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관통하는 어젠다를 제시하고, 구체적 해법을 모색하는 미디어 싱크탱크입니다.
HD현대중공업이 2024년 4월 페루 국영 시마(SIMA)조선소와 맺은 6406억원 규모 계약은 함정 4척을 파는 사업이 아니다. 호위함과 원해경비함 각 1척, 상륙함 2척 모두 페루 현지에서 건조된다. 한국 기업은 설계와 기자재, 기술을 넘긴다. 배를 파는 것이 아니라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계약이다.무기 수출의 성격이 이렇게 달라졌다. 구매국은 자국 공장에서 만들고, 자국에서 고치고, 자국 기술자가 다룰 수 있기를 원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무기·탄약 분야 자국 생산 비중을 대폭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고, 유럽은 나토 재편 국면에서 역내 조달과 산업 참여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완제품을 실어 보내고 대금을 받는 거래는 성립하지 않는다.지난해 말 기준 국내 방산 4사의 수주잔고는 226조원이 넘는다. 사상 최대다. 그러나 계약서에 적힌 조건을 지킬 사람과 조직, 돈은 따로 준비돼 있지 않다.━법 조문은 있지만 권한이 없다━필리핀에서는 2022년 수출한 호위함 2척의 정비를 현지..
시대를 관통하는 어젠다를 제시하고,구체적 해법을 모색하는 미디어 싱크탱크입니다.
신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 보상 전문가다. 삼성·LG·현대자동차 등 한국 대기업의 급여·인센티브 체계 컨설팅을 해왔다. 2021년 '공정한 보상'이라는 책을 내 매경 정진기 언론문화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MZ세대 직장인의 보상에 대한 인식 변화를 살피며 기업의 변화를 촉구했다. 책에는 하이닉스가 영업이익 기준으로 성과급 지급 방식을 바꾼 것이 부를 업계 파장에 대한 진단도 들어 있었다. 신 교수를 18일 서울대에서 만나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 사태의 원인과 해법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이 어떻게 정리가 될 것으로 보십니까. ▶영업이익 10% 이상 기준의 성과급 지급으로 회사와 노조의 합의가 성사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일부는 주식 보상이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이고요. 문제는 얼마냐가 아니라, 향후 성과급 기준이 노조 요구처럼 제도화·문서화가 되느냐는 것인데, 결국 OPI(초과이익성과급) 상한선(연봉의 50%) 폐지 여부가 첨예한 쟁점이 될 것 같습니다. -영업이익의 10% 이상을 성과급으로 지급하면 상한선은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요. ▶연봉의 50%가 훌쩍 넘는 돈을 받지만 그것을 공식 인센티브 구조에 따라 받는 것과 정해진 OPI 기준에 따라 받고 추가로 격려금 또는 그와 비슷한 이름이 붙인 형태의 돈을 얹어서 받는 것은 다를 수가 있죠. ━5년 전 하이닉스 건으로 예견된 일━ -삼성전자 성과급 문제가 국가 중대사가 됐습니다. 왜 사태가 여기에까지 이르렀을까요. ▶첫째 이유는 메모리 반도체 초호황에 덕에 역대급 영업이익이 난 것이죠. 그 다음에는 5년 전에 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10%를 직원 성과급으로 약속했고, 지난해 9월에는 성과급 상한선을 없앤 것이고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인재 전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의 반도체 양대 경쟁사인데, 한쪽에서 수억원의 성과급을 받게 되면서 다른 한쪽의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었죠. -그렇다면 회사 경영진이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갈등을 줄이는 쪽으로 움직일 수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네 이렇게까지 진행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노조는 수년 전부터 EVA(경제적부가가치) 20%라는 성과급 기준을 폐지하고 영업이익 10%로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번에 그게 15%로 달라지긴 했지만, 성과급에 대한 불만이 계속 누적돼 온 것이죠. 올해 초 하이닉스 직원은 대략 1억5000만원 정도를 성과급으로 받았는데, 삼성전자의 약 세 배 수준이었습니다. 삼성전자 경영진이 조금 더 빨리 움직였어야 합니다. 사실 경영진이 성과급 제도 개편을 검토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단지 복잡한 사정으로 바꾸지 못했던 것입니다. -개편 검토를 했다는 것을 어떻게 아시죠. ▶저도 2024년에 삼성전자 의뢰로 의견 안을 만들어 보냈습니다. OPI 제도 개선에 대한 것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세부 내용을 말씀드리긴 좀 곤란하고요. -그런데 왜 개편이 이뤄지지 않았을까요. ▶삼성전자는 하이닉스에 비해 상당히 복잡합니다. 여러 사업부가 한 지붕 아래에 있고, 연구 조직, 지원 조직도 방대합니다. 그룹 전체의, 나아가 국가 경제의 핵심이기도 하죠.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았을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보수적 경영의 틀이 있기도 하고요. ━EVA, 합리적이지만 내용이 복잡━ -노조는 EVA 성과급 기준 폐지를 주장하는데, 회계 전문가들은 EVA가 상당히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도 투입된 자본의 기대 수익을 반영한 EVA 방식이 타당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2024년 삼성전자 보고서에도 그렇게 썼고요. 무엇으로 성과급의 기준을 삼느냐의 문제인데, 매출이나 영업이익보다 EVA가 올바른 준거가 됩니다. 문제는 EVA가 직원들과의 소통에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친구에게 수분 안에 EVA 산출 방식을 온전히 설명하지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회사가 공개하기 어려운 정보가 산식 안에 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게 난점입니다. 게다가 하이닉스에서 EVA 기준을 없앴으니 삼성전자 직원들이 EVA를 받아들이기 더욱 어렵게 됐죠. -교수님은 저서 '공정한 보상'에서 MZ세대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이 보상의 방식에 대한 기대가 달라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이번 삼성전자 갈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나고 생각하십니까. ▶EVA 기준에 젊은 삼성 직원들이 동의하지 않는 것도 그 현상의 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명확하게 근거를 마련하라는 것이죠. 삼성전자 초기업 노조 위원장이 37세입니다. 앞으로 여러 대기업에서 30대 노조 위원장이 등장할 것입니다. 이들은 기존의 노조 위원장과는 다릅니다. 5년 전 하이닉스 성과급 제도 변화를 촉발한 것은 29세 직원이 쓴 글이었습니다. 글의 핵심은 투명한 산정 기준 공개였고요. -어떻게 달라졌고, 왜 달라졌다고 보십니까. ▶학교에서 수년 뒤에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비롯해 대기업으로 갈 학생들은 매일 마주합니다. 그들은 평가에서 '교수 재량'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내 학점이 친구 학점보다 낮을 때 사전에 제시된 분명한 근거가 있으면 납득하고 그렇지 않으면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성장 과정 자체가 치열한 '각자도생' 경쟁의 장이었고, 그 경쟁에서 이겼을 때 보상을 받은 경험이 쌓였습니다. 비교, 경쟁, 보상의 틀이 그들의 세계관을 형성했습니다. 그리고 노동 가치에 비해 자산 가치의 급격한 상승이 있었습니다. 아파트 한 채가 수십억원을 합니다. 젊은이들의 보상에 대한 기대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죠. ━골고루 나누는 성과급 지속 어려워━ -그렇다면 합리적이고 명확한 성과급 규칙을 만들면 되겠네요. 어떤 제도가 바람직한가요. ▶삼성전자의 성과급 모델은 1990년대 미국에서 많이 썼던 것입니다. 지금은 대부분 바뀌었고요. 이익의 몇%, 이런 식의 성과급 제도는 찾기 어렵습니다. 최근의 주요 모델은 연 초 목표 대비 성과 달성 정도를 수치화해서 적용하는 것입니다. 목표 대비 100% 달성, 120% 초과 달성 등으로 구분해서요.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470조원이 생긴다 해도 연 초 목표가 450조원이었으면 5% 초과 달성으로 평가해 지급했겠죠. -한국 대기업의 성과급이 직원들이 골고루 비슷하게 받는 방식으로 지급됩니다. 해외 기업들과는 다소 다른 것 같습니다. ▶기업의 형태가 '제조 기업'이냐 '기술 기업'이냐에 따라 배분 구조가 다를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는 아직도 제조 기업 기반의 보상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과 평가에 따라 약간의 차등이 있지만 거의 N분의 1 수준에 가깝죠. 글로벌 인재 전쟁의 측면에서 보면 유지되기는 어려운 구조입니다. 정교한 성과 평가에 따른 실효성 있는 성과급 지급 제도 마련이 기업들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보상' 전문가로서 이번 일을 보시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무엇입니까. ▶젊은 직원들의 정서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인구 감소로 인재 구하기는 더 어려워 질 것입니다. 기업들이 관행을 깨는 과감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익을 나눠서 가지는 게 최선이냐, 회사의 성장을 위해서 더 생산적으로 쓸 수 있지 않느냐의 문제도 결국 기업과 직원이 정서적 유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처음엔 오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내년 합산 영업이익이 700조원을 상회할 수 있다는 전망을 처음 접하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최근 페이스북에서 털어놨다. 초현실적일 정도로 낯선 초호황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예고없이 찾아온 초호황을 지혜롭게 맞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KB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내년 합산 영업이익 전망치는 840조원을 웃돈다. 특히 삼성전자의 내년 영업이익 추정치는 약 488조원으로, 글로벌 시가총액 1위 엔비디아와 비슷한 수준이다. 조선 3사의 합산 수주잔고는 135조원으로 약 3년치 일감을 확보했다. 방산 5사 합산 수주잔고는 165조원으로 3~4년치 일감이다. 그야말로 '초호황'이다.전문가들은 주요 산업의 초호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미·중 갈등이 만들어낸 지정학적 재편과 AI·에너지 전환·자주국방이라는 중장기 수요 요인이 뒷받침된 구조적 호황이란 점에서다.━ 미·중 갈등이 불러온 기회━초호황의 핵심 배경은 미·중 갈등을 비롯한 지정학적 변화다. KB증권 김동원 리서치본부장은 미국의 대중국 첨단기술 규제가 일시적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첨단 기술과 핵심 산업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한국이 핵심 대체재로 부상했다는 진단이다.AI 시대의 반도체 패권을 둘러싸고 미·중이 부딪치면서 2022년 이후 미국의 대중국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는 단계적으로 강화돼왔다. 중국 메모리 업체(CXMT·YMTC)는 미국 빅테크 시장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그 결과 미국 빅테크가 AI 인프라용 HBM을 살 수 있는 곳은 한국 두 회사와 미국 마이크론뿐이다.한국이 LNG선·암모니아선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에서 압도적 기술력으로 시장을 장악해온 가운데, 미·중 갈등이 그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EU 선주들이 지정학적 신뢰 문제로 중국 조선소를 회피하면서 고부가 선박 발주가 더욱 한국으로 쏠리는 구도다. 미국은 2024년 조선업 부흥을 국가 안보 의제로 격상했다.미·중 갈등 격화로 미국이 동맹의 군사력 강화를 압박하고 중·러 위협이 부각되면서 세계 각국은 무기 비축을 늘리고 있다. 이 수요를 온전히 받아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가 한국이다. 친서방 진영의 무기 수요국들은 빠른 납기, NATO 표준 호환성, 합리적 가격, 유연한 기술이전을 동시에 요구하는데, 미국은 자국 우선 정책으로 납기를 지키지 못하고, 독일·프랑스는 생산능력이 한정적이며 가격이 비싸다. ━호황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다수의 전문가들은 초호황의 장기 지속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향후 수년간의 수요가 이미 확보돼 있기 때문이다.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은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 규모가 2025년 350억달러에서 2028년 1000억달러로 연평균 약 40%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SK하이닉스도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향후 3년 동안 고객들이 요청한 수요가 이미 공급능력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주요 방산 수출국이 꾸준히 국방비를 늘리고 있어 방산 수출 모멘텀도 지속될 전망이다. 미 국방부는 2027 회계연도 국방예산을 전년 대비 50% 올린 1조5000억달러(약 2200조원)로 편성했다. 유럽도 NATO 헤이그 합의에 따라 2035년까지 GDP 대비 5%까지 국방비를 끌어올린다. 현재의 두 배 이상 수준이다.일본 해운분석기관 BIMCO에 따르면 한국 조선 3사는 이미 3년치 이상의 수주잔량을 확보했다. 그 위에 MASGA가 얹어진다. 미 국방부는 2027 회계연도 예산안에 해외 조선소를 활용한 함정 건조 연구사업을 18.5억달러 규모로 신설했고, 미 해군의 차세대 군수지원함(NGLS) 건조는 2028년 발주 예정이다.━산업별로 구조적 수요 요인━반도체는 AI 데이터센터 자본지출이 수요를 끌어올린다. 미래에셋증권 김영건 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의 설비투자는 약 8060억달러로 전년 대비 73% 늘어날 전망이다. 구글의 AI 인프라 책임자 아민 바흐다트 부사장은 지난해 11월 사내 회의에서 AI 서버를 5년 안에 1000배로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HBM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도 지난 3월 메모리의 대역폭과 용량이 지금보다 각각 1000배씩 더 늘어나야 한다고 진단했다. 조선은 에너지 전환과 친환경 규제라는 두 개의 구조적 변화 위에 놓여 있다. 클락슨리서치는 2026년 신규 발주 선박의 70% 이상이 대체연료 추진선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전 세계 운항 선박의 약 35%가 IMO의 강화된 탄소 규제를 충족하지 못하는 노후선이고, 2027년 상반기부터 선박 탄소세가 부과되면서 교체 압력이 본격화된다. 2025년 기준 한국 점유율은 LNG선 74%, 암모니아 추진선 100%, 메탄올 추진선 68%로 압도적이다.방산은 세계 각국의 군비 지출 증가로 인한 수혜가 지속될 전망이다. 2024년 세계 군사비 지출은 2조7180억달러로 전년 대비 9% 늘었다. 냉전 종식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SIPRI). SIPRI는 2026년 4월 보고서에서 "현재의 위기 범위와 각국의 장기 군비 목표를 감안할 때 2026년과 그 이후에도 군비 지출 증가세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쏠림'과 버블 우려도━초호황의 이면도 존재한다. 유진투자증권 허재환 연구원은 극심한 '쏠림 현상'을 지적하며 2026년 5월 코스피 7000선 돌파 시점을 분석하며 반도체를 제외한 코스피는 4100선으로 추정되며 올해 고점을 갱신하고 있는 섹터는 전체 시장의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GDP 성장에서 반도체 제조업 기여분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수 상승 속도와 투자자 체감 경기 사이에 괴리가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호황의 조기 종료를 경고하는 시각도 있다. BNK투자증권 이민희 연구원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AI 추론 투자 사이클이 후반부에 진입했다고 진단하며 SK하이닉스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보유로 하향했다. 키움증권 박유악 연구원도 업황이 정점을 지났을 지도 모른다며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아웃퍼폼으로 낮췄다. 구글 순다르 피차이 CEO는 지난해 BBC 인터뷰에서 시장에 비이성적인 면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버블이 터지면 어떤 기업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1987년 여름 런던 도심에서 연일 은행원 시위가 열렸다. 파업을 동반했다. 준공무원으로 인식되던 은행원들이 거리로 몰려나온, 전례 없던 사태였다. 여러 요구가 있었지만 핵심은 급여 인상이었다. 컴퓨터 보급 확산으로 업무가 전산화되기 시작한 때다. 은행 직원들은 새로운 일 처리 방식을 익혀야 했다. 단순 업무가 줄면서 업무 강도가 세졌다. 은행의 '효율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자 고용 안정성도 약해졌다. 영국 은행·보험·금융노조(BIFU)가 조합원들의 불만을 집단행동으로 조직했다. 이제 더 이상 단순 사무직이 아니니 전문직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노조 승리로 싸움이 끝났다. 급여가 평균 9% 인상됐다. 그때부터 바클레이즈·로이즈 등 영국 은행들이 지점·부서·개인에 대한 업무 평가를 시작했다. 일반 사무직이 아니고 전문직이라고 했으므로, 성과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당연하다는 것이 은행 이사회 논리였다. 급여가 점차 '개별화' 됐다. 전통적인 연공+직급제가 허물어졌다. 노조 협상이 내 연봉에 미치는 영향이 확연히 줄었다. 노조 활동은 윗사람 눈치 보면서까지 할 일은 아닌 게 됐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주의가 늘었다. 급여에서 매달 나가는 조합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커졌다. 80% 수준이던 영국의 은행·보험 노조 가입률은 현재 12%(영국 정부 통계)다.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을 계기로 한국 국민 다수가 의문을 품었다. 해외의 삼성전자 비슷한 기업에서는 초호황 대박이 났을 때 성과급을 어떻게 주나? 영업 이익의 15% 정도를 직원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곳이 있나? 성과급 때문에 노조가 파업으로 회사를 압박하는 곳이 있나? 이런 질문들이 던져졌다. 언론이 삼성전자 경쟁사를 포함한 글로벌 빅테크를 살펴 보도했다. TSMC·엔비디아·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대상이다. 결과는 이렇다. 성과급의 상당 부분을 주식으로 준다. 통상 4년 정도의 매도 금지 기간을 정해서. 성과급은 급여 계약 때 조건과 계산 방식이 약속된다. 회사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지 않는 한 노조가 개입할 게 없다. 성과 평가는 조직과 개인으로 개별화 돼 있다. 이때의 조직은 팀 정도의 규모다. 전체 회사 수익에서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율은 회사에 따라 다르다. 15%가 넘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한국인들은 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성과급 지급 방식이 글로벌 표준과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회사의 성공은 벡터(힘의 방향+크기)의 합에 달려 있으며, 인재의 밀도가 그 합을 결정하고, 결국 '하드코어'가 핵심이다." 일론 머스크의 말이다. 여기에서 하드코어는 특별한 성과를 내는 임직원을 일컫는다. 팔란티어를 만든 알렉스 카프는 회사의 핵심 인재를 아티스트, 일탈자(deviant), 선교사로 칭한다. 스티브 잡스는 혁신을 일궈내는 내부자를 A플레이어로 불렀다. 구글의 검색 엔진 개척자 앨런 유스터스는 "최고 수준 엔지니어의 가치는 평균적 기술자의 300배"라고 주장했다. 빌 게이츠는 "출중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평균적인 개발자에 비해 1만 배의 가치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글로벌 빅테크에는 전 직원이 비슷하게 나누는 성과급 제도가 없다. 창업자들 생각에 그 까닭의 답이 있다. 지난달 29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서울 한남동 이재용 삼성 회장 집 옆에 천막을 쳤다. 앞에 이런 문구가 걸렸다. '우리가 천막을 친 이유는 단 하나, 내 옆의 동료가 떠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성과급이, 결과적으로 총 급여가 불만스러워 직원이 다른 회사로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투쟁에 나섰다는 뜻이다. 정말일까? 그렇다면 능력이 월등한 반도체 엔지니어가 대만·일본·미국, 나아가 중국으로 가는 것을 일률적인 보너스로 막을 수 있을까? '공정한 보상'의 저자 신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현재 삼성전자 부장급 미만 직원의 성과급은 개별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이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 국제 인재 쟁탈전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외국 반도체 회사와 경쟁한다. 초격차 기술력에 초격차 인재 대우는 필수적이다. 지금의 성과 배분 갈등은 결국 새로운 제도로 귀결될 것이다. 기존의 골고루 나누기가 존속되기 힘들다. 그때 노조가 '내 옆의 동료가 떠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오늘의 주장을 잊지 않기 바란다. 그냥 동료가 아니라 우수한, 뛰어난 동료가 짐을 싸면 더 큰 문제 아닌가?
"새로운 정부 모델이 출범합니다. 2년 내 정부 서비스, 운영의 50%가 AI 에이전트로 대체됩니다. 세계 최초의 자율 시스템 정부로 만들 것입니다." 2026년 4월 23일, 아랍에미리트(UAE) 총리 셰이크 무함마드가 자신의 X 계정을 통해 선언했다. 이어진 문장은 더 단호했다. "2년 뒤부터 정부의 성과는 AI 도입 속도, 실행의 질, 업무 재설계 역량으로 측정합니다."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시한과 측정 지표가 박힌, 국가 운영체제를 통째로 갈아 끼우겠다는 비전 발표였다. 15년 전 넷스케이프 창업자이자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벤처투자자 마크 안드리센은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애플·구글·아마존이 산업의 지형을 다시 그렸다. 2017년 젠슨 황은 한 발 더 나아갔다. "이제는 AI가 소프트웨어를 먹어 치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다. '코드(Code)' 한 줄이 공장 하나를, 알고리즘 한 묶음이 부처 하나를 대체할 수 있다. UAE 총리의 선언은 그 흐름의 한 변곡점일 뿐이다. 미국은 2026 회계연도 국방예산을 사상 처음 1조 달러(약 1400조원)까지 끌어올렸고, 2027년에는 1.5조 달러를 제안했다. 이 돈의 상당 부분이 무인기와 AI, 자율 시스템으로 흘러간다. 세상의 중심이 빠르게 '코드'로 옮겨가는 중이다. "어우 정말 난장판이다. 정말 난장판이야 …." 한 특위위원장의 자조 섞인 독백이 마이크를 타고 흐른다. 삿대질을 이어가는 여당과 야당의 의원들 사이에서 카메라는 누구의 얼굴도 잡지 못한 채 회의장 전경을 비춘다. 4월 30일 한국 국회의 풍경이다. 고성이 30분 넘게 이어지고 나서야 회의가 다시 시작됐다.AI·과학·통신을 다루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도 난장 같은 모습이 자주 펼쳐진다. 과방위는 22대 국회 출범 직후부터 방송4법을 둘러싼 극한 정쟁의 장이 됐다. AI 기본법은 가까스로 통과시켰지만, 그 외 과학·AI 분야 법안은 줄줄이 밀려 표류 중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84시간에 걸친 과방위 속기록을 분석해봤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쿠팡 혼내기'였다(38%, 30시간). 최대 현안이자 미래 먹거리인 AI(20%), 우주항공(5%) 분야의 시간 점유율은 초라하다. 한국 정치의 핵심은 '코드'가 아니라 '데시벨'이다.이런 시간 속에서 한국이 키운 AI 인재들은 짐을 싼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에 발간한 보고서 'AI 전문인력 현황과 수급 불균형'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AI 전문인력 5만7000명 가운데 약 1만1000명이 해외에서 일한다. 한국의 AI 전문인력은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는 매년 한국을 빠져나가고 있다. 올해 4월 발간된 스탠퍼드대 'AI 인덱스 2026'도 한국을 AI 인재 순유출국으로 분류한다. 인재 유출 속도는 조사 대상 50개국 중 8위다. 정치권의 요란한 목청 싸움 속에서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떠난다. 일찍이 쇼펜하우어는 '소음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썼다. "한 인간이 묵묵히 견뎌낼 수 있는 소음의 양은, 그의 지적 능력과 반비례한다."UAE의 'AI 정부 선언'은 50%라는 자동화 목표 뿐 아니라 '2년'이라는 시한, 그리고 '도입 속도·실행의 질·재설계 역량'이라는 측정 지표도 명시했다. 한국 정치가 같은 2년 뒤 무엇으로 측정될지는 누구도 답하지 못한다. 중국 AI 모델은 지난 2월 세계 최대 AI개발자 플랫폼 허깅페이스 다운로드의 41%를 가져가며 미국(36.5%)을 처음 추월했다. '코드'는 전에 없이 맹렬한 기세로 세상을 뒤바꾸는데, 국회의 소음은 조용히 한국의 잠재력을 집어삼킨다. AI 골든타임은 이렇게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소진되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15% 현금 보상을 요구하며 5월 총파업을 예고했다. 노조는 "파업이 현실화되면 30조원 손실이 발생한다"고 공언했다.글로벌 빅테크·반도체 기업들에게 이런 풍경은 낯설다. 비결은 기업·노동자·주주 세 축의 이해관계를 사전에 정렬시킨 '제도' 에 있다. 선진 기업들의 지혜를 들여다본다.━기준 공개로 원천적으로 분쟁 막아━미국 상장사들은 매년 주주총회 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위임장 명세서(Proxy Statement)'를 제출해야 한다. 임직원 보상 프로그램의 철학, 성과 지표, 지급 기준, 실제 지급 금액이 모두 담긴다. 누구나 SEC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엔비디아의 2025년 위임장 명세서에 따르면 직원 보상은 기본급·현금 인센티브·주식 보상으로 구성돼 있다. 현금 인센티브는 사업부별 영업이익 목표 달성률에 따라 지급 배율이 결정된다. 2025 회계연도 엔비디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47% 급증한 815억달러를 기록했고, 이 실적이 보상 산정 근거가 됐다. 매년 주총에서 주주들이 임원 보수 전반에 대해 찬반 의사를 표시하고 해당 결과가 다음 연도 보상 설계에 반영된다.TSMC는 직원 이익배분 규모를 연간보고서에 순이익 연동 방식으로 공시한다. 정관 상 순이익의 1% 이상을 성과급으로 보장하지만 실제로는 연간 10% 수준을 꾸준히 집행해 왔다. ━외부 전문가가 보증, 주식 보상이 대세━엔비디아와 인텔의 보상위원회는 ISS, Meridian 같은 독립 외부 보상 컨설턴트를 선임해 보상 프로그램의 적정성을 매년 검토한다. 두 회사 모두 SEC 공시 문서에 외부 컨설턴트 선임 사실과 검토 결과를 명기한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자의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다"라는 근거가 생기고 직원 입장에서는 보상 프로세스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결정 과정 자체도 제도화돼 있다. 보상위원회가 연간 성과 지표와 보상 설계안을 마련하면, 외부 독립 컨설턴트가 리스크와 적정성을 검토하고, 이사회 보고 후 주총에서 주주 검증을 받는다. 수정이 필요하면 보상위원회가 안을 다시 만든다. 샌디스크는 2025년 2월 웨스턴디지털에서 분사하자마자 이 프로세스를 가동했다. 2025년에는 재무지표(매출 50%·영업이익 50%)만이 기준이었지만 2026년 안은 수익성(50%)·장기 전략(25%)·현금 흐름(25%)으로 평가 항목을 세분화했다. 실리콘밸리는 현금 지출 없이 임직원의 장기 근속을 유도하는 방안으로 주식 보상을 적극 활용한다. 반도체 기업도 마찬가지다. 엔비디아는 전 직원에게 분기마다 주식 보상을 지급한다. 지난해 기준 직원 1인당 평균 주식 보상은 약 15만달러로 기본급과 맞먹는 수준이다. AMD는 2026년 위임장 명세서에서 전체 임직원의 주식 보상 비중이 총보상의 절반을 넘는다고 공시했다.CEO 보너스는 대부분 주식이다. AMD 공시에 따르면 리사 수 CEO의 2024년 총보상 3100만달러 중 기본급은 126만달러에 불과하고, 주식 보상이 2170만달러로 전체의 70%를 넘었다. 엔비디아 젠슨 황의 2025 회계연도 총보상도 4990만달러 중 기본급은 100만달러 수준이다. 주식 보상을 매개로 주주와 임직원의 이해가 구조적으로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1/N은 없다, 키맨에겐 파격 보상━핵심 인재를 위해선 파격적인 보상 제도를 만들어 뒀다. AMD는 올해 이사회 결의로 리사 수 CEO에게 7500만달러 규모의 '성과 연동 주식'을 부여했다. 이 주식은 향후 5년간 주가 성장률 목표를 달성할 때만 지급되며 목표 미달 시 한 푼도 받지 못한다. TSMC는 엔비디아·인텔 등 글로벌 경쟁사와의 인재 유치 경쟁이 심화되자 2021년 일반 직원 성과급과 완전히 분리된 주식 보상 제도를 도입했다. 이사회가 매년 부여 대상과 규모를 독립적으로 결의한다. 중국 기업들의 비대칭 보상은 더 공격적이다. 텐센트의 2021년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이사진에도 속하지 않는 두 명의 핵심 임원이 각각 약 2040억원(16억홍콩달러)을 받았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마화텅의 같은 해 보수(약 85억원)보다 20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비상장사인 화웨이조차 19만명의 직원이 가상 주식을 보유하는 구조를 운영하며, 핵심 기여자에게는 5년 결산 사이클의 장기 주식매수권을 별도로 지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