행을 받는 피의자를 일정 기간 넘겨받아 수사하는 '범죄인 임시 인도' 방식이다.이날 송환은 정상외교와 범정부 공조가 빚어낸 결실이다. 흉악범을 끝까지 추적해 처벌하는 것은 사법 정의의 실현이자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박왕열이 해외 교도소를 거점으로 마약을 유통시킨 점을 고려하면, 범죄 연결고리를 끊어냈다는 의미도 크다. 다만 양국 정상의 '톱 다운' 결단이 있기까지 오랜 시간 송환이 지연된 건 아쉬운 대목이다. 문제는 한국 수사망을 피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범죄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범죄를 저지르고 출국해 돌아오지 않는 해외도피 사범은 지난해 처음으로 연간 1000명을 넘었다. 올해 1~2월에도 233명이 해외로 달아났다. 지난해 말 기준 해외에 수감돼 있는 한국인도 52개국 1163명에 달한다. 이 중 마약사범 비중이 23%로 가장 높다. 해외 범죄자 송환 실적이 늘고 있지만 빠져 나가는 사람이 더 많고, 사후 추격만으론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최근 범죄는 국경을 넘는 초국가적 네트워크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과거엔 살인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뒤 해외로 밀항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해외에 범죄 조직을 만드는 기업형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사회적 논란이 컸던 캄보디아 대학생 고문·살해 조직도 마찬가지였다. 해외에 조직 거점을 두고 국내를 대상으로 범죄를 실행하는 방식이 일반화되고 있다. 이번에 송환된 박왕열도 몸은 교도소에 있으면서 휴대폰을 이용해 원격으로 범죄를 주도했다. 범죄가 디지털 기술을 타고 비대면화되면서 기존 영토 중심 수사체계는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다. 수사 패러다임을 '선제적 차단'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그 때문이다. 국제공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인프라가 됐다. 특히 단순한 정보 교환을 넘어 범죄자금 흐름을 실시간 공유하고 공동 수사를 상시화하는 체계로 끌어 올릴 필요가 있다. 동남아 범죄 사례 상당수가 취업 사기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이를 막을 경고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디지털 플랫폼의 책임 역시 중요하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디지털 범죄 대응 역량을 높이는 일이다. 국경이 아닌 기술 위에서 작동하는 범죄를 잡으려면 수사기법 역시 기술을 앞서가야 한다. '마약왕 송환'은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범죄자 송환을 위한 외교적 노력은 지속하되, 글로벌 범죄가 자라나는 토양 자체를 걷어내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뒤쫓는 대응에 머무른다면 같은 유형의 범죄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사설]'통합돌봄' 전국 시행…재정 확충, 지역 격차 해소가 관건
노인과 장애인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제도가 27일 시행된다. 그동안은 필요한 서비스를 부처별로 따로 찾아 신청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정보 부족으로 혜택을 놓치거나, 제한적 서비스 탓에 부득이 시설에 입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앞으로는 주거·의료·요양 서비스를 지방자치단체가 하나로 묶어 지원하게 된다. 2026~2027년에는 노인과 고령 장애인을 대상으로 1단계 사업이 추진되고, 이후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통합돌봄은 단순한 거주 방식의 변화가 아니다. 핵심은 돌봄의 질적 전환에 있다. 굳이 질병 치료가 필요 없는데도 돌봄 공백 때문에 요양병원을 전전하는 '사회적 입원'이 횡행하는 게 현실이다. 병원 퇴원 후 돌봄 문제 때문에 다시 병원을 찾는 '회전문 입원'도 많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시점에서, 노인들이 존엄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뒷받침하는 건 사회적 가치가 크다.문제는 제도의 취지를 뒷받침할 재정과 인력의 현실이다. 전국 단위 사업임에도 대부분의 지자체는 예산과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 현재 229개 시군구가 직접 사업비로 쓸 수 있는 예산은 평균 2억7천만원 수준이다. 돌봄 인력 부족, 낮은 처우, 잦은 이직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돌봄 서비스의 상당 부분을 민간에 의존하고 있는데, 보건·의료 등 공공 인프라를 더 확충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높다.통합돌봄은 주거와 재활을 아우르는 다층적 접근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돌봄 인력을 연결하는 것만으로는 지역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삶을 담보하기 어렵다. 주거 환경이 안전하지 않거나 재활이 미흡하면 결국 병원이나 시설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특히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나 자치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서비스 질이 천차만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는 지역에 따라 돌봄의 질이 달라지는 불평등을 막기 위해 정부는 지역간 격차를 면밀히 점검하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이제 돌봄은 시혜적 복지가 아니라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 인프라다. 시행 초기에는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보건·복지 기관 간의 유기적 협력으로 현장의 혼선부터 줄여야 한다. 아울러 초고령 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처럼 돌봄 로봇, 인공지능(AI), 정보통신기술(ICT)을 적극 도입해 돌봄 노동의 부하를 줄이는 혁신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통합돌봄의 성공은 국가가 국민의 노후를 얼마나 정교하고 책임감 있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설] 혼미한 중동 전황…에너지 수급 취약성 직시해야
4주 차에 접어든 이란 전쟁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후통첩' 경고를 계기로 중대한 분수령을 맞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주말 "군사작전 축소"를 언급한 지 하루 만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지 않으면 발전소를 초토화하겠다"라고 압박했다. 이란도 중동의 에너지·IT·담수화 시설을 타격하겠다고 맞섰다. 트럼프는 23일엔 "생산적인 대화 뒤 이란의 발전소에 대한 군사 공격을 닷새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중동의 이런 널뛰기 상황은 에너지 시장 전반에도 직접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의 "발전소 초토화" 발언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압박 카드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분명한 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에너지 공급 불안과 유가 급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예측하기 힘든 메시지가 이어지며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황의 혼미, 에너지 공급 불안의 장기화는 각국 외교 현장의 혼선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란이 "일본과 협의를 거쳐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허용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자 일본이 "해당 논의를 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는 일도 벌어졌다. 원유의 약 90%를 호르무즈를 통해 공급받는 일본이 에너지 확보라는 현실적 이해와 관세·투자·안보 등이 걸린 동맹국 미국과의 전략적 제약 사이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역시 다르지 않다. 호르무즈 파병 문제를 둘러싼 정부의 신중한 태도는 에너지와 안보, 동맹이 얽힌 복합적인 딜레마를 반영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이란산·러시아산 원유 제재를 일시 완화하며 해당 물량을 한국·일본 등 동맹국으로 돌릴 수 있다고 밝힌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이는 공급 확대를 넘어 에너지 확보를 둘러싼 국가간 경쟁의 신호다. 정부는 외교·통상 역량을 총동원해 실질적인 물량 확보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중심으로 20여개 국이 호르무즈 개방을 위한 협력에 나선 것도 중요한 기회다. 해협의 안전이 곧 글로벌 에너지 질서를 좌우하는 만큼 한국 역시 적극적으로 참여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특히 수입 에너지의 대부분이 호르무즈를 지나야 하는 한국은 의존율이 낮은 유럽이나 에너지 자립국 미국과는 차원이 다른 이해 당사자다. 이 과정에서 일본과의 적극적인 공조도 현실적인 대응 수단이다. 거듭 강조할 것은 이란 전쟁 와중에 한국의 에너지 수급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동 정세가 흔들릴 때마다 한국 경제가 출렁이는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이 터질 때마다 단기 대응에 그쳤을 뿐, 특정 지역과 해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공급 구조는 그대로 유지돼 왔다. 당장은 가용 물량 확보와 수급 안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수입선 다변화, 전략 비축 확대 등 장기적인 '에너지 안보' 전략도 서둘러 재정비해야 한다. 외부 변수에 흔들리는 공급 구조를 방치한 채 상황 관리에만 매달리는 것은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다.
[사설] "한국의 뿌리에서 다시 시작"…BTS 공연에 쏠린 세계의 눈
'글로벌 K' 열풍의 원조인 방탄소년단(BTS)이 3년 9개월 만에 완전체로 모여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 공연을 펼친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최대 규모인 약 26만 명이 모이고,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국에 실시간으로 중계된다고 한다. BTS는 앞서 발표한 정규 5집 앨범 '아리랑(ARIRANG)'을 통해 문화적으로 한층 성숙된 방향을 제시했다. "가장 우리다운 것을 고민하고 '한국의 뿌리'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했다"는 아리랑 출사표는 이번 공연의 상징적 의미를 보여준다. 이 때문에 이번 공연은 단순한 컴백을 넘어 한류 전반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낳고 있다. 그간 글로벌 활동으로 축적한 문화적 보편성에다 한국 특유의 흥과 문화를 녹여넣어 '우리'라는 정체성을 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서다. 이런 시도는 한류의 지속 가능성을 가늠할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BTS는 다음 달부터 전 세계 34개 도시에서 82회에 걸쳐 월드투어를 펼칠 예정이다. 이번 공연은 한류가 문화 콘텐츠를 넘어 한식·뷰티·패션·관광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는 '한류 4.0 시대' 진입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초기 아시아 진출기인 1.0시대, K-팝 아이돌 문화가 확산한 2.0시대, SNS와 유튜브를 통해 문화 콘텐츠가 전 세계로 퍼진 3.0시대에 이어 이제는 성숙한 융합, 주류문화화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BTS로 상징되는 한류는 특정 그룹의 퍼포먼스나 문화산업의 양적 팽창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국 사회가 축적해 온 역사와 경험, 그리고 이를 토대로 형성된 집단적 자신감의 발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연은 정체성과 보편성이 결합된 한국형 문화 모델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번 행사는 기존의 고품질 문화 콘텐츠에, 그간 발전을 거듭한 인공지능(AI)·플랫폼 기술을 제대로 입히면서 새로운 글로벌 주류문화를 이끄는 전기가 돼야 한다. 이를 통해 'BTS노믹스'로 불리는 경제적 파급력도 현실화되길 바란다. 다만 성공은 콘텐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BTS의 위상에 더해 안전과 질서, 성숙한 시민의식이 함께 어우러질 때 국가의 품격으로 이어진다. 전 세계와 국내에서 찾아온 수많은 아미에게 '안전하고 흥겨운 대한민국'이라는 추억을 안겨줄 때다.
[사설] 트럼프의 '감정 기복'까지 감당해야 하는 현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동 파병 관련 발언이 연일 번복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동맹국들에 군함 파견을 요청하며, 7개국이 참여하는 '호위 연합' 구상을 내놓았다. 우리에 대해선 주한미군 숫자를 부풀리면서까지 그동안 도와준 댓가를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그러다 기대에 못 미치는 각국 반응에 17일(현지시간) 한국 등 어떤 나라의 도움도 필요 없다며 분노를 쏟아냈다. 트럼프와 가까운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살면서 그가 그렇게 화난 걸 본 적이 없다"고 전할 정도였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에 대해선 "매우 어리석은 실수를 하고 있다"며 나토 탈퇴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그런데 하루 뒤인 18일, 분위기가 다시 바뀌었다. 백악관은 호르무즈 연합군 카드를 여전히 추진하고 있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의 파병을 촉구하는 미국 언론의 사설을 SNS에 공유했다. 회유와 실망, 격분, 짜증 등 최근 트럼프는 다양한 감정을 여과없이 노출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엄중한 국면에서 드러나는 트럼프의 '감정 기복'은 전쟁의 출구를 찾지 못하는 난감한 처지를 보여준다. 현재로선 전쟁이 속전속결로 끝날 가능성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또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제사회에 전가되고 있다. 조 켄트 국가대테러센터 국장이 사표를 내는 등 친트럼프 진영의 균열상까지 드러났다. 전쟁에 대한 미국 내 여론도 악화되고 있어,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조급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레드라인'을 넘어 에너지 전면전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이란 최대 해상 가스전에 폭격하자 이란은 카타르 등 주변국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며 맞불을 놓았다. 이란은 주변국과 걸프 지역 에너지 인프라를 완전히 파괴하겠다며 보복을 선언했고, 외신들은 미 해병대의 하르그섬 점령 가능성 등 지상군 투입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상황을 관망자로만 지켜볼 수 없다는 점이다. 에너지 가격 급등 만으로도 경제에 치명적이지만 더 큰 부담은 동맹 차원에서 다가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안보와 통상을 패키지로 묶는 협상 전략을 보여왔다. 한국이 이란 전쟁과 관련한 트럼프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경우 아직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안보·통상 분야의 보복을 배제할 수 없다. 주한미군 감축 검토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등은 물론 자동차 관세 부과 등 통상 보복도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우리가 트럼프의 한마디 한마디를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다. 무엇보다 이젠 트럼프의 감정 기복 리스크까지 감당해야 할 처지가 됐다. 우리나라는 파병 등 예민한 사안에 대해 최대한 신중하게 검토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갈수록 조급해 보이는 트럼프의 행보 앞에서 언제까지 시간을 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략적 모호성만으론 버티기 어려운 국면이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묘책이 보이지도 않는다. 일단 19일 열리는 미·일 정상회담에서 똑같은 파병 압박을 받고 있는 일본 측이 어떤 대안을 내놓는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어떤지 냉정하게 분석하고 우리의 태도를 좀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사설] 검사 권한 축소만 부각…보완수사권은 어쩔 건지
범죄수사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공소청 설치법안이 18일 민주당 주도로 국회 소관 상임위를 통과했다. 본회의 처리는 20~21일쯤이 유력하다. 앞서 당·정·청 협의를 거친 법안의 핵심은 기존 정부안 보다 공소청 검사의 권한을 더 줄인 것이다. 우선 경찰 등에 대한 공소청 검사의 영장청구·집행지휘권을 삭제했다. 중수청이 수사를 개시하면 검사에게 통보하도록 한 조항, 중수청 송치 사건에 대해 검사가 추가 입건을 요청할 수 있게 한 조항도 빠졌다. 제한적 수사 권한을 가진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을 검사가 지휘·감독하도록 한 조항도 사라졌다. 전반적으로 공소청 검사의 수사 관여 여지를 사실상 봉쇄하고,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더욱 명확히 하려는 방향이다.최종안은 정부와 여당 간의 이견을 일정 부분 절충한 결과로 보인다. 정부가 지난 1월 법안을 내놓은 이후 청와대·정부와 여당 강경파 간에 검찰총장 명칭을 포함해 개혁의 구체적 내용을 놓고 갈등이 이어졌고, 급기야 이재명 대통령이 "불필요한 과잉은 안된다"며 직접 정리에 나섰다. 결국 청와대와 정부 의견대로 검찰총장 명칭은 유지되고 검사 전원 면직 후 선별 재임용 방안도 포함되지 않았다. 반면 공소청 검사의 권한은 강경파 요구대로 대폭 축소됐다. 당·정·청은 이견이 크고 최대 쟁점이었던 검사 '보완수사권 허용' 문제는 지방선거 이후로 논의를 미뤘다. 문제는 제도 변화에 상응하는 통제 장치와 보완책이 충분히 마련됐는지 여부다. 특사경은 환경·식품·노동·관세·산림·출입국 등 50여개 분야에서 경찰관의 권한을 가진 일반 행정공무원이다. 숫자도 2만여 명이나 된다. 해당 영역 전문성은 있지만 수사·재판 경험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이들이 검사 지휘 없이 독자 수사에 나설 경우 사건 처리 지연이나 완결성 저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행정기관장이 사실상의 수사 지휘를 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수사의 중립성이 흔들리고 정치적 공방으로 번질 소지가 있다. 행정안전부 장관의 지휘를 받는 경찰과 중수청의 정치적 중립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두 기관의 권한 확대에 따른 견제와 균형 문제도 남아 있다. 수사권 남용이나 사건 은폐가 발생할 경우 이를 제어할 장치가 충분한지에 대한 검토는 아직 미흡하다. 최근 시행된 '사법 3법'이 소송 남발, 정치적 고소·고발로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충분한 사전 설계 없이 '대법원 개혁'이란 명분에만 매달려 혼란이 더 커진 측면이 있다. 수사체계 변화 역시 대안 마련 보다 '검사 힘빼기'에만 집중한다면 비슷한 문제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 이제 관심은 공소청의 보완수사권 존치 여부에 쏠리고 있다. 대통령과 법무장관은 그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여당 강경파의 반대는 여전하다. 그러나 형사·사법 개혁의 기준과 본질은 분명하다. 국민의 권리 보호와 절차적 정의 강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지 여부다. 오로지 특정 기관의 영향력 약화가 목표가 되는 순간 개혁은 방향을 잃는다. 보완수사권 문제만큼은 어떻게 하는 것이 수사와 기소의 완결성을 높일 수 있는 건지, 국민의 편익 증진에 도움이 되는 건지를 염두에 두고 충분히 숙의를 거쳐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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