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기자노트/염윤경]금융권 AI 해킹, 증권가는 안전한가
"금융사 해킹이나 전산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 증권 계좌는 괜찮을지 걱정돼요." 기자가 만난 한 투자자는 최근 은행권 해킹을 두고 이같이 우려했다.그럴 만도 하다. 최근 금융권에서 인공지능(AI) 도구를 쓴 것으로 추정되는 해킹이 이어졌다. 증권가에서 AI 해킹 피해를 입었다는 얘기는 아직 없다. 그러나 IT 시스템 관련 사고라고 하면 은행보다 증권이 먼저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박준태 의원(국민의힘)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부터 올 8월까지 자기자본 3조원 이상 종합금융투자사업자 10개사에서 발생한 전산 사고는 113건에 달했다. MTS(모바일거래시스템) 계좌잔고 조회 서비스 장애, 프로그램 오류 등의 사고들이다.물론 이들 전산사고가 모두 해킹 때문에 발생한 게 아님은 다들 안다. 그러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원인이 무엇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 계좌와 주문은 안전한가'가 제일 중요하다. 증권사는 타 금융업권보다 전산사고에 따른 투자자 체감 피해가 즉각적일 수 있다. MTS와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는 개인정보뿐 아니라 실제 투자금과 주식이 있고 매 순간 매수·매도 주문이 오간다. 단 몇분 사이에도 누군가는 손실을 볼 수 있다.최근 은행권 해킹 사태는 투자자들에게 더욱 불안하게 다가온다. 고객의 돈과 정보를 다루는 금융회사에서 사고가 반복되면 보안 시스템이 충분히 촘촘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사고 후 원인을 파악하고 시스템을 고치는 것으로는 한번 흔들린 신뢰를 되돌리기 어렵다.최근 증권사들은 AI를 활용한 투자정보와 상담 서비스, MTS 고도화 등 디지털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투자자는 갈수록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를 누리고 있다. 편리함은 안전을 전제할 때 의미가 있다. 은행 사고를 남의 일로 넘기지 않고 외부와 맞닿은 시스템부터 점검하며 보안 인력과 예산을 늘려 가기를 기대한다. 걱정 없이 앱을 켜는 투자자가 늘수록 증권사의 경쟁력도 커간다.
[기자노트/양진원]AI정책, 5G 시행착오 되풀이하나
"애쓰는 건 알겠지만 방향성이 보이질 않습니다"얼마 전 만난 AI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 청사진을 묻자 힘없이 답했다.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보안 특화 AI 파운데이션 모델(보안특파모), 모두의 AI, 프런티어(최상위) AI까지 사업은 늘고 있지만 이를 한 방향으로 이끌 전략은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프로젝트 하나에 몰두하기에도 벅찬데 새 과제가 나올 때마다 구색을 맞춰 뛰어들어야 하는 실정이다.2019년 세계 최초 5G 상용화 때도 그랬다. 정부와 통신사는 최초라는 화려한 성과를 앞세웠지만 이용자들은 기대에 못 미치는 속도에 분통을 터뜨렸다. LTE보다 20배 빠르다던 5G는 화려한 간판을 먼저 달았을 뿐, 망과 서비스 기반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AI 정책에서도 기시감이 든다. 가시적인 결과를 재촉하면서 정책의 초점은 흐려지고 예산과 행정력은 분산됐다. 독파모는 세계적인 수준의 독자 AI 모델을 구축한다는 당초 취지가 옅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안 위협에는 보안 특파모, 해외 초고성능 모델에는 프런티어 AI가 뒤따랐고 대국민 서비스는 모두의 AI로 별도 추진됐다.최근 1년 사이 프로젝트가 잇달아 발표되면서 이름조차 헷갈린다. 연초부터 준비해도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과제를 하반기에 새로 꺼내 드는 모습에서는 정부의 조급증마저 읽힌다. 현안이 생길 때마다 사업을 덧붙이면 선택과 집중은 어려워지고 행정 비용도 커진다. 정책 중심이 계속 흔들린다면 미국과 중국이 긴장할 만한 AI 3강은 요원하다.올림픽 동메달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년간 일관된 훈련과 안정적인 지원이 쌓여야만 가능하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도 불안한 마음에 자신의 수준과 맞지 않는 심화 학습에만 매달리면 오히려 독이 된다.정부가 AI 3강이라는 달콤한 구호에 취해 단기 성과만 좇는다면 5G 때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수 있다. 급할수록 우선순위를 세우고 정책 역량을 한곳에 모아야 한다. AI 패러다임 전환에 제대로 대응할 백년대계를 마련해야 한다.
[기자노트/최유빈]지피지기 백전불태, 현대차의 용기
현대자동차그룹이 자율주행차의 실수를 그대로 공개했다. 지난 13일 내놓은 주행 영상에는 차가 길을 잘못 들고 망설이는 순간까지 담겼다. 잘 달리는 장면만 추리지 않았다. 어디가 부족하고 무엇을 고칠지도 함께 설명했다. 늦게 출발한 회사지만, 실력을 숨기지 않았다.자율주행 인공지능 '아트리아 AI'를 얹은 시험차는 경기 판교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달렸다. 동작대교 분기점에서는 갈 길을 헷갈려 엉뚱하게 차선을 바꿨다. 보행자와 오토바이가 뒤엉킨 우회전 구간에서는 횡단보도가 비었는지 확인하느라 한참 멈춰 섰다. 대개 이런 장면은 편집에서 사라지는데 그렇지 않았다. 조수석에는 박민우 현대차·기아 AVP본부장 사장 겸 포티투닷 대표가 앉아 차가 헤맬 때마다 이유를 짚었다. 차로가 사라지는 구간에서 차가 뒤늦게 진로를 바꾸자 그는 "자동으로 하기는 했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차가 달리는 내내 그는 자기 회사 기술을 뜯어봤다.앞선 시연회 발표도 다르지 않았다. 박 사장은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과 좋은 AI를 만드는 것은 완전히 서로 다른 역량"이라고 말했다. 정해진 설계대로 완성도 높은 제품을 거듭 만들어내는 일과 데이터를 먹여 모델을 계속 고쳐나가는 일은 다르다는 것이다.기술 발표회란 가장 잘 된 장면만 골라 내보이는 자리다. 그 자리에서 못하는 것부터 꺼내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부족함을 정확히 짚는 눈과 그것을 고칠 방법이다.자율주행은 한 번의 시연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매일 도로에 나가 문제를 찾아 그 문제를 학습시켜 고치고 고친 결과를 다시 도로에서 확인해야 한다. 그 반복된 행동이 기술을 발전시킨다. 실수를 감추면 개선될 수 없다. 이번 공개가 개발 방식의 변화로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갈 길은 여전히 멀다. 현대차그룹은 늘 뒤에서 출발해 앞을 따라잡아 온 회사다. 그 추격을 가능하게 한 것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냉정하게 아는 눈이었다. 이번에는 못하는 것을 먼저 보여줬지만 다음에는 그 부족함을 얼마나 메웠는지 보여주길 바란다.
[기자노트/전민준]종이값 논란의 본질
"제지업계가 가격 인상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시장의 신뢰부터 얻어야 합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업계라면 시장이 납득할 만한 근거와 과정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는 주문이 뒤따랐다.제지업계가 인쇄용지 가격 인상에 나서자 인쇄업계가 철회를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가격을 둘러싼 갈등처럼 보인다. 논란은 가격 자체보다 가격이 결정되는 과정을 믿을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인쇄업계가 의구심을 갖는 이유는 분명하다. 공정위는 지난 4월 인쇄용지 제조사 6곳의 담합을 적발해 총 338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6월 리니언시가 적용되면서 과징금은 1441억원으로 줄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격 인상이 이어졌다.제지업계는 펄프 가격과 환율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을 이유로 든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펄프 가격은 지난해보다 두 자릿수 상승했다. 원가 부담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펄프 가격과 환율에 크게 영향을 받는 업종 특성상 원재료 가격 상승을 기업이 떠안을 수는 없다. 펄프값이 오르면 누군가는 그 부담을 져야 한다. 종이값을 언제까지 묶어둘 순 없다.시장은 담합 이력이 있는 업계에 더 높은 설명을 요구한다. 원가가 올랐다는 사실과 가격 인상의 정당성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직후 이뤄진 가격 인상이라면 시장은 원가보다 가격 결정 과정부터 들여다본다. 제지업계가 해야 할 일은 인상 필요성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원가가 얼마나 올랐고, 기업이 얼마나 자체 흡수했으며, 지금의 인상폭이 왜 필요한지 시장이 검증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일이다. 담합으로 훼손된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 없이 가격 인상만 이야기한다면 반발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시장이 묻는 것은 다른 질문이다. 왜 지금 올려야 하고 왜 이 정도 인상폭이어야 하는가. 가격은 숫자로 결정되고 신뢰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종이값 논란의 본질은 가격이 아닌 신뢰인 이유다.
[기자노트/김다솜]중국 뷰티 추격보다 무서운 것
중국 뷰티 추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을 발판 삼아 성장한 중국 브랜드가 국내외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히며 K뷰티를 위협한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현장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정작 그들이 더 경계하는 것은 중국 브랜드보다 현재 경쟁력에 안주하는 태도였다.중국 브랜드가 한국 ODM사를 활용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한국의 제조 기술과 생산 인프라를 바탕으로 제품 개발 속도를 높이고 시장 대응력을 키워온 지 오래다. 기술 격차가 존재한다는 평가가 우세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수준이 아니다. 얼마나 빠르게 따라오고 있는지다.화장품은 개발부터 출시까지 수개월이면 가능한 산업이다. 그만큼 변화 속도는 빠르다. K뷰티가 경쟁 우위를 유지하려면 새로운 제형과 원료, 제조 기술 개발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성과에 기대 연구개발과 혁신의 속도를 늦추는 순간 추월당할 수 있다.인디·중소 브랜드가 느끼는 위기감은 더 크다. 비슷한 제품이 더 낮은 가격에 시장에 나오면 브랜드 가치가 흔들릴 수 있어서다. 화장품 포장에 표기된 제조업자 정보를 통해 같은 ODM사를 찾고 유사 제품 생산을 의뢰할 수 있다는 업계 불만이 있다.그렇다고 제조사 정보 공개를 막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제품의 등장을 막는 것과 비슷한 제품이 나와도 소비자가 기존 브랜드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제품력과 기획력, 소비자와의 신뢰가 뒷받침된 브랜드는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시장 진입 장벽이 낮아질수록 브랜드의 힘은 더욱 중요해진다. 소비자는 성분표만 보고 제품을 고르지 않는다. 제품력과 사용 경험,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선택을 좌우한다. 인디 브랜드가 지켜야 할 자산 역시 제조사가 아니라 소비자 신뢰다.K뷰티가 경계해야 할 것은 중국 뷰티의 추격이 아니다. 산업의 경쟁력은 앞서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계속 앞서 나가는 능력에 있다. 중국의 추격이 빨라질수록 K뷰티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경쟁자가 아니라 안주다.
[기자노트/김이재]'K록히드마틴'으로 가는 대형화 조건
최근 방산업계 관계자들과의 대화는 늘 한화그룹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 얘기로 끝난다. 업계 전반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인 만큼 의견도 분분하다.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려면 대형화가 필요하다는 시각과 국내 방산 생태계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맞선다. 한화그룹이 현재 보유한 KAI 지분은 15.89%다. 지난 5월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한 뒤 꾸준히 주식을 사들여 2대 주주까지 올라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31일 한화의 KAI 주식 취득을 승인했다. 최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 26.41%에 국민연금공단 8.75%를 더한 정부 측 지분이 35.16%에 달해 한화가 지배력을 확보한 수준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한화가 그리는 청사진은 육·해·공·우주를 아우르는 종합 방산기업, 이른바 '한국판 록히드마틴'이다. 미국 국방·안보 전문매체 디펜스뉴스가 발표한 '2026 방산기업 톱100'에서 한화는 16위에 올랐다. 유럽을 중심으로 수출을 확대하며 글로벌 방산기업으로 성장했지만 톱10 진입까지는 갈 길이 멀다. 완제기 개발·생산 역량을 갖춘 KAI가 한화의 빈틈을 채울 마지막 퍼즐로 꼽히는 이유다. 같은 명단에서 KAI는 전년보다 8계단 내려간 74위였다.KAI 노조는 인수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항공 분야에서는 공급업체와 고객사, 우주 분야에서는 경쟁업체로 얽힌 양사가 결합할 경우 협력 업체의 사업 기회가 줄고 시장 경쟁도 위축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KAI가 완제기 생산에 필요한 부품사를 독립적으로 선정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그렇다고 해서 '방산 4대 강국' 도약을 위한 대형화의 필요성까지 부정하기는 어렵다. 미국 역시 자국 방위산업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형화를 택했다. 냉전 종식 이후인 1993년 미국 정부는 주요 방산업체에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51개에 달했던 주요 방산 원청업체는 5개 대형사 중심으로 재편됐고 이 과정에서 록히드마틴도 탄생했다.미국 정부가 대형화를 무조건 허용한 것은 아니다. 방산기업의 몸집이 커질수록 심사의 문턱을 높였고 독과점 우려가 크다고 판단하면 제동을 걸었다. 미 법무부는 1998년 시장 경쟁과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해 록히드마틴의 노스롭그루먼 인수를 무산시켰지만, 2018년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노스롭그루먼의 오비탈ATK 인수를 조건부로 승인했다. 당시 경쟁사 대상 고체 로켓모터의 비차별적 공급과 민감 정보 유출 방지를 위한 방화벽 구축 등을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대형화의 이점은 살리되 시장 경쟁을 지킬 안전장치도 함께 마련한 것이다.미국보다 규모가 작은 국내 방산시장에서는 특정 기업으로 역량이 쏠릴 때 부작용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부품업체의 사업 기회가 줄고 시장의 선택지가 좁아지면 장기적으로 경쟁과 혁신까지 약화할 수 있다. 한 기업의 성장이 산업 전체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록히드마틴 탄생을 가능하게 한 것도 무분별한 독점에 제동을 건 것도 미국 정부였다. 한국판 록히드마틴 역시 기업에만 맡길 수는 없다.수출입은행은 KAI 지분 매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정부는 민영화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에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세워야 한다. 구체적으로 방위사업 발주 과정에서 다양한 업체가 경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중소 업체에도 사업 기회를 넓힐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한화 역시 KAI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기존 협력 업체와의 거래 기회를 유지하는 등 실질적인 상생 방안을 내놔야 한다. 세계 시장에서 맞설 한국판 록히드마틴이라는 거인은 필요하다. 거인을 키우는 과정에서 그 발밑의 국내 생태계가 짓밟혀서는 안 된다.
[기자노트/이한듬]베를린에서 마주한 '차이나 쇼크'
"이게 중국 제품이라고?"지난 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에서 개막한 유럽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IFA 2026'은 최근 몇년간 눈에 띄게 달라진 중국 기업의 위상을 체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전시장 입구부터 중국 기업들의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삼성전자와 미니LED TV를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 중국 TCL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IFA의 메인 스폰서 자리를 꿰찼다. 전시장 안 상황은 중국의 존재감이 더욱 뚜렷했다. TV와 생활가전은 물 인공지능(AI), 스마트홈, 휴머노이드 로봇에 이르기까지 중국 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올해 IFA에 참가한 중국 기업은 932곳. 지난해보다 약 200곳 이상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IFA 2026 전체 참가 브랜드수가 1900여개인 것을 감안하면 절반 가량이 중국 기업인 셈이다.불과 몇 년 전만 해도 IFA에서 만나는 중국 제품에는 묘한 선입견이 있었다. 가격은 싸지만 품질이나 디자인은 아직 한국이나 일본 기업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인식 탓이다.어쩌다 괜찮은 제품이 눈에 띌 경우 '대륙의 실수'라는 조롱이 따라붙었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 제품의 디자인과 기능을 베낀 '싸구려 저품질'로 악명 높은 중국 기업이 우연히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는 것은 단순히 실수에 불과하다는 의미에서다.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전시장 곳곳에 놓인 중국 제품들은 한국 기업의 것과 견줘도 손색이 없었다. TCL과 하이센스가 전시장 전면에 배치한 TV는 하드웨어적으로 삼성전자·LG전자 제품과 크게 차이점을 느끼지 못할정도로 기술 수준이 높았다.가장 놀라운 것은 휴머노이드 로봇이었다. 샤오미의 휴머노이드 로봇 '샤오미 사이버원'은 사람의 손동작을 그대로 흉내내며 자연스럽게 손하트를 만들었다. 손가락 마디 마디의 관절의 움직임이 실제 사람의 손동작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드러웠다. 무서운 것은 발전 속도다. 중국 기업들은 한두가지 제품의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TV를 비롯한 일부 품목에서 시작된 가파른 상승 곡선이 가전 전반으로 확장하더니 이제는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을 아우른다. 차세대 시장을 선도할 만한 충분한 역량을 바탕으로 시장 공략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중국의 위협을 '가격 경쟁력이 무서운 나라' 정도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중국의 발전은 한국 산업이 일본을 추격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한국 기업들은 일본 기업의 제품을 배우고 품질을 개선하면서 조금씩 격차를 좁혔다. 어느 순간에는 일본 기업과 같은 시장에 진입했고 조금씩 파이를 잠식하더니 마침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가전 명가의 반열에 올랐다.중국의 움직임은 한국이 거쳐온 흐름과 닮아있다. 속도는 오히려 더 빠르다.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과 공급망, 막대한 생산능력에다 빠른 기술 상용화 능력이 결합하면서 추격의 속도가 상상을 뛰어넘고 있다.더욱 긴장해야 하는 이유는 중국 기업들이 이제 따라오는 기업에 머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을 새로 만들고,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려 한다.물론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쌓아올린 기술력과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리는 없다.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브랜드 경쟁력을 갖고 있다.다만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격차가 문제다. 지금 당장 우리가 앞서 있다고 해서 내일도 앞선다는 보장은 없다.산업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경쟁자가 강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경쟁자가 얼마나 빠르게 강해지고 있는지를 놓치는 것이다.중국 제품은 아직 한국보다 한 수 아래라는 안일한 생각이 가장 위험할 수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잡해 보였던 대륙의 실수가 이제는 전시장의 메인을 차지하고 관람객을 깜짝 놀라게 한다는 것이 베를린에서 마주한 현실이다. 몇 년 뒤에는 그 놀라움이 당연한 일이 될 수도 있다. 15년 전 우리가 일본을 바라보며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한국 산업은 지금 새로운 추격자를 만났다. 이번에는 우리가 추격을 당하는 쪽이다. 중국의 약진을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허투루 봐서도 안 된다. 과거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았던 그 절박함을 지금 중국이 품고 있다.한국 기업들이 선두를 지키려면 중국보다 한발 앞서 움직여야 한다. 베를린 전시장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단순히 한 번의 가전 전시회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한국 산업의 위기가 어디에서 시작될지 묻는다면 어쩌면 그 답은 이미 IFA 전시장 한복판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기자노트/고현솔]김은 꼭 밥과 먹어야 할까
지난달 미국 출장에서 만난 김은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설었다. 한국에서 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포장지에는 '스낵'(Snack)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한국에서는 김을 보면 자연스럽게 밥 한 숟갈을 떠올리는데 미국에서 만난 김은 과자에 가까웠다.김은 '검은 반도체'로 불릴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김 수출액은 11억3000만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김이 외국에서 간식으로 소비된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왔지만 밥 없이 스낵으로 존재하는 모습을 직접 보니 전혀 다른 음식처럼 보였다.그동안 외국인이 한식을 한국식으로 즐기는 장면은 K푸드가 현지에 자리 잡았다는 상징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유튜브 등 미디어에서 외국인이 삼겹살을 쌈에 싸 먹으면 '먹을 줄 안다'는 반응이 나온다. 비빔밥을 젓가락으로 조금씩 먹으면 '비벼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한국의 방식에 가까울수록 K푸드를 제대로 즐긴다고 여겨온 것이다.음식은 본고장을 벗어나 다른 나라에 자리 잡는 과정에서 정석과 멀어지곤 한다. 새로운 문화와 만나면서 그 나라의 입맛과 생활방식이 더해지고 원래는 없던 먹는 법이 생겨난다. 낯설었던 음식은 시간이 지나며 현지의 방식으로 다시 받아들여진다.따지고 보면 한국 역시 다른 나라의 음식을 원형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서양의 커틀릿은 일본에서 돈카츠가 됐고 한국에 들어오면서 다시 경양식 돈가스로 변했다. 소스도 곁들이는 반찬도 원형과 달라졌지만 이를 잘못된 방식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낯선 음식에는 설명서가 필요하다. 어떻게 만드는지 무엇과 곁들여야 하는지 어떤 순서로 먹는지 궁금해한다. 익숙하지 않을 때는 정답을 찾지만 자주 접하다 보면 설명서는 필요 없어진다. 조리법을 바꾸고 다른 재료와 섞어 각자의 입맛대로 먹는다. 처음에는 원형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다음부터는 먹는 사람의 몫이다.먹는 모습이 달라지더라도 음식의 정체성은 남는다. 경양식 돈가스가 서양에서 건너온 음식이라는 사실이 사라지지 않듯 여러 변주를 거쳐도 원래 음식과의 연결은 이어진다. 원형을 벗어난 변주는 그 음식이 낯설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음식이 일상에 들어왔다는 의미에 가깝다.K푸드라고 예외는 아니다. 세계인의 일상에 스며들수록 한국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먹는 경우가 늘어난다. 한식이 전혀 다른 재료와 만나거나 한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조리법으로 변형될 수도 있다. 지금은 낯설게 보이는 조합은 시간이 지나면 현지의 자연스러운 소비 방식이 될 수 있다.한국 음식이라는 뿌리가 흐려지는 것과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만큼 K푸드를 먹는 방식은 다양해지고 이를 즐기는 사람은 늘어난다. 별다른 설명 없이 저마다의 식탁에 맞춰 자유롭게 즐길 수 있을 때 K푸드는 특별한 외국 음식이 아니라 일상의 음식이 된다. K푸드의 확산은 외국인들이 한국식으로 먹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각자의 방식으로 즐길 때 더 넓은 시장으로 이어진다. 스낵이 된 김은 K푸드가 도달한 현재 위치를 보여주는 장면일 수 있다.
[기자노트/조아현]현수는 보호제도가 없어 죽은 게 아니다
"부모님 연락처를 물어도 말이 없고….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하니 고개를 들고 저를 가만히 쳐다만 보더라고요."지난 6월 열두 살 지적장애 소년 현수(가명)를 보호했던 식당 직원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무언의 구조 신호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지만 현수는 결국 교회 관계자들과 함께 가해 현장인 교회로 되돌아갔다. 현수가 교회에서 학대로 사망하기 53일 전의 일이다.충남 천안에서 현수의 흔적을 따라가다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을 마주했다. 현수를 구할 수 있었던 공공 영역의 기관은 모두 6곳. 경찰과 천안시 위기아동대응팀, 아동보호전담기관, 장애인권익옹호기관, 그리고 현수가 다닌 학교 2곳이다. 하지만 어느 곳도 현수를 구하지 못했다.경찰은 아동학대 의심 신고 4건과 보호조치 신고 3건에도 현수를 번번이 학대 공간으로 돌려보냈다. 지자체 아동학대전담공무원들은 현수의 아동학대 신고 4건을 두고 지난 5년간 10차례 넘게 조사했지만, 가해자인 목사와 교회 관계자들을 안전한 보호자라고 오판했다.아동보호전담기관은 2024년 5월부터 현수를 사례 관리 대상자로 지정해 아이의 안전을 주기적으로 확인해오고 있었다. 현수의 안전을 어떻게 모니터링했는지 묻자 기관은 답변을 거부했다. 학교는 현수의 외할머니가 아동학대 혐의로 처벌받은 전력을 알지 못한 채 아이의 취학 면제를 승인했다.장애인권익옹호기관도 지난달 4일 경찰청으로부터 현수의 아동학대 사건을 통보받았다. 하지만 다음날 오전 현장 조사를 나간 지자체 담당 공무원과 통화한 뒤 '조사가 마무리됐고, 학대 판정만 남았다'는 담당 공무원의 말에 즉시 현장에 가지 않았다. 그 시각 현수는 교회에 사흘째 묶여 있었다. 병원 응급실에서 숨을 거두기 불과 15시간 전이다.취재를 하면 할수록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이 곳곳에 있는데, 왜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2003년 발표된 영국의 '래밍 보고서(Laming report)'를 살펴봤다. 만 8세 소녀 빅토리아 클림비가 잔혹한 학대로 숨진 사건을 계기로 국가의 아동보호 체계를 전면 검토한 432페이지 보고서다. 빅토리아도 런던 자치구 4곳, 경찰 아동보호팀 2곳, 병원 2곳, 아동학대방지협회 산하 전문센터 등 여러 기관이 관여했지만 누구도 구하지 못했다. 당시 앨런 밀번 전 보건부 장관은 하원 본회의에 참석해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관련 기관들이 개입해 빅토리아를 구할 기회는 적어도 12번이 있었다"고 했다.보고서는 빅토리아 사건을 국가 아동보호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최우선 과제로 책임성 강화를 지목했다.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하지 못했을 때 각 단계별로 일선 담당자부터 최고위직까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동보호 업무 태만이나 사망사고 발생 시 징계 조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 각 신고가 위험 신호의 누적이 아니라 개별 사건으로 처리된 점을 총체적 실패의 핵심 원인으로 꼽았다. 기관별로 흩어진 정보를 연결하지 못하면 어느 기관도 피해 아동이 처한 전체 상황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현수도 마찬가지였다. 112에 접수된 현수의 보호조치나 실종신고는 관계 기관에 전달되지 않았다. 학교도 현수 외할머니의 아동학대처벌 전력을 통보받지 못했다. 즉각 분리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묻자 경찰은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의 판단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은 "아이가 경찰 조사에서 목사에게 가고 싶다고 했다"고 경찰에 공을 넘겼다. 아동학대전담기관은 "시에 물어보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누구도 책임 있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현수는 제도가 없어 죽은 게 아니다. 현수의 죽음은 대한민국 국가 아동보호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다. 우리가 지금까지 눈감아온 '익숙한 실패'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죽음이 반복되는 동안 아동학대처벌법은 12번 개정됐다. 그 제도 안에서 책임 구조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되물을 때다. 아무리 많은 보호기관을 만들고 권한을 준다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제도는 그냥 없는 제도다. 이번에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른 아이를 떠나보낸 뒤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기자노트/홍지인]PF에 돈 풀면 집 뚝딱 나올까
"이복현 전 원장님, 참 호불호가 엇갈리지만 그래도 꾸준히 긍정적 평가를 받는 부분이 있어요. 비은행권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정리한 게 대표적이예요." 얼마 전 금융감독원 관계자들과 점심을 먹다가 나온 얘기다. 마침 정부가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PF 시장에 자금이 돌도록 하는 방안이 나온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부실 PF가 상당 부분 정리됐다지만 아직 완전히 정상화된 것은 아니다. 기자가 만난 금감원 관계자들은 공급 확대와 금융회사 건전성 관리가 함께 가야 한다며 이를 '고차방정식'에 비유했다.당시엔 다소 원론적인 얘기로만 들렸다. 그런데 최근 금융권 관계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말이 현장에서 실제로 고민하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몇 년간 PF 부실로 크게 고생했던 저축은행권에서는 의외로 걱정보다 기대가 먼저 나왔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부실채권 시장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살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매수자가 없으니 가격은 내려가고 그마저 거래되지 않아 부실자산을 털어내기도 쉽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매입에 나선다거나 정상화펀드, 신디케이트론 등을 통해 시장에 매수 주체와 자금이 들어올 수 있다는 자체를 반기는 분위기다.증권업계에서도 비슷한 기대가 읽힌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한국주택금융공사(HF)의 공적 보증 확대는 금융회사가 떠안아야 할 위험을 덜어 브릿지론에서 본PF로 넘어갈 수 있는 여건을 개선할 수 있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관계자도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결국 "자금이 돌아야 산다"며 이번 조치를 반겼다.'좋다'는 말 뒤에는 단서가 있었다. 몇 년간 PF 부실을 겪었던 만큼 자금 여력이 생겼다고 곧바로 새 대출을 크게 늘릴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저축은행은 이번 대책을 신규 PF 확대의 신호라기보다 그동안 팔리지 않던 부실 PF를 정리할 통로가 넓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증권사 역시 기존 사업장과 PF 투자·대출 자산을 정리하는 게 여전히 우선이다. 새 돈을 넣더라도 여력이 있는 대형사와 사업성이 확인된 우량 주거사업장을 중심으로 선별적으로 움직이겠다는 분위기다.조심스러울 만한 이유도 있다. 금융당국이 가장 최근 공개한 자료를 보면 금융권 PF 익스포저(위험노출 규모)는 2024년 6월 216조5000억원에서 올해 3월 말 169조8000억원까지 줄었다. 상당한 정리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PF대출 연체율은 4.65%, 유의·부실우려 여신도 16조4000억원이나 된다. 과거 금융권을 괴롭히던 수년 간의 부실을 완전히 털어냈다고 말하기는 이른 셈이다.반면 정부는 일단 주택공급이 급하다. 수십 조원에 달하는 돈을 풀면 주택이 당장이라도 막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택공급을 위한 금융지원 규모를 26조3000억원에서 47조8000억원+α로 확대하고 PF 보증도 올해 23조원, 내년 33조원 공급하기로 했다. 지난 28일에는 금융·건설업계 관계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금융권에 적극적인 자금공급도 주문했다. 그런데 업계도 나름대로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점심 자리에서 들었던 '고차방정식'이 다시 떠오른 이유다. 정부는 주택공급을 늘려야 하고 금융사는 또다시 부실을 떠안지 않아야 한다. 어느 한쪽만 놓칠 수 없는 문제다. 다시 풀리는 PF 자금이 멈춰 있던 사업장을 움직이면서도 새로운 부실의 씨앗을 남기지 않을 수 있을지, 이제부터 지켜볼 일이다.
[기자노트/최유빈]현대차 남양연구소 지킬 것은 재택 횟수가 아니다
지난 27일 오전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노조와 사측 관계자들이 몸싸움을 벌였다. 갈등은 회사가 다음달 1일 시행할 재택근무 변경 지침과 재택 오남용 관리·감독 강화 방안을 팀장급 직원들에게 공유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국내 최대 자동차 연구소에서 임금도 고용도 아닌 재택근무 횟수와 근태 관리·감독을 놓고 다툼이 일어났다.지난해 12월 현대차는 2022년 도입한 주 2회 재택근무를 올해부터 주 1회로 줄이겠다고 통보했다. 대상은 남양연구소에 그치지 않았다. 본사와 ICT본부, 연구개발본부의 연구개발 인력이 함께 포함됐다. 노조는 근로조건 불이익 변경이라며 취업규칙 효력정지 가처분을 냈고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5월 기각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도입한 원격근무를 고정적 근로조건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법정에서는 회사가 이겼지만 갈등은 커졌다. 현대차가 문제로 규정한 것은 재택근무가 아니라 오남용이다. 핵심 근무 시간인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업무 접속을 최소화하다가 오전 6시나 오후 10시에 근무 기록을 남기는 사례, 매주 금요일을 재택으로 고정하는 사례가 지목됐다.재택근무는 코로나19 시절 방역을 위해 만든 한시적 배려였다. 시간이 지났다고 배려가 권리로 바뀌지는 않는다. 방역이 끝난 뒤에도 같은 형태로 남아야 할 이유도 없다. 주 1회 이상 재택근무를 쓰는 인원이 전체의 30%에 이르는 조직이라면 관리 필요성을 고민해볼 만하다. 개발 성과와 조직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도 회사의 의무다.테슬라는 2022년 5월 말 전 직원에게 주 40시간 사무실 근무를 통보하며 출근하지 않으면 퇴사로 간주하겠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996'이 배터리 현장까지 번져 CATL의 '896' 논란을 낳았다. 과로사와 노동법 위반 시비가 뒤따르는 방식이라 본받을 모델은 아니다. 하지만 남양연구소가 이들과 같은 시장에서 겨루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남양연구소 노조가 지켜야 할 것은 '주 2회'라는 재택 횟수가 아니라 연구직에 맞는 근무 설계다. 남양연구소는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와 자율주행 인재를 놓고 완성차업체는 물론 빅테크와도 다퉈야 하는 조직이다. 그 조직이 오남용 지적과 법원 판단이 나온 뒤에도 재택 횟수 유지에만 힘을 쏟고 있어 아쉽다. 물리적 충돌까지 벌이면 재택근무의 필요성을 주장할 근거마저 약해진다. 제도를 지키겠다는 행동이 오히려 제도를 없앨 이유를 만들어 줄 뿐이다. 회사가 잘한 것도 아니다. 축소를 먼저 하고 관리를 뒤에 붙인 순서가 노조에 폐지 수순이라는 해석의 빌미를 줬다. 재택근무는 복지가 아니다. 우수 연구인력을 붙잡는 수단이 될 수 있고 성과를 위해 확대할 수도 있지만 당연히 주어지는 권리로 여길 일은 아니다. 직무별로 재택 가능 횟수를 달리해 운영한 뒤 개발 일정 준수율과 인력 유지율로 재조정하는 방법도 있다.그날 남양연구소에서 벌어진 일이 몸싸움이 아니라 근무 설계를 놓고 벌이는 논쟁이었어야 했다. 어떤 방식이 더 좋은 자동차를 더 빨리 만들어내는지 따져보는 것이 남양연구소다운 해법이다.
[기자노트]풍요롭던 나오에로의 과거, 삼성전자의 미래
태평양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나오에로(옛 나우루). 지금은 생소하지만 과거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꼽혔다. 1970~1980년대까지 새 배설물을 원료로 하는 인광석을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누렸다. LA타임스의 이전 보도를 보면 미국 국무부는 1981년 나오에로의 1인당 GNP(국민총생산)를 3만5000달러로 추산했다. 당시 페르시아만 산유국보다도 높은 수준이었다. 곳간이 넉넉한 만큼 인심도 후했다. 자국민을 대상으로 의료·교육 서비스를 무상 제공하고 현지에서 치료가 어려우면 호주 전문의 진료까지 무료로 받게 했다. 전기·통신·주택 비용도 거의 들지 않았고 각종 세금도 부과하지 않았다. 파격적인 복지 혜택을 갖춘 나오에로는 지상낙원에 비견됐다. 나오에로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복지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는 사이 인광석은 고갈됐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성장 동력은 마련하지 못했다. 해외 부동산 투자 등 미래 먹거리 확보에 나섰지만 방만한 재정 운용과 투자 실패가 겹쳐 성과를 내지 못했다. 나오에로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1990년대부터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나오에로의 역사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남긴다. 눈앞의 성과를 나누는 데만 몰두하면 지금의 짧은 번영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각종 내홍에 시달리는 삼성전자 상황과도 오버랩된다. 다행히 나오에로와 달리 삼성전자는 연구개발(R&D)과 대규모 투자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유례없는 반도체 초호황을 누리는 지금, 구성원 모두 미래를 위해 총결집하기보단 각자의 몫을 둘러싼 공방을 이어가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삼성전자의 성과급 논쟁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직원들이 주축인 동행노조는 지난 21일 대규모 집회를 열고 지난 5월 노사 임금협상 과정에서 DX부문이 상대적으로 소외된 만큼 재교섭을 통해 디바이스설루션(DS) 부문과의 보상 격차를 해소하라며 요구하고 나섰다. 노노 갈등의 불씨도 커지고 있다. DS부문은 제 몫 지키기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DS부문 구성원이 대거 가입된 초기업노조는 동행노조에 보낸 공문을 통해 "2027년 부문별 실태를 반영한 요구안 설계가 불가피하다고 본다"며 "공동교섭단을 구성하지 않고 단일 교섭 체계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에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초기업노조는 조합원의 84%가 근로조건·처우 등을 이유로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를 반대했다며 이를 2027년 교섭 의제로 다루겠단 입장이다. 성과급 등 보상 문제를 넘어 미래 사업을 결정하는 과정에도 노조의 영향력을 행사할 모양이다. 내부 갈등이 심화하는 사이 삼성전자를 둘러싼 환경은 녹록지 않다.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 중국 메모리 기업들이 기업공개(IPO)에 나서며 생산시설 확충과 제품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고, TCL·하이센스·로보락 등 가전·TV 업체들의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슈퍼사이클은 영원하지 않다. 눈앞의 몫에 집중하며 갈등하는 사이 미래 경쟁력은 잃어버릴 수 있다. 나오에로의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 당장의 득실에 매몰되기보단 서로의 간극을 좁히고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편안한 상태에 있을 때도 앞으로 닥칠 위태로움을 생각하고 대비하는 '거안사위(居安思危)'의 자세가 필요하다.
[기자노트]용비어천가의 결말, 김민석을 향한 기대
"해동(海東) 여섯 용이 날으시어 하는 일마다 모두 하늘의 복이시니, 고대의 성인들과 꼭 같으시니이다." [용비어천가] 제1장의 첫 문장이다. 권제, 정인지, 안지 등 조선의 관리들은 이어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많나니"라며 왕조 창업의 정당성을 노래했다.약 580년이 지난 현대로 돌아와 보자. 새로 당권을 쥔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당대회 내내 이재명 대통령과의 관계를 내세웠다. 그는 "완벽한 당정일치"를 외쳤다. 당선 일성으로 "대통령과 국정 방향을 교감하고 눈빛만 봐도 맞출 수 있다"고 했다.김 대표는 국무총리 시절인 지난해 7월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기리는 자리에서 "김대중의 길은 지금 이재명의 길이 됐다"고 했다. 같은 해 12월 이 대통령을 두고는 "정책을 가장 깊이 아는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김 대표는 "요새는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5년이 너무 짧다'고 하는 거 아니냐. 심지어 '더 했으면 좋겠다'는 분들도 있다"고도 했다. 야권에선 '명비어천가'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그러나 정작 용비어천가는 군주에 대한 찬사로 끝나지 않는다. 선대 왕들의 업적을 칭송한 노래는 109장까지다. 110장부터 125장까지 16개 장은 임금을 향해 ▲자만하지 말라 ▲역사를 잊지 말라 ▲백성을 두려워하라고 경고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직언하는 신하의 뜻을 잊지 마라"(121장) "군주의 총애를 독차지하려는 소인을 경계하라"(122장) 등이다. [용비어천가]의 125장은 하나라 태강왕의 고사를 소개하며 끝난다. 선조의 위업만 믿고 사냥에 빠졌다 나라를 잃은 인물의 이야기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심은 김 대표를 선택했지만 민심은 달랐다. 국민여론조사에서는 정 후보가 50.70%로 앞섰고 최고위원 5명 중 3명이 친청(친정청래)계로 채워졌다. 이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돼 온 김용 후보는 낙선했다.그러나 김민석 지도부는 성찰보다 사법부에 대한 공세로 문을 열었다. 김 대표는 19일 첫 지도부 회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해 "당장 나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표는 20일에는 당에 '법치 파괴 조희대는 물러나야 한다'는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전국에 걸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이후 여권과 갈등을 이어왔다.대통령과 눈빛을 맞추는 일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대통령이 듣기 싫어할 말을 옮기는 일이다. 민심을 가감없이 대통령에게 전하는 것이 집권여당 대표의 본령이다.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게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돕는 길이다. 당 태종은 사사건건 쓴소리를 하던 위징을 곁에 뒀다. 643년 위징이 죽자 "거울 하나를 잃었다"고 했다. 이후 태종은 고구려 원정을 강행했고 결국 실패했다. 김 대표가 이 대통령이 성공한 지도자로 기록될 수 있도록 그 거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기자노트]제도의 늪에 빠진 K방산
#육군이 올해 새 무기가 필요하다고 결정하면 병사 손에 닿는 해는 2041년이다. 소요 제기부터 전력화까지 평균 약 15년이 걸린다. 우크라이나는 군이 필요로 하는 기술의 우선순위를 공개하고 누구나 공모에 참가할 수 있게 한다. 평균 1.5개월 안에 결정이 난다. 실전 투입 뒤에는 전장 데이터를 개발사에 보내 보완을 요구한다. 각 군은 e포인트를 활용해 비공개 온라인 장터에서 새로운 무기를 구매할 수도 있다.[시대]가 올들어 지난 19일까지 '새로운 전쟁의 시대, K방산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3차례 개최한 포럼에서 다뤄진 내용이다. 최근 5년 연평균 126억달러(약 17조5000억원)를 수출한 K방산의 이면이다.한국은 과거 추격국가였다. 앞선 나라의 제도를 들여와 쫓기만 해도 충분했다. 제도는 수입된 개념을 내재화해 현실에 맞춘 변용을 거쳐 자생적 사유와 정책의 창출로 이어져야 한다. 한국은 첫 단계부터 부실했다. 그 제도가 왜 생겼는지 따지지 않고 결과만 들여왔다. 내재화가 없으니 변용도 창출도 쉽지 않다. 따라갈 나라가 사라진 지금 한국은 스스로 제도를 설계할 역량이 부족하다. 이것이 제도의 늪이다.늪은 세 가지다. 인재는 공정성이란 잣대에 막히고, 무기는 절차에 막히며 기술은 보안 문제에 막혀 있다. 해킹 천재를 일반 병사와 같은 공정성의 잣대로 평가하니 수월성은 특혜가 된다. 무기 평가가 늦어지면서 대기업 위주의 심사를 견디지 못한 스타트업은 해외로 떠난다. 전투 데이터를 풀지 않으니 AI(인공지능)와 드론 등 첨단 무기는 실전에서 활용하기 어렵다.한국이 늪에서 나오려면 제도를 설계하고 운용할 사람은 독립적으로 사고할 능력을 갖추고, 시스템은 그 사고를 펼칠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독립적 사고는 주인의식을 가질 때 만들어지고 능력을 발휘할 공간은 책임과 권한을 함께 부여할 때 생긴다. "국방 예산 1%라도 혁신기술 구매에 쓰고 감사 걱정 없이 채택할 안전지대를 두자"(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제안이 나온 이유다.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 방산 수출 세계 4위권 등을 들어 군사력이 "차고 넘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방산 강국은 구호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기는 동맹뿐 아니라 비우호국에도 팔아야 하는 일이 생긴다. 정부가 나설수록 판로는 오히려 좁아질 수 있다. 정부가 할 일은 자랑이 아니다. 조용히 빗장을 풀어 새로운 전쟁의 시대에 맞춰 제도를 혁신하는 일이다.
[기자노트]신세계 정유경의 십년마일검
유튜브에서 빌 게이츠와 일론 머스크가 대중을 대하는 온도 차를 비교한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촬영자가 여러 번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어도 게이츠는 빠른 걸음으로 제 갈 길을 갔다. 머스크는 달랐다. 질문을 받자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지는 질문에도 성의 있게 답했다.기자 입장에서는 머스크 같은 오너가 반갑다. 현장에서 만나면 웃으며 인사하고 어떤 질문에도 답해주는 경영자는 좋은 취재원이다. 언론에 자주 얼굴을 내비치고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소위 약간의 '관종기'까지 있다면 더 좋다.산업부 기자로 기업을 오래 들여다보면 좋은 취재원과 좋은 경영자는 다른 문제라는 걸 알게 된다. 적절한 전략과 판단으로 매출과 이익을 키우고 이를 재투자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경영자의 본업이다.정유경 신세계 회장은 은둔의 경영자로 불린다. 인터뷰는커녕 파파라치 컷도 드물다. 회장 승진 이후 열린 첫 정기주주총회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아 주주와 기자들을 서운하게 했다. 등기이사가 아니라는 이유가 있었지만 아쉬움은 남았다. 그의 경영 성적표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2019년 국내 백화점 최초로 연매출 2조원을 넘겼고 2023년 단일 점포 최초로 3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까지 3년 연속 3조원대를 기록했고 올해는 4조원을 바라본다. 비교 대상은 이제 국내에 없다. 영국 런던 해러즈, 일본 도쿄 이세탄 신주쿠점이 경쟁 상대다. 한국 백화점이 글로벌 리그에 진입한 것이다.그 자리에 오르는 데 12년이 걸렸다. 정 회장은 2014년 강남점 증축·리뉴얼을 시작으로 핵심 점포에 자금을 투입했다. 2016년 강남점 확장 개장 이후에도 식품관과 명품관을 다시 손봤다. 본점도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본관과 신관, 옛 제일은행 본점 건물을 럭셔리 공간으로 재편했다. 명품과 VIP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짜고 외국인을 겨냥한 K콘텐츠를 접목했다.그동안 분기마다 수익성 지적이 따라붙었다. 언론은 영업이익이 투자에 비해 적다고 비판했고 주주들은 원성을 냈다.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왔고 내수는 가라앉았다.그럼에도 정 회장은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여기서 짚어야 할 지점이 있다. 12년에 걸친 대규모 투자는 전문경영인의 영역이 아니다. 임기가 정해진 CEO가 먼 미래의 열매를 위해 영업 공간을 공사장으로 만들고 매 분기 실적을 깎아 먹는 결정을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다. 이것은 오너의 영역이다.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싶다면 오너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 회장은 그걸 해냈다.당나라 시인 가도(賈島)는 '검객'이라는 시에서 '십년마일검'(十年磨一劍)이라 썼다. 10년 동안 칼 한 자루를 갈았다는 뜻이다. 서릿발 같은 칼날을 아직 시험해보지 못했다는 구절이 뒤에 따라붙는다. 정 회장의 12년이 그랬다.외국인이 언제 얼마나 돌아올지 2014년에는 알 수 없었다. 올해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백화점 3사가 일제히 호실적을 거뒀다. 순풍은 셋 모두에게 똑같이 불었다. 신세계 백화점 부문은 2분기 매출이 15.5% 늘어 3사 가운데 성장세가 가장 가팔랐다. 매출 증가율보다 영업이익이 늘어난 폭은 더 컸다. 리뉴얼을 마친 점포가 이익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시장의 평가도 달라졌다. 지난해 초 13만원대까지 내려갔던 신세계 주가는 올해 6월18일 장중 79만원대까지 올라섰다. 이후 증시 전반이 흔들리며 백화점주도 조정을 받았지만 시장이 신세계를 보는 눈이 바뀌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신세계 강남점의 도약은 한 점포의 성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기준선이 올라가면 업계 전체가 따라 올라간다. 경쟁력 있는 브랜드 유치와 공간 혁신 등 대규모 투자는 백화점 3사의 공통 과제가 됐다. 외국인 관광객 매출이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하는 지금의 그림은 캠페인이나 프로모션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먼저 글로벌 수준으로 점포를 끌어 올렸기에 가능했다.주주와 소통하고 경영 전략을 설명하는 것은 여전히 오너의 중요한 책임이다. 그 생각은 지금도 같다. 다만 침묵을 비판했던 기자로서 그 침묵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정 회장은 여전히 말이 많지 않다. 대신 12년간 갈고닦은 신세계가 말하고 있다. 숫자보다 명쾌한 해명은 없다.
[기자노트] LIG D&A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냉정해야 한다
한국 방위산업의 위상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가운데 최근 한 방산업체 임직원이 방위사업청 공무원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되면서 관련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국내 방산업체들은 내수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유럽과 중동, 동남아시아 등으로 수출 시장을 넓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무기체계의 성능뿐 아니라 기업과 국가에 대한 신뢰도 방산 수출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사건의 성격상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지만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을 기업의 조직적인 비리로 성급하게 규정하는 것 역시 경계할 필요가 있다.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LIG D&A) 관계자가 방위사업청 직원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됐다. 회사 측은 임직원이 뇌물을 건넸다는 의혹 자체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관련 규정과 절차를 준수해 사업을 수행해 왔으며 법적 절차를 통해 사실관계를 가려내겠다고 했다.구속된 것을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기에 검찰이 확보한 자료와 수사 결과를 토대로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구속 자체가 유죄 확정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 금품 제공이 있었는지, 금품과 사업상 편의 사이에 대가관계가 있었는지, 기업 차원의 관여가 있었는지는 앞으로의 수사와 재판을 통해 확인할 부분이다.과거 방산 관련 사건에서도 수사 단계에서 제기된 의혹과 최종 사법 판단 사이에 차이가 있었던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보병용 대전차 유도무기 '현궁' 사례다. 당시 개발 과정에서 비리 의혹이 제기돼 연구원들이 기소됐다. 그러나 2017년 항소심에서 관련 연구원 전원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연구원 1명이 감사와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이 사례로 인해 모든 방산 비리 수사를 부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국민 세금이 투입되고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방위사업에서 비리 의혹은 모두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의혹을 제기하는 것과 그 의혹이 사실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특히 개별 공무원의 일탈 가능성과 기업 차원의 조직적 비리는 반드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방위사업청도 이번 사건에 대해 직원 개인의 일탈로 보고 있다고 밝히면서 제안서 평가 등 사업 추진 과정에 영향이 없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조직의 비리로 확대해서 해석할 필요는 없다. 개인의 비위 여부를 확인하는 것과 방위사업의 평가·획득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업 역시 수사와 재판을 통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해 의혹을 해소해야 할 책임이 있다.이번 사건의 파장이 국내에만 그치지 않을 것은 명확하다. 한국 방산은 최근 몇 년간 수출 시장을 빠르게 넓혀왔다. 해외 발주처가 기업의 준법경영과 사업 수행 역량을 함께 보는 상황에서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의혹이 기업이나 산업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급한 결론이 아니다. 수사기관은 개인의 행위와 기업의 책임 범위를 명확하게 구분해 사실관계를 밝혀야 하고 이해 관계자들은 확인된 사실과 의혹을 구분해 전달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잘못이 확인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으면 된다. K방산의 위상이 어느 때보다 커진 지금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에 미리 색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수사와 재판을 통해 확인된 사실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냉정함이다.
[기자노트]"경찰에 신고했죠. 그렇다고 해결될까요?"
지난달 초 한 독자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중고거래 환불사기로 수십만원을 잃은 피해자였다. 당시 기자에게 피해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던 피해자는 뜻밖에도 이런 말을 남겼다.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렇다고 돈을 찾아줄 거라 기대하진 않아요." 피해금액이 작아 경찰이 별 관심을 갖지 않을 거란 설명이 뒤따랐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경찰이 해결해줄 거라 믿지 않는 시민이 과연 그 피해자일 뿐일까.취재를 시작하자 경찰은 의욕을 보이는 듯했다. '수사를 어떻게 진행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경찰은 "조만간 관할 경찰서로 사건을 이첩한 뒤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통화 말미에 이런 요청을 했다.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을 기사에 꼭 넣어주세요."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피해자에게 다시 연락했다. 수사 진척이 있냐고. 피해자는 현재까지 수사 진행과 관련해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처음부터 큰 기대가 없었으니 낙담도 없어 보였다. 경찰이 해결해주지 못할 거란 그의 예측은 확신으로 변할 것이다. 그 확신들이 모여 평가가 된다. 현재 경찰의 신뢰도는 이런 시민들의 생각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최근 경찰을 둘러싼 풍경은 낯설다. 아무리 '혐오의 시대'라고 하지만 경찰을 비하하는 일을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다. 지난 6월 올림픽공원 시위에선 일부 경찰관을 두고 '중국 공안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다. 경찰을 향한 불신이 단순 불만을 넘어 공권력 자체에 대한 조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근거 없는 의혹 제기나 개인을 향한 혐오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경찰을 향한 불신을 일부 시민의 문제로만 치부하긴 어렵다. '장윤기 사건'은 경찰 신뢰도에 너무나 치명적이다. 그냥 부실수사가 아니다. 실수나 일탈을 넘어 경찰이, 경찰에 의해, 경찰을 위해 증거를 없애고, 사건을 조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이 최근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경찰 가족이 피의자나 피혐의자인 사건은 45건, 피해자나 고소·고발·진정인인 사건은 72건 등 총 117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감찰 조사가 이뤄진 사건은 단 1건에 그쳤다. 다른 관서로 이송했거나 이송할 예정인 사건은 44건, 이송 여부를 검토하는 사건은 15건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57건은 이미 종결했거나 다른 관서로 이송하지 않았다. 이 사건들의 처리는 공정했다고 믿을 수 있을까.경찰 가족이 연루된 사건을 별도로 관리하는 체계가 없다는 점도 이번 전수조사에서 드러났다. 그간 담당 경찰이 제척 및 회피를 신청하지 않으면 조직 내에선 관련 사건을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구조였다. 경찰은 다음 달부터 경찰 가족 사건을 다른 관서가 수사하도록 하는 상피제를 시행한다고 했다. 1945년 경찰이 만들어진 지 81년 만에 이런 문제를 알았다는 건가. 아마도 '장윤기 사건'이 없었다면 경찰은 가족들이 연루된 사건을 지금처럼 알음알음 처리하는 관행을 계속 이어갔을 것이다.지금까지 경찰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실은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과 맞물려 더 큰 우려를 낳는다. 오는 10월2일부터 검찰의 직접 수사는 전면 금지된다. 그 대신 보완수사를 경찰에 '요구'할 수만 있다. 최대 2개월 내에 보완수사를 마쳐야 하고, 제대로 보완수사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검사가 판단하면 해당 사건을 상급 기관이나 다른 수사기관으로 보낼 수도 있지만, 경찰을 믿을 수 없다면 이런 모든 보완 장치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권한은 법으로 부여할 수 있다. 신뢰는 더 많은 권한을 갖는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권한으로 인해 조직의 실력은 냉정하게 평가될 것이다. 커진 권한에도 수사 공정성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조직 신뢰도는 더 빠르게 추락할 수밖에 없다. 답은 정해져 있다. 조직을 얼마나 투명하게 운영하느냐다. 검찰이 그랬듯 자신의 성(城)에 갇힌 조직은 외부에 의해 강제로 수술대에 오르게 된다. 조직의 투명성은 작은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수사가 늦어지면 왜 늦어지는지, 수사가 어려우면 어떤 부분에서 막혔는지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한다. 경찰이 해결해주지 못할 거란 예측을 어떻게든 노력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바꿀 때, 경찰의 신뢰도에도 변화가 올 것이다.
[기자노트]집값과 가계빚 사이, 총량규제의 난제
가계대출을 줄이라는 금융당국의 주문이 은행 창구에서 잔금대출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 신축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은 분양계약을 체결한 지 수년 만에 입주를 앞두고도 필요한 자금을 제때 마련할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은행들이 대출을 무작정 내주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올해 정책성 대출을 제외한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이 합산 기준 연간 관리 목표를 웃돌면서 남은 대출 여력이 빠르게 줄었기 때문이다. 일부 은행은 대출 한도와 접수 채널을 제한하고 가산금리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증가 속도를 낮추고 있다.가계대출 총량관리는 집값과 가계부채를 동시에 누르기 위한 대표적인 정책 수단이다. 시중에 공급되는 대출을 줄이면 주택 매수 수요도 위축된다. 높은 가계부채가 금리 상승과 경기 둔화 시 차주의 상환 부담을 키우고 금융시스템의 잠재적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규제의 필요성은 분명하다.문제는 총량이라는 숫자가 개별 대출의 성격까지 가려주지는 못하는 데 있다. 추가 주택 매입을 위한 신규 차입과 이미 체결된 계약을 마무리하기 위한 잔금대출이 은행의 가계대출 관리 목표 안에서 함께 관리된다. 은행의 총량 관리가 강화될수록 필요한 자금을 먼저 신청했는지, 어느 은행을 찾았는지에 따라 대출 가능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금융당국이 신축 아파트 입주 예정자의 잔금대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잔금대출에 별도 여력을 인정하거나 일반 가계대출과 구분해 관리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규제 방향을 바꾸기보다 이미 체결된 계약의 잔금 조달과 입주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막으려는 보완에 가깝다.하지만 보완 대상을 어디까지 인정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보완책이 신축 아파트 계약자에게만 적용될 경우 새로운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당국은 지난해 6·27 대출 규제 강화 이후 기존 주택을 매입한 차주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일부에서는 지원 대상을 선별하기보다 가계대출 총량 자체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총량 한도를 그대로 둔 채 특정 대출에 별도 여력을 배정하면 다른 대출의 취급 여력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예외를 추가하면 규제 체계는 복잡해지고 차주 간 형평성 논란도 반복될 수 있다.그렇다고 대출 총량을 큰 폭으로 늘리는 것 역시 부담이 따른다. 은행권의 대출 공급이 다시 확대되면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주택 매수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 시장이 이를 규제 완화 신호로 받아들일 경우 집값 안정 효과도 약해질 수 있다.당국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총량을 유지하면 정상적인 거래와 입주에 필요한 자금까지 막힐 수 있고, 총량을 풀면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의 불안을 다시 키울 수 있다. 일부 차주만 보호하면 형평성 논란도 뒤따른다.금융은 집값을 누르는 수단인 동시에 주택 거래를 마무리하는 기반이다. 대출을 조이면 매수 수요는 줄지만, 이미 계약을 맺은 실수요자의 잔금과 입주까지 막힐 수 있다. 개별 규제에서 예외를 인정받더라도 은행의 대출 여력이 부족하면 실제 대출은 실행되지 않을 수 있다. 금융만으로 부동산 시장을 관리하기 어려운 이유다.집값 안정과 실수요자 보호는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투자나 추가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은 엄격히 관리하되, 이미 계약을 맺은 실수요자가 잔금을 치르고 입주하는 데 필요한 자금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총량규제의 빈틈을 예외로 메우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규제의 기준 자체를 더 정교하게 다시 설계해야 할 때다.
[기자노트]주식투자는 스스로의 선택, 실패도 결국 "내 탓이오"
주식 투자가 부동산 투자보다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용이한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다. 지방 산골짜기나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의 일부 땅값은 제곱미터(㎡) 당 최소 몇 천원에도 살 수 있지만 그 외에는 대체로 수백만~수 천 만원, 수 억원 이상이기 때문에 구매 여력을 갖는 건 쉽지 않다.반면 주식은 가격대와 종류가 더 다양하다. 정부가 자본시장 체질 개선을 위해 퇴출 대상에 올리긴 했지만 1주에 몇 백원하는 동전주부터 수 천원·수 만원·수 십 만원 등 비교적 투자 종목이 많고 가격 접근성 부담도 적다.주식은 상대적으로 부동산보다 접근성이 용이하고 가격 부담이 적은 만큼 '충동적 투자'와 '묻지마 투자'에도 노출되기 쉽다. 걸핏하면 '사이드카'(프로그램 매수·매도 호가 일시효력정지)가 발동되고 20분 동안 매매가 멈추는 '서킷 브레이커'도 수시로 걸리는 등 최근의 예측하기 힘든 극심한 변동성 장세에선 더더욱 그렇다.가격이 떨어지면 어김없이 "지금이 저점 매수 기회"라는 유혹이 온라인을 도배하고 가격이 뛰면 "지금보다 더 오른다"며 '추격 매수'까지 부추긴다.올 들어 사상 첫 코스피 지수 5000을 찍은 뒤 6000→ 7000→ 8000→ 9000까지 도달하고 급등락을 반복하는 극심한 변동성 장세에서도 어김없이 이런 키워드는 투자자를 현혹했다.'모 대기업·정치인의 수혜주', '애국 기업' 등 다소 잠잠하던 '테마주'도 다시 꿈틀거렸다. 유혹하는 키워드는 각양각색이지만 투자 접근성 측면에서 보자면 너무 일시적이고 형편없다.주식 투자는 내가 가진 여윳돈을 들이거나 빚을 내서도 할 수는 있지만 결국 목적은 '수익 창출'이다. 투자는 수익을 내기 위함인데 무언가 반짝하면 그곳에 쏠리고, 누가 한마디 하면 그 종목에 몰두하고, 어떤 기업이 오랫동안 몰래 좋은 일 했다고 하면 해당 기업에 내 소중한 자산을 그냥 맡긴다. 대중적 분위기에 휩쓸려 투자를 위한 깊은 고민의 과정은 생략한다.국내 증시를 감싸는 대내외적 악재 외에도 투자자의 이런 충동적 묻지마 식 접근 역시 최근의 코스피 시장을 뒤흔든 요인이지만 투자에 실패하면 대체로 그 요인을 나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찾는다.물론 외부 요인도 상당하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 기업의 경영 리스크나 불확실한 국제 정세 등 갖다 붙일 이유는 많지만 주식 투자 성공과 마찬가지로 실패한 원인도 근본적으로는 최종 선택을 한 나 자신에게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어느 날은 급등하고 어느 날은 급락하는 최근의 지속된 코스피 지수 변동성은 분명 정부가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바로 잡아야 할 영역이다.다만 투자자도 그동안 내가 어떤 정보를 갖고 어떤 종목에 왜 투자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짚어보고 반성해야 한다. 남들은 다 사는데 나만 소외될까 봐 빚내서 무리하게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사지 않았는지, 어느 유망 정치인·기업인의 수혜주라는 이유로 무작정 덤벼들진 않았는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가 뜬다고 하니까 뭔지도 모르고 그냥 덥석 물진 않았는지를 말이다.주식 투자는 자신의 선택 영역이고 과하면 결국 도박이 된다. 그래서 주식 투자에 성공하면 내 덕이겠지만 실패 역시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정부의 경제 정책과 자본시장 체질 개선 전략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고 비판하더라도 앞뒤 안 가리고 덤벼서 주가가 가파르게 치솟을 때 마냥 좋아하기만 했던 내 모습이 어땠는지부터 먼저 되돌아보자. 남 탓은 그다음이다.
[기자노트]시멘트시장 발목 잡는 전봇대
"제도가 제자리 걸음 입니다" 최근 만난 시멘트업계 관계자들은 약속이나 한듯 불만을 터트렸다. 정권이 바뀔때 마다 친환경 탄소 중립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정부 정책은 탄소 고배출 사업인 시멘트 기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업계에선 시멘트 제조사들이 친환경, 저탄소 제품을 생산할 기술과 기반을 갖추고도 제도적 장벽에 가로막혀 성장통을 겪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산업표준(KS)이 유럽보다 혼합재(산업 부산물) 종류와 사용비율(대체율) 등이 까다로워 저탄소 시멘트 생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국내 KS 규정에 따르면 주력제품인 일반(포틀랜드) 시멘트의 혼합재 대체율은 10% 이내로 제한하고 섞을 수 있는 혼합재도 4종 뿐이다. 반면 친환경 문화가 일상화 된 유럽 국가들은 1990년대부터 혼합재 관련 규정을 완화했다. 대체율은 최대 36%까지 가능하다. 혼합재도 10가지에 달한다. 이 때문에 정부가 혼합재와 대체율 비율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체율 상향과 함께 공공 발주 등을 통해 혼합재 비중이 높은 시멘트 시장 파이(규모) 자체를 키우는 제도 정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시멘트 제조사 관계자는 "단계적으로 혼합재 종류와 대체율을 최대 20%까지 확대하고 그에 맞는 시장 활성화 후속 방안 도입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했다.국내 시멘트사들은 기존 기술과 생산 기반을 활용하면 당장 혼합재 함량을 높인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관련 규제와 시장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생산과 공급 확대에 나서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한국의 시멘트 산업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국가 전체 배출량의 약 6%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조공정의 핵심원료(클링커)를 태우는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면 재활용 혼합재 사용이 늘어나는 만큼 핵심원료를 적게 사용하고 태우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발생도 줄일 수 있다.이재명 정부는 강도 높은 저탄소 중립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35년까지 53%에서 61% 수준으로 감축하는 목표를 수립했다. 하지만 정작 건설현장에선 다양한 친환경 원자재들의 시장 진입이 쉽지 않다. 탄소중립은 기업의 기술 개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준비된 기술이 실제 건설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시장을 만들어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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