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반도체 초호황…당장 '소비'할 것인가 '미래'에 투자할 것인가
글로벌 인공지능(AI) 업체인 오픈AI가 24일 내놓은 새 AI 모델 GPT-5.5는 '전략적 자율 AI'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선 모델보다 뛰어난 추론·코딩 능력에 더해, 스스로 복잡한 과제를 장시간에 걸쳐 끝까지 수행하는 '에이전트' 기능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인간 개입만으로도 AI가 코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가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과학·기술 연구와 교육 등 전문 분야에서 AI 활용도가 한층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주목할 점은 기술의 진보 못지않게 그것을 둘러싼 경쟁의 속도다. GPT-5.5는 직전 모델 공개 열흘 만에, 경쟁사인 앤트로픽이 '클로드 오퍼스 4.7'을 내놓은 지 불과 8일 만에 나왔다. 맥락 이해와 코딩, 에이전트 능력을 강화한 최신 모델을 거의 1~2주 간격으로 쏟아낼 정도로 필사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투자 규모는 이 같은 경쟁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알파벳(구글)·MS·메타·아마존 등 글로벌 4대 빅테크는 AI 초격차 우위를 점하기 위해 연구·설비 등 투자를 지난해 4100억 달러(약 608조원)에서 올해 6740억 달러(약 999조)로 60% 이상 늘렸다. 한국의 연간 재정 규모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글로벌 AI 산업이 '정글'과 같은 무한경쟁 체제로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수치다.사실 올 1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57조원과 37조원이라는 경이적인 실적을 낸 배경에도 AI발 반도체 수요 급증이 자리하고 있다. AI의 추론 능력 강화와 에이전트 기능 확산이 고성능 칩 수요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면서 반도체 산업이 슈퍼사이클에 진입한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호황이 우리 내부 경쟁력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중국의 추격도 경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반도체 산업은 단순 설비 투자를 넘어 더욱 진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설계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반도체 경쟁력 강화가 필수적이다. 나아가 반도체 이후 성장 동력인 로봇과 전장 분야 투자 확대도 절실하다. 생산 시스템에 인공지능을 결합하는 '피지컬 AI' 시대에 맞춰 미래 먹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기업이 이익을 냈다면 주주와 구성원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단기 성과에 안주하는 순간, 다음 사이클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이익의 상당 부분을 미래 불황에 대비하고 신산업을 개척하기 위한 연구·개발과 전략적 투자로 돌려야 한다. 지금의 성과를 당장 '소비'하는 데 급급할 것인가, '미래'로 전환할 것인가. 반도체 호황으로 확보한 여력을 어디에, 어떻게 투입하느냐의 선택이 한국 경제의 향후 10년을 가를 것이다.
[사설]'전작권 전환', 시간표 아닌 조건과 역량의 문제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미 하원 청문회에서 "2029년 1분기까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조건을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을 국방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하루 전 상원에선 "전작권 전환은 조건에 기초해야 하며, 정치적 편의주의가 앞서선 안 된다"고 했다. 발언의 결이 달라 보이지만 메시지는 일관된다. 전작권 전환의 기준은 시점이 아니라 '조건 충족'이며, 철저한 능력 검증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전작권 전환은 2007년 한·미 합의 이후 여러 차례 시점이 미뤄져 왔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가 최대 변수였다. 대체로 진보 정부가 전작권 문제에 더 적극적이었고, 현 정부 역시 임기 내 전환 의지를 밝혔다. 국방부는 올해를 '전작권 회복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했다. 전작권 전환을 위해선 최초작전운용능력, 완전운용능력, 완전임무수행능력 등 3단계별로 평가와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현재는 2단계 검증이 진행 중이다. 주목할 대목은 전작권 전환이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브런슨 사령관은 청문회에서 "서쪽으로 시야를 넓혀가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대만해협 등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대응 범위를 확장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전작권 전환 이후 주한미군의 임무와 성격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전작권 문제가 단순한 지휘권 이양을 넘어 동맹 구조 전반과 직결된 사안임을 보여준다.전작권이 전환된다고 해서 한국군 사령관이 미군을 우리 군처럼 통솔하는 건 아니다. 한국군이 연합작전을 주도하되, 사전에 합의한 작전계획과 연합지휘체계 안에서 미군과 함께 운용하는 방식이다. 결국 핵심은 군사적 역량과 더불어 양국 간 신뢰, 그리고 긴밀한 소통이다.이 점에서 최근 불거진 한·미 간 불협화음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대북정보 공유 제한 논란, 한국 기업 정책을 둘러싼 미국의 문제제기 등은 동맹간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 앞서도 양국은 연합훈련 축소, 비행금지구역 문제 등을 두고 신경전을 이어왔다. 전작권 전환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정교한 조율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믿음이 흔들리는 상태에서 일정만 앞세우는 접근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기준은 분명하다. 북한의 위협에 대해 한국군이 주도적으로 억지하고, 유사시 연합작전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가다. 여기엔 전력 증강뿐 아니라 지휘체계, 정보자산, 연합 운용 경험, 그리고 상호 신뢰가 모두 포함된다. 전작권은 되찾는 대상이 아니라 넘겨받는 책임에 가깝다. '언제까지'라는 조급함 보다 '어떻게' 라는 조건과 역량에 집중해야 한다.
[사설]올해만 7차례 도발…이 와중에 '정보 제한' 불협화음
북한이 올해 들어 잦은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1월 4일 요격 회피가 가능한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포-11마'를 시작으로, 지난 19일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대남용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일 대북 무인기 사건과 관련해 우리가 공개 사과를 한 이후에도 북한은 이를 멈추지 않고 있다.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이 집속탄이나 정전을 유발하는 탄소섬유탄을 장착한 미사일 발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집속탄은 미사일 내부에 수많은 자탄을 탑재해 단 한 발로 축구장 18개 규모인 12.5~13ha를 초토화할 수 있는 대량 살상 무기다. '강철비'를 내리는 악마의 무기로도 불린다. 탄소섬유탄은 자탄에 실린 탄소섬유가 전력망에 달라붙어 정전을 일으키는 무기로, 이른바 '정전 폭탄'이다.지난달 이란이 발사한 집속탄 미사일이 이스라엘의 요격 체계를 뚫고 텔아비브 민간 주거지역을 타격해 사상자가 발생한 사례에서 보듯, 집속탄은 자탄 분리 이후에는 요격이 어렵다. 북한이 인구 밀집 지역인 수도권을 겨냥할 수 있는 단거리 미사일에 이러한 탄두를 장착한 것은 대량 살상과 파괴를 노린 위협으로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파병을 통해 축적한 현대전 전술을 바탕으로 우리의 대응을 시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가능하다.북한이 이처럼 긴장과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통일부 장관의 '북한 우라늄 농축 시설' 발언과 미국의 정보 공유 제한 여부를 둘러싼 불협화음만 이어가고 있다. 북한의 도발 의도와 향후 시나리오에 대한 경각심은 부족한 채, 발언의 적절성이나 정보 유출 여부를 둘러싼 논란만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이란 전쟁을 거치며 한반도 안보 환경 역시 언제든 급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럴수록 북한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고 대응 태세에 한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 문제는 내부다. 북한은 미사일을 쏘고 있는데 우리는 정보 유출 공방에 발이 묶여 있다. 한미 간 정보 공유에 균열이 생긴다면 그것 자체가 안보 공백이다. 미국이 우리 정부에 불신을 갖고 있다면 이유를 따지기 전에 먼저 해소해야 한다.
[사설]李 "단계 폐지" 與 "검토 안해"…헷갈리는 '장특공제'
부동산 시장이 엇갈린 정책 신호로 혼선을 빚고 있다.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장특공제) 개편 여부를 놓고 대통령과 여당, 정치권의 발언이 서로 어긋나면서 정책 방향이 불분명해진 탓이다.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SNS를 통해 장특공제 축소 의지를 내비쳤다. 이 대통령은 "1주택도 1주택 나름"이라며 "주거용이 아닌 투자·투기용이라면 세금 감면을 해 주는 것은 이상해 보인다"고 했다. 실거주 없이 보유 기간만으로 세제 혜택을 주는 구조는 단계적으로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일부 범여권 의원들이 장특공제 조항을 삭제하고 세액공제를 신설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뒤 정치적 공방이 가열됐다. 국민의힘이 "1주택자 세금 폭탄"이라고 공격하자 이 대통령은 "명백한 거짓 선동"이라고 반박했다. '실거주' 1주택자 문제가 아니라는 취지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세제 개편을 공식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증세 논란으로 번지는 걸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현행 장특공제는 1주택자가 12억원 초과 주택을 10년 이상 보유·거주한 뒤 팔면, 양도차익의 최대 80%까지 공제해 준다. 이 대통령은 "장기 거주에 대해 양도세를 깎아주는 제도는 따로 존재한다"고 했지만 장특공제 외에 장기 거주만으로 별도의 양도세 공제를 적용하는 제도는 없다. 개편이 현실화되면 '거주'만 인정하고 '보유'는 배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이 기준이 현실에서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직장 이동이나 자녀 교육 등으로 일시적으로 거주하지 못하는 경우를 일률적으로 가르기 어렵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세 부담이 생길 수 있다. 공제가 줄면 갈아타기 비용이 커져 오히려 매물 잠김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그만큼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대통령의 말대로 투기 수요 억제와 세제 형평성 제고라는 취지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고가 자산 보유자에게 과도한 혜택이 돌아간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똘똘한 한 채' 등 고가 주택일수록 공제액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동산 정책은 의지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이미 확인된 교훈이다. 방향과 속도, 적용 기준이 명확하게 설계되고 일관되게 전달될 때 시장도 반응한다. 당정청 간 충분한 사전 조율 없이 대통령의 강한 메시지가 먼저 전해지고 당이 이를 수습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장특공제는 어떻게 된다는 건지 국민만 헷갈리게 됐다.
[사설]수억대 성과급 요구하며 파업도 불사…게도 구럭도 다 잃을라
SK하이닉스에서 촉발된 성과급 논란이 삼성전자를 거쳐 자동차·방위산업 등 주요 업종으로 번지고 있다. 업종과 임금체계는 다르지만 요구의 방향은 유사하다.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15%, 현대자동차 노조는 순이익의 30% 수준을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있다. 일부 방산업체 노조는 성과급 상한 폐지를 주장한다고 한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실력행사도 불사하겠다는 기류다. 삼성 노조는 오는 23일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5월 21일부터 18일간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올해 반도체 호황으로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3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노조 요구대로라면 45조원이 성과급으로 쓰여야 한다. 이 경우 직원 1인당 평균 성과급이 5억원에서 최대 7억원에 달한다는 추산이다. 현대차도 작년 순이익이 10조3600억 원이니, 노조 요구대로라면 3조 원이 넘는 돈을 나눠 갖게 된다. 앞서 노사 합의가 끝난 SK하이닉스도 올해 영업이익을 200조원으로 예상하면 약 20조원을 성과급으로 지급해야 한다. 기업 실적이 개선되면 직원 보상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 규모와 방식이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수용 범위를 넘어서느냐다. 기업 이익은 노사의 전유물만이 아니다. 주주의 자본, 정부의 세제·금융 지원, 소비자의 부담, 그리고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까지 여러 요소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성과급 역시 이런 복합적 구조 속에서 균형 있게 설계돼야 한다. 더욱이 지금의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직원 개개인의 노력으로만 만들어낸 성과는 아니지 않나. 반도체처럼 경기 변동이 크고 기술 전환이 빠른 산업에서는 호황기의 이익이 곧 불황기의 생존 자금이다. 이를 대규모 현금 보상으로 소진하는 구조가 굳어질 경우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여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반도체 공급망은 시시각각 재편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의 단기 호황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에 파업까지 현실화될 경우 '안정적 공급자'라는 글로벌 평판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보상의 상당 부분을 주식이나 장기 인센티브로 설계해 개인 보상과 기업의 장기 성장 목표를 연결한다. 산업 구조가 다른 만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최소한 보상이 기업의 미래 투자 여력을 잠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은 유효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얼마를 더 가져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단기 성과에 치우친 보상 경쟁은 결국 기업과 노동 모두에게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미래를 위한 재투자와 상생의 지혜가 없다면, 결국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결과를 맞을 수 있다.
[사설]호르무즈 위기… '참여 외교' 넘어 주도 나설 때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영국·프랑스 주도로 열리는 '호르무즈 해협 통항 관련 화상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미국은 빠졌지만 70여 개국이 참여하는 이번 회의는 다자외교와 국제연대를 통해 '항행의 자유'를 회복하고 글로벌 해상 물류망의 조속한 정상화를 모색하는 자리다. 이 대통령의 참석은 국익 차원에서 정당하고 시의적절하다. 이 해협을 통해 원유의 70%를 들여오는 우리에게 '항행의 자유' 보장과 지속 가능한 해상 평화 체제 구축은 국가 경제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무엇보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은 공급망 위기감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크다. 실제로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39.8%로 전 세계에서 사실상 중국(40.1%) 다음으로 높다. 이번 회의를 주도한 영국(21.0%)이나 프랑스(18.3%)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수입 에너지와 원료 의존도가 높다. 게다가 수출입 물류의 99.7%가 해상 운송에 의존하는 구조여서 해협 봉쇄는 곧바로 산업 전반의 충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문제는 이 회의를 주도하는 국가들과 우리의 이해가 결코 같지 않다는 점이다. 북해 유전을 보유한 영국이나 전력의 약 70%를 원전에 의존하는 프랑스와 한국은 에너지 구조부터 다르다. 호르무즈 봉쇄를 둘러싼 국익과 셈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항행의 자유'를 말해도 그 절박함과 우선순위에는 분명한 온도차가 있다. 우리의 이해가 저절로 반영될 것이라는 기대는 성립하기 어렵다.이 시점에서 우리가 여전히 남이 설정한 의제에 맞춰 입장을 정리하고 뒤따르는 데 익숙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호르무즈 해협과 같은 핵심 해상 교통로 문제는 더 이상 '참여 외교'로 대응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영국이나 프랑스가 주도하는 다자외교를 따라가는 수준에 머물러선 곤란하다. 이제는 입장을 바꿔야 한다.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되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글로벌 어젠다를 선제적으로 설정하고, 통행과 공급망의 규범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주체가 돼야 한다. 물론 미국과도 전략적 소통을 이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국익을 지킬 수 있다. 해상 질서와 공급망 규칙이 새로 짜이는 지금, 참여에 머무는 외교로는 부족하다. 고난도의 주도적 외교를 펼칠 때다.
[사설]'도전적 시행착오' 이끌 국가 주도 '방산 창투사' 만들자
국제질서가 힘의 논리로 재편되는 가운데 드론과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이 전투 양상을 좌우하는 이른바 '스마트 전쟁'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미 전장에서는 AI가 신속한 의사결정을 돕고, 드론·로봇을 활용한 유무인 복합체계가 위험 임무를 수행하며, 육·해·공을 넘어 우주·사이버·전자기 영역까지 모든 군사 영역과 정보환경이 초연결 네트워크로 통합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K 방산은 지대공 유도무기 천궁Ⅱ 수출 등으로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자주포·전차 등 재래식 무기체계가 주력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도 드러낸다. 전쟁 양상이 급변하는 시대를 맞아 미래전 중심의 기술 방산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해야 할 때다. 이는 국방력 강화와 방산 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도 불가피한 과제다.핵심은 국가가 나서 AI 등 미래 기술 혁신을 촉진하고 이를 국방 분야에 신속하게 접목하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조달·연구개발 체계로는 민간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기 쉽지 않다. 폐쇄적 구조와 절차 중심의 운영 방식으로는 변화의 속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민간과 국방이 적극적으로 상호 교류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전장 혁신을 주도하는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와 팔란티어의 AI 사례에서 보듯 방산의 미래 기술은 민간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다. 이는 스타트업 등 민간이 개발한 혁신 기술을 신속하게 방산에 접목할 수 있는 민관협력 생태계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16일 '새로운 전쟁의 시대, K방산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열린 '시대포럼'에서 국방부와 국가정보원의 방산 분야 창업투자회사(창투사) 설립 구상이 제안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99년 미국 중앙정보국(CIA) 주도로 설립된 국가 주도의 방산 전문 벤처캐피털(VC)인 인큐텔(In-Q-Tel)이 그 모델이다. 인큐텔의 투자로 성장한 대표적인 기업이 팔란티어다. 국가가 방향을 제시하되 민간의 기술과 자본을 활용하는 방식은 혁신의 속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실패를 축적해 기술을 고도화하는 '도전적 시행착오' '진화적 획득전략'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물론 K 방산의 도약이 제도 하나로 이뤄질 수는 없다. 군의 명확한 수요 제시, 규제와 조달 시스템 개선, 인재 확보 등 전반적인 구조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 첨단 기술이 국방으로, 다시 산업으로 확산되는 선순환 체계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지금의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다. K 방산이 현재의 성과에 머물지 않고 미래 기술 기반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지금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경쟁력의 지속도 장담하기 어렵다. 국가가 방산 벤처 생태계 조성을 주도하고, 민간 혁신을 끌어들이는 전환을 서둘러야 할 때다.
[사설]'골든타임' K 방산, 혁신으로 질적 전환 서두를 때
K 방산이 바야흐로 '골든타임'을 맞고 있다. 지난 2월 말 개전한 이란 전쟁에서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인 천궁Ⅱ가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돼 성능을 증명한 이후 해외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K-9 자주포, K-2 전차, FA-50 경공격기, 천무 다연장로켓 등도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성과도 가시적이다. 뛰어난 기술력과 높은 신뢰성, 빠른 납기, 합리적 가격을 앞세워 2025년 아랍에미리트(UAE)·폴란드 등 16개국에 154억 달러를 수출했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올해는 방산 수출이 270억 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양적 팽창은 물론 고수익 체제로의 전환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K 방산이 국가 전략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을 갖춰가고 있다.그러나 K 방산은 이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의 전쟁 양상이 대대적인 기술혁신과 시스템 개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은 인공지능(AI)과 로봇, 빅데이터와 스마트 시스템, 드론과 유무인 복합체계, 그리고 이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 등 미래형 기술의 집결과 융합이라는 특징을 보여준다. 화력과 기동력 중심의 전통적 무기 체계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흐름이다.이런 상황에서 K 방산이 경쟁에서 살아남고, 나아가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낡은 제도를 개선하고 미래형 기술 혁신에 매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방산 벤처 기업들의 창의적 도전을 독려하기 위한 무기체계 획득 제도와 연구개발 체계 등 방산 구조의 재정비가 시급하다. AI 등 신기술의 군사적 활용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고 윤리·법적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동맹국과의 상호운용성 확보 역시 중요한 과제다. 이를 통해 K 방산을 기술집약적인 초격차의 미래산업으로 진화시켜야 한다. 고도의 신기술이 새로운 전쟁 양상을 이끄는 상황에서 국제 질서의 불확실성 또한 확대되고 있다. 강대국 간 경쟁이 심화하고 군비 경쟁이 확산하면서 '힘의 논리'가 다시 부각되는 흐름이다. 이런 환경에서 방산은 단순한 수출 산업을 넘어 안보와 직결된 전략 산업으로서의 의미도 커지고 있다. 결국 K 방산의 과제는 분명하다. 지금의 수출 호조에 안주해서는 곤란하다. 그간의 성과를 토대로 미래 전장에 대응하는 산업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지금이 국가적으로 그 전환을 서둘러야 할 때다. 무엇보다 우리 정부와 군, 방산 및 스타트업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체계적 모델을 구축하는 게 절실한 시점이다. 16일 본 매체가 '새로운 전쟁의 시대, K 방산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시대포럼을 여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설]D-50, '지역' 없는 지방선거…유권자는 어디에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교육감을 선출하는 6·3 전국동시지방선거가 50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라는 점에서 중간평가의 성격을 지닌다. 동시에 민선 지방자치 30년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되짚어볼 분기점이기도 하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도 결국 지방 정치의 역량에 달려 있다. 그만큼 중요한 선거다. 하지만 선거가 임박할수록 중앙 정치의 갈등과 잡음만 선거판을 뒤덮고 있다. 게다가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선까지 '미니 총선' 급으로 판이 커지면서 '지역'은 실종되고 정치 공학과 구도만 부각되는 상황이다. 벌써부터 이슈 경쟁도, 정책도 없는 선거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면 국민의힘은 선거를 제대로 치를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계엄과 탄핵 사태 이후 이번 선거를 당 재정비의 계기로 삼을 수 있었지만, 자중지란 속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일부 후보들이 당의 상징색인 빨강을 전면에 내세우지 못할 정도다. 이런 위기 국면에서 선거를 지휘해야 할 장동혁 당대표는 미국 출장으로 일주일간 자리를 비웠다. 공천관리위원장마저 중도 사퇴한 가운데 광역단체장 후보를 제때 확정하지 못하고, 일부 기초단체에서는 후보조차 찾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구시장 공천 역시 내부 갈등에 휩싸여 표류하고 있다. 정당 지지율이 크게 앞서가는 민주당도 내부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계파색이 옅은 현직 도지사가 대리기사비 지급 문제로 즉각 제명된 사례까지 나오면서 공정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식사비 대납 의혹을 받는 후보가 공천되는가 하면, 경선 결과에 불복해 단식 농성까지 벌어지는 상황이다. 여기에 대통령 사진 활용을 둘러싼 당내 논란, 일부 예비후보의 부적절한 언행 역시 압도적 판세 속에서 긴장감이 느슨해진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을 받던 인사가 후보로 확정된 직후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것도 정치 공방의 소재가 되고 있다. 이처럼 여야 모두 정책 경쟁보다 당내 갈등과 진영 구도만 전면에 부각되는 양상이다. 중앙 정치만 보이는 구조에선 지역 의제가 설 자리가 없다.하지만 이제라도 선거의 본령을 되살려야 할 때다. 앞으로 진행될 후보자 토론회는 중앙 정치 공방을 되풀이하는 자리가 아니라, 지역의 교통·주거·산업·복지·교육 문제를 놓고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검증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정당 역시 추상적인 구호를 넘어 지역별 공약을 보다 투명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후보들도 중앙당의 메시지를 대리 전달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스스로 지역 비전을 설계하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지방선거는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찬반을 묻는 자리가 아니다. 지역의 미래를 설계할 일꾼을 뽑는 과정이다. 유권자가 정치적 선호에만 의존하기보다, 각 후보가 제시하는 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지역 발전 전략을 꼼꼼히 따져볼 때 선거는 비로소 제 역할을 한다. 남은 50일 동안이라도 정책과 비전이 중심이 되는 선거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결국 유권자와 지역 사회의 몫이 된다.
[사설]이란의 봉쇄, 미국의 역봉쇄… 새우등 터지는 '항행의 자유'
전 세계 원유의 약 20%, 한국 원유 수입의 약 7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에 의해 봉쇄되다가 이번에는 미국에 의해 역으로 봉쇄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은 이란과의 종전 협상이 결렬되자 한국시간 13일 오후 11시를 기해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과 오만해협을 통해 이란 항구로 출입하는 모든 해상교통을 봉쇄했다. 이란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 원유 등을 외부로 운송하는 모든 선박 운항을 막겠다는 의미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호르무즈 해협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해 온 이란의 전략을 흔들고 '돈줄'을 차단함으로써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란 원유의 80~90%를 수입하는 중국을 노린 측면도 있다. 관건은 미국의 역봉쇄로 이란의 봉쇄를 실제로 풀어낼 수 있느냐다. 자칫 호르무즈 봉쇄 장기화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 불안만 더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 등 애초 전쟁과 무관한 국가들만 새우등 터질 지경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전략비축유 추가 방출, LNG의 비중동권 현물시장 긴급 조달, 에너지 수입선의 장기적인 다변화 등 중단기 대책을 다양하게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다시한번 상기할 점은 호르무즈 해협이 유엔해양법협약에서 명시한 '항행의 자유' 원칙에 따라 모든 국가의 선박과 항공기가 타국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항행할 수 있는 공해라는 사실이다. 항행의 자유는 국제 해상물류와 안보의 핵심 원칙이다. 항행의 자유 침해는 글로벌 공급망과 한국 경제를 저해하는 요소다. 그런 만큼 우리 정부도 더이상 수동적인 자세로 관망하는 듯한 태도를 보일 게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의 조속한 통항 재개를 위해 국제 사회에서 좀더 분명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국제법적 권리인 '항행의 자유'를 바탕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통항 문제에서 한국이 맡을 구체적인 역할도 고민할 때가 됐다. 민간선박 항해를 가로막는 기뢰를 탐색·제거하는 소해함이나 소해 헬기의 호르무즈 또는 인근 해역 파견, 해협을 빠져나오는 우리 선박에 대한 호위 임무 등 우리 역량에 걸맞은 비전투 역할도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외교적 부담이 큰 사안이지만 걸프협력이사회(GCC) 회원국인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한국의 주요 에너지 공급국과의 미래 전략 협력을 고려하면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이러한 적극적 역할을 통해 호르무즈 봉쇄 해결 과정에서 존재감을 확보하고 목소리를 내는 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전쟁을 시작한 주체가 문제를 해결하기만을 기다리기에는 여기에 걸린 한국의 국가적 이익이 너무도 크다. 국익은 기다린다고 지켜지지 않는다.
[사설]'사법 3법' 한 달, 재판소원은 모두 각하인데 법왜곡죄는…
정치적 논란 끝에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도입된 이른바 '사법개혁 3법'이 시행 한 달을 맞았다. 시점이 유예된 대법관 증원은 논외로 하더라도, 바로 시행된 재판소원과 법왜곡죄의 경우 한달 간의 운영 결과를 냉정히 점검하고 보완할 것은 서둘러 바로잡아야 할 시점이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지난 8일까지 접수된 재판소원은 총 358건으로, 하루 평균 12건을 웃돈다. 헌재는 이 중 194건을 심사해 모두 각하했다. "단순한 재판 불복은 청구 사유가 아니다"라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결과다. 이재명 대통령의 '조폭 연루설'을 주장한 장영하 변호사, 유튜버 쯔양을 협박한 유튜버 '구제역'이 낸 재판소원 등이 대표적이다. 재판소원은 도입 전부터 '사실상의 4심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온 만큼 헌재가 초기에 문턱을 높이 세운 것은 다행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앞으로 판단할 사건에서도 이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 재판소원은 헌법상 기본권 침해를 다투는 예외적 절차여야지 패소한 당사자가 판결을 거듭 다투는 통로여서는 안 된다. 특히 정치권의 압박이나 여론에 따라 판단 기준이 흔들리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 한다. 헌재와 대법원이 판결 해석을 놓고 불필요한 신경전을 벌이거나, 기관 간 힘겨루기에 나서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전에 여러 채널을 통해 협의하고 소통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법왜곡죄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지금까지 경찰에 피소·피고발된 인원은 91명으로 법관 26명, 검사 36명 등이다. 사법부 수장인 조희대 대법원장, 윤석열 전 대통령의 1심 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 윤 전 대통령을 수사한 오동운 공수처장과 조은석 특별검사 등이다. 명단만 보더라도 정치적 의도가 다분해 보이는 법적 대응이다. 법왜곡죄는 판·검사 등이 '의도적으로' 법을 왜곡했을 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의도에 대한 판단 기준은 지극히 모호하다. 기준이 불분명하니 고발이 남발되고, 사법 현장에선 위축 효과가 나타난다. 대법원이 "판사들의 형사재판부 기피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사기관이 선별적 수사에 나설 경우 정치적 논란이 커질 수도 있다. 여기에 수사관할을 둘러싼 혼선도 여전한 상황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경우 경찰과 공수처에 동시에 고발장이 제출되기도 했다. 법이 시행됐다고 해서 마침표를 찍는 게 아니다. 헌재는 절제된 운영으로 재판소원의 오남용을 막는 선례를 쌓아야 하고, 국회는 법왜곡죄 구성요건을 구체화하거나 근본적인 재검토에 착수해야 한다. 소송 남용을 막기 위해 법왜곡죄 고소·고발을 당사자 고소로만 한정하는 등의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사설] '전쟁 추경'인지 '정치 추경'인지
호르무즈해협발 유가 급등으로 국민 불안이 커지고, 그 충격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여야 의원들이 '전쟁 대응 추가경정예산안'을 심사하면서 전쟁 대응과의 직접적 연관성이 부족한 예산을 경쟁적으로 끼워 넣으며 대규모 증액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가 제출한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은 상임위 예비 심사를 거치며 최대 31조4000억원 수준으로 불어났다.실제로 일부 상임위에서는 '프로스포츠 관람권 지원 사업' 200억원, '국제 K-뷰티 아카데미 교육 설비 구축' 30억원, '대구권 광역철도 예비차량 구매 지원' 140억원 등 시급성과 목적 적합성이 떨어지는 사업들이 포함됐다. 위기 대응과의 관련성을 찾기 어려운 사업들이다. 빈집 리모델링(8억원)이나 지하철 연장 기본계획 수립 용역(7억원) 역시 긴급 재정 투입의 취지와는 동떨어진 사업들이다. 상식과 도를 넘은 '쪽지 예산' 남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추경은 본예산과 달리 예외적으로 편성되는 재정 수단이다. 국가재정법은 전쟁, 재해, 경기 급변 등 중대한 상황에서만 이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만큼 편성과 운영에는 요건의 엄격성, 건전 재정의 원칙, 긴급성과 효과성이 요구된다. 정부가 애초 편성했던 예산안에도 일부 '정치성 예산'이 포함돼 논란이 됐는데, 국회 심사 과정에서는 이를 철저히 따지기는커녕 민원성 사업이나 선심성 예산 반영에 몰두하는 모습이다.이처럼 추경이 정치적 이해와 결합될 경우 재정 운용의 원칙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미 국가채무가 1300조원을 넘어선 상황이다. 10일 본회의 처리를 앞둔 국회는 추경의 취지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전쟁 대응 추경이라면 유가 관리와 취약계층 보호에 재원을 집중하는 것이 우선이다.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사업은 원칙대로 걸러내야 한다. 그게 재정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또한 무겁다는 점을 국회는 직시해야 한다.
[사설]美·이란 2주 '합의 휴전'…호르무즈는 열리지만
미국과 이란이 2주간 전쟁을 멈추기로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최후통첩 시한 만료를 불과 90분을 남기고서다. 극적인 휴전 소식에 국제유가는 급락했고, 봉쇄됐던 호르무즈 해협도 다시 열릴 전망이다. 양국은 오는 10일 중재국 파키스탄에서 종전안을 놓고 대면 협상에 나선다.파국을 피한 건 다행이지만 안도하기에는 이르다. 전장의 총성이 잦아든 지금부터가 오히려 더 치열한 '외교의 시간'이다. 당장 시급한 현안은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통항이다. 교전 여파로 이곳에 발이 묶인 우리 선박만 26척이다. 미국은 휴전을 발표하며 "즉각적이고 안전한 호르무즈 개방"을 강조했지만, 이란 정부는 '이란군과의 조율'을 단서로 달았다. 정부는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한국 선박의 무사 통과를 최우선적으로 관철해야 한다. 우려스러운 점은 독소 조항이 종전안에 포함되는 시나리오다. 외신에 따르면 이번 휴전안에는 이란과 오만이 해협 통과 선박에 통행료를 징수하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한다. 이 내용이 종전안에도 들어간다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국제해협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통행료를 부과하는 조치는 '항행의 자유' 원칙과 충돌할 소지가 크다. 미국이 동맹국들에게조차 "알아서 하라"는 식의 입장을 내비치는 상황에서, 정부는 이미 연대를 형성한 40여 개국과의 국제 공조를 더 강화해야 한다. 이번 중동 전쟁은 한국 경제가 에너지 수입 구조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냈다. 해협이 열렸다는 사실에 안주한다면 똑같은 위기는 반복될 수 있다.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신속하게 다른 수입원으로 갈아탈 수 있는 복원력을 키워야 한다. 지정학적 위험 요인이 상시화된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조달처를 확보하는 게 핵심 전략이 돼야 한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화석연료를 아우르는 최적의 에너지 믹스를 설계하는 일도 서둘러야 한다. 휴전 기간은 숨을 고르는 시간이 아니라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야 할 '골든 타임'이다.미·이란 협상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선 전쟁 후를 내다보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한국이 이번 전쟁에서 충분한 기여를 하지 않았다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왔다. 여기에 중동 전개를 계기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미국의 통상 압력도 현재 진행형이다. 종전 후에는 대미투자, 주한미군 운용, 관세 및 통상, 중국 견제 동참 등 미국발 복합 청구서가 날아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동맹과 국익을 다 지켜내는 정교한 외교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그 점에서 우리 상황과 유사한 점이 많은 일본과의 공조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공동 대응은 대미 협상력과 국제사회 발언권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이번 휴전은 한국 외교의 역량을 시험하는 시간이다. '호르무즈 이후'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이번 위기는 위기로 끝날 수도,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익 극대화라는 단일 대오로 이 엄중한 외교전에 임해야 한다.
[사설]삼성전자 '57조' 새 역사… '초격차' 소식 계속 이어지길
삼성전자가 국내 기업 역사상 1개 분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모두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한국 산업사의 한 획을 긋는 성과이다. 무엇보다 저성장과 미국의 관세 압박, 이란전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 공급망 위기 가속화 등 암울한 경제 상황 속에서 모처럼 전해진 밝은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8.1% 증가한 133조원, 영업이익은 755% 늘어난 57조20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7일 발표했다. 분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역대 최대다. 특히 이번 영업이익은 지난해 연간 실적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미국에서도 이같은 실적은 아마존이나 엔비디아 등 극소수 기업만 달성한 드문 성과다.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이 300조원을 넘어 정부 본예산 기준 총지출(727조9000억원)의 40%를 뛰어넘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번 호실적의 배경은 물론 반도체 산업의 수퍼사이클(초호황) 진입이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생산 능력을 갖춘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맞물린 결과다. 올해도 미국 빅테크 4사가 AI 인프라 구축에 665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어서 반도체 수퍼사이클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여기에 범용 D램 메모리 반도체 가격도 11개월째 상승하고 낸드 플래시 품귀 현상까지 겹치면서 삼성전자는 실적 급등을 이어갔다. 특히 삼성전자가 2월 세계 최초로 6세대 'HBM 4' 양산에 성공하며 차세대 반도체 기술 경쟁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것도 긍정적 신호다. 다만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반도체는 AI·자율주행 등 미래의 테크 패권을 좌우할 첨단기술이다. 중동 전쟁으로 고유가·고환율·스태그플레이션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기도 하다. 관건은 초격차의 지속가능성이다. 미국의 견제와 중국의 추격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초격차가 흔들리는 순간 현재의 호황은 언제든 꺾일 수 있다. 기술적 우위를 계속 지켜나가면서 미래테크 경제를 이끌어가야 한다. 나아가 반도체를 통해 확보한 자금과 첨단 기술력, 네트워크, 그리고 미래를 보는 안목을 결합해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온리원' 사업에도 진출하는 등 더욱더 도전적이고 치열한 혁신기업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정부 역시 '국가 생존' 차원에서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 산업 생태계 전반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번 호실적이 우리 경제의 자신감을 키우고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사설]검찰 미제·경찰 불송치 급증…'수사 공백' 답은 뭔지
법무부가 최근 소규모 지청 소속 검사 10여 명을 대규모 지청과 지방검찰청에 파견했다고 한다. 인력난으로 미제 사건이 급증하자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일종의 '검사 돌려막기'다. 하반기로 예정됐던 경력검사 임관도 5월로 앞당기기로 했다. 정부가 이처럼 급한 불 끄기에 나선 것은 현장의 수사 공백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지난해 검찰을 떠난 검사는 175명으로, 10년 내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 중 절반 이상이 수사 경험이 풍부한 15년차 이상 허리급 인력들이라고 한다.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이런 현상은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현재 추세를 볼 때 올해 검사 사직 인원은 200명 선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문제는 형사 사법 시스템의 공백과 균열이 국민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대검 통계는 이미 경고등을 켜고 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5만 건 수준을 유지하던 미제 사건은 불과 2년 만에 12만 건을 넘어서며 두 배 이상으로 치솟았다. 수사 검사 1인당 미제 사건도 평균 500건을 돌파했다. 이런 상황에선 수사 자체도 지연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단일 사건에 충분한 수사력을 투입하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물리적 한계치를 넘어선 업무량은 수사 사각지대를 넓히게 마련이다. 그 점에서 2021년 경찰이 자체 수사 종결권을 확보한 이후 '불송치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2021년 약 38만 건이던 불송치 사건은 지난해 59만 건을 넘어섰다고 한다. 과거 검찰이 '전건 송치'를 통해 한 번 더 걸러내던 검증 시스템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검찰이 자체적인 검토를 통해 재수사를 요청하는 비율은 지난해 2.15%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검찰 개혁 이슈가 활발했던 데 비해 경찰 수사를 교차 검증하는 방안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서민의 삶과 직결된 민생 범죄 처리가 지연될수록 범죄자는 거리를 활보하고 피해자의 고통은 길어진다. 일각에선 10월 중수청이 출범하면 사건 과부하와 부실 수사 등의 혼란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는다. 공소청법에 따라 기존 검사가 맡았던 사건은 중수청 등으로 넘겨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공소시효가 임박하거나 복잡한 사건들이 졸속으로 종결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형사 사법 체계의 변화는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개혁도 '국민 안전'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앞설 수는 없다. 개편의 속도가 현장의 수사 역량을 앞질러서도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건 개혁의 명분만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민생 사건 처리에 공백이 없는지 제대로 따지고 보완책을 만드는 것이다. 그 일에 정치적 고려나 이해관계가 개입해서는 안된다. 수사는 제도의 실험장이 아니라 국민을 지키는 보루이기 때문이다.
[사설]尹 파면 1년…정치는 무엇을 배웠나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이므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다." 지난해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45년 만의 비상계엄 사태를 야기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파면을 결정했다. 그로부터 꼭 1년이 지났지만 그 결정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은 헌법이 단순히 종이 위의 글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규범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증명한 사건이었다. 국민은 권력이 헌법의 한계를 넘어설 때 어떤 파국을 맞이하는지, 민주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고 복원되는지 볼 수 있었다. 당시 헌재는 결정문에서 법리적 위법성만을 따지는 데 그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대화와 타협'을 최우선 과제로 강조하며, 서로를 타도 대상이 아닌 대등한 국정 동료로 존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파면된 대통령뿐만 아니라 그 공백을 메워야 할 국회와 정치권 전체에 던진 무거운 숙제였다.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정치가 그 요구에 부응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먼저 국민의힘은 과거를 둘러싼 노선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내부 혼선을 이어가고 있다. 당 지지율은 연일 바닥을 치고 있는데도 이번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까지 '윤 어게인' 공방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모습은 국민의힘이 아직도 파면의 역사적 함의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연이은 특검과 국정조사를 밀어부치며 내란 청산 프레임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사법 3법' 등 다수 의석을 앞세운 입법 시도가 반복되면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적 가치가 훼손됐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협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헌재의 주문과는 거리가 멀다. 윤 전 대통령의 반성없는 태도 또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다수의 형사 재판이 진행중이지만 책임 인정이나 입장 변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에는 "우리의 싸움은 끝이 아니다"며 지지층을 선동하는 듯한 입장문도 냈다. 이런 전직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경은 답답하고 참담하다. 파면 1년의 의미는 과거 평가에 있지 않다. 헌법이 정한 한계를 넘어설 경우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을 정치가 실제로 구현하느냐에 있다. 어느 진영이 이기고 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질적 진화다. 헌재의 결정이 무너진 헌법 질서를 바로잡은 '제도의 복원'이었다면, 이제 '정치의 복원'이 이뤄져야 한다. 정치가 헌법 가치를 외면하고 당파적 이해관계에만 매몰된다면, 민주주의의 성숙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사설]종전 구상 없는 트럼프의 '재탕' 연설… 대체 언제까지
이란 전쟁과 관련한 도널드 트럼프의 1일(현지 시각) 대국민 연설은 새로운 메시지 없이 기존 주장의 반복에 머물렀다. 기대를 모았던 종전 구상이나 시점은 끝내 제시되지 않았다. 대신 "이란의 위협 능력을 무력화한다"는 개전 목표를 되풀이하고, "전례 없는 승리" "군사적 목표는 거의 달성했다"는 자평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데 그쳤다. 트루스소셜과 각종 회견에서 이미 내놓았던 발언의 재탕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2~3주 동안 대대적 타격을 가해 이란을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겠다"며 "모든 발전소를 아주 강하게 타격하겠다"고 위협 수위를 끌어올렸다. 그러면서도 "강력하고 눈부신 작전을 32일 동안 펼치고 있다"며 이번 전쟁이 1·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이라크전, 그리고 3년 넘게 이어진 한국전쟁보다 짧게 끝날 것임을 강조했다. 장기전 우려를 덮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경제 인식 역시 실망스럽다. 유가 상승을 "단기적 현상" "이란의 유조선 공격 탓"으로 돌리며 미국 내 불만을 달래는 데 급급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연설 전날 CNN 조사에서 국정 지지율이 30%대 중반에 머물 정도로 여론은 이미 등을 돌린 상태다. 조기 종전 기대가 꺾이자 국제유가는 오르고 증시는 흔들렸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인식이다. 트럼프는 "의존 국가들이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는 해협 재개방과 안전 확보라는 국제적 책임을 사실상 내려놓은 채, '임무 완료'를 선언하고 발을 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런 '마무리 없는 종전'은 평화와 안정이 아닌 새로운 혼란의 재개일 뿐이다. 이 경우 한국이 입을 타격은 치명적이다. 원유의 70%, LNG의 20%를 이 경로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해협 통제권을 쥔 이란이 선박 선별 통과나 통행료 부과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외교력을 총동원해 불확실성을 줄이고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것이 시급하다.트럼프가 부활절 행사에서 한국을 콕 집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핵 무력 바로 옆에 4만 5000명의 군인을 두고 있는데도 그랬다"며 사실과 맞지 않는 수치까지 동원해 압박한 점도 예사롭지 않다. 이는 향후 통상·안보 현안에서 더 거친 요구가 이어질 수 있음을 예고한다. 이런 사안일수록 한·미 간 긴밀한 고위급 소통으로 정면 대응해야 한다.종전 로드맵은 보이지 않고, 설령 전쟁이 어떤 형식으로든 끝난다 해도 트럼프의 '후속 청구서'에 응대해야 하는 등 이중 삼중의 난관을 넘어서야 하는 형국이다. 뾰족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일단 호르무즈 자유항행을 위한 국제 협력에 적극 동참하되, 에너지·원자재 수입 구조의 근본적 다변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 중간선거를 7개월 앞둔 트럼프 행정부가 대미 투자, 통상 문제 등 협상에서 공세를 강화할 가능성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사설]국정조사, 결론보다 절차의 공정성이 먼저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조작기소 의혹' 국정조사가 본격 가동되기도 전에 녹취록 공개와 증인 채택을 둘러싼 공방이 거세다. 이런 논란이 정치적 시비를 넘어 국정조사의 신뢰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이 더 문제다. 절차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어떤 결론이 나와도 또다른 정치적 후폭풍이 불가피하다. 국정조사 특위는 지난달 31일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을 비롯한 103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과 연관된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관련자만 45명에 달한다. 대장동 사건 피고인인 김만배씨와 남욱 변호사도 포함됐다. 반면 당시 검찰 수사를 지휘했던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 등 국민의힘이 요구한 증인들은 명단에서 빠졌다. 증인 채택은 국정조사의 신뢰를 가르는 핵심 변수다. 유리한 결론을 이끌어내는데 필요한 인물만 집중적으로 부르는 방식으로는 균형과 형평을 담보하기 어렵다. 특히 공소취소 논란과 직결된 사안을 다루면서,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지닌 피고인들을 증인으로 세우는 일에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진술 왜곡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려면 야당이 요구하는 인사들도 포함해 교차 검증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녹취록을 둘러싼 공방도 소모적이다. 민주당은 최근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 변호인과 수사 검사 사이의 통화 녹취 일부를 공개했다. 공개된 대목만 보면 검찰이 이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유도하는 대가로 선처를 시사한 듯한 인상을 준다. 사실이라면 기소의 정당성 자체가 흔들릴 중대 사안이다. 반대로 당시 수사팀은 맥락을 제거한 일방적 편집이라고 반박한다. 진실 공방만 이어갈 게 아니라 녹취록 전체를 공개해 국민이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순서다. 이번 국정조사는 논의 단계부터 정치적 대립이 첨예했다. 통상 여야 합의로 출범했던 관례도 지켜지지 않았다. 게다가 관련 법률은 재판이나 수사에 관여할 목적으로 국정조사를 진행해선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사 대상 다수가 진행 중인 재판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사법권 침해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일수록 절차적 정당성 확보에 더 엄격해야 한다. 여야의 시각차가 큰 사안인만큼 증인과 증거 합의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논란 끝에 출범한 국정조사인 만큼 국민적 동의를 얻으려면 제대로 된 협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최대한 증인의 균형을 맞추고, 증거 자료는 보다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특정 방향으로 유도된 국정조사라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국정조사의 권위는 공정한 절차를 통해 스스로 입증되는 것이다.
[사설] 국민의힘은 '개헌'에 응답하고, 민주당은 '독주' 멈춰야
국민의힘이 개헌 동참 요구를 거부하면서, 제1야당을 배제한 채 개헌이 추진될 가능성이 커졌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31일 우원식 국회의장과의 비공개 회동에서 '원포인트 개헌' 에 불참할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군사작전 하듯 개헌을 밀어붙이는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며, 이재명 대통령 연임을 위한 수순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개혁신당 등 6개 정당은 이날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며 개헌안 발의를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이들은 5·18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 정신, 대통령의 계엄권 제한,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원칙을 헌법에 담기로 합의했다. 개헌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인 197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범여권과 개혁신당, 무소속 의원을 합쳐 187석 안팎이어서 국민의힘에서 10명 이상의 이탈표가 나와야 한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의 입장 변화만 기다릴 수도 없다. 오는 6월 지방선거일에 국민투표를 병행하려면 다음달 7일까지 개헌안이 발의되어야 하고, 5월 초 국회 의결도 마쳐야 한다. 이번 개헌안은 국민의힘이 그간 내세워 온 가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은 여러 차례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언급해 왔고, 장 대표 역시 부마항쟁 정신 계승을 강조한 바 있다. 지방분권 강화와 국가균형발전 또한 보수 진영이 꾸준히 주장해 온 방향이다. 대통령의 계엄권 제한도 국민적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자는 차원이다. 개헌안은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해도 국회가 해제를 의결하거나 48시간 안에 승인하지 않으면 즉시 효력을 잃게 하는 내용이다. 현행 헌법의 불명확성을 보완하자는 것이다.1987년 민주화 운동의 산물로 탄생한 현행 헌법은 어느덧 불혹을 앞두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탱할 안전장치를 보강하고 달라진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데 여야의 이견은 없다. 하지만 개헌은 늘 '필요하지만 미뤄지는' 의제였다. 여야의 갈등이 커지거나 다른 정치적 이벤트가 생기면 번번이 논의에서 밀리곤 했다. 특히 권력구조를 손대는 부분은 대통령과 여야의 이해관계에 막혀 개헌 논의 자체를 좌초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여야가 합의 가능한 사안부터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왔고, 이번 지방선거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많았다. 그 점에서 국민의힘이 개헌안 내용이 아닌 정치적 상황을 이유로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로 보기 어렵다. 다만 절차 문제를 제기하는 국민의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민주당이 그동안 다수 의석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국회를 운영해 온 전례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겠다는 입장까지 내비친 상황에서 제1야당이 협상에 나서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 측면도 있다. 그런 만큼 여권 역시 개헌 명분만 앞세우기보다는 야당이 논의의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숙의와 공론의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개헌은 특정 정당이나 정권의 과제가 아니다. 낡은 권력 구조를 고치고 국민의 기본권을 확장하는 시대적 책무다. 일부 이탈표에 기대어 통과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로 무산되는 개헌은 모두 정치의 실패다. 여야 합의와 국민적 동의 속에 추진될 때 비로소 헌법은 권위를 얻는다. 지금은 정쟁이 아니라 헌법만을 생각할 때다.
[사설]호르무즈 이어 홍해도 위협…수입 수출 길목 다 막힐라
우리의 에너지 수입 통로인 중동의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에 의해 봉쇄된 데 이어 유럽행 수출 물동량의 상당수가 지나는 바브엘만데브 해협과 홍해마저 예멘 후티 반군의 위협을 받고 있다. 친이란 대리세력인 후티 반군이 지난 28일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발사하며 이란 편으로 참전을 선언하면서다. 바브엘만데브 해협과 수에즈 운하를 잇는 홍해 항로는 전 세계 해상 컨테이너 물동량의 약 30%, 상품 무역량의 약 12%가 통과하는 핵심 항로다. 연간 통과 물동량이 1조 달러에 이른다. 한국 등 아시아에서 수에즈 운하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해상 화물은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한다. 만일 이 길이 막히면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도는 우회 노선을 택해야 한다. 항해 거리는 약 9000㎞ 늘고 소요기간 7~10일이 추가돼 물류비용이 20%가량 뛴다. 현재 미국은 4월 6일을 협상 시한으로 잡고 이란에 핵무기 개발 중단과 탄도미사일 제한, 호르무즈 해협 개방 등 15개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이란은 중동 내 미군기지 폐쇄와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과 통행료 징수를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협상에 바브엘만데브라는 새로운 난제까지 더해지며 상황은 더욱 꼬이고 있다. 중동 상황의 불안정성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곧바로 전이되고 있다. 지난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2.9%로 유지하면서도 한국은 1.7%로 지난해 12월 전망치보다 0.4%P 낮췄다. 반면 물가상승률은 2.7%로 0.9%P 높였다. 호르무즈 해협 전면 봉쇄도 처음 겪는 일인데 홍해 항로마저 안정적 항행이 어려워지는 것은 우리로선 겹악재가 아닐 수 없다. 산업계는 후티 반군의 상선 공격으로 물류비가 폭등했던 '2024년의 악몽'이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두 해협 동시 봉쇄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비상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에너지 수급 안정과 물가 관리에 선제적으로 나서는 것은 기본이다. 바브엘만데브 인근 아덴만에 주둔 중인 청해부대의 우리 선박 보호 작전 활용 방안 역시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외교적 방안을 모색하는 동시에,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군사적·물류적 대응책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 원유 수입 길목과 유럽 수출 길목이 동시에 막히는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우리 경제가 더욱 휘청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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