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관통하는 어젠다를 제시하고, 구체적 해법을 모색하는 미디어 싱크탱크입니다.
HD현대중공업이 2024년 4월 페루 국영 시마(SIMA)조선소와 맺은 6406억원 규모 계약은 함정 4척을 파는 사업이 아니다. 호위함과 원해경비함 각 1척, 상륙함 2척 모두 페루 현지에서 건조된다. 한국 기업은 설계와 기자재, 기술을 넘긴다. 배를 파는 것이 아니라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계약이다.무기 수출의 성격이 이렇게 달라졌다. 구매국은 자국 공장에서 만들고, 자국에서 고치고, 자국 기술자가 다룰 수 있기를 원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무기·탄약 분야 자국 생산 비중을 대폭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고, 유럽은 나토 재편 국면에서 역내 조달과 산업 참여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완제품을 실어 보내고 대금을 받는 거래는 성립하지 않는다.지난해 말 기준 국내 방산 4사의 수주잔고는 226조원이 넘는다. 사상 최대다. 그러나 계약서에 적힌 조건을 지킬 사람과 조직, 돈은 따로 준비돼 있지 않다.━법 조문은 있지만 권한이 없다━필리핀에서는 2022년 수출한 호위함 2척의 정비를 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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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 단순히 질문에 답하거나 업무를 돕는 수준을 넘어 일터에서 사람과 한 팀을 이뤄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시대가 열렸다.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Palantir)는 9일(현지시각) 자사의 기술 컨퍼런스인 '데브콘 5'(DevCon 5)를 개최하고 다수의 신기술을 공개했다. 데브콘은 팔란티어가 주관하는 글로벌 개발자 컨퍼런스로, 기술 파트너사와 개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최신 기술 개발 현황과 신기능을 공유하는 자리다. 2024년 11월 첫 개최 이후 이번이 다섯번째 행사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기술 개발을 최전선에서 이끄는 팔란티어 내부의 부문별 핵심 인사들이 총출동해 AI가 기업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사람과 한 팀을 이루는지 직접 시연했다. 이날 기조연설에 나선 팔란티어의 수석 기술 설계자(Chief Architect) 악샤이 크리슈나스와미(Akshay Krishnaswamy)는 "단순한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는 수준으로는 남들과 똑같은 결과(베타)만 얻게 될 뿐"이라며 기존 AI 활용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진정한 경쟁력(알파)은 회사의 고유한 지식과 AI를 결합할 때 나오며 팔란티어가 이번에 선보이는 '사람과 AI가 팀을 이루는' 기술이 이를 현실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상황에 맞춰 즉석에서 팀 꾸리는 '하이브마인드'━ 미국 정부 사업 부문의 AI 담당 벤 래드포드(Ben Radford)는 복잡한 문제가 생겼을 때 상황에 맞춰 여러 AI를 한 팀으로 묶은 AI 팀(에이전트 군집, agent swarms)을 순식간에 꾸려내는 '하이브마인드'(Hivemind) 기술을 소개했다. 미리 만들어둔 범용 AI를 쓰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의 성격에 따라 역할이 다른 AI 에이전트들을 즉석에서 조합해 투입하는 방식이다. 각각의 AI 에이전트는 서로의 아이디어에서 약점을 찾아내 비판하고, 가상 모의실험을 거듭하며 최적의 해결책을 찾아낸다.또 스스로 데이터를 분석해 컴퓨터 코드를 짜는 것은 물론, 그 코드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자동 검사 프로그램'까지 스스로 만들어 오류를 고치는 AI 개발 도우미 'AI FDE'(현장에 직접 투입돼 문제를 해결하는 AI 엔지니어)의 활약상도 비중 있게 조명했다.━ 몇 달 걸리는 복잡한 업무도 척척… '오케스트레이터'━ 회사 업무는 단 몇 분 만에 끝나지 않고 며칠에서 몇 달씩 걸리기도 한다. 소프트웨어 개발팀을 이끄는 맷 호스(Matt Hawes)와 전방 배치 엔지니어(FDE) 비셰쉬 파텔(Vishesh Patel)은 이처럼 오래 걸리는 업무를 중단·재개가 가능한 방식으로 안정적으로 실행하는 작업 시스템 '오케스트레이터'(Orchestrator)를 시연했다.기존의 AI는 외부 응답을 기다리거나 작업이 길어지면 오류를 일으키며 중단되는 경우가 많았다. 오케스트레이터는 이 문제를 해결해, 병원 진료비 승인처럼 추가 서류나 외부 이메일 답장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AI가 안전하게 대기 상태를 유지하다가 조건이 충족되면 즉각 작업을 재개한다. 이는 기업 현장에서 인간과 AI의 협업을 실현할 핵심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AI 맞춤형 데이터 환경과 철저한 보안 통제━ 팔란티어 그룹 리더(Group Lead) 테드 체스터 젠크스(Ted Chester Jenks)는 텍스트, 이미지, 수치 등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팔란티어의 온톨로지(Ontology) 기반으로 통합하는 기반 환경 구축 현황을 소개했다. 온톨로지는 AI가 데이터 간의 관계와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지식 지도'다. 이를 통해 AI는 조직 내 흩어진 방대한 자료를 자유롭게 분석하고 다룰 수 있게 된다.자칫 중요한 데이터를 훼손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보안 장치 기능도 공개됐다. 온톨로지 보안 그룹 리더 케빈(Kevin)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로라(Laura)는 음성 명령으로 수술 일정을 조율하는 AI 비서의 사례를 발표했다. 이 AI는 곧바로 실제 스케줄을 바꾸지 않고 '시나리오'라는 안전한 가상 연습 공간에서 먼저 일정을 짜 본다. 이후 사람(관리자)이 확인하고 승인해야만 실제 병원 스케줄에 최종 반영된다. ━AI, 쓸수록 강해지는 '조직의 두뇌'로━팔란티어는 이번 행사를 통해 AI가 조직의 보조 수단에서 중심 주체로, 나아가 스스로 진화하는 주체로 발전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크리슈나스와미는 "사람과 AI가 한 팀이 돼 문제를 해결하고 학습하는 이 방식이 기업 업무의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라며 "그 결과 회사 전반에 걸쳐 강력한 '누적 지능 코어'(compounding intelligence core)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AI가 업무를 수행할수록 조직의 지식과 경험이 쌓여, 이것이 다시 AI의 역량을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게 될 것이란 설명이다.
주식시장에서 자기주식(자사주) 소각은 배당과 함께 가장 보편적인 주주환원 방식이다. 주식 수가 줄어 주당순이익(EPS)이 높아지고 주가가 오른다. 미국은 자사주를 소각할 유인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았고, 일본은 거래소의 압박이 관행을 바꿨다. 한국은 달랐다.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는 것을 오랫동안 허용해온 결과, 자사주가 주주환원이 아닌 경영권 방어의 도구로 굳어졌다. 그러나 2026년 2월 국회가 자사주 소각을 법으로 의무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소각이 자연스러운 선택━미국은 회계기준상 자사주를 자산이 아닌 자본의 차감 항목으로 처리하도록 돼 있다. 자사주는 시가총액 계산에서도 빠진다. 자사주 매입이 곧 소각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다. 미국에서 자사주 소각은 절차적 문턱이 낮다. 주(州)마다 회사법이 다르지만 대부분 이사회 결의만으로 즉시 소각이 가능하다. 미국 상장기업 과반이 준거법으로 택하는 델라웨어주가 대표적이다. CEO 보수도 스톡옵션 등 주가에 철저히 연동돼 있어 경영진 스스로 자사주 소각에 적극적이다. 또 블랙록·뱅가드 같은 거대 기관투자자들은 주주환원에 소극적인 기업의 이사 재선임에 가차 없이 반대표를 던진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포이즌 필과 차등의결권이라는 강력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 이미 합법화돼 있어 자사주를 활용할 필요성이 낮다.포이즌 필은 적대적 인수 시도 시 기존 주주들에게 시장가보다 싼 가격에 신주를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 상대방의 지분율을 희석시키는 방어 장치다. 1980년대 기업사냥꾼의 공세에 맞서 델라웨어주를 중심으로 합법화됐다. 차등의결권은 구글·메타처럼 창업자에게 1주당 10~20배의 의결권을 부여해 외부 자본이 늘어나도 지배력을 유지하게 하는 구조로, 역시 같은 시기 확산됐다. 이 두 수단이 자리를 잡으면서 굳이 자사주를 경영권 보루로 쥐고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이 구조가 낳은 결과는 숫자로 확인된다. S&P에 따르면 S&P 500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2025년 3분기 기준 분기당 2490억달러(약 356조원)에 달한다. 최근 12개월 누적액은 사상 처음으로 1조달러를 돌파했다.━일본, 아베노믹스가 이끈 변화━일본의 전통적 기업 철학은 주주보다 종업원·거래처·계열사 등 이해관계자 전체를 중시하는 방향이었다. 상호출자(A사와 B사가 서로 상대방 주식을 보유하는 구조)와 교차보유(계열사들이 그물망처럼 서로의 주식을 나눠 갖는 구조)는 그 철학의 제도적 표현이었고, 자사주는 경영권 방어와 우호 세력 결집의 도구였다. 이 점에서 2000년대 초반의 일본은 지금의 한국과 닮아 있었다. PBR(주가순자산비율) 1배 미만 기업이 전체 상장사의 절반을 넘어섰다. PBR 1배 미만이란 회사를 지금 당장 청산해도 주식을 사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시장이 기업의 미래보다 청산 가치를 높게 본다는 의미로, 자본 효율의 총체적 실패를 보여주는 수치다.변화는 정부가 추동했다. 아베 내각은 2013년 스튜어드십 코드와 지배구조 코드를 잇달아 도입하며 기관투자자에게 주주권 행사 의무를 부과했고, 기시다 내각이 이를 이어받아 개혁을 가속화했다. 그 흐름의 끝에서 2023년 3월 도쿄증권거래소(TSE)가 직접 나섰다. TSE는 '잃어버린 30년' 동안 좀처럼 오르지 않는 일본 증시를 되살리기 위해 모든 프라임·스탠더드 상장사에 공개 서한을 보냈다. "PBR 1배 미만 기업은 자본 효율 개선 계획을 공시하라. 그러지 않으면 개선 기업 명단에서 제외하겠다." 철학을 바꾸라는 요구가 아니라, 글로벌 자본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실존적 압박이었다. 도요타·혼다·소니가 잇달아 대규모 자사주 소각을 선언했다. 2024 회계연도 자사주 매입 규모는 18조엔에 육박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업들은 신규 매입분과 함께 금고에 쌓아두었던 기존 보유분, 교차보유 해소 과정에서 회수된 물량까지 한꺼번에 털어냈다. 자사주를 사고도 그냥 쥐고 있던 관행이, 묵혀두었던 적체분까지 정리하는 문화로 바뀐 것이다.━한국, 외환위기가 만든 관행━ 1994년 이전까지 한국 상법은 자사주 취득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주주 평등과 시장 공정성을 지킨다는 명분에서다. 회사가 자사주를 매입하면 자본이 실질적으로 유출돼 채권자 보호 원칙에 반하고, 시장에서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으며, 무엇보다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게 매각해 지배구조를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그 원칙이 허물어진 것은 위기 때문이었다. 1994년 증권거래법 개정으로 상장사에 한해 발행주식의 5% 범위 내에서 처음 허용됐고,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외국 자본의 적대적 인수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한도가 빠르게 확대됐다. 1998년에는 취득 한도가 사실상 폐지됐고, 2011년 상법 개정으로 자사주 보유와 처분이 완전히 자유화됐다. 자본시장연구원은 2023년 이를 '자사주 마법(Treasury Stock Magic)'으로 명명했다. 회사를 존속회사와 신설회사로 쪼개는 인적분할 과정에서, 상법상 의결권이 없던 자사주 만큼 신설회사 주식이 주어지며 의결권이 부활했다. 대주주는 추가 자금 없이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고, 일반 주주들의 발언권은 그만큼 줄어드는 구조였다.자사주 마법보다 더 광범위하고 일상적인 사례는 백기사 매각이었다. 기업들은 평시에는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가,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는 순간 우호 세력에게 매각해 의결권을 되살렸다. 소각할 이유가 없었고, 보유할 이유는 충분했다. 서울대 김우진 교수 연구팀이 2017년 한국증권학회지에 발표한 실증 연구에 따르면, 2004~2015년 유가증권시장 상장 제조기업들이 취득한 자사주 중 실제 소각으로 이어진 경우는 연간 기준 평균 2.3%에 불과했다.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2024년 12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으로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하는 것이 금지됐다. ━남은 과제는 '경영권 방어 공백'━자사주 소각 의무화법에 대해 KDI(한국개발연구원)와 자본시장연구원은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미흡한 주주환원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을 해결하는 조치로 평가했다. 반면 재계와 일부 법학계는 다른 경영권 방어 수단 없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경영 안정성을 해친다고 주장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상법 개정안 처리 직전 "경영권 방어 수단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포이즌 필·차등의결권 등 대안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을 먼저 갖춘 뒤 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이다.주요국 가운데 자사주 소각을 법으로 의무화한 사례는 없다. 법무부도 입법 과정에서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자사주는 현행 회사법 체계상 사실상 유일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며 "공백을 보완할 대체 수단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2026 동계올림픽 시상대 위, 선수들이 목에 건 금메달의 물리적 무게는 똑같이 500g 남짓이다. 하지만 그 메달이 지닌 '경제적 무게'는 국적에 따라 천양지차다.누군가에게는 평생을 보장하는 '10억 원의 현금 보상'이 되지만, 바로 옆에 선 다른 국적의 선수에게는 그저 명예로운 기념품일 뿐이다. 그리고 그 중간 어디쯤, 대한민국 선수들은 20년 넘게 묶여버린 연금 제도 앞에서 "이게 최선인가"를 묻고 있다. ━실속이냐 명예냐... '동계 올림픽의 왕'은 돈을 주지 않는다━'거액의 포상금'을 쏟아붓는 곳은 주로 아시아권이다.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은 금메달리스트에게 약 8억 원에서 많게는 10억 원이 넘는 현금을 일시불로 지급한다. 엘리트 체육 저변이 좁은 이들 국가에서 올림픽 금메달은 국가적 경사(慶事)이자, 가문의 영광을 넘어선 '인생 역전'의 기회다. 반면 스포츠 선진국으로 불리는 유럽과 영미권의 스타일은 다르다. 영국과 스웨덴 같은 나라들은 메달 포상금이 '0원'이다. "국민 세금으로 보너스 잔치를 벌이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이다. 이들에게 보상은 국가가 주는 현금이 아니라, 기업 스폰서 계약과 CF 촬영 등 철저히 시장이 결정하는 선수의 '상업적 가치' 그 자체다.이런 '무보수 명예'의 원칙은 동계 올림픽 최강국에서 더 확고하다. 인구 500만 명의 노르웨이는 매 대회마다 메달 순위 1위를 다투지만, 포상금은 없다. 어릴 때부터 눈 위에서 구르며 자란 이들에게 스키는 생활이자 문화일 뿐,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철학이 확고하기 때문이다.━'아메리칸 히어로' 위해... 억만장자가 발벗고 나선 미국━ 이런 가운데 '자본주의의 상징' 미국은 2026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억만장자 금융가 로스 스티븐스의 기부가 그 시작이다.그는 미국 올림픽 대표팀을 위해 1억 달러를 기부했다. 미국 올림픽 위원회는 이 기금으로 '스티븐스 상(Stevens Awards)'이라는 제도를 신설했다. 적어도 2032년까지 올림픽에 출전하는 모든 미국 국가대표 선수들은(패럴림픽 포함) 20만 달러(약 3억 원) 이상에 달하는 노후자금을 지급받는다.'당장 주는 돈'이 아니라 많은 인원에게 지급이 가능하다. 선수별로 배정된 금액의 절반은 20년 뒤에, 나머지는 사망시 유족에게 지급한다. 첫 지급이 20년 뒤라 그때까지 기금 운용을 통해 원금이 커질 수 있다. 선수들이 받는 돈은 스티븐스의 기부금에서 나온 '운용수익 배당금'이다. 노벨상 상금과 같은 원리다."반짝 스타에게 용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웅의 은퇴 후 삶을 지켜주겠다." 억만장자의 이 아이디어는 단순 포상을 넘어선 선진국형 '금융 복지' 모델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냉전 시대'에서 멈춰버린 한국의 시계━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국제 대회 메달리스트는 메달 점수로 환산해 연금을 받거나 일시불 수령을 한다. '경기력향상연구연금' 제도 덕분이다.이 제도의 뿌리는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택수 대한체육회장은 "메달리스트를 이사관(고위 공무원) 수준으로 예우하자"는 파격적인 안을 내놓았다. 제도 도입이 급물살을 탄 것은 1년 뒤인 1972년 뮌헨 올림픽 때문이었다. 당시 북한의 사격 선수 리호준이 금메달을 획득하고 "원수의 가슴을 향해 쏘는 심정으로 쐈다"고 인터뷰한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까지 한국은 올림픽 금메달이 없었다.체제 경쟁 승리를 위해 1975년 연금 제도가 정식 도입됐다. 당시 금메달 연금(월 10만 원)은 쌀 10가마니 가격과 맞먹는, 말 그대로 '평생을 책임지는' 금액이었다. 문제는 이 제도의 시계가 2000년에 멈춰버렸다는 점이다. 금메달 연금 상한액(월 100만 원)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정해진 이후 26년째 동결 상태다.연금 대신 선택 가능한 일시금(6720만 원) 역시 2006년 이후 20년 가까이 제자리걸음이다. MZ세대 선수들 사이에서는 "과거와 달리 자산으로서의 실질 가치가 너무 떨어졌다"는 냉정한 평가가 나온다. 이런 현실은 역대 메달리스트들의 보상 규모를 비교해 보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오랫동안 체육 연금의 상징은 '사격 황제' 진종오와 '쇼트트랙 여제' 전이경이었다. 이들은 일찌감치 평가 점수(연금 점수) 상한을 채워 매달 연금을 받는 것은 물론, 규정에 따라 상당한 액수의 일시금까지 수령했다.이들의 아성을 무너뜨린 건 2024 파리 올림픽 3관왕 김우진(양궁)이다. 하지만 선수들이 김우진을 부러워하는 진짜 이유는 그가 쌓아 올린 메달 점수가 아니다. 바로 후원사인 현대차그룹으로부터 받은 8억 원의 포상금이다.아무리 메달 포인트를 많이 쌓아도, 기업 회장님이 주는 '한 방(보너스)'을 따라갈 수 없는 셈이다. 이는 "국위 선양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1970년대식 대전제는 이미 무너졌다.━해법은 '현금'이 아닌 '시스템'... 효율적 투자로 성과낸 일본━돈을 더 주자니 국민 눈치가 보이고, 안 주자니 동기부여가 안 되는 진퇴양난의 상황. 이웃 나라 일본의 변화를 주목할만 하다. 흔히 일본은 생활체육 중심이라 국가 지원이 적을 것으로 오해하지만, 그렇지 않다. 일본은 2011년 '스포츠기본법' 제정과 2015년 스포츠청 신설을 기점으로 국가 주도의 엘리트 체육 육성을 오히려 강화했다. "스포츠는 국가 전략"이라고 천명하며 관련 예산을 2013년 30억 엔 수준에서 2020년대 100억 엔(약 900억원) 규모로 3배 이상 늘렸다.충격적인 것은 한국의 예산 규모다. 한국의 전문체육 예산은 약 4000억 원(2022년 기준)으로, 늘어났다는 일본 예산의 4배가 넘는다. 국가 대표 선수촌을 운영하는 대한체육회 예산(2024년 기준 1400억원대)만 따로 놓고 봐도 한국은 일본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문제는 '규모'가 아니라 '효율'이다. 일본은 예산을 국립스포츠과학센터(JISS) 같은 최첨단 인프라와 데이터 기반 훈련, 그리고 은퇴 후를 책임지는 '듀얼 커리어(Dual Career)' 정책에 집중적으로 쏟아부어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반면, 한국은 일본보다 4배 많은 돈을 쓰고도 "지원은 줄고 성적은 떨어진다"는 현장의 비명과 마주하고 있다. 50년 전 냉전 시대에 만들어진 '헝그리 정신 보상금'으로는 2026년의 선수들을 만족시킬 수도, 메달 경쟁력을 유지할 수도 없다. 메달리스트 연금 예산은 연간 약 124억 원으로, 전체 전문체육 예산의 단 3%에 불과하다. '97%의 비효율'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태극마크의 자부심도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스포츠 팬들에게 'GOAT(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 논쟁은 영원한 '떡밥'이다. 축구의 '메호대전'(메시, 호날두), '손차박 논쟁'(손흥민, 차범근, 박지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시야를 선수 개인이 아닌 '종목'과 '리그'로 넓혀보면 어떨까? 팬들의 함성이 아닌, 자본주의의 냉정한 성적표인 '돈'과 '시간'을 기준으로 스포츠의 서열을 매긴다면 승자는 명확하다. ━"시간의 밀도가 다르다"… '도파민 세대'가 만든 160조 시장━현대 자본주의가 선택한 스포츠 권력의 정점은 단연 NFL(미국프로미식축구)이다. 그 증거는 압도적인 숫자에 있다. 2026년 2월, 제60회 슈퍼볼의 30초 TV 광고 단가는 사상 처음으로 평균 800만 달러(약 120억 원)를 돌파했고, 일부 프라임 시간대 가격은 1000만 달러를 넘었다. 초당 가치만 4억 원에 달한다. 단 한 경기를 미국 내에서만 1억 3000만 명이 시청한다. 이는 모든 프로그램을 통틀어 압도적인 1위다. 이러한 독보적인 주목도는 천문학적인 광고 가치로 직결된다.이 독보적인 상품성을 바탕으로 NFL은 2021년 11년간 총 1100억 달러(약 160조 원) 규모의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타 종목을 압도하는 이 비싼 몸값의 비결은 바로 '시간의 희소성'이다.팀당 162경기를 치르는 야구(MLB)는 경기 수가 너무 많아 팬들의 주목도가 분산된다. 반면 정규 시즌이 단 17경기인 NFL은 일주일에 단 한 번, 팬들의 주말을 온전히 독점한다. 미국 연간 시청률 상위 100개 프로그램 중 80개 이상을 NFL이 휩쓸 정도다. 자본은 팬들의 시간을 더 밀도 있게 점유한 NFL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과거에는 야구의 '매일 만나는 일상성'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연된 보상'을 참지 못하고 즉각적인 자극을 원하는 '도파민 세대'의 등장이 판도를 뒤집었다. 이들에게 '오늘 져도 내일 이기면 되는' 야구는 지루하다. 반면 모든 것을 쏟아붓는 NFL의 '단판 승부' 특성은 결말을 빨리 확인하고 싶어 하는 젊은층의 심리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쪼개진 시간을 장악하라"... 스트리밍과 쇼츠에 올라탄 NBA·UFC━ NFL이 '긴 시간의 독점'에 성공했다면, NBA와 UFC는 정반대 전략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바로 '쪼개진 시간의 장악'이다. 3시간짜리 본방송보다 60초 숏폼 영상을 선호하는 Z세대를 위해 NBA는 덩크슛 하이라이트를 UFC는 화끈한 KO 장면을 쏟아냈다.NBA 인스타그램 공식계정의 팔로워는 9000만 명을 넘어 NFL(3200만 명)의 3배에 육박한다. 이러한 적극적인 SNS 전략은 젊은층의 즉각적인 호응으로 이어졌다. 전체 시청자의 약 30%가 35세 미만으로, 미국 4대 스포츠 중 가장 젊은 팬층을 자랑한다.NBA는 2025년 새로운 중계권 계약을 통해 11년간 총 760억 달러(약 105조 원)의 수익을 확보했다. 스트리밍 강자 아마존이 주요 파트너로 합류하면서 중계권료가 수직 상승했다. 이는 TV를 떠난 팬들을 위해 디지털과 모바일로 전선을 확장하고, 전 세계 어디서든 즉각적으로 경기에 접속하게 만든 '접근성 전략'에 자본이 화답한 결과다.12라운드의 긴 호흡과 탐색전을 요구하는 전통 복싱이 '지루한 과거의 스포츠'로 밀려난 사이, 5분 3라운드의 속전속결과 격렬한 타격전을 앞세운 UFC는 젊은층의 절대적 지지를 얻으며 거대 미디어 기업(TKO 그룹)으로 성장했다. UFC는 2025년 파라마운트와 7년 77억 달러(약 11조 원) 규모의 중계권 계약을 체결하며, 이전 계약 대비 3배 가까이 상승한 몸값을 입증했다. 변화하는 대중의 니즈를 정확히 포착한다면 새로운 형태의 스포츠도 얼마든지 '주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UFC 역시 숏폼과 SNS를 앞세워 젊은층을 공략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2019년 NFL을 추월했고(현재 5000만 명으로 NBA에 이은 2위), 글로벌 소셜 미디어 영상 조회수는 연간 66억 회를 넘어섰다. MLB도 투구 시간을 제한하는 '피치 클락(Pitch Clock)'을 도입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지역 케이블 방송에 의존한 낡은 중계 관행에 여전히 묶여 있어, 모바일과 OTT에 익숙한 젊은층을 끌어들이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다. 실제로 MLB의 TV 시청자 평균 연령은 57세로 주요 스포츠 중 가장 높다. 오타니 쇼헤이 같은 슈퍼스타도 리그 전체가 잃어버린 활력을 되돌리지는 못하고 있다.━"지루한 시간이 아니다"… KBO가 보여준 '경험의 재설계'━ 본고장 미국에서 야구가 고전하는 사이, 한국에서는 역대급 야구 열풍이 불고 있다. KBO는 2024년 1000만 관중 시대를 열었고, 2025년에는 1200만 관중을 돌파했다. KBO는 '야구는 지루한 스포츠'라는 공식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비결은 '물리적 시간'을 '심리적 즐거움'으로 재설계한 것이다. KBO는 야구를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놀이 문화'로 변모시키는 데 성공하며 2030 여성 팬덤을 야구장으로 불러들였다.새로운 야구 팬들에게 승패는 부차적이다. 친구들과 치맥을 즐기고 목청껏 응원가를 부르는 독보적인 '직관 문화'는 3시간이 넘는 경기 시간조차 짧게 느끼게 만든다. 여기에 티빙(TVING) 등 중계권자가 숏폼 제작을 전면 허용하며 경기장의 열기를 '움짤'과 '밈(Meme)'으로 확산시킨 전략도 효과를 발휘했다. 몰려드는 관중 덕분에 모기업의 홍보 수단이자 '돈 먹는 하마'였던 야구단이 이제는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는 '진짜 기업'으로 진화했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다수 구단이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자생력을 갖췄다. '구름 관중' 덕분에 2027년 예정된 새 중계권료 협상에서는 '대박'이 예상되며, 이러한 선순환 구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AI와 데이터가 지배하는 시대, 스포츠는 역설적으로 가장 빛나는 가치를 지닌다. AI 심판(ABS)이 공정성을 담보하고 데이터가 승률을 예측할 수 있어도, 각본 없는 드라마가 주는 전율은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승자독식의 법칙은 더욱 가혹해질 것이다.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다. NFL처럼 압도적 몰입감으로 시간을 독점하든, NBA와 UFC처럼 숏폼으로 시간을 쪼개든, KBO처럼 경험을 혁신해 시간의 흐름을 잊게 만들든, 팬들에게 끊임없이 '도파민'을 제공하는 리그만이 대중의 시간을 점유할 수 있다.2026년, 스포츠는 더 이상 순수한 '승부의 장'에 머물지 않는다. 수많은 콘텐츠 속에서 당신의 시간을 선택받기 위해 설계된 정교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진정한 '챔피언'의 조건은 명확하다. 시간을 붙잡고, 그 시간의 밀도를 대체 불가능한 경험으로 채우는 것. 팬들의 심장은 언제나 가장 뜨겁게 뛰게 만드는 곳을 향해 움직인다.
"피치 덱(사업계획서)에 '넥스트 팔란티어'라고 적힌 팀은 일단 거릅니다."국내 한 벤처캐피털(VC) 심사역이 털어놓은 이 냉소적인 고백은 2026년 현재 팔란티어가 도달한 '넘볼 수 없는 위상'과 이를 흉내 내기에 급급한 '한국의 초라한 민낯'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글로벌 VC 앤드리슨 호로위츠(별칭: a16z)는 스타트업의 '팔란티어화(Palantirization)'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팔란티어의 성공 이후 많은 스타트업이 '일하는 방식의 혁신(FDE)'을 적극 도입하고, '재산업화와 국방 혁신'이라는 난제 해결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넥스트 팔란티어'란 비현실적 슬로건을 내거는 순간 '걸러지는' 이유다.━실리콘밸리의 새 표준: SaaS가 가고 'FDE'가 왔다━ '제2의 팔란티어'의 첫 번째 조건은 '전방 배치 엔지니어(FDE, Forward Deployed Engineer)'다. 과거 B2B 시장을 주도했던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모델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파는 수동적 구독 형태인 방식인 반면 팔란티어 모델은 엔지니어(FDE)가 고객의 현장에 직접 침투하는 '하이터치(High-Touch)' 방식을 채택한다.이는 고객의 가장 복잡한 문제를 현장에서 해결하고, 그 경험을 다시 제품 고도화(R&D)로 연결하는 순환 전략이다. 이러한 '현장 중심 문화' 덕분에 팔란티어는 다양하고 복잡한 기업 환경 속에 성공적으로 AI를 이식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대다수 기업이 AI 도입에 실패할 때, 팔란티어 고객들만이 과감하게 지갑을 여는 이유다.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CEO가 강조한 "고객의 고통(복잡성)을 삼켜 제품을 만든다"는 철학은 이제 업계 표준이 됐다. 실제로 오픈AI(OpenAI)조차 최근 솔루션 엔지니어 등 현장 지원 조직을 전 세계적으로 확대하며 '현장 구현(Production)' 중심으로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 작년부터 급증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현장 엔지니어 채용 공고는 AI의 주 전장이 연구실에서 '현장'으로 이동했음을 시사한다.━아메리칸 다이나미즘: '애국'이 돈이 되는 시대━ 두 번째 조건은 '아메리칸 다이나미즘(American Dynamism)'이다. a16z가 주창한 이 개념은 국방·제조·우주 등 국가 존망이 걸린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에 자본과 인재가 몰리는 현상을 뜻한다.과거 실리콘밸리가 국방부와 거리를 뒀다면 지금은 '국가 안보를 위한 기술'이 가장 혁신적인 트렌드다. S급 창업자는 전장과 산업 현장으로 눈을 돌리고, 투자자들은 이들에게 돈을 대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샴 생커 팔란티어 CTO는 "창업자들이 돌아왔다(The founders are back)"며 지난 3년간 1200억 달러 이상의 민간 자본이 국방 분야로 유입됐다고 밝혔다.이 흐름을 탄 대표 주자들의 성과는 놀랍다.◆ 안두릴(Anduril): 창업자 팔머 럭키(Palmer Luckey)는 오큘러스 VR을 메타에 매각해 큰돈을 벌었지만, 안락한 은퇴를 택하는 대신 국방 난제 해결을 위해 재창업에 나섰다. 안두릴은 기존 방산 업계의 '원가 보전(Cost-Plus)' 방식 대신, 자체 자본으로 제품을 선개발하는 방식을 성공시키며 140억 달러(약 19조 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달성했다. 자체 OS '래티스(Lattice)'를 기반으로 보잉 등 방산 공룡들을 제치고 미 공군의 주계약자 지위를 따냈다. ◆ 실드 AI(Shield AI): GPS가 없는 전장에서도 자율 비행이 가능한 AI 파일럿 '하이브마인드(Hivemind)'를 개발했다. 실제 F-16 전투기의 무인 공중전(Dogfight)을 성공시킨 이 기업은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파일럿 없는 공군'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방산 데이터 시장은 개별 솔루션을 넘어 거대한 '플랫폼'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고비니(Govini)'가 데이터 분석으로 국방부의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디펜스 유니콘스'가 낙후된 국방 SW 인프라를 클라우드 환경으로 탈바꿈시키는 식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스펙터옵스(SpecterOps)는 해커의 침투 경로를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기술로 보안 영역의 표준을 만들며, 실리콘밸리 기술이 국방의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생태계까지 장악했음을 증명하고 있다.이러한 움직임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 중이다. 독일의 헬싱(Helsing)은 '소프트웨어 정의 국방'을 기치로 내걸고 유로파이터 등에 탑재되는 AI를 개발하며 기업가치 50억 유로의 거대 유니콘으로 성장했다. 프랑스 또한 위성 정찰 AI 기업 프렐리전스(Preligens)를 자국 방산 대기업 사프란(Safran)이 인수하도록 이끄는 등, 미국의 기술 패권에 맞서 독자적인 방산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엔 왜 '넥스트 팔란티어'가 없나: '닫힌 문'과 안일한 생태계━반면 한국의 현실은 답답하다. '제2의 팔란티어'를 기대하기엔 토양이 너무나 척박하다. 최근 정부가 'K-방산 스타트업' 육성 등을 외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혁신 기업이 자라날 수 없는 '구조적 장벽(제도)'과 '안일한 생태계(문화)'의 한계를 호소한다.일단 국방·공공 시장의 '문턱'이 너무 높다. 미국은 스타트업 기술 도입을 위해 보안 인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데이터를 과감히 개방하는 추세다. 반면 한국은 최근의 개방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안'이라는 절대적 잣대가 스타트업의 진입을 가로막는다. AI 개발의 핵심인 데이터는 '군사 기밀'로 분류돼 접근조차 어렵고, 사업 획득 구조는 수십 년간 대형 방산 기업(Prime) 위주로 짜여 있어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이 독자적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좁다. 어렵게 들어가도 '용역 업체' 취급받는다. 이른바 '맨먼스(Man-Month·투입공수)'로 대변되는 전근대적 발주 관행이다. 한국 기업들이 팔란티어의 FDE를 흉내 내 현장 엔지니어를 투입해도, 한국 시장에선 까다로운 요구를 들어주는 '파견 용역'으로 전락한다. 10명이 한 달 걸릴 일을 기술 혁신을 통해 1명이 하루 만에 끝내면, 오히려 매출(인건비 산정액)이 급감하는 기형적인 구조 탓이다. 이 'SI의 늪'에 빠진 기업들은 R&D보다 당장의 매출 유지를 위한 인력 파견에 급급하게 된다.창업자와 투자자조차 '쉬운 성공'에 안주한다. 앞서 언급한 장벽들 때문에, 애초에 이 어려운 문제를 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뼈아픈 현실이다. 알렉스 카프 CEO가 저서 '기술 공화국 선언'에서 비판한 "인류의 난제를 외면하고 돈 되는 앱만 만드는 문화"는 한국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국내 유니콘 스타트업은 쿠팡,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무신사 등 대부분 B2C 플랫폼에 편중돼 있다. 국가 안보나 제조 혁신 같은 '거대 담론'을 다루는 딥테크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실패 확률이 높고 회수 기간이 긴 국방 기술에 인생을 걸 창업자도, 이를 지원할 모험 자본도 부족한 상태에서 '한국판 팔란티어'의 등장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기술이 아닌 '생태계'를 혁신해야━결국 '넥스트 팔란티어'는 단순히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가 아니다. △'국가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대담한 비전 △고객의 문제를 끝까지 책임지는 'FDE 문화' △그 가치를 인건비가 아닌 성과로 인정해 주는 '시장(American Dynamism)'이 결합한 결과물이다.미국이 '팔란티어화'를 통해 국방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동안, 한국은 낡은 규제로 문을 걸어 잠그고 유망한 AI 기업들을 용역의 늪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픈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다.전문가들은 이제라도 국방 데이터의 과감한 개방과 '맨먼스' 타파를 통한 성과 기반 계약 도입 등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돈 되는 앱'을 넘어 국가적 난제에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의 회복도 동반돼야 할 것이다.◆특별취재팀=제도혁신연구소 이상언 소장·이무영 부소장, 정치경제부 김인한·김성아 기자, 산업1부 최유빈 기자, 증권부 이동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