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시평
[시대시평/한정훈]세우타의 이주민 사태를 돌아보며
세우타는 지브롤타 해협을 향해 돌출된 북아프리카 서쪽 해안에 위치한 스페인의 자치시다. 스페인 영토이기 때문에 유럽연합(EU)에 속하지만 EU의 공동관세가 적용되지 않고, 국경 간 자유로운 이동에도 일정한 제약이 따르는 특수한 지역이다. 특히 모로코에서 세우타로 이동할 때는 물론, 세우타에서 스페인 본토로 이동할 때도 별도의 신원 및 국경 검사가 필요하다.서울의 종로구보다 작은 이 도시가 최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7월 30일 하루 동안 약 5만 명 넘는 대규모 비정규 이주자가 세우타로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례 없는 규모의 이주민 유입이 발생한 배경을 두고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원인이 무엇이었든 이번 사태가 더욱 관심을 끄는 이유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동안 유럽 정치의 전면에서 비켜나 있던 이민 문제가 다시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대규모 비정규 체류자를 합법화한 스페인의 국내 정책이 '매우 나쁜 생각'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며, 이탈리아는 세우타 사태의 파급을 우려해 스페인에서 들어오는 EU 비회원국 국민에 대해 일시적으로 국경 검사를 강화했다. EU 회원국 내무장관들 또한 스페인의 결정이 '국경 없는 유럽'을 상징하는 솅겐 체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세우타에 들어온 비정규 이주자들의 EU의 역내 이동이 현실화되지 않았음에도, 유럽 곳곳에서 즉각적으로 이주민 문제의 심각성을 재점화하고 나선 것이다.돌이켜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민 문제를 둘러싼 EU 역내 갈등을 잠시 유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10년대 아랍의 봄과 시리아 내전 등을 거치며 급증한 난민과 이주자의 유럽 유입은 회원국 간 책임분담을 둘러싼 갈등을 격화시켰다. 동시에 솅겐 체제도 심각한 정치적 부담을 떠안았다. EU는 튀르키예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을 통해 난민과 이주자 관리 문제의 일부를 역외로 이전함으로써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그것이 이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EU 정치의 초점을 안보, 국방력 강화,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이동시키는 계기였다. 이민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유럽 정치의 최우선 의제에서는 제외된 것이다. 세우타 사태는 이렇게 한동안 전쟁에 가려져 있던 이민 문제가 언제든 다시 유럽 정치의 핵심 갈등으로 부상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EU 내부의 이러한 이주민 갈등은 언뜻 한국 사회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한국은 유럽과 비교할 때 대규모 비정규 이주는 물론 그와 관련된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경험한 사례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이번 사태를 유럽의 이민 문제 자체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둘러싼 유럽 정치환경의 변화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향후 한국과 EU의 관계에 미칠 잠재적 영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난민 위기가 심각했던 10여 년 전과 비교할 때, 유럽 정치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우경화다. 좌우를 구분하는 기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현재 27개 EU 회원국의 과반수는 우파 또는 중도우파 정당이 정부를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그동안 자유, 평등, 법치, 인권과 같은 민주적 가치를 공동체의 핵심 정체성으로 강조해 온 EU에서 국가이익, 안보, 국경통제, 이민, 산업경쟁력과 같은 의제의 비중이 더욱 커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더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된다고 해서 이러한 추세가 쉽게 반전될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전쟁이라는 강력한 안보 위협이 약화될 경우, 그동안 우선 순위에서 밀려 있던 의제를 중심으로 회원국 간 이해관계의 충돌이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세우타 사태는 이주민 문제를 두고 이러한 가능성을 미리 드러낸 전초전 사례일 수 있다.바로 이 점에서 세우타의 이주민 사태는 한국에게도 먼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 한국이 마주하게 될 EU는 우리에게 익숙했던 과거의 EU와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최근 유럽 정치 연구에서는 극우 세력이 과거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던 의제를 점차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의제화하는 정상화(normalization)를 시도하고, 극단적이고 위험한 세력이라는 사회적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악마화(de-demonization)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물론 유럽 정치의 우경화를 곧바로 극우화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또한 유럽 정치의 우경화가 전략적 파트너로서 EU와 거리를 두어야 할 이유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국가이익에 기반한 산업경쟁력 강화, 더욱 엄격한 국경통제, 이민 제한을 강조하는 정책이 유럽 정치의 주류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세우타 이주민 사태는 이러한 EU 정치의 변화를 다시 살펴보고, 앞으로 한국이 EU와의 관계에서 직면하게 될 과제를 점검할 필요성을 제기한다.━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EU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국가미래전략원의 민주주의클러스터 연구팀을 이끌고 있다. 미국 뉴욕주의 로체스터 대학에서 유럽의회정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비교정치적 시각에서 한국의 선거와 의회정치를 연구한다. ━
[시대시평/김경희]오뒷세이아와 공화주의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낯선 존재를 대하는 태도는 사소한 예절의 문제가 아니었다. 문을 두드리는 이가 어쩌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찾아온 신일지도 모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에 깊이 배어 있는 이런 세계관은 단순히 '외부에서 온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것은 공동체 속의 '타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리고 그 앞에서 자신의 힘과 욕망을 얼마나 절제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이 전통의 중심에 '크세니아(Xenia)'가 있다. 흔히 '환대'라고 옮겨지지만 그 핵심은 낯선 이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선다. 상대가 누구인지, 나와 같은 편인지 확인하기 전에 먼저 공동체 질서 내의 존재로 대우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규범이다. 그런 의미에서 크세니아는 이방인에 대한 친절이라기보다 타자에 대한 상호존중과 자기절제에 가깝다. 따라서 그것을 지키지 못할 때 결과는 치명적이다. 『오뒷세이아』에서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존재는 구혼자들이다. 이들은 바다 건너에서 온 이방인이 아니라 오디세우스와 같은 공동체에 속한 이타카의 귀족들이다.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부재한 사이 그의 집에 머물며 재산을 탕진하고, 페넬로페에게 결혼을 강요하며, 마침내 그 집의 주인이 되려 한다. 크세니아를 파괴하는 것은 반드시 외부의 낯선 사람이 아니다. 같은 공동체 안에 있는 자도 자신의 힘과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면 공동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외눈박이 거인 폴뤼페모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동굴에 들어온 오디세우스 일행을 손님으로 보호하기는커녕 잡아먹는다. 그의 문제는 단순히 이방인에게 잔인하다는 데 있지 않다. 그는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조정할 어떤 규범도 인정하지 않는다. 제우스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극단적 자기중심성을 상징한다. 반대로 파이아케스인들은 난파해 온 오디세우스를 먼저 보살피고 난 한 후에야 그가 누구인지 묻는다. 관계의 출발점이 '당신은 내 편인가'를 묻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앞서 상대를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인정하는 데 크세니아의 정신이 있다.이 점에서 크세니아는 공화주의와 만난다. 공화국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든 정치공동체다. 따라서 공화주의의 핵심은 차이 속에서 자유와 법을 만들어 내고, 공존하는 데 있다. 공화주의에서 자유란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의 의지가 다른 사람을 자의적으로 지배하지 못하는 상태다. 그러므로 공화국에는 견제와 더불어 상호존중이 필요하다. 내가 다수라고 해서 소수를 무시하지 않고,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반대자를 제거하지 않으며, 내가 옳다고 확신하더라도 상대에게 말할 자리와 존재할 공간을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서 공화국에는 상대가 필요하다. 여당을 불편하게 만드는 야당도,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도, 다수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수도 필요하다. 그들이 옳기 때문이 아니다. 누구도 자신만이 언제나 옳다고 확신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정치에서는 상대를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극단적 언어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은 상대를 없앰으로써 완성되는 체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끝내 함께 살아가기로 약속함으로써 유지되는 체제다.크세니아가 가르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타자를 무조건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힘이 있다고 상대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상대 역시 자신의 욕망으로 공동체의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는 것, 서로를 하나의 인격과 시민으로 인정하면서 자신의 힘을 절제하는 것이다. 크세니아가 타자를 존중하는 윤리라 할 수 있다면, 공화주의는 그 상호존중을 정치의 원리로 만드는 체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낯선 사람이 신의 강림일 수도 있다고 믿었기에 스스로를 절제했고, 존중과 환대의 태도를 실천했다. 나와 다른 정치적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경쟁자는 적이 아니다. 그는 동료 시민으로서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혜안을 가진 것일 수 있다. 공화국은 바로 그 상호존중과 작은 의심에서 시작된다.━김경희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는 독일 베를린 홈볼트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마키아벨리 및 르네상스 정치사상, 공화주의론, 국가론 등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서양정치사상 권위자다. 『공존의 정치: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새로운 이해』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
[시대시평/최장혁]기후 위기와 '생태 동료'
얼마 전 폭염에 지친 프랑스 파리의 시민들이 백화점에서 에어컨을 구입하기 위하여 장사진을 치면서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TV에서 보고 충격을 받았다. 몇 년 전에 방문했던 파리의 상대적으로 쾌적했던 여름과 루브르 박물관으로 상징되는 문화도시 파리의 이미지가 무더위로 인하여 바뀌는 것 같아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장마철이 예전보다 늦게 시작되었지만 장마가 지난 후 전국엔 이미 폭염주의보가 여러번 발령되었다. 올해가 얼마나 더울까 하는 예상이 일기예보의 주된 내용이지만 한가지 예측이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린다. 올해의 여름이 지난해의 여름보다 더욱 더울 것이지만 내년 여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시원하리라는 것이다.프랑스에서 에어컨 보급이 적은 것은 에어컨을 위한 실외기 설치에 주민의 동의와 관련 관청의 허가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환경과 건축물 미관을 중요시하는 프랑스의 사회적·문화적 수준이 이를 가능하게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앞으로 이와 같은 원칙이 지켜지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에어컨이 보급되기 전까지의 여름의 주된 냉방수단은 부채와 선풍기였다. 부채와 선풍기의 공통점은 개인의 시원함이 타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어컨이 여름 냉방의 주된 수단으로 자리 잡은 요즘은 개개인의 시원함이 타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외기가 설치된 건물 외벽을 지나다 보면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의 열기가 느껴진다. 대형 건물에서 내뿜는 실외기의 열기는 주변을 더욱 뜨겁게 달군다. 실외기를 통해서 배출되는 열기가 그대로 에어컨 설치 여유가 없는 쪽방촌을 더 뜨겁게 달구는 것이다.이런 관계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북반구 국가(Global North)와 그렇지 못한 남반구 국가(Global South) 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에너지와 전기 시설이 풍부한 부유한 나라에서 내뿜는 열기를 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국가에서 그대로 흡수·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후 위기를 둘러싼 갈등은 같은 시대를 사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계층·국가와 부족한 계층·국가에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자원이 무한대가 아니라 한정된 것임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오늘 시원하기 위해서 쓰고 있는 자원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후대 세대들의 자원을 당겨쓰고 있는 것과 같다.점점 더워지는 지구를 식히기 위해서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고, 이것이 지구를 더욱 뜨겁게 만드는 것은 결국 현재 시원하기 위해서 미래에 더욱 더워지는 모순을 낳게 된다. 이는 결국 미래 세대가 사용해야 할 자원을 미리 사용하는 문제가 된다. 10여 년 전쯤에 직장 동료라는 개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직장이 가지고 있던 삭막하고 치열한 경쟁 관계를 동료들 간의 유대와 연대로 재해석한 직장 동료란 개념은 오아시스 같은 청량감과 신선함을 선사했다.기후 위기가 심화하는 현 상황에서 과거 직장동료와 비교되는 '생태 동료'란 개념을 생각해 보았다. 이는 동시대와 미래 세대에 걸쳐서 지구상에서 살고 있거나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모든 살아 있는 생물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살아있는 생물의 기본적 권리와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미래에 살아가야 할 생물까지 확대하자는 것이다. 기후위기란 결국 인간이 계속 성장·발전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생물 자원을 포함한 모든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나아가 현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미래 세대가 사용해야 할 자원까지 당겨서 사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생태 동료란 인간의 과소비가 가져온 재앙을 지구를 살아가는 모든 생물에 대한 동료 의식으로 극복하고, 이를 미래 세대의 인간 후손을 포함한 모든 생물에게 확대하자는 것이다.이미 인간은 모든 인간이 소비하고도 남는 충분한 생산을 하고 있으나, 성장을 위해 계속해서 미래 세대의 자원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맞이할 미래는 과연 어떤 것일까? 지구가 계속 더워져서 더욱 많은 미래 세대의 에너지를 당겨서 사용해야 하는 상황은 지구 자원의 유한성을 생각하면 더 이상 지속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물론 인류의 해묵은 난제를 해결하고 있는 인공지능(AI)이 기후 문제에도 특단의 해결책을 내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AI의 기반이 되는 반도체나 데이터 센터가 막대한 양의 전기와 물을 사용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AI가 발전함에 따라 그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것이 기후 위기 문제의 해결을 AI에만 의존할 수 없는 이유이다. 현재의 찌는 듯한 더위가 미래의 시점에서 볼 때는 가장 시원한 시기가 되어 버리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선 모든 살아있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생물들의 권리와 가치를 고려하고, 그들을 같은 생태계를 공유하는 동료로 인정하는 인식과 자세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최장혁 삼일회계법인 AI트러스트위원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행정안전부 전자정부국장,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디지털 행정 전문가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특임교수를 겸하고 있다. ━
[시대시평/이정민]로봇과의 공생…'인류 2.0' 모델의 길
100년후의 한국인들은 무슨 키워드로 AI시대 초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을 기억할까? 2126년의 시민들은 지금의 서울을 각종 영상과 SNS자료를 보면서 매우 현대화된 도시와 선진화된 국민들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좀더 상상력을 발휘하면 우리의 후손들은 2020년대의 대한민국이 지구촌의 <로봇과의 공생국>으로 자리매김한 시기였다고 생각할 수 있지않을까? 더 나아가서 <인류 2.0> 모델을 제시한 시점이라고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정부는 AI강국화를 제2의 한강의 기적으로 간주하고 반도체, 자동차, 조선업, 방산, 그리고 문화사업 등 모든 영역에서의 AI기반 성장을 촉진하고 있다. 한국이 AI초강대국, 즉 AI시대의 대왕고래가 되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사회적 변화가 전제돼야하지만 가장 중요한 조건은 각종 로봇, 수퍼 인공지능 플랫폼, 그리고 유무인 복합체계와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계약, 국민적 합의, 그리고 근본적인 정치개혁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힘은 자율적 적응력이다. 즉 정부가 하라고 해서, 부모가 하라고 해서, 학교의 선생님이 하라고 해서, 그리고 각종 직장의 상사가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적응하고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사고가 필요하다.월등한 적응력, 특히 자율적 적응력을 가장 많이 발휘하는 나라가 AI의 대왕고래가 될 수밖에 없기에 우리나라가 AI선도국가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자율적 적응력은 새로운 기술과 지식 그리고 문명적 요소들을 흡수하고 더 발전적으로 도약하는 힘과 의지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매우 중요한 측면은 국경선과 경계선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발빠른 국내외화(Interdomesticity)라는 새로운 개념이다. 이 두개의 요소를 겸비한 나라와 국민은 본격적인 AI시대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다른 예로 싱가포르같은 도시국가의 특징은 모든 항공편이 국제선이기에 국내선이라는 개념이 아예없다. 하지만 창이공항에 이착륙하는 모든 항공기는 싱가포르 항공법과 제반의 가드레일 (guardrail)을 준수해야 한다.우리나라가 <인천국제공항화>가 되면 될수록 AI강국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경제 규모, 신속한 기술개발 속도, 그리고 특히 자율적 의사결정과 자유민주주의 제도 등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국경선 없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앞으로는 거의 모든 경계선이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정치, 외교안보, 경제, 기술, 문화, 그리고 지식 등 더 이상 국내외로 분간한다는 것은 본격적인 AI과 로봇 시대에 무의미한 일이다. AI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이 빠른 속도로 미국의 AI기술능력을 추월할 수도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공산당의 독재체제로 각종 AI와 로봇을 통제하고 AI선도 초강대국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믿음이 중국내에 지배적이지만 그런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자율적 의사결정과 발빠른 대응능력, 그리고 국내외를 초월하는 경계선 없는 세계에서 중국과 유사한 일당독재국가들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상된다.AI를 둘러싼 새로운 안전장치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정부가 힘으로 통제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힘과 권력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현존하는 정치권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화될 수밖에 없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AI가 인간보다 똑똑하고 월등한 평가를 하게되면 정부와 정치권의 기능도 바뀔 수밖에 없다. 거대한 AI과 공존하기위해서는 통제의 개념을 수직적·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자율적 분권체계로 전환해야 한다.인간과 로봇, 그리고 다양한 자율 시스템이 융합적으로 공생하는 초고속 기술흡수 사회로 탈바꿈해야 한다. 이미 무인 공장에 대한 거부감도 존재하지만,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용 로봇 밀도는 근로자 1만 명당 약 1,102대로 세계 평균의 6배를 넘는다. 최근에는 산업용 로봇을 포함,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작업하는 협동 로봇 (Cobot)과 물류 창고용 자율이동로봇 (AMR) 등도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인구감소와 초고령화가 촉진시키고 있고 돌이킬 수 없는 현상이다. 군은 물론, 산업현장, 의료, 요양, 농업, 지식산업 등 어느 한 곳도 로봇시대를 등한시 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은 세계 최초로 인간∙로봇이 공존할 수 있는 적응국가 (Human-Robot Adaptive State) 모델을 개발해야 하고 사실상 <인류 2.0>의 모체가 되어야 한다.<인류 2.0>을 한국만 만들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더 많은 국제협력, 더 깊은 국민적 합의,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더 많은 개인적 자율성을 확보해야만 새로운 AI시대의 국가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뛰어난 자율적 적응력을 겸비한 한국인들이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AI시대를 이끌 수 있다고 본다. 그 첫 디딤돌이 바로 대한민국의 <인천국제공항화>가 될 것이다. ━이정민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미 터프츠대 플레처법률외교대학원에서 국제정 치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국제대학원장, 외교부 국제안보대사, 런던 국제전략연구소(IISS) 국제자문위원회 의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IISS수석고문과 아산정책연구원 객원 선임연구위원을 겸하고 있다. ━
[시대시평/강석훈]반도체, 온기 따로 냉기 따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하며 추후 추가 인상 가능성까지 강력히 시사했다. 향후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초과할 것이라는 전망과 불안한 소비자물가, 중동 정세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이번 결정은 성장과 물가 관리 측면에서 나름의 타당성을 지닌다.이번 금리 인상은 전통적인 의미의 금리 인상과는 다소 상이한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금리 인상은 소비·투자·수출 등 전반적인 총수요 증가가 경기 과열과 물가 상승 압력을 가중시킬 때 사용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국민계정 기준 올해 1분기 소비 증가율은 여전히 0.6%에 불과하다. 투자와 수출이 일부 반등했으나, 반등의 강도나 지속 기간으로 판단할 때 이를 물가 상승을 촉발하는 전반적인 수요 과열로 해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이번 금리 인상은 반도체 가격의 예상하지 못한 급등이라는 미시적 현상이 통화정책이라는 거시정책에 큰 영향을 준 이례적인 경우로 판단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향후 반도체 부문의 대규모 투자 확대와 임금·성과급·배당 확대 등의 소득효과가 전체 경기와 물가를 견인할 것이라는 예측에 기반한 금리 인상 측면이 강하다. 금리 인상의 정책 효과도 반도체 부문과 비반도체 부문에 비대칭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비대칭성을 정교하게 분석하려면 국민계정과 부합되는 반도체 부문의 정의와 세부 투자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현재는 정의도 데이터도 가용하지 않다. 다만 대략 추산해 보면 반도체 투자는 국민계정 전체 투자의 7~11% 수준이며, 나머지 90% 안팎은 비반도체 부문이 차지하고 있다.비대칭성을 유발하는 중요한 차이는 두 부문의 금리 민감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주요 대기업의 반도체 투자는 국내 금리 수준보다는 글로벌 업황에 좌우된다. 더욱이 이들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체 현금흐름과 영업이익 등을 통해 투자자금을 조달하므로 국내 금리 인상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반면 비반도체 부문의 금리 민감도는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많은 자료는 대다수 내수 기업들은 매출 정체와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면 투자 위축은 물론,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한계기업의 연쇄 도산과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장기 침체에 빠진 건설·주택시장은 향후 거시경제 전반에 더 큰 부메랑으로 돌아올 위험이 크다. 결국 예상치 못한 반도체 가격 급등은 반도체 부문을 온기로 가득 채우겠지만, 서민과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비반도체 부문에는 온기는커녕 금리 부담 확대와 일자리 상실이라는 냉기를 확산시킬 것이다.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반도체발 후폭풍'을 정교하게 제어할 정책 조합이다. 반도체 경기가 향후에도 계속해서 좋을 것이라는 낙관 아래 진행 또는 강요되고 있는 대규모 반도체 투자 계획은 다양한 측면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반도체 기업들의 단기간 대규모 투자는 물가 불안을 야기하고, 이는 추가적인 금리 인상 압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예상치 못한 반도체 가격 급등으로 발생한 초과 세수, 엄밀히 말하면 세수 추계 오류액의 사용 방안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만약 이를 최대한 재정 확장 용도로만 사용한다면 추가적인 물가 불안 요인, 추가적인 금리 인상 요인이 될 것이다. 국민을 위한다는 재정 확장이 일부 국민을 덜 아프게 하지만, 더 많은 국민을 더욱 아프게 하는 정책이 될 수도 있다. 또한 통화정책은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수준을 넘었다는 이유로 총수요를 억제하는데, 재정정책은 잠재성장률 수준과 상관없이 총수요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시행되는 정책 간 불일치성도 없애야 한다.반도체 가격 급등에 따른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 그 온기를 전혀 누리지 못한 채 냉기만을 견뎌야 하는 국민을 위한 정교하고, 전략적인 재정 패키지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단기간의 대규모 투자 강요와 최대한의 재정 확대가 힘없고 여유 없는 대다수 국민에게는 금리 인상이라는 한파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이는 말이다.━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대 국회의원을 거쳐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한국산업은행 회장 등을 역임했다. ━
[시대시평/오연천]지도자에겐 직언할 수 있는 사부(師父)가 긴요
지도자는 공공·민간 부문을 불문하고 기관의 보편적 이익을 실현해야 할 책무를 안고 있다. 보편적 이익을 추구하는 일은 기관과 조직의 입장에서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천 과정에서는 늘 어려움과 위험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의사결정 시스템은 대체로 수직적 결정 구조를 지니고 있어 최상위 책임자의 시각과 의중에 좌우될 수 있는 여지가 클 수밖에 없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합의제 방식이 활용될 수 있지만, 권위주의적 분위기에서는 이를 통한 여과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통일 독일 제국의 두 번째 황제인 빌헬름 2세는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독일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과신한 나머지,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 사건을 맞아 휴양지에서 세르비아에 전격적으로 선전포고를 단행했다. 만일 조부인 빌헬름 1세가 취해 왔던 신중함과 균형 외교에 대한 핵심 참모들의 냉철한 조언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제1차 세계대전은 물론 독일 제국의 소멸도 존재하지 않았을 수 있었을 것이다. 조부 빌헬름 1세는 비스마르크 총리와 몰트케 장군 등 노회한 참모들의 현실주의적 진단과 조언을 흔쾌히 받아들인 '열린 귀'를 가진 지도자였다.반면 조부의 참모 중용을 비판했던 손자는 우월감과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어 "영국·프랑스·러시아 3대 연합국과 동시 교전하면 필패에 도달한다"는 식자들의 조언을 뿌리치고 손쉽게 선전포고를 내려 제1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장식했다. 세계사적 비극의 출발점은 바로 최고 지도자의 축적된 자부심과 일방적 우월감이었다. 평소 선대 황제를 보필했던 경세가들을 가까이 두고 비전을 공유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면전에서 대(對)세르비아 선전포고를 반대하는 고언에 귀를 기울였다면 20세기 세계사는 달라졌을 것이다.지도자는 평상시에 자리와 직책에 연연하지 않고 객관적 상황과 공동 가치를 향한 충언(忠言)을 마다하지 않는 사부(師父)를 곁에 두어야 할 책무가 있다. 그 사부들이 언제나 옳은 방향으로 제언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의 존재 자체가 공동 이익 실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소위 최고 권력자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을 때 주요 결정의 공론화가 객관성과 보편성에 접근할 수 있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지도자의 심기에 맞는 조언을 주도하는 분이나, 지도자와 동일한 사회화 과정 또는 배경을 가진 분들은 지도자의 파트너가 될 사부로서 적합하지 않다. 어디까지나 전체 공동체의 관점에서 보편적 가치의 연속선상에서 조언할 자세와 역량을 갖추고 지도자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 지도자 역시 사부 역할을 담당하는 동지들의 언급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의견은 최소한으로 정리하는 남다른 포용력을 갖추어야 한다.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주관한 6~7명 내외의 공기업·정부 혁신회의에 참여한 바 있는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노 대통령은 자신이 주도하는 공공부문 혁신 방향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참석자들(당시 감사원장 포함)의 의견에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본인이 임명한 고위 공직자조차 혁신 과정이 외화내빈의 양상을 띠고 있다는 지적에도 묵묵히 경청하면서, 이런 점을 혁신 주무부서(행정안전부)가 고려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며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감대 넘치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사법개혁, 국가 핵심 산업의 입지 결정과 같은 국가 중대 사안을 정치적 목표, 성장 과정, 지역 선호 등 동색(同色)으로 채색된 책임 공직자들이 결론을 내리는 것은 비록 신속하고 단호하다는 이점이 있더라도, 주요 결정에 포함되어야 할 다양한 정책 고려 요소들이 배제될 여지가 높다는 점 역시 깊이 헤아려야 한다.
[시대시평/한정훈] '가야지' 응원가 논란, 시민적 자유를 위한 처방은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 첫 문장이다. 루소는 이 문장을 통해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에게 어떠한 정치적 의무가 정당한지 묻는다. 그에게 강제나 지배에 따른 복종은 정당하지 않다.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공동선을 위해 형성한 일반의지에 따라 맺은 사회계약에 대한 의무만이 정당하다. 따라서 시민이 일반의지에 따라 제정된 법을 따르는 것은 타인의 의지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입법에 참여해 형성한 일반의지에 따르는 것이며, 시민적 자유를 실현하는 행위다. 현대 민주국가의 헌법은 이러한 일반의지를 규범과 제도로 구현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공동체 구성원이 헌법에 복종하는 것은 지배 세력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일원으로서 스스로 만든 규범을 존중하는 행위다. 헌법 질서를 지키는 것은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조건을 수호하는 일이다. 이러한 헌법 존중은 개인의 이념이나 거주지역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로 인해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자유는 무제한적이고 무제약적인 자유가 아니라 공동체가 합의한 헌법 질서 안에서 보장되는 자유이다. 물론 모든 헌법이 일반의지를 구현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적, 지역적 특수성에 따라 일부 국가의 헌법은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나 지배질서를 제도화한 결과일 수도 있다. 권위주의 국가의 헌법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일반의지를 발견하기는 어려운 것이 그 일례다. 반면, 민주국가의 헌법이 공동선을 구현하는 정치 질서를 담고 있다면, 헌법을 따르는 것은 타율적 강제가 아니라 시민적 자유의 실천이 된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임시정부의 법통과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공동체의 헌법적 가치로 천명하고 있다. 해방 이후 이러한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시민이 희생과 헌신을 감내했다. 독재와 폭력, 부당한 권력에 맞선 시민들은 단순히 당시의 국가권력에 저항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더 나아가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시민적 자유를 실천했다. 5·18 민주화운동은 이러한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가운데 하나다. 광주의 희생은 당시 부산과 마산을 비롯한 전국적인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에 있었으며, 자유민주적 헌정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시민들의 헌신이었다. 최근 5·18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한 응원가가 한국 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 편에서는 응원가조차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5·18은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성역이며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작금의 논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첫째, 표현의 자유인가 공적 제재의 대상인가라는 논쟁은 정치 진영 간 대결 구도에 수렴되고 있다. 사건에 대한 숙의와 토론의 필요성은 무시되고, 각자의 입장에서 상대를 비난하는 목소리만 증폭되고 있다. 둘째, 이러한 대립 속에서 정작 문제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민주공동체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역사 인식과 시민적 책임과 같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루소를 떠올리는 이유는 대한민국에서 함께 살아가는 시민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 위해서다. 루소의 시민적 자유 개념에 비추어 보면, 민주공동체가 오랜 시간 쌓아온 역사적 경험을 왜곡하거나 희화화하는 행위는 단순한 개인의 취향이나 사적 자유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공동체가 공유하는 헌법적 가치와 역사적 기억을 훼손하고 시민적 연대를 약화시킬 수 있는 공적 행위이다. 따라서 이러한 행동은 표현의 자유와 그 한계에 대한 논쟁에 제한되지 않고, 민주공동체를 유지하는 일반의지를 존중하려는 시민의 책임과 직결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시민적 자유의 실천으로 보기 어렵다. 논의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그 행동의 주체가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이다. 앞날이 창창한 학생들의 치기 어린 행동과 역사적 무지를 어디까지 공적 책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지는 쉽지 않은 문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무지와 미성숙 자체를 처벌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를 단순한 실수로 치부한 채 방치하는 것 또한 공동체의 책임을 외면하는 일이다. 다시 루소의 논의로 돌아가면, 이러한 행동에 대한 민주적 대응은 처벌보다 교육에 무게를 두어야 할 것 같다. 이들이 일반의지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민주공동체가 선택할 방향이다. 제도적으로 왜 그러한 표현이 공동체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지 스스로 성찰할 수 있도록 집중적인 심화 시민교육과 역사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게 하는 방안도 검토할 가치가 있다. 중요한 것은 교육 방법 자체가 아니라 앞으로 민주공동체를 함께 책임질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다. 자유의 의미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함께 배우도록 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와 공적 징벌이라는 양극단의 논쟁을 넘어 민주공동체가 선택해야 할 보다 성숙한 대응일 것이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EU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국가미래전략원의 민주주의클러스터 연구팀을 이끌고 있다. 미국 뉴욕주의 로체스터 대학에서 유럽의회정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비교정치적 시각에서 한국의 선거와 의회정치를 연구한다. ━
[시대시평/김경희]포르투나와 비르투: 카르텔과 적통론을 넘어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두 개념은 포르투나(fortuna)와 비르투(virtù)다. 포르투나는 운명의 힘이다. 인간의 예측을 넘어서는 급변성과 예측 불가능성의 다른 이름이다. 정치공동체는 언제나 포르투나의 세계 속에 있다. 문제는 그것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있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비르투는 바로 그 대응의 능력이다. 그것은 변화하는 상황을 읽고, 필요한 수단을 찾으며, 때로는 기존의 방식과 결별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다. 그러므로 비르투의 핵심은 유연성이다. 어제의 성공 방정식이 오늘의 족쇄가 되고, 한때의 승자가 돌연 패자로 자리바꿈을 한다. 비르투는 포르투나의 변화에 맞서 스스로를 변신시키는 역량이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인간 개인은 본질적으로 유연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여기에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방식에 집착함으로써 그 경직성이 심화된다. 신중함으로 성공한 자는 과감함이 요구될 때도 여전히 신중하려 하고, 과감함으로 승리한 자는 침착함이 필요한 순간에도 돌진한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결론을 내린다. 급변하는 포르투나에 지속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군주 개인에 의존하는 군주정보다 다양한 시민들을 참여시키는 공화정이 더 우월한 이유이다. 공화정은 다양한 기질과 능력을 가진 시민들에 열려있기에,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에 맞는 인물을 선발할 수 있다. 다양성 자체가 유연성이 되고, 포용이 곧 경쟁력이 된다. 공화정의 힘은 완벽한 개인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서로 다른 능력들이 경쟁하고 조정되면서 공동의 문제해결 능력으로 전환되는 데서 나온다. 다양성은 장식이 아니라 포르투나에 맞서는 정치적 자원이다.이런 점에서 오늘 한국 사회에 회자되는 두 단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축구계의 '카르텔'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권의 '적통론'이다. 전혀 다른 영역의 말처럼 보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비슷한 사고방식이 있다. 카르텔은 능력보다 내부의 관계를 우선한다. 적통론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역량보다 과거의 계보와 충성의 순서를 앞세운다. 둘 다 열려있는 경쟁이 아니라 닫힌 인정의 체계다. 둘 다 다양성과 열린 역량보다는 동질적인 사람들끼리의 배타적 결속을 우선시한다.축구든 정치든 누구 편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팀의 활력을 활성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당의 지도자를 고르는 기준도 누가 더 순혈에 가까운가가 아니라, 누가 더 복잡한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추었는가여야 한다. 민생, 경제, 외교, 세대 갈등, 지역 불균형 같은 문제들은 계보의 언어로 풀리지 않는다. 물론 공동체에는 역사와 정체성이 있기에, 정당에는 노선이 있고, 조직에는 축적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전통은 능력을 대신할 수는 없다. 계승은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정신을 현재의 문제 속에서 새롭게 작동시키는 일이다. 핵심은 문제해결 능력의 증명이어야 한다.포르투나는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한국 사회의 문제도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폐쇄적 카르텔과 배타적 적통론은 공동체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약하게 만든다. 필요한 것은 자기편을 지키는 능력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능력을 활성화시키는 힘이다. 다름의 포용 속에 공존의 비르투가 필요한 이유이다.━김경희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는 독일 베를린 홈볼트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마키아벨리 및 르네상스 정치사상, 공화주의론, 국가론 등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서양정치사상 권위자다. 『공존의 정치: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새로운 이해』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
[시대시평/최장혁]개인정보 유출 과징금 6000억+α 시대의 과제
운전을 하다 보면 교통법규 위반으로 범칙금 통지서를 받아본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경미한 위반에 대한 소액 범칙금은 별 생각 없이 납부하지만, 액수가 커지면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이 돈은 어디에 쓰일까." 필자도 그런 경험으로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니 예전에는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이 교정시설 건설에도 쓰였다는 것을 알고 그 관련성에 고개를 갸우뚱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과징금 역시 마찬가지다. 얼마 전 한 기업에 6400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되면서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액수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AI 시대의 새로운 사이버 위협 속에서 과징금 제도가 기업과 산업, 나아가 국제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무엇보다 개인정보 유출 대응이 과징금 중심의 사후 통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으로 과징금 상한이 전체 매출액의 10%까지 확대되면서 향후에는 조(兆) 단위 과징금도 산술적으로 가능해졌다. 지난해 1400억원대 과징금이 역대 최고액으로 기록됐지만 이후에도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과징금 규모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사고를 예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최근 AI 환경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사이버 위협도 이런 문제의식을 뒷받침한다. 엔트로픽 미토스 사태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과거 수십 년간 안전하다고 평가받던 보안 솔루션조차 새로운 공격 기법 앞에서는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모든 침입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침입이 발생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고 핵심 시스템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보안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사전 예방 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업 회계감사 과정에 개인정보 관리 항목을 포함하는 방안도 그중 하나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과 공공기관에 대해 개인정보 관리 실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도록 한다면 사후 처벌보다 훨씬 효과적인 예방 수단이 될 수 있다.개인정보 과징금 문제는 글로벌 통상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중국은 차량 호출 플랫폼 디디추싱에 약 1조5500억원, 아일랜드는 메타에 약 5300억원, 프랑스는 구글과 메타에 약 28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각국의 법체계와 정책 철학을 반영하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은 국가별 규제 리스크에 상시 노출돼 있다. 해외 시장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우리 기업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특히 우리나라의 과징금 상한이 매출액의 10%까지 높아진 만큼 개인정보 보호 정책이 불필요한 통상 마찰이나 외교 현안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지난해 서울에서 세계 개인정보 감독기구 총회(GPA)가 열린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미국, 중국, EU, 일본 등 주요국 감독기구와의 협력 채널을 확대해 국제적 기준을 조율하고 분쟁 가능성을 줄여 나가야 한다.과징금의 사용처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지금까지는 과징금이 일반 재원으로 국고에 편입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왔다. 과거 개인정보유출 관련 과징금의 액수나 개인정보 유출의 국가적 파장이 그리 크지 않았을 때는 사회적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수천억원에서 향후 수조원 규모까지 예상되는 과징금 시대에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 지원과 보안 인프라 확충, 개인정보 보호 기술 개발 등에 과징금의 일부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과징금을 단순한 징벌 수단에 그치지 않고 개인정보 보호 역량을 높이는 재원으로 활용한다면 제도의 실효성과 국민 수용성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과징금 산정 기준의 명확성 역시 중요한 과제다. 현재는 전체 매출액에서 개인정보와 무관한 매출액을 제외한 뒤 위반 행위에 상응하는 비율을 곱하는 구조다. 하지만 개인정보 관련 매출액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해석의 여지가 적지 않다. 특히 회계 기준과 회계연도가 다른 글로벌 기업의 경우 관련 매출액 산정이 국내 기업보다 훨씬 복잡하고, 이에 따른 형평성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예측 가능한 규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일관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AI 시대에는 해킹 기술 역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강화된 과징금 제도는 분명 부담되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 잇따른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보여주듯 개인정보 보호는 더 이상 비용이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예방 중심의 보안 체계, 국제 협력 강화, 합리적인 산정 기준, 그리고 피해 구제와 보호 인프라 확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될 때 비로소 '과징금 6000억+α 시대'는 국민의 신뢰와 기업의 경쟁력을 함께 높이는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최장혁 삼일회계법인 AI트러스트위원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행정안전부 전자정부국장,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디지털 행정 전문가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특임교수를 겸하고 있다. ━
[시대시평/이정민]달 항아리 전선
1947년 독립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 간 네 차례의 전쟁과 수많은 군사적 충돌이 증명하듯, 서남아 대륙의 화약고는 양국 간 핵전쟁을 포함해 언제 폭발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인도양에서 말라카 해협을 지나면 미국과 중국 해군이 격돌할 수 있는 남중국해가 있고, 그 한가운데 대만이 있다. 대만 동쪽 불과 100㎞ 거리에 있는 야노구니섬은 일본의 최전선이다. 바로 옆에는 필리핀 수빅만이 자리하고 있다. 냉전 내내 미 7함대의 핵심 작전항이었고 지금도 다시 부활하고 있다. 이어 일본 본토에서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한반도가 보인다. 이 모든 반도와 도서를 연결하는 긴 선이 제1열도선이고, 그 뒤편의 제2열도선은 괌과 마리아나 군도, 하와이를 연결한다.일본 자위대가 중국인민해방군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시나리오는 일본 군사대국화의 한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인민해방군 해군은 이미 미 해군에 도전할 수준의 해상 전력을 키우고 있으며, 그들의 목표인 중국몽의 핵심 역시 서태평양 해상 패권 확보다. 그것이 현실화되면 우리에게는 치명적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는 5000년 역사 속에서 지난 50년 동안 처음으로 세계적인 해양세력의 일원이 됐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로운 항해 역시 5년 후에는 중국의 해군력 우위로 위태로워질 수 있다. '달 항아리 전선'의 운명은 결국 바다에서 결정될 것이다.일부 언론에서는 북한이 신형 5000톤급 군함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사실이라면 이는 2006년 북한의 제1차 핵실험 이후 가장 심각한 군사적 위협으로 간주해야 한다. 북한은 스스로 '불화살-3-31' 핵탄두 탑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으며, 실제로 배치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미국의 확장억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현무-5에 이어 현무-6 탄도미사일을 중심으로 한 보복체계 강화, 핵추진잠수함 기반의 해상전력 보강, AI 중심 정보·감시·정찰(ISR) 능력 확대 등을 추진해야 한다. 중국인민해방군이 제1열도선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제2열도선까지 위협할 경우 미국의 확장억지만으로 대한민국을 충분히 보호하기 어려울 수 있다.우리는 중국과 북한을 최대한 억제하고 강력한 해군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미·일과 호주를 중심으로 한 제1열도선 연합 방어체계를 함께 구축하고 보강해야 한다. 그래야만 중국 중심의 해상 패권 질서를 견제할 수 있다.동시에 북핵 못지않게 중국 해군력 증강과 해상 패권 도전을 핵심 안보 위협으로 인식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미·일과 호주를 중심으로 한 제1열도선 국가 간 해양·해군 협력(무인체계 포함) 및 정보교환을 제도화해야 한다. 특히 해군작전사령부 산하 해양정보단을 가칭 '해군정보·해양작전단(NIMO)'으로 확대 개편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미 미국의 국가해상정보통합국(NMIO)과 교류하고 있을것으로 짐작되지만 관련국간 유사 기관들과의 해군안보 협력을 정책화해야한다. 이는 핵추진잠수함 사업 못지않게 중요하다.우리나라처럼 글로벌 무역과 에너지 공급, 각종 원자재에 크게 의존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여기에 북핵, 중국의 군사대국화, 그리고 극동 러시아의 부활은 우리를 겨냥한 삼중의 위협이다. 이러한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비하지 못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기회비용을 치르게 될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 제1열도선 방어강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할수 있는 예산 투입과 제도 개선, 그리고 연합 협력이 필수적인 이유들이다. ━이정민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미 터프츠대 플레처법률외교대학원에서 국제정치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국제대학원장, 외교부 국제안보대사, 런던 국제전략연구소(IISS) 국제자문위원회 의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IISS수석고문과 아산정책연구원 객원 선임연구위원을 겸하고 있다.━
[시대시평/강석훈]화려한 탄생, 하이브리드 울트라 계층
뜨거웠던 삼성전자 성과급 논쟁은 어느새 거의 사라진 듯하다. 노사는 합의했고, 파업은 없었으며,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또 다른 이슈로 옮겨갔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렇게 덮고 지나갈 사안이 아니다. 이 논쟁은 반드시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하는 계기가 되야 한다. 이 논쟁에는 여러 문제가 겹쳐 있다. 우선 사용자 측의 사전 대응이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삼성전자 경영진은 메모리 반도체 이익이 급증할 가능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는 과반 노조가 등장했고, 직원 개인 입장에서는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수억원대 성과급 기회가 눈앞에 다가온 상황이었다. 이런 밀려오는 쓰나미에 대비하는 회사 측의 선제적 준비가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관리의 삼성'도 옛말인가 보다.정부가 노사교섭의 전면에 등장한 장면도 우려스럽다. 대형 노사관계 이슈에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정부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협상을 지원하는데 머물러야 한다. 노사관계는 노사 자율교섭의 영역이지, 정부가 감 내라 배 내라 할 문제가 아니다. 이런 방식은 기업과 노조 모두의 책임성을 약화시킨다.세수 측면에서 보면 성과급 문제의 수혜자는 정부일 수 있다.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부문 직원들이 6억원 안팎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이 적용받은 소득세 한계세율 44.2% 이상(지방소득세 포함)으로 예상되고, 이는 법인세 한계세율보다 27.5%보다 높다. 세수 확대라는 측면에서 정부가 최대 수혜자이고, 세금 납부액보다 배당금을 적게 받는 주주가 최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그러나 이번 사안의 본질은 성과급 규모가 아니라, 한국 노동시장에 기존 분류로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계층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최고 근로자 계층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 조합원이었다. 이들은 높은 임금, 강한 고용보장, 조직화된 교섭력, 그리고 막강한 파업권을 갖고 있었다. 반면 중소기업이나, 비조합원, 또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자신의 임금과 고용을 사실상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많은 경우 이들은 대기업 정규직 조합원들이 이익을 충분히 챙긴 후 배분된 잔여 이익을 가지고 생존에 허덕이는 계급이었다. 물론 취업을 하지 못한 근로자들에게는 이것조차도 꿈같은 이야기이다. 그런데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부문 근로자들은 기존의 최고 근로자 계층을 넘어서는 새로운 '울트라 근로자 계층'의 탄생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강력한 고용보장을 누린다. 회사가 적자를 내더라도 손실 책임을 직접 지지 않는다. 이미 한국 최고 수준의 임금을 받아왔다. 여기에 더해 회사 이익이 발생하면 주주에 앞서, 정부에 앞서, 임금이 아닌 이익연동 보수의 형태로 성과 배분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게 되었다.성과급 논란 당시 미래 투자, 글로벌 경쟁, 이익의 원천 등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러나 수억원의 소득 기회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주장이 노조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기는 어렵다. 이 문제는 근로자 개인의 양심이나 애국심에 호소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설계의 문제이다.현재 노동제도는 근로자와 사용자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이번 사례는 근로자의 고용 보호를 누리면서 동시에 기업 이익에 대한 강한 청구권도 갖는 하이브리드 울트라 근로자 계층의 화려한 탄생을 보여준다. 현재의 이분법으로는 이 계층을 포괄하기 어렵다. 이제 근로자와 사용자의 양쪽 권한을 동시에 가지는 하이브리드 울트라 계층을 분리하여 새로운 계층을 정의하고, 이들의 권리와 의무를 별도로 규정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예컨대 일정 임계 수준을 초과하는 성과급에 대해서는 고용 보장의 완전성을 조정하거나, 성과급의 일부를 자사주로 의무 취득하게 함으로써 이익과 위험을 함께 부담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방식이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삼성전자 성과급 이유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미래로 가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한국산업은행 회장 등을 지낸 경제학자다. 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
[시대시평/오연천]선거 후 '포용 국민내각'을 상상해 본다
대통령 지지율 60%, 여당 지지율 48% 내외를 유지하는 상태에서 치러지는 이번 지방선거의 예상 결과에 대해 새로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거나 국정 운영의 전환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탄핵 이후 야권의 정치적 정당성과 지도부의 동력원이 취약한 상황에서 치러지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영남 일부 지역의 반전 가능성을 제외하고는 역대 어느 지방선거보다 여권의 승리 가능성이 높은 선거로 보인다. 일부 지역의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당사자들 입장에서 정치적 입지를 확보할 수 있는 호기가 될 수 있어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전체적인 선거 결과를 해석하는 데 주된 변수가 되기는 어려울 듯싶다. 여권은 선거 결과에 안도하거나 환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정부·국회에 이어 지방정부의 집행 권력을 대부분 확보하게 되면 선의의 경쟁 파트너가 되어야 할 대안세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비록 국민의 자발적 선택의 결과라고 하더라도 민주주의 필수 요건의 하나인 최소한의 견제와 균형마저 작동하기 어려운 국가권력구조가 구축될 수 있는 점에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여당은 선의(善意)에서 비롯된 상당수 국민의 우려를 과소평가하거나 지나쳐서는 안 된다. 야권의 권위와 영향력이 쇠락한 현실일 수록 국민총의(總意)라는 관점에서 한층 무거운 책무를 자임할 필요가 있다. 선거 결과에 안주하지 않고 국가 공동체의 가치 증진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는 준엄하고 성숙된 태도를 기대한다. 지방선거의 승리를 도모하기 위해 전국 광역·기초 자치단체 후보자들은 예외 없이 「지역 발전」을 명목으로 사업 공약을 쏟아낸 것이 현실이다. 정부·국회를 쉽게 제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지방선거 승리가 가져올 수 있는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는 정치적 배려와 비효율이 깊이 내재된 지역 공약 사업들이 국가적 우선순위로 격상되는 일이다. 해당 지역에서는 환영받을 수 있는 사업이라도 국민경제적 관점이나 효율적 자원배분 차원에서 냉철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옥석을 가려 최소한도 보편적 이익에 귀결되는 사업을 선별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들은 여권의 지지기반이 공고해질수록 역설적으로 비판적 목소리까지 수용하고, 취약해진 야권의 입장을 보강·조율하는 성숙한 정치력을 기대할 것이다. 정치적 역할 구도가 여권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 특유의 결단을 기대해 본다. 여·야간 역학구도가 심각한 불균형을 맞고 있는 상태에서 보편적 국민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이번 선거를 계기로 전격적인 「포용 국민 내각」을 구성하는 것도 그러한 결단의 실행 노력으로 간주할 수 있다. 지지를 유보하고 있는 일부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릴 뿐만 아니라 총체적 국가경쟁력의 격상에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대결구도에서 거리를 두고, 자신이 전력해왔던 영역에서 보편적 공공가치 실현에 헌신해왔던 「영역별 숨은 인재」들을 삼고초려 기용함으로써 전례 없는 국민 내각을 출범시키는 정치적 결단을 상상해 본다. 4강을 둘러싼 대외관계와 거시적 경제정책의 구축에 있어 그러한 필요성은 더욱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 경쟁력을 한 단계 격상시키고 여권의 국민적 지지기반이 한결 심화됨으로써 K-Politics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의 정치적 경쟁력이 글로벌 한국 기업의 존재가치에 버금가는 글로벌 수준으로 환호 받을 수 있다면 어찌 주저할 필요가 있겠는가? 선거에 패배할 때 연립·중립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임에도 승리한 후에 「포용 국민 내각」을 출범시키는 전례 없는 결단은 결코 막연한 환상이 아니다.━오연천 울산대학교 총장은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미국 뉴욕대에서 재정관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서울대에서 공공경제, 정치경제학, 공기업론 등 재정관리 분야에서 30년간 강의·연구를 수행했다. 정보통신정책심의 위원장,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 단장 등을 역임했다. ━
[시대시평/한정훈]소음만 커진 지방선거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온다. 평소 같으면 무시했겠지만 혹시 중요한 연락일까 싶어 전화를 받는다. 또 여론조사 전화다. 이미 몇 차례 비슷한 전화를 받았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선거철마다 이런 조사에 얼마나 많은 비용과 에너지가 소모되는지 씁쓸해진다. 그 부담은 결국 시민들에게 돌아온다.거리의 선거 현수막이 주는 피로감도 비슷하다. 출근길마다 수많은 후보 얼굴이 걸려 있지만 기억에 남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디서 본 얼굴인가 싶어 다시 보면 지난 선거에서 다른 직위에 출마했던 후보인 경우도 적지 않다. 선출만 된다면 어떤 자리든 상관없다는 태도처럼 보인다. 홍보 문구 역시 경쟁자 비난 아니면 추상적 구호가 대부분이다. 정책으로 후보를 구분하기는 어렵고, 심지어 기초의원 후보인지 광역단체장 후보인지조차 헷갈릴 때가 있다.기초·광역 단체장과 의원, 교육감까지 7개 직위 선거가 한꺼번에 치러지면서 생기는 혼란은 언론의 '경마식 선거보도(horse-race journalism)'로 더욱 증폭된다. 선거철이면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정치 이야기를 꺼내지만, 정작 후보의 정책이나 비전에 대한 논의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대신 여론조사 수치가 대화의 중심이 된다. 누가 앞서는지, 누가 추락하는지, 격차가 몇 퍼센트 포인트인지에만 관심이 쏠린다.누가 왜 이겨야 하는지, 어떤 정책과 가치가 경쟁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숙의는 빈약하다. 시민들이 그런 정보를 충분히 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이 1·2위 격차에만 집중하면서 3·4위 후보는 존재감조차 희미해진다. 어렵게 시작된 정치 대화도 결국 '누가 이기느냐'만 남는 제로섬 정쟁으로 흘러가기 쉽다.물론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버드대 토머스 패터슨 교수는 이미 1994년 저서 『질서 잃은 미국 정치와 언론(Out of Order)』에서 미국 정치가 경마식 보도로 인해 냉소주의에 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정책과 통치 능력보다 지지율 변화와 말실수에 집중하면서 시민들을 정치의 참여자가 아니라 '냉소적 관전자(cynical spectators)'로 만든다는 것이다.한국의 상황은 오히려 더 심각할 수 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의 정당정치는 아직 충분히 제도화됐다고 보기 어렵다. 정당명은 자주 바뀌고, 내부 갈등 속에 정당이 해체되는 일도 반복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정당의 정책과 이념, 장기적 비전보다 후보 개인의 이미지와 득표율 경쟁이 더 크게 부각된다. 정당이 복잡한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휴리스틱(heuristic)'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거는 정부 구성과 통치를 위한 민주주의 절차라기보다 단순한 승부 게임처럼 소비된다.그렇다고 지방선거의 민주적 의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 기술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시대에도 선거를 완전히 대체할 민주적 제도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선거는 시민들이 정치적 선택과 그 결과를 학습하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를 확인하는 핵심 절차다. 더구나 알렉시 드 토크빌이 말했듯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학교"다. 지방자치의 건강한 발전 역시 결국 지방선거를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문제는 지방선거를 둘러싼 낡은 제도와 관행이다. 경마식 선거보도는 개인 후보 중심의 승자독식 선거 구조와 맞물려 강화된다. 미국 대통령선거처럼 후보 개인 경쟁이 중심인 환경에서는 여론조사와 득표율 중심 보도가 자연스럽게 확산된다. 반면 많은 유럽 국가는 정당 중심의 선거 구조 아래 정책과 공약 경쟁이 선거보도의 중심을 이룬다. 물론 최근 유럽에서도 극우정당의 부상과 함께 여론조사 중심 보도가 늘고 있지만, 선거의 기본 축은 여전히 정당 간 정책 경쟁이다.한국 역시 경마식 선거보도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비례대표 확대 등 정당 중심의 선거환경을 강화하는 제도 개편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선거운동 방식도 재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후보 얼굴 알리기에 치중된 현수막 중심 선거운동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무분별한 현수막 경쟁 대신 일정 구역마다 정책 비교형 공공 게시판을 설치해 유권자들이 후보와 정당의 공약을 직접 비교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과도하고 비과학적인 여론조사 환경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 지금도 선거여론조사의 방법론을 공개하고 검증하는 절차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조사 품질이 충분히 담보되지는 않는다. 이제는 얼마나 자주 조사하느냐보다 어떤 조사가 얼마나 신뢰할 만한지에 더 집중해야 한다.민주주의는 결국 정당과 선거로 유지된다. 그러나 유권자의 선택이 단순한 승부 예측 게임으로 축소된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피로와 냉소는 더욱 커질 것이다. 지방선거가 민주주의의 학교로 남으려면, 더 많은 소음이 아니라 더 많은 정책과 토론이 필요하다.━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EU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국가미래전략원의 민주주의클러스터 연구팀을 이끌고 있다. 미국 뉴욕주의 로체스터 대학에서 유럽의회정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비교정치적 시각에서 한국의 선거와 의회정치를 연구한다. ━
[시대시평/김경희]'민주공화국'과 '말의 정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가 국민주권의 원리를 통해 국민이 국가의 주인임을 뜻한다면, '공화국'은 국가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공화국은 공익과 공동선을 추구할 때 번영하고, 사익과 분파적 이익이 앞설 때 쇠락한다. 그러나 공동선은 저절로 형성되지 않는다. 구성원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공동선에 대한 합의에 실패한 국가는 분파 갈등 속에서 무너졌다. 반대로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는 권력자가 공동선을 독점하고 폭력으로 강요함으로써 파멸했다. 공동선은 분열 속에서는 길을 잃고, 독점 속에서는 폭력으로 변질된다. 그러므로 민주공화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토론을 통해 공동의 목표를 찾아가는 합리적인 '말의 정치'이다.마키아벨리에게도 '말의 정치'는 공동선을 형성하고 당파적 증오를 해소하는 공화국의 핵심 조건이었다. 고대 로마의 민회에서 시민들은 자유롭게 법률을 제안하고, 찬반토론을 통해 공동선에 부합하는 법을 의결했다. 합리적인 의견 교환이 좋은 법의 형성으로 이어졌던 것이다.마키아벨리가 고소·고발 제도를 공화국의 자유를 보호하는 장치로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증거와 논리에 근거한 고소·고발은 소문과 거짓에 의존하는 중상모략을 제어한다. 이는 시민들 사이의 당파적 증오를 사적 보복이 아니라 공적 제도 안에서 해소하게 한다.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중상은 증오를 낳고, 증오는 분열을 낳으며, 분열은 당파를 만들고, 당파는 결국 공화국을 파멸로 이끈다. 따라서 증거와 논리에 기반한 '말의 정치'는 공화국을 유지하는 필수 조건이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사』에서 고대 로마의 '말의 정치'와 피렌체의 '힘의 정치'를 대비한다. 두 나라는 모두 귀족과 민의 첨예한 갈등을 경험했다. 그러나 로마는 그 갈등을 공적 논쟁과 제도적 절차를 통해 해결한 반면, 피렌체는 무력과 폭력에 의존했다. 그 결과 로마에서는 좋은 법이 만들어졌지만, 피렌체에서는 시민들의 망명과 죽음이 반복되었다. 갈등은 어느 공화국에서나 불가피하다. 문제는 그 갈등을 말과 법의 절차로 다스리느냐, 아니면 폭력과 힘으로 해결하려 하느냐에 있다. 그 차이가 공화국의 운명을 가른다.오늘의 대한민국을 돌아보면, 민주공화국을 이롭게 하는 합리적인 '말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여야 간 토론은 설득과 논증보다 고성과 일방적 주장으로 점철되는 경우가 많다. 공동선을 찾기 위한 노력보다 상대를 제압하려는 언어가 앞선다. 곧 있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도 후보자들 사이의 진지하고 합리적인 토론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말의 정치'가 사라지면 그 자리는 선전과 선동이 차지한다. 토론은 사라지고 구호만 남는다. 구호는 상대를 비난하고, 자기편의 검증되지 않은 주장만을 강요한다. 결국 '말의 정치'가 사라진 곳에는 '힘의 정치'가 등장한다. 그리고 '힘의 정치'는 공동선을 만들기보다 증오와 분열을 증폭시킨다.민주공화국의 정치는 주권자인 시민들의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나은 말이다. 합리적인 토론은 부드러운 음성 속에서 펼쳐지는 치밀한 논리의 대결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런 토론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토론자와 청중 모두에게 깨달음을 준다. 공동선은 바로 그 깨달음과 합의의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힘의 정치'가 아니라 '말의 정치'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더 많은 고성과 구호가 아니라, 더 깊은 논리와 더 품격 있는 토론을 요구하고 있다.
[시대시평/최장혁]보호와 혁신 사이, 한국형 AI 모델의 갈림길
얼마 전 중국을 다녀온 한 대기업 대표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 공항에 도착해 국내선으로 갈아타려 잠시 우왕좌왕했더니, 갑자기 공항 대형 스크린에 그의 이름과 함께 탑승 게이트 안내 문구가 실시간 영상과 함께 떴다는 것이다.웃으며 들었지만 곧 복잡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입국 과정에서 여권을 스캔하는 순간 개인정보가 출입국 당국에 전달되고, 안면인식 기술과 AI가 행선지와 항공편 정보를 결합해 실시간으로 개인을 식별·안내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몇 해 전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출입국 당국이 CCTV와 개인정보를 활용해 이상 행동을 사전에 탐지·예방하려 했지만, 안면인식 정보 활용과 목적 외 개인정보 사용 논란이 불거지며 시민단체 고발 끝에 사실상 중단됐다.재작년 중국의 생성형 AI '딥시크(DeepSeek)' 등장은 한국 사회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미국의 강력한 규제 속에서도 중국이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한 것은, 데이터와 컴퓨팅 자원이 부족한 한국에도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동시에 우리는 중국처럼 개인정보를 AI 학습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느냐는 현실적 벽도 절감했다.물론 중국의 AI 기술과 편리한 서비스를 부러워하는 시선은 있다. 그러나 CCTV 기반 안면인식으로 개인을 실시간 추적하거나, AI 발전을 이유로 국민 개인정보가 무분별하게 활용되는 사회까지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한국 역시 과거에는 주민등록번호를 중심으로 방대한 개인정보가 국가 필요에 따라 수집·활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발전과 함께 관련 관행들이 정비됐고, 개인정보보호법을 비롯한 제도도 체계화됐다. 지금 한국은 유럽연합(EU)과의 상호적정성 평가를 통해 유럽 수준의 개인정보보호 체계를 인정받는 국가가 됐다.이처럼 개인정보보호와 민주주의는 발전의 궤를 함께해 왔다. 평상시에는 그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하지만,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순간 가장 먼저 침해받는 것 중 하나가 개인정보다.실제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이민자 추방 정책에 항의 이메일을 보낸 한 변호사가 미국 국토안보부의 요구로 구글로부터 개인정보 제출 통지를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주소와 전화번호, 사회보장번호, 신용카드 정보까지 요구됐지만, 정작 이의를 제기하려 해도 담당 부서를 특정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민주주의 선진국 미국조차 9·11 이후 국가안보를 이유로 개인정보보호를 유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한국 역시 코로나 시기 확진자 동선 공개 과정에서 개인정보 침해 논란을 겪었다. 최근 미토스 사태에서 드러났듯, 이제는 공격과 방어 모두 AI가 수행하는 시대다. AI는 산업 경쟁력의 핵심일 뿐 아니라 국가안보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AI 발전을 위해 개인정보 활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따라잡으려면 그들 수준의 데이터 활용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한국은 개발독재와 권위주의를 거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뤄낸 드문 경험을 가진 나라다. 개인정보보호 역시 그 과정에서 어렵게 축적한 민주주의의 자산이다.전체주의 국가는 개인정보보호를 발전의 장애물이나 최소한의 규제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반면 민주주의 국가는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할 시민의 권리이자 사회적 자산으로 본다.앞으로 AI 에이전트들이 개인 정보를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시대가 본격화될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AI 발전만을 이유로 무분별한 개인정보 활용을 허용한다면, 과거 전체주의 사회보다 더 강력한 감시와 통제의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AI 시대에도 개인정보보호라는 민주주의 가치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최근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AI 산업 발전을 위해 학습 데이터 원본 활용을 허용하는 개인정보보호법상 AI 특례 조항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필요한 안전장치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AI 경쟁력과 민주주의 가치가 충돌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한국이 이제는 개인정보보호와 혁신을 함께 담아낸 'K-AI' 모델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시대시평/이정민]등수에서 해방되어야만 미래에 살아 남는다
우리나라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각종 등수·순위·랭킹에 몰입해 있다는 점이다. 유아원부터 대학·대학원 서열, 기업 매출과 시가총액, 무역지수, 군사력, 국민총생산, 그리고 올림픽 메달 수와 종류를 포함한 각종 국제 스포츠 대회의 등수가 너무 중요하다.등수가 나쁜 건 아니다. 6·25전쟁 직후 찢어지게 가난했던 대한민국은 해산물을 수출하다가 2025년 세계무역기구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5위 무역 초강대국으로 변신한 만큼 우리의 성과를 과시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이제는 등수의 늪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거의 모든 랭킹과 등수는 초고속성장시대에 유효했던 지표들이기 때문이다.한중일 3국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목표를 이미 달성했고 인도네시아·베트남·인도 등의 후발주자들도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하지만 2030년대에 진입하면서 부국 수치는 서서히 국민총생산(GDP) 상승과 같은 부를 기반(wealth-based)으로 한 파워보다 민첩성 기반(agility-based) 파워로 전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가오는 거의 모든 영역 간의 <크로스오버 파워>(crossover power, XP) 시대에는 기존의 경계와 벽들이 허물어지면서 파생되는 거의 무제한의 힘과 영향력이 다각도로 발현될 것이다.그러나 새로운 힘의 시대가 우리에게 반가움만 안겨주지는 않을 것이다. 본격적인 AI 중심 편의 시대, 로봇이 지배하는 노동체계, 그리고 인류를 각종 질병에서 해방시켜주면서도 동시에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세포 단위 무기 확산 등 행복과 불행이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는 <쌍둥이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보유하고 있는 힘, 사고, 기억, 그리고 창작을 초월하는 로봇과 아바타들이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1, 2, 3 등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본격적인 XP 시대에는 의료·군사·정보·예술·문화·디자인 외의 거의 모든 분야를 새롭게 엮고 융합하고 분해하고 새로운 형태의 지식·제품·서비스·규범 등을 인류에게 제공하고 위협할 것이다. 따라서 국가권력을 능가하는 XP가 본격적으로 생산되면 국가권력과 이를 지탱해온 각종 제도, 조직, 교육, 시험, 그리고 인재관리 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지금은 상상을 할 수 없지만 30~40년 후 본격적인 XP 시대의 정치인은 예전의 전화교환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XP 시대의 기초는 자율규제 시스템인 만큼 굳이 정치인·정당이 국민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필요가 서서히 없어질 것이다. 그럼 무정부·무질서·무계급의 유토피아가 될 것인가? 개인 재산·지적소유권·인권도 묵살될 것인가? 아나키스트와 극단 사회주의자들은 박수 칠 수 있겠지만 그들 역시 더 이상 폭력과 전체주의를 기반으로 한 권력을 행사하는 데에는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왜 그럴까? XP 시대에는 거의 모든 제품·서비스·사고·지식 등이 자유자재로 탄생·교환·비축·진화됨으로써 지금처럼 부의 생산·노동 착취도 서서히 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탈취할 것이 있어야 탈취가 가능하지만 부와 파워를 사실상 누구나 생산할 수 있다면 누가 빼앗아 갈 수 있단 말인가?XP 시대의 등수와 순위는 적재적소에 가장 필요한 무엇이든 발휘하는 새로운 『기(氣)』가 순위의 감옥에서 해방시켜주는 『키』(열쇠 key)로 전환될 것이다. <氣가 키가 되는 날> 한국인들의 끈기와 빨리빨리 문화는 극과 극이 서로 녹고 융합돼서 새로운 물질·사고·의상·문화·서비스·교양 등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나라는 등수를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코리아 랩>(Korea Lab)을 통해서 XP를 가장 효율적으로 그리고 융성하게 생산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로마제국, 중세기 중국, 산업화 시대의 영국 등 이들 제국들이 세계를 지배한 까닭은 바로 후발국들이 그들의 랩을 모방했기 때문이고 여기서 파생되는 각종 등수, 계급, 그리고 위계질서를 자연스럽게 숭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기존의 정통 파워가 당장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정부는 국가와 사회를 통제할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氣 파워> 시대에는 기업과 비정부 기관들의 영향력이 극대화될 것이며 고속·고도 기술 진화와 더불어 수많은 플랫폼을 계기로 파워는 전방위적으로 전파되고 갈라질 것이다. 더 빨리, 더 맞춤형으로, 그리고 더 신성한 해답을 제공하는 나라, 기구, 기업, 그리고 개인들이 각각 새로운 지표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더 많은 나라들이 <코리안 파워>를 모방하고 진화시키고 그리고 자기들의 필요에 맞는 방식으로 수정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옛 제국들이 만들어 놓은 등수와 랭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상상할 수밖에 없고 산적한 현안들을 해결해야 되지만 셀 수 없는 각종 XP 기반 <샌드박스>(sandbox)들이 전국 곳곳에서 가동될 때 대한민국은 더 이상 등수를 쫓아가는 나라가 아니라 21세기를 선도하는 중심 국가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시대시평/강석훈]진부한 물적 자본, 희소한 신뢰 자본
한국은 더 이상 자본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본은 인적 자본이 아니라 물적 자본, 즉 기계·장비·공장과 같은 생산설비를 뜻한다. 물적 자본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가 한계자본계수(ICOR)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1단위를 추가로 늘리기 위해 필요한 투자량을 의미한다.한국의 한계자본계수는 1990년대에는 4~5 수준이었으나, 2020년대에는 8~9까지, 기간에 따라서는 10 이상으로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GDP를 1% 늘리는 데 필요한 투자 규모가 과거보다 두 배 이상 커진 셈이다. 이는 자본 축적이 성장을 견인하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뜻한다. 한국의 자본 효율성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빠르게 하락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장기 저성장을 겪어 온 일본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제 한국 경제에서 물적 자본은 더 이상 희소한 자원이 아니다. 자본은 경제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경제적 자본의 핵심인 물적 자본은 넘쳐나지만, 사회적 자본은 빈약하고, 특히 사회적 자본의 핵심인 신뢰 자본은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신뢰 부족의 문제는 수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최근 미국은 막대한 국방자산을 동원하여 이란 영토에 추락한 자국 장교 한 명을 구출했다. 이런 경우를 보고 국민은 국가를 신뢰하게 된다. 과연 우리 국민 중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가 전력을 다해 나를 구하리라 확신하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신뢰의 부재는 국가와 국민 사이에만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신뢰가 사라진 여야관계는 토론이 사라지고 고함만 난무하는 불신의 광장으로 추락하고 있다. AI 혁명으로 노동시장의 근본적 변화가 예고된 지금, 새로운 노동시장 시스템의 유력한 대안은 유연안정성(Flexicurity)의 확대다. 그러나 노사는 상호 불신의 늪에 빠져 있고, 안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높이는 새로운 대안에 대한 논의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최근 한국 대표 반도체 기업에서 불거진 갈등 역시 본질은 신뢰의 문제다. AI 혁명의 격랑 속에서 현재의 막대한 영업이익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없다. 일시적으로 급증한 이익은 미래 투자의 재원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것이 중장기적으로 근로자, 기업, 주주 그리고 국민 모두를 위한 길이다. 그러나 미래 투자가 결국 나의 소득과 고용을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가 없다면, 미래는 사라지고 당장의 분배 요구만 남는다. 결국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선택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정책 영역에서 시장 기능에 대한 불신도 심각하다. 유가 급등기에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면 가격 신호가 왜곡되고, 오히려 에너지 소비를 부추겨 위기 극복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시장가격 기능에 대한 불신은 위기의 비용을 더 키울 수 있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주택 정책은 국민의 다양한 주거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취향, 소득, 입지, 연령, 가구원 수, 직장 변동성 등 수많은 변수의 조합을 조정하는 가장 강력한 기제는 시장이다. 그러나 정부는 시장을 신뢰하지 못한 채 수많은 이해관계에 직접 개입해 왔다. 그 결과 시장을 억제하는 데는 일정 부분 성공했을지 모르나, 주거 취약계층인 전세 세입자의 고통은 커졌고 높아진 월세 부담은 서민의 삶을 더욱 옥죄고 있다.희소해진 신뢰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야말로 흐트러진 한국 경제를 근본적으로 되살리는 출발점이다. 신뢰 자본이 늘어나면 경제는 같은 자본과 노동으로 더 많은 성과를 낸다. 경제학 용어로는 총요소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이며, 이는 성장잠재력을 직접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는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면 장기 투자가 가능해진다. 노사 간 신뢰가 쌓이면 노동시장 개혁도 감당할 수 있다. 신뢰는 보이지 않는 자본이지만, 불신 때문에 낭비되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줄인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한 생산성 자본이다.지금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공장과 설비만이 아니다. 물적 자본의 효율성이 떨어진 한국 경제에, 신뢰라는 새로운 자본을 축적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의 심장이 다시 뛸 수 있다.
[시대시평/오연천]예견된 지방선거 결과에 따른 여권의 책무와 야권의 각성
미증유의 계엄에서 비롯된 탄핵에 따른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뒤 1년 만에 치러지는 6·3 지방선거는 새로 출범한 정부·여당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민적 의견 투입(interest articulation) 기회로 간주하기 어려운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원칙론적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거 결과가 쉽게 예단될 수 있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민심의 향배를 쉽게 예단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이번 선거 전·후 과정에서 예전과 달리 여권의 국정쇄신과 정치적 좌표 제시 노력이 긴요하고, 야권의 정치력 복원 노력이 절박함을 말해준다. 국민의힘은 한 달여 기간 내 유권자들의 선택을 되돌리기에는 원천적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예견할 수 있는 참담한 선거 결과에 대비, 건강한 보수 가치를 실현하고 전통적 지지자들의 기대에 접근할 수 있는 근원적 체제 혁신의 밑그림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국민의힘 행태에 진절머리를 앓고 있는 야권 지지자들조차 행정·의회 권력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여권에 대한 의미 있는 견제시스템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선거 결과가 나온 뒤 수습대책을 마련하는 때늦은 대응은 뻔한 결과를 무책임하게 간과하고 지지자들의 좌절을 증폭시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선거기간 중이라도 백지상태에서 일부 지지층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는 「환골탈태」의 구상을 제시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순풍 운항과 더불어 야권의 난맥상에 따른 반사적 이익을 얻고 있는 여권은 예견된 선거 결과에 환호작약(歡呼雀躍) 해서는 안 된다. 야권의 혼돈과 무력함에 기인한 반사적 수혜의 결과이고 정부·여당에 대한 절대적 신임이라고 해석하지 않는 냉철한 자세가 요구된다. 나아가 향후 비판적 국민의 심중까지 헤아리며 국정 운영에 임하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번 선거가 마무리되면 정부·여권에는 새로운 차원의 중후한 책무가 기다리고 있다. 야권과의 최소한도 수준의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국정운영의 집중과 총체적 책무의 강도는 전례 없을 듯하다. 이러한 상황을 앞두고 정부·여당은 선거기간 중 핵심 국정과제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보통 지방선거에서 그러했듯이 개별 선거구의 당선 확률을 높이기 위한 해당 지역의 선심성 공약을 극대화하는 행태는 국정 책임을 안고 있는 여권으로서 더욱 절제해야 한다. 지방선거를 전후하여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고 지역의 존재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는 중·장기 정책 구상이 모색되고, 이를 뒷받침할 정책대안이 일관성 있게 꾸준히 마련되어야 한다. 지역 살리기는 해당 자치단체의 개별적 주도만으로는 그 효과가 의문시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비효율적 자원배분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범정부적 조율과 일관된 정책 기조의 유지가 중요하다. 유력한 지사·시장의 정치력에 좌우되는 주요 기업과 국고 사업의 유치 경쟁 못지않게, 전국적 지역분업 구도하에서 한국경제의 글로벌 경쟁력을 착근할 수 있도록 현 정부의 정치적 경쟁력에 걸맞는 지역 혁신 비전이 선거기간을 거치면서 고도화될 것을 기대한다. 더 나아가서 국민소득, 지역 경제의 양극화를 개선할 수 있는 체계적 정책 탐색이 원활히 전개되어야 한다. 여권의 압승으로 귀결된다고 전제한다면 정부·여당의 시대적 소명과 책무는 야권의 분골쇄신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더욱 엄중한 수준에 이를 것이다. 그만큼 정책결정 과정에서 핵심 과업 도출과 외부 조율, 잠복된 여론의 경청을 통해 「보편적」국민 이익 추구에 한치의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 대통령 고유의 공적 체험과 잠복되어 있는 특유의 통찰력이 지방선거 이후 가시화될 것을 기대해 본다.
[시대시평/한정훈]헝가리 총선, 유럽의 변화 앞에 선 한국의 선택
며칠 전 유럽의 이목을 집중시킨 헝가리 총선이 막을 내렸다. 존중과 자유의 당을 의미하는 티서당(TISZA)의 당수인 페테르 마자르(Peter Magyar)가 2010년 이후 장기집권을 이어온 빅토르 올반 총리 체제에 중대한 도전을 가한 선거였다. 선거 전부터 올반 총리의 패배를 예측하는 여론조사가 이어졌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물론 이민문제를 둘러싸고 유럽연합의 공동 대응에서 빈번히 이탈해온 그의 행보는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총선 결과, 199개 의석 가운데 야당인 티서당이 136석을 확보하며 56석에 그친 집권당을 압도했다. 1980년대 말 동유럽 민주화 시점에 시작된 양국 간 비교적 짧은 외교 관계를 고려할 때, 한국 사회에서 이번 선거를 크게 주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와 같은 주류 회원국도 아닌 동유럽 한 국가의 선거결과가 과연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의문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유럽연합의 향방과 한국의 대외전략을 동시에 되짚게 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선거는 유럽 내 민주주의 회복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동안 유럽연합은 극우민족주의 세력의 성장과 함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조짐을 보였다. 특히 올반 정부는 자국 우선주의와 권력 집중을 통해 유럽연합이 강조해 온 법치와 자유, 인권의 가치와 긴장 관계를 형성하며 국제적 규범 확산의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마자르 당수가 승리 직후 첫 기자회견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거리를 두겠다고 입장을 밝힌 것은 유럽연합의 내적 응집력을 강화하며, 가치지향적 유럽의 외교에 새로운 국면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올반 정부의 패배는 4년 넘게 장기화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도 일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마자르의 헝가리는 러시아와의 밀착을 줄이고 친유럽적 노선으로의 선회를 예고했다. 유럽연합으로서는 그동안의 내부 불협화음을 완화하고 보다 일관된 대외정책을 추진할 여지가 생긴 셈이다. 분열된 유럽연합이 러시아의 전략적 행동 공간을 넓혀주었다면, 결집된 유럽연합은 그 반대로 러시아의 선택지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곧바로 새로운 국제질서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마자르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인정했듯 유럽연합의 여러 회원국들은 여전히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특히 헝가리를 포함한 일부 국가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석유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에너지 안보를 둘러싼 회원국 간 이해관계 역시 일치하지 않는다. 또한 헝가리의 정치적 변화만으로 러시아가 단기간 내 정책 방향을 급격히 전환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헝가리 총선 결과는 유럽연합 내 정치지형의 변화를 촉발하는 중요한 계기라는 점에서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 역시 단순한 관망자로 남기 어렵다. 오히려 유럽연합 내부의 정책 조율과 대외전략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야 한다. 이미 방산 수출을 통해 유럽의 안보 환경과 산업 구조에 일정 부분 관여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그 중요성은 더욱 크다.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도널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의 방한은 유럽이 한국을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는 변화의 일면이다. 반도체, 배터리, 방산 산업을 중심으로 한 협력뿐 아니라 공급망 재편과 '디리스킹(de-risking)' 전략 속에서 유럽 내 한국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헝가리 총선은 한-EU 관계의 재편을 촉진하는 또 하나의 계기로 읽을 필요가 있다. 이제 한국은 미중 관계와 동북아 중심의 시각에 머물러선 안 된다. 유럽연합을 단순한 상품시장이나 문화적 교류 대상으로 보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유럽은 더 이상 주변 변수가 아니다. 한-EU 간 전략적 관계를 재구성하기 위한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시대시평/김경희]공화주의와 '절반의 승리'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저자로 유명하다. 그는 내우외환의 위기에 빠진 조국 피렌체를 위해 카리스마있는 지도자를 원했다. 필요할 때는 권모술수를 사용해도 된다는 말은 위기 극복의 한시적인 수단일 뿐이다. 사실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자이다. 그는 고대 로마 공화정을 정치의 모범으로 삼았다. 공화주의는 국가가 다양한 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갈등과 대립은 필연적이다. 이해관계의 대립이 대화로 조율되면 법률로 만들어진다. 그렇지 못하면 분열과 충돌을 거쳐 내란으로까지 이어진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이 잘 살아가야 하기에 '공화(共和)'이다. 공존은 서로를 살피는 데서 가능하다. 배타적 사익과 권력 추구는 공화주의가 가장 반대하는 주종적 지배관계를 낳는다. 공동선의 추구가 중요한 이유이다. 공동선은 권력자나 승리한 일방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이 같이 찾아가는 과정과 그 끝에 있다. 그런데 마키아벨리에게 피렌체 정치의 문제는 공화주의의 부재에 있었다. 갈등의 증폭과 대립의 양산이 지속되었다. 귀족 간의 대립이 끝나면, 귀족과 시민의 대결이, 그 이후에는 시민과 평민 간의 갈등이 이어졌다. 승자는 법을 만들어 패자를 추방했다. 갈등과 대립은 말 대신 무기로 해결되었다. 이를 서술한 것이 그의 『피렌체사』이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위기의 순간에 빛났던 지혜를 찾아 기술한다. 그것은 바로 '절반의 승리'이다. '절반의 승리'는 갈등이 무력 충돌로 치닫기 직전, 비에리 데 메디치가 양측을 중재하며 던진 메시지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무기를 내려 놓으며, 나라의 안전을 구하는 것이 '절반의 승리'이다. 그 반대인 '완전한 승리'는 무기를 잡고 상대방을 완전히 제압하는 것이다. 그 귀결은 나라의 혼란이다. 그런데 '절반의 승리'는 현재의 승기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얻은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이는 행운을 겸손하게 사용하는 것과 통한다. 성공은 능력 덕이 아니라, 운이 좋아서 얻은 것이다. 따라서 겸손하게 사용하지 않고 오만해지면 그 결과는 몰락이다. 또 다른 '절반의 승리'는 조반니 데 메디치가 재산세를 소급적용코자 시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한 말이다. 재산세를 새로 제정하자 부자들의 반발이 있었다. 법제정에 환호한 일반 시민들은 법을 소급 적용해 이전의 재산까지 조사코자 했다. 부자들은 분노했다. 조반니 데 메디치는 과거의 부당함을 새로운 법으로 바로잡는 데 만족하며,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강조했다. 승리 이상을 원하면 패배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절반의 승리'는 공화주의의 지혜를 보여준다. '완전한 승리'는 상대를 굴복시키고 제거하는 것이다. 배제 속에서 말로 소통하는 정치의 공간이 사라진다. 반면 '절반의 승리'는 상대와 공존하는 정치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극단의 정치가 유행하는 작금의 정치에 '절반의 승리'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자 하는 인간에게 '절반의 승리'는 정말 어려운 실천의 지혜이다. 하지만 이는 생존의 지혜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배제하고 억누르는 '완전한 승리'는 분노와 증오의 기억 속에 복수의 정치로 패자를 인도한다. '완전한 승리'는 승자 측에도 내분을 일으켜 몰락을 자초하게 한다. 결국 '완전한 승리'는 승자와 패자 모두의 공멸을 가져온다. 극단의 정치와 적대적 정치 그리고 타협 없는 정치에서 공화주의가 지닌 '절반의 성공'은 우리 모두가 공존공영하기 위한 정치적 지혜이자 기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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