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관통하는 어젠다를 제시하고, 구체적 해법을 모색하는 미디어 싱크탱크입니다.
HD현대중공업이 2024년 4월 페루 국영 시마(SIMA)조선소와 맺은 6406억원 규모 계약은 함정 4척을 파는 사업이 아니다. 호위함과 원해경비함 각 1척, 상륙함 2척 모두 페루 현지에서 건조된다. 한국 기업은 설계와 기자재, 기술을 넘긴다. 배를 파는 것이 아니라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계약이다.무기 수출의 성격이 이렇게 달라졌다. 구매국은 자국 공장에서 만들고, 자국에서 고치고, 자국 기술자가 다룰 수 있기를 원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무기·탄약 분야 자국 생산 비중을 대폭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고, 유럽은 나토 재편 국면에서 역내 조달과 산업 참여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완제품을 실어 보내고 대금을 받는 거래는 성립하지 않는다.지난해 말 기준 국내 방산 4사의 수주잔고는 226조원이 넘는다. 사상 최대다. 그러나 계약서에 적힌 조건을 지킬 사람과 조직, 돈은 따로 준비돼 있지 않다.━법 조문은 있지만 권한이 없다━필리핀에서는 2022년 수출한 호위함 2척의 정비를 현지..
시대를 관통하는 어젠다를 제시하고,구체적 해법을 모색하는 미디어 싱크탱크입니다.
'호미(homie)'라는 말이 있다. 한 골목에서 자라 총알도 대신 맞아줄 사이를 부르는 미국 흑인 은어다. 그 세계에는 글로 적히지 않은 규칙이 있다. 떠서 큰돈을 만지면 남은 호미들을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래퍼 MC 해머는 그 규칙을 끝까지 지킨 사람이었다. 1990년 'U Can't Touch This'로 세계를 흔들고 이듬해에만 3300만달러를 벌어들인 그는, 고향의 '호미' 200여 명을 직원으로 들이고 매달 50만달러를 지급했다.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6년 그는 거액의 빚을 안고 파산했다. NBA 전설 앨런 아이버슨은 한때 50명에 이르는 식솔을 거두다 2억달러 가까운 돈을 날렸다. 학자들은 성공한 한 사람에게 공동체가 청구서를 내미는 문화에 블랙 택스(black tax)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국에서는 반도체 '초과이윤'이라는 말이 블랙 택스의 유령을 불러낸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5월 반도체 호황의 과실을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하자며 '국민배당금'을 말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반도체를 두고 "공공재"라 했다. 김 장관은 최근 한발 더 나아갔다. 로이터 인터뷰에서 그 과실을 협력업체와 나누는 방법으로 '단가 조정'을 제시하며, 이를 "공산주의가 아닌 명백한 재투자"라 했다.문제는 그 밑에 깔린 생각이다. '국민배당금'이든 '공공재'든, 두 말이 딛고 선 전제는 같다. 기업이 거둔 이익의 일부는 애초에 그들의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다. 두 사람은 그 몫을 '초과이윤'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 산업을 지배하는 것은 초과이윤이 아니라 '초과위험'이다.메모리 반도체는 호황과 불황이 극단을 오가는 세계다. 기업은 수십조원을 먼저 투자하고, 그 결실은 몇 해가 지나서야 거둔다.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불과 3년 전인 2023년만 해도 SK하이닉스는 7조원이 넘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15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냈다. 지금의 이익은 그 위험을 견디고 살아남은 자에게 주어진 보상이다.경제학은 이 점을 일찍이 정리해뒀다. 훗날 시카고학파의 뿌리가 된 프랭크 나이트는 1921년 펴낸 '위험과 불확실성, 그리고 이윤'에서 오랜 수수께끼를 풀었다. 기업이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배경에는 '불확실성'이 있다는 것이다. 몇 해 뒤의 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그 위험은 끝내 누군가 떠안아야 한다. 이윤은 그 짐을 짊어진 자에게 돌아가는 보상이다. 조지프 슘페터도 같은 결론에 닿았다. 이윤이란 남보다 먼저 새 길을 연 혁신가의 차지이며, 경쟁자가 뒤따르는 순간 허물어진다는 것이다. 메모리 기업이 받은 것이 정확히 이것이다. 그러니 이를 '정상을 넘어선 초과'라 부르는 건 번지수가 틀렸다. 이윤은 본래 들쭉날쭉한 불확실성의 대가일 뿐, 따로 잘라낼 '초과분'은 없다.그렇다면 남은 몫은 누구의 것인가. 위험을 짊어진 투자자와 그 성과를 만들어낸 임직원의 것이다. 그것을 나누든 다시 투자하든 그들이 정할 일이다. 지난달 삼성전자가 내놓은 5년간 5조원의 사회 환원 계획도 회사가 스스로 택한 것이다. 같은 환원이라도 기업이 정해 내놓는 것과 국가가 '모두의 몫'이라며 떼어 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정부의 몫은 따로 있다. 호황은 이미 법인세라는 이름으로 나라 곳간을 채운다. 정부가 들여다볼 것은 그렇게 늘어난 '초과세수'를 어떻게 쓰느냐이지, 기업의 이익을 전 국민이 나눠 갖는 일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취임 1주년 회견에서 초과세수와 초과이윤은 "완전히 다르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메모리의 왕좌는 세습되는 자리가 아니었다. 1980년대 D램을 호령하던 일본은 90년대 들어 한국에 그 자리를 내주었고, 마지막까지 버티던 엘피다는 2012년 무너져 미국 마이크론의 품에 안겼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막대한 보조금을 뿌리며 우리의 뒤를 바짝 쫓는다. 미국은 칩스법으로 5년간 527억달러를 자국 반도체에 쏟아붓는다. '초과이윤'을 거둬 나누자는 발상이 어떻게 귀결되는지는 1970~80년대 스웨덴이 보여줬다. 노조가 연대임금제로 산업 전체에 똑같은 임금을 매기자, 잘나가는 기업일수록 덜 치른 임금만큼 이윤이 쌓였다. 노조 경제학자 뤼돌프 메이드네르는 그 이윤을 초과이윤이라 불렀다. 1975년 그가 내놓은 안은 대기업이 해마다 이익의 20%를 새 주식으로 찍어 임노동자기금에 넘기는 것이었다. 1983년 반대 시민들이 스톡홀름 거리를 메웠고, 누더기가 된 기금은 이듬해 도입됐다가 7년 만에 폐지됐다. 하지만 기업들은 그 결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테트라팩은 1981년 본사를 스위스로 옮겼고, 이케아는 1982년 회사 지분 전부를 네덜란드 재단으로 넘겼다.해머는 돈이 영원히 넘쳐날 줄 알고 호미들에게 퍼주다 파산했고, 스웨덴은 존재하지 않는 '초과이윤'을 나눠 가지려다 나라의 간판 기업을 해외로 내몰았다. 둘 다 허상을 좇은 대가였다. 위험은 지지 않으면서 있지도 않은 몫을 나누려 들면 정작 있던 과실도, 그것을 만들 사람도 사라진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표면적 이유는 미국에서의 볼보 자동차 판매량이 1975년 6만338대에서 지난해 4만3887대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판매 감소는 국제 경쟁력 하락이라는 고질적 문제의 한 증상일 뿐이다. (중략) 더 큰 문제는 결근율이다. 볼보의 예테보리 본사 옆에 있는 토르스란다 조립 공장의 결근율은 20%에 달한다. 일부 근로자들은 1년에 평균 65일 결근하기도 한다.' 1977년 2월 21일자 타임지 기사 '스웨덴: 일하지 않아도 주는 급여(Sweden: Pay for no work)'의 일부다. ━이직률 50%까지, 무슨 일이?━ '1980년대 초 볼보 생산 현장은 조용하지만 파괴적 반란에 직면해 있었다. 주력인 토르스란다 공장의 일일 결근율은 최고 20%에 육박했고, 연간 직원 이직률은 40% 가까이로 치솟았다. 볼보가 라인을 계속 가동하기 위해서는 매년 수천 명의 신입 사원을 고용하고 교육해야 했음을 의미했다.' 1987년 뉴욕타임스 기사('Making cars the Volvo way')의 한 대목이다.볼보 자동차 공장 이직률이 50%에 달했다는 기록(스웨덴 왕립공대 논문)도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자동차 공장 일은 힘들고 지루하다. 포드가 컨베이어벨트 공정을 도입한 뒤 그게 국제 표준이 됐다. 고된 노동을 버티게 하는 힘은 급여다. 그런데 볼보 자동차 직원 급여는 중소 제조업체 직원이 받는 보수와 다르지 않았다. 볼보 경영진이 월급을 올려주고 싶어도 올려줄 수 없었다. '사회연대임금'이라는 제도에 금액이 묶였기 때문이었다.스웨덴도 제조업 붐이었던 20세기 초중반에 극심한 노사 갈등을 겪었다. 1931년 펄프 공장 파업 투쟁에서 군의 발포로 5명이 숨진 비극도 있었다. 파업, 임금 상승, 물가 인상이 꼬리를 물었다. 1952년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졌다. 노총(LO) 소속 경제학자 두 명의 이름을 딴 '렌-메이드네르' 협약이 체결됐다. 노동을 수백 개 직무로 나누고 각 직무에 따라 보수를 책정했다. 예컨대, 용접공 임금은 자동차 대기업에 다니나 중소 부품 회사에 다니나 차이가 없게 됐다. 이른바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다. 집권 사회민주당은 이 제도에 '사회연대임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수 기술자들 바다 건너 서독으로━ 중소기업에선 임금이 올랐고, 대기업에선 임금이 깎였다. 어느 곳에선 인건비 비중이 줄었고, 다른 곳에선 부담이 치솟았다. 인건비 감당이 어려워진 한계 기업들이 연쇄 도산했다. 기술 경쟁력 있는 대기업엔 이득이 쌓였다. 수익성 떨어지는 기업에서 돈 잘 버는 기업 쪽으로 인력이 대거 이동했다. 자연스럽게 산업 개편이 이뤄졌다. 섬유 등의 경공업 비중이 줄고 기계·부품 등의 중공업에 무게가 실렸다. 정부가 사회연대임금 도입 때 의도했던 산업 고도화 구조조정이었다. 1970년대 초까지 볼보는 이 제도의 수혜자였다. 노동력을 저렴하게 쓸 수 있었다. 회사에 이익이 누적됐다. 그 돈으로 연구·개발을 열심히 했다. 3점식 안전벨트, '세이프티 케이지' 설계 등이 결과물이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차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 성장은 거기까지였다. '튼튼하기는 한데 잔 고장이 많은 차'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높은 이직률에 숙련공 부족이 고착화됐다. 보수에 불만을 품은 기술자들은 대거 독일로 갔다. 발트해만 건너면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던 서독이었다. 볼보는 전자 제어장치 활용 등의 새 트렌드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독일과 일본의 자동차가 시장의 강자로 급부상했다. 서독 정부는 이주 노동자에게 세제 혜택까지 줬다. ━43년 전 스웨덴이 버린 사회연대임금━ 볼보는 직원 이탈을 줄이기 위해 컨베이어벨트를 없애고 팀 제작 방식(8∼10명이 한 조로 차량을 제작)을 도입했지만 시장 경쟁에서 계속 뒤쳐졌다. 1983년 볼보는 사회연대임금 제도 탈퇴를 선언하고 급여 인상을 단행했다. 볼보에 이어 다른 기업들도 탈퇴 행렬에 들어섰다. 이로써 30여 년의 사회연대임금 역사가 끝났다. 그리하여 볼보는 다시 경쟁력을 되찾았을까? 그런 해피엔딩은 오지 않았다. 1980년대 말 트럭과 특수차량 부문을 제외한 일반 자동차 부문을 미국 포드에 매각했다. 그리고 2010년 포드는 볼보 자동차를 중국 지리(Geely) 자동차에 팔았다. 스웨덴의 다른 자동차 회사 사브(Saab)도 볼보와 비슷한 운명을 겪다가 미국 제너럴모터스(GE)에 인수됐고, 2016년에 회사가 아예 사라졌다. 독일 포르쉐의 터보엔진 기술은 독일로 간 사브 엔지니어에 의해 완성됐다. 중국에서 생산된 볼보 차에는 '메이드 인 스웨덴' 대신 '메이드 바이 스웨덴'이라는 문구가 달렸는데, 2023년 한국 세관당국은 소비자 혼동을 유발한다며 삭제를 요구했다. 오늘날 스웨덴엔 사회연대임금과 같은 평등주의적 정책의 흔적이 남아있을까?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를 소개한다. '스웨덴의 총 공공사회지출액은 국내총생산(GDP)의 24%로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중략) 스웨덴은 이제 인구 대비 억만장자 수에서 미국을 앞질렀다. 테크 스타트업 생태계와 게임 산업 덕분이다.' 지난달 말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사회연대임금' 도입을 위한 토론회을 제안하며 스웨덴을 언급했다. 스웨덴 사람들이 놀랄 일이다.
5월 22일 원달러 환율은 1520원으로 17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1년간 한국의 수출은 월 단위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지만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11% 가까이 떨어졌다. 한국은행은 기록적인 흑자 속에서도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현상을 달러가 외환시장으로 돌아오지 않는 "구조적 변화"로 진단했다.━흑자로 벌어와도 풀리지 않는 달러━사상 최대 흑자에도 환율이 약세를 면치 못한 1차 원인은 증시를 둘러싼 '비대칭적 수급'이다.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과거에는 수출이 좋으면 원화가 강해지는 흐름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 공식이 약해졌다"며 "수출은 여전히 좋은데 해외 투자 확대 등으로 달러가 예전처럼 국내 현물환시장에 공급되지 않는 구조 변화가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2023~2025년 한국의 경상흑자 누계는 2556억달러다. 그러나 같은 기간 거주자가 해외 주식·채권을 사들 금액만 2527억달러에 이른다. 벌어들인 흑자를 가계와 기관이 해외 증권투자로 거의 그대로 내보낸 셈이다. 여기에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 1231억달러까지 더하면, 빠져나간 달러가 외국인의 국내 투자 유입(증권 1110억달러·직접투자 477억달러)을 크게 웃돈다. 벌어온 달러보다 내보낸 달러가 많으니, 외환시장에서는 원화를 팔려는 힘이 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 거주자의 해외주식 순매수는 2025년 분기 평균 280억달러로, 2024년(107억달러)의 두 배를 훌쩍 넘었다. '서학개미'가 분기마다 약 110억달러를 사들였고, 보험사·자산운용사·공적기금 등 기관이 나머지를 차지했다. 국민연금은 올해 환율 부담을 의식해 해외 비중을 공격적으로 늘리지는 않고 있지만, 장기 자산배분 계획상 국내 자산을 줄이고 해외 자산을 키워야 하는 구조여서 시차를 두고 원화를 팔아 달러를 사야 한다.수요가 이렇게 큰데 공급은 막혀 있다. 수출로 사상 최대 실적을 낸 기업들도 번 외화를 현지에 유보한다. 정부는 이 유보를 풀려고 2023년 외국 자회사가 본사에 보내는 배당에 세금을 거의 매기지 않는 제도(수입배당금 익금불산입)를 도입했지만 효과는 단발에 그쳤다. 그동안 해외에 쌓아둔 자금이 일시에 들어오면서 그해 직접투자 일반배당 수입이 144억달러에서 443억달러로 세 배로 뛰었지만, 그 증가분의 상당 부분을 삼성전자 한 곳이 송금한 약 226억달러(29.5조원)가 채웠다. 누적분을 털어낸 효과가 사라지자 기업들의 국내 송금액은 다시 줄었다. 달러 수급 비대칭 현상은 올해 들어 심화했다. 올해 1분기에도 거주자의 해외주식 순매수는 지난해와 비슷한 강도를 유지한 가운데(275억달러),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424억달러어치 팔아치우며 환율 상승을 주도했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원은 "주식시장 덩치는 커졌는데 외환시장의 체력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때 외환시장이 이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면 환율 변동성이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달러 유입은 더 줄었다. 삼성전자 별도재무제표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1분기 해외 자회사로부터 받은 배당 송금은 2500억원으로 평년 1분기(약 3.6조원)의 7% 수준으로 급감했다. 들여온 돈은 줄고 미국 공장 등으로 내보낸 돈은 늘면서, 삼성전자는 한 분기 동안 외환시장에서 달러 24억달러어치를 매수했다.━'고환율 고통'…물가, 내수, 기업 연쇄 파장━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5월 24일 코스피 급등에 따른 외국인의 차익 실현과 그 환전 수요를 환율 상승의 원인으로 짚으며,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을 "한국 경제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성공의 비용"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여러 연구와 데이터는 고환율의 충격을 '성공의 비용'으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해 12월 환율 상승이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 보는 사람을 극명히 나눈다"고 지적했듯, 고환율은 그 비용을 약한 쪽에 몰아주며 'K자 양극화'를 키운다.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가 오르고, 그것이 소비자물가로 번지며 가계의 실질구매력을 깎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환율이 10% 오르면 소비자물가가 6개월 뒤 최대 0.5%포인트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부담이 유독 무거운 건 한국의 구조 탓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한국은 1차에너지의 약 96%를 수입에 의존하고 곡물도 상당 부분 수입한다. 약세의 충격이 에너지요금과 식탁물가라는 가장 피하기 어려운 항목부터 가계를 때리는 이유다. 타격은 기업으로도 번진다. 특히 원자재·중간재를 수입해 국내에 파는 내수·소비재 기업이 직격탄을 맞는다. 수출로 환차익을 누리는 기업은 소수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수출하는 중소기업은 전체의 1.2%에 그친다 .나머지 대부분 기업은 오른 수입원가를 떠안으면서 그것을 가격에 전가할 내수 여력도 충분치 않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제조업체 2208곳을 조사한 결과 38%가 고환율로 실적이 악화됐다고 답한 반면, 수출이 개선됐다는 응답은 8%에 그쳤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달러 강세로 환율이 오를 때는 물가 전가가 시간이 지나며 옅어지지만, 국내 요인으로 오를 때는 오히려 점점 짙어진다고 분석했다. 지금 한국의 약세는 바로 그 국내 요인, 자본유출이 주도한다. 원인이 구조적이라는 것은 그 부담 또한 일시적 충격에 그치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깊이 쌓인다는 뜻이다.━정교한 제도로 투자 늘리고 외화 유출 막는 일본━전문가들은 지금까지의 환율 안정책만으로는 이 특수한 상황을 풀 수 없다며 '꼬인 수급'을 직접 겨냥한 정책을 주문한다. 개입·금리·환헤지 같은 기존 수단은 흐름의 속도만 늦출 뿐, 원화로 자금이 모이게 하려면 결국 수요와 공급 양쪽을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먼저 해외에 쌓인 기업 이익을 들여올 정교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도 2023년 외국 자회사 배당세를 한시 면제해 그해 직접투자 일반배당 수입이 세 배로 뛰었지만, 그 돈이 국내에 머물 이유까지는 설계하지 못해 효과는 한 해로 그쳤다.관건은 '설계'다. 조건부 세금 감면을 통해 기업이 번 돈이 국내로 들어와 생산적인 자본으로 귀결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의 연구개발(R&D) 세액공제는 기업이 전년보다 R&D 지출을 '늘린 만큼'에만 혜택을 줘, 단순히 비용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투자를 매년 키우도록 유도한다. 일본의 투자촉진세제 역시 해외가 아닌 국내 설비투자분에 한해 공제해, 자금이 국내 실물로 흘러야만 감세 혜택이 돌아가도록 했다. 들여온 돈이 국내 투자·고용으로 이어질 때만 보상하는 설계다. 일본 정부는 2026년 도입한 설비투자 감세 4000억엔이 그 10배인 연간 4조엔 규모의 설비투자를 끌어낼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외국 자회사 배당에 매기는 세금을 깎아줄 때도 이렇게 국내 투자·고용 증가분에 연계하면 국내 고용 창출과 함께 지속적이고 건전한 원화 수요를 만들 수 있다고 진단한다.국내 기업의 체질을 개선해 자본시장에서 원화 수요를 구조화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삼일PwC경영연구원이 블룸버그 자료로 집계한 결과 한국 상장사의 최근 10년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은 8%로, 미국 15%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2023년 말 기준으로는 5%까지 떨어졌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본질은 저하된 수익력과 인색한 주주환원이 투영된 적정한 평가에 더 가깝다"며, 단기적으로는 주주환원 확대,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체질 개선이 정공법이라고 짚었다.
오병상 동행미디어 시대 대표가 "전쟁의 양상은 이미 바뀌었지만, 우리 무기와 제도는 변화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현대전의 양상을 바꾼 드론과 AI의 실전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 대표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동행미디어 시대'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이 공동주최한 '이란전쟁이 던진 질문: 우리의 드론, AI 준비돼 있는가' 제하의 토론회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이날 행사는 지난달 16일 시대가 개최한 '새로운 전쟁의 시대, K방산의 현재와 미래' 시대포럼의 첫번째 후속 '숙의 토론회'다. 오 대표는 "전쟁은 이미 바뀌었지만 우리의 무기와 제도는 아직 그 변화를 다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 방산은 골든에라(황금기)가 아니라 골든타임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실과 동행미디어 시대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국방안보포럼이 주관했다. 송승종 대전대 교수,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류영관 파블로항공 부사장이 발표를 맡았다. 토론은 이상언 시대 제도혁신연구소 소장이 사회를 맡고, 조상근 KAIST 교수, 장병철 한국대드론산업협회 수석부회장 등이 참여했다.
"이번 계기에 시스템을 진짜 바꿔야죠."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새로운 보상 제도'를 위한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사측도 노조도, 시대의 변화에 맞는 보상 시스템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여전히 호봉제 성격이 강한 한국 보상 체계는 변화를 받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한 김 교수는 현대백화점, 동원F&B, 서울보증 등 여러 기업의 사외이사를 역임하며 한국형 보상 제도를 현장에서 본 전문가다. 그가 내놓은 처방은 두 축이다. 직무와 기여에 따라 보상이 정해지는 직무급, 그리고 회사 주식을 보상으로 주는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이다. - 협상 타결이 될까요.▶ 쉽지는 않을 겁니다. 삼성이라는 조직이 지금 일어나는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어요. 노동시장의 주력 세대가 MZ세대로 바뀌었다는 게 변화의 핵심입니다.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공정성과 투명성이에요. 공정성이란 사회적 대의가 아니라, 내가 노력한 만큼 보상받느냐의 문제입니다. 투명성은 기준이 명확한가죠. 이 세대는 회사가 자의적으로 정해주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전 세대와는 결이 다릅니다.- 삼성이 시대의 변화를 못 따라갔다고 보시나요.▶ 보상 체계 관점에서는 그렇습니다. 무노조 경영의 관성이 깊어요. '관리의 삼성'이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사업 구조의 복잡함, 무노조 경영의 누적된 관성이 함께 작용하면서 변화 수용이 늦어지고 있습니다.━"영업익 15% 균등 배분, 어느 나라에도 없어"━- 노조의 영업이익 15% 요구는 정당한 겁니까.▶ 노조니까 요구는 할 수 있죠. 다만 그 설계가 문제입니다. 영업이익의 15%를 모두 똑같이 나누겠다는 건데, 어느 나라에도 그런 사례는 없어요. 미국이나 유럽의 핵심 원칙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입니다. 어떤 직무를 맡았느냐가 임금을 결정하는 직무급 체계예요. 일의 내용이 같다면 연차에 무관하게 같은 보수를 받습니다. 미국 사무직은 연봉제, 생산직은 시간제 직무급이 일반적이에요. 직무 난이도, 자격, 숙련도, 위험도에 따라 임금이 결정됩니다.- 한국과는 많이 다르네요.▶ 맞습니다. 한국 대기업은 형식상 연봉제라도 실제로는 연차가 임금을 결정하는 호봉제적 구조입니다. 같은 일을 해도 30년 차가 신입보다 훨씬 받죠.- 지금 구조 위에 영업이익 15% 균등 배분을 얹으면 어떻게 됩니까.▶ 일의 난이도도, 기여도도, 부문별 성과도 무시됩니다. 호봉제 성격이 강한 지금 제도 자체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어긋나는데, 그 위에 균등 보너스까지 얹으면 보상이 기여와 무관해져요. 노조가 먼저 받아들여야 할 게 있습니다. 더 받고 싶으면 더 어려운 직무를 맡거나, 자격증을 따거나 숙련도를 높여야 해요. 그게 글로벌 표준인데 지금 노조는 그런 고민 없이 모두에게 똑같이 15%를 달라고만 합니다. 하나도 희생 안 하고 받기만 하겠다는 거죠. 성과를 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보상이 같아지면, 어떤 일을 해도 별 차이가 없게 되고 결국 노동시장 전반이 왜곡됩니다. 핵심 인재가 한국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경직된 보상에 핵심 인재가 해외로━- 그렇다면 무엇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까.▶ 직무급을 도입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느냐, 어떤 기여를 하느냐가 보상을 결정해야 해요. 같은 일에도 숙련도와 성과에 따라 차등이 따라야 합니다. 다만 두 가지 조건이 있어요. 우선 R&D와 시설 투자, 주주 환원 재원이 먼저 확보돼야 합니다. 그러고 남는 초과 이익을 어떻게 나눌지 합의하는 식이죠. 업황에 대한 고려도 필요해요. SK하이닉스만 봐도 HBM 호황 전까지 수년간 적자에 가까웠습니다. 시장이 만들어준 부분과 노력으로 만들어낸 부분은 구분돼야 다음 불황도 견딜 수 있습니다.- 한국이 직무급으로 가지 못하면서 생긴 가장 큰 부작용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핵심 인재를 잡지 못한다는 겁니다. 우리 문화에서 천재를 데려온다고 쳐봅시다. 그 사람에게 100억 줄 수 있나요. 못 줍니다. 지금처럼 호봉제 성격이 강한 구조에서는 제대로 보상을 지급할 수 없어요. 학계만 봐도 그렇습니다. 제가 2007년 한국에 들어올 때 미국 뉴욕시립대 연봉이 12만 달러였어요. 그때 한국 대학 연봉은 그 절반이 좀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분야 미국 교수들은 22만 달러를 받아요. 격차는 계속 벌어집니다. 제가 있는 학과는 4년째 교수를 새로 뽑지 못하고 있죠.- 기업의 인재 유출 문제도 심각하지 않습니까. 미국·중국이 핵심 인재를 빠르게 데려가고 있는데.▶ 그렇습니다. 결국 어떤 회사에 들어가느냐만 중요한 사회가 만든 결과예요. 삼성에 들어가면 끝, SK에 들어가면 끝이죠. 일의 가치가 아니라 회사 간판이 보상을 결정하는 구조에선 핵심 인재가 머물 이유가 없습니다.━회사 주식 가진 직원은 주가 상승 희망━- 직무급 외에 핵심 처방은 무엇입니까.▶ RSU를 보상에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직원이 회사 주식을 갖고 있으면 그 회사 주가가 오르길 바라게 돼요. 주인의식이 생기니 일에 몰입하게 되고 노사가 같은 방향을 보게 됩니다. 회사 입장에서도 현금 지출을 줄이면서 인재를 묶어둘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RSU가 잘 정착되지 않고 있죠.▶ 세제부터 짚어야 합니다. 현재는 RSU를 받는 시점에 약 절반을 세금으로 뗍니다. 3억원어치를 받았는데 1억5000만원을 세금으로 내라는 식입니다. 노동자가 '그냥 현금으로 달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제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국민 정서 자체가 RSU 정착을 막기도 합니다. 동기인데 고성과자라는 이유로 몇 배를 받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요.▶ 가장 근본적으로는 국민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기업이 경제의 중심이고, 성과를 낸 사람이 그만큼 보상받는 게 당연하다는 공감대가 없으면 어떤 제도도 정착하지 못해요. 기업 차원에서는 기여에 따른 차등 보상 구조와 이익 규모별 배분 룰을 투명하게 세팅해야 합니다. 정부는 RSU 과세를 매도 시점으로 전환하고, 주식 매도 제한 기간을 연차별로 풀어주는 식으로 세제를 손봐야 해요. 결국 보상 제도, 노동, 세제, 국민 인식이 한 묶음으로 풀려야 합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제도를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