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시평
[시대시평/최장혁]보호와 혁신 사이, 한국형 AI 모델의 갈림길
얼마 전 중국을 다녀온 한 대기업 대표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 공항에 도착해 국내선으로 갈아타려 잠시 우왕좌왕했더니, 갑자기 공항 대형 스크린에 그의 이름과 함께 탑승 게이트 안내 문구가 실시간 영상과 함께 떴다는 것이다.웃으며 들었지만 곧 복잡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입국 과정에서 여권을 스캔하는 순간 개인정보가 출입국 당국에 전달되고, 안면인식 기술과 AI가 행선지와 항공편 정보를 결합해 실시간으로 개인을 식별·안내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몇 해 전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출입국 당국이 CCTV와 개인정보를 활용해 이상 행동을 사전에 탐지·예방하려 했지만, 안면인식 정보 활용과 목적 외 개인정보 사용 논란이 불거지며 시민단체 고발 끝에 사실상 중단됐다.재작년 중국의 생성형 AI '딥시크(DeepSeek)' 등장은 한국 사회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미국의 강력한 규제 속에서도 중국이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한 것은, 데이터와 컴퓨팅 자원이 부족한 한국에도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동시에 우리는 중국처럼 개인정보를 AI 학습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느냐는 현실적 벽도 절감했다.물론 중국의 AI 기술과 편리한 서비스를 부러워하는 시선은 있다. 그러나 CCTV 기반 안면인식으로 개인을 실시간 추적하거나, AI 발전을 이유로 국민 개인정보가 무분별하게 활용되는 사회까지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한국 역시 과거에는 주민등록번호를 중심으로 방대한 개인정보가 국가 필요에 따라 수집·활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발전과 함께 관련 관행들이 정비됐고, 개인정보보호법을 비롯한 제도도 체계화됐다. 지금 한국은 유럽연합(EU)과의 상호적정성 평가를 통해 유럽 수준의 개인정보보호 체계를 인정받는 국가가 됐다.이처럼 개인정보보호와 민주주의는 발전의 궤를 함께해 왔다. 평상시에는 그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하지만,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순간 가장 먼저 침해받는 것 중 하나가 개인정보다.실제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이민자 추방 정책에 항의 이메일을 보낸 한 변호사가 미국 국토안보부의 요구로 구글로부터 개인정보 제출 통지를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주소와 전화번호, 사회보장번호, 신용카드 정보까지 요구됐지만, 정작 이의를 제기하려 해도 담당 부서를 특정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민주주의 선진국 미국조차 9·11 이후 국가안보를 이유로 개인정보보호를 유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한국 역시 코로나 시기 확진자 동선 공개 과정에서 개인정보 침해 논란을 겪었다. 최근 미토스 사태에서 드러났듯, 이제는 공격과 방어 모두 AI가 수행하는 시대다. AI는 산업 경쟁력의 핵심일 뿐 아니라 국가안보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AI 발전을 위해 개인정보 활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따라잡으려면 그들 수준의 데이터 활용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한국은 개발독재와 권위주의를 거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뤄낸 드문 경험을 가진 나라다. 개인정보보호 역시 그 과정에서 어렵게 축적한 민주주의의 자산이다.전체주의 국가는 개인정보보호를 발전의 장애물이나 최소한의 규제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반면 민주주의 국가는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할 시민의 권리이자 사회적 자산으로 본다.앞으로 AI 에이전트들이 개인 정보를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시대가 본격화될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AI 발전만을 이유로 무분별한 개인정보 활용을 허용한다면, 과거 전체주의 사회보다 더 강력한 감시와 통제의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AI 시대에도 개인정보보호라는 민주주의 가치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최근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AI 산업 발전을 위해 학습 데이터 원본 활용을 허용하는 개인정보보호법상 AI 특례 조항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필요한 안전장치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AI 경쟁력과 민주주의 가치가 충돌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한국이 이제는 개인정보보호와 혁신을 함께 담아낸 'K-AI' 모델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시대시평/이정민]등수에서 해방되어야만 미래에 살아 남는다
우리나라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각종 등수·순위·랭킹에 몰입해 있다는 점이다. 유아원부터 대학·대학원 서열, 기업 매출과 시가총액, 무역지수, 군사력, 국민총생산, 그리고 올림픽 메달 수와 종류를 포함한 각종 국제 스포츠 대회의 등수가 너무 중요하다.등수가 나쁜 건 아니다. 6·25전쟁 직후 찢어지게 가난했던 대한민국은 해산물을 수출하다가 2025년 세계무역기구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5위 무역 초강대국으로 변신한 만큼 우리의 성과를 과시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이제는 등수의 늪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거의 모든 랭킹과 등수는 초고속성장시대에 유효했던 지표들이기 때문이다.한중일 3국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목표를 이미 달성했고 인도네시아·베트남·인도 등의 후발주자들도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하지만 2030년대에 진입하면서 부국 수치는 서서히 국민총생산(GDP) 상승과 같은 부를 기반(wealth-based)으로 한 파워보다 민첩성 기반(agility-based) 파워로 전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가오는 거의 모든 영역 간의 <크로스오버 파워>(crossover power, XP) 시대에는 기존의 경계와 벽들이 허물어지면서 파생되는 거의 무제한의 힘과 영향력이 다각도로 발현될 것이다.그러나 새로운 힘의 시대가 우리에게 반가움만 안겨주지는 않을 것이다. 본격적인 AI 중심 편의 시대, 로봇이 지배하는 노동체계, 그리고 인류를 각종 질병에서 해방시켜주면서도 동시에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세포 단위 무기 확산 등 행복과 불행이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는 <쌍둥이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보유하고 있는 힘, 사고, 기억, 그리고 창작을 초월하는 로봇과 아바타들이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1, 2, 3 등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본격적인 XP 시대에는 의료·군사·정보·예술·문화·디자인 외의 거의 모든 분야를 새롭게 엮고 융합하고 분해하고 새로운 형태의 지식·제품·서비스·규범 등을 인류에게 제공하고 위협할 것이다. 따라서 국가권력을 능가하는 XP가 본격적으로 생산되면 국가권력과 이를 지탱해온 각종 제도, 조직, 교육, 시험, 그리고 인재관리 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지금은 상상을 할 수 없지만 30~40년 후 본격적인 XP 시대의 정치인은 예전의 전화교환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XP 시대의 기초는 자율규제 시스템인 만큼 굳이 정치인·정당이 국민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필요가 서서히 없어질 것이다. 그럼 무정부·무질서·무계급의 유토피아가 될 것인가? 개인 재산·지적소유권·인권도 묵살될 것인가? 아나키스트와 극단 사회주의자들은 박수 칠 수 있겠지만 그들 역시 더 이상 폭력과 전체주의를 기반으로 한 권력을 행사하는 데에는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왜 그럴까? XP 시대에는 거의 모든 제품·서비스·사고·지식 등이 자유자재로 탄생·교환·비축·진화됨으로써 지금처럼 부의 생산·노동 착취도 서서히 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탈취할 것이 있어야 탈취가 가능하지만 부와 파워를 사실상 누구나 생산할 수 있다면 누가 빼앗아 갈 수 있단 말인가?XP 시대의 등수와 순위는 적재적소에 가장 필요한 무엇이든 발휘하는 새로운 『기(氣)』가 순위의 감옥에서 해방시켜주는 『키』(열쇠 key)로 전환될 것이다. <氣가 키가 되는 날> 한국인들의 끈기와 빨리빨리 문화는 극과 극이 서로 녹고 융합돼서 새로운 물질·사고·의상·문화·서비스·교양 등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나라는 등수를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코리아 랩>(Korea Lab)을 통해서 XP를 가장 효율적으로 그리고 융성하게 생산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로마제국, 중세기 중국, 산업화 시대의 영국 등 이들 제국들이 세계를 지배한 까닭은 바로 후발국들이 그들의 랩을 모방했기 때문이고 여기서 파생되는 각종 등수, 계급, 그리고 위계질서를 자연스럽게 숭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기존의 정통 파워가 당장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정부는 국가와 사회를 통제할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氣 파워> 시대에는 기업과 비정부 기관들의 영향력이 극대화될 것이며 고속·고도 기술 진화와 더불어 수많은 플랫폼을 계기로 파워는 전방위적으로 전파되고 갈라질 것이다. 더 빨리, 더 맞춤형으로, 그리고 더 신성한 해답을 제공하는 나라, 기구, 기업, 그리고 개인들이 각각 새로운 지표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더 많은 나라들이 <코리안 파워>를 모방하고 진화시키고 그리고 자기들의 필요에 맞는 방식으로 수정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옛 제국들이 만들어 놓은 등수와 랭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상상할 수밖에 없고 산적한 현안들을 해결해야 되지만 셀 수 없는 각종 XP 기반 <샌드박스>(sandbox)들이 전국 곳곳에서 가동될 때 대한민국은 더 이상 등수를 쫓아가는 나라가 아니라 21세기를 선도하는 중심 국가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시대시평/강석훈]진부한 물적 자본, 희소한 신뢰 자본
한국은 더 이상 자본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본은 인적 자본이 아니라 물적 자본, 즉 기계·장비·공장과 같은 생산설비를 뜻한다. 물적 자본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가 한계자본계수(ICOR)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1단위를 추가로 늘리기 위해 필요한 투자량을 의미한다.한국의 한계자본계수는 1990년대에는 4~5 수준이었으나, 2020년대에는 8~9까지, 기간에 따라서는 10 이상으로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GDP를 1% 늘리는 데 필요한 투자 규모가 과거보다 두 배 이상 커진 셈이다. 이는 자본 축적이 성장을 견인하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뜻한다. 한국의 자본 효율성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빠르게 하락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장기 저성장을 겪어 온 일본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제 한국 경제에서 물적 자본은 더 이상 희소한 자원이 아니다. 자본은 경제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경제적 자본의 핵심인 물적 자본은 넘쳐나지만, 사회적 자본은 빈약하고, 특히 사회적 자본의 핵심인 신뢰 자본은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신뢰 부족의 문제는 수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최근 미국은 막대한 국방자산을 동원하여 이란 영토에 추락한 자국 장교 한 명을 구출했다. 이런 경우를 보고 국민은 국가를 신뢰하게 된다. 과연 우리 국민 중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가 전력을 다해 나를 구하리라 확신하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신뢰의 부재는 국가와 국민 사이에만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신뢰가 사라진 여야관계는 토론이 사라지고 고함만 난무하는 불신의 광장으로 추락하고 있다. AI 혁명으로 노동시장의 근본적 변화가 예고된 지금, 새로운 노동시장 시스템의 유력한 대안은 유연안정성(Flexicurity)의 확대다. 그러나 노사는 상호 불신의 늪에 빠져 있고, 안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높이는 새로운 대안에 대한 논의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최근 한국 대표 반도체 기업에서 불거진 갈등 역시 본질은 신뢰의 문제다. AI 혁명의 격랑 속에서 현재의 막대한 영업이익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없다. 일시적으로 급증한 이익은 미래 투자의 재원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것이 중장기적으로 근로자, 기업, 주주 그리고 국민 모두를 위한 길이다. 그러나 미래 투자가 결국 나의 소득과 고용을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가 없다면, 미래는 사라지고 당장의 분배 요구만 남는다. 결국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선택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정책 영역에서 시장 기능에 대한 불신도 심각하다. 유가 급등기에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면 가격 신호가 왜곡되고, 오히려 에너지 소비를 부추겨 위기 극복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시장가격 기능에 대한 불신은 위기의 비용을 더 키울 수 있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주택 정책은 국민의 다양한 주거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취향, 소득, 입지, 연령, 가구원 수, 직장 변동성 등 수많은 변수의 조합을 조정하는 가장 강력한 기제는 시장이다. 그러나 정부는 시장을 신뢰하지 못한 채 수많은 이해관계에 직접 개입해 왔다. 그 결과 시장을 억제하는 데는 일정 부분 성공했을지 모르나, 주거 취약계층인 전세 세입자의 고통은 커졌고 높아진 월세 부담은 서민의 삶을 더욱 옥죄고 있다.희소해진 신뢰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야말로 흐트러진 한국 경제를 근본적으로 되살리는 출발점이다. 신뢰 자본이 늘어나면 경제는 같은 자본과 노동으로 더 많은 성과를 낸다. 경제학 용어로는 총요소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이며, 이는 성장잠재력을 직접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는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면 장기 투자가 가능해진다. 노사 간 신뢰가 쌓이면 노동시장 개혁도 감당할 수 있다. 신뢰는 보이지 않는 자본이지만, 불신 때문에 낭비되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줄인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한 생산성 자본이다.지금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공장과 설비만이 아니다. 물적 자본의 효율성이 떨어진 한국 경제에, 신뢰라는 새로운 자본을 축적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의 심장이 다시 뛸 수 있다.
[시대시평/오연천]예견된 지방선거 결과에 따른 여권의 책무와 야권의 각성
미증유의 계엄에서 비롯된 탄핵에 따른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뒤 1년 만에 치러지는 6·3 지방선거는 새로 출범한 정부·여당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민적 의견 투입(interest articulation) 기회로 간주하기 어려운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원칙론적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거 결과가 쉽게 예단될 수 있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민심의 향배를 쉽게 예단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이번 선거 전·후 과정에서 예전과 달리 여권의 국정쇄신과 정치적 좌표 제시 노력이 긴요하고, 야권의 정치력 복원 노력이 절박함을 말해준다. 국민의힘은 한 달여 기간 내 유권자들의 선택을 되돌리기에는 원천적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예견할 수 있는 참담한 선거 결과에 대비, 건강한 보수 가치를 실현하고 전통적 지지자들의 기대에 접근할 수 있는 근원적 체제 혁신의 밑그림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국민의힘 행태에 진절머리를 앓고 있는 야권 지지자들조차 행정·의회 권력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여권에 대한 의미 있는 견제시스템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선거 결과가 나온 뒤 수습대책을 마련하는 때늦은 대응은 뻔한 결과를 무책임하게 간과하고 지지자들의 좌절을 증폭시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선거기간 중이라도 백지상태에서 일부 지지층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는 「환골탈태」의 구상을 제시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순풍 운항과 더불어 야권의 난맥상에 따른 반사적 이익을 얻고 있는 여권은 예견된 선거 결과에 환호작약(歡呼雀躍) 해서는 안 된다. 야권의 혼돈과 무력함에 기인한 반사적 수혜의 결과이고 정부·여당에 대한 절대적 신임이라고 해석하지 않는 냉철한 자세가 요구된다. 나아가 향후 비판적 국민의 심중까지 헤아리며 국정 운영에 임하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번 선거가 마무리되면 정부·여권에는 새로운 차원의 중후한 책무가 기다리고 있다. 야권과의 최소한도 수준의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국정운영의 집중과 총체적 책무의 강도는 전례 없을 듯하다. 이러한 상황을 앞두고 정부·여당은 선거기간 중 핵심 국정과제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보통 지방선거에서 그러했듯이 개별 선거구의 당선 확률을 높이기 위한 해당 지역의 선심성 공약을 극대화하는 행태는 국정 책임을 안고 있는 여권으로서 더욱 절제해야 한다. 지방선거를 전후하여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고 지역의 존재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는 중·장기 정책 구상이 모색되고, 이를 뒷받침할 정책대안이 일관성 있게 꾸준히 마련되어야 한다. 지역 살리기는 해당 자치단체의 개별적 주도만으로는 그 효과가 의문시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비효율적 자원배분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범정부적 조율과 일관된 정책 기조의 유지가 중요하다. 유력한 지사·시장의 정치력에 좌우되는 주요 기업과 국고 사업의 유치 경쟁 못지않게, 전국적 지역분업 구도하에서 한국경제의 글로벌 경쟁력을 착근할 수 있도록 현 정부의 정치적 경쟁력에 걸맞는 지역 혁신 비전이 선거기간을 거치면서 고도화될 것을 기대한다. 더 나아가서 국민소득, 지역 경제의 양극화를 개선할 수 있는 체계적 정책 탐색이 원활히 전개되어야 한다. 여권의 압승으로 귀결된다고 전제한다면 정부·여당의 시대적 소명과 책무는 야권의 분골쇄신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더욱 엄중한 수준에 이를 것이다. 그만큼 정책결정 과정에서 핵심 과업 도출과 외부 조율, 잠복된 여론의 경청을 통해 「보편적」국민 이익 추구에 한치의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 대통령 고유의 공적 체험과 잠복되어 있는 특유의 통찰력이 지방선거 이후 가시화될 것을 기대해 본다.
[시대시평/한정훈]헝가리 총선, 유럽의 변화 앞에 선 한국의 선택
며칠 전 유럽의 이목을 집중시킨 헝가리 총선이 막을 내렸다. 존중과 자유의 당을 의미하는 티서당(TISZA)의 당수인 페테르 마자르(Peter Magyar)가 2010년 이후 장기집권을 이어온 빅토르 올반 총리 체제에 중대한 도전을 가한 선거였다. 선거 전부터 올반 총리의 패배를 예측하는 여론조사가 이어졌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물론 이민문제를 둘러싸고 유럽연합의 공동 대응에서 빈번히 이탈해온 그의 행보는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총선 결과, 199개 의석 가운데 야당인 티서당이 136석을 확보하며 56석에 그친 집권당을 압도했다. 1980년대 말 동유럽 민주화 시점에 시작된 양국 간 비교적 짧은 외교 관계를 고려할 때, 한국 사회에서 이번 선거를 크게 주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와 같은 주류 회원국도 아닌 동유럽 한 국가의 선거결과가 과연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의문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유럽연합의 향방과 한국의 대외전략을 동시에 되짚게 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선거는 유럽 내 민주주의 회복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동안 유럽연합은 극우민족주의 세력의 성장과 함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조짐을 보였다. 특히 올반 정부는 자국 우선주의와 권력 집중을 통해 유럽연합이 강조해 온 법치와 자유, 인권의 가치와 긴장 관계를 형성하며 국제적 규범 확산의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마자르 당수가 승리 직후 첫 기자회견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거리를 두겠다고 입장을 밝힌 것은 유럽연합의 내적 응집력을 강화하며, 가치지향적 유럽의 외교에 새로운 국면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올반 정부의 패배는 4년 넘게 장기화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도 일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마자르의 헝가리는 러시아와의 밀착을 줄이고 친유럽적 노선으로의 선회를 예고했다. 유럽연합으로서는 그동안의 내부 불협화음을 완화하고 보다 일관된 대외정책을 추진할 여지가 생긴 셈이다. 분열된 유럽연합이 러시아의 전략적 행동 공간을 넓혀주었다면, 결집된 유럽연합은 그 반대로 러시아의 선택지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곧바로 새로운 국제질서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마자르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인정했듯 유럽연합의 여러 회원국들은 여전히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특히 헝가리를 포함한 일부 국가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석유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에너지 안보를 둘러싼 회원국 간 이해관계 역시 일치하지 않는다. 또한 헝가리의 정치적 변화만으로 러시아가 단기간 내 정책 방향을 급격히 전환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헝가리 총선 결과는 유럽연합 내 정치지형의 변화를 촉발하는 중요한 계기라는 점에서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 역시 단순한 관망자로 남기 어렵다. 오히려 유럽연합 내부의 정책 조율과 대외전략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야 한다. 이미 방산 수출을 통해 유럽의 안보 환경과 산업 구조에 일정 부분 관여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그 중요성은 더욱 크다.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도널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의 방한은 유럽이 한국을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는 변화의 일면이다. 반도체, 배터리, 방산 산업을 중심으로 한 협력뿐 아니라 공급망 재편과 '디리스킹(de-risking)' 전략 속에서 유럽 내 한국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헝가리 총선은 한-EU 관계의 재편을 촉진하는 또 하나의 계기로 읽을 필요가 있다. 이제 한국은 미중 관계와 동북아 중심의 시각에 머물러선 안 된다. 유럽연합을 단순한 상품시장이나 문화적 교류 대상으로 보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유럽은 더 이상 주변 변수가 아니다. 한-EU 간 전략적 관계를 재구성하기 위한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시대시평/김경희]공화주의와 '절반의 승리'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저자로 유명하다. 그는 내우외환의 위기에 빠진 조국 피렌체를 위해 카리스마있는 지도자를 원했다. 필요할 때는 권모술수를 사용해도 된다는 말은 위기 극복의 한시적인 수단일 뿐이다. 사실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자이다. 그는 고대 로마 공화정을 정치의 모범으로 삼았다. 공화주의는 국가가 다양한 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갈등과 대립은 필연적이다. 이해관계의 대립이 대화로 조율되면 법률로 만들어진다. 그렇지 못하면 분열과 충돌을 거쳐 내란으로까지 이어진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이 잘 살아가야 하기에 '공화(共和)'이다. 공존은 서로를 살피는 데서 가능하다. 배타적 사익과 권력 추구는 공화주의가 가장 반대하는 주종적 지배관계를 낳는다. 공동선의 추구가 중요한 이유이다. 공동선은 권력자나 승리한 일방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이 같이 찾아가는 과정과 그 끝에 있다. 그런데 마키아벨리에게 피렌체 정치의 문제는 공화주의의 부재에 있었다. 갈등의 증폭과 대립의 양산이 지속되었다. 귀족 간의 대립이 끝나면, 귀족과 시민의 대결이, 그 이후에는 시민과 평민 간의 갈등이 이어졌다. 승자는 법을 만들어 패자를 추방했다. 갈등과 대립은 말 대신 무기로 해결되었다. 이를 서술한 것이 그의 『피렌체사』이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위기의 순간에 빛났던 지혜를 찾아 기술한다. 그것은 바로 '절반의 승리'이다. '절반의 승리'는 갈등이 무력 충돌로 치닫기 직전, 비에리 데 메디치가 양측을 중재하며 던진 메시지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무기를 내려 놓으며, 나라의 안전을 구하는 것이 '절반의 승리'이다. 그 반대인 '완전한 승리'는 무기를 잡고 상대방을 완전히 제압하는 것이다. 그 귀결은 나라의 혼란이다. 그런데 '절반의 승리'는 현재의 승기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얻은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이는 행운을 겸손하게 사용하는 것과 통한다. 성공은 능력 덕이 아니라, 운이 좋아서 얻은 것이다. 따라서 겸손하게 사용하지 않고 오만해지면 그 결과는 몰락이다. 또 다른 '절반의 승리'는 조반니 데 메디치가 재산세를 소급적용코자 시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한 말이다. 재산세를 새로 제정하자 부자들의 반발이 있었다. 법제정에 환호한 일반 시민들은 법을 소급 적용해 이전의 재산까지 조사코자 했다. 부자들은 분노했다. 조반니 데 메디치는 과거의 부당함을 새로운 법으로 바로잡는 데 만족하며,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강조했다. 승리 이상을 원하면 패배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절반의 승리'는 공화주의의 지혜를 보여준다. '완전한 승리'는 상대를 굴복시키고 제거하는 것이다. 배제 속에서 말로 소통하는 정치의 공간이 사라진다. 반면 '절반의 승리'는 상대와 공존하는 정치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극단의 정치가 유행하는 작금의 정치에 '절반의 승리'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자 하는 인간에게 '절반의 승리'는 정말 어려운 실천의 지혜이다. 하지만 이는 생존의 지혜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배제하고 억누르는 '완전한 승리'는 분노와 증오의 기억 속에 복수의 정치로 패자를 인도한다. '완전한 승리'는 승자 측에도 내분을 일으켜 몰락을 자초하게 한다. 결국 '완전한 승리'는 승자와 패자 모두의 공멸을 가져온다. 극단의 정치와 적대적 정치 그리고 타협 없는 정치에서 공화주의가 지닌 '절반의 성공'은 우리 모두가 공존공영하기 위한 정치적 지혜이자 기예인 것이다.
[시대시평/최장혁] 개인정보 못 지키는 기업·국가의 AI 경쟁력은 허상
휴대폰으로 여행지나 관광 상품을 검색하면 곧이어 관련 상품 권유를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관광지에서 찍은 사진을 스스로도 잊고 있었는데, 이를 타임라인 형태로 보내오는 플랫폼 기업들을 보며 현대 문명의 편리함을 실감하는 동시에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국내외 주요 기업들의 잇따른 개인정보 유출 사태 역시 국민적 불안을 키우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정부 대응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AI 시대를 맞아 개인정보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지만, 과도한 수집과 이용에 대한 우려 또한 함께 증가하고 있다.국가를 구성하는 사회적 자본 중 하나는 신뢰다. 신뢰 수준이 높은 사회는 불필요한 거래 비용을 줄여 전체적인 효율성이 높다. 반면 신뢰가 낮은 사회는 이를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이는 곧 비효율로 이어진다.기업의 사회적 신뢰는 전통적으로 재무적 안정성, 최고경영자의 도덕성, 기업 윤리 등을 기준으로 평가되어 왔다. 한때 강조되던 기업의 브랜드 가치 역시 결국은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개인정보 보호 수준이 기업 신뢰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라도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하면 우월적 지위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국가 간 신뢰 역시 개인정보 보호 수준과 직결된다. 작년에 통과한 유럽연합과 대한민국 간 '적절성 결정'(Adequacy Decision)은 양국이 서로의 개인정보 보호 수준을 자국과 동등한 수준으로 인정한 결과이며, 이는 개인정보 국외 이전을 허용하는 근거가 된다. 결국 개인정보 보호 수준에 대한 신뢰를 외교적 합의로 확인한 사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용정보 점수 역시 개인의 재정 상태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수치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AI 시대에 개인정보의 의미는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주민등록번호처럼 개인을 식별하는 수단으로 인식되었지만, 이제는 개인의 행동과 위치를 파악하고 이를 연결하는 핵심 요소로 기능한다. 개인이 인터넷을 이용하거나 휴대폰을 소지하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기기 식별 정보를 통해 다양한 행태 정보가 수집된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개인의 이동 경로와 활동이 파악될 수 있다.자율주행차는 차량 소유주의 개인정보를 중심으로 중앙 서버와 연결되며, 신용카드 거래 내역 역시 단순한 경제 활동을 넘어 개인의 삶의 패턴을 보여주는 정보가 되었다. 이러한 개인정보가 정보 주체의 의사에 반해 수집·활용되거나 해킹으로 유출될 경우, 그 피해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 있다. 특히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 활용이 확대되면서 개인정보 주체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우선 대규모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기업과 조직은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관련 인적·물적 인프라를 정비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단순히 실무 담당자의 업무로 한정하거나 관련 투자에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해킹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기 전에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기본적인 투자와 체계를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정부 역시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을 통해 과징금 상한을 총매출액의 10%로 인상하는 방안이 마련되었고, 시행을 앞두고 있다. 다만 정부는 AI 글로벌 3를 목표로 하는 만큼 개인정보 활용을 통한 기술 혁신 역시 병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결국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신뢰를 높여 유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데이터 활용 기반의 기술 혁신을 달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후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와 함께 내부 통제 체계를 실질적으로 작동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다.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의 감사에 개인정보보호 항목을 포함시키는 미국의 방안도 고려해 볼만하다. 아울러 정보 주체가 사전에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을 선택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인증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보안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우수한 인재가 개인정보 보호 및 보안 분야로 유입되도록 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개인정보를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AI 강국이 될 자격이 없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AI 글로벌 3 목표를 달성하기를 기대한다.
[시대시평/이정민]충돌의 시대, '한국형 모델'의 길
언제 종료될지 모르는 이란전쟁, 4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에너지와 주요 공급망의 취약성, 그리고 인공지능 (AI) 혁명의 가속화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의 충돌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 가속화되고 있는 북핵 위협, 중국의 발 빠른 군사력 강화, 그리고 미국의 예측하기 여려운 대외정책까지 고려하면 모든 분야가 불확실하고 불안할 뿐이다. 그러나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올 것이 왔구나"라는 인식 아래, 한국의 맷집을 키우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구한말부터 극심한 절망·위기·억압·전쟁·가난·고속 성장·민주화·글로벌화 등의 연장선상 속에서 한국인 특유의 융합적·창의적 DNA를 기반으로 세계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선진국으로 발전한 저력이 있다. <Made in Korea>는 이제 일본과 독일 제품을 능가하는 상표가 됐다. 그러나 앞으로 필요한 것은 본격적인 AI 시대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그리고 동서양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한국형 모델』(Modelled in Korea)을 만들고 다듬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것이다.2025년 데이터에 의하면 세계 GDP랭킹 1∼5위는 미국, 중국, 독일, 일본, 영국이다. 2015년 이후 10년간 중국은 72% 인도는 77% 성장했다. 같은 기간 50%이상의 성장을 기록한 나라는 튀르키예 (59%)와 인도네시아 (51%)다. 물론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은 인구분포 변화, 성장둔화, 극심한 부정부패, 그리고 확산되는 소득격차와 같은 구조적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미국, 중국, 그리고 인도 등 어느 나라도 다가오는 AI시대에 지구촌 대부분의 나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모델국가가 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전 세계의 모든 부정적인 요소(저출산, 초고령화, 높은 자살률, 저성장 진입, 고조되고 있는 북핵 위협)와 긍정적인 요소 (선진 제조 산업, 로봇화, 기술혁신, 문화산업, 높은 교육률, 그리고 진취적 도전 정신)가 쉬지 않고 충돌하고 있는 한국이야말로 '충돌의 시대'에 『패러다임 이동』 (paradigm shift)을 주도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 방향을 네 가지 측면에서 정리할 수 있다.첫째, AI기반 산업 전환이다. 인구 감소 시대에도 AI기반 공장을 중심으로 고부가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다면, 인간과 휴머노이드와의 새로운 사회적 규범과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체계화함으로써 보건·복지·요양 서비스 등 저성장·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새로운 성장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다. 둘째, 단순한 무기수출 강국으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전장환경에 적합한 스마트 무기체계와 양용기술의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 30∼40년 주기로 무기체계와 안보시스템을 개선해야 되는 수퍼 사이클 (super cycle)에서 주도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며, 나아가 서방국 중심의 안보제공 체제에서도 서서히 벗어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셋째, 『선도적 실증국가』 (First Prover)로서 국가와 사회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AI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그러나 AI없는 나라 발전도 환상이다. 따라서 한국이 AI시대에 『살아가는 방식』을 제시할 수 있다면 강대국과 중견국 그리고 후발주자들도 한국사례를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넷째, 정치 구조의 혁신이다. 지금처럼 여야간의 극심한 증오로 가득 찬 정치체제로는『선도적 실증국가』에 필요한 국가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 특정 정당이 절대적인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하더라도 영원할 수 없고, 돌멩이만 던지고 연속적인 자살골을 자처하는 정당에서 진정한 대안을 기대할 수 없다. 후진적 정치체제가 존속하는 한 '대한민국 2.0'은 그림의 떡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태극기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음양의 조화와 우주의 4괘인 하늘, 땅, 물, 그리고 불을 상징하는 문양을 지닌 국기이다. 상충되는 요소들의 균형과 조화를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만큼 대립의 뿌리가 길고 짙은 나라도 찾기 힘들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구한말의 소용돌이와 조선의 붕괴, 그리고 분단 이후의 대치상황 등 역사적 전환점마다 양극단의 대립 속에서 제대로 된 국가개혁을 한 적이 없다. 유일한 예외가 건국 이후 우리나라가 이룬 경제발전·자유민주주의의 정착이다. 기존의 국제질서가 서서히 와해되고 새로운 글로벌 질서가 구축되기 전까지 지금 발생하고 있는 각종 충돌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1960∼1970년대에 도입된 급속성장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뿐더러 『충돌의 시대』에는 새로운 접근과 전략이 필수적이다. 5천년 역사상 중국보다 앞선 시기는 지난 50년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대륙과 해양, 동서양,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연결하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그리고 가장 민첩한 진화와 혁신 경험을 두루 갖춘 지구촌의 유일한 나라다. 충돌하는 지구촌 속에서 한국 주도로 AI시대의 새로운 국가모델을 만드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역사적 필연이라고 봐야 한다.
[시대시평/강석훈] 대한민국은 다시 꿈꿔야 한다
최근 중견 기업을 경영하는 한 기업가로부터 흥미로운 일화를 들었다. 자사 주가의 저평가를 역설하는 그에게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던진 질문은 생소했다. "이 회사의 PDR은 얼마입니까?" PER(주가수익비율)도, PBR(주가순자산비율)도 아닌 용어에 당황한 그에게 돌아온 답은 짧고 강렬했다. "지금은 Dream, 즉 꿈의 시대입니다."물론 '꿈 대비 가격 비율(Price to Dream Ratio)'은 정식 학술 용어가 아니다. 그러나 시장의 현실을 설명하는 비유로는 꽤 의미심장하다. 결국 어떤 자산의 가격은 현재의 실적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PDR에서 꿈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꿈의 크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 꿈의 실현 가능성이다. 꿈의 크기란 단지 미래 수익의 현재가치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수익이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크게 팽창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대까지 포함한다. 실현 가능성이란 그 기대를 현실로 바꿔낼 능력, 다시 말해 기술과 제도, 인재와 조직, 리더십과 실행력을 의미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로봇 한 대, 기술 시연 한 번, 혹은 아직 이익도 내지 못한 기업이 비전만으로 기업가치가 급등하는 현상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원래 시장은 현재보다 미래를 사고, 더욱이 요즘 시장은 실적보다 서사를 산다.이 비유는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 경제에도 적용할 수 있다. 기업의 가치가 시가총액 또는 1주당 가격으로 표현되듯, 국가의 가치는 GDP 또는 1인당 GDP로 표현될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꿈이 크고 실현 가능성이 높은 기업의 가치가 올라가듯, 국가 역시 미래 비전이 분명하고 그것을 실현할 역량이 있다고 평가받을수록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PDR 관점에서 오늘의 한국 경제는 어떤 위치에 서 있는가? 냉정하게 말해, 한국 경제의 중장기 성장 둔화는 더 이상 추상적 우려가 아니다. 1964년부터 1994년까지 30년 동안 달러 기준 한국의 1인당 GDP는 100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1994년부터 2024년까지 다음 30년의 증가 폭은 3배 남짓에 그쳤다. 2024년부터 2054년까지 다가오는 30년의 증가폭은 2배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 거의 확실시 된다. 성장의 속도와 밀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아졌다.성장 둔화 추세는 그 자체로 큰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성장에 대한 열망이 소멸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PDR 관점에서 보면, 한 나라의 미래 가치는 그 국민이 그리는 꿈의 크기와 실현 가능성의 곱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문제는 실현 가능성 이전에, 정작 꿈 자체의 크기가 왜소하거나 목표가 희미하다는 데 있다. 꿈이 없으면 계획도 없고, 계획이 없으면 실행도 없다.이른바 '피크 코리아' 논의가 던지는 진짜 경고도 여기에 있다. 정점에 도달했느냐 아니냐가 본질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새로운 도약을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꿈을 잃은 사회는 미래에 투자하기보다 현재를 소진한다. 자산을 축적하기보다 부채를 앞세워 오늘의 만족을 늘리려 한다. 사회 전체의 시선이 내일이 아니라 오늘에만 머무는 것이다.그러나 한국은 원래 꿈이 없던 나라가 아니라, 매번 더 큰 꿈을 꾸면서 하나씩 꿈을 달성하던 나라였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산업화의 꿈을 이뤘고, 한강의 기적을 통해 중진국 도약의 꿈을 이뤘다. IMF 외환위기라는 혹독한 충격을 겪고도 제도와 산업을 재정비하며 중진국 함정을 넘어서 선진국 진입의 꿈을 이뤘다. 불가능해 보이던 꿈을 현실로 만든 경험이 이미 우리 안에 축적돼 있다. 이제 새로운 대한민국, 더 큰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는 다시 꿈을 꿔야 한다. 대한민국이 더 부강해지고, 대한 국민이 더 행복해지는 것이 꿈의 방향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의 번영과 지속가능성을 선도하는 필수불가결한 핵심국가가 되는 것이 꿈의 크기이다. 꿈을 실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연료는 리더십과 국민 공감대이다. 분열을 통해 작은 이익을 탐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희생과 헌신을 통해 더 큰 미래를 만드는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수없이 많은 토의와 합의 과정을 거쳐 광범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의 꿈이 나의 꿈이 되어야 그 꿈은 달성될 수 있다. 이제 다시 꿈을 시작하자. 다시 꿈꾸는 대한민국이 나를 설레게 한다.
[시대시평/오연천] 야권의 표류와 여권역할 기대의 역설
야권의 정부·여당에 대한 견제와 비판, 그리고 대안 제시 노력은 대통령제 정부 시스템의 건강한 운영과 국가경쟁력 확립에 있어 필수적 조건이다. 그럼에도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지 1년이 다가오는 시점에 야권의 기본역할이 정치과정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여권의 입장에서는 지지기반 유지·확대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표정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재명 정부는 여론조사 상 국민 지지율 50% 후반 수준을 견고히 유지하면서, 곧 치러질 지방선거 결과도 낙관론이 우세한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문제는 국회 의석 107석을 점유하고, 오랜 기간 대안 정치세력의 한 축을 형성해왔던 야권이 국정의 견제와 균형화 노력을 통한 기본 책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정운영에서 정부의 정책 기조 형성과 주요 정책의 집행에 늘 일정 수준의 대안 제시 노력과 비판이 용해됨으로써 미래의 위험도를 줄이고 보편적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107석의 원내 의석을 가진 야당이 탄핵정국의 총체적 책임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대안정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역설적으로 그러한 부작위와 정치적 공백에 대한 비용이 국민으로 향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정부·여당의 추가적 몫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야권 본연의 역할이 충실히 작동하지 않는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면 궁극적으로 야권이 해야 할 몫의 상당 부분을 정부·여당이 스스로 여과하고 조율해야 하는 이중적 번뇌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야권의 심기일전을 기대하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대통령을 포함한 여권이 국민의 「일반 의사」에 기초한 국가의 보편적 경쟁력을 향상시켜야 하는 소명감에 부응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상당수 국민의 감추어진 의지와 기대를 적극 감안하는 정치적 지도력이야말로 지도자의 귀감이라고 생각한다. 탄핵정국을 거치며 대선에 승리하고 높은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는 여권이지만 지난 대선 과정에서 경쟁 후보들이 득표한 49% 유권자들의 깊은 뜻을 헤아려야 한다는 신념을 주요 정책 변수의 하나로 고려할 수 있는 특단의 지혜를 기대해 본다. 여권은 현재의 취약한 여·야 정국 구도 하에서 야권을 포용하고, 대화와 협상의 파트너로 적극 존중함으로써 국정운영의 눈높이를 격상하려는 성숙된 자세를 새롭게 견지할 필요가 있다. 집권 여당이 판단하는 주요 정책 내용의 상대적 우위마저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조율하려는 성숙된 정치문화 형성에 앞장설 것을 기대한다. 선거 승리라는 정책목표에 앞서 공동체의 보편 이익 실현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일 때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 여당의 존재감은 한 단계 격상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듯이,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여당 핵심 지지계층 중심의 인사의 틀을 대폭 개방하여 사실상 「거국내각」에 준하는 지도 체계의 구축에 투혼을 투입하기를 기대한다. 상당수 국민의 입장에서 야권이 해야 할 일의 상당 부분을 여권이 대체하는 역설적 상황을 현 야권은 냉철히 직시해야 한다. 야권의 존재감 상실 우려에 대한 기우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야권역할의 복원(resilience)을 통한 존재가치를 확립하려는 창당수준 이상의 변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 지방선거나 총선에서의 패배를 염려할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의 대표성과 기득이익의 틀에서 벗어나 국민정당으로서의 본질적 존재감의 전통과 뿌리를 착근시키려는 발상의 전환이 가시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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