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관통하는 어젠다를 제시하고, 구체적 해법을 모색하는 미디어 싱크탱크입니다.
지난주 캘리포니아 휴양지의 토스카나풍 별장. 하객 대상 토론회에 숲속 스파 피로연까지, 며칠에 걸쳐 이어질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신랑은 24세의 AI 전문 헤지펀드 설립자, 신부는 AI 선두 기업 앤스로픽 CEO의 비서실장이다. 신부가 주문한 콘셉트는 "유럽식 정원에 특이점 직전의 분위기"였다. 미국 경제매체 포천은 이들을 "AI 파워 커플"이라 불렀다.같은 시각 신랑은 자신을 스타로 만든 펀드가 보유한 상장 주식 전량을 헐값에 팔아치우고 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신랑 레오폴드 아셴브레너가 2024년 인터넷에 공개한 165쪽짜리 에세이의 한 구절이다. 제목은 "상황 인식(Situational Awareness)", 그가 세운 펀드의 이름이기도 하다. 논문도 보고서도 아닌 이 글은 공개 직후 실리콘밸리의 필독서가 됐다.석 달 뒤 그는 펀드를 세웠다. 운용 경험은 전혀 없었지만 컬럼비아대 19세 수석 졸업, 오픈AI 연구원 출신이라는 이력..
시대를 관통하는 어젠다를 제시하고,구체적 해법을 모색하는 미디어 싱크탱크입니다.
"KF-21의 뿌리는 '골든 이글'에 있다." 김형준(65) 경남우주항공방산과학기술원(GADiST) 원장의 설명은 30여 년 전에서 시작됐다. 군사용 항공기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머물던 30대 시절의 기억이다. "우리가 곁눈질 해가며 배운 기술로 T-50을 만들었고, 그게 KF-21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1991년 한국 정부는 미국 록히드마틴과 F-16 전투기 구매 흥정을 하며 '항공기 설계 기술 지원'을 조건으로 달았다. "훈련기 정도는 만들 수 있어야 F-16 조종사를 계속 키워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F-18을 만든 보잉과 판매 경쟁을 하던 록히드마틴이 거절하기 힘든 '옵션'이었다. F-16 40대 구매 계약이 이뤄졌고 한국의 항공 기술자들이 1993년에 록히드마틴이 있는 포트워스로 갔다. 그들은 자신들을 '재미 황매팀'으로 명명했다. '황금빛 수리'를 만들기 위해 미국에 온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다. 황매를 영어로 '골든 이글'로 표현했다. 재미 황매팀에 앞서 해외에서 항공기 설계 기술을 배우던 팀이 있었다. 한국이 영국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BAe)의 호크(Hawk)기를 구매하며 기술 이전 약속을 받아내 1992년 한국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진과 삼성항공 등 민간 기업 엔지니어들이 영국에 파견됐다. 이 기술 습득 계획의 이름이 '황매 프로젝트'였다. 여기에 속했던 기술진 중 상당수가 미국의 '골든 이글'에 합류했다. 김 원장이 영국에 체류하다가 미국 포트워스로 간 기술자 중 한 명이다. ━'골든 이글'팀 T-50 개발이 원천━록히드마틴은 한국 연구진과 엔지니어들을 본사 공장에 들이지 않았다. 그곳에서 약 5㎞ 떨어진 곳에 조립식 건물을 지어 연구 공간으로 쓰게 했다. 김 원장은 "그들 입장에서는 주요 기술을 가르쳐주길 극도로 꺼릴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그들과 친해지려고 애를 써야 했다"고 말했다. 그때 포트워스에 이일우(65)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전무도 있었다. 공기 역학 전공자인 그는 KF-21 개발에서 수석설계자 역할을 맡았다. 앞서 T-50 개발에도 설계자로 기여했다. 이 전무는 "1993년부터 95년까지 3년간 포트워스에 머문 한국 기술진이 총 88명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T-50, FA-50과 KF-21 개발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대학에서 항공공학을 전공한 김 원장과 이 전무는 삼성항공 출신이다. 1990년대 말에 국내 항공 기업이 합병돼 KAI가 만들어진 뒤 인생 대부분을 이 회사와 함께 했다. 전술 훈련기 TA-50 개발팀장이었던 김 원장은 경영전략부문장(부사장) 등을 역임한 뒤 2년 전 GADiST 초대 원장이 됐다. KF-21 개발을 진두지휘한 이 전무는 KAI 기술임원으로 후배들에게 경험과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김 원장과 이 전무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세 명의 전직 대통령을 KF-21 탄생의 공로자로 꼽았다. 첫째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록히드마틴으로부터 기술 이전 약속을 받아낸 덕분에 한국이 T-50을 만들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T-50이 없었으면 KF-21은 죽었다 깨어나도 만들 수 없었다"고 말했다. ━DJ 깜짝 선언과 박근혜 결심━ 둘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2001년 3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김 전 대통령은 "늦어도 2015년까지 최신예 국산 전투기를 개발한다"고 선언했다. 5개월 뒤 김동신 당시 국방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뜻에 따라 공군본부에 전투기 개발 마스터 플랜 작성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기술적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의 발표였다. IMF 사태(외환 위기)로 의기소침해진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겠다는 뜻이 담겼던 것으로 짐작한다"고 말했다. 이후 '최신예 국산 전투기' 개발은 숱한 논란으로 이어졌다. 정권이 바뀐 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에서 '사업 타당성 부족' 판정을 내렸다. 이 전무는 "반대 논리는 크게 세 갈래였다. 한국은 전투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할 기술이 부족하고, 경쟁력 있는 가격의 전투기를 만들 수 없고, 전투기 수출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그의 회고록에 이렇게 적혀 있다. '방위사업청장과 국방과학연구소장을 만나서 의견을 들어보니 '자체 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외국에서 기술을 안 준다고 벌벌 떨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이나 비용이 다소 들더라도 사업을 추진하는 게 맞겠다는 확신이 생겨 추진을 지시했다.' 2015년의 일이다. 그리고 2021년 4월 경남 사천시 KAI에서 KF-21 시제기(시험용 항공기) 출고식이 열렸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소식을 옥중에서 접했다. 그는 회고록에 '현실성이 없다며 반대했던 정치인이 이날 출고식에서 'KF-21 시제기가 늠름한 위용을 드러냈다'며 치하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당시 국방부 대변인이었던 김민석 전 우주항공산업협회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 부친의 신념이었던 '자주국방'을 말하며 KF-21 개발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엔지니어 귀한 현실이 걱정"━ 이 전무는 KF-21 개발 타당성이 논란이 될 때마다 "반드시 증명해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김 원장은 "그랜저를 만들었는데 제네시스를 못 만들 이유가 없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그랜저는 T-50이고, 제네시스는 KF-21이다. 김 원장과 이 전무는 소년 시절 항공기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었다고 했다. 나라에 항공기 제작 기술이 전무했고, 기초적인 정비 기술만 있던 때였다. 두 사람처럼 도전 정신을 가진 청년들과 미래를 개척하는 국가적 리더십이 있었다. KF-21을 만든 힘이다. 이 전무는 미래를 염려했다. "젊은이들이 점점 어려운 일을 꺼려서 걱정"이라고 했다. 김 원장도 "우주항공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된 경남 진주와 사천의 생활 인프라와 교육 환경이 제대로 갖춰져야 후진들이 잘 육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천시에 따르면 2027년까지 필요한 우주항공 분야 인력 중 실제 공급 가능한 규모가 55% 수준이다. 인구 감소, 공학 전공 인기 하락, 엔지니어의 지방 근무 회피가 주요 원인이다. 항공 산업 육성에 대한 정치권의 말은 무성했으나 실질적 진전은 별로 없었다. 진주와 사천 지역 교통망 확충, 교육 인프라 구축, 주거 지원 등의 계획을 담은 '우주항공복합도시 특별법'은 2년 넘게 국회 상임위원회에 머물러 있다.
"업체로부터 받은 돈은 뇌물이 아니라 격려금 차원이었다." 군 관계자는 '돈봉투 관행'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 '성역'이었던 군 전력 증강 사업의 치부가 처음으로 드러난 '율곡 비리' 당시의 일이다. "실무 검토 보고서는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다"는 말도 나왔다. 감사원은 성역없는 조사를 천명했다. 검찰은 전직 국방장관 2명과 전직 참모총장 2명을 구속기소했고 이들 전원이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여론은 수사가 충분치 못했다는 쪽이었다. 이후에도 잊을만하면 방산 비리가 터졌고, 패턴은 반복됐다.━트라우마가 낳은 '절차주의' 덫━한국군의 '하드웨어(실물 무기)' 중심 DNA는 1970년대 중공업 육성 시기부터 시작됐다. 여기에 과거 굵직한 방산 비리들이 남긴 트라우마가 결합하면서 지금의 '꽉 막힌 조달 패러다임'이 완성됐다. 율곡사업부터 2014년 통영함 비리까지 대형 사건이 반복되면서 '투명성'을 지상 과제로 삼게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2006년 국방부, 합참, 각 군, 조달본부 등 8개 기관에 분산 운영되던 획득관련 조직 및 기능을 모두 통폐합해 방위사업청을 설립했다. 문제는 투명성에 대한 강박이 과도한 '절차주의'로 이어진 점이다. 이는 실무자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하다 감사에 걸리느니 차라리 검증된 옛 방식을 택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뼈아픈 학습효과를 남겼다."(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상경 안보경영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역시 "(한국군은) 절차는 완벽한데, 전력화는 늦다. 현재 제도는 투명성 확보를 위해 완벽함을 추구한 나머지 경제성과 효율성을 침해하는 기형적 구조"라고 말했다.소요 결정 단계에서 요구 성능(ROC)이 한 번 확정되면 이후 10년 이상 고치기 힘들다. 수개월 단위로 기술이 도약하는 소프트웨어나 AI를 수십 년 전의 경직된 규격서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 보니, 배치될 때는 이미 기술이 시대에 뒤처지는 '진부화' 현상도 당연해졌다. ━'올드 패러다임', 곳곳서 파열음━이러한 관성은 속도가 생명인 현대전 준비에 큰 걸림돌이다. 현대전의 핵심으로 떠오른 드론은 개발 단계부터 막혀 있다. 근거법은 없고, 개발 과정도 규제 투성이다. 유용원 의원에 따르면 "한국은 적의 전파 교란(재밍) 방어 시험 시 주파수를 변경하는 단순한 작업조차 전파법에 따라 매번 행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 김일동 방사청 차장도 "정부 주도 방식만으로는 전장의 판도를 바꿀 혁신적 전력을 적시에 확보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육·해·공군이 각각 무기를 도입하다 보니 두뇌 격인 지휘통제 체계의 원활한 작동이 어렵다. 데이터가 고립되어 서로 호환되지 않는 '사일로(Silo)' 현상 때문이다. 실제로 육군의 전술지휘정보체계(ATCIS)와 해·공군과 제대로 연동되지 않아, 합동 작전 시 표적 정보를 수동으로 재입력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군사 전문가는 "각 군이 각자의 규격과 예산으로 시스템을 발주하다 보니, 정작 실전에서는 서로의 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없는 '깜깜이' 상황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데이터 비표준화와 경직된 보안 규정 역시 AI 전력화에 치명적이다. 우리 군은 데이터 규격이 제각각이고, 기밀 유지를 이유로 모든 데이터가 외부와 단절된 로컬망에 있다. 한 AI 벤처기업 대표는 "전장 데이터를 통합해 AI를 고도화하는 미군과 달리, 우리는 외부의 뛰어난 AI를 들여와도 데이터 표준화라는 첫 단추를 꿰지 못해 '깡통'에 불과할 것"이라고 꼬집었다.━'SW 중심 전쟁'… 법조차 없는 한국━우리가 낡은 패러다임에 묶여 있는 사이 전 세계 군사 패러다임은 AI와 소프트웨어(SW) 중심으로 바뀌었다. 크리스천 브로스 전 미 상원 군사위 정책국장을 비롯한 글로벌 혁신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는 보조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안보의 근간인 무기체계"라고 강조한다.새로운 패러다임은 민간 기술기업이 이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월 24일 팔란티어의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MSS)이 미 국방부의 공식 사업으로 격상됐음을 보도했고, 로이터는 1850억 달러 규모의 우주 기반 미사일 방어망 '골든 돔(Golden Dome)' 프로젝트의 핵심 소프트웨어를 팔란티어와 안두릴이 공동 기획한다고 전했다.한국의 현행법은 SW를 '하드웨어의 부속품' 정도로 취급한다. 현행 방위사업법에는 SW만을 단독으로 신속하게 획득하기 위한 별도 조항이 없다. 하드웨어 획득 절차를 무리하게 준용하다 보니, 스마트폰 앱 업데이트하듯 간단히 끝낼 수 있는 작업도 정식 조달 절차를 밟으며 수년을 허비한다.━뉴 패러다임 키워드는 '민간'과 '속도' ━ 전문가들은 무기 획득 생태계 전반을 뒤엎는 총체적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축적의 시간' 저자인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관료주의적 '절차적 결벽증'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진국을 모방하던 시절의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도전적 질문을 통한 시행착오'를 용인하고 민간의 혁신 아이디어를 국방 기술로 '스케일업(Scale-up)'하는 유연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신속 획득 프로세스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조관호 한국국방연구원(KIDA) 책임연구위원은 "기존의 무거운 조달 방식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술을 담아낼 수 없다"며 "완벽한 성능을 10년 뒤에 배치하는 것보다, 70% 수준의 초기 시제품을 1년 이내에 신속히 배포하고 피드백을 반영해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진화적 획득' 체계 마련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신속 획득 제도의 안착을 위해서는 민간의 '진입 장벽'을 걷어내야 한다. 한 방산 스타트업 대표는 "한국 국방 조달 시스템에서는 미국의 팔란티어나 스페이스X 같은 혁신 기업이 탄생하기는커녕 입찰조차 불가능하다. 절차적 완결성이라는 명분을 넘어 민간의 압도적인 속도와 기술력을 온전히 수혈할 수 있는 제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특별취재팀=제도혁신연구소 이상언 소장·이무영 부소장, 정치경제부 김인한·김성아 기자, 산업1부 최유빈 기자, 증권부 이동영 기자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우리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관계자들이 우크라이나에 꼭 가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화 중 이 대목에서 음성 톤이 올라갔다. 직접 보면 국군이 무엇을 준비하고 바꿔야 할 지를 즉각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그는 드론, AI(인공지능) 소프트웨어 등의 현대전 필수 물자를 국군이 획득하는 방법을 획기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드론을 무기가 아니라 소모품으로 분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그는 이와 관련한 법률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1호 군사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유 의원은 30여 년간 조선일보에서 국방부 담당 기자로 일하다 2024년에 국회의원(비례대표)이 됐다. 다음은 유 의원과의 일문일답 -최근 우크라이나 드론 공장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땠나요?▶스카이폴(Sky Fall)이라는 회사의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3D 프린터 1200대가 동시에 드론의 동체나 부품을 만들고 있었는데, 보는 순간 전율을 느꼈습니다. 생산량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스카이폴에서는 어떤 드론을 얼마나 만들고 있습니까?▶ 크게 세 종류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주력 타격 수단으로 활용되는 일종의 자폭 드론인 FPV 드론을 한 달에 12만대를 만든다고 하고요, 프로펠러 8개 달려 있고 밑에 15㎏까지 폭탄을 장착하는 '뱀파이어' 드론은 한 달에 6000∼7000개를 만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 각광받는 충파 드론, 즉 상대의 드론에 충돌해서 무력화하는 요격 드론 P1-SUN도 제작합니다. 이게 시속 300㎞의 빠른 드론인데 대당 가격이 우리 돈으로 200만원 정도입니다. -드론이 우크라이나를 살렸다는 말도 있던데, 실제로 전장에서 어느 정도 쓰이고 있습니까?▶지금 우크라이나 군이 한 달에 소모하는 드론이 20만∼30만대라고 합니다. 연간 수백만대가 사용되는 거죠. 드론이 포탄처럼 소모되는 양상으로 전쟁이 전개되는 겁니다. -우크라이나가 어떻게 그 정도의 드론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됐습니까? ▶전쟁 초기에는 중국의 다쟝(DJI) 드론에 박격포탄 등을 매달아 떨어트렸는데 러시아가 전파 교란으로 쉽게 무력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죽기살기로 다른 수단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죠. 궁즉통이라고, 국가가 역량을 총동원해서 자체 드론 생산 능력을 갖췄습니다. -러시아도 드론을 많이 사용하던데요.▶최근 이란이 주변국으로 날리는 샤헤드-136 드론이 우크라이나에서도 위력을 발휘합니다. 러시아가 이 드론을 떼로 날립니다. 하루에 700∼800대를 보내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가 대공포를 쏘고, 전파 교란도 하고, 산탄총까지 쓰며 방어해도 구멍이 뚫립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벌떼 쏘기'와 '섞어 쏘기'입니다. 1단계로 수백 대의 드론을 날려 요격 미사일 등의 방어 수단을 소진하게 한 뒤에 파괴력이 큰 탄도 미사일을 쏘는 겁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에 군인을 파병했는데, 드론의 위력이나 드론 전술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 같습니다. ▶북한이 최근 전차와 드론이 합동으로 훈련하는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평양 인근에 샤헤드-136 드론 공장이 건설되고 있다는 얘기도 있고요. 북한이 섞어 쏘기 전술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경각심을 갖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인공지능(AI)이 장착된 드론도 속속 개발되고 있습니다.▶궁극적으로 가장 최고의 드론은 AI 드론입니다. 목표물 형상을 기억하고 스스로 식별해서 공격하는 AI 드론이 개발됐고, 우크라이나에서도 쓰이는 것으로 압니다. AI 드론은 군집비행이 가능하죠. 영화 속 장면처럼 수백 대의 드론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공격할 수 있습니다. 이런 드론이 실전 능력을 갖추면 '게임 체인저'가 됩니다. -드론과 관련한 우리나라 군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좀 부끄러운 얘기인데 자폭 드론 양산 역량은 갖추지 못했고요, 정찰 드론이나 소형 폭탄을 매달 수 있는 드론을 군에서 부분적으로 도입해 시험 운용하는 단계로 보면 됩니다. -하루빨리 우리 군이 드론 활용 역량을 갖춰야 할 것 같은데요. ▶거기에 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군은 중후장대형 무기,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 무기 중심의 획득 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엄정하게 평가해서 도입합니다. 문제는 그 과정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겁니다. 대형 무인기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자폭 드론처럼 소모적 자원은 전력지원체계로 분류해서 빨리 공급 받을 수 있는 길을 터야 합니다. 현재의 방식으로는 소형 자폭용 드론의 경우에도 획득에 최소 5년이 걸립니다. -전력지원체계의 획득이 무엇인가요? ▶방탄복, 탄약 같은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체계를 말합니다. 위에서 드론이 전장에서 포탄처럼 쓰이고 있다고 얘기했죠? 드론을 무기가 아니라 군수물자로 분류하면 획득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습니다. 이미 그렇게 진행한 사례도 있습니다. -그런 적이 있습니까? ▶폴란드가 "우리는 한국 무기를 많이 사주는데 왜 우리 것은 안 사주느냐"는 불만을 제기해 2024년에 방위사업청이 폴란드 WB일렉트로닉스와 워메이트 드론 도입 계약을 맺었습니다. 해당 구매 예산을 국방부의 경상운영비로 편성해 집행했습니다. 무기 예산이 아닌 군수품 예산으로 처리한 것이죠. -시급한 드론 전력 강화를 그런 방법으로 하면 되겠네요. ▶폴란드 드론 구매는 예외적인 상황이었고, 군 획득 규정 자체를 바꾸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그래서 제가 방위사업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소형·저가·자폭 드론을 1년 내에 양산하고 보급할 수 있는 별도의 획득 경로를 만들도록 하는 내용을 담을 계획입니다. 드론 성능 시험에 필요한 주파수 사용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도 포함하고요. 일종의 '드론 특별법'인 거죠. -국내 업체가 다양한 용도의 군사용 드론을 빠른 시일 내에 대량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국산화 부분이 큰 숙제입니다. 기술력을 가진 민간 업체에 대한 정부나 군의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드론 기술이 앞선 나라의 업체와 국내 업체의 공동 개발이 이뤄지면 시행착오를 줄여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습니다. -정부와 군의 의지가 중요하겠네요. ▶지난 1월에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이 군인이 아닌 기술 관료 출신으로 바뀌었습니다. 미하일로 페드로프, 서른 네 살입니다. 디지털혁신부 장관을 하다가 국방부 장관이 됐습니다.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드론·AI 기술 혁신을 주도한 사람입니다. 전쟁을 치르며 기술 기반의 군사 혁신이 국방에 얼마나 중요한 지를 국가가 깨달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대표 발의한 '소프트웨어 중심 무기체계 획득 특별법안' 처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지난달에 국방위 전체회의를 통과해 이달 9일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당 의원들도 대체로 제도 혁신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어 신속 처리를 기대하고 있습니다.◆특별취재팀=제도혁신연구소 이상언 소장·이무영 부소장, 정치경제부 김인한·김성아 기자, 산업1부 최유빈 기자, 증권부 이동영 기자
미국 방산 스타트업 안두릴(Anduril)은 창업 2년 만인 2019년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에 등극했다. 지난해에는 오픈AI를 제치고 CNBC 선정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스타트업' 1위에 올랐다. 현재 진행 중인 신규 투자가 마무리되면 기업가치가 600억 달러(약 90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국내 최대 방산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약 70조 원)를 훌쩍 뛰어넘는다. 안두릴은 지난해까지 70억 달러(약 10조원)를 넘는 투자금을 모았다. 페이팔과 팔란티어 창업자 피터 틸이 이끄는 파운더스펀드는 모든 라운드에 참여했다. 민간자본의 적극적인 투자가 빠른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방산', 글로벌 벤처투자의 '대세'━ 글로벌 방산 테크 전문 뉴스레터 DIIE는 "방산 테크가 벤처캐피탈(VC) 투자의 주류(mainstream)"라며 "2025년은 이에 대한 의구심을 잠재운 한 해"로 평가했다. 글로벌 투자 조사기관 피치북은 2025년 글로벌 방산 분야 VC 투자 규모를 전년 대비 약 2배로 급증한 491억 달러(약 68조원)로 집계했다. 투자 건수도 2020년 414건에서 2024년 629건으로 52% 늘었다(S&P 글로벌).이 흐름에 뛰어든 자본의 면면도 다양하다. 컨설팅 기업 부즈앨런해밀턴은 3억 달러, 글로벌 헤지펀드 포인트72는 4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 실리콘밸리 대형 VC들도 적극적이다.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는 2026년 1월 방산 등 국가 우선 산업을 겨냥한 11억 달러 규모의 신규 펀드를 결성했다. 24개 NATO 동맹국이 공동 출자한 'NATO 혁신 펀드'는 10억 유로를 딥테크 스타트업에 투입하고 있다.미국 방산 전문 VC '뉴 비스타(New Vista)'의 커스틴 바톡 공동 설립자는 <시대>와의 인터뷰에서 방산 벤처 투자가 급증한 배경으로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이중 용도(Dual-use, 민군 겸용) 기술' 수용과 생태계의 체질 변화에 주목했다. 그는 "최근 방산 업종을 주도하는 스타트업들은 AI와 우주 등 고성장 첨단 기술 분야에 포진해 있어 VC의 기대 수익률을 충족시킨다"며 "과거 대기업 중심의 '저마진·저속' 구조에서 벗어나면서 매력적인 투자처로 부상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방산 VC도, 스타트업도 없는 한국━한국은 이러한 세계적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VC들의 방산 투자 비중은 미미한 수준으로, 별도의 통계도 없다.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2024년 1000만달러(약 150억원) 이상 투자받은 글로벌 방산 스타트업이 99개 사에 달했다. 하지만 이 리스트에 한국 기업은 없다. 업계 전문가들은 투자의 기본 전제인 '시장'이 없는 것을 이유로 꼽는다. 방위사업청의 '2024년 방산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방위산업에 참여한 전체 529개 업체 중 업력 10년 이내 스타트업은 단 16개, 3%에 불과했다. 한 국내 대형 CVC 임원은 "방산 스타트업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혁신이 아니라 정부의 구매 결정"이라며 "수요가 발생할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확실성을 감내할 민간 자본은 없다"고 말했다. 방산 업계에 뛰어든 스타트업은 '제한된 데이터 접근'과 '기울어진 조달 법제도'라는 두 개의 벽을 동시에 넘어야 한다. ━'기술'보다 '가격', '혁신'보다 '납품 실적'━ 군이 부품·장비·소프트웨어 등을 경쟁입찰로 구매할 때는 방사청의 '물품 적격심사 기준'을 적용한다. 문제는 이 제도가 철저히 '기존 기업'을 위해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계약 낙찰자로 선정되려면 100점 만점에 95점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에게는 불가능한 점수다. 심사 항목 중 '납품 실적'에 10점이 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항목에서 만점을 받아도 총점 90점에 그쳐 탈락하게 된다. 업계에서 "팔란티어나 안두릴 같은 첨단 기업이 한국에서 창업했어도 첫 관문을 넘지 못했을 것"이라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다른 항목도 탁월한 기술력을 지닌 신제품을 평가하는 데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사 배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입찰 가격(40~60점)'이다. 이는 제도가 기성품을 전제로 단가를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의미한다. 그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항목은 '경영상태'(30~40점) 항목이다. 업체의 신용등급을 본다. 연구·개발 투자로 인해 초기 적자를 감수하며 시작할 수밖에 없는 딥테크 스타트업들은 낙제점을 받기 쉽다.반면, 스타트업의 유일한 무기인 '기술 능력' 항목은 0~20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평가 기관의 보고서에 따라 등급제로 분류돼, 파괴적 혁신의 가치를 온전히 점수에 반영하기 어렵다.정부도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신속시범획득사업이나 우수조달물품 지정 등 우회 트랙을 마련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정책들이 실효성 있는 대규모 본사업 조달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인큐텔 모델', 투자부터 조달까지 리드━전문가들은 대안으로 미국의 '인큐텔(In-Q-Tel, IQT) 모델'을 제시한다. 더브이씨 변재극 대표는 한국벤처창업학회 2025 추계학술대회에서 "수익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민간 자본은 첨단 산업 투자에 한계가 있다"며 "국방 분야에서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해줄 수 있는 한국형 인큐텔을 고민해볼 시기"라고 말했다.인큐텔은 '닷컴 열풍'이 한창이던 1999년 CIA 주도로 설립된 실리콘밸리식 VC다. 당시 국장이었던 조지 테넷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IT 산업의 젊은 혁신가들이 가진 뛰어난 재능을 활용하기 위해 독립적인 민간 비영리 VC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일반 VC가 수익률을 좇는 것과 달리 인큐텔의 투자 기준은 철저히 '국가 안보 기여도'다. 인큐텔 공동 설립자이자 초대 CEO인 길먼 루이에 따르면 "처음부터 우리의 임무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작전에 투입될 기술을 찾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인큐텔은 정보기관이 당면한 기밀 '문제 세트'를 실리콘밸리가 이해할 수 있는 '투자 테마'로 번역해 혁신 기술을 발굴한다. 기술이 확보되면 수요자와 스타트업을 직접 연결해 조달 계약까지 끌어낸다. 루이 전 CEO는 "기관 내부의 관료주의를 뚫고 기술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전도사'가 되는 것"으로 이 과정을 묘사했다. 그는 "기술이 어떻게 생명을 구하고 작전을 성공시키는지에 대한 강력한 스토리를 전파함으로써, 혁신 기술이 내부의 저항을 뚫고 실제 작전에 투입되게 만드는 '인적 패스트트랙 역할'을 수행했다"고 말했다.'인큐텔 모델'의 실효성이 검증되면서 민간의 벤처 투자 방식을 국방 생태계에 접목하는 것이 이제는 보편적인 안보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세계 각국은 최근 10년 사이 앞다퉈 인큐텔과 유사한 기관을 설립했다. ◆특별취재팀=제도혁신연구소 이상언 소장·이무영 부소장, 정치경제부 김인한·김성아 기자, 산업1부 최유빈 기자, 증권부 이동영 기자
프로펠러 6개 달린 드론이 키오스크 지붕 위에 살포시 앉았다. 다리로 붙들고 온 박스를 내려 놓곤 말벌 소리를 내며 하늘로 솓구쳤다. 키오스크 아래로 이동한 박스를 꺼냈다. 그 속에 안전하게 담겨 온 햄버거와 콜라를 손에 쥐었다. 지난 주말 중국에서 처음 경험한, 말로만 듣던 드론 배달이다. 드론은 1분에 한 대꼴로 선전시 런차이(人材) 공원 내 키오스크를 오갔다. 한국의 '배민'에 해당하는 중국 '메이투안' 앱으로 햄버거·치킨·커피·차 등을 주문할 수 있다. 배달료는 11위안(2400원). 메이투안 직원에 따르면 선전의 이런 배달 포인트가 약 100개다. 대부분 공원ㆍ광장과 지하철역 주변에 있다. 외지인들은 드론 착·이륙 광경을 목이 아프게 올려다 보는데, 산책 나온 현지인들은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친다. 이 도시에 드론 배달이 생긴 게 3년 전이다. 홍콩 친구 아들 결혼식에 갔다가 이웃 선전에 들렀다. 도시 건설이 한창이던 2000년에 셀 수 없이 늘어선 건설 크레인을 보고 놀랐던 곳이다. 지금은 중국의 실리콘 밸리라 불리는 '기술 굴기'의 상징이자 화웨이·텐센트·ㆍ 비야디(BYD)·다쟝(DJI)의 고향이다. 변화를 눈으로 보고 싶었다. 공원에서 차로 10분쯤 걸리는 곳에 있는 DJI 드론 전시장으로 갔다. 광장 복판의 4층 건물이 젊은이들로 붐볐다. 영상 촬영용이 인기였다. 한켠에는 농업·소방에 쓰이는 대형 드론이 즐비했다. 70% 넘게 세계 드론 시장을 점유한 DJI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우크라이나 청년들이 이 회사 드론에 폭탄을 매달아 러시아 전차로 날렸다. 난생처음 기사 없는 택시도 타봤다. 서울 강남 일대에 자율주행 택시가 운행되지만 운전석에 사람이 있다. 선전 무인 택시는 운전석이 빈 진짜 자율이다. 복잡한 난산구 도로를 편안하게 달렸다. 첫 경험이라 살짝 긴장했는데, 이내 익숙해졌다. 차로 변경, 좌·우 회전, 정차가 어지간한 사람 운전보다 매끄러웠다. 일반 택시보다 쾌적했고, 운임도 약간 쌌다. 'Inno100'이라는 아이디어 상품 판매점 계산대는 로봇이 지키고 있었다. 길거리 상점, 호텔 로비 등에서 커피 만드는 로봇을 봤다. 로봇 백화점 '6S 스토어'에선 축구하는 로봇, 피아노 치는 로봇을 구경했다. 개 형상의 로봇은 얼굴 모니터에 하트 문양을 연신 띄우고 엉덩이를 흔들며 손님 앞에서 재롱을 부렸다. 이 모든 견문이 하루에 다 이뤄졌다. 선전 도로에는 유류 차(청색 번호판)보다 전기 차(녹색 번호판)가 많았다. 대략 네 대 중 세 대꼴이다. BYD, 샤오미, 화웨이 등 대부분 중국제다. 오토바이는 예외 없이 배터리로 달린다. 도로 옆에도 배출가스 냄새가 나지 않는다. 한국 인구의 3분 1에 해당하는 1700만 명 거대 도시가 환경 친화로 거듭났다. 홍콩 가는 김에 중국의 변화를 보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KBS 다큐멘터리 때문이다. '인재전쟁'이라는 프로그램이다. 1부 제목은 '공대에 미친 중국'이고, 2부 제목은 '의대에 미친 한국'이다. 지난해 중국 회사가 만든 생성형 인공지능(AI) '딥시크' 충격을 조명했다. 중국 입시생은 "커서 과학자가 되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라고, 한국 학생은 "의사가 돼서 롯데월드 보이는 곳에 살고 싶어요"라고 한다. 영상 속에서 이정동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말했다.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이 한국을 추월한 지 오래다."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들이 촌철이다. '이게 수신료의 가치.' '설공 나와서 의대 갈 걸 후회하는 대기업 부장 한 트럭이다.' '싸구려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니라 인벤티드 인 차이나.' '간담이 서늘해지는 호러 영화.' "오히려 후퇴한 나라를 후대에 물려 주게 됐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한국 경제 성장률이 제로(0)에 수렴된다. 곧 마이너스(-) 시대가 된다는 예측도 나온다. 얼마 전까진 이런 얘기에 마음 속에선 '설마?'의 속삭임이 있었는데 요즘엔 그렇지도 않다. 한국이 내리막길 앞에 섰다고 진단하는 책 '피크 코리아'의 저자 백우열 연세대 교수는 "성장·생산성·효율의 개념이 다시 한국인의 가치관의 주류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린 지난 한 세대 동안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외쳤다. 이젠 '부강한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유물 창고에서 다시 꺼낼 때가 됐다. 횃불을 더 밝히지 못하고 사그라지는 잔광(殘光)만 후대에게 물려준 부끄러운 조상이 될 것 같아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