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기자수첩] 흔들리는 컬리, 다시 생각할 때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이 있다. 유통 시장에서는 일찍 일어났지만 아직 벌레를 잡지 못한 새가 있다. 새벽배송 업체인 마켓컬리다.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는 최근 한국거래소(코스피) 상장 계획을 연기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도 컬리의 상장은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한다. 컬리의 정체성과 경쟁력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컬리의 정체성은 신선식품 새벽배송이다. 새벽배송은 전날 밤에 주문한 상품을 다음 날 새벽 집으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컬리는 새벽배송의 시초, 시장의 개척자로 불린다. 지금 그 시장은 흔들리고 있다.컬리가 개척한 새벽배송 시장은 쿠팡, SSG닷컴 등이 뛰어들며 빠르게 커졌지만 한계가 보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먼저 시장 성장세가 꺾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교보증권에 따르면 국내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2020년 2조5000억원 ▲2021년 4조1000억원 ▲2022년 9조원 ▲2023년 11조9000억원(예상) 등으로 추산된다. 이커머스 시장 중에서도 새벽배송은 '나눠먹기'가 어려운 곳이다. 대부분 적자를 내고 있는데도 계속 새벽배송을 하는 이유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수익을 내 사업을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투자와 자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새벽배송은 아직 '돈'이 안 되는 사업이다. 임차료, 인건비 등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컬리는 지난해 21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쿠팡이나 SSG닷컴도 적자를 내고 있지만 컬리와는 다르다. 쿠팡은 미국 상장에 성공했고 SSG닷컴은 이마트라는 대기업이라는 '기댈 곳'이 있다.컬리의 경쟁력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충성고객이다. 최근 컬리는 뷰티 플랫폼 '뷰티컬리'를 론칭하면서 한 차례 고객들의 신뢰를 잃었다. 일부 명품 화장품을 병행수입 제품으로 팔면서 할인 판매하는 것처럼 선보였기 때문이다.컬리는 뷰티컬리를 론칭하면서 명품 화장품이 입점했다고 홍보했다. 타 채널보다 저렴한 가격, 빠른 배송으로 고객을 불러 모았다. 구찌 뷰티의 립스틱은 25%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상세정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식 통관 절차를 통과한 병행수입 정품"이라는 문구가 있다.뷰티컬리는 현재 에르메스와 구찌의 뷰티 상품을 병행수입으로 판매하고 있다. 병행수입은 국내외 판매자가 해당 브랜드와 계약을 맺은 업체를 통해 물건을 구입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어떤 경로를 통해 물건을 확보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어 100% 정품인지 확인이 어렵다. 컬리가 병행수입 제품이라는 점을 상세정보에 작은 글씨로 써놓은 것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소비자가 적지 않았다.이번 상장 연기에 대해 컬리는 "글로벌 경제 상황 악화로 인한 투자 심리 위축을 고려한 결정"이라며 "상장은 향후 기업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는 최적의 시점에 재추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컬리의 경쟁력과 정체성이 흔들리며 한때 4조원으로 평가됐던 기업가치를 회복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입을 모은다.최근 지하철 광고에서 배달의민족 B마트 광고를 봤다. "내일까지 어떻게 기다려"라는 문구로 시선을 끌었다. 배달의민족 외에도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이 뛰어든 1시간 이내 즉시배송이라는 시장이 커지고 있다. '분 단위' 배송 전쟁으로 넘어가는 지금, 새벽배송은 꼭 필요할까. 상장을 통해 사업을 유지해야 하는 컬리는 지속가능할까. 컬리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기자수첩] 논란의 금투세, 2년 유예가 끝 아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찾아오는 주식시장의 상승 흐름인 이른바 '산타 랠리'가 2022년 국내 주식시장에는 찾아오지 않았다. 연말 산타 랠리가 물 건너간 뒤 시장의 시선은 새해에 대한 기대감으로 증시가 상승하는 '1월 효과'로 쏠리지만 그 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지난해 연말까지 코스피의 발목을 잡은 건 해묵은 증시 주요 법안들이다. 대표적으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도입'과 '주식양도세' 등이 지목된다. 금투세란 주식, 채권 등 금융 투자로 얻은 이익이 1년에 5000만원(기타 금융투자소득 250만원)일 때 20~25%의 세율을 적용하는 세금이다. 주식양도세는 기존 세법상 대주주로 정해지면 이듬해 발생한 주식 양도 차익에 대해 20%의 세율(과세표준 3억원 초과는 25%)이 적용된다. 특히 대주주 요건을 현행 1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상향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방침이 '부자 감세'라는 야당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연말 시장의 혼란을 더욱 부추겼다. 힘겨운 진통 끝에 금투세는 시행 시점을 2023년에서 2025년으로 2년 연기하는 유예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주식양도세의 경우 현행대로 1종목당 10억원(또는 지분 1~4%) 이상 보유한 대주주는 세금을 내야 한다. 단 대주주 여부를 판정할 때 가족 지분까지 합산해서 계산하는 기타 주주 합산 규정은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주식양도세 대상이 되는 대주주 요건이 10억원으로 유지되면서 연말 매물 폭탄 현상이 지난해에도 어김없이 반복됐다. 대주주가 양도세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대주주 확정일인 12월28일 하루 전 27일까지 주식을 매도해 종목당 보유액을 10억원 미만으로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통상 대주주 양도세 관련 매물 영향은 대주주 판정 기준일(배당락 하루 전) 5거래일 전부터 나타난다.실제 개인투자자들은 지난해 12월21일부터 27일까지 닷새 만에 코스피 시장에서 2조5870억원을, 코스닥 시장에서는 1조618억원을 각각 순매도했다. 양 시장 합산 순매도 규모는 총 3조6488억원이다.유예된 금투세를 놓고도 투자자들의 분위기는 좋지 못하다. 제도 폐지가 아닌 시행 유예로 당장 한숨은 돌렸지만 결국에는 조삼모사식 합의라는 이유에서다. 시기만 늦춰졌을 뿐 2년 후에 또 똑같은 논란을 반복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시선이다.가뜩이나 시장 불확실성에 국내 증시가 휘청거렸던 상황에서 정부의 오락가락한 방침이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행 예정일을 일주일가량 남기고도 금투세를 둘러싼 합의점을 좀처럼 찾지 못한 탓에 업계는 물론 투자자들의 혼란을 부추겼다는 설명이다.증권사 역시 금투세 시행을 앞두고 내부적으로 혼선을 빚었다. 금투세를 시행하기 위해선 각 증권사별로 세금 징수를 위한 전산시스템이 구축돼야 하는데 당국의 가이드라인이 늦어지면서 전반적으로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2년 뒤인 2025년에도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현 정부의 기본 방침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남은 2년이란 시간 동안 금융투자업계는 물론 투자자들의 의견까지 잘 청취해 면밀히 검토된 완벽한 정책이 시행돼야 할 것이다. 2022년과 같은 혼란이 반복되지 않도록 합리적인 정책이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기자수첩] 2금융권 번지는 '대출한파'… 서민은 새해가 무섭다
"숨이나 제대로 쉬고 살 수 있을까요. 점점 힘들어지네요"최근 기자가 작성한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저축은행, 대부업체에 이어 할부금융사들이 줄줄이 신규대출 취급을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젠 돈이 필요해도 빌릴 곳이 없다는 하소연이다.지난해 말 몇몇 저축은행, 캐피탈사는 대출비교 플랫폼을 비롯해 각종 채널을 통한 신규대출 신청을 받지 않았다. 여기에 서민금융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대부업계도 빗장을 걸었다. 러시앤캐시로 유명한 '아프로파이낸셜대부'는 지난해 12월26일부터 신규대출 취급을 중단했으며 대부업계 2위인 리드코프는 신규대출을 기존의 20% 수준으로 내주고 있다.카드 한도도 줄고 있다. 신한·삼성·KB국민카드 등은 지난해 일부 회원들에게 한도 하향 조정을 안내했다. 업황이 어려운 만큼 연체 예방을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물론 새해가 되면 각 금융사가 포트폴리오를 새로 짜는 만큼 지난 연말보다는 대출문턱을 낮출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마냥 낮추긴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중론이다. 올해도 5%대 고물가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면서 이달 13일 한국은행이 또 한 번 기준금리를 높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카드·캐피탈사 등 수신 기능이 없는 여신전문금융회사들은 금융채를 발행해 자금을 확보하는데 금리가 오르면 자금조달 부담이 커진다. 저축은행도 골치가 아프긴 마찬가지다. 시장금리 인상에 따라 수신금리를 인상하다 보면 대출금리를 올려 마진을 내야 하지만 법정 최고금리인 20%를 넘길 수 없어 대출을 내줄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는 설명이다.여기에 2금융권은 시중은행 대출자와 비교해 연체율 등 신용 리스크가 큰 저신용자가 많아 대출을 보수적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문제는 서민금융으로 칭해지는 2금융권이 대출문을 닫으면 저신용자나 서민들이 고금리 불법 사금융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나자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입장을 발표했다. 각 금융사의 건전성·리스크 관리를 강조하면서도 대출취급 중단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유연한 대응'을 하라는 지시다.대출취급을 중단하기 보다 여신정책에 따라 여신심사기준을 강화하거나 서민금융 우수대부업자의 은행권 차입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은행권의 협조를 요청하는 식이다. 동시에 불법사금융에 대해 관계기관과 협력해 엄정 대처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지난 3일 2020년 이후 3년 만에 '범금융 신년인사회'가 열렸다. 이날 경제·금융 수장들은 금융권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약속도 빼놓지 않았다. 지난해 이후 금융시장, 경제 위기감이 커진 현재가 그 어느 때보다 서민을 위한 금융권의 지혜가 필요한 때라는 판단에서다. 계묘년, 서민경제를 위한 경제·금융 수장들의 정교한 대책 마련을 기대해 본다.
[기자수첩] 서유석 새 금투협회장에 거는 기대
금융투자업계의 관심이 새해 임기를 시작한 제6대 서유석 신임 금융투자협회장에게 쏠려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 이번 서 협회장 취임은 그 어느 때보다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서 협회장은 금융투자협회 설립 이후 최초 자산운용사 대표 출신 회장으로 '협회장=증권사 출신 대표' 공식을 깨뜨린 인물이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65%가 넘는 회원사의 지지를 얻어 협회장 자리에 올랐다. 현재 금융투자업계가 서 회장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서 협회장 역시 높은 득표율에 놀라면서도 회원사들이 보내준 지지율의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당선 직후 발표한 소감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높은 지지율이었다"면서도 자본시장의 통합과 화합을 언급하며 회원사와의 진정성 있는 소통을 펼칠 것을 약속했다. 금투협의 미흡한 소통 시스템은 지난해 회장 선거를 코앞에 남겨두고 '사모펀드 세금폭탄 논란'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앞서 현 정부는 지난해 7월 금융투자소득세(이하 금투세) 시행 2년 유예 내용을 담은 세법 개정안을 만들면서 사모펀드 투자수익에 양도소득세(22%) 대신 배당소득세를 적용하는 방안을 담았다. 이 경우 사모펀드 고객 대다수는 이미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이고 대부분 과표구간 8800만원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최소 38.5%에서 최대 49.5%의 세금폭탄을 맞게 된다. 하지만 금투협 측의 소통 실패로 당사자인 사모전문운용사 측은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서야 인지했다. 이후 사모운용사 회원사들은 국회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독자적 행동까지 벌이며 금투협의 불통에 강하게 반발했다. 당초 팽팽한 접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서 협회장이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된 이유는 이번 논란으로 운용사들의 표가 결집한 영향과도 무관치 않다. 서 협회장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금투세 개정안 논란과 관련한 운용사들의 우려에 공감하고 취임 즉시 지원 특별팀(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적극적 대안 마련을 강조한 점이 운용사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저성장·고령화 시대 재테크 전략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자본시장의 위상은 지난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만큼 금융투자업계를 회원사로 거느리고 대변하는 금투협의 역할 또한 커졌다. 그럼에도 금투협을 증권사만을 위한 곳으로 바라보는 일부 업계의 시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직도 업계관계자들은 협회 구색 갖추기로 운용사·신탁사·선물사를 회원사로 끼워 넣었다는 농담 섞인 푸념을 늘어놓곤 한다. 금투협은 증권사 60곳, 운용사 308곳, 신탁사 14곳, 선물사 3곳 등 총 385곳을 정회원으로 두고 있다. 금투협이 증권사 등 특정 회원사만 대변한다는 논란을 막기 위해선 어느 회원사도 소홀히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제6대 협회장 자리의 무게감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신뢰받지 못하면 설 수 없다는 뜻처럼 결국 우선해야 할 것은 신뢰 회복이다. 자본시장 대변인으로서 회원사의 상처를 봉합하고 대내외적으로 활발하게 소통하며 동분서주할 서 협회장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기자수첩] 50억에 경영권 양도, '1호 특례상장' 헬릭스미스의 속내
국내 1호 기술특례상장 기업 헬릭스미스의 경영권이 17년 만에 넘어갔다. 헬릭스미스는 그동안 창업자인 김선영 대표이사가 이끌었으나 최근 김 대표가 돌연 카나리아바이오엠에 경영권을 넘겼다.헬릭스미스는 2022년 12월22일 이사회를 열고 카나리아바이오엠과 경영권 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다. 헬릭스미스가 발행하는 350억원 규모의 3자 배정 유상신주(297만1137주)를 카나리아바이오엠이 인수하는 구조다. 신주 상장일은 오는 18일이다. 이 과정에서 카나리아바이오엠은 헬릭스미스 지분 7.30%를 보유하며 김 대표와 특별관계인의 지분율은 7.27%에서 6.70%로 낮아진다.헬릭스미스의 경영권 매각 방식은 독특하다. 헬릭스미스가 카나리아바이오엠에 경영권을 넘기는 작업에 세종메디칼이라는 연결회사가 느닷없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먼저 헬릭스미스는 세종메디칼이 발행하는 300억원 규모 전환사채를 매입한다. 세종메디칼을 통해 300억원을 확보한 카나리아바이오엠은 자기자본 50억원을 들여 헬릭스미스의 유상신주를 사들인다. 경영권을 양도하는 데 회사가 실질적으로 단 50억원만 받은 셈이다.업계에선 갑작스러운 헬릭스미스 경영권 변동에 김 대표와 나한익 카나리아바이오엠 대표의 인연을 석연찮게 보고 있다. 나 대표는 2018년 5월 헬릭스미스 전략총괄 이사로 합류해 김 대표와 인연을 맺었다. 2019년 최고재무책임자(CFO) 재무경영본부장을 맡았으며 2020년 헬릭스미스 자회사 뉴로마이언과 카텍셀의 초대 대표이사를 지냈다. 2021년 1월4일 헬릭스미스를 그만둔 뒤 같은 해 11월 카나리아바이오(옛 두올물산) 대표로 선임됐다. 카나리아바이오는 카나리아바이오엠의 최대주주이다. 김 대표는 "지난 2년 동안 경영권 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소액주주의 질타도 있었다"며 "이번 새로운 인수인이 찾아와 결실을 맺고 양수인이 건실한 회사라고 판단돼 경영권을 내려놓고자 한다"고 말했다.김 대표의 해명과는 달리 이번 헬릭스미스의 경영권 매각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회사와 소액주주간의 신뢰가 깨진 상황에서 김 대표의 해명은 설득력이 없다는 시각이 만연하다. 국내 대표 바이오 회사를 믿고 투자했더니 우호지분을 늘리려는 창업자의 경영권 방어전에 휘말렸다는 지적이다. 유상증자에 따른 가치 희석은 소액주주들의 몫이 됐다.시장 반응 역시 이번 딜에 의문부호를 내놓는다. 경영권 매각 발표일이었던 2022년 12월22일 헬릭스미스의 주가는 9.96% 하락한 1만2200원에 마감했다. 다음날인 23일 15.16% 더 떨어진 1만350원에 장을 마쳤다. 소액주주들은 즉각 반발했다. 서울시 강서구 헬릭스미스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이번 경영권 매각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헬릭스미스는 소액주주들과 장기간 불화가 이어지는 기업이다. 헬릭스미스 소액주주연합회는 2022년 3월 정기주총에서 박재석 HR자산운용 고문을 사내이사에 앉혔다. 2021년 3월에는 정기 주총을 통해 헬릭스미스 이사회 구성원 8명 중 3명을 소액주주 측 이사진들로 꾸렸다. 오는 3월 정기주총에서 헬릭스미스의 이사진 8명 중 5명의 임기가 만료되는 만큼 소액주주와 사측간의 경영권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김 대표는 2021년 3월 정기주총에서 "2022년 10월31일까지 엔젠시스의 임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회사 주가도 10만원대로 올려놓겠다"며 "둘 중 하나라도 실패하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전부 회사에 내놓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약속 중 지켜진 것은 없다. 김 대표가 경영권 매각이 아닌 소액주주들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켰으면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지 궁금하다.
[기자수첩] 계묘년, 취약차주를 대하는 마음은
"고소득자에게 한달 이자가 수십만원 늘어도 사실 큰 타격은 없어요. 소득이 적고 신용도가 낮은 차주가 금리 인상기에 매우 취약하죠."한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급격한 대출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 우려와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한국은행은 올들어 기준금리를 2.25%포인트 인상했다. 이 기간 은행권은 대출금리를 기준금리보다 빠르게 올리면서 대출금리 상승 속도는 2000년 이후 기준금리 인상기 중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실제 은행권 가계대출 금리(신규 취급액 기준)는 2021년 7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기준금리가 0.50%에서 3.00%로 뛸 동안 5.34%로 2.36%포인트나 치솟았다. 앞서 2005년 10월~2008년 9월(3.25→5.25%) 기준금리가 2.0%포인트 상승할 당시에는 7.45%로 1.75%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2010년 6월~2011년 6월(2.00→3.25%)에도 0.32%포인트, 2017년 10월~2018년 11월(1.25~1.75%)에는 0.12%포인트 올랐다.대출금리가 천정부지로 뛰면서 대출자들의 이자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1년 전 3~4%대에 그치던 은행 신용대출 금리의 경우 7~8%대로 두 배 가까이 급등한 상황이다. 예를 들어 3000만원의 신용대출을 연 3%의 금리로 빌렸을 때 월 이자는 75만원에 그쳤지만 금리가 8%로 오르면 월 이자가 200만원에 달한다. 한달 금융비용만 125만원 늘어나는 셈이다.연 소득이 3080만원인 소득 2분위(하위 20~40%)의 경우 연 이자(2400만원)가 소득의 78%를 차지한다.이번 기준금리 인상기에 가계대출 금리 인상폭이 과거에 비해 유난히 컸던 것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 영향으로 분석된다.은행권은 2021년 가계대출 연간 증가율을 5~6%에 맞춰야 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에서 나갈 수 있는 총 가계대출 연간 규모가 약 42조원으로 제한되다 보니 은행들은 같은 해 하반기 가계대출을 중단하거나 한도를 줄이고 금리를 올리면서 대출 문턱을 높였다.다만 올해말 가계대출 금리 상승세는 전년말보다 주춤해진 상태다. 금융당국이 관치 비판에도 은행권에 예금과 대출 금리 인하 압박에 나선 결과다.예금과 대출금리 인상을 모두 억눌러서 가계의 이자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은행들도 취약 차주 지원책을 잇따라 내놨다.신한금융은 5년간 총 33조3000억원을, 하나금융은 연간 26조원, 우리금융은 3년간 23조원, NH농협금융은 연간 27조원을 취약 차주 지원에 투입하기로 했다.KB금융은 취약 차주 지원 규모를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KB국민은행은 서민금융지원 대출 금리 인하, 사회적 취약계층의 주택 관련 대출 우대금리 등을 제공하고 있다.내년에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은 불가피하다. 한·미 금리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손 놓고 볼 수만은 없어서다.이런 때일수록 취약 차주의 충격을 덜어줄 수 있는 금융권의 정교한 대책이 절실하다. 금리 인상에 따른 충격은 늘 가장 취약한 곳을 파고들기 때문이다.금융부실이 사회 전반에 번지지 않도록 금융권은 취약 차주와 동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계묘년에는 금융권이 이자 장사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나 취약 차주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네는 새해가 되길 기대해본다.
[기자수첩] 왓챠 매각 안갯속… 토종 OTT, '반면교사' 삼아야
시장에 매물로 나온 국내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왓챠가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인수 계획을 밝혔던 LG유플러스마저도 최근 계획을 철회했다. 국내 OTT 업계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시장 신규 진입은 매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동종업계 업체는 물론 타업계 업체도 손을 내밀기 쉽지 않은 이유다. 자력 생존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왓챠의 뼈아픈 고민이 토종 OTT 업체들에 거울이 되고 있다.왓챠는 2011년 서울과학고·카이스트 출신 박태훈 대표가 원지현 최고운영책임자(COO), 이태현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설립한 OTT 기업이다. 영화 평가 및 추천 서비스로 시작해 2016년 OTT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콘텐츠 경쟁력에서 밀리면서 수익성 악화에 맞닥뜨렸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2022년 10월 기준 왓챠의 월간 활성 이용자수(MAU)는 54만명으로 지난 8월(60만명) 대비 10%가량 줄었다.박 대표는 최근 한 간담회에서 기자들과 만나"(매각 진행 상황과 관련해)지금 확답하기는 어렵지만 다방면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며 여러 기업과 협상하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고 시사했다.앞서 LG유플러스는 왓챠에 프리 투자밸류(투자 전 기업가치) 200억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왓챠는 2021년 말 49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3000억원을 인정받았다. 2022년 초 착수한 1000억원의 상장 전 투자 유치(프리IPO)에선 기업가치 5000억원까지 언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 경색에 영업적자를 떠안으면서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왓챠의 2021년 말 기준 누적 결손금은 2017억원을 넘었고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325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토종 OTT 업체들은 왓챠의 사례를 남 일처럼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국내 점유율 1위인 글로벌기업 넷플릭스를 따라잡으려 콘텐츠 제작비 등을 쏟아붓고 있지만 적자를 면할 길은 요원하다. 티빙은 2021년 700억원 적자에 이어 2022년은 그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에는 더 암울할 것이란 전망이 회사 내·외부에서 잇따르고 있다.업계 관계자들은 고품질의 다양한 콘텐츠, 낮은 가입비 등을 두루 갖춰야 신규 이용자를 끌어들이고 포화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넷플릭스는 2018년 아시아 시장 진출에 나서면서 회당 20억원을 들인 오리지널시리즈 '킹덤'을 발표해 한국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였다. 2022년 11월 한국을 비롯한 12개국에 기존의 절반 가격인 '광고 요금제'까지 출시, 이용자들의 가입 문턱도 낮췄다. 디즈니+도 미국에서 월 7.99달러의 '광고 요금제'를 출시하며 추세를 이었다.OTT 업계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이용자들의 눈높이는 날이 갈수록 높아져 한 개의 훌륭한 콘텐츠, 한 가지 장점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부담 없는 이용료가 뒷받침되면서 매력적인 콘텐츠를 지속해서 론칭해야 이용자 이탈은 막고 신규 유입은 늘릴 수 있다. 토종 OTT 업체들은 안갯속에 놓인 왓챠를 반면교사 삼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기자수첩] 노란봉투법, 기업 피해 보전 논의는 어디로
노동조합의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사업주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하는 노동조합법 제2조·제3조 개정안, 이른 바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잡음이 커지고 있다. 노조의 쟁의행위를 과연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이해관계자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다.여당과 경제계는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노조의 불법파업이 만연해질 것이라며 노란봉투법 입법을 반대하고 있다. 야당과 노동계, 시민사회는 노조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법안 통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맞선다.노란봉투법의 핵심은 '노조의 권리 보호'다. 개정안은 노조의 파업 과정에서 폭력이나 파괴로 인한 직접 손해를 제외하고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사업주의 손배소를 우려해 노동자에 재갈을 물리는 상황을 막자는 취지다.기업이 파업으로 인해 입은 손실은 누가 어떻게 보전할 것인지는 논의 대상에서 쏙 빠져있다. 법안이 손배소 대상에 '폭력이나 파괴로 인한 직접 손해를 제외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허점이 있다. 노조가 사업장 점거나 불법농성 등으로 회사에 손실을 끼쳐도 폭력을 가하거나 시설물 등을 부수는 행위만 없었다면 손배소가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 보전 방안에 대한 합의나 대안 마련도 없이 일방적으로 노란봉투법을 추진하자는 것은 결국 파업으로 발생하는 모든 피해를 기업이 보유한 돈으로 해결하라는 것이다. 노조에 비해 사업주가 자금력이 풍부하다는 이유로 불법행위까지 감내하라는 것은 재산권 침해 여지가 다분하다.노조의 불법파업이 기업에 미치는 손실은 막대하다. 앞서 대우조선해양 22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참여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51일 동안 도크(선박 건조 공간) 점거농성을 벌였다. 하청지회는 파업을 통해 임금 4.5% 인상 등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은 8000억원의 피해를 입었고 하청노조 간부를 상대로 470억원의 손배소를 제기했다.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동일한 사례가 발생하더라도 손배소를 청구할 수 없게 된다. 경제계가 노란봉투법을 '불법파업 조장법'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최근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를 주장하며 보름간 집단운송거부에 나섰다. 전국의 물류에 차질이 발생하면서 산업계는 총 3조500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대기업에 비해 자금여력이 없는 중소·영세기업은 이번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어떻게 보전할지 막막하다고 호소한다.화물연대의 파업으로 노조의 집단행동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법안 처리에 속도를 높였던 더불어민주당은 돌연 속도조절에 나섰다. 그동안 야당이 주장해온 노란봉투법이 사실상 노동자를 위한 법이 아닌 정쟁을 위한 도구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노동자의 권리는 보장돼야 마땅하지만 불법파업의 책임까지 기업에 떠넘겨서는 안된다. 기업의 권리도 법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논의가 함께 이뤄지길 바란다.
[기자수첩] 전기차 성지 제주, 충전소가 녹슬었다
국내 대표 관광지 제주도는 전기자동차 성지로 불리지만 충전 인프라는 열악하다. 친환경차 도입 속도가 전국에서 가장 빠르고 이용객도 매년 늘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최근 제주도에서 전기차 폴스타2를 시승하면서 겪었던 불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관광지 어디든지 충전소가 최소 2곳은 있어 충전 인프라는 빼곡했지만 상태가 엉망이었다. 주유소처럼 상주하는 관리자 없이 무인으로 운영되다 보니 제대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일부 충전기 손잡이에는 알 수 없는 이물질이 잔뜩 묻어 있어 거부감이 들었고 충전기 곳곳은 녹이 슬었다. 충전 오류는 기본이고 거미줄은 덤이다. 설치한 지 얼마 안된 새 기계가 상대적으로 깨끗해 보일 뿐 제주 곳곳의 전기차 충전소 상태는 대부분 나빴다.충전소는 많았지만 지붕이 설치된 곳이 없어 비에 그대로 노출된 것도 아쉬웠다. 전기차에는 침수 등에 대비해 방수·누전 차단 기술 등이 적용되지만 충전소는 그렇지 않았다. 비오는 날 충전 부위가 그대로 비에 노출된 것을 보게 될 때 감전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내연기관차와 달리 수시로 충전이 필요한 전기차는 눈·비 등을 대비해 충전소에는 지붕 설치가 필요하다. 전기차 성지 제주도에서는 그러한 충전소를 볼 수 없었다.일부 충전소는 회원제로만 운영되고 있어 불편했다. 서귀포시 관광지 인근 관공서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소를 방문했는데 설치된 충전기 4대 모두가 회원제 전용이라 허탈했다. '회원 전용' 안내 문구가 없어 카드 결제를 시도하는 중에야 회원 전용 기계임을 알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제주도민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회원제가 필요하더라도 관광지 근처 충전소에 충전기 1대 정도는 비회원도 이용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제주도는 2013년부터 전기차 보급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0월 말 기준 도내 전기차 등록대수는 3만696대, 도 전체 운행차량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7.3%다. 전국 평균(1.4%)를 크게 상회한다. 전국 전기차의 약 8.5%가 제주도에서 운행 중이고 전국 최고 수준인 2만2000여기에 이르는 충전소 인프라가 보급돼 있다. 전기차의 성지로 불릴만 한다.제주도는 이를 바탕으로 ▲전기차 충전인프라 고도화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순환자원으로 활용 ▲태양광·에너지저장장치·충전기가 융·복합된 충전스테이션 구축사업 등의 계획을 통해 미래 모빌리티 혁신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제주도의 이 같은 포부에는 녹슬고 낡은 기존 충전 인프라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시 돼야 한다. 미래 모빌리티 선봉에 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용객들이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최근 출시된 전기차를 충전기가 인식하지 못해 빈번하게 발생한 충전 오류를 개선하는 것 역시 시급한 과제다. '전기차 성지'라는 찬사는 제주도의 전유물이 아니다. 전국 곳곳에서 친환경차 도입에 속도가 붙은 만큼 제주도는 찬사에 걸맞은 행보에 스스로 나서야 할 것이다.
[기자수첩] '거장'의 손으로 지우는 '포니정'의 흔적
현대자동차가 자동차 디자인계 거장 조르제토 주지아로와 함께 '포니 쿠페'를 원형 그대로 복원한다고 발표했을 때 놀라지 않은 이가 없다. 86세 고령임에도 직접 한국을 찾아 해당 프로젝트를 발표한 것만으로도 국내 자동차업계를 발칵 뒤집을 만한 사건이 아닐까 싶다.그가 48년 전 직접 디자인한 이 차는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현대차의 첫 독자 모델인 '포니'와 함께 처음 선보였다. 1980년대 들어 관련 자료가 사라지면서 역사 속에만 존재해온 비운의 모델로 꼽힌다. 실물을 본 사람이 거의 없는 포니 쿠페 콘셉트는 당시 여러 자동차 디자인에 영향을 미친 강렬한 결과물 중 하나로 꼽힌다. 독특한 쐐기 모양의 노즈와 원형 헤드램프, 종이접기를 연상케 하는 기하학적 선은 이 차 디자인의 핵심 요소다.초창기 현대차는 미국 포드와 결별한 뒤 자체 모델 개발을 위해 하체는 미쓰비시의 것을 쓰기로 하면서 디자인은 외주를 결정했고, 이를 이탈리아 주지아로에게 맡겼다. 한국에서 '포니' 개발을 진두지휘한 건 정주영 창업주의 동생인 정세영 회장이다. 미국에서 유학한 덕분에 영어가 능숙한 그는 외국인 파트너들과 직접 발로 뛰며 신차 개발에 몰두했다. 역사적인 '포니'의 탄생과 함께할 수 있었고 '포니 정'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다.현대차는 현재와 미래가 있을 뿐 과거가 없는 '이상한 상황'을 꽤 오랜 시간 이어왔다. 외국인 디자이너들이 회사에 합류했을 때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으로 꼽는다. 이는 정주영 회장이 동생이 아닌 아들(정몽구 명예회장)에게 회사를 물려주면서부터 시작됐다.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는 기아를 인수하며 현재의 현대차그룹으로 성장했지만 회사의 토대가 된 '포니'와 관련된 언급은 금기시 됐다.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된 건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회장에 취임하면서부터다. 2020년 10월 취임사를 통해 할아버지인 정주영 창업주와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은 물론 고 정세영 회장 등 선대 회장들의 공로를 언급하며 과거를 인정했다. 이후 현대차는 포니를 비롯한 과거 모델을 활용하는 전략을 폈고 최근엔 달리는 연구소(롤링랩)로 불리는 수소하이브리드스포츠카 'N Vision 74 콘셉트'를 통해 '포니 쿠페'를 오마주한 디자인과 그룹의 최신 수소관련 기술을 접목하는 시도로 찬사를 받았다. 과거에 대한 부분도 일부 언급하면서 '헤리티지'를 활용하기 시작했고, 거장과 함께 과거를 복원하는 작업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오너의 큰 결단 없이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루크 동커볼케 현대차그룹 최고창의책임자(COO)와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이 한국을 찾은 주지아로에게 거듭 질문하며 강조한 건 '엔지니어링' 측면이다. 포니를 만들 때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함께 시도한 능력이 대단하며 이것이 현재의 '현대 스피드'로 발전했다는 메시지를 강조한 것이다. 찬사가 쏟아지자 주지아로는 "(정주영)창업주는 천재였다"고 화답했다. 종합하면 '포니'는 정주영 창업주와 주지아로의 협업으로 만든 차라는 얘기가 된다.루크 동커볼케 COO는 "과거 50년이 포니로부터 시작됐다면 앞으로의 50년은 아이오닉5로부터 시작된다"고 한술 더 뜬다. 이상엽 센터장도 "레트로는 미래가 아니며 미래가 될 수도 없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지 복원에 의의를 둘 뿐"이라고 했다.'포니 쿠페' 복원은 거장의 손을 통해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의 영광을 되살려 정통성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지만 조용히 사라질 이름들이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기자수첩]'총파업' 앞둔 KB손해보험 노조, 명분 있나?
KB손해보험 노동조합(노조)이 12월 초 총파업을 예고했다. 지난 11월 초부터 KB손해보험 노사는 '2022년 임금 및 단체협상'을 진행했지만 임금 인상률과 근무 시간 등을 두고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자 노조는 파업이라는 초강수를 던졌다. KB손해보험 노조가 제시한 협상안은 기본급 8% 인상, 성과급(PS) 700% 지급, 현장직에 50만 복지 포인트 지급, 정년 연장 및 임금피크제 개선 등이다. KB손해보험 노조는 지난 2017년 임금인상률은 1%, 2018년은 2%, 2019년은 1.5%, 2020년은 2%, 2021년은 1.5%에 머무는 등 매년 실적 증가에도 1~2%에서 엎치락뒤치락 한다는 점과 2021년 임직원 평균 급여가 7900만원으로 주요 손해보험사(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중에서 가장 낮다는 점을 근거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중이다. 성과급 또한 2015~2017년 100%, 2018년 200%, 2019~2021년 100%로 책정하는 등 매년 비슷해 성과급 인상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사측은 시장 상황과 경영환경 등을 이유로 수용하기 어렵다며 ▲기본급 3.5% ▲PS 350% 등을 제시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2854억7052만원)이 전년대비 86.2% 증가한데 이어 올해도 3분기까지 5207억원을 기록하는 등 역대최대치가 전망되지만 경기흐름의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노조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노조는 올해 3월 부분파업을 벌인지 8개월 만에 총파업 카드를 꺼내 들며 사측 압박에 나섰다. KB손해보험 노조 총파업에 대해서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도 나온다. 총파업 결의 소식이 알려지자 노조의 집단 이기주의가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당장 "배가 부를 대로 불렀다"라는 지적도 나온다. 노조원들의 임금이 오르고 근무 처우가 개선되더라도 좋은 게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가입자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따가울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KB손해보험 노조 총파업이 시의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 9월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내 금융업권 임직원 횡령 사건 내역'에 따르면 최근 5년여 동안 KB손해보험의 횡령액이 12억300만원으로 보험권에서 가장 많았다. KB손해보험 노조는 이번 파업이 집단 이기주의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인력과 영업지점 축소 기조 속에 직원들의 업무 강도는 더욱 세졌다는 게 파업에 찬성표를 던진 KB손해보험 노조의 입장이다. 노조는 2021년에 이어 2022년 상반기 최대 실적 랠리를 이어온 KB손해보험이 물가 인상분 등을 현실적으로 반영해 임금 인상을 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근로조건에 관한 파업 등 쟁의 행위는 법이 부여한 노동자의 엄연한 권리다. 그렇지만 KB손해보험 노조의 투쟁과 파업 결의가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 싸움에서 보험 소비자와 시장을 위한 '가치'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노조는 KB손해보험의 역대급 실적을 근거로 임금을 무조건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업계 시선은 다르다. 국내외 기준금리 인상 기조에 힘입어 이자 이익이 늘어난 것이지 KB손해보험 직원들의 획기적인 상품과 서비스로 거둔 과실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소비자와 시장의 지지를 잃은 노조가 역사 속에서 숱하게 사라져온 것을 우리는 안다. 회사 안팎의 반대 여론이 높아지는 지금이 노조의 방향성을 재점검할 때다. 묵묵히 일선에서 헌신하는 직원들에게 불명예를 안겨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기자수첩]이동권 보장, GTX, 밥줄… 그리고 은마아파트
이동권(移動權)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자유롭고 안전한 이동을 누릴 수 있는 권리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중요한 기본권 중 하나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보유, 개인 행복 추구, 평등권 등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되는 권리로도 해석된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을 비롯한 많은 법령에서 이동권을 비롯해 교통권, 통행권, 보행권 등의 형태로 구현하고 있는 것도 그 중요성 때문이다. 이동이라는 측면만 보면 단순히 어디론가 움직이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처럼 여겨진 탓에 그 중요성이 위상에 비해 낮게 인식된 것도 사실이다. 이동권 보장도 사회적인 논의를 통해 충분히 확대돼야 했지만 그러하지 못했다. 올해 내내 화두였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시위의 본질도 몸이 불편한 이들의 '이동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시작된 시위다 보니 출근길 불편을 겪은 시민들도 수긍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많은 이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자가격리에 처해진 상황에서 장애인들은 매일 같이 이 같은 자가격리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 공감됐기 때문이다.최근 은마아파트를 둘러싼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노선 갈등은 '이동권'과 '재산권'이 충돌한 경우다. GTX는 수도권 외곽과 서울 도심을 급행열차로 연결함으로써 수도권 거주자들의 이동권을 개선하는 동시에 서울의 인구 집중을 해소해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3차) 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재건축을 추진하는 은마아파트 조합은 GTX 노선 공사가 진행되면 재산권을 침해당한다는 주장을 펴며 노선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지하 60m 이하의 '대심도' 노선을 구축할 계획이어서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거듭 강조하지만, 공염불로 여겨진다.은마아파트 주민 입장에선 재산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수도권 시민들은 그토록 원하는 이동권이 침해된 것으로 생각한다. 공사 지연으로 발생하는 각종 문제와 추가 비용이 얼마나 늘어날지는 가늠조차 안 된다. 이는 모두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는데 특정 집단의 재산권 행사가 다수의 이동권과 재산권, 행복추구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높은 물가상승에 수출부진도 겹쳐 경제가 어렵다. GTX 건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밥줄'이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성경 구절처럼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먼저 생각할 때다. 상생을 먼저 고민하면 나에게 돌아오는 것도 커진다.
[기자수첩] 게임위, 현실 회피만 급급… 역사 속으로 사라질 건가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신작 게임의 사용 연령대를 결정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불명확한 선정 기준으로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게임 유저들과의 소통은커녕 해명조차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해 비판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게임위는 최근 불공정 심의 논란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넥슨 서비컬쳐 게임 '블루 아카이브'가 선정적이라는 민원이 제기되자 갑자기 기존 등급(15세 이용가)을 '청소년 이용불가'로 상향 조정한 일이 도화선이 됐다. 게임위는 게임을 제작·배급하기 전에 등급을 매긴다. 선정성, 폭력성·공포, 사행성 등을 확인해 이를 결정한다. 다만 애플리케이션(앱) 마켓으로 유통되는 모바일 게임은 사후 점검을 통해 등급이 조정된다. 블루 아카이브가 돌연 등급이 바뀐 것도 같은 맥락이다.게임위의 등급 분류가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번 결정을 두고도 전문성이 결여됐다는 게이머들의 성토가 줄을 이었다. 게임위는 선정성을 이유로 블루 아카이브의 등급을 변경했지만 현재 노출 수위가 비슷한 게임들의 등급은 천차만별이다. 싱가포르 '와이푸-옷을 벗기다'는 유저가 여성 캐릭터와 가위바위보를 진행해 이길 때마다 여성 캐릭터의 옷이 사라지는 게임이다. 해당 게임은 15세 이상 등급으로 출시돼 선정성 논란이 일었지만 게임위는 별다른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반면 사행성을 지닌 게임에 대해선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아케이드 게임 바다신2는 과거 사행성 게임의 대명사인 '바다이야기'가 연상되지만 게임위는 전체이용가 등급을 매겼다.상황이 심각해지자 게임위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심사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내년부터 게임 등급분류 관련 회의록을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체로 유저와의 소통보단 변명에 급급했다는 평가다. 그동안 밀실에서 등급 분류가 이뤄진 이유는 설명하지 않고 논란이 된 일에 대해서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김규철 위원장(전 동명대 게임공학과 교수)을 제외하면 게임위 위원 9명 중 게임업계 종사자가 없다는 점도 비판을 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게임 관련 전공자가 별로 없지만 꼭 게임물을 개발하고 저처럼 20~30년 근무해야만 전문가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해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널뛰기 등급 분류가 이어지면서 게임위를 없애자는 얘기까지 나온다. 게임위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심의 기능을 민간 기구로 옮기자는 주장이다. 중국을 빼면 정부 기관이 게임을 심의하는 국가가 드문 만큼 불투명·불공정 심의로 얼룩진 게임위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게임산업은 유저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성장했다. 앞으로 유저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게임산업은 장래를 보장받기 어렵다. 지난해 '확률형 아이템' 등 논란에 게임사들이 소극적으로 대처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이후 소통을 강화하는 등 환골탈태했다.게임위도 이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 등급 분류는 게임의 이용자층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다. 게임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그 무게를 다시금 직시해야 한다. 게임업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자신들을 바꿔 나가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기자수첩] '건설 지원' 롯데케미칼, 대규모 유상증자… 주주 배려 어디에
롯데케미칼이 1조원 넘는 대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하면서 주주 피해가 우려된다. 주식 수가 늘어난 만큼 기업가치가 희석돼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롯데케미칼은 롯데그룹 영향으로 롯데건설을 지원한 것으로 관측되는데 그룹 지시로 재무 부담을 늘리고 주주들을 이용해 자금을 조달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롯데케미칼은 지난 11월18일 공시를 통해 1조105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신주 850만주(보통주)를 발행하는데 발행가액은 1주당 13만원으로 예정됐다.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은 기업 운영에 5000억원,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에도 6050억원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케미칼은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하기 위해 총 2조7000억원가량을 사용할 계획이다.롯데케미칼 유상증자 결정에는 주주들을 배려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유상증자는 회사가 추가 발행한 신주를 주주들에게 돈을 받고 파는 방식이다. 롯데케미칼이 유상증자로 신규 발행하는 주식 수는 현재 상장 주식 수(3427만5419주)의 24.8% 수준에 달한다. 유통 주식 수가 늘었는데 기업가치에 변화가 없으면 주가 하락은 불가피하다. 롯데케미칼 주가가 신주 발행가액인 13만원 안팎으로 유지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유상증자 계획이 발표된 날 종가(16만7000원)보다 22.2% 낮은 가격이다.롯데케미칼은 롯데건설에게는 총 약 5876억원의 보유 현금을 지원하고 필요한 인수합병(M&A)에는 굳이 주주들에게 손을 벌렸다. 대출 또는 회사채 발행으로도 자금 조달이 가능하지만 높은 금리를 부담하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롯데케미칼에 대한 원성이 자자한 이유다.롯데그룹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롯데그룹 지배구조가 신동빈 회장→ 롯데지주→ 롯데케미칼→ 롯데건설 등으로 연결된 점을 감안해 롯데케미칼이 롯데건설 지원에 나설 수밖에 없었지만 그룹 차원의 지원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롯데지주는 롯데케미칼 유상증자 참여 여부도 확정하지 못했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지난 11월21일 유상증자 콘퍼런스콜에서 롯데지주의 유상증자 참여 가능성에 대해 "개별기업 이사회 결의사항이어서 확정적인 답은 어렵다"고 밝혔다.롯데케미칼 주주들은 주가 하락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보유 주식을 팔거나 유상증자에 참여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일부 주주들은 유상증자 시점을 지적하며 "주식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데 유상증자를 추진해야 하는가"라며 토로한다. 주가가 하락한 후 반등하기 쉽지 않다는 주장이다.롯데케미칼은 지난 3월31일 '2022 최고경영자(CEO) IR Day'를 열고 주주 환원 정책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3년간 총 3000억원의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고 올해부터 중간배당을 실시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시황 악화 등을 이유로 중간배당 계획은 철회하고 유상증자를 추진하면서 롯데케미칼이 공언한 주주 환원 정책은 공염불이 됐다.
[기자수첩] 조선업 인력난 해법,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로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만 이대론 미래가 안 보인다. 임금, 복지, 처우 등 뭐 하나 나은 게 없는데 누가 배 만들러 오겠나."취재 과정에서 조선업 기술자에게 들은 말이다. 베트남 등에서 건너온 외국인 노동자가 많아지자 업계에선 우스갯소리로 국내 조선소에서 만든 배는 '메이드 인 베트남'이라고 말하기도 한단다.지난 4월 정부가 인력난을 호소하는 조선업의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가장 수요가 많은 도장공과 용접공에 대한 전문인력 비자(E-7) 쿼터제를 폐지하면서 외국인 인력 유입이 대폭 늘었다. 지난 8월에는 한 해 동안 고용허가제(E-9)로 국내에 들어올 수 있는 외국 인력 신규 입국 쿼터를 기존 5만9000명에서 6만9000명으로 1만명 늘렸다.현장에선 외국인 노동자 유입만으론 인력난을 해소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외국인 노동자 역시 열악한 처우로 조선업을 떠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외국인 근로자가 많아지면서 안전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처우 개선과 임금 인상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원청과 하청, 하청의 하청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 개선이 시급하다. 조선업이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약 7만6000명의 노동자가 대량 해고됐다. 남아있는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30%가량 하락했다.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 유입, 근로 시간 확대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며 변죽만 울리고 있다.지난 10월19일 정부가 발표한 '조선산업 초격차 확보 전략'에 따르면 기존 90일이었던 특별연장근로 활용 가능 기간을 180일까지 확대하고 단순노무(E-9) 인력을 숙련기능(E-7) 비자로 전환할 수 있는 조선업 쿼터를 신설할 계획이다. 생산인력 양성을 위해 교육과정을 신설하고 수료생이 조선업 관련 기업으로 취업 시 6개월 동안 60만원을 지원하겠다는 내용 등도 담겼지만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은 없었다. 정부가 제시한 인력 양성과 신규채용 인센티브 등은 이미 과거에 제시됐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우리는 이미 조선업 인력난의 해결책을 알고 있다. 다단계 하도급을 법으로 금지하고 정규직 중심의 고용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정책은 인력 유출을 가속화해 한국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릴 수밖에 없다.한국의 조선업이 중국의 물량 공세에 맞설 수 있는 원동력은 뛰어난 기술 덕분이다. 국내 조선사는 고부가가치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으로 4년 치 수주잔고를 모두 채웠다. 지난달 기준 LNG운반선의 척당 선가는 2억4800만달러(3400억원)에 달한다.한국 조선업의 기술력 확보는 숙련공과 인재 유치를 통해 가능하다. 현장에서 사수가 후배를 가르치는 도제식으로 운영되는데 외국인 인력이 빠져나가면 기술 이전이 단절될 우려가 있다.근본적인 해결이 없으면 조선업의 미래도 없다. 한국 조선업이 세계 무대에서 순항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바람을 불어넣을 때다.
[기자수첩] FTX의 몰락, '빛 좋은 개살구' 가상자산의 현주소
가상자산거래소 FTX의 파산사태로 가상자산 시장이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FTX사태 피해규모는 피해자가 28만명, 피해금액이 77조원에 달했던 테라·루나사태 보다 더 클 것으로 보인다.FTX는 2019년 설립 후 가상자산 시장 성장에 따라 몸집을 키웠다. 혁신적인 기술과 뛰어난 사용자 환경(UI)으로 투자자들을 대거 끌어모았고 올초 기업가치는 320억달러(약 44조원)를 인정받았다. 외형성장과 달리 기업의 자산 건전성은 부실했다. FTX의 핵심 관계사인 알라메다의 대차대조표를 들여다보면 자산(146억달러) 대부분이 FTX 거래소가 발행한 자체 코인(FTT)으로 채워졌다. FTT 코인 가격이 무너지면 알라메다와 FTX가 연쇄 부도나는 수익 구조인 셈이다. 1992년생 샘 뱅크먼-프리드 FTX 최고경영자(CEO)도 투자 유치금으로 가상자산 사업과 거리가 먼 홍보에 치중했다. 지난해 FTX는 미국프로농구(NBA) 마이애미 히트 홈구장에 19년간 명명권을 사용하는 데 1억3500만달러(약 1780억원)를 투입했고 구장 이름을 'FTX 아레나'로 변경했다. 올 초에는 미국프로풋볼(NFL) 결승전 슈퍼볼 광고를 사들였다. 슈퍼볼 중계시 30초 광고 단가는 700만달러(약 92억원)에 달한다. '코인계의 JP 모건', '코인계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며 유명세를 떨쳤던 CEO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평소 행사장에서 FTX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와 헐렁한 반바지 차림으로 자유롭고 소탈한 이미지를 내세웠지만 독재적 CEO의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다. 실제 뱅크먼-프리드는 FTX의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할 때 외부 조언을 듣지 않고 소수의 의견에만 귀를 기울였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당시 직원들은 FTX의 핵심 사업과 관계가 적은 영역까지 투자금을 투입하는 데 우려가 컸다고 전했다. FTX사태로 국내 투자자들의 천문학적인 피해 규모가 우려된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자산 출금이 막힌 FTX 국내 이용자 수는 1만명 이상에 달하고 FTX의 가상자산에 23억원가량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채권자도 당초 알려진 10만명의 10배인 100만명 이상으로 집계됐다. 금융당국은 가상자산 투자자의 피해 우려가 확산하자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최근 이번 FTX 사태와 관련해 "디지털자산 기본법과 공정거래법 등 국회 법안 심사 시 이용자 보호 대책이 논의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FTX의 몰락으로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국내 거래소는 해외 거래소에 비해 예치금 관리와 수익구조가 탄탄한 편이다. 하지만 외형성장에만 급급해 자산 건전성 관리를 소홀히 하거나 내실을 외면하는 순간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FTX사태의 파장은 어디까지 갈까. 하루아침에 파산한 FTX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가 투자자 보호를 위한 건전성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기자수첩] 없던 일 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새 정부의 규제혁신 1호로 떠올랐던 대형마트 영업 규제가 유지될 전망이다. 10년 만에 논의됐던 의무휴업 폐지가 도마 위에서 내려갔다.지난 7월 대통령실은 '국민제안 톱10'을 발표했다. 온라인 국민투표를 거쳐 상위 3개 우수제안을 국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추천할 계획이었다.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국민제안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다. 예상된 결과였다. 소비자들은 의무휴업일에 대한 불편을 꾸준히 표출해 왔다. 해당 안건은 57만여개의 '좋아요'를 얻으며 규제 개선에 속도가 날 것으로 기대됐다.하지만 규제 개선은 사실상 무산됐다. 대통령실은 어뷰징(중복 전송) 문제로 우수 국민제안 상위 3건을 발표하지 않았다. 대형마트 영업 규제 완화 여부를 다룰 예정이었던 규제심판회의도 연기되면서 흐지부지됐다.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은 2012년 도입됐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의무휴업을 포함한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에 따라 대형마트는 일요일을 포함한 공휴일, 월 2회 쉬어야 한다. 영업을 하는 날에도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문을 닫는다.2010년에는 전통시장 500m 이내에는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을 출점하지 못하도록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됐다. 2011년에는 전통시장 1㎞ 내에 출점을 제한하는 내용으로 한 차례 더 개정되면서 규제가 강화됐다.해당 규제는 본래 취지인 골목상권 보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대형마트가 쉰다고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에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대형마트 등에 대한 유통규제 관련 소비자 인식 조사'를 보면, 대형마트 휴무일에 전통시장을 방문한 소비자는 8.3%에 불과하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도입 이후 전통시장 매출이 늘었다는 통계도 없다. 소비자 의견은 배제된 채 이해당사자의 의견만 수렴한 법이라는 지적이 거세다.전통시장의 문제는 ▲불투명한 가격 ▲판매 과정에서의 미흡한 위생 상태 ▲불친절한 서비스 등이다. 대형마트를 쉬게 할 것이 아니라 이를 해결하고 경쟁력을 강화할 방안을 고안해야 한다.정부는 유통업계와 함께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와 관련해 중소유통 역량강화 지원과 업계가 수용가능한 수준의 일부 규제개선을 포함한 상생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업계 간의 충분한 의견수렴과 합의를 바탕으로 상생방안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새 정부는 규제 혁신을 강조해 왔다. 다만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유통업계 규제는 아무것도 나아진 것이 없다. 윤 대통령은 "당장은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서 소상공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했으나 진전된 게 없어 '눈치 보기'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왔다.규제 혁신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부 이해관계자의 반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규제 혁신 추진은 온라인 국민 투표를 통한 '국민제안'이라는 점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접근을 통한 투표가 발생했다며 무효가 됐고 국민제안 홈페이지는 멈춰 있다. 정부의 준비성 부족과 '아니면 말고' 식의 추진력에 한숨을 짓는 이들이 많다.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답만은 아니다. 문제는 준비 없는 정책 추진이다. 상생 방안을 고려한 규제 혁신을 위해서라면 국민제안에 부치기 전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먼저 수렴해야 했다.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라면 투표 시스템 관리에 만전을 기했어야 했다. 제 발톱으로 제 살을 뜯어야 하는 혁신에 앞서 기본에 충실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자수첩] 건설업체들의 볼썽사나운 재개발·재건축 수주전
시공능력평가(2022년 기준) 6위 대우건설과 8위 롯데건설의 대결로 주목을 받았던 서울 용산구 '한남2재정비촉진구역'(이하 '한남2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 시공사 선정 경쟁이 대우건설의 승리로 끝났다. 지난 11월5일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열린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임시총회 결과 대우건설이 410표를 얻어 시공사로 선정됐다. 이날 총회엔 전체 조합원 908명 가운데 760명이 참석했다. 롯데건설은 342표를 획득했다. 대우건설은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한 '한남 써밋'을 조합에 제시하고 첨단 설계로 단지를 한강변 랜드마크로 재탄생시킨다며 표심을 잡았다.한남2구역을 사이에 둔 두 대형 건설업체의 수주 전쟁은 끝이 났지만 뒷맛이 깔끔하진 못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또 하나의 재개발사업 쟁탈전으로 기록될 듯싶다. 시대가 흐르고 정부의 제도 개선과 건설업체들의 노력으로 불법적인 홍보 방식이 개선된 것으로 보이지만 아쉬움은 여전하다.두 건설업체의 신경전은 시공사 선정 날을 며칠 앞두고 극으로 치달았다. 지난 11월2일 시공사 선정을 위한 부재자 투표 현장에 대우건설 직원이 무단침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투표가 중단됐다. 이날 현장에는 대우건설과 롯데건설 직원이 각 1명씩 배정됐다. 당시 롯데건설과 일부 조합원은 현장에 양사 직원 외 대우건설 측 직원이 무단침입을 해 조합원에게 발각됐다고 주장했다. 롯데건설에 따르면 대우건설 측 직원은 발각되기 전 부재자 투표 용지에 접근해 자리를 옮겨가며 조합원 개인정보가 담긴 조합 컴퓨터에서 6명의 투표를 지켜보고 전산 작업을 진행했다. 이에 문제 제기가 이뤄졌고 투표는 1시간20분가량 중단됐다. 롯데건설 측은 해당 행위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롯데건설의 이 같은 주장에 대우건설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대우건설은 해당 직원이 주차 안내를 지원하기 위해 고용된 아르바이트생이라고 해명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조합 직원이 아르바이트생에게 방문 목적을 물었고 아르바이트라고 대답하자 조합이 고용한 아르바이트생이라고 착각해 단순 업무를 지시했다"고 해명했다. 대우건설과 롯데건설은 각종 음해성 비방은 물론 언론 매체에 연일 해명자료를 보내며 힘겨루기를 했다. 도시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 수주를 위해 조합원들에게 금품을 돌리던 과거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클린 수주와 공정 경쟁을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기자수첩] 제2의 신라젠 사태 막으려면
"펙사벡 하나 믿고 첫 주식으로 신라젠 평단(평균매입단가) 3만원대에 전 재산을 몰빵했던 주린이(주식+어린이)입니다. 거래 첫날 상한가에 전액 손절했는데 정리매매까지 염두에 뒀던 터라 단돈 몇 푼이라도 건지니까 기분은 좋네요."최근 한 대형 포털 주식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의 일부분이다. 수년간 상장폐지 기로에 몰렸던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극적인 기사회생에 성공하면서 최근 주식시장에 속속 복귀하고 있다. 지난달 주식거래가 재개된 바이오 기업만 3곳에 달한다. 지난달 7일 큐리언트에 이어 13일과 25일에는 각각 신라젠과 코오롱티슈진이 화려한 복귀를 마친 상태다.이들 종목에 투자자금이 묶여있던 개인투자자들도 일단은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위기다. 소액주주 숫자는 큐리언트가 1만명, 신라젠 16만5000여명, 코오롱티슈진 6만여명 등 총 24만명에 달한다. 소액주주들은 상장폐지로 하마터면 보유했던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었던 탓에 거래할 기회가 생긴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주주연합 카페와 종목토론방 등에서도 '오랜 시간 마음고생 많으셨습니다' '주주분들 축하합니다' 등과 같은 안도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하지만 경영진의 횡령·배임 혐의로 거래가 정지됐다 기사회생하는 데 성공한 이들 주가 흐름은 좋지 못하다. 거래정지 시간이 길었던 만큼 변동성이 커 주가가 롤러코스터 흐름을 보여서다. 가뜩이나 최근 증시 약세로 인해 투자심리가 약화한 가운데 오랜 기간 이어진 거래정지가 풀리면서 급격하게 매수세가 몰렸다가 또 대량으로 매물이 나오면서 변동성이 커졌다는 설명이다.먼저 부활에 성공한 신라젠은 거래정지 직전 종가(1만2100원) 대비 30.74% 낮은 8380원에 거래가 재개됐다. 이후 이틀 연속 상한가를 찍으며 1만4000원대까지 치솟았지만 거래 재개 4일째부터 주가가 11% 가까이 빠진 뒤 이달 초에는 거래정지 이전보다 낮은 1만1000원대로 떨어졌다.코오롱티슈진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코오롱티슈진은 지난달 25일 거래 시작과 동시에 주가가 1만6050원에서 2만850원으로 30% 급등하며 상한가로 마감했다. 하지만 이후 주가는 15% 넘게 곤두박질치며 이달 초 기준 거래재개 첫날 가격보다도 내려온 상태다.바이오 기업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가 크게 떨어져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점도 주가엔 부담이다. 임상 및 기술수출 성과를 과대 포장하거나 배임 및 횡령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바닥으로 추락한 바이오 업계에 대한 신뢰도가 여전히 회복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주가가 반등하기 위해서는 기업 영속성을 꾸준히 증명하는 것은 물론 기업 활동 전반에 대한 자본시장의 신뢰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주식 커뮤니티에는 "신라젠 덕분에 주식 공부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 바이오주는 다시 쳐다도 안 볼 계획입니다" 등의 비난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바이오 기업들은 거래가 재개됐지만 여전히 투자자들에게는 큰 생채기가 남아 있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주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들 기업 스스로 내부 시스템 관리를 보강해야 할 것이다. 주식거래 정지와 재개가 반복되는 시장에서 감독 당국 역시 내부 통제와 처벌 기준의 제도적 방안을 촘촘히 마련 할 때다.
[기자수첩] '금리 공포'에 성장 보다 생존 택한 카드사
"당장의 생존이 걱정이니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죠. 빅테크 공세로 카드사들의 입지가 좁아질 거라는 말도 나오지만 진짜 두려운 건 그게 아니에요"최근 기자가 만난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연신 한숨을 내뱉었다. 업황이 어려워도 이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는 거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이미 카드업계는 첩첩산중이다.수수료율 인하는 여전히 수익성의 발목을 잡고 있고 지난해부터 이어진 기준금리 인상으로 여신전문금융회사채금리가 올라 조달비용 증가라는 복병까지 만났다. 가장 신용도가 높은 AA+ 여전채 3년물 금리는 지난달 연 6.082%까지 치솟으며 2010년 이후 처음으로 6%대를 기록했다.카드사는 예·적금 등의 수신 기능이 없어 카드론(장기카드대출) 등 대출 사업에 필요한 자금의 70% 이상을 여전채를 통해 조달한다. 문제는 기준금리가 오르면 채권금리가 상승하고 카드사의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나게 된다는 점이다. 여전채를 매입한 금융사들에 지급해야 할 이자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조달비용 확대는 결국 카드사의 수익성 하방 압력으로 이어진다.카드사의 올해 3분기 성적표를 뜯어보면 이 같은 흐름이 체감된다. 신한·KB국민·우리·하나카드 등 금융지주 계열 카드사와 삼성카드 등 5개 카드사의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1조7411억원으로 전년동기(1조7085억원) 보다 약 1.9% 오르는 데 그쳤다.1년 전과 비교해서는 나아졌지만 분기별로 살펴보면 상황이 다르다. 신한카드의 3분기 순이익은 2분기보다 26.1% 줄었고 같은 기간 삼성카드도 9.5% 감소, KB국민카드는 15.9% 줄었다. 조달비용이 늘어난 점이 주효했다.문제는 금리 인상에 따른 조달비용 증가 여파가 카드사에게만 미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조달비용은 카드론 금리에 반영돼 여전채가 오르면 카드론 금리가 덩달아 오르게 된다.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카드의 9월 카드론 평균 금리는 12.02~14.42%로 나타났다. 카드론 평균 금리는 올해 7월까지만 해도 12%대에 머물렀지만 지난 8월 13%까지 올라섰다. 이는 2금융권 금융소비자의 대출 문턱이 높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카드사들은 저신용자 비중을 줄이고 고신용자 위주의 영업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돈을 빌리지 못한 저신용자들은 불법 사금융으로 이탈될 수 있다. 이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또 한 번 올리면 우려는 더 커진다. 상황이 이렇자 카드사 수장들은 올해 하반기 경영 전략을 위기대응에 방점을 찍었다. 사실상 비상경영에 돌입한 셈이다.금리 인상 여파에 카드사가 휘청이고 있다. 카드사 문을 두드린 대출자들의 시름도 덩달아 깊어지고 있다. 금리 상승기에 자금시장 변동성까지 겹치면서 카드사의 유동성과 자산건전성 관리가 중요해졌다.금융위는 지난달 25일 여전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자금조달과 관련한 업권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후 28일엔 금감원·금융협회·금융회사·정책금융기관과 함께 자금시장 관련 현황 점검회의 개최해 시장소화가 어려운 회사채·여전채 등의 매입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계와 금융당국의 공동 노력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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