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미중 '건설적·전략적 안정관계'… 더욱 복잡해진 '생존 공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의 새로운 질서를 모색했다. 관세 전쟁과 반도체·AI 기술 통제, 대만 문제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까지 최근 몇 년간 미·중 관계는 사실상 '신냉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거칠게 충돌해 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회담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G2(주요 2개국) 관계의 새로운 관리 국면 가능성을 가늠할 시험대로 주목받았다.9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정상은 '뼈 있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겉으로는 비교적 유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135분간 이어진 확대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투키디데스의 함정(패권국과 신흥국의 충돌)' 극복을 언급하며 "싸우면 모두가 상처 입는다. 우리는 적이 아니라 파트너가 돼 공동 번영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충돌을 관리 가능한 공존 체제로 바꾸면서 미국의 견제와 압박 수위를 낮추려는 의도가 읽힌다.트럼프 대통령도 "미·중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좋아질 것"이라며 "우리는 환상적인 관계이고 당신은 훌륭한 지도자"라고 화답했다. 이란 전쟁 장기화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가시적 성과가 절실한 트럼프로선 대두·쇠고기·항공기 판매 확대와 대규모 대미 투자, 무역 불균형 완화 등 경제적 실리를 우선한 메시지를 내놓은 셈이다.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문제, 한반도 문제 등도 논의됐지만 공개적으로 부각되지는 않았다. 다만 시 주석은 대만 문제에 대해 "잘못 다루면 양국 관계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강한 톤으로 경고했다. 미국과의 경제 교류와 대만 문제 등을 하나의 '패키지 협상' 틀로 묶어 향후 미·중 관계의 새 규범을 중국에 유리하게 설계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협력은 세계에 큰 이익"이라고 하면서도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럼에도 미·중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건설적·전략적 안정 관계'를 구축하기로 뜻을 모은 것은 유심히 지켜볼 대목이다. 경제·공급망·기술 패권을 둘러싼 충돌을 일단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려는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이런 흐름이 향후 상당 기간 미·중 관계의 기본 방향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자국 중심주의를 앞세운 G2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여전히 깔려 있다.이런 미·중 신질서 모색이 현실화할 경우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예단하기 쉽지 않다. 미·중 갈등이 일정 부분 완화되면 우리 역시 중국과의 경제·산업 교류 확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반도체·배터리·소비재·문화 산업 등에서 숨통이 트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미·중 갈등 국면에서 공급망 재편의 수혜를 입었던 한국 제조업의 전략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약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미·중 정상은 15일 한 차례 더 정상회담을 갖는다. 공동 선언문이 나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앞으로의 국제질서가 협력과 견제, 공존과 경쟁이 동시에 작동하는 훨씬 복합적이고 난해한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 질서를 짜는 G2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 역시 국가 생존 공식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할 시점이다.
[사설]끝내 '자멸의 방아쇠' 당길 텐가
삼성전자 노사가 중앙노동위원회 사후조정에서도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노조는 '연봉의 최대 50%'라는 성과급 상한 폐지, 연간 영업이익의 15% 지급을 '제도화'할 것을 거듭 요구했고, 회사는 업계 최고 수준의 특별보상은 가능하지만 노조가 요구하는 성과급 산식의 고정 제도화는 어렵다고 맞섰다. 총파업 가능성이 현실화하면서 한국 경제 전체가 긴장하고 있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무조건 성과급으로 달라는 노조의 요구는 해외 빅테크 기업들 사이에선 유례를 찾기 힘들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개인별 성과에 따른 차등 보상과 양도제한조건부주식 등 주식 지급 방식을 활용한다. 현금 위주의 단기 보상보다 회사 성장과 주가에 연동되는 주주 자본주의형 보상 체계를 운용하는 것이다. 노조는 EVA(경제적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산정하는 OPI(초과이익성과급) 체계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불투명하다고 주장한다. 이 제도가 일반 직원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지않은 측면도 있다. 그러나 EVA는 영업이익뿐 아니라 대규모 설비투자 비용과 자본비용까지 반영해 기업이 실제 얼마나 지속가능한 부가가치를 창출했는지를 따지는 방식이다. 막대한 선행 투자와 긴 업황 사이클을 감당해야 하는 반도체 산업 특성을 고려하면 상당히 정교한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불황기에도 수십조원 규모의 설비 투자를 이어오며 미래 경쟁력을 유지해왔다. JP모건은 삼성전자가 노조안을 수용할 경우 영업이익이 최대 12% 감소하고 파업 시 최대 43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만큼 글로벌 시장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는 의미다. 지금의 반도체 초호황은 언제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 모르는 '불안한 호황'에 가깝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까지 삼성전자 노사 갈등에 공식 우려 성명을 냈다. 그런데도 노조는 상한선 없는 영업이익 15% 제도화를 요구하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사내 노노 갈등을 부르고 있는 것은 물론 다른 대기업 노조들까지 영업이익의 'N%'를 요구하는 도미노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반도체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국가 경제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라는 발동 요건을 충족하는 만큼 정부가 21년 만의 긴급조정권 발동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대화가 우선"이라고 신중한 입장이지만, '모든 경우의 수'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파업이 시작되면 생산 차질은 물론 고객 신뢰와 기업 이미지 훼손, 경쟁 국가·기업의 기술 추월 가능성까지 감수해야 한다. 자칫 역대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르는 쟁의행위가 될 수 있다. 파업 예고일인 21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세계 반도체 전쟁의 한복판에서 우리 스스로 '자멸의 방아쇠'를 당기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
[사설]'국민배당금' 불쑥 던져놓고 '개인의견'이라니
AI 산업의 호황으로 발생하는 역대급 '초과세수', 구조적 '초과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제도적 장치로 '국민배당금' 논의가 제기됐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12일 SNS를 통해 "한국이 구조적 희소성과 지속적 초과이윤을 기반으로 한 '기술독점경제에 가까운 구조'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AI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이 아니라 국민이 함께 쌓아온 기반 위에서 나온 것"이라며 이익의 일부를 국민과 구조적으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 사례로는 '청년 창업 자산' '농어촌 기본소득' 등을 거론했다.반도체 슈퍼사이클과 AI 투자 열풍은 단순한 경기 반등을 넘어 산업 지형 자체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 재정 운용의 기준을 다시 고민하자는 문제 제기 자체는 의미가 있다. 초과 세수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면 성장의 과실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할 방안을 고민하는 일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제다.그러나 몇 가지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 우선 '배당'이라는 표현부터 적절치 않다. 기업 활동의 성과를 국가가 공동 소유물처럼 재분배하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수 증가는 기업의 투자와 시장 경쟁의 결과다. 이를 정치가 임의로 배분할 수 있는 재원처럼 접근하면 투자 유인을 훼손하고 시장 질서를 왜곡한다는 논란을 키울 수 있다. 특히 현금성 지원은 단기 체감 효과가 커 정치적 유혹과 결합하기 쉽다. 정책 의도 역시 보다 명확해야 한다. 해당 발언 직후 증시가 출렁인 것은 시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대한 '추가 과세' 신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뒤늦게 "새로운 횡재세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늘어난 세수를 활용하자는 취지"라는 해명이 나왔지만, 재정 메시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시장 신호가 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해외 사례를 단순 원용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북해 유전 수익을 국부펀드로 축적해 복지 재원으로 활용해온 노르웨이 모델은 자원 소득을 장기 금융자산으로 전환한 경우다. 기업 활동 과정에서 늘어난 법인세 수입을 재원으로 하는 우리와는 구조 자체가 다르다.무엇보다 우리의 재정 여건은 넉넉하지 않다. 관리재정수지 적자와 빠르게 늘어난 국가채무를 감안하면 초과 세수가 들어온다고 해서 재정 규율까지 느슨해져서는 곤란하다. 초과 세수를 곳간에만 묶어두자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소비'가 아니라 '투자'다. 청년 고용, 저출생과 고령화 대응, 산업 전환에 필요한 교육과 기술 투자,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 같은 구조 개혁 과제에 우선 투입돼야 한다. 그래야 일시적 호황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초과 세수 논의는 결국 재정 철학의 문제다. 더 많이 거둔 세금을 어떻게 미래의 힘으로 바꿀지, 그 원칙을 세우는 일이 '국민배당' 논쟁보다 앞서야 한다. 청와대는 논란이 커지자 "정책실장 개인 의견"이라고 했다. 이런 민감한 의제를 불쑥 던져놓고 '개인 의견'이라니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사설]"나무호 2차례 타격 확인"…더는 관찰자일 수 없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한국 HMM 소속 화물선 '나무호'의 화재는 외부 공격에 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1차 타격으로 파손된 선미 기관실이 다시 공격받으며 폭발해 폭 5m, 깊이 7m의 구멍이 뚫렸다. 누군가 1분 간격으로 같은 지점을 타격했다는 사실은 우발적 사고가 아닌 기획된 공격임을 보여준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국가 전략 물류가 직접 위협받은 이상, 한국은 더 이상 중동 분쟁의 관찰자가 아니라 피해 당사국이 됐다. 대통령실은 11일 "민간 선박에 대한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적절한 수위의 대처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그동안 정부는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 왔다. 미국이 일찌감치 이란을 배후로 지목한 것과 달리 정부는 피격 여부조차 단정하기 어렵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합동 조사 이후에도 '미상의 비행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공격 주체 특정에는 선을 그었다. 주한 이란 대사를 초치하면서도 이란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관계 확인을 우선하겠다는 기조지만, 국제사회가 가해자를 특정하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대응이란 지적이 나온다.정부는 지난 6일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조사단을 급파했다. 당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피격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추가 정보를 검토한 결과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초기 판단의 한계였는지 외교적 파장을 고려한 수위 조절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확실한 것은 국면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피격이 확인된 이상 '선조사 후대응'이라는 원칙만으로 상황을 관리하기는 어려워졌다. 당장 시급한 것은 우리 선박의 안전이다. 현재도 이 해역에는 우리 선박 수십 척이 운항하거나 대기 중이다. 정부는 모든 외교적 역량을 동원해 이들이 안전하게 항로를 벗어날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안전 보장을 확보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란 정부로부터 재발 방지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우리 상선이 위험에 노출되는 악순환을 끊지 못한다면, 사건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이번 사태는 그간 유지해 온 '거리두기 외교'의 한계를 드러낸다. 한국은 미국 주도의 해양안보 구상 참여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이는 분쟁에 가담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피해를 입은 국가가 자국민과 자국 선박의 안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기본 책무의 문제다. 그렇다면 호르무즈 다국적군 구상, 아덴만 청해부대의 작전구역 확장, 비전투 인력 파견 등 다양한 선택지도 더 이상 추상적 논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익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외교적 모호함은 방패가 되기 어렵다.정치권 역시 이번 사태를 정쟁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국가 물류망이 공격받은 엄중한 안보 위기 앞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정부는 단호하고 냉정한 대응을 모색하고, 국회는 정부의 외교적 협상력에 힘을 실어주는 초당적 협력을 보여줘야 한다. 나무호 피격은 한국 외교·안보 기조가 시험대에 오른 중대한 전환점이다. 정부는 외교적 중립이란 틀에 갇히기보다 국민의 안전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사설]무위로 끝난 개헌…결국 정치의 실패다
국민의힘을 뺀 여야 6개 정당이 공동 발의한 개헌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8일 본회의에서 "6·3 지방선거 개헌 투표를 위한 절차는 오늘로써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국민의힘이 표결 불참에 이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로 맞서기로 하자 더 이상 절차를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로써 39년 된 헌법을 바꾸려는 시도는 또다시 무위로 돌아가게 됐다.지난달 초 발의된 개헌안에는 계엄 선포에 대한 국회 통제 강화, 5·18 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 정신 계승 명시, 국가의 지역균형발전 의무 구체화 등이 담겼다. 내용만 놓고 보면 여야 간 이견이 크지 않은 사안들이다. 합의 가능한 내용부터 추진하자는 이른바 '단계적 개헌'이 동력을 얻을 수도 있었지만 정치 현실이 이를 받쳐주지 못했다. 형사·사법체계 개편을 둘러싼 갈등 속에 국민의힘은 개헌 논의에서 이탈했고, 개헌 반대를 '계엄 옹호'와 연결한 여권의 대응은 감정의 골만 더 깊게 만들었다. 국민적 관심이 그리 높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 불신까지 커지면서 무산은 예견된 수순에 가까웠다.헌법이 개헌 요건을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으로 엄격히 규정한 것은 사실상 여야 합의를 전제로 하라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결과는 특정 정당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 전반의 실패에 가깝다. 국민의힘이 오락가락하다 개헌 논의에 불참하고 당론으로 표결을 거부한 책임이 가볍지 않지만, 민주당 역시 설득과 조율에 충분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100석이 넘는 제1야당과의 충분한 교감 없이 이탈표만 기대한 접근은 애초에 무리였다. 개헌은 오랫동안 '필요하지만 지금은 아닌 일'로 미뤄져 왔다. 그러나 1987년 체제의 헌법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은 이미 널리 공유돼 있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2028년 총선이 가시권에 들어오면 개헌 논의는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사실 지방선거 이후라고 해서 개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정치 환경이 조성될지도 불투명하다.1987년 9차 개헌 당시 정치권은 의석수에 상관없이 여야 동수의 8인 정치회담을 통해 한 달 만에 합의안을 도출했다. 그때는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시대적 에너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 국민들의 관심은 미적지근하고 정치권은 내란 세력이네 아니네 하며 극단 대치를 이어가는 실정이다. 개헌은 단기적 정치 지형이나 유불리를 넘어 국가 대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중대한 과제다. 낡은 틀을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 이번에 논의됐던 헌법 전문과 계엄 통제뿐 아니라 권력구조 개편까지 함께 올려놓고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가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 역시 개헌으로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야가 다시 그 출발선에 서지 못한다면, 개헌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언젠가는 해야 할 일'로만 남게 될 것이다.
[사설]북한 '핵 헌법'…더 굳어진 김정은 1인 체제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지난 3월 하순 헌법 개정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 사용권'을 명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휴전선을 사실상의 국경선으로 설정하는 영토 조항을 신설하고, '통일'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등 남북 '두 국가' 노선을 헌법에 반영했다.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두 국가 노선을 분명히 했지만 대남 적대성은 상당 부분 조절됐다" "핵 포기 의사가 없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선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김정은 집권 15년 차에 단행된 이번 헌법 개정은 여러 측면에서 중대한 함의를 지닌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핵무력에 대한 지휘권은 국무위원장에게 있다" "국무위원장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핵무력 사용 권한을 위임할 수 있다"는 내용을 헌법에 명문화한 점이다. 핵 보유를 체제 유지의 헌법 질서로 못 박은 것이기 때문이다.북한은 이미 2022년 이른바 '핵 교리'를 통해 핵 보복 원칙을 공식화했고, 2023년부터는 핵 공격 전반의 지휘통제 체계를 뜻하는 '핵 방아쇠'라는 표현도 사용해 왔다. 그러나 핵 사용 교리를 법령이나 규정 수준이 아니라 헌법에 직접 명시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핵 사용권 위임 조항은 김정은 제거를 목표로 한 이른바 '참수작전' 상황에서도 자동적 핵보복이 가능하다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북한이 남측 국경을 대한민국으로 명시하는 영토 조항을 신설한 것도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이는 김정은이 선언한 '적대적 두 국가론'을 헌법 차원에서 공식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개정 헌법 서문에서 김일성·김정일 관련 표현을 삭제하고, 국무위원장의 권한과 위상을 대폭 강화한 대목 역시 마찬가지다.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김정은 1인 절대권력을 국가 체제의 중심축으로 더욱 굳혀가는 흐름이 선명해졌다고 볼 수 있다.'대한민국 완전 점령·평정·수복'이나 '불변의 주적' 같은 표현이 제외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북한의 대남 노선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겉으로는 정상국가 이미지를 연출하려 하지만, 핵무력과 세습 독재 체제를 헌법으로 고착화하고 있다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문제는 우리의 대응이다. 이번 개헌은 북한 핵이 더 이상 협상용 카드가 아니라 체제 자체를 떠받치는 핵심 질서로 격상됐음을 보여준다. 막연한 낙관론이나 정치적 수사에 기대기보다 북한의 의도와 한계를 냉정하게 직시한 채 안보·통일 전략 전반을 보다 현실적이고 치밀하게 재정비해야 할 시점이다.
[사설]'꿈의 7천피' 돌파, 성취이자 경고다
코스피가 6일 사상 처음 7000선을 돌파했다. 6000선을 넘어선 지 두 달여 만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10% 안팎 급등하며 '꿈의 지수'가 현실이 됐다. 외국인 통합계좌 규제가 완화되는 등 외국인 투자자들의 복귀 여건이 조성된 영향도 컸다. 미국-이란 전쟁 등 불안한 대외 변수 속에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는 작지 않다. 그러나 이 숫자가 한국 경제 전반의 체력을 반영하는지는 냉정히 따져볼 문제다. 지금은 환호보다 지표의 이면을 점검할 때다.최근 상승장의 동력은 전형적인 경기 확장이라기보다 반도체 쏠림에 가깝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이 시가총액의 40% 이상을 차지하며 지수를 끌어올리고 있다. 수출과 생산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증가세는 제한적이다.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산업 전반으로 온기가 확산됐다고 보긴 어렵다.이 같은 편중은 구조적 취약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도체 업황 둔화나 가격 변동이 발생할 경우 충격은 증시에 그치지 않고 성장률과 수출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만 질주하고 다른 업종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산업 간 격차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식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도 잇따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1.71%로 전망했는데, 15년째 하락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과감한 구조개혁이 없다면 2030년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실물경제와 주가지수 간 괴리도 뚜렷하다. 자영업과 지방 상권의 부진은 여전하고, 내수 침체와 고용 불안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1분기 법원 경매 신청 건수가 3만 건을 넘어 1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수의 고공행진이 체감경기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물가와 금리 변수도 부담이다. 4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6% 오르며 다시 상승 압력을 보였다. 금리가 인상될 경우 '빚투'와 '영끌'에 의존한 투자자들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36조원을 넘는 상황에서 시장 변동성 확대는 곧바로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결국 주식시장의 지속 가능한 상승은 경제 체질 개선에 달려 있다. 그러나 호황기일수록 구조개혁은 뒤로 밀리기 마련이다. 규제 혁신과 노동시장 개편, 산업 포트폴리오 다변화 같은 굵직한 과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 특정 산업에 과도하게 의존한 성장 구조로는 대외 충격을 견디기 어렵다. 코스피 7000선은 성취이자 경고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점검이고, 축배가 아니라 체질 개선이다.
[사설]삼성 흔드는 노조 리스크…'무노조 경영' 탈피의 기막힌 역설
'초격차'를 상징해온 삼성이 뜻밖의 '노조 리스크'로 기업 경쟁력에 경고등이 켜졌다.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가 먼저 파업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57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삼바는 2025년 2조693억원의 영업이익을 각각 올려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음에도 축제 대신 노사 갈등이 전면화된 장면은 상징적이다. 노조 허용 6년 만에 맞은 이번 사태는 개별 기업의 노사 분규를 넘어 '제조업 강국'의 균열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무노조 경영' 탈피의 기막힌 역설이다.노조의 요구 수준은 사회적 공감대를 크게 벗어나 있다. 삼성전자 노조의 '영업이익 15%'와 삼바 노조의 '영업이익 20%' 성과급 요구는 기업의 투자 구조와 지속 가능성을 감안할 때 과도하다. 삼성전자의 경우 요구 규모가 연간 연구개발비를 웃도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미래 경쟁력의 기반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삼바도 동종업계 최고 수준의 처우를 받으면서 성과급에 '기본급 14%' 인상까지 요구하는 것은 '배부른 투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더 큰 문제는 이번 사안이 갖는 국가적 파장이다. 반도체와 바이오는 한국 경제의 중추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각국이 총력전을 벌이는 전략 산업이다. 이익 배분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기술 투자 지연과 글로벌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제조업 강국으로서 한국이 쌓아온 모멘텀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사안은 결코 가볍지 않다.삼성 노조는 기업 성과의 성격에 대한 인식부터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이익은 회사 구성원의 전유물이 아니다. 근로자는 물론 주주, 협력 업체, 정부와 지역사회가 함께 만든 결과다. 특히 국민 세금이 소요되는 막대한 인프라와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전략 산업의 경우 그 성과는 더욱 공공성을 띤다. 그럼에도 초과이익을 특정 부문 구성원에게만 집중 배분하라는 요구는 내부 형평성은 물론 사회적 수용성 측면에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최근 비반도체 부문 조합원들이 대거 노조를 탈퇴하는 등 '노노 갈등' 양상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당장의 이익 실현에만 매달리는 방식으로는 초경쟁 시대의 현실을 감당하기 어렵다. 기업은 성과 공유의 원칙과 기준을 투명하게 제시하고, 노조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국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자칫 이번 사태가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의 요구와 행태가 '탐욕'의 경계선을 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업 경쟁력의 심각한 균열을 알리는 신호탄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볼 때다.
[사설]"북한 대신 조선" 공론화…장관 뜻인가, 정부 뜻인가
통일부가 북한을 정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줄여서 '조선'으로 부르는 방안을 공론화를 거쳐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통일부는 29일 한국정치학회 주최로 열린 '평화공존을 위한 이름 부르기: 북한인가 조선인가' 특별학술회의를 후원하며 호칭 변경 논의를 공식화하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그간 시무식과 학술행사, 언론 간담회 등에서 북한을 '조선', 남북 관계를 '한·조 관계'로 지칭해 논란을 불러왔다. 북한이 우리를 '대한민국' 또는 '한국'으로 부르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북한이 오랫동안 '남조선' '괴뢰도당'으로 부르던 우리를 2023년 7월 이후 '대한민국' '한국'으로 바꿔 부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당시 김여정 담화와 그해 8월 김정은의 해군사령부 연설을 계기로 공식화됐다. 그러나 이는 존중의 표현이 아니라, 관계 단절과 적대의 맥락 속에서 나온 호칭 변화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실제로 북한은 같은 해 말 당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를 '불변의 주적'으로 불러 왔다. 민족 개념을 사실상 폐기하고 관계를 단절함으로써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없애고 체제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가 분명하다.정 장관의 호칭 변경 시도는 끝없는 대결의 악순환을 끝내고 평화 공존의 공간을 넓히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의 대남 단절·적대 전략에 보조를 맞추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호칭을 바꾸는 것은 북한을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의 상대가 아니라 별개의 국가로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와도 충돌한다.남북 관계가 꽉 막힌 상태에서 통일부의 존재감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 해법이 통일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방향이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정 장관은 지난해 통일부 명칭에서 '통일'을 제외하자는 구상을 밝혀 논란을 빚었고, 최근엔 북한 구성시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언급으로 한미 간 대북 정보 공유에 부담을 준 적도 있다. 호칭 변경은 우리의 국가 정체성과 연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다. 정 장관 개인의 소신인지, 정부의 공식 입장인지부터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사설]"쿠팡 총수는 김범석"…공정하고 일관된 법 적용이 답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9일 전자상거래 대기업인 쿠팡의 동일인을 기존 '쿠팡 법인'에서 자연인인 김범석 쿠팡 Inc 의장으로 변경 지정했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논란이 된 쿠팡 지배구조에 대한 당국의 첫 판단이다.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은 대기업 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기업 총수나 법인을 말한다.이번 지정은 쿠팡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2021년 이후 5년 만의 변화다. 김 의장은 그동안 외국 국적과 친족의 국내 계열사 경영 미참여 등을 내세워 동일인 지정을 피해왔다. 하지만 김 의장의 동생이 국내 법인에서 부사장 직함을 사용하며 경영에 참여하고, 140억 원에 이르는 보수와 인센티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쿠팡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이 인정됐다.동일인 지정으로 김 의장에게는 한국 내 대기업 총수와 동일한 수준의 책임과 의무가 부과된다. 4촌 이내 혈족 등 친인척 주식 보유 현황과 거래 명세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하고, 일감 몰아주기를 비롯한 사익 편취가 금지되는 등 각종 규제를 받게 된다. 1980년대 도입된 동일인 지정 제도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아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지만, 현재는 한국 대표 기업에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만큼 쿠팡만 예외로 둘 수는 없다. 이번 조치는 해외 상장 구조를 통한 국내 규제 회피를 막고 기업 경영의 책임성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그러나 쿠팡 문제는 일개 기업 차원을 넘어선 것도 사실이다. 쿠팡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이중 규제"라며 반발하고, 행정소송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 54명이 "미국 기업 쿠팡에 차별적 대우를 하고 있다"며 주미 한국대사관에 항의 서한을 보냈고,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 90명은 "사법주권 침해"라며 주한 미국대사관에 맞불 서한을 보내기로 하는 등 한·미 관계의 민감한 뇌관으로 번지는 양상이다.정부로선 적법하고 공평한 행정 조치라는 점을 미국 정부와 의회, 그리고 쿠팡 측에 충분히 설명하면서, 커질지 모를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번 동일인 지정이 최근 대북 정보 공유 제한 등의 문제가 불거진 한·미 관계에 불필요한 갈등 요인으로 비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쿠팡은 미국 상장 기업이지만 입점 소상공인이 30만 명을 넘었을 만큼 국내 유통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쿠팡 문제에 감정적 대응이 결부돼서는 안 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공정하고 일관된 행정 조치의 적용이 궁극적으로 불신과 갈등의 소지를 줄이는 길이다.
[사설]잔인한 속도 경쟁… 삼성, '균열의 위기' 넘어서야
삼성전자 노조가 이재용 회장 자택 앞에서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성과급 갈등으로 시작된 노사 분쟁이 공장과 교섭장을 넘어 총수의 사적 공간까지 번진 것이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28일 "실질적 결정권자 앞에서 직접 외치겠다"며 5월 21일 총파업 궐기대회까지 농성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전날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삼성의 이익은 노사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자산"이라며 자제를 촉구했지만, 해당 노조는 오히려 '총수 자택 앞'이라는 강공 카드를 택했다.초호황기를 맞은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이처럼 성과급 갈등으로 흔들리고 있다. 앞서 SK하이닉스가 노조 요구를 받아들여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하자, 그 불똥은 삼성전자로 옮겨붙었다. 삼성 노조는 초과이익성과급 상한선인 '연봉의 50%' 기준 폐지와 함께 영업이익의 15%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성과급 문제를 파업과도 연계하고 있다.갈등의 여파는 이미 생산 현장에서 감지되고 있다. 노조 측 주장에 따르면 지난 23일 집회가 열린 날 밤, 파운드리 생산은 58%, 메모리 생산은 18% 감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도체 공정은 연속 가동을 전제로 설계돼 있어 인력 이탈이나 작업 지연만으로도 사실상 조업 중단에 준하는 손실이 발생한다. 흐름이 한 번 끊기면 정상화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노조는 다음 달 18일간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30조 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더 큰 문제는 신뢰와 공급망 안정성의 흔들림이다. 글로벌 고객사는 작은 리스크 신호에도 대체 공급선을 검토한다. 실제로 벌써부터 해외에서 공급 차질 가능성을 묻는 문의가 이어진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공정 검증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면, 한 번 이탈한 고객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이번 사태가 예사롭지 않은 까닭은 산업의 속성에 있다. 반도체는 오늘의 이익을 내일의 설비와 연구개발에 재투입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성과를 나누는 일은 필요하지만, 기준이 단기 이익에 묶이면 장기 투자 여력을 압박할 수 있다. 대만 TSMC는 투자와 성장을 우선한 뒤 잉여 이익 범위에서 성과급을 결정하는 구조를 유지해 왔다. 『칩 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는 "메모리 산업은 극단적인 경쟁과 속도를 요구한다"며 "혁신의 속도를 잃으면 경영진과 노동자 모두 패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잔인한 비즈니스라는 것이다. 성과급 논란은 기업 내부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한국 증시 상승의 배경에는 AI 투자 확대와 HBM 수요 증가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다. 생산 차질과 투자 지연이 현실화될 경우 충격은 주가와 투자 심리를 거쳐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노동의 기여는 존중돼야 한다. 동시에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특성도 외면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단기 성과에 연동된 대립이 아니라 투자와 현금 흐름, 중장기 성과를 함께 반영하는 예측 가능한 보상 체계다. 더 많이 나누는 문제가 아니라, 더 오래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초호황의 역설 국면이다. 삼성 노사는 '균열의 위기'를 함께 넘어서야 한다.
[사설]'서브 2'가 연 문명사의 한 장면… 인간과 기술의 공존을 묻다
마라톤 풀코스 42.195㎞를 2시간 이내에 주파하는 '서브 2'는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선으로 여겨져 왔다. 심폐 기능과 근육 피로도를 고려할 때 극도로 어려운 영역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2026 런던 마라톤에서 케냐의 사바스티안 사웨가 1시간 59분 30초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그 장벽은 마침내 허물어졌다. 2위 역시 2시간 안쪽이었다. 사웨는 "인간에게 한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흔히 이런 기록 경신을 특출한 개인의 탄생이나 기적 같은 우연으로 넘기곤 한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두 명의 선수가 동시에 2시간의 벽을 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인의 천부적 재능을 넘어, 인류가 축적한 유전적·과학적 역량이 총체적으로 발휘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성과는 인간의 집요한 의지, 과학적으로 설계된 훈련, 정교한 식단, 러닝화 기술 등이 복합적으로 만들어 낸 결과다. 즉 인간과 기술, 환경과 지식, 공동체가 함께 빚어낸 기록이다.최근 우리는 AI의 급속한 발전 앞에서 인간의 역할이 축소될지 모른다는 존재론적 불안을 자주 접해 왔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은 기대보다 두려움을 키운다. 하지만 이번 기록은 '인간 한계'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한계는 고정불변의 선이 아니라, 조건이 바뀌면 함께 이동하는 유동적 경계라는 사실이다.인류는 늘 도구를 통해 스스로를 확장해 왔다. 활과 수레는 신체의 범위를 넓혔고, 인쇄술은 지식의 지평을 넓혔으며, 컴퓨터는 사고의 방식과 속도를 변형시켰다. 오늘의 AI와 데이터 과학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것은 인간을 밀어내는 존재라기보다, 인간 능력을 보완하고 증폭하는 수단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결승선에서 두 팔을 치켜든 사웨의 모습은 단순한 승리의 제스처를 넘어선다. "한계는 기술과 함께 넘는 것"이라는 인류의 선언에 가깝다. 인간과 기술의 공존이다. 새로운 문명의 시대, '서브 2'의 기록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인간은 한계를 넘지 못하는 존재가 아니라, 한계를 끊임없이 새로 정의해가는 존재라는 점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은 기술을 이유로 인류 스스로의 가능성을 축소하는 태도일지 모른다.
[사설]반도체 초호황…당장 '소비'할 것인가 '미래'에 투자할 것인가
글로벌 인공지능(AI) 업체인 오픈AI가 24일 내놓은 새 AI 모델 GPT-5.5는 '전략적 자율 AI'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선 모델보다 뛰어난 추론·코딩 능력에 더해, 스스로 복잡한 과제를 장시간에 걸쳐 끝까지 수행하는 '에이전트' 기능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인간 개입만으로도 AI가 코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가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과학·기술 연구와 교육 등 전문 분야에서 AI 활용도가 한층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주목할 점은 기술의 진보 못지않게 그것을 둘러싼 경쟁의 속도다. GPT-5.5는 직전 모델 공개 열흘 만에, 경쟁사인 앤트로픽이 '클로드 오퍼스 4.7'을 내놓은 지 불과 8일 만에 나왔다. 맥락 이해와 코딩, 에이전트 능력을 강화한 최신 모델을 거의 1~2주 간격으로 쏟아낼 정도로 필사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투자 규모는 이 같은 경쟁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알파벳(구글)·MS·메타·아마존 등 글로벌 4대 빅테크는 AI 초격차 우위를 점하기 위해 연구·설비 등 투자를 지난해 4100억 달러(약 608조원)에서 올해 6740억 달러(약 999조)로 60% 이상 늘렸다. 한국의 연간 재정 규모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글로벌 AI 산업이 '정글'과 같은 무한경쟁 체제로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수치다.사실 올 1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57조원과 37조원이라는 경이적인 실적을 낸 배경에도 AI발 반도체 수요 급증이 자리하고 있다. AI의 추론 능력 강화와 에이전트 기능 확산이 고성능 칩 수요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면서 반도체 산업이 슈퍼사이클에 진입한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호황이 우리 내부 경쟁력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중국의 추격도 경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반도체 산업은 단순 설비 투자를 넘어 더욱 진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설계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반도체 경쟁력 강화가 필수적이다. 나아가 반도체 이후 성장 동력인 로봇과 전장 분야 투자 확대도 절실하다. 생산 시스템에 인공지능을 결합하는 '피지컬 AI' 시대에 맞춰 미래 먹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기업이 이익을 냈다면 주주와 구성원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단기 성과에 안주하는 순간, 다음 사이클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이익의 상당 부분을 미래 불황에 대비하고 신산업을 개척하기 위한 연구·개발과 전략적 투자로 돌려야 한다. 지금의 성과를 당장 '소비'하는 데 급급할 것인가, '미래'로 전환할 것인가. 반도체 호황으로 확보한 여력을 어디에, 어떻게 투입하느냐의 선택이 한국 경제의 향후 10년을 가를 것이다.
[사설]'전작권 전환', 시간표 아닌 조건과 역량의 문제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미 하원 청문회에서 "2029년 1분기까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조건을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을 국방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하루 전 상원에선 "전작권 전환은 조건에 기초해야 하며, 정치적 편의주의가 앞서선 안 된다"고 했다. 발언의 결이 달라 보이지만 메시지는 일관된다. 전작권 전환의 기준은 시점이 아니라 '조건 충족'이며, 철저한 능력 검증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전작권 전환은 2007년 한·미 합의 이후 여러 차례 시점이 미뤄져 왔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가 최대 변수였다. 대체로 진보 정부가 전작권 문제에 더 적극적이었고, 현 정부 역시 임기 내 전환 의지를 밝혔다. 국방부는 올해를 '전작권 회복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했다. 전작권 전환을 위해선 최초작전운용능력, 완전운용능력, 완전임무수행능력 등 3단계별로 평가와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현재는 2단계 검증이 진행 중이다. 주목할 대목은 전작권 전환이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브런슨 사령관은 청문회에서 "서쪽으로 시야를 넓혀가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대만해협 등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대응 범위를 확장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전작권 전환 이후 주한미군의 임무와 성격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전작권 문제가 단순한 지휘권 이양을 넘어 동맹 구조 전반과 직결된 사안임을 보여준다.전작권이 전환된다고 해서 한국군 사령관이 미군을 우리 군처럼 통솔하는 건 아니다. 한국군이 연합작전을 주도하되, 사전에 합의한 작전계획과 연합지휘체계 안에서 미군과 함께 운용하는 방식이다. 결국 핵심은 군사적 역량과 더불어 양국 간 신뢰, 그리고 긴밀한 소통이다.이 점에서 최근 불거진 한·미 간 불협화음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대북정보 공유 제한 논란, 한국 기업 정책을 둘러싼 미국의 문제제기 등은 동맹간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 앞서도 양국은 연합훈련 축소, 비행금지구역 문제 등을 두고 신경전을 이어왔다. 전작권 전환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정교한 조율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믿음이 흔들리는 상태에서 일정만 앞세우는 접근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기준은 분명하다. 북한의 위협에 대해 한국군이 주도적으로 억지하고, 유사시 연합작전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가다. 여기엔 전력 증강뿐 아니라 지휘체계, 정보자산, 연합 운용 경험, 그리고 상호 신뢰가 모두 포함된다. 전작권은 되찾는 대상이 아니라 넘겨받는 책임에 가깝다. '언제까지'라는 조급함 보다 '어떻게' 라는 조건과 역량에 집중해야 한다.
[사설]올해만 7차례 도발…이 와중에 '정보 제한' 불협화음
북한이 올해 들어 잦은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1월 4일 요격 회피가 가능한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포-11마'를 시작으로, 지난 19일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대남용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일 대북 무인기 사건과 관련해 우리가 공개 사과를 한 이후에도 북한은 이를 멈추지 않고 있다.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이 집속탄이나 정전을 유발하는 탄소섬유탄을 장착한 미사일 발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집속탄은 미사일 내부에 수많은 자탄을 탑재해 단 한 발로 축구장 18개 규모인 12.5~13ha를 초토화할 수 있는 대량 살상 무기다. '강철비'를 내리는 악마의 무기로도 불린다. 탄소섬유탄은 자탄에 실린 탄소섬유가 전력망에 달라붙어 정전을 일으키는 무기로, 이른바 '정전 폭탄'이다.지난달 이란이 발사한 집속탄 미사일이 이스라엘의 요격 체계를 뚫고 텔아비브 민간 주거지역을 타격해 사상자가 발생한 사례에서 보듯, 집속탄은 자탄 분리 이후에는 요격이 어렵다. 북한이 인구 밀집 지역인 수도권을 겨냥할 수 있는 단거리 미사일에 이러한 탄두를 장착한 것은 대량 살상과 파괴를 노린 위협으로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파병을 통해 축적한 현대전 전술을 바탕으로 우리의 대응을 시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가능하다.북한이 이처럼 긴장과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통일부 장관의 '북한 우라늄 농축 시설' 발언과 미국의 정보 공유 제한 여부를 둘러싼 불협화음만 이어가고 있다. 북한의 도발 의도와 향후 시나리오에 대한 경각심은 부족한 채, 발언의 적절성이나 정보 유출 여부를 둘러싼 논란만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이란 전쟁을 거치며 한반도 안보 환경 역시 언제든 급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럴수록 북한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고 대응 태세에 한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 문제는 내부다. 북한은 미사일을 쏘고 있는데 우리는 정보 유출 공방에 발이 묶여 있다. 한미 간 정보 공유에 균열이 생긴다면 그것 자체가 안보 공백이다. 미국이 우리 정부에 불신을 갖고 있다면 이유를 따지기 전에 먼저 해소해야 한다.
[사설]李 "단계 폐지" 與 "검토 안해"…헷갈리는 '장특공제'
부동산 시장이 엇갈린 정책 신호로 혼선을 빚고 있다.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장특공제) 개편 여부를 놓고 대통령과 여당, 정치권의 발언이 서로 어긋나면서 정책 방향이 불분명해진 탓이다.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SNS를 통해 장특공제 축소 의지를 내비쳤다. 이 대통령은 "1주택도 1주택 나름"이라며 "주거용이 아닌 투자·투기용이라면 세금 감면을 해 주는 것은 이상해 보인다"고 했다. 실거주 없이 보유 기간만으로 세제 혜택을 주는 구조는 단계적으로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일부 범여권 의원들이 장특공제 조항을 삭제하고 세액공제를 신설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뒤 정치적 공방이 가열됐다. 국민의힘이 "1주택자 세금 폭탄"이라고 공격하자 이 대통령은 "명백한 거짓 선동"이라고 반박했다. '실거주' 1주택자 문제가 아니라는 취지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세제 개편을 공식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증세 논란으로 번지는 걸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현행 장특공제는 1주택자가 12억원 초과 주택을 10년 이상 보유·거주한 뒤 팔면, 양도차익의 최대 80%까지 공제해 준다. 이 대통령은 "장기 거주에 대해 양도세를 깎아주는 제도는 따로 존재한다"고 했지만 장특공제 외에 장기 거주만으로 별도의 양도세 공제를 적용하는 제도는 없다. 개편이 현실화되면 '거주'만 인정하고 '보유'는 배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이 기준이 현실에서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직장 이동이나 자녀 교육 등으로 일시적으로 거주하지 못하는 경우를 일률적으로 가르기 어렵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세 부담이 생길 수 있다. 공제가 줄면 갈아타기 비용이 커져 오히려 매물 잠김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그만큼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대통령의 말대로 투기 수요 억제와 세제 형평성 제고라는 취지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고가 자산 보유자에게 과도한 혜택이 돌아간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똘똘한 한 채' 등 고가 주택일수록 공제액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동산 정책은 의지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이미 확인된 교훈이다. 방향과 속도, 적용 기준이 명확하게 설계되고 일관되게 전달될 때 시장도 반응한다. 당정청 간 충분한 사전 조율 없이 대통령의 강한 메시지가 먼저 전해지고 당이 이를 수습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장특공제는 어떻게 된다는 건지 국민만 헷갈리게 됐다.
[사설]수억대 성과급 요구하며 파업도 불사…게도 구럭도 다 잃을라
SK하이닉스에서 촉발된 성과급 논란이 삼성전자를 거쳐 자동차·방위산업 등 주요 업종으로 번지고 있다. 업종과 임금체계는 다르지만 요구의 방향은 유사하다.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15%, 현대자동차 노조는 순이익의 30% 수준을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있다. 일부 방산업체 노조는 성과급 상한 폐지를 주장한다고 한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실력행사도 불사하겠다는 기류다. 삼성 노조는 오는 23일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5월 21일부터 18일간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올해 반도체 호황으로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3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노조 요구대로라면 45조원이 성과급으로 쓰여야 한다. 이 경우 직원 1인당 평균 성과급이 5억원에서 최대 7억원에 달한다는 추산이다. 현대차도 작년 순이익이 10조3600억 원이니, 노조 요구대로라면 3조 원이 넘는 돈을 나눠 갖게 된다. 앞서 노사 합의가 끝난 SK하이닉스도 올해 영업이익을 200조원으로 예상하면 약 20조원을 성과급으로 지급해야 한다. 기업 실적이 개선되면 직원 보상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 규모와 방식이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수용 범위를 넘어서느냐다. 기업 이익은 노사의 전유물만이 아니다. 주주의 자본, 정부의 세제·금융 지원, 소비자의 부담, 그리고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까지 여러 요소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성과급 역시 이런 복합적 구조 속에서 균형 있게 설계돼야 한다. 더욱이 지금의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직원 개개인의 노력으로만 만들어낸 성과는 아니지 않나. 반도체처럼 경기 변동이 크고 기술 전환이 빠른 산업에서는 호황기의 이익이 곧 불황기의 생존 자금이다. 이를 대규모 현금 보상으로 소진하는 구조가 굳어질 경우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여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반도체 공급망은 시시각각 재편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의 단기 호황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에 파업까지 현실화될 경우 '안정적 공급자'라는 글로벌 평판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보상의 상당 부분을 주식이나 장기 인센티브로 설계해 개인 보상과 기업의 장기 성장 목표를 연결한다. 산업 구조가 다른 만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최소한 보상이 기업의 미래 투자 여력을 잠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은 유효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얼마를 더 가져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단기 성과에 치우친 보상 경쟁은 결국 기업과 노동 모두에게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미래를 위한 재투자와 상생의 지혜가 없다면, 결국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결과를 맞을 수 있다.
[사설]호르무즈 위기… '참여 외교' 넘어 주도 나설 때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영국·프랑스 주도로 열리는 '호르무즈 해협 통항 관련 화상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미국은 빠졌지만 70여 개국이 참여하는 이번 회의는 다자외교와 국제연대를 통해 '항행의 자유'를 회복하고 글로벌 해상 물류망의 조속한 정상화를 모색하는 자리다. 이 대통령의 참석은 국익 차원에서 정당하고 시의적절하다. 이 해협을 통해 원유의 70%를 들여오는 우리에게 '항행의 자유' 보장과 지속 가능한 해상 평화 체제 구축은 국가 경제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무엇보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은 공급망 위기감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크다. 실제로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39.8%로 전 세계에서 사실상 중국(40.1%) 다음으로 높다. 이번 회의를 주도한 영국(21.0%)이나 프랑스(18.3%)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수입 에너지와 원료 의존도가 높다. 게다가 수출입 물류의 99.7%가 해상 운송에 의존하는 구조여서 해협 봉쇄는 곧바로 산업 전반의 충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문제는 이 회의를 주도하는 국가들과 우리의 이해가 결코 같지 않다는 점이다. 북해 유전을 보유한 영국이나 전력의 약 70%를 원전에 의존하는 프랑스와 한국은 에너지 구조부터 다르다. 호르무즈 봉쇄를 둘러싼 국익과 셈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항행의 자유'를 말해도 그 절박함과 우선순위에는 분명한 온도차가 있다. 우리의 이해가 저절로 반영될 것이라는 기대는 성립하기 어렵다.이 시점에서 우리가 여전히 남이 설정한 의제에 맞춰 입장을 정리하고 뒤따르는 데 익숙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호르무즈 해협과 같은 핵심 해상 교통로 문제는 더 이상 '참여 외교'로 대응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영국이나 프랑스가 주도하는 다자외교를 따라가는 수준에 머물러선 곤란하다. 이제는 입장을 바꿔야 한다.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되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글로벌 어젠다를 선제적으로 설정하고, 통행과 공급망의 규범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주체가 돼야 한다. 물론 미국과도 전략적 소통을 이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국익을 지킬 수 있다. 해상 질서와 공급망 규칙이 새로 짜이는 지금, 참여에 머무는 외교로는 부족하다. 고난도의 주도적 외교를 펼칠 때다.
[사설]'도전적 시행착오' 이끌 국가 주도 '방산 창투사' 만들자
국제질서가 힘의 논리로 재편되는 가운데 드론과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이 전투 양상을 좌우하는 이른바 '스마트 전쟁'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미 전장에서는 AI가 신속한 의사결정을 돕고, 드론·로봇을 활용한 유무인 복합체계가 위험 임무를 수행하며, 육·해·공을 넘어 우주·사이버·전자기 영역까지 모든 군사 영역과 정보환경이 초연결 네트워크로 통합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K 방산은 지대공 유도무기 천궁Ⅱ 수출 등으로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자주포·전차 등 재래식 무기체계가 주력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도 드러낸다. 전쟁 양상이 급변하는 시대를 맞아 미래전 중심의 기술 방산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해야 할 때다. 이는 국방력 강화와 방산 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도 불가피한 과제다.핵심은 국가가 나서 AI 등 미래 기술 혁신을 촉진하고 이를 국방 분야에 신속하게 접목하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조달·연구개발 체계로는 민간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기 쉽지 않다. 폐쇄적 구조와 절차 중심의 운영 방식으로는 변화의 속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민간과 국방이 적극적으로 상호 교류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전장 혁신을 주도하는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와 팔란티어의 AI 사례에서 보듯 방산의 미래 기술은 민간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다. 이는 스타트업 등 민간이 개발한 혁신 기술을 신속하게 방산에 접목할 수 있는 민관협력 생태계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16일 '새로운 전쟁의 시대, K방산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열린 '시대포럼'에서 국방부와 국가정보원의 방산 분야 창업투자회사(창투사) 설립 구상이 제안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99년 미국 중앙정보국(CIA) 주도로 설립된 국가 주도의 방산 전문 벤처캐피털(VC)인 인큐텔(In-Q-Tel)이 그 모델이다. 인큐텔의 투자로 성장한 대표적인 기업이 팔란티어다. 국가가 방향을 제시하되 민간의 기술과 자본을 활용하는 방식은 혁신의 속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실패를 축적해 기술을 고도화하는 '도전적 시행착오' '진화적 획득전략'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물론 K 방산의 도약이 제도 하나로 이뤄질 수는 없다. 군의 명확한 수요 제시, 규제와 조달 시스템 개선, 인재 확보 등 전반적인 구조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 첨단 기술이 국방으로, 다시 산업으로 확산되는 선순환 체계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지금의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다. K 방산이 현재의 성과에 머물지 않고 미래 기술 기반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지금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경쟁력의 지속도 장담하기 어렵다. 국가가 방산 벤처 생태계 조성을 주도하고, 민간 혁신을 끌어들이는 전환을 서둘러야 할 때다.
[사설]'골든타임' K 방산, 혁신으로 질적 전환 서두를 때
K 방산이 바야흐로 '골든타임'을 맞고 있다. 지난 2월 말 개전한 이란 전쟁에서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인 천궁Ⅱ가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돼 성능을 증명한 이후 해외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K-9 자주포, K-2 전차, FA-50 경공격기, 천무 다연장로켓 등도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성과도 가시적이다. 뛰어난 기술력과 높은 신뢰성, 빠른 납기, 합리적 가격을 앞세워 2025년 아랍에미리트(UAE)·폴란드 등 16개국에 154억 달러를 수출했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올해는 방산 수출이 270억 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양적 팽창은 물론 고수익 체제로의 전환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K 방산이 국가 전략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을 갖춰가고 있다.그러나 K 방산은 이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의 전쟁 양상이 대대적인 기술혁신과 시스템 개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은 인공지능(AI)과 로봇, 빅데이터와 스마트 시스템, 드론과 유무인 복합체계, 그리고 이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 등 미래형 기술의 집결과 융합이라는 특징을 보여준다. 화력과 기동력 중심의 전통적 무기 체계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흐름이다.이런 상황에서 K 방산이 경쟁에서 살아남고, 나아가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낡은 제도를 개선하고 미래형 기술 혁신에 매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방산 벤처 기업들의 창의적 도전을 독려하기 위한 무기체계 획득 제도와 연구개발 체계 등 방산 구조의 재정비가 시급하다. AI 등 신기술의 군사적 활용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고 윤리·법적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동맹국과의 상호운용성 확보 역시 중요한 과제다. 이를 통해 K 방산을 기술집약적인 초격차의 미래산업으로 진화시켜야 한다. 고도의 신기술이 새로운 전쟁 양상을 이끄는 상황에서 국제 질서의 불확실성 또한 확대되고 있다. 강대국 간 경쟁이 심화하고 군비 경쟁이 확산하면서 '힘의 논리'가 다시 부각되는 흐름이다. 이런 환경에서 방산은 단순한 수출 산업을 넘어 안보와 직결된 전략 산업으로서의 의미도 커지고 있다. 결국 K 방산의 과제는 분명하다. 지금의 수출 호조에 안주해서는 곤란하다. 그간의 성과를 토대로 미래 전장에 대응하는 산업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지금이 국가적으로 그 전환을 서둘러야 할 때다. 무엇보다 우리 정부와 군, 방산 및 스타트업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체계적 모델을 구축하는 게 절실한 시점이다. 16일 본 매체가 '새로운 전쟁의 시대, K 방산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시대포럼을 여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대포럼] AI 대전환의 시대, AI 풀스택 대한민국의 도약](https://i.ytimg.com/vi/VcbpSJtXg6o/maxresdefault.jpg?width=1920&quality=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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